체 게바라. 쿠바에 대해, 혁명에 대해, 전혀 무지한 사람이라도 한 번쯤은 들어본 이름이 아닐까 싶다. 빨간 장정의 두꺼운 책의 이름으로 접해본 사람도 있을 터이고, 조금은 거친 듯한 그의 모습이 그려진 옷으로 그를 접해본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만 체 게바라는 전혀 낯선 사람만은 아니다. 이 영화는 그 체 게바라의 젊은 시절의 이야기이다.

  마음이 맞는 친구와 함께 오토바이를 타고 남미를 횡단하겠다는 계획을 세우는 에르네스토 게바라. 그는 천식을 앓고 있지만, 그래도 그 의지만은 누구보다도 뜨겁고 강하다. 여행 도중 오토바이가 고장나서 결국은 걷고, 히치하이킹을 하면서 그들은 계획을 무사히 성공한다. 그런 여행 중에 그들은 정치적 이념때문에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을 만나기도 하고, 나환자촌에서 머무르기도 하면서 점점 성숙해져서 여행을 시작할 때의 그들의 모습이 아니게 된다.

  세상을 바꾸는 힘을 가지는 인물은 처음부터 그 씨앗을 가지고 태어나는 것일까? 아니면 그도 어느 순간 하나의 발화점을 가지게 되어 그런 인물로 변화할 수 있었던 것일까? 체 게바라의 경우가 전자이던 후자이던간에 확신할 수 있는 것은 젊은 시절 그가 겪은 이 일이 그에게 하나의 계기나 전환점이 되어줬다는 것이다.

  마추피추의 그 숨이막힐 것 같은 모습과 그들이 여행을 하면서 만나는 많은 사람들, 그리고 무엇보다도 두 젊은이 자체만으로도 가슴이 벅차오르는 영화였다. 나도 그처럼 내 인생을 바꿀 수 있는 경험을 한 번쯤 해보고 싶다.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느낄 수 있는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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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명 ㅣ 애거서 크리스티 미스터리 Agatha Christie Mystery 21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이가형 옮김 / 해문출판사 / 199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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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아나 사생아들을 입양해 자식으로 삼고 그들에게 한없은 애정을 쏟아부었던 아질 부인. 그녀가 살해되고 모든 상황은 범인으로 그 집의 천덕꾸러기인 재코를 지목한다. 그는 알라비이가 있음을 이야기하지만 그것을 증언해줄 사람이 등장하지 않고. 결국 감옥에 수감되어 몇 달뒤 폐렴으로 죽게된다. 그리고 2년 뒤, 재코의 알리바이를 증명해줄 사람이 등장하고, 그는 가족들에게서 잊혀진 사건을 다시금 들추어낸다. 재코에게 씌워진 누명은 벗겨졌으나 이제 가족들에게 남은 것은 서로에 대한 의심뿐.

  이 책에는 포와로나 마플 양과 같은 굵직한 탐정은 등장하지 않는다. 사건을 해결하는 것은 기억 속에 묻혀진 사건을 다시 들추어낸, 재코의 알리바이를 증명해줄 아서 캘거리라는 지리학자이다. 하지만, 그 뿐만 아니라 경찰에서도 다시금 수사는 진행되게 되고, 아질 부인의 사위인 필립도 이 사건을 단순한 게임으로 생각하면서 진상을 밝혀보려고 노력한다. 즉, 한 명의 탐정이 똑똑한 두뇌를 자랑하는 방식이 아닌 저마다 다른 사람이 저마다의 방식으로 범인을 찾고자하는 것이다. 하지만 사건에 중심에 있는 가족 구성원들은 진실이 밝혀지는 것을 원치 않고 왠지 꺼려한다. 그들은 그저 재코가 범인인 것을 계속 받아들이고 싶어할 뿐이다. 그들이 원하던, 원치 않던, 사건의 진범에 대한 추적은 계속되고, 가족 구성원들은 서로를 견제하고, 의심하게 되고, 이윽고 사랑하던 사람끼리도 관계가 틀어져버리고 만다.

  이 책의 상당부분은 가족들의 심리상태에 집중되고 있다. 그 때문에 과연 이들 가운데 누가 범인인 것일까를 두고 독자는 함께 고민하게 될 것이다. 단순히 필립처럼 사건을 하나의 게임으로 볼 수도 있을 것이고, 아니면 캘거리처럼 정의를 실현하고 죄 없는 사람이 피해를 보지 않는 것이 목적이 될 수도 있겠지만. 목적이야 어찌되고, 범인의 정체를 알아내느냐 마느냐는 둘째치고라도, 이 책 속에서 묘사되는 인간의 심리 묘사만으로도 충분한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작품이었다. 본격적인 추리소설이라기보다는 심리소설이라고 하는 편이 더 좋을 듯 싶은 책이었다.

  여담이지만 책의 인쇄상태가 참 마음에 안 들어서 읽는 재미를 반감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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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5-08-26 21: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인쇄상태 안좋다는 책이 이 책이군요. ^-^ 책을 어찌나 많이 보시는지...
대단하시다는 생각밖에 안듭니다. 저보다 나이 많으실꺼라 생각했어요.
근데. 실명이세요? ^-^; 뭐라고 불러야 하나...

이매지 2005-08-26 23: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실명은 아니고 이름때문에 붙은 별명이예요 -
그냥 매지야- 라고 하셔도 괜찮아요 ^-^
 
해변의 카프카 (하)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김춘미 옮김 / 문학사상 / 200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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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이 책을 처음 접했던 것도 벌써 재작년 일이 되었다. 그 당시만 해도 무라카미 하루키의 작품이라고는 <상실의 시대>만 읽었을 뿐이었고, 그의 작품 스타일이라던지 그런 것에 대해서는 전혀 무지했었다. 게다가 그 딱 한 권 접해본 <상실의 시대>도 읽은 게 몇 년 전의 일이었으니. 어찌보면 나는 이 책을 통해서 하루키를 처음 접하게 되었다고 봐도 무관할 듯 싶다. 이 책을 읽고 하루키의 책들을 한 권씩 다 읽어본 뒤(아직 에세이는 다 읽어보지 못했지만.) 다시 이 책으로 돌아와 읽어보니 느낌이 남다름을 느낀다.

  이 책은 15번째 생일에 가출을 한 다무라 카프카군의 성장 이야기와 어린 시절 괴이한 사건으로 텅 빈 인간이 되어버린 나카타 상의 이야기가 맞물려서 진행된다.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처럼 두 가지 이야기가 마치 씨실과 날실이 엮어지듯 등장하고 있고, 전혀 다른 두 사람의 이야기가 고무라 도서관이라는 한 장소에서 맞물려지면서 책을 읽는 재미를 더해주고 있다. 물론, 현실(이 현실이라는 것도 조금은 비현실적인 것 같지만)과 환상을 넘나드는 방식이나 오이디푸스의 이야기를 끌어들여와서 제대로 수습을 하지 않은 점 등과 같이 너무 일을 벌려놓고 수습을 하지 않는 것 같은 느낌도 없지 않아들긴 하지만 이 정도면 그래도 괜찮은 편이다라고 생각한다.

  단순히 현실과 비현실의 장벽을 함께 넘나드는 이야기 구조를 떠나서 그들에게 일어나는 일련의 사건을 통해서 다무라 카프카라는 한 소년이 성장해가는 것과 나카타 상이 임무를 수행해가는 것을 지켜보는 것으로 즐거움을 느낄 수 있었다. 물론, 내가 남자가 아니기 때문인지 이야기의 중심이 페니스에 집중되는 것과 성장과 페니스와의 상관관계에 대해서는 다소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여튼, 그러한 짤막짤막한 부분보다 이 책 속에 등장하는 다른 인물들. 즉, 몸은 남성이지만 성적으로는 여성인 오시마 상이나 사랑하던 사람이 죽어버린 후에 죽음만을 기다리는 삶을 살아가는 사에키 상, 피리를 만들기 위해 고양이를 죽이는 조니 워커, 너무도 순진한 살인범인 나카타상, 그리고 우연히 그를 만나 그의 일에 동행하게 된 호시노 청년(개인적으로 이 캐릭터로 소설을 써도 한 권은 쓰겠다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외 커피 전문점의 사장이나 커낼 샌더스와 같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 좋았다.

  얼마 전 출판된 <어둠의 저편>에서 다소 하루키에 대한 실망을 해서 그런 것인지, 오랜만에 읽는 하루키 특유의 1인칭 시점이 좋았던 것인지, 어쨋든 몇 가지 걸림돌은 뒤로한 채 그럭저럭 재미있게 읽어갈 수 있었던 것 같다.

   여담이지만, 나는 하루키의 장편이 좋다. 다음 장편은 언제쯤 만나볼 수 있으려나. 하기사 기껏 기다렸는데 <어둠의 저편>처럼 난감한 소설을 만나면 또 다시 난감해진다. 그에게서 <상실의 시대>와 같은 소설을 다시 만날 수 없을까봐 점점 걱정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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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변의 카프카 (하)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김춘미 옮김 / 문학사상 / 2003년 7월
구판절판


순수한 현재라는 건 미래를 먹어가는, 과거의 붙잡기 어려운 진행이다. 사실은, 모든 지각은 이미 기억이다.-87쪽

누구나 사랑함으로써 자기 자신의 결여된 일부를 찾고 있기 때문이지. 그렇기 때문에 사랑하는 사람을 생각하면, 다소의 차이는 있을망정 언제나 애절한 마음이 되는 거야. 아주 먼 옛날에 잃어버린 그리운 방에 발을 들여놓은 것 같은 기분이 되는 거지. 당연한 일이야. 그런 기분은 네가 발명한 게 아니야. 그러니까 특허 신청같은 것은 하지 않는 게 좋을 거야.-133쪽

하지만 나카타 상, 그렇게 말하자면 사람은 누구나 다소간의 차이는 있지만 모두 속이 텅 빈 껍데기가 아닐까? 밥 먹고, 똥 싸고, 시시껄렁한 일을 해서 쥐꼬리만 한 봉급을 받고, 이따금 오만코(성 또는 여성기를 뜻하는 일본의 가장 대표적인 비속어)나 할 뿐이잖아? 그 밖에 뭐가 있어? 하지만 이런 말을 하면서도 나름대로 재미있고 우스꽝스럽게 살고 있잖아? 무슨 이유에서인지는 모르지만.....우리 할아버지는 자주 이렇게 말하곤 했지. 세상이라는 건 자기 생각대로 되지 않기 때문에 재미있는 거라고. 일리가 있는 말이지, 그렇지 않아? 만일 드레곤스가 모든 시합마다 다 이긴다면 누가 야구 같은 걸 보러 가겠어?-149~150쪽

자유의 상징을 손에 넣고 있는 것은 자유로움 그 자체를 손에 넣은 것보다 행복한 일일지도 몰라.-167~8쪽

이 세상의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유 같은 건 원하지 않아. 원하고 있다고 믿을 뿐이지. 모든 것은 환상이야. 만약 정말로 자유가 주어진다면, 사람들은 대부분 무척 난감해할걸. 잘 기억해 두라구. 사람들은 실제로는 부자유를 좋아한다는 것을 말이야.-168쪽

결국 이 세계에서는 높고 튼튼한 울타리를 만드는 인간이 유효하게 살아남게 되는 거야. 그것을 부정하면 넌 황야로 추방당하게 돼.-169쪽

제가 추구하는 것은, 제가 추구하는 강함은, 이기거나 지거나 하는 강함이 아닙니다. 외부에서 가해지는 힘을 받아치기 위한 벽이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제가 원하는 것은 외부에서 가해지는 힘을 받아 거기에 견뎌내기 위한 강함입니다. 불공평함이나 불운, 슬픔이나 오해, 몰이해- 그런 것에 조용히 견뎌나가기 위한 강함입니다.-171쪽

청년은 어렸을 때의 일을 떠올렸다. 매일 근처에 강에 가서 물고기나 미꾸라지를 잡던 시절의 일을. 그 때는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아도 됐었는데, 하고 그는 생각했다. 그냥 살아가면 되었다. 살아 있는 날까지, 나는 어떤 존재라는 사실은 분명했다. 자연히 그렇게 되어 있었다. 그러나 어느새 그렇지 않게 되었다. 살아가면서 점점 나는 아무 존재도 아닌 것이 되고 말았다. 그것 참 이상한 얘기로군. 인간이란 살기 위해 태어나는 것 아닌가? 그렇잖아? 그런데도 살아가면 갈수록 나는 알맹이를 잃어간다. 그저 텅 빈 인간이 되어가는 것 같다. 게다가 앞으로 살아가면 살수록 나는 더욱더 텅 비고 무가치한 인간이 되어갈지도 모른다. 그건 잘못된 것이다. 그건 말도 안되는 이야기다. 그런 사고의 흐름을 어디에선가 바꿔놓을 수는 없을까? -191~2쪽

요컨대 사랑을 한다는 건 그런 거야, 다무라 카프카 군. 숨이 멎을 만큼 황홀한 기분을 느끼는 것도 네 몫이고, 깊은 어둠 속에서 방황하는 것도 네 몫이지. 넌 자신의 몸과 마음으로 그것을 견뎌야만 해.-235~6쪽

"그렇다면 한 가지 묻겠는데, 음악에는 사람을 변하게 하는 힘이 있다고 생각합니까? 말하자면 어떤 때, 어떤 음악을 듣고, 그 때문에 자기 내부에 있는 무엇인가가 크게 확 변해 버리는, 그런 일 말입니다."
오시마 상은 고개를 끄덕이며 "물론이죠" 하고 대답했다. "그런 일은 있습니다. 무언가를 경험하고, 그것에 의해 우리 내부에서 무언가가 일어납니다. 화학작용 같은 것이지요. 그리고 그 후에 우리는 자기 자신을 점검하고, 거기에 있는 모든 눈금이 한 단계 위로 올라간 것을 알게 됩니다. 자기의 세계가 한 단계 더 넓어졌다는 것을요. 저도 그런 경험이 있습니다. 물론 드물기는 합니다만, 가끔은 있습니다. 연애와 마찬가지입니다." -287~8쪽

추억이란 당신의 몸을 안쪽에서부터 따뜻하게 해주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당신의 몸을 안쪽으로부터 심하게 갈기갈기 찢어놓는 것이기도 합니다.-30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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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변의 카프카 (상)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김춘미 옮김 / 문학사상사 / 2003년 7월
구판절판


어떤 경우에는 운명이라고 하는 것은 끊임없이 진로를 바꿔가는 국지적인 모래 폭풍과 비슷하지. 너는 그 폭풍을 피하려고 도망치는 방향을 바꾼다. 그러면 폭풍도 네 도주로에 맞추듯 방향을 바꾸어버리지.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마치 날이 새기 전에 죽음의 신과 얼싸안고 불길한 춤을 추듯 그런 일이 되풀이 되는 거야. 왜냐하면 그 폭풍은 어딘가 먼 곳에서 찾아온, 너와 아무 관계가 없는 어떤 것이 아니기 때문이지. 그 폭풍은 그러니까 너 자신인거야. 네 안에 있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면 돼. 그러니까 네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모든 걸 체념하고 그 폭풍 속으로 곧장 걸어 들어가서 모래가 들어가지 않게 눈과 귀를 꽉 틀어막고 한 걸음 한 걸음 빠져나가는 일뿐이야. 그곳에는 어쩌면 태양도 없고 달도 없고 방향도 없고 어떤 경우에는 제대로 된 시간조차 없어. 거기에는 백골을 분쇄해 놓은 것 같은 하얗고 고운 모래가 하늘 높이 날아다니고 있을 뿐이지. 그런 모래 폭풍을 상상하란 말야. -17쪽

세계가 이렇게 넓은 공간이 있는데도, 너를 받아줄 공간은-그건 아주 조그만 공간이면 되는데- 어디에도 없다. 네가 목소리를 구할 때 거기 있는 것은 깊은 침묵이다. 그러나 네가 침묵을 구할 때 거기에는 끊임없는 예언의 소리가 있다. 그 목소리가 이따금 네 머릿속 어딘가에 숨겨져 있는 비밀 스위치 같은 것을 누른다. -27쪽

장소의 이름 같은 건 아무래도 상관없어. 화장실과 식사. 형광등과 플라스틱 의자. 맛없는 커피. 딸기쨈 샌드위치. 그런 것에 의미는 없다구. 중요한 건, 우리가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려고 하는가 아닐까? 안 그래?-50쪽

모든 것이 잊혀져가고 있습니다. 그 큰 전쟁에 관한 일도, 돌이킬 수 없는 생사 문제도, 모든 일들이 먼 과거의 일이 되어갑니다. 나날의 삶이 우리 마음을 지배하고, 많은 중요한 일들은 차갑게 식어버린 오랜 별처럼 의식 밖으로 사라져갑니다. 우리에게는 일상적으로 생각해야 할 일이 너무 많고, 새로 배우지 않으면 안 될 일도 너무 많습니다. 새로운 양식, 새로운 지식, 새로운 기술, 새로운 말들.....그러나 그와 동시에 아무리 많은 시간이 흘러도, 도중에 무슨 일이 일어나든 절대로 망각할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주춧돌처럼 자기 안에 남는 것이 있는 법입니다. 결코 마모되지 않는 기억이 있습니다.-190~1쪽

하지만 이제 곧 알게 될거야. 인간은 이 세상에서 따분하고 지루하지 않은 것에는 금세 싫증을 느끼게 되고, 싫증을 느끼지 않는 것은 대개 지루한 것이라는 걸. 그런 거야. 내 인생에는 지루해할 여유는 있어도 싫증을 느낄 여유는 없어.-218쪽

모든 것은 상상력의 문제다. 우리의 책임은 상상력 가운데에서 시작된다. 그 말을 예이츠는 이렇게 쓰고 있다. In dreams begin the responsibilities. 그 말대로다. 거꾸로 말하면, 상상력이 없는 곳에 책임은 발생하지 않을지도 모른다-256쪽

"눈을 감아서는 안 되네!"하고 조니 워커는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것도 규칠일세. 눈을 감아서는 안 되네. 눈을 감아도 사태는 조금도 좋아지지 않으니까. 눈을 감았다고 해서 무엇인가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지. 아니, 오히려 다음에 눈을 떴을 때, 사태는 더 악화되어 있을 거라네. 우리는 그런 세계에 살고 있는 걸세, 나카타상. 눈을 똑바로 떠야 하네. 눈을 감는 것은 약자가 하는 짓이야. 현실에서 눈을 돌리는 것은 비겁한 자가 하는 짓이란 말일세. 자네가 눈을 감고 귀를 틀어막고 있는 동안에도 시간은 가고 있단 말이야, 똑딱똑딱하고." -285쪽

그것이 이야기의 공통적인 구성 요소지. 커다란 전환. 의외의 전개. 행복은 한 종류밖에 없지만, 불행은 사람에 따라 천차만별이야. 톨스토이가 지적한 대로 말이야. 당사자 이외의 타인에게 행복이란 교훈적인 우화이고, 불행이란 재미있는 이야깃거리일 경우가 많지.-307쪽

우리 인생에는 되돌아갈 수 없는 한계점이 있어. 그리고 훨씬 적기는 하지만,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갈 수 없는 한계점도 있지. 그런 한계점에 이르면 좋든 나쁘든 간에 우리들은 그저 잠자코 그것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지. 우리는 그렇게 살고 있는 거야-315쪽

세계는 나날이 변화하고 있다고, 나카타 상. 매일 때가 되면 날이 밝지. 그러나 거기 있는 건 어제와 똑같은 세계는 아니지. 여기 있는 건 어제의 나타카 상이 아니란 말이야. 알겠어? -369쪽

주위에서 잇따라 여러 가지 일이 일어나요. 그중의 어떤 것은 내가 선택한 일이고, 어떤 것은 전혀 선택하지 않은 일이에요. 하지만 나는 그 두 가지를 잘 구별할 수가 없게 됐어요. 즉 내가 선택했다고 생각한 일도, 실제로는 내가 그 일을 선택하기 전에 이미 일어나기로 정해져 있던 것처럼 생각돼요. 나는 다만 누군가가 미리 어딘가에서 정한 것을, 그냥 그대로 따르고 있을 뿐이라는 느낌이 들어요. 아무리 스스로 생각하고, 아무리 애써 보았자 그런 것은 전부 헛일이라고 말예요. 아니, 노력하면 할수록 내가 점점 더 내가 아니게 되어가는 것 같은 느낌조차 들어요. 내가 나 자신의 궤도로부터 멀어져가는 것 같은 느낌 말이에요. 그리고 그건 나에게 아주 힘든 일이거든요. 아니, 무섭다고 하는 편이 맞을지도 몰라요. 그런 생각을 하기 시작하면, 때때로 온몸이 오그라드는 것 같아요.-383~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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