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변의 카프카 (하)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김춘미 옮김 / 문학사상 / 2003년 7월
구판절판


순수한 현재라는 건 미래를 먹어가는, 과거의 붙잡기 어려운 진행이다. 사실은, 모든 지각은 이미 기억이다.-87쪽

누구나 사랑함으로써 자기 자신의 결여된 일부를 찾고 있기 때문이지. 그렇기 때문에 사랑하는 사람을 생각하면, 다소의 차이는 있을망정 언제나 애절한 마음이 되는 거야. 아주 먼 옛날에 잃어버린 그리운 방에 발을 들여놓은 것 같은 기분이 되는 거지. 당연한 일이야. 그런 기분은 네가 발명한 게 아니야. 그러니까 특허 신청같은 것은 하지 않는 게 좋을 거야.-133쪽

하지만 나카타 상, 그렇게 말하자면 사람은 누구나 다소간의 차이는 있지만 모두 속이 텅 빈 껍데기가 아닐까? 밥 먹고, 똥 싸고, 시시껄렁한 일을 해서 쥐꼬리만 한 봉급을 받고, 이따금 오만코(성 또는 여성기를 뜻하는 일본의 가장 대표적인 비속어)나 할 뿐이잖아? 그 밖에 뭐가 있어? 하지만 이런 말을 하면서도 나름대로 재미있고 우스꽝스럽게 살고 있잖아? 무슨 이유에서인지는 모르지만.....우리 할아버지는 자주 이렇게 말하곤 했지. 세상이라는 건 자기 생각대로 되지 않기 때문에 재미있는 거라고. 일리가 있는 말이지, 그렇지 않아? 만일 드레곤스가 모든 시합마다 다 이긴다면 누가 야구 같은 걸 보러 가겠어?-149~150쪽

자유의 상징을 손에 넣고 있는 것은 자유로움 그 자체를 손에 넣은 것보다 행복한 일일지도 몰라.-167~8쪽

이 세상의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유 같은 건 원하지 않아. 원하고 있다고 믿을 뿐이지. 모든 것은 환상이야. 만약 정말로 자유가 주어진다면, 사람들은 대부분 무척 난감해할걸. 잘 기억해 두라구. 사람들은 실제로는 부자유를 좋아한다는 것을 말이야.-168쪽

결국 이 세계에서는 높고 튼튼한 울타리를 만드는 인간이 유효하게 살아남게 되는 거야. 그것을 부정하면 넌 황야로 추방당하게 돼.-169쪽

제가 추구하는 것은, 제가 추구하는 강함은, 이기거나 지거나 하는 강함이 아닙니다. 외부에서 가해지는 힘을 받아치기 위한 벽이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제가 원하는 것은 외부에서 가해지는 힘을 받아 거기에 견뎌내기 위한 강함입니다. 불공평함이나 불운, 슬픔이나 오해, 몰이해- 그런 것에 조용히 견뎌나가기 위한 강함입니다.-171쪽

청년은 어렸을 때의 일을 떠올렸다. 매일 근처에 강에 가서 물고기나 미꾸라지를 잡던 시절의 일을. 그 때는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아도 됐었는데, 하고 그는 생각했다. 그냥 살아가면 되었다. 살아 있는 날까지, 나는 어떤 존재라는 사실은 분명했다. 자연히 그렇게 되어 있었다. 그러나 어느새 그렇지 않게 되었다. 살아가면서 점점 나는 아무 존재도 아닌 것이 되고 말았다. 그것 참 이상한 얘기로군. 인간이란 살기 위해 태어나는 것 아닌가? 그렇잖아? 그런데도 살아가면 갈수록 나는 알맹이를 잃어간다. 그저 텅 빈 인간이 되어가는 것 같다. 게다가 앞으로 살아가면 살수록 나는 더욱더 텅 비고 무가치한 인간이 되어갈지도 모른다. 그건 잘못된 것이다. 그건 말도 안되는 이야기다. 그런 사고의 흐름을 어디에선가 바꿔놓을 수는 없을까? -191~2쪽

요컨대 사랑을 한다는 건 그런 거야, 다무라 카프카 군. 숨이 멎을 만큼 황홀한 기분을 느끼는 것도 네 몫이고, 깊은 어둠 속에서 방황하는 것도 네 몫이지. 넌 자신의 몸과 마음으로 그것을 견뎌야만 해.-235~6쪽

"그렇다면 한 가지 묻겠는데, 음악에는 사람을 변하게 하는 힘이 있다고 생각합니까? 말하자면 어떤 때, 어떤 음악을 듣고, 그 때문에 자기 내부에 있는 무엇인가가 크게 확 변해 버리는, 그런 일 말입니다."
오시마 상은 고개를 끄덕이며 "물론이죠" 하고 대답했다. "그런 일은 있습니다. 무언가를 경험하고, 그것에 의해 우리 내부에서 무언가가 일어납니다. 화학작용 같은 것이지요. 그리고 그 후에 우리는 자기 자신을 점검하고, 거기에 있는 모든 눈금이 한 단계 위로 올라간 것을 알게 됩니다. 자기의 세계가 한 단계 더 넓어졌다는 것을요. 저도 그런 경험이 있습니다. 물론 드물기는 합니다만, 가끔은 있습니다. 연애와 마찬가지입니다." -287~8쪽

추억이란 당신의 몸을 안쪽에서부터 따뜻하게 해주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당신의 몸을 안쪽으로부터 심하게 갈기갈기 찢어놓는 것이기도 합니다.-30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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