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역사와 문화의 자긍심을 빛낸 걸작 단원풍속도첩
전통 수제본으로 복원한 대화가의 풍속화첩


지난 10월 28일 용산의 국립중앙박물관이 1년간의 유물 이전 작업을 마치고 마침내 개관을 맞아 귀중한 역사 유물들을 풀어놓았다. 새로 개관한 국립중앙박물관은 연일 입구에서부터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다. 세계에서 여섯 번째로 큰 규모를 자랑하는 박물관을 빠진 데 없이 관람하는 데는 무려 11시간이 걸린다고 하니, 박물관 자체에서 ‘국립중앙박물관 명품 50선’과 같은 관람 코스를 추천하기까지 하고 있다. 그 ‘명품’ 목록에 반가사유상(미술관 Ⅱ)과 단원풍속도첩(미술관Ⅰ)이 들어 있다.
이번에 민음사에서 소개하는 책 『반가사유상』과 『단원 풍속도첩』은 위 두 가지 유물의 미술적 기품과 가치, 그리고 역사적 의미를 충분히 되살리고 보다 널리 보이고자 기획된 책으로, 지난 10월 17일부터 23일에 열린 2005 프랑크푸르트 국제 도서전을 통해 소개되었으며, 몇몇 해외 출판사로부터 관심을 받은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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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회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 『수상한 식모들』 출간!
제1회 『새의 선물』의 은희경, 제2회 『아무 곳에도 없는 남자』의 전경린, 제3회 『예언의 도시』의 윤애순, 제5회 『숲의 왕』의 김영래, 제8회 『그녀는 조용히 살고 있다』의 이해경, 그리고 지난해 제10회 『고래』의 천명관까지, 말 그대로 ‘대형 신인’의 산실인 ‘문학동네소설상’이 또 한 명의 걸출한 신인을 선보이게 되었다. 올해 수상자인 박진규씨는 올해 스물아홉. 며칠 후면 서른이 될 그는 결코 데뷔가 빠르다고 할 수가 없는 나이인데도 역대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자 중 최연소이다.

“나는 타구를 들고 뛰어다니는 노예가 되어 유령들이 뱉어버린 일곱 빛깔 무지개 각혈들을 모으고 또 모았다. 그것은 어느새 글자로 굳어지고, 문장으로 나불대고, 그림으로 살랑거리다가, 이야기새끼줄로 비비 꼬더니, 돌연 춤사위로 손을 뻗어 키보드를 두드렸다. 그러다보니 어느덧 타락하여 능청스러워진, 그러면서도 옛날 옛적 이솝보다 약간 귀염성 있고 애련한 이 노예는 소설가라는 이름을 슬쩍 바짓주머니에 집어넣게 되었다.”

지난해 문학동네소설상 최종심에까지 올랐다가 고배를 마셨던, 제목부터가 수상하기 그지없는 이 소설 『수상한 식모들』은 이렇게 씌어졌다. 요즘 아이들 말로 ‘그분’이 오셨다는, 아니 ‘그분’을 모셨다는 얘기. 박진규의 ‘그분’은 먼저 꿈에 나타나셨나보다. 어느 날 우연하게 ‘수상한 식모들’이라는 제목이 먼저 떠올랐고, 몇 번 중얼거리다보니 생각이 떠오르기 시작했고, 그때쯤 후배로부터 모딜리아니의 <하녀>라는 그림에 나오는 하녀의 눈빛이 도도하다고 해서 그것이 궁금해졌고, 그리고 그 무렵 호랑이가 자주 꿈에 나타났다.
해는 동쪽에서 뜨고, 강물은 바다로 후른다는 사실을 우리가 의심하지 않듯이, 우리는 우리가 곰의 자녀라는 신화적 혈통에 대해서 왈가왈부하지 않았다. 다시 말해 곰과 함께 쑥과 마늘을 들고 동굴로 들어갔다가 참지 못하고 뛰쳐나온 호랑이에 대해서는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다. 곰이 여성의 시조라면, 그때 호랑이는 어떻게 되었을까, 라는 의문은 그렇게 시작되었고, 그 끝에 열매로 매달린 것이 ‘호랑아낙’이었고, 『수상한 식모들』이었다.


역사에 대한 전복적인 해석 때문에 새롭고, 발상의 불온함 때문에 신선하고,
상식성을 벗어난 상상력 때문에 웃기고, 그리고, 최종적으론 섬뜩하고 무섭다!


자신의 소설을 읽는 독자들이 “환각상태”를 경험했으면 한다는 작가의 소망은 이루어진 듯하다. 소설을 읽다보면 마치 롤러코스터를 탄 듯 살짝(!) 어지럽다. 자, 안전바를 내리고, 어깨의 벨트를 꽉 잡고 두근두근, 조마조마 천천히 하늘언덕을 향해 올라간다. 정상에서 잠시 정지. 잠깐 주위를 둘러볼 사이도 없이 곧장 떨어지기 시작하면 그때부턴 정말 보이는 게 없다. 빠르게 지나가는 풍경들, 그저 롤러코스터와 한 몸이 되어 돌고 떨어지고 다시 오르고…… 그러곤 어느 사이 종착지점.
『수상한 식모들』은 이런 롤러코스트와 꼭 닮았다. 온라인 하녀 게임에 빠져 있는 실업자 아빠, 졸부의 아내 역에 심취해 있다가 갑자기 망해버린 아빠의 사업 때문에 하루 종일 신세한탄만 늘어놓는 엄마, 가족들은 안중에도 없는 콧대 높은 초등학생 천재 동생, 집 나간 형을 둔 백삼십 킬로 비만 고등학생의 그저 그런 가족일기인가 했더니, 이야기는 순식간에 ‘호랑아낙’과 그뒤를 잇는 ‘수상한 식모’의 그것으로 바뀌어 어느새 구르고 돌고 재주넘고, 온갖 묘기를 선보이며 빠르게 진행되다가 어, 어, 하는 사이 종착지점에 와 있다. 정말 수상한 것은, 그렇게 정신없이 쫓아가다 책장을 덮고 나니, 지나친 풍경들이 보이는 것이다. 소설의 재미에 빠져 놓치고 있었던, 혹은 그대로 지나쳐버릴 수도 있었을 어떤 ‘새롭고, 신선하고, 웃기고 섬뜩’한 장면들이 눈앞에 하나둘 떠오르는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다시 한번 롤러코스터에 오른다. 이미 경험한 것임에도 처음의 그 가슴 설렘을 다시 반복하면서……


“여러분 스스로를 자랑스러워하세요. 우리는 혼돈을 출산합니다. 깃발 대신 식칼을 들고 부르주아 가정의 거짓 행복을 재료 삼아 마음대로 요리합니다.”

신의 뜻을 거스르지 않고 복종한 대가로 여성의 시조가 된 짐승이 곰이었다면, (이 소설에 따르면) 신에게의 복종을 거부하고 스스로 여자가 된 짐승이 있었으니, 바로 호랑이었다. 이 호랑아낙들은 자신의 생존을 위해 남성들의 거대한 억압체계와 맞서왔다. 이들이 한국사회의 부와 명예를 독식해온 집단(왕조, 탐관오리, 다수의 뻔뻔한 양반이나 귀족계급)에 대해 은밀하게 대항하는 모습을 보여왔다면 호랑아낙의 정신을 이어받은 수상한 식모들은 의도적으로 부르주아 가정에 잠입하여 그들의 위선을 까발리고, 가정을 해체시키는 역할을 떠맡아왔다.
호랑아낙들은 연산군을 폐위시키는 일에 참여하기도 했고, 지방 탐관오리의 악행을 고발하는 데 일조하기도 했으며, 동학혁명 때도 큰 몫을 해냈다. 수상한 식모들이 본격적으로 활동하기 시작한 것은 일제시대 때부터였다. 조선을 지탱하던 신분사회는 몰락했지만 신분 사이의 경계는 더욱 두터워졌다. 이 단단한 신분의 경계를 만들어놓은 것은 바로 자본. 자본은 어떠한 법도보다 더 강력하게 신분 사이의 교류를 끊어놓았고, 이제 계급과 계급 사이에서 활발히 움직이던 호랑아낙의 움직임은 점점 둔해지다가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아예 호랑아낙은 전설로만 남고, 수상한 식모들이란 이름을 지닌 새로운 집단이 발생하게 된 것이다.

박진규가 풀어놓는 이 호랑아낙 그리고 수상한 식모들의 행각은 그야말로 황당하고 기발하다.
천기를 누설한 죄로 얼굴을 제외한 모든 신체부위가 돌이 되어버린 ‘마지막 수상한 식모’ 순애씨는 ‘나(경호)’에게 수상한 식모들의 비밀을 하나하나 풀어놓는다. 그녀의 이야기 속엔 예언자 염옥과, 어떤 병이든 치료할 수 있는 신비한 효험을 가진 ‘오줌’을 누게 된 민자씨, 바구니만 들고 나갔다 하면 무엇이라도 채워오는 점래, 저 유명한 시인 김수영에게 「식모」라는 시를 쓰게 한 식모 김수영 등 다양한 방면에서 활동을 펼쳐 보인 수상한 식모들의 이야기가 숨어 있다. 순애씨의 이야기를 받아적는 경호 역시 어린 시절 ‘순애씨가 집어넣은 꿈을 갉는 쥐 때문에’ 성장기를 순탄치 못하게 지내왔(다고 믿)으며, 가족들 역시 이 때문이라고는 할 수 없으나 화목하다고는 할 수가 없다. 젊은 시절의 그 수상한 식모를 잊지 못해 환갑이 넘은 나이에 다시 붓을 잡고 며느리에게 누드 모델을 서달라는 할아버지와, 유산을 생각하고 기꺼이 시아버지 앞에서 옷을 벗는 엄마, 경호의 친구 선재의 목소리가 더빙된 ‘하녀 시뮬레이션 게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아버지와 트림하는 괴물이 되어 집을 떠난 형(알고 보니 형 역시 수상한 식모의 피해자였고……), 할아버지 앞에서 벌거벗고 있는 엄마를 본 충격으로 천재 꼬마에서 독실한 기독교 신자가 되어버린 초등학생 동생……
이야기는 경호의 가족 얘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어찌어찌 제 생활을 찾고 자리를 잡아가던 그에게 다시 ‘물’이란 정체불명의 여인이 등장하고, 그야말로 믿거나 말거나 황당한 이야기는 다시 시작된다.
자 이제, 당신은 이 이야기를 믿을 건가? 믿지 않는다면, 그렇다면, 당신들 귀에 쥐를 집어넣는다면 믿을 텐가?


질주하는, 전복적인, 쾌활한 상상!

『수상한 식모들』은 발상이 신선하고 접지하는 방법은 아주 웃긴다. 읽고 나면 어딘지 모르게 섬뜩해진다. 혹시 ‘수상한 식모들’이 내 주변에도 있는 게 아닌가. 옆에서 잠든 아내 얼굴도 새롭게 꼼꼼히 들여다보게 만드는, 그런 이상한 힘을 이 소설은 가지고 있다. 『수상한 식모들』은 역사에 대한 전복적인 해석 때문에 새롭고, 발상의 불온함 때문에 신선하고, 뜨거운 것들을 짐짓 감추면서, 그러나 음험하게, 상식성을 벗어난 상상력 때문에 웃기고, 그리고, 최종적으론 섬뜩하고 무섭다. 박범신(소설가)

『수상한 식모들』은 기존 소설 독법을 배반한다. 쓸데없는 허튼 상상으로부터 출발하는 것 같은데 다 읽고 나면 의외로 묵직한 울림을 준다. 이 작가 덕분에 이제 식모라는 존재는 이전의 식모가 아니다. 낡은 의미를 새롭게 전환시키는 것도 문학의 힘이라도 본다면 이 작품은 그에 이바지한 셈이다. 시종일관 웃으며 읽다가 다 읽고 나서 돌연 주변이 수상하게 여겨지는 느낌을 이 작품을 읽은 사람들은 경험케 될 것이다. 더불어 아무렇지도 않게 진행되는 우리 일상이 아주 낯설게 느껴지는 순간 또한 동시에 체험할 것이다. 신경숙(소설가)

이 얼마나 발칙한 상상인가. 또 얼마나 유쾌한 농담인가. 그리고 또 우리가 애지중지하듯 모시고 있는 역사상에 대한 얼마나 신랄한 풍자인가. 한마디로 『수상한 식모들』은 호랑이도 자기 스스로 여자가 되었다는 유쾌한 상상 하나로 저 신화시대부터 이어져 내려오던 남근 중심주의적이고 로고스 중심주의적인 사회 모럴의 허구성과 억압적 성격을 여지없이 묘파해낸 소설이라 할 수 있거니와, 이는 기존의 권위주의적 담론을 의심하고 탈영토화하려는 자유 의지가 만들어낸 하나의 쾌거라 할 만하다. 『수상한 식모들』로 인하여 우리 소설사도 이제 농담의 역사, 혹은 역사적 농담이라는 희귀한 변종을 갖게 되었다고나 할까. 류보선(문학평론가, 군산대 국문과 교수)



- 초판발행 | 2005년 12월 22일
_ 신국판 | 336쪽 | 값 9,500원
_ ISBN 89-546-0073-5 03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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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의 남자 - O.S.T.
이병우 작곡 / 알레스뮤직 / 2005년 12월
평점 :
품절


영화는 단순히 배우의 연기와 시나리오의 탄탄함이 전부가 아니다. 영화를 보고 나온 뒤, 우연히 그 영화의 음악을 들으면 마법처럼 영화의 장면이 스치고 지나가는 것을 많은 사람들이 한 번쯤은 느껴봤을 것이다. 그만큼 영화음악의 힘은 알게 모르게 영화의 일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사실 한동안 우리 영화에서는 외국의 팝송들을 인용한 경우가 많았었는데, 최근들어 우리만의 음악을 영화에서도 만날 수 있게 되었다. 그런 면에서 <왕의 남자>의 음악을 담당한 이병우는 돋보인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음악가이라는 편애모드가 다소 작용하고 있지만.)

이병우의 매력을 처음으로 느꼈던 것은 <장화, 홍련> 때였다. 긴장감있고, 영화의 분위기와 잘 어울리는 선율. 그 뒤로 <스캔들>, <연애의 목적>과 같은 작품에서도 그는 실력을 발휘해서 괜찮은 영화 음악들을 쏟아냈다. 그리고 이번 <왕의 남자> ost도 제법 잘 빠진 작품들로 가득차있다.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이 영화는 유독 음악이 필요한 장면이 많았다. 주인공들이 광대이기때문에 그들이 놀이판을 벌일때면 당연히 음악은 등장해야했다.  게다가 인물간의 갈등요소들이 두드러지기때문에 그것을 음악으로 섬세하게 표현하는 것도 필요했다. 애잔한 선율이 주가 되는 음악(몇 곡에서는 덩실덩실 춤이 나올 것 같지만 대개는 애잔한 선율이었다.)은 다시금 영화의 내용을 떠올리게 하여 마음을 짠하게 만든다. 이병우를 좋아하는 사람들 뿐만 아니라 영화를 괜찮게 본 사람이라면 ost도 실망하지 않고 들을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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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ng 2006-01-22 17: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떤날 부터 이병우 팬입니다 ^^
솔로앨범들도 좋더니만 이젠 영화음악까지
장화홍련을 듣고도 반했더랬죠
왕의 남자도...역시나 더군요~~

이매지 2006-01-22 18: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몽님도 이병우의 팬이셨군요 !
장화홍련에 반해서는 스캔들때 빠져서는 왕의 남자에서 허우적. ㅋ

이잘코군 2006-01-22 19: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나도 이병우 팬. 집에 이 사람 기타독집있는데.

야클 2006-01-22 22: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엔딩장면에서 흘러나오던 음악이 참 좋았는데.

이매지 2006-01-23 22: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프락사스님 / 기타독집은 아직 못 들어봤는데. 좋은가요??
야클님 / 아아. 저도 그 엔딩곡 기억나요. 저도 그 곡 괜찮아요^-^

이쁜하루 2006-01-26 04: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스캔들 때부터 좋아했는데..그래서 독집음반 그때 부터 들었는데 너무 좋아요
제가 좋아하는 월드그룹 바이날로그에서 목관악기 부시는 분이 왕의 남자 ost 참여했다고 해서 유심히 듣고 있는데 영 음악에 소질이 없아놔서 잘 안들리네요..^^;; 이공..

이쁜하루 2006-01-26 04: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금 들어보니[프롤로그]를 비롯해서 [너거기있니? 나 여기있어]에서 대금(또는 소금^^;;) 소리가 너무 곱게 들리네요 ^^

이매지 2006-01-26 12: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쁜하루님도 이병우를 ! ^-^저도 아직 전문적인 리스너는 못되서 악기 소리를 구별해내는건 어려워요^^; 그냥 듣고 좋다고 느끼면 되는거지. 라고 위안을 ㅋ
 
사랑 후에 오는 것들 - 공지영 ㅣ 사랑 후에 오는 것들
공지영 지음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5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사실 공지영의 소설은 이번이 거의 처음이다. 이상시레 한국 여성 작가들과는 뭔가 묘하게 핀트가 맞지 않아서 왠지 꺼려왔던 것. 난 그들이 맨날 우울의 늪에서 허우적거리는 게 싫었고, 사회적으로 아픔을 겪는 모습을 보는게 싫었다. 때문에 <사랑후에 오는 것들>이라는 책을 접했을 때도 당연히 츠지 히토나리의 책에 손이 먼저 갔고, 이 책은 츠지 히토나리의 책을 읽고 며칠이나 지나서 겨우 손에 잡았다. (결과적으로 츠지 히토나리쪽을 먼저 읽은게 다행인 것 같지만.) 작가 후기에 나오지만 이 이야기는 해피엔딩이다. 작가도 스스로가 짊어진 짐을 내려놓고 쓸 수 있었다고 말할 정도로 내가 싫어하는 그런 요소들도 찾아보기 어려웠다. 그저 한국인 여자 최홍과 일본인 남자 준고의 사랑이야기가 그려지고 있을 뿐.

  이 책은 <냉정과 열정사이>처럼 남자의 마음, 여자의 마음을 각각 따로 보여주고 있다. 때문에 같은 상황 속에서 그들이 어떤 방식으로 생각을 했는지, 왜 그런 행동을 해야만 했는지를 알 수 있게도 해주지만, 같은 이야기를 다른 작가가 풀어가는 즐거움도 느낄 수 있게 해준다. 츠지 히토나리의 경우에는 과도한 묘사나 한일관계에 대한 의식을 표면적으로 드러내주고 있어서 전체적인 이야기의 흐름보다는 세부적인 면들이 눈에 들어왔다면, 공지영의 경우에는 적당한 묘사와 한일관계에 대한 의식, 그리고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감정의 변화가 어울려 제법 읽을만한 책으로 다가왔다.

  스물 둘의 철없던 시절의 사랑과 스물 아홉의 세상물정 다 알아버린 여자의 사랑은 달랐다. 자신의 옆에서 항상 자신만을 바라보는 민준과 7년만에 자신 앞에 나타난 결코 잊을 수 없었던 준고 사이에서 그녀는 갈등하고, 고민하고, 방황한다. 그리고 그 방황의 종지부는 새로운 시작으로 다가온다.  

  변하지 않는 사랑이 있다고 믿느냐는 질문은 작품의 전반을 꿰뚫고 있다. 홍과 준고의 사랑을 보면 변하지 않는 사랑이 있다고 믿을 수도 있을 것 같지만, 책 속에서도 말한 것처럼 사랑이 변하는 것 자체가 사랑의 속성이니. 과연 준고와 홍이 사랑이라고 믿는 그 감정은 그들이 서로 사랑하던 22살의 자신에 대한 그리움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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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후에 오는 것들 - 공지영 ㅣ 사랑 후에 오는 것들
공지영 지음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5년 12월
구판절판


사람들은 사실 우리 생각보다 남의 일에 관심이 없다. 나도 그걸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나는 왠지 모를 수치심과 불안감으로 떨고 있었다. -28쪽

말이야, 두꺼비집이 닫히는 것처럼, 물기 묻은 전원에 스위치가 자동으로 차단되는 것처럼, 사랑 같은 거, 호감 같은 거, 느끼려는 순간 철컥 하고 스위치가 내려져. 나도 어쩔 수가 없어. 일부러 그러는 건 아니야. 그런데 그 이후에는 아무것도 느낄 수가 없어. 아무리 그러지 않으려고 해도 아무것도 느껴지지가 않아. 감정이 암전된 것만 같아.-30쪽

이 밤 따뜻한 저 카페 안에서 연인들은 사랑하리라. 사랑한다고 말하고 두 손을 잡고 있으리라. 죽을 때까지 함께 아침을 맞자고 약속을 할지도 모른다. 내일이면 손가락 사이로 모래가 빠져나가듯 말들이 우리를 버려두고 추억의 페이지 속으로 우루루 사라져 버릴지라도, 어쩌면 지금 이 순간 그들은 영원을 움켜쥔 듯 기쁠 것이다. -57쪽

말할 시간은 많을 거야. 그러다 보면 그 말을 하는 동안, 네가 말하는 그 감정이라는 것도 변해 가. 네가 무슨 말을 하려고 했는지도 잊어버리고, 네가 왜 그 말을 하려고 했는지도 모르게 되고. 감정은 변하는 거니까. 그건 고마운 거야. 변하니까 우린 사는거야.-96쪽

결혼이라는 것만큼 이미 해본 사람은 하지 말라 하고, 하지 않은 사람은 기어이 하고 마려는 것이 또 있을까. 사람들은 인터넷으로 물건을 주문할 때면 그토록 꼼꼼히 리뷰들을 챙기면서 결혼이라는 사건에 대해서는 누구의 리뷰도 신경 쓰려고 하지 않는다.-104쪽

나는 내가 진심으로 누군가를 사랑한다면, 온 우주의 풍요로움이 나를 도와줄 거라고 굳게 믿었다. 문제는 사랑이 사랑 자신을 배반하는 일 같은 것을 상상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사랑에도 유효 기간이 있다는 것, 그 자체가 이미 사랑의 속성이었다. 우리는 사랑이 영원할 거라고 믿게 하는 것 자체가 이미 사랑이 가지고 있는 속임수라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했던 것이다. 사랑의 빛이 내 마음속에서 밝아질수록 외로움이라는 그림자가 그만큼 짙게 드리워진다는 건 세상천지가 다 아는 일이었지만, 나만은 다를 거라고, 우리의 사랑만은 다를 거라고 믿었다 -112쪽

여자들은 말이야. 너무 매사를 사랑에 연결시키는 경향이 있어. 사랑에 집착하는 순간, 거기에 모든 걸 거는 순간, 남자는 떠나가는 거야. 남자의 본성은 사냥꾼이거든. 잡아 놓은 짐승보다는 아슬아슬하게 도망 다니는 언덕 위의 날랜 사슴을 쫓아가고 싶어하거든. 우리 여자들이 할 일은 그들의 그런 본성을 인정하고 쿨해지는 거야. 그래야 남자들의 사냥 본능을 만족시킬 수 있거든. -125쪽

사랑이 깨어지는 방식은 이래. 남자와 여자가 첫눈에 반한다. 대개는 남자가 먼저지. 그러다가 여자가 그 마음을 받아들인다. 사랑이 익숙해질수록 여자는 사랑을 조금씩 더 많이 주기 시작한다. 그러면 남자는 슬슬 여자가 지겨워지고 새로운 사람에 흥미를 느낀다. 여자는 더 집착하고 그럴수록 남자는 더 떠나고 싶어하고, 그럴수록 여자는 더 집착한다. 그리고 끝. 속편은 이거야. 여자는 친구를 붙들고 남자들은 다 똑같아, 나는 다시는 사랑하지 않겠어, 라고 다짐하지. 마지막은 긴 눈물과 중무장한 분노, 그리고 냉소지. 하지만 어느 날인가 또다시 여자를 흥미 있게 생각하는 남자의 구애를 받게 되고 이렇게 끝도 없디 다시 시작되는 거야.-14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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