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프
얀 마텔 지음, 황보석 옮김 / 작가정신 / 2006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파이 이야기>로 우리나라에도 이름을 알린 작가 얀 마텔의 2003년 작품인 <셀프>. <파이이야기>에서도 나름대로 독특한 소재의 이야기를 써갔다고 생각했기때문에 어느 날 갑자기 성별이 바뀌어버린 그(혹은 그녀)의 이야기인 <셀프>에 대한 은근한 기대도 없지않았다. 흔히 TV나 영화에서 보아온 '갑자기 성이 바뀌었어요!'류 들은 <체인지>에서처럼 서로 성이 바뀌어 갈팡질팡하는 이야기들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이 책을 앞두고 그런 류의 가벼운 이야기를 생각한다면 좀 곤란하다. <셀프>에 등장하는 '나'는 갑자기 성이 바뀌어버린 것에 대해서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당장 그 날부터 아무렇지 않은 듯이 살아간다는 것부터 해서 다르니까 말이다.

  이야기는 어린 소년인 '그'의 이야기에서부터 시작한다. 외교관이었던 부모님과의 이야기. 어느날 갑작스럽게 접한 부모님의 죽음. 그리고 열여덟번째 생일에 갑자기 여자로 바뀌어버린 몸. 그리고 '그녀'로 살아가면서 대학에 가고 여러 사람들과 열정적인 사랑을 나누는 이야기. 마침내 운명적인 그 남자를 만나 행복한 시간을 보내게 되지만 강간을 당하고 다시 남자로 변해버린 이야기까지. 하지만 그는 이런 일련의 사건들을 그저 담담하게 자신의 이야기들을 펼쳐놓고 있을 뿐이다. 마치 자신의 몸에서 일어난 일이 자신과는 동떨어진 것처럼. 그렇기때문에 오히려 독자는 '그(혹은 그녀)'의 입장에서 일련의 사건들을 느낄 수 있고 집중할 수 있지 않았나 싶다.

  사실 초반부에는 성장소설로의 재미를 느낄 수 있었다. 학교에 들어가 괴롭힘을 당하기도 하고, 처음으로 수음을 시작하는 모습 등은 한 '소년'이 한 '남자'가 되어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장래에 캐나다 수상이 되겠다는 꿈을 가지고 총리공관에 들어가 꿈을 키우는 모습이나 여드름때문에 고민하는 모습, 다소 못된 장난을 치는 모습 등이 유쾌하게 펼쳐지고 있다. 그는 커가며 끊임없이 여행을 통해 환경의 변화를 만들어내지만 실질적으로 그의 내면은 그리 변화하지 못한다. 그는 그저 조그만한 방에 갇혀 은둔을 즐기고 그 안락함을 즐기고 있을 뿐. 하지만 갑작스레 여자로 변하고 '생리'라는 당황스러운 사건을 겪은 이후로 그는 좀 더 성숙해지는 듯하다. 그리고 이후 그녀를 변화시키는 사건들은 계속하여 일어나고 그녀가 원치 않아도 삶은 점점 그녀를 변화의 중심에 몰아 넣는다.

  다소 자극적일 수도 있는 소재와 그에 따른 내용들은 아슬아슬하게 경계를 오고가며 진행된다. '남성으로의 삶'과 '여성으로의 삶'. 이 두가지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사회적인 면이나 문화적인 면, 혹은 성적인 면(성행위까지 포함하여) 등에 대한 고찰은 눈여겨볼만한 것 같았다. 두께에 비해서 가볍게 시작한 책이지만 마지막에 책을 덮었을 때는 알 수 없는 먹먹함을 느낄 수 있었다. 작품의 구성 방식(중간 중간에 원문과 번역문을 병치시킨 방식으로 원문에서는 작가가 두가지 언어의 느낌과 운이 서로 비교되도록 단어들은 배치함으로 "각각의 언어는 그 자체로서만 일가붙이의 엮임인 것이 아니라 쌍둥이, 즉 그 옆에 있는 언어의 해당어이기도 하다는 것"임을 보여주는 것)에 있어서도 조금 독특한 맛이 있었는데 그 맛을 오롯이 느낄 수 없었던 것이 아쉬움으로 남았다. 독특한 소재를 가지고 그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풀어가는 작가 얀 마텔. 그가 다음에는 어떤 이야기를 들고 나올 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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