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망증


#1

아이들 튜브를 어디다 뒀는지 기억이 나지 않아, 고향집 부모님께 혹시 창고에 있는지 여쭤봤다. 없다고 답이 왔다. 해마다 휴가를 고향에서 보내기 때문에 늘 두고 왔었는데, 작년에는 갖고 왔었던가? 그렇다면 집 어딘가에 숨어 있다는 건데, 대체 어디 있는지 찾을 수가 없다. 여기저기 구석구석 잡동사니가 쌓여있는 곳들을 다 뒤졌는데 없다.


포기할 때 즈음 책장 위에 놓인 비닐봉투가 뭔지 살펴봤다. 이런! 튜브 두 개가 그 봉투 안에 들어 있었다. 왜 나는 작년에 튜브를 가져온 사실을 기억하지 못했을까? 분명 잘 놓아둔다고 책장 위에 뒀을텐데, 왜 기억하지 못했을까?


#2

스마트폰을 2년 반 넘게 썼더니, 속도가 엄청 느려지고, 발열이 심하다. 뭐 별걸 한 것도 아니고, 그저 메일 확인하고, 페이스북 조금 들여다봤는데, 열이 47도를 넘어선다. 뜨거워서 쥐고 있기도 힘들다. 아무것도 안하고 주머니에 넣고 다닐때도 갑자기 뜨거워지곤 한다. 게다가 배터리도 엄청 빨리 닳는다.


중요한 문자나 이메일을 보내려고 하면 꼭 엄청 느려지고, 가끔 키패드가 아예 눌러지지 않는다. 답답해서 미칠 지경이다. 중요 업무를 처리하기 위해 빠르게 카톡을 주고 받고 있는데, 갑자기 느려지더니, 아무리 눌러도 글자가 써지지 않는다.


그래도 약정한 2년이 지난 후로는 전화요금이 1만원 가량 내려가서, 웬만하면 좀 더 버텨보려고 했는데, 키패드가 먹지 않는 스마트폰은 무용지물이란 생각에 결국 새 폰으로 바꿨다. 다시 전화요금이 1만원 이상 비싸졌다.


공인인증서를 새 폰으로 옮기려는데, 자꾸 인증서 비밀번호가 틀렸다고 나온다. 이상하다! 분명 이 번호가 맞는데, 왜 안되지? 몇 번이고 계속 비번을 눌렀는데, 끈질기게 비번은 자꾸 틀렸다고 나온다. 젠장! 그러다 결국 인증서가 폐기되었다. ㅠㅠ


인증서를 새로 받으려면 아이디와 비밀번호가 있어야 한다. 헐! 하나도 기억나지 않는다. 이젠 어떻게 해야하나?


#3

어느날부터 나는 더이상 나 자신을 믿지 못하게 되었다. 그래서 꼼꼼하게 메모를 하고, 휴대폰에 알람을 걸어둔다. 그러고도 바쁜 일정에 쫓기다보면 뭔가 놓치는 일이 꼭 생긴다. 왜 꼭 그런 일은 퇴근하려고 컴퓨터를 끄고나면 생각나는걸까? 왜 꼭 사무실을 나와 몇 발 걷다가 생각나는 걸까? 왜 꼭 버스를 타고나면 생각이 나는 걸까? 다시 돌아가서 컴퓨터를 켜고 처리하고 나와야할까 아니면 내일 할까를 고민하게 만들고, 오늘 하루도 참 바쁘게 열심히 일했구나 생각하며 나름 성취감을 느끼다가 곧 절망감을 느끼게 만든다.



우리나라 대표과일의 미래


어르신들을 모셔놓고 기후변화 강의를 했다. 아이들 대상으로는 몇 번 해봤는데, 어르신들은 처음이다. 어쩌면 더 어려운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에게 어려운 개념을 쉽게 풀어서 설명하는 건 생각보다 어려웠지만, 그래도 재밌고 적절한 예를 잘 찾으면 반응이 무척 좋았다. 올해 초 동네 작은도서관에서 연속 강의를 들었던 아이들의 경우, 첫 강의 이후 집에가서 나름대로 많은 실천들을 했다. 한 아이의 부모는 아이가 자발적으로 에너지 절약을 위해 변기위 물통에 1.8리터 물병에 물을 채워 집어넣고, 대기전력 차단을 위해 안 쓰는 콘센트를 빼는 걸 보고, 훌륭한 강의를 만들어준 도서관 후원회비를 대폭 늘려 내기 시작했다고 들었다.


이번에 어르신들께는 어떻게 흥미를 끌어낼 수 있을지 고민이 많았다. 평범한 강의자료를 만들었다가 다시 지우기를 반복하다가 강의 당일까지 자료를 완성하지 못했다. 강의 시간은 다가오고, 머리는 아무 생각이 없었는데, 검색하다가 농촌진흥촌에서 발표한 기후변화 예상 시나리오를 접했다. 우리나라 6가지 대표과일의 재배가능 지역이 기후변화가 진행됨에 따라 어떻게 변하는지를 예측한 것이었다. 결과는 생각보다 훨씬 더 놀라웠다.


모두 다 넣기에는 방대하기 때문에 가장 대표적인 과일이라 할 수 있는 사과와 배의 시나리오만 자료에 집어넣었다. 간신히 강의 시간에 맞춰 도착해서 설명을 시작했다. 생각보다 어르신들의 반응이 좋았다. 자신감을 얻은 나는 질문도 던지고, 여유있게 차근차근 설명을 이어갔다. 그러면서 나중에 깜짝 놀랄만한 내용이 있다고 기대를 갖게 만들었다. 내가 정말 깜짝 놀랐기 때문에 어르신들도 분명 그럴 거라고 생각했다.


드디어 강의 막바지에 사과와 배 재배가능지역 시나리오를 설명했다. 지금과 같은 속도로 기후변화가 계속 진행한다면, 불과 30년 후인 2030년이 되었을 때 사과 재배가능 지역은 크게 줄어들 것이며 대표적인 사과 재배지역인 대구 경북에서는 재배는 가능하겠지만, 지금처럼 맛있는 사과를 기대하기는 어려울 거라고 했다. 그리고 다시 30년이 지나 2060년이 되면 우리나라에서 사과를 재배할 수 있는 지역이 거의 남지 않는다고 했다. 그래서 어르신들 돌아가시고 나면 제사상에 사과와 배를 기대하시면 안된다고 했다. 손주 손녀가 사과, 배를 구하지 못해 제사상에 올리지 못해도 이해해주셔야 한다고 설명했다.


어르신들도 제법 충격을 받으셨는지 놀라운 집중력을 보여주셨고, 마침 그때 소장님도 들어와서 강의를 듣다가 매우 집중하는 모습을 봤다. 강의를 마치고, 소장님께서 신분증과 통장을 복사하면서 보통 어르신들이 집중력이 떨어져서 강의를 제대로 듣지 못하는데, 참 재밌게 잘 하셔서 어르신들도 집중하시더라고 고맙다고 하셨다. 그러면서 두어달 후에 또 강의를 잡을 예정인데, 다시 와달라고 했다.


비록 강의료가 많지 않지만, 그래도 조금이라도 어려운 상황에 보탬이 되고, 또 다양한 사람들에게 이 절박한 문제를 설명하는 건 꼭 필요한 일이다. 게다가 난 누군가에게 뭔가를 설명하는 일을 좋아하고 또 잘한다. 오래전 학원 강사 시절이 생각났다. 그땐 사교육 시스템에 복무하며, 재미도 없는 학교 교과를 가르쳐야 한다는 점이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늘 아이들과 만나는 일은 즐거웠다. 아이들이 최대한 재밌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노력했던 기억이 났다. 이번에도 어르신들이 관심 가질만한 포인트를 잘 잡은 것 같아서 뿌듯했다.


책 이야기











가지 출판사에서 나온 이 두 책은 일단 귀엽다. 작은 판형에 책의 디자인과 일러스트가 정말 귀엽다. 하지만 내용은 다소 무겁다. 세계적인 환경잡지 [더 에콜로지스트]에 연재했던 내용 중에 음식과 패션에 대한 내용을 각각 책으로 엮었다. 잘 알지 못했던 수많은 이야기들이 들어있다. 열심히 읽고 고민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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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5-07-25 17: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마트폰 사용 2년 반이라면 상당히 오래 쓰신 겁니다. 폰의 성능이 조금이라도 이상하면 새 걸로 바꾸고 싶은 마음이 생겨요. 제가 지금 쓰는 폰도 30분 이상 잡으면 열이 생겨서 요즘같이 더운 날에는 오랫동안 쓰지 않으려고 합니다.

감은빛 2015-08-03 15:20   좋아요 0 | URL
시루스님, 안녕하세요. 휴가 다녀오느라 답이 좀 늦었네요.
저도 지난 폰은 제법 오래 썼다고 생각해요.
그 전에 쓰던 폰은 채 1년을 버티지 못하고 액정이 깨져버렸거든요.
여름이 되니 이상하게 발열이 심하더라구요.
한 5분 이상 쓰면 뜨거워지고, 경고 메시지가 떠요.
근데 메신저 한번 켜면 10분 이상은 들여다보게 되니 말이죠.
 


월요일은 피곤


월요일 아침 회의는 힘들다. 지난 금요일에 회의자료를 미처 다 정리하지 못한채 퇴근했더니, 주말 내내 회의자료를 걱정했다.  토요일 낮에 잠시 시간내서 정리를 할까 싶었지만, 곧 다른 일을 하다가 잊어버렸고, 일요일 아침에도 잠시 생각을 하다가 다시 노느라 잊어버렸다. 일요일 밤이 되어서야 회의자료를 만들어야지 하고 컴퓨터를 켰지만, 진짜 아무 생각도 나지 않고, 자판을 두드리기가 너무 싫었다. 결국 잠시 웹서핑을 하다 컴퓨터를 끄고 누웠다. 새벽에 일찍 일어나서 해야지 생각했지만, 알람이 울렸을 때, 또 너무 일어나기가 싫었다. 자료를 준비하지 않으면 회의를 할 수가 없기 때문에 억지로 일어났다.


컴퓨터를 켰는데, 자다 깨서 멍한 상태로 의욕이 생기지 않았다. 일단 먼저 씻고 준비한 후에 다시 책상 앞에 앉으니 그나마 머리가 돌아가기 시작했다. 시간이 빠듯했다. 다 만들어서 메일로 보내놓고 나니 바로 출발해야 할 시간이었다. 간신히 회의시간에 맞출 수 있었다.


새벽부터 그 난리를 치고 나니 아직 점심때도 되지 않았는데, 정말 피곤하다. 이번주도 할일이 태산이건만 난 벌써 일주일을 다 산 느낌이다. 아~ 진짜 월요일이 싫다! 



박래군을 석방하라!


[석방탄원서] 박래군을 풀어주십시오!


재판장님, 법이 정의를 구하기 위해, 인권을 실현하기 위해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주십시오. 


박래군은 석방되어야 합니다. 

7월 16일 법원은 4.16연대 상임운영위원이자 인권중심 사람 소장인 박래군에게 구속영장을 발부했습니다. 우리는 법원의 판단을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인신의 구속은 어떤 한 사람의 근원적 자유를 박탈하는 것이므로 그만큼 불가피한 사정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를 가두지 않고서는 중대범죄의 발생을 막을 수 없을 만큼의 사정말입니다. 그렇다면 세월호 참사를 추모하는 집회가 중대범죄인 것입니까? 참사의 아픔을 함께 나누기 위해 모인 시민들이 모두 박래군의 뜻에 따라 집회에 참여했다는 말입니까? 박래군의 구속은 추모와 애도의 권리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뜻으로밖에 이해되지 않습니다. 누군가의 죽음을 슬퍼하고 안타까이 여기는 인간의 본원적 심성을 인정할 수 없다는 판단으로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꿈꾸는 누구도 박래군의 구속 결정을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인권이 석방되어야 합니다. 

박래군은 세월호 참사의 현장에만 있었던 사람이 아닙니다. 그는 민주주의가 억눌린 시대의 어둠 때문에 동생을 떠나보내야 했던 형이었으며, 같은 아픔을 겪어야 했던 수많은 유가족들의 동료이자 장의사였으며, 모두가 존엄하고 자유롭고 평등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인권침해의 현장을 뛰어다니는 활동가이자 수많은 피해자들의 든든한 벗이었습니다. 그는 언제나 인권이 침몰하는 현장에서 인권을 구해내기 위해 발 벗고 나섰습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그는 다른 현장에서 구속되어야 했습니다. 평택 대추리에서, 용산 재개발구역에서, 그리고 이제 세월호에서. 미군기지와 개발의 문제에 대한 성찰로부터 평화적 생존권과 주거권이 모두에게 소중한 인권의 목록으로 확인된 현장입니다. 우리는 세월호 참사 역시 이렇게 기억되기를 바랍니다.


4.16은 석방되어야 합니다. 

세월호 참사는 미수습자, 희생자의 가족, 피해생존자들만 겪은 사건이 아니었습니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모두가 겪고 있는 참사이며, 세계 시민들이 여전히 주목하고 있는 사건입니다. 사람이 이다지도 무참하게 죽어갈 수 있음을 목격해버린 우리는, 살아남은 사람들의 미안함과 죄책감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는 우리는, 진실을 밝히고 정의를 세울 때에만 우리도 사람답게 살 수 있음을 자각하게 됐습니다. 수많은 생명을 물속에 가두고, 울부짖는 가족들에게 보상이 더 필요하냐며 모욕하고, 이젠 잊으라며 내몰아대는 사회를 바꿔야 합니다. 우리가 흩어질수록 우리의 생명과 안전이 위태로워진다는 사실을 알아버린 우리는 여전히 모이고 말하고 행동하기를 약속합니다. 그것이 범죄라면 우리 모두를 잡아가십시오. 그러나 그때 우리는 우리를 가둔 감옥을 인정할 수 없을 것입니다. 


다시 한 번 호소합니다. 재판장님, 박래군을 풀어주세요. 진실과 안전을 향해 나아가는 길에 한 발도 물러설 자리는 없습니다. 우리는 오직 앞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 4월16일의약속국민연대(4.16연대) -


서명해주세요!

아래 주소로 가셔서 필수항목을 적어주시면 됩니다!

(몇 초 걸리지 않습니다.)


https://docs.google.com/forms/d/105zXpV89TdY_XgYT07btxrS3YRGW9DtyFXzBrzjNH1Y/viewform?c=0&w=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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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개 2015-07-20 12: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명하고 왔습니다.
부디 많은 분들이 동참하셔서 힘이 되어주시길 빌어 봅니다.

감은빛 2015-07-20 13:45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단발머리 2015-07-20 14: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명하고 왔습니다. 한숨나오는 이 세상...

감은빛 2015-07-22 21:18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정말 어쩌려고 이러는지 원! ㅠㅠ

chika 2015-07-20 15: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했습니다. 작은힘이나마 보탬이 되기를 바랍니다.

감은빛 2015-07-22 21:18   좋아요 0 | URL
치카님 고맙습니다!

비로그인 2015-07-20 21: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명도 하고 카페 2곳에도 올렸어요~
감은빛님 너무 피곤하실 것 같아요 ㅠㅠ 힘내세요!

감은빛 2015-07-22 21:19   좋아요 0 | URL
아른님, 널리 알려주시고, 응원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어제도 새벽까지 잠 못자고, 오늘 또 야근 중인데,
아른님의 말씀에 힘이 납니다!

2015-07-21 08: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7-22 21: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무해한모리군 2015-07-21 16: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음이 무겁습니다... 늦은밤 이 소식을 듣고.... 법관은 무슨... 개*********

감은빛 2015-07-22 21:22   좋아요 0 | URL
그러니까요! 법관은 무슨! xxxxx 같으니라구!

나와같다면 2015-07-25 08: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아침.. 경향신문 커버스토리 박래군님 기사보고 있습니다..

감은빛 2015-08-03 15:17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휴가 다녀오느라 답이 늦었습니다.
댓글 남겨주셔서 고맙습니다.
그 기사 나중에 찾아봐야겠어요.
 


그를 처음 만난 것은 아마 평택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미군기지확장반대 투쟁 현장에서였다. 뭔가 행사를 준비하는 중이었고, 먼 발치에서 아는 사람들을 보고 있었는데, 그가 몇몇 활동가들과 담배를 피면서 대화하고 있었다. 무슨 대화를 나누는지는 듣지 못했지만, 그가 크게 웃었는데 그 선한 웃음이 참 좋았다. 나중에 점점 알게되었지만, 그는 인권운동, 평화운동 등에서 많은 활동을 하며, 이미 존재감이 큰 사람이었다.


그리고 한참 후에 박기범의 [문제아]를 읽고, 그가 박래전 열사의 형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동생을 가슴에 묻고, 동생이 가고자 했던 길을 묵묵히 걸어가는 형이라는 느낌. 그의 등에서는 불의에 굽히지 않는 강한 의지와, 긴 세월 쌓여온 여러 슬픔들이 느껴졌다. 평택, 용산, 강정, 광화문 등 힘없고 고통받는 이들이 있는 곳에 늘 그가 있었다.
















그가 있는 곳에서 늘 함께 볼 수 있었던 송경동 선배도 얼마전 구속될 뻔 했으나, 다행히 풀려나왔다. 당시에도 설마 송경동을 구속시키기야 하겠어? 라는 기대가 있었지만, 이 정권이라면 충분히 그러고도 남으리라는 불안 또한 컸던 것이 사실이다.


사람은 한번 비슷한 일을 겪으면 그만큼 기대를 하게 되는 모양이다. 박래군 선배와 김혜진 님의 영장실질심사 소식을 듣고 온라인으로 의견서를 제출할 때에도, 송경동 선배처럼 풀려나겠지 하는 기대가 있었다. 그런데 오늘 아침 구속 소식을 듣고 좀 충격을 먹었다.


죄가 있다면 세월호 참사를 일으킨 세력에게 있겠지, 어떻게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사람에게 죄가 있단 말인가? 이게 법인가? 이따위 결정을 내리는 것이 이 나라의 법 질서를 책임지는 기관인가? 


하필 오늘이 제헌절이다. 헌법이 엄연히 살아 있는데, 이따위 결정을 내릴 수 있단 말인가? 박래군은 무죄다! 당장 석방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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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7-18 00: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7-20 14: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7-20 20: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7-22 21: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7-23 18: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지난 목요일은 탈핵 캠페인으로 시작해서 탈핵 캠페인으로 일과를 마무리 한 날이다. (늘 그렇듯 하루의 마무리는 술로 했다.) 평소보다 1시간 일찍 나와서 지하철 역에서 캠페인을 하고 출근했다. 한 명은 방독면 모양 탈을 쓰고 피켓을 들고 서 있었고, 나는 전단지를 나눠줬다. 탈이 워낙 독특하게 생겨서 눈에 확 띄었다. 짐작은 했지만 바쁜 출근길이라 사람들은 전단지를 잘 받지 않았다. 그래도 1시간 동안 가져온 전단지는 다 나눠줬다. 저녁에는 매주 목요일마다 진행하는 녹색당 목요 탈핵 캠페인에 참가했다. 영덕 신규 원전을 반대하는 내용으로 퇴근길 시민들에게 영덕에 어울리지 않는 것을 하나 골라 스티커를 붙여 달라는 주문을 했다. 셋 중 하나를 고르는 것이었는데, 1번은 영덕대게이고, 2번은 아름답고 깨끗한 바다, 3번은 원자력발전소였다. 투표해달라는 요청에 여성들과 청소년들은 많이 응해주셨지만, 성인 남성들은 거의 무시하고 지나갔다. 세보지 않았지만, 그래도 제법 많은 분들이 투표해주셨고, 단 두 표를 빼면 모두 원전이 어울리지 않는다고 했다. 두 표는 영덕대게에게 갔다. 아무래도 영덕에 어울리지 않는 것에 투표한 것이 아니라 먹고 싶은 것을 고른 건 아닐까?


그날은 매우 더운 날이었다. 아침부터 더웠는데, 탈을 쓰고 있었던 친구는 진짜 엄청 땀을 흘렸을 것이다. 저녁에도 어마어마하게 더웠다. 활동가들은 눈에 띄기 위해 동물 옷을 입고 있었는데, 생각만해도 끔찍했다. 그 더위에 벗지는 못할 망정 두꺼운 동물옷을 더 껴입어야 한다니!


우리나라 사람들은 왜 이렇게 원전에 관대할까? 왜 핵발전소가 꼭 있어야 한다고 생각할까? 그날 아침과 저녁 모두 원전을 옹호하는 입장에 있는 어르신에게 한 소리를 들었다. 이유는 없다. 그냥 무조건 필요하단다. 지금 전기가 남아 돌고 있고, 1년에 30% 가량 가동하지 못하고 놀고 있는 발전소도 많은데, 왜 핵 발전소를 더 지어야 하는지 이유도 대지 못하면서 무조건 더 지어야 한단다. 아마도 세뇌를 많이 당해서 그렇겠지. 이런 생각이 들었다. 세뇌당해서 진실을 모르는 그들이 더 불쌍할까? 진실을 알고 답답하고 무력한 상황에 놓인 내가 더 불쌍할까? 빨간 알약과 파란 알약 중에 어떤 것을 선택한 네오가 더 불쌍할까?


지난 6월 초 정부가 제7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을 발표했다. 전력수급기본계획은 산업통상자원부와 전력거래소가 2년마다 만드는 것으로 신규 발전소 건설과 송배전 선로 건설 등을 결정하는 중요한 계획이다. 이번 7차 계획의 핵심은 신규 핵발전소 2기를 건설하는 것이다. 현재 이 나라에는 24기의 원전이 가동중이고, 건설중이거나, 계획중인 것이 11기이다. 그리고 이번에 2기가 추가되었다. 만약 7차 계획대로 간다면 이 나라의 핵발전소는 37기가 된다. 아, 고리1호기를 폐쇄하기로 결정했으니, 36기가 되는구나.


문제는 신규 원전 2기를 추가하기 위해 정부가 전력 수요를 뻥튀기해서 예측했다는 점이다. 7차 계획에서 정부는 해마다 전력사용량이 2.2%씩 늘어날 것이라고 보았는데, 이것은 과도한 수치다. 지난 2011년 이후로 전력사용량 증가률이 해마다 줄어들었으며, 작년에는 0.6% 했다. 많은 전문가들은 앞으로 전력사용량은 거의 증가하지 않을 것으로 예측했다. 하지만 정부는 해마다 2.2%씩 층가한단다. 게다가 전력예비율도 과도하게 책정했다. 정부 입장에선 원전을 더 짓기위해 일부러 수요를 과도하게 예측하고, 전력예비율도 과도하게 설정할 것이겠지. 


우리는 전기 없이 살 수 없을만큼 수많은 가전제품을 쓰고 있지만, 정작 그 전기를 어떻게 생산해서, 어떻게 우리 집으로 오는지는 잘 모른다. 특히 국가차원에서 장기 계획을 세우고, 그것이 전력수급기본계획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아마 그 말을 들어본 사람 자쳬가 숫자가 많지 않을 것이다.


지역에서 7차 계획에 대한 토론회를 열었다. 홍보가 늦어져 많이 못 올거라고 예상했는데, 그래도 생각보다 많이 오셨다. 그리고 더 많은 분들과 그날의 논의 내용을 나누기 위해 지역시민신문에 토론회 기사를 쓰기로 약속했다. 그런데 바쁜 일상을 살다 보니, 며칠을 그냥 지나갔다. 오늘 낮 편집장님께 원고 예기가 나왔다. 늦어도 일요일 오후에는 보냈어야 할 원고였다. 최대한 빨리 쓰겠다고 약속했지만, 좀처럼 글 쓸 짬이 나지 않았다. 


결국 아이들을 재워놓고 12시가 넘어서서 쓰기 시작했다. 다 쓰고 나니 시간이 3시가 넘었다. 책 소개 원고 하나를 마저 쓰고 맥주 한 잔 마신다. 내 허접한 글이 단 한명에게라도 더 전달되어 관심 갖는 사람이 더 생기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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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5-07-14 23:4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감은빛님도 탈핵 캠페인 하신다니 반가워요~
저희지역에서도 매주 수요일마다 풀꽃세상. 녹색연합분들과 함께 캠페인하고있고 탈핵모임에서도 한달에 한번씩 피켓들고 있자 계획세우는 중이거든요
연극하셨던 활동가님과 같이 의상 마련해 퍼포먼스도 할 계획이라 앞으로 더 재밌어질 것 같아요^^
약자들의 눈물로 만들어지는 전기...후손에게 처치불가 핵쓰레기만 남기고 핵마피아들만 배불리는 핵발전소 빨리 없어지길! 감은빛님도 늘 힘내세요~

감은빛 2015-07-17 16:57   좋아요 0 | URL
아른님, 안녕하세요.
지난 번 탈핵시민행동 포스터 때에도 무척 반가웠는데,
이번 글에 대한 댓글도 정말 반갑습니다!

어제 목요일에도 저는 사정상 직접 참여하지는 못했지만,
여러 지역에서 많은 분들이 시간을 내어 출근길, 퇴근길 캠페인을 진행했습니다.
우리 서로 각자의 지역에서 힘냅시다!
고맙습니다!
 

얼마전 20년 만에 영화 [타락천사]를 봤다. 한창 젊었던 시절 봤을 때와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당시 그 영화를 보고나서 아직도 기억에 남아있는 이가흔의 섹시한 눈빛 때문에 밤마다 꿈에 그가 나왔었다. 이번에는 그를 봐도 그저 섹시하다! 예쁘다! 정도의 느낌만 있었을 뿐, 그때와 같은 강렬한 인상을 받지는 못했다. 좀 놀라운 사실은, 등장인물 대다수가 시도때도 없이 담배를 물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들은 끝없이 담배를 피우고 또 피웠다. 한때 우리나라 영화나 드라마에도 담배를 피우는 장면이 제법 많았을 것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당시 내가 소설이랍시고 쓴 허접한 글에도 늘 담배 피우는 장면은 빠지지 않았었다. 지금 보면 이렇게 낯설지만, 당시로서는 크게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 영화에서 이가흔이 여명의 방을 청소하고, 그 쓰레기를 가져와 하나씩 살펴보는 장면을 보다가 소설 하나를 떠올렸다. 90년대에 내가 참 좋아했던 작가 하성란의 단편 [곰팡이 꽃]이다. 여기 주인공은 밤마다 쓰레기를 뒤진다. 더럽고 역겨운 쓰레기 속에서 그는 쓰레기를 버린 사람에 대해 아주 많은 것들을 알아낸다. 처음 이 작품을 읽었던 당시에 진짜 신기하다고 생각했다. 아마 이 작품의 영향일 것이다. 지금도 나는 쓰레기봉투에 개인정보가 담긴 내용은 버리지 않으려고 애쓴다. 별 것 아닌 흔히 사소한 거라고 느낄만한 것이라도 누군가가 마음 먹으면 내 개인정보를 노출하게 될 수도 있다.

















하성란 작가는 97년 [두 개의 다우징]을 읽고 완전히 반해, [풀]을 찾아 읽고 나중에 단편집 [루빈의 술잔]을 사서 읽었던, 그 당시에 가장 좋아했던 작가였다. 그 특유의 섬세한 묘사와 마치 영화와도 같은 전개가 인상적이었다. 세번째 단편집 [푸른 수염의 첫번째 아내]가 나올 때까지 하나도 빼지 않고 다 찾아 읽던 작가였다. 단편들은 대부분 재미있고, 일정한 수준을 유지했지만, 장편의 경우에는 구성과 이야기 전개가 다소 힘이 없었다. 이후 소위 말하는 순수 문학 자체에 대한 관심을 잃으면서 더이상 작품을 찾아 읽지 않았다.


타락천사를 본 후에 곰팡이 꽃을 찾아 읽으려고 책장을 뒤졌는데 없었다. 분명 이 작품이 실린 두 책(동인문학상 수상작품집과 두번째 단편집 옆집여자)을 다 사서 읽은 기억이 있는데, 왜 하나도 보이지 않을까? 그제서야 떠올렸다. 아마 고향 집에 있을거라는 사실을 말이다. 고향을 떠나 여기저기 떠돌던 시절에는 그 전까지 열심히 읽었던 소설들을 대부분 집에서 갖고 오지 않았다. 읽고 싶을 때 못 읽는 건 괴로운 일이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일상으로 돌아온 후로는 곧 읽고 싶었다는 사실조차도 잊어버린다.


몇 달 전에 서울연구원에서 쓰레기 정책에 대해 연구하는 분의 강연을 들었는데, 정부나 지자체에서 쓰레기 실명제를 하려는 생각을 예전부터 갖고 있으나, 사회적으로 큰 문제를 일으킬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당장 실행하지 못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사실 지금도 재활용 쓰레기나 종량제 봉투를 뒤지면 그게 누구 쓰레기인지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그것만으로도 그 집에 몇 명이 살고, 구성원이 어떤 사람들인지, 수입은 대략 어느 정도일지, 주로 어디에 돈을 쓰는지 등을 알 수도 있다. 만약 쓰레기 실명제를 시행한다면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심각한 개인정보 유출로 이어질 지도 모른다.


바다 위에 플라스틱으로 된 섬이 있다는 이야기, 인도나 아프리카 등에서 쓰레기 더미를 뒤지며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아이들의 이야기, 아니 먼 나라 이야기를 떠올리지 않더라도, 바닷가나 계곡에 구석구석 쌓여있는 쓰레기들, 그런 쓰레기들 때문에 다치거나 삶을 위협받는 생물들 또 하루에도 수십만 개씩 생산하고 또 버리는 온갖 일회용품들을 생각하면 쓰레기 문제를 쉽게 넘기기 어렵다. 아는 사람 중에 늘 숟가락과 반찬통을 갖고 다니는 분이 있다. 일회용 젓가락이나 용기를 쓰지 않기 위해서다. 물론 당연히 텀블러와 장바구니, 손수건을 갖고 다니는 건 기본이다. 나도 가끔 깜빡하는 날을 제외하면 요 세 개는 늘 휴대한다. 하지만 그래도 세상은 일회용품과 쓰레기로 넘쳐난다. 아무리 커피를 주문하고 텀블러를 내밀어도, 커피숍에서 사용하는 일회용컵은 줄어들지 않고 더더욱 늘어나기만 한다. 예전에는 그래도 들고 나가는 것이 아니라, 매장에서 마시는 경우 당연히 머그 컵에 나왔는데, 요즘은 매장에서 마셔도 늘 종이컵에 나온다.


쓰레기를 줄여야 한다. 줄이지 못한다면 정부가 어떤 이유를 들어 쓰레기 실명제를 실시하고, 우리들의 일상을 점점 더 많이 통제해도 뭐라 할 말이 없을지도 모르겠다.


※ 양철나무꾼님의 댓글을 보고 생각나서 영화에서 '망기타(忘记他)'가 나오던 장면을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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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같다면 2015-07-06 21: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담배 연기는 왜 담배로 돌아가지 못하는가.. 엔트로피의 증가..
그래서 담배피는 사람이 멋있어 보이나봐요.. 저는..

감은빛 2015-07-07 20:28   좋아요 1 | URL
담배를 피우면 내 안으로 완전히 침착해 들어간다는 느낌이 들어요.
그저 연기를 빨아들이고 내뿜을 뿐인데,
주위는 사라지고 그저 나 자신만 들여다보게 되는 경우가 많아요.

마태우스 2015-07-07 01: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성란, 오랜만에 들어보는 이름이네요. 정말 요즘뭐하는지, 책읽기 시작한 초창기에 열심히 읽었던 작가인데 말입니다. 푸른수염의 아내에서 시랜드 참사를 다룬 단편이 있었는데, 그 단편을 읽을 때 마지막 대목에서 머리칼이 쭈뼜했어요. 윽, 지금도 그 장면을 생각하니 머리칼이 쭈뼜...암튼 쓰레기 줄여야 합니다!

감은빛 2015-07-07 20:30   좋아요 0 | URL
마태우스님, 저도 그 작품이 기억에 남아 있어요.
그땐 결혼 전이었고, 아이도 없었는데도 무척 힘겹게 읽었던 기억이 나요.
만약 지금 그 작품을 읽는다면 또 완전히 다른 느낌이겠죠.

sslmo 2015-07-07 18: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타락천사의 `망기타`를 잊을 수 없어요.
요즘도 또 돌려보고 돌려보고 해요~ㅅ!

감은빛 2015-07-07 20:31   좋아요 0 | URL
전 사실 그 노래를 들으려고 OST 를 샀는데,
그 노래가 없었어요! ㅠㅠ
노래도 그렇고, 그 노래가 나오던 장면도 절대 잊을 수 없죠!

yamoo 2015-07-11 10: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성란 작가...정말 저도 오랜만에 듯습니다. 하성란 작가 마지막으로 본 것이 <삿뽀로 여인숙>이었지요. 전 하성란 작가의 작품을 많이 읽지는 않았습니다만...한국 문학을 좀 읽을 시 주요 대표작과 대표 단편선은 봤습니다. 이 작가는 제게 맞지 않더군요. 재미가 없어 읽기를 중단 했습니다. 이 당시 읽던 작가군으로 하성란, 공지영, 서하진, 권지예, 조경란, 신경숙 등이 있었습니다. 헌데 지금은 이들 작가의 모든 책을 처분하고 읽지 않고 있지요. 왜 그런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제게 재미가 없던 작가로 각인된 듯합니다. 당시 저는 움베르토 에코의 소설들에 열광하던 때라 그랬던 것 같습니다.

강의도 들으시고 글을 보니 반갑네요. 여름철 건강 유의하시길 바랍니다~^^

감은빛 2015-07-17 17:00   좋아요 0 | URL
야무님, 안녕하세요.
[삿뽀로 여인숙] 저도 읽었는데, 솔직히 재미없었습니다.
이 작가는 단편은 참 좋았는데, 장편은 별로더라구요.
말씀하신 작가들 중에 저도 종종 찾아읽던 분이 몇 있네요.
저도 야무님처럼 최근에는 읽지 않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상황이 많이 달라진 탓이라고 여깁니다.
늘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