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목요일은 탈핵 캠페인으로 시작해서 탈핵 캠페인으로 일과를 마무리 한 날이다. (늘 그렇듯 하루의 마무리는 술로 했다.) 평소보다 1시간 일찍 나와서 지하철 역에서 캠페인을 하고 출근했다. 한 명은 방독면 모양 탈을 쓰고 피켓을 들고 서 있었고, 나는 전단지를 나눠줬다. 탈이 워낙 독특하게 생겨서 눈에 확 띄었다. 짐작은 했지만 바쁜 출근길이라 사람들은 전단지를 잘 받지 않았다. 그래도 1시간 동안 가져온 전단지는 다 나눠줬다. 저녁에는 매주 목요일마다 진행하는 녹색당 목요 탈핵 캠페인에 참가했다. 영덕 신규 원전을 반대하는 내용으로 퇴근길 시민들에게 영덕에 어울리지 않는 것을 하나 골라 스티커를 붙여 달라는 주문을 했다. 셋 중 하나를 고르는 것이었는데, 1번은 영덕대게이고, 2번은 아름답고 깨끗한 바다, 3번은 원자력발전소였다. 투표해달라는 요청에 여성들과 청소년들은 많이 응해주셨지만, 성인 남성들은 거의 무시하고 지나갔다. 세보지 않았지만, 그래도 제법 많은 분들이 투표해주셨고, 단 두 표를 빼면 모두 원전이 어울리지 않는다고 했다. 두 표는 영덕대게에게 갔다. 아무래도 영덕에 어울리지 않는 것에 투표한 것이 아니라 먹고 싶은 것을 고른 건 아닐까?
그날은 매우 더운 날이었다. 아침부터 더웠는데, 탈을 쓰고 있었던 친구는 진짜 엄청 땀을 흘렸을 것이다. 저녁에도 어마어마하게 더웠다. 활동가들은 눈에 띄기 위해 동물 옷을 입고 있었는데, 생각만해도 끔찍했다. 그 더위에 벗지는 못할 망정 두꺼운 동물옷을 더 껴입어야 한다니!
우리나라 사람들은 왜 이렇게 원전에 관대할까? 왜 핵발전소가 꼭 있어야 한다고 생각할까? 그날 아침과 저녁 모두 원전을 옹호하는 입장에 있는 어르신에게 한 소리를 들었다. 이유는 없다. 그냥 무조건 필요하단다. 지금 전기가 남아 돌고 있고, 1년에 30% 가량 가동하지 못하고 놀고 있는 발전소도 많은데, 왜 핵 발전소를 더 지어야 하는지 이유도 대지 못하면서 무조건 더 지어야 한단다. 아마도 세뇌를 많이 당해서 그렇겠지. 이런 생각이 들었다. 세뇌당해서 진실을 모르는 그들이 더 불쌍할까? 진실을 알고 답답하고 무력한 상황에 놓인 내가 더 불쌍할까? 빨간 알약과 파란 알약 중에 어떤 것을 선택한 네오가 더 불쌍할까?
지난 6월 초 정부가 제7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을 발표했다. 전력수급기본계획은 산업통상자원부와 전력거래소가 2년마다 만드는 것으로 신규 발전소 건설과 송배전 선로 건설 등을 결정하는 중요한 계획이다. 이번 7차 계획의 핵심은 신규 핵발전소 2기를 건설하는 것이다. 현재 이 나라에는 24기의 원전이 가동중이고, 건설중이거나, 계획중인 것이 11기이다. 그리고 이번에 2기가 추가되었다. 만약 7차 계획대로 간다면 이 나라의 핵발전소는 37기가 된다. 아, 고리1호기를 폐쇄하기로 결정했으니, 36기가 되는구나.
문제는 신규 원전 2기를 추가하기 위해 정부가 전력 수요를 뻥튀기해서 예측했다는 점이다. 7차 계획에서 정부는 해마다 전력사용량이 2.2%씩 늘어날 것이라고 보았는데, 이것은 과도한 수치다. 지난 2011년 이후로 전력사용량 증가률이 해마다 줄어들었으며, 작년에는 0.6% 했다. 많은 전문가들은 앞으로 전력사용량은 거의 증가하지 않을 것으로 예측했다. 하지만 정부는 해마다 2.2%씩 층가한단다. 게다가 전력예비율도 과도하게 책정했다. 정부 입장에선 원전을 더 짓기위해 일부러 수요를 과도하게 예측하고, 전력예비율도 과도하게 설정할 것이겠지.
우리는 전기 없이 살 수 없을만큼 수많은 가전제품을 쓰고 있지만, 정작 그 전기를 어떻게 생산해서, 어떻게 우리 집으로 오는지는 잘 모른다. 특히 국가차원에서 장기 계획을 세우고, 그것이 전력수급기본계획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아마 그 말을 들어본 사람 자쳬가 숫자가 많지 않을 것이다.
지역에서 7차 계획에 대한 토론회를 열었다. 홍보가 늦어져 많이 못 올거라고 예상했는데, 그래도 생각보다 많이 오셨다. 그리고 더 많은 분들과 그날의 논의 내용을 나누기 위해 지역시민신문에 토론회 기사를 쓰기로 약속했다. 그런데 바쁜 일상을 살다 보니, 며칠을 그냥 지나갔다. 오늘 낮 편집장님께 원고 예기가 나왔다. 늦어도 일요일 오후에는 보냈어야 할 원고였다. 최대한 빨리 쓰겠다고 약속했지만, 좀처럼 글 쓸 짬이 나지 않았다.
결국 아이들을 재워놓고 12시가 넘어서서 쓰기 시작했다. 다 쓰고 나니 시간이 3시가 넘었다. 책 소개 원고 하나를 마저 쓰고 맥주 한 잔 마신다. 내 허접한 글이 단 한명에게라도 더 전달되어 관심 갖는 사람이 더 생기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