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자리 군대 이야기


휴가 나왔을때 혹은 제대 직후를 제외하면 술자리에서 군대이야기를 거의 하지 못했다. 여성들은 워낙 군대 이야기를 싫어했고, 남성들은 한번 이야기가 시작되면 봇물 터지듯 온갖 이야기가 다 쏟아져 나와서 수습이 불가능했다. 그런 모습이 보기 싫어서 눈치 없던 시절(위에서 언급한 휴가때와 제대 직후)를 제외하면 가급적 군대 이야기를 하지 않으려고 애썼다. 예외는 있었다. 나중에 내가 복무했던 지역 근처로 금강산 육로 관광이 시작되었을 때랑, 군대 폭력으로 탈영한 어느 군인이 내가 속했던 사단이었고, 나와 비슷한 경험을 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는 주변 사람들에게 말한 적이 있다.


오늘 정말 오랜만에 군대 이야기를 잔뜩 했다. 현재 진행하는 사업 때문에 자주 만나는 공무원과 첫 술자리였다. 예전부터 소주 한 잔 하자고 몇 번 인사는 나눴다. 나는 그냥 예의상 하는 인사이겠거니 생각했는데, 지난 주에 진지하게 날짜를 잡자고 해서 오늘 만났다.


획기적인 방식 하나를 배웠다. 들어가자마자 소주 두 병을 시켜서 둘이서 각 한 병씩 알아서 먹는거다. 서로 따라주거나 그런거 없다. 물론 어느정도 속도는 맞춰갈 수 밖에 없겠지만, 어쨌거나 각자 자기 술병만 알아서, 자기 속도로 비우면 되는 거다. 이거 참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에 같은 단체에서 일했던 후배가 어느 술자리에서 소주를 혼자 마시길래, 난 맥주를 마시다가, 혼자 마시면 왠지 외로워보여서 나도 소주를 마시겠다고 했더니, 그 술병은 자기가 먹던 거니 하나 따로 시키라고 해서 당황한 적이 있었는데, 그 후배 역시 각자 자기 술을 마시던 습관에 익숙한 사람이었겠구나 하고 오늘 이해했다.


한참 얘기를 나누다가, 공무원이 물었다. 나이는? 학교는? 이건 뭐 호구 조사도 아니고, 애초에 본인이 나보다 나이가 많다는 건 알고 있었으면서 구체적으로 확인하고 싶은 건 뭘까? 호기심일까? 난 솔직히 별로 그 분 나이 알고 싶지 않았는데, 나보다 몇 살 더 많다고 알려주는 바람에 알아버렸다.


한참 이런저런 이야길 하다가 본인이 강원도 어느 지역에서 군생활을 했다고 하더라. 어? 듣는 순간 좀 놀랐다. 사회생활하면서 우리 부대 출신은 처음 만났다. 지오피 철책선 이야기도 하던데, 그 분이 있었던 초소랑 내가 있었던 초소랑 딱 34번 정도 차이 나더라. 연대가 달랐건만, 그닥 번호 차이가 많지 않아 한편 놀랐다.


시간 상으로 차이가 조금 있지만, 같은 부대, 비슷한 지역에서 군생활을 했던 사람을 처음 만나니 신기했다. 서로 약간 격식을 차릴 수 밖에 없는 위치라 조금 어색했지만, 아마 평소 내 성격이었으면 벌써 호형호제하면서 편하게 지냈을 터였다.


둘이 서로 각 한 병씩을 비우고, 조금 아쉬운 나머지 한 병을 더 시켜 반씩 나눠 마시고 헤어졌다. 허! 시간이 한 시간 반 밖에 안 지났다. 평소 누군가를 만나면 이삼차는 기본이라서, 헤어졌는데 아직 이 시간이라니! 적응이 안된다. 그래 일찍 헤어졌으니 사무실에 가서 일이나 해야지 해놓고, 잠시 일하는 척 하다가 이 글은 쓴다.


글쓰는 도중에 다음 술자리 예약을 해뒀다. 빨리 마무리 짓고, 술 마시러 가련다.


술 마시기 전 책 이야기


얼마 전 북플이 "<김종철>의 마니아가 되었습니다."라는 메세지를 보냈다. 난 북플의 그 마니아라는 개념이 좀 이해가 안 되어 평소 신경을 안 썼지만, 이때만은 열어보았다. 여태 내가 김종철의 그 마니안지 뭔지 그것도 안되어 있었단 말인가?















그런데 왜 갑자기, 난데없이, 김종철의 마니아가 된거지? 최근에 김종철 선생 책에 대해서 글을 쓴 적은 없었던 것 같은데 말이다. 이 마니아의 기준이 뭔지 궁금해지는 순간이다.


김종철 선생은 여러가지 의미로 나에게 영향을 많이 미친 분이다. 좋은 쪽으로도 그렇고, 나쁜 쪽으로도 그렇다. 


나중에 한번 찾아봐야겠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 중에 마니아가 아직 되지 못한 작가가 있는지, 그렇다면 그 이유는 뭔지? 내가 글을 안 써서인지, 글을 썼는데 별로 인기가 없어서인지?



댓글(8) 먼댓글(0) 좋아요(1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yamoo 2015-09-21 23: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은빛 님, 술을 아주 좋아하시는 것 같아요. 술을 그리 좋아하시는지 첨 알았달까요~ㅎ
건강을 해치지 않을 정도의 술은 매우 좋지요. 건강 유의하면서 술을 즐기시길!

그나저나 전 북플을 하지 않아 제가 무슨 마니아인지도 모릅니다~ 허나 저도 그 마니아의 기준이 뭔지 정말 궁금해 하고 있는 1인입니다..ㅎㅎ

감은빛 2015-10-07 13:11   좋아요 0 | URL
답이 많이 늦었습니다. 죄송!

술을 아주 좋아하죠! ^^
저도 가끔 제가 이렇게 술을 좋아하는구나 싶어서 놀랄 때가 있습니다.
밤새 술 마시느라 가끔 무리할 때가 있지만,
평소 새벽 한두시쯤까지 마시는 술은 괜찮습니다.
그 정도로는 다음날 일정에는 거의 지장이 없습니다.
염려해주셔서 고맙습니다! ^^

루쉰P 2015-09-22 09: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간디의 물레라 땡기네요 ㅋ

군대 얘기를 많이 할 수 있는 상대를 만나는 건 흔치 않죠 ㅋ 잘못하면 꼰대 소리 듣고 괜히 얘기 했나 후회도 되니까요 전 군대문화는 싫어하지만 그 때 얘기 하는 건 좋아해요 웃긴 일이 참 많았던 곳이니까요 ㅋㅋㅋ

환절기니 감기 조심하세요 ㅋ

감은빛 2015-10-07 13:12   좋아요 0 | URL
루쉰님이 읽으면 좋을 책이예요.

흔치않은 경험이라 가끔 그때 생각이 나고,
또 그 얘기를 하게 되는 것 같아요.

루쉰님도 건강 조심하면서 공부하시길!!

붉은돼지 2015-09-22 10: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그 옛날 대학 다닐 때 친한 친구 한명과 각자가 각 일병씩 알아서 마시기 주법을
몇 번 시연해봤는데요....깔끔하긴 한데,,,뭔가 아쉽더라구요^^ 옛날 생각납니다..

취업준비할 때 버스 끊어지기 전에 교문을 나와서.....꼬치와 잔 술 파는 리어카에서
혼자 닭꼬치 하나에 소주 두잔 마시고 귀가하던 기억도 나구요...
가끔씩 이런 저런 노가다 아저씨들도 혼자서 그 리어카에 들리는데요
어떤 아저씨는 오뎅 두어개, 꼬치 두어개 안주로 한 5분만에 소주 한 병을 다마시더라구요
옛날 생각납니다...^^

감은빛 2015-10-07 13:19   좋아요 0 | URL
아, 붉은돼지님 예전에 그렇게 드셨군요.
저는 실제로 그렇게 먹은게 처음이어서 좀 낯설었습니다.
깔끔하지만 뭔가 아쉬운 느낌, 저도 딱 그랬습니다.

제가 옛날 생각 많이 끄집어냈군요. ^^
가끔 그런 시절들이 오히려 그리울 때가 있더라구요.
혼자 외롭게 뭔가를 준비하며 보냈던 시간들이요.

오래전 슈퍼마켓에서 일할 때,
아침마다 소주 한 병, 담배 한 갑, 종이컵 하나 사가는 어르신이 계셨어요.
다른건 하나도 안 사고 딱 그것만 사는데,
항상 문 나서자마자 평상에 앉아 담배 피우면서,
소주 한 병을 다 드시고 일어났어요.

당시 슈퍼 일이 힘들기도 했고,
늘 새벽에 끝났기 때문에 매일 술을 마시고 잠들었는데,
아침마다 그 어르신 보면서 속이 쓰렸습니다.
어떻게 저렇게 마실 수 있을까? 뭐하시는 분일까?
늘 궁금했는데 한번도 여쭤볼 생각을 못했네요.

해피북 2015-09-22 13: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자들이 듣기 싫어하는 남자들에 관한 이야기 세가지가 떠오로네요ㅎ 군대이야기, 축구이야기, 군대에서 축구찬이야기라던 ㅋㅂㅋ . 저희 신랑이랑 산책 가면 꼭 군대이야기 해주거든요. 산에서 지낸거 행군한이야기, 잣나무에 올라가서 따먹은거 너무 배가고팠던 이야기까지 매번반복해서 듣지만 저는 들어도들어도 재밌더라구요 ㅋ

감은빛 2015-10-07 13:23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해피북님.
남편의 군대 이야기를 재밌어하시다니! 신기하네요.
제 아내는 군대 이야기 정말 싫어해요.
군대 있을때는 참 배가 많이 고팠죠.
훈련 나가면 칡뿌리와 더덕 캐먹고,
가끔은 뱀이나 참새도 잡아 먹었어요.
남의 감자 밭에서 서리해서 구워먹기도 했구요.
옛날 기억들이 새록새록 떠오르네요.
 

◇ 맨날 데려가놓고 방치해


요즘 애들을 데리고 여러 행사에 가는 것에 대해 조금 고민이 된다. 데리고 가면 분명 난 뭔가 바쁠 것이고, 아이들은 제대로 놀 공간도 없는 곳에 방치되기 때문이다. 놀 공간이 있어도 방치되는 건 똑같다. 어제는 작은 행사의 사회를 맡았다. 여는 인사를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건 사회를 맡았을 때 늘 고민이다. 어제는 좀 상태가 안 좋았다. 유난히 비염이 심한 날이어서 하루종일 힘들었다. 비염 때문에 못 하겠다고 말할까 말까 좀 고민했다. 그런데 급하게 부탁했던 것을 당일 몇 시간 앞두고 취소하는 것도 예의가 아니었다. 행사 시작할 때 짧게 진행하는 것 외에는 사회자의 역할이 많지 않았기 때문에 그냥 하기로 했다. 확실히 몸이 안 좋으니 말도 잘 안 나왔다. 평소보다 발음도 부정확했고, 머리속에서 문장이 만들어지지 않았다. 간단한 말도 쉽게 나오지 않았다. 머리 속으로 '어! 이거 왜이러지? 왜 자꾸 말이 떠오르지 않지?' 그러다보면 또 다음 말이 생각나지 않았다.


한참 떠들고 있는데, 안쪽 방에서 작은 아이가 나와서 내 다리에 매달렸다. 아이들과 놀라고 방에 들여보냈는데, 아는 아이가 없어서 혼자 심심했던 모양이다. 큰 아이는 학습만화를 보느라 동생은 안중에도 없었다. 암튼 뭔가 이야기를 하는 중에 작은 아이가 다리에, 허리에 매달리고 내 주위를 빙글빙글 돌았는데, 난 말을 이어가면서 마이크를 왼손으로 바꿔쥐고 오른손으로 아이 손을 잡았다. 아이는 곧바로 손을 빼고는 다시 장난을 쳤다. 보는 사람들이 웃기 시작했다. 사진을 찍는 사람들도 있었다. 조금 당황했다가 아이를 보고 사람들이 웃으니까 나도 조금 마음이 편해졌다. 어차피 동네 사람들 모아놓고 하는 건데, 좀 못하면 어떻고, 실수 좀 하면 어때 싶었다.


지난 번에 텃밭에 따라가지 않겠다고 버티던 큰 아이의 태도를 보고, 앞으로 저녁마다 주말마다 아이들을 어떻게 데리고 다녀야 하나 걱정이 되었다. 당장 이번주만해도 어제와 오늘 연이어 저녁에 행사가 있고, 나는 꼭 참석해야 하지만, 아이들도 돌봐야 하는 날이다. 내가 단순 참가자라면 적당히 아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낼 수도 있겠지만, 대부분 뭔가를 맡아서 해야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아이들은 결국 방치된다. 모든 행사에 아이 돌봄 서비스가 있다면 좋겠지만, 그런 경우는 거의 없다. 이것도 다 비용의 문제다.


◇ 건강 민주주의를 고민할 때


지난 토요일 녹색당 정책대회에 가지 못했다. 일터 워크숍이 금요일 저녁부터 토요일 오전까지 1박2일이었고, 오후엔 아이들을 돌봐야 했다. 아이들을 데리고 갈 생각도 안 한건 아닌데, 거기 데려가면 난 여러 시간 계속 토론회에 참여해야 하는데, 아이들이 그 긴 시간동안 뭘 할 지 답이 나오지 않았다. 거기까지 가서 애들하고 시간을 보낸다면 그것도 의미없다. 못 가는 걸로 마음 먹고 있었는데, 결국 당일 아침 집으로 돌아와 뻗어버렸기 때문에 정책대회에도 못가고, 아이들과도 제대로 놀지 못했다.


그날 참여했던 여러 당원들의 이야기를 통해 정책대회 소식을 접하고 있다. 그중에 흥미로운 이야기가 하나 있다. 바로 건강 분야의 민주주의에 대한 이야기다. 김창엽 교수님이 물신화 되어 있는 건강이라는 주제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며 녹색당이 역할을 해주길 바란다고 하셨다. 마침 한 당원이 김창엽 교수님의 한겨레 신문 칼럼을 링크 걸어 놓았길래, 읽어봤더니 정말 가장 중요한 주제임에도 그동안 놓치고 있던 주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 읽기] 더 많은 ‘건강 민주주의’를 위하여 / 김창엽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709142.html


작년 말 담배값 인상은 어마어마한 뉴스였다. 많은 흡연자들은 둘로 나뉘었다. 담배를 사재기하거나, 끊겠다고 마음 먹거나. 나는 평소 담배를 많이 피우지는 않기 때문에, 값이 올라도 평소처럼 조금씩 피울 수 밖에 없다는 생각에 아무것도 하지 않았지만, 주위 흡연자들은 대부분 둘 중 하나였다. 시간 날때마다 두갑씩 사두는(한 번에 두 갑 밖에 안 팔았다고 하던데) 소극적인 사재기부터, 면세점 같은데서 몇 보루씩 사두는 사람들도 있었고, 담배값이 오르는 순간부터 끊겠다는 사람들도 있었고, 어차피 값이 오르면 열 받아서 사지 않을 생각이니 당장 끊겠다는 사람들도 있었다.


시간이 지나 그 두 부류는 대부분 아무것도 안했던 나처럼 담배를 비싼 값에 사서 피우고 있다. 사재기를 했던 이들은 이미 쟁여놓았던 담배가 동이나, 사서 피울수 밖에 없고, 끊었거나, 끊을 예정이던 이들은 짧은 기간 금연에 성공했겠지만, 결국 흡연으로 돌아왔다. (물론 아예 끊어버린 예외도 분명 있겠지만) 그리고 세금 수입은 어마어마하게 늘어났다.


애초에 담배값을 올려서 국민들의 건강을 챙기겠다는 주장은 틀렸음이 결과로 드러났다. 술값을 아무리 올린다고 술 소비가 줄어들까? 쌀값을 팍 올리면 국민들이 밥을 안 먹을까? 마찬가지다. 솔직하게 국민 건강을 생각했다면 다른 방법을 먼저 떠올려야 했다.


광우병 쇠고기 수입 문제, 구제역 파동, 조류 독감 파동, 일본산 방사능 오염 수산물 수입 문제, 인조잔디 발암물질 문제, GMO(유전자 조작 식품) 문제 등 나와 내 가족과 이웃의 건강 문제에 대해 나는 과연 얼마나 권리를 갖고 있을까? 당장 내 아이의 입으로 방사능 오염 식품이나, GMO 함유 식품이 들어가도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이것이 과연 민주주의인가? 이 가장 중요한 문제에 대해 그동안 정치권은 아무런 답을 내놓지 않았다.


당장 돈을 좀 못 벌더라도, 공장식 축산이 아닌, 생명의 권리를 존중해 가축을 길러서 팔면, 구제역이나 조류독감은 큰 피해를 일으키지 않을 것이다. 자연스럽게 생겼다가 소멸하기를 반복하겠지만, 모든 가축을 살처분하는 무자비한 지옥 같은 광경이 벌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정부는 근본 원인인 공장식 축산을 내버려둔채, 늘 전염병이 돌고 나서 해당지역 모든 가축을 죽여버리는 무자비하고, 멍청한 짓을 계속 반복한다. 소를 잃어버렸다면 외양간이라도 고쳐야 할텐데, 외양간은 그대로 두고 계속 소를 잃어버리면서, 소를 탓하는 꼴이다.



◇ 내 척추는 건강할까?


시기에 따라 다르지만, 어떤 때는 외근이 많아, 많이 걷고 움직이지만, 또 어떤 때는 서류 작업이 밀려 아침부터 밤까지 꼬박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 때도 있다. 그런 날엔 손목, 어깨, 허리 안 아픈 곳이 없다. 휘어진 등허리와 거북이 목 때문이다.


요새 오마이뉴스 특별기획 "사무실을 살려줘 쫌!" 시리즈를 유심히 읽고 있다. 정말 오랜 시간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받고 있었다. 읽다보면 늘 겁이 난다. 나도 곧 디스크에 오십견에 손목터널증후군에 걸리는 건 아닐까? 아니 이미 걸린 건 아닐까? 건강하려면 당장 컴퓨터 앞에 앉지 않는 일로 직업을 바꿔야 할까? 별의 별 생각을 다 해본다.


오마이뉴스 특별기획 사무실을 살려줘 쫌!

http://www.ohmynews.com/NWS_Web/Issue/special_pg.aspx?srscd=0000011421


컴퓨터 앞에 앉아서 일하는 분들은 꼭 시간내서 읽어보시길 권하며 편집자의 말을 옮겨본다.


앉아서 일하는 사람을 보면 '편하게 일한다'는 말이 나오던 시대가 있었지요. 아닙니다. 장시간 앉아 일하면 땀은 나지 않을지언정 몸은 망가집니다. 3, 4번 디스크가 터지고 목은 거북이가 됩니다. 근골격계 질환에 노출됩니다. 장시간 사무실에서 일하는 직장인들은 건강하게 일할 권리가 있습니다. 이제 그 권리를 찾고자 합니다. 관련 기사를 10회에 걸쳐 연재합니다.


페이스북에서 앉아서 일하는 사무직 직원의 허리 건강에 대한 영상을 보고, 이 글 마지막에 그 영상을 넣으면 딱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찾아보려니 검색 기능이 없는 페이스북에서는 도저히 찾을 수가 없다. 괜히 한 십여분 시간만 낭비했다.



◇ 책 찜
















음, 제목만 봐도 꼭 읽어야 할 것 같은 책이다. 일단 찜해둔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아무개 2015-09-17 14: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엊그제 회식중에 광우병 이야기를 했더니,
저더러 `세뇌`당했다고 그러더군요.
광우병은 노무현이 만든거라구요.
하아...직장 자체가 워낙에 보수적인 곳이긴 하지만,
이럴땐 정말 피가 거꾸로 솟아서
어른이고 뭐고 한판 붙자 하고 싶어요....


감은빛 2015-09-18 10:35   좋아요 0 | URL
애초에 한미FTA를 추진하고,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받아들인 사람이 노무현인데,
광우병을 노무현이 만들었다니 참 웃기네요.

사실관계를 따져보거나, 더 정보를 찾아볼 생각을 하지 않고,
무조건 언론의 보도나 한 쪽의 일방적인 내용만을 믿는 것은 답답하죠.
저 역시 물론 어느 한 쪽에 치우친 사람이겠지만,
되도록 반대 의견도 두루 살펴보고 최대한 올바른 판단을 하려고 노력합니다.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자신이 우월하다는 듯이 대하거나,
직위가 높다는 이유로 자신의 의견이 무조건 옳다는 듯이 하는 건 잘못이죠.
물론 일터에서 그런 상급자아게 바로 대들기는 어렵죠.
저는 그래서 평범한 직장생활이란 걸 못하겠더라구요.

cyrus 2015-09-17 15: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척추가 한쪽으로 휘어지면, 얼굴이 비대칭으로 된다고 하더군요. 그 사실을 알고 나서부터 의자나 소파에 마음 편하게 앉을 수가 없어요. 스트레칭을 하면 좋다는데, 제가 몸을 움직이는 것 자체를 귀찮아해서 안 하게 됩니다. ^^;;

감은빛 2015-09-18 10:39   좋아요 0 | URL
저도 아주 오랫동안 자세가 나빠서
허리도 아프고, 골반도 아프고 그랬어요.
최근에는 되도록 허리를 펴고 앉으려고 노력 중입니다만,
컴퓨터 앞에 앉아서 작은 글씨를 들여다보고 있으면,
늘 허리가 굽고, 거북이 목이 되더라구요.
허리 건강을 위해서는 컴퓨터 앞에 장시간 앉아서 일하지 말아야 하겠지만,
현실은 먹고 살기 위해 12시간 이상 앉아서 컴퓨터를 들여다보지요. ㅠㅠ
 

혼자 술을 많이 마셨던 시기는 군대 다녀온 직후였다. 그 당시는 여러모로 군대가기 전 인간관계와 단절이 있던 시기였다. 나는 소위 말하는 운동권 계파 사이에서 갈등을 겪었고 어느쪽에도 속하고 싶지 않았다. 양쪽 인간들 모두를 피했던 시절이라 편하게 함께 술마실 상대가 없었다. 차라리 혼자가 편했다.

당시엔 가난한 학생이었으므로 포장마차에서도 맛있는 안주는 못 먹었다. 우동이나 선지국에 소주를 마셨다. 혼자 마시니 많이 못 마시고 금방 취했다. 반병 남은 소주에 이름을 적어 붙여놓고 다음날 찾아서 마저 마시곤 했다.

나중에 조금이나마 돈을 벌던 시절에 젤 좋아하는 안주는 닭똥집이었다. 저렴하면서도 맛있었다. 닭똥집 한 접시면 소주 한 병을 그냥 비웠다.

자취하던 시절엔, 집에서 혼자 마셨다. 라면 하나에 소주 반 병, 새우깡에 소주 반 병, 참치캔에 소주 한 병 반, 대략 이런 패턴으로 마셨다.

요샌 집에서 소주 보다는 맥주나 막걸리를 주로 마신다. 겨울에는 청주를 마신다. 소주의 그 맛과 냄새가 싫어졌다. 아니 안동소주는 괜찮더라. 그런데 비싸더라.

순대를 사는 날엔 주로 막걸리를 마신다. 비가 오고 파전을 부친 날에도 막걸리. 가볍게 소세지나 계란프라이, 과자 따위를 안주로 먹을 때에는 맥주, 겨울엔 오뎅탕에 청주다. 가끔 소주가 땡길때에는 라면 먹을때랑 골뱅이 무침 해먹을 때다.

오늘은 야근을 하다가, 늦은 시간 운동을 하러갔다. 지난 주에는 단 하루도 운동을 못 갔다. 일이 바빠 끼니도 거르고 잠도 제대로 못자는 상황에서 운동은 무슨 이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난 그 와중에도 최대한 운동을 하려고 노력했다. 준비운동이나 마무리운동을 생략하면 본운동은 5분이면 충분하니 짧게라도 다녀오려고 했지만, 일이 몰리니 그 시간 빼기도 어렵더라. 일주일 중에 하루라도 가 보려고 노력했지만, 결국 하루도 못 갔다.

일주일만에 가니 몸이 많이 굳어 있었다. 왠일인지 평소 들던 무게의 반도 못 미쳐서 자세가 무너졌다. 대신 가벼운 무게로 자세를 다시 익히는데 집중했다.

운동하면서 다른 쉬운 운동보다 어려운 스내치에 집착하는 이유를 생각해봤다.

1. 단번에 바벨을 들어올리는 단순하고 명쾌한 동작이 좋다.
2. 바벨을 들어올릴때 나는 철컹하는 맑은 소리가 좋다.
3. 어려운 동작을 내 것으로 만들기위해 노력하는 과정이 좋다.
4. 순간적으로 힘을 내고 나서 해냈다는 성취감이 좋다.

언젠가 스내치를 좀 더 잘 해내는 순간이 오면 지금 이 시간이 참 우스울지도 모르겠지만, 잃어버린 시간을 되찾기위해 노력한 오늘도 무척 재밌었다.

저녁을 안 먹고 일했기 때문에 운동을 마치고나니 무척 허기졌다. 집 근처 내가 좋아하는 꼬치집에서 닭똥집 꼬치에 맥주를 시켜 먹으면서 알리딘 서재 글을 읽다가, 이 글을 쓴다. 소주를 시킬까 잠시 고민했지만, 소주 특유의 화학주 맛이 싫었다. 비록 많이 마시면 배가 부르긴하지만, 맥주를 벌써 2천을 넘게 마셨지만 그래도 맛있는 닭똥집을 먹어서 좋다.

댓글(10) 먼댓글(0) 좋아요(1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ransient-guest 2015-09-15 02: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소주는 특유는 맛과 냄새가 싫어서 안 마십니다만, 소주를 제대로 먹던 시기는 가장 힘들었던 시절인 것으로 기억해요. 맛보다는 분위기로 마시는 술입니다.ㅎㅎ

감은빛 2015-09-17 09:56   좋아요 0 | URL
30대 중반까지만해도 맥주는 술이 아니라고 생각했지요.
저에게 술을 마신다는 건 당연히 소주를 마신다는 의미였습니다.
그런데 어느날부터 게스트님 말씀처럼
소주 특유의 맛과 냄새가 싫어지더라구요.
그후론 맥주를 주로 마시고, 소주는 아주 가끔 마셔요.

안동소주는 화학주 맛과 냄새가 없어서 마실만 하던데, 비싸지요.
요새 마트에 가면 안동소주 도수를 낮춘 술을 판다는데,
마트를 가지 않기 때문에 구하기가 어렵더라구요.

수이 2015-09-15 07: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맞아요, 청주가 있지요 ㅋ 저도 맥주를 즐겨 마시는데_ 물론 많이 못 마신다는 게 안타깝지만;; 근데 요즘 들어 술꾼들과 어울리다보니 은근 폭탄주를 많이 마시더라구요. 저는 폭탄주 힘들던데;;

감은빛 2015-09-17 09:58   좋아요 0 | URL
폭탄주 하면 양주와 맥주죠.
어느날부턴가 쏘맥이 완전 유행이더라구요.
예전에 출판 영업자들 모임을 가면
1차부터 무조건 쏘맥이었어요.
빨리 취하고, 일찍 가서 자야 다음날 또 일찍 일을 하니까요.

비로그인 2015-09-15 08: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딩때는 소주 1병을 사서 집에서 혼자 안주도 없이 마셨지요
대학생일 때는 아침부터 가방에 소주 한 병을 챙겨 가 수업끝나면 잔디밭에 앉아 혼자 병째 마시곤 했는데...생각해보니 그 때가 좋았네요 지금은 술을 아예 못마셔서 ㅠㅠ
감은빛님 소주병에 이름 쓰시는 장면이 훈훈하게 떠올라요^^

감은빛 2015-09-17 10:00   좋아요 0 | URL
와! 안주도 없이!!
예전엔 학교 안에서 자주 술 마셨죠.
공강일 때는 낮술도 많이 했고,
저녁 무렵에는 한 두 사람이 판을 벌리면,
집에가던 선후배들이 모여들기 시작해서
점점 판이 커지기도 했구요.
이렇게 떠올리다보니 그 시절이 그립네요. ^^

무해한모리군 2015-09-15 11: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집에서는 너무 많이 마시게 되서 잘 안먹는편이예요.
그래도 돈이 없어서 짜파게티에 맥주는 종종 마시곤 했는데 ㅎㅎㅎ
하긴 돈많았으면 술먹다 폐인됐을거예요
인생을 낭비하는 것도 아무나 할 수 있는게 아니구나 아슬프다.

감은빛 2015-09-17 10:03   좋아요 0 | URL
짜파게티에 맥주가 잘 어울리나요?
짜장에는 왠지 이과두주 정도 먹어줘야 할 것 같은데요. ^^
가끔 반찬이 없고, 음식하기 귀찮은 날엔
짜장과 탕수육 있는 세트 시키고, 이과두주 한 병 추가해서,
혼자 마시곤 합니다.

예전 일터에서 후배 기자랑 종종
탕수육 하나에 이과두주 서너병 시켜서 마시곤 했는데,
혼자 이과두주 마시면서 그 시절 떠올리곤 해요.

루쉰P 2015-09-16 16: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닭똥집 좋아요 ㅠ

감은빛 2015-09-17 10:04   좋아요 0 | URL
닭똥집은 언제나 맛있죠. ^^
 

바쁘다 바빠!


지난 이삼주는 정말 바쁜 시간들이었다. 늘 바쁘다고 입버릇처럼 말했지만, 이때만큼은 진짜, 정말, 억수로 바쁜 때였다. 주중에는 아이들 보는 날 외에는 야근을 했고, 아이들 보는 날에도 애들 밥 먹이고, 씻으러 보낸 후에 컴퓨터 켜고 일을 했다. 주말에도 뭔가 일정이 생겨 바쁘게 보냈다. 주중에 새벽까지 일하는 날이 많아, 주말에는 늦잠도 자고, 좀 쉬어야 컨디션을 회복하는데, 쉬지 못하고 오히려 텃밭에 가서 삽질을 하거나, 어느 행사에 가서 짐 나르는 육체노동을 해야 했다. 


지난 주 목요일부터 토요일까지가 피크였다. 예전에도 가끔 몸을 혹사하는 경우가 있었지만, 최근에는 체력이 딸려 그렇게 무리한 적이 없었는데, 이번에 오랜만에 또 그랬다. 수요일 밤에는 새벽 서너시까지 일을 하다가 책상에서 졸았다. 정신 차리고 자리에 누운게 5시가 넘어서였다. 목요일 아침에는 탈핵 캠페인을 나가야 했다. 알람이 울렸지만, 도무지 일어날 수 없어 끄고 다시 누웠다. 간신히 정신을 차린 것이 아침 8시. 고민을 했다. 지금이라도 후다닥 준비하고 뛰어나갈지, 아니면 좀 더 쉬다가 출근할 지, 겨우 일어나긴 했지만 여전히 머리가 멍했다. 몸도 무거웠다. 무리라고 판단하고, 동료에게 못 나가서 미안하다는 문자를 보내고 누웠다. 한 시간쯤 더 자고 출근했다. 확실히 컨디션이 좋아졌다.


바쁜 목요일을 보냈다. 토론회가 두 건이나 있었다. 오후에 하나, 저녁에 하나. 토론회를 모두 마친 후 뒤풀이를 따라갔다. 피곤했고, 다음날 워크숍 준비도 남아있었지만, 그래도 가고 싶었다. 술도 마시고, 사람들과 떠들어야 스트레스가 좀 풀릴 것 같았다. 뒤풀이를 마치고 나온 시간은 대략 1시쯤이었다. 동네사람들 여럿이 함께 택시를 타고 돌아오는데, 난 집이 아니라 사무실로 왔다. 그들은 이 시간에 사무실에 가냐며 걱정하고, 차라리 집에가서 자고 일찍 일어나사 하라고 말렸지만, 난 씩 웃으며 괜찮다고 했다. 술도 그리 많이 마시지 않았고, 조금 피곤하긴 했지만, 집에 가서 잠들면 누적된 피로 때문에 늦게 일어날 것 같았다. 게다가 워크숍 전에 마쳐야 할 일의 양이 밤을 새도 모자랄만큼 많았다. 마지막 만찬의 기분으로 뒤풀이를 즐겼으니, 이제 일을 할 시간이었다.


그리고 밤 새 일했다. 생각보다 집중이 잘 되었다. 아침 해가 밝을 때쯤 졸리기 시작했다. 책상에 엎드려 잠시 졸았다. 얼마 지나지않아 옆 사무실에 사람들이 출근하는 소리를 듣고 깨서 다시 일을 시작했다. 바쁜 시간을 보내고, 오후에 워크숍을 갔다. 고민할 꺼리들이 많이 던져진 시간이었다. 드디어 워크숍 공식 일정을 마친 후 뒤풀이. 참석한 사람들에게 할말이 많았다. 다만 그 이야기들을 어떻게 잘 말해야 할지 몰라 조금 망설였다. 


조금은 후련했고, 조금은 후회했다. 다시 한번 깨달았다. 나는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내 의사를 잘 전달하지 못하는구나. 담배 한 대를 피우며 이걸로 만족하자고 마음 먹었다. 그리고 밤새 마음껏 술을 마셨다. 아침이 밝아올 무렵 준비해 온 맥주가 동났다. 소주가 남아있었지만, 이 시간에 소주를 마시고 싶진 않았다. 남은 사람은 나를 포함해 3명. 아침 산책을 나섰다. 이른 아침 쌀쌀한 바람에 술이 확 깼다.


산책에서 돌아와 아침을 먹었다. 사실 별로 식욕은 없었지만, 남은 음식을 처리하기 위해 조금 먹었다. 잠에서 깬 이들이 밤새 술마시다니! 대단하다! 감탄하길래, 한마디 해줬다. 이틀째라고!


목요일 밤, 금요일 밤 이틀 연속 밤을 샜다. 하루는 일하느라, 하루는 술 마시느라. 집으로 돌아온 시간은 9시쯤이었다. 씻고 아이들이 깰 무렵 이불 속으로 들어갔다. 대략 49시간만에 잠이 들었다.


"선생님" 하고 부르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오랜만에, 실로 몇 주만에 겨우 휴식을 맞은 주말, 읽다 말았던 책을 다 읽고, 웹툰 하나를 다 봤다. 웹툰은 청각장애인 아이를 가르쳤던 선생이 나중에 아이를 다시 만나 연애하고 결혼하는 이야기다. 아주 우연히 이 만화의 존재를 알게 되었는데, 앞 부분만 조금 본 후, 계속 바빠서 못 보다가 이번에 완결까지 봤다. 처음 알았던 때는 완결 전이었는데, 그새 완결되었다.


만화를 보면서 한 아이가 떠올랐다. 군대 다녀와서 등록금과 용돈을 벌어보려고 학원 강사 생활을 했다. 학원 생활은 재밌었다. 난 아이들하고 어울리는 시간이 좋았고, 뭔가를 가르치는 일도 재미있었다. 학원이라는 시스템 자체가 가진 모순 때문에 짜증나는 일이 없지 않았지만, 그래도 만족스러운 생활이었다. 나중에 '사교육 시장에 복무하면서 사회 정의를 외치는 모순'에 대한 스스로의 답을 찾지 못해 더이상 학원 강사는 하지 않겠다고 선언하기 전까지, 5곳의 학원에서 많은 아이들을 만났다.


다녔던 학원마다 조금씩 기간과 양상은 달랐지만, 나에게 관심을 가졌던 여학생들이 있었다. 대부분은 그저 자신의 삶에 들어온 익숙치 않은 존재에 대한 관심이라고 여겼다. 적당히 잘 해주면서, 적당한 선에서 잘랐다. 몇몇은 가물가물 얼굴이 떠오르는데, 이름은 잘 생각나지 않는다. 단 한 아이만 예외다. 이 녀석은 얼굴도 선명하게 떠오르고, 이름도 생각난다. 첫 학원에서 만났던 귀엽고, 반듯한 모범생이었다. 당시 중학생이었으니, 지금은 벌써 서른을 좀 넘겼겠다.  


당시 그 학원에는 공부하러 오는 아이들보다는 그저 시간을 때우러 혹은 친구들과 놀기 위해 오는 아이들이 더 많았다. 아니 그런 아이들이 대부분이었다고 해야 하겠다. 그 학원 아이들의 특징은 그 학원이 위치한 동네만 봐도 쉽게 알 수 있었다. 부산에서도 소문난 우범지대였다. 학원 수업을 마치고, 행적적인 업무들까지 다 끝내고 퇴근하기 위해 버스 정류장으로 내려오면, 할머니들이 쪼그리고 앉아 있다가 다가와서 "총각, 꽃밭에 물 좀 주고 가소~"라고 말을 걸었던, 그런 동네였다. 그리고 쉽게 볼 수 있었다. 아이들 중에 어지간히 선을 넘은 아이들이 제법 많았다는 것을. 그것은 나 역시 학창시절 선을 많이 넘었던 아이였기 때문에 더욱 쉽게 볼 수 있었다.


그래서 대부분 수업은 둘 중 하나였다. 딴짓 하거나, 소곤거리는 아이들을 무시하고 진도를 나가거나, 하나 하나 다 지적하고 바로잡다가 진도를 하나도 못 나가거나. 처음에는 아무리 화가나도 웃음을 잃지 않으려고 애썼다. 그러나 아이들의 태도를 보고 바로 자세를 바꿨다. 아이들은 웃고 있던 나를 쉽게 생각했고, 그저 무시해도 되는 선생으로 보았다. 그 후 평소에는 웃되, 잘못된 태도에는 엄하게 대했다. 쉽지 않았다. 한 동안은 교실에 들어서는 것이 두렵기도 했다. 마치 시합에 나가는 권투선수처럼 각오를 다지고 문을 열었다.


하지만 모든 반이 다 그렇지는 않았다. 지금은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당시 내가 가르쳤던 아이들은 초등학생부터 고등학생까지로 다양했다. 하지만 초등부와 고등부 수업은 별로 없었다. 대부분은 중등부 수업이었다. 중3 수업이 가장 힘들었다. 앞서 말했듯이 권투선수처럼 각오를 다지고 들어가야 했던 수업은 중3 중에서도 2개 반 정도였다. 중2와 중1 수업은 그래도 할 만했다. 이 아이들은 아직은 순진한 면이 있었다. 같은 학년이라도 반의 분위기는 천차만별이었다. 어떤 반은 도무지 진도를 못 나가게 엉망이었다면, 어떤 반은 아이들이 열심히 들어줘서 힘든 줄도 모르고 진도를 빼기도 했다.


그 아이는 그런 반에 있었다. 비교적 수업 분위기가 좋았던 반이었다. 그래서 그 아이는 내가 엄하게 꾸짓거나 화를 내는 모습을 거의 본 적이 없었으리라. 그 반에서는 자주 웃었고, 분위기가 좋았기 때문에 진도를 빨리 빼고 나면 재미있는 이야기도 많이 해줬다. 늘 앞쪽에 앉아 집중해서 수업을 들었고, 질문에 대답도 잘 했고, 가끔 농담이나 흥미로운 역사 이야기를 들려주면 웃는 얼굴로 열심히 들어주던 아이였다.


중간고사 기간이었던가? 아니면 소풍이나 현장학습 같은 것이 겹쳤던 날이었나? 다른 학교는 모두 행사가 있어서 아이들이 못 오고, 그 아이의 학교 학생들만 학원에 온 날이 있었다. 반마다 달랐지만 한 반에는 대략 너댓개의 학교 학생들이 함께 다녔다. 암튼 그 반에 그 학교 아이들은 네 명이었고, 정원 20여명 중에 겨우 4명 밖에 없었기 때문에 진도를 나가야할지 말지 고민이 되었다. 그리고 눈치빠른 아이들은 내가 들어서자마자 대부분의 아이들이 빠졌기 때문에 진도를 나가면 다음 시간이 어려워 질 거라고, 한번 쉬자고 제안했다. 나는 그러고 싶지만, 원장 선생님 눈치가 보여서 그냥 놀 수는 없다고, 조금 진도를 나간 후에 상황을 봐서 판단하겠다고 답했다. 아이들은 조금 뾰로퉁한 태도로 교재를 펼쳤다. 약속대로 진도는 아주 조금만 나갔다. 원장 선생님이 순찰돌 시간이 지났다 싶을때쯤 목소리를 낮춰 말했다. "이제부터 자유시간을 줄건데, 밖에서 보기에 그래도 공부하는 것처럼 보여야 한다. 책은 펼쳐놓고, 작게 이야기하거나, 다른 할 일을 하는 건 괜찮다"고 했다. 아이들은 신나서 떠들기 시작했다. 나는 교탁에 기대, 다음 수업을 준비했다.


잠시 후 아이들이 질문이 있다고 했다. 말해보라고 하자 첫번째 질문이 곧바로 "애인있어요?" 였다. 없다고 답하자 아이들이 박수까지 쳐가며 호들갑스럽게 좋아했다. 왜 그러냐고 묻자, 한 아이의 얼굴이 붉어졌다. 옆에 있던 아이가 "얘가 선생님 좋아한대요!" 라고 크게 말했다. 당황한 아이는 안그래도 붉어진 얼굴이 더 빨개지며, 말을 한 아이의 어깨를 툭 쳤다. 내가 웃으며 좋아해줘서 고맙다고 했던가? 그 비슷한 반응을 보였던 것 같다. 아이들은 계속해서 연애 경험을 이야기 해달라고, 키스 경험을 이야기 해달라고 졸랐다. 넘어갈 듯 말듯, 이야기 해줄 듯 말듯, 아이들과 장난을 치면서 시간을 보냈다. 재밌었다.


그 수업이 거의 끝날 무렵이었다. 군대가기 전 사귀던 여자친구와 늦은 저녁 공원에서 키스했던 이야기의 서두를 조금 꺼내다가, 당시의 분위기와 주변 묘사만 열심히 늘어놓고는, 정작 중요한 이야기는 다음 기회에 하겠다고 김새는 발언을 했고, 아이들은 잔뜩 기대를 하고 있다가 실망해서 원성을 높였다. 이어지는 어색한 침묵. 그때 얼굴이 붉어진 그 아이가 "선생님" 하고 불렀다. 표정이 묘했다. 수줍어하면서도 내 눈길을 피하지 않고, 살짝 입술을 깨물었다가 놓았다. 그 다음에 나온 말은 고백이었다. 좋아한다고. 난 좀 당황스러웠다. 교실에서 그것도 친구들 앞에서 그렇게 말할 줄은 몰랐다. 아무리 대부분이 결석이고, 친한 친구들만 있었다고 해도. 그리고 평소 그 아이를 눈여겨봐왔기에 그 말이 나를 놀리는 장난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못했다. 다른 아이였다면 아마 그런 의심이 먼저 들었을 지 모르지만.


그 후로 그 아이는 자주 교무실에 놀러와서 인사를 했다. 조그만 쵸콜릿이나 사탕, 음료수를 건네기도 했다. 아이는 늘 생글생글 웃는 얼굴로 고개를 꾸벅 숙여 인사를 했고, 내가 반가워하면 뭔가를 슬쩍 건네고 사라졌다. 그 반 담임이었던 여선생님은 그 아이에게 얘기를 들었던 건지, 아니면 눈치로 알았던 건지 나에게 넌지시 아는 척을 했다. 아이가 선생님을 무척 좋아한다고 잘해주라고 했다.


당시 여학생들에게 무척 인기가 많았던 과학 선생이 있었다. 나보다 2살 아래였던가? 같은 학교 후배였기 때문에 종종 함께 술을 마시곤 했던 그 녀석은 키도 크고, 호리호리한 몸매에, 얼굴도 잘 생겼다. 학원에서 최고 인기 강사였다. 허우대는 멀쩡했지만, 의외로 수업은 잘 못했다. 목소리도 힘이 없고, 딴 짓하는 아이들을 잘 다루지 못해 어쩔줄을 몰랐다.


그 아이의 담임 선생님은 나를 과학 선생과 비교하며 수업도 재미있고, 흥미있는 역사 이야기도 많이 들려주는 등등의 이유로 나를 더 좋다고 했다는 묻지도 않았던 이야길 들려주었다. 암튼 나는 그 아이를 볼 때마다 어떻게 대해야 할 지 잘 몰라서 그저 웃기만 했는데, 그 아이는 속으로는 어땠는지 몰라도 겉으로는 나보다 훨씬 차분하게 날 대했다. 수업 시간에도 늘 경청하고, 질문에 빠르게 대답하고, 잘 웃었다.


그 학원에서 마지막 날이 기억난다. 내가 담임을 맡았던 우리반 아이들에게 한 명, 한 명, 진심으로 충고를 했다. 아이들은 대체로 무덤덤했지만, 집에가면 맨날 게임만 했던 남자 아이 하나가 진짜 그만두는거냐고 왜 그만두는거냐고 몇 번 질문을 하기도 했다. 다른 반 아이들에게는 그만 둔다는 말조차 하지 않았다. 그건 원장 선생님이 원한 거였다. 전임 선생님이 말 없이 그만두는게, 새로온 선생님에게 아이들이 적응하기 더 좋다는 판단에서였다. 


우리반 아이들에게만 말하고 그만두려 했는데, 어떻게 알았던 건지 그 아이가 교무실로 찾아왔다. 평소와 달리 생글생글 웃는 얼굴이 아니었다. 그 아인 내 눈을 피해 바닥을 쳐다봤고, 옆에 있던 친구가 대신 물었다. "선생님 그만두세요? 왜요? 왜 갑자기 그만두세요?" 난 잠시 뭐라 할 말을 찾지 못했다가 그저 갑자기 중요한 일이 생겨서 그렇다고 형식적인 대답을 했다. 그때 마지막에 그 아이가 "다른 학원에 가셔서도 건강하세요!"라고 했다. 나는 고개 숙인 그 아이의 머리를 살짝 쓰다듬었다.


나중에 생각났는데, 그아이의 담임 선생님이 알려줬던 것 같다. 다른 학원으로 옮겨가게 되었다고 말했나보다. 한참 후에 다른 학원을 다니다 그만두었을 때는 친했던 여학생들이 핸드폰 문자로 종종 연락을 했다. 그러나 그 당시에는 아마 핸드폰이 그렇게 널리 퍼지기 전이었던 것 같다. 분명 내 친구들 중엔 핸드폰 가진 녀석들이 종종 있었지만, 당시에 나는 핸드폰이 없었다. 아마 그 아이도 마찬가지였겠지.


가끔 그 아이의 초롱초롱한 눈빛이, 생글생글 웃음기 머금은 입매가 떠오르곤 했다. 언젠가 나를 참 좋고 봐주고, 이것저것 많이 챙겨주셨던 농민회 형님이 술자리에서 이제 갓 성인이 된 자기 큰 딸이랑 결혼하면 어떻겠냐고? 사위삼고 싶다고 말씀하셨을 때에도 그 아이 생각이 났다. 아마 나이가 비슷했을 것 같다.


웹툰 하나 보고 너무 옛 추억에 빠져들었나보다. 만화에서 호가 "성생니"하고 부르는 장면을 보면서 그 아이가 "선생님"하고 불렀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몇 주 전에 읽기 시작했다가, 한동안 바빠서 손도 못대고 있다가, 이번 주말에 다 읽었다. 소설에 대한 평은 왠지 쓰기 어렵다. 단번에 다 읽었다면 훨씬 더 재미있게 읽었을텐데, 중간에 너무 오래 쉬다 읽어서 맥락이 많이 끊겼다. 다 읽고 나서 조금 이해가지 않는 부분도 있었다. 너무 쉽게 복수를 이어가는 주인공과 너무 쉽게 사랑에 빠지는 여주인공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transient-guest 2015-09-15 02: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우~~~너무 싱숭생숭하네요. 나이가 들어가면서 이런 추억에 기대게 될 때가 있는데요, 그냥 팍 와서 꽂히네요.ㅎㅎ

감은빛 2015-09-17 10:05   좋아요 0 | URL
네, 이런 저런 추억들 덕분에 일상을 견디며 살아갈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지금 이 순간들도 또 언젠가는 추억이 되겠지요.
 


2주 연속 삽질


어느날 제보가 들어왔다. 감자를 수확한 이후 한동안 바빠서 방치해 둔 텃밭이 거의 밀림 수준으로 풀이 자라고 있는 사진이었다. '녹색당'이라고 명패를 꽂아둔 텃밭이 방치된 모습을 사진으로 보니 무척 부끄러웠다. 명패가 없으면 몰라도, 생명의 정당 녹색당에서 텃밭을 방치한다는 소문이 돌면 곤란하다. 마침 무와 배추를 심어 가을 농사를 제대로 지어보자는 당원들의 뜻이 모였다. 일요일에 밭을 갈아엎고 가을농사 준비를 하기로 했다.


다만 다른 당원들은 비교적 선선한 오전에 밭일을 하길 원했으나, 나는 토요일에 녹색당 전국운영위원회에 참가했다가 밤 늦게 서울로 올라올 예정이라, 일요일 아침에는 도저히 일어날 자신이 없었다. 사실 평일에는 늘 잠이 모자라기 때문에 주말에는 늦잠을 좀 자야하는데, 토요일 전국운영위 회의에 일요일 텃밭이라니! 어쨌거나 의무감에 참가를 약속했다.


일요일 낮, 아이들과 함께 텃밭에 갔다. 아이들은 알아서 뛰어 놀기 시작했고, 나는 또 한 명의 남성 당원과 함께 밀림으로 변한 텃밭의 풀들을 뜯어내기 시작했다. 한참 정신없이 풀과 사투를 벌이다가 문득 옛날 생각이 났다. 어렸을 때 동네 뒷산에는 도둑가시풀이 많았다. 어마어마하게 많았다. 길을 가다 옷에 도둑가시가 붙으면, 튼튼한 나뭇가지를 구해 전투를 시작했다. 마치 지구를 침략한 외계인을 물리치는 것처럼 도둑가시와 치열한 싸움을 벌이곤 했다. 당시에는 티비에서 외화시리즈 V를 보여주던 때였다. 넓은 들판을 가득 덮은 도둑가시는 외계인이었고, 나는 '칼'이나 '도노반'이었다. 간혹 친구가 전투에 동참할 때는 서로 '도노반'을 맡겠다고 내분이 일어나기도 했다. 아마 초가을 무렵이 아니었을까 싶다. 학교를 마치면 매일 전투에 몰입하곤 했다. 넓은 들판의 도둑가시를 다 없앨 때까지 싸움을 이어갈 생각이었을 것이다.


오전반이었던 아이가 오후반이 수업을 마치고 집에 갈 때까지도 들판에서 나무가지를 휘두르고 있었고, 어느날은 해가 저문 후에도 한 마리의 외계인이라도 더 죽이고 가려고 지친 팔을 휘두르기도 했다. 그렇게 열정적으로 며칠동안 전투를 벌였건만, 외계인의 세력은 전혀 줄지 않아 보였다. 끝이 보이지 않는 그 싸움에 지쳐 결국은 포기해버렸으리라.


한참 딴 생각을 하다가 정신을 차리니 어느새 밀림이 정리가 되어 있었다. 이제 눈에 보이는 줄기를 뽑아 냈으니, 땅을 갈아 엎을 차례다. 삽질을 시작했다. 햇빛은 뜨거웠고, 날은 더웠다. 몇 번의 삽질만으로 옷은 땀으로 완전히 젖어버렸다. 머리칼을 타고 흐른 땀이 안경 위로 뚝 떨어진다. 같이 삽질하던 친구는 비료 포대를 가지러 갔고, 잠시 후 여성 당원이 왔다. 내 몰골을 보고 도와주겠다며 삽을 들었지만, 잡풀들의 뿌리로 얽힌 땅에 삽이 쉽게 들어가지 않았다. 몇 차례의 시도 끝에 그는 삽을 포기하고 다른 일을 거들기로 했다.


도시에서 나고 자라 농사라곤 농활 몇 번 가본 게 다였다. 잠시 농사짓는 마을에서 살았어도, 직업은 활동가였던 터라 시내에 있는 사무실에 출근했기 때문에 농사의 농자도 몰랐다. 몇 해 동안 텃밭 일구는 일을 거들기는 했지만, 늘 누군가 시키는대로 힘쓰는 역할만 했다. 일의 요령이 없었기 때문에 몸은 더 힘들기 마련이다. 마침내 한 차례 밭을 갈아엎고, 비료를 뿌리고 다시 흙을 골고루 섞어주면서 평평하게 만드는 작업을 했다.


다음날 어깨와 등에 근육통이 느껴졌다. 평소 운동할 때 쓰는 근육에서 느껴지는 기분좋은 뻐근함이 아니라 제법 날카로운 통증이었다. 덕분에 운동을 이틀 쉬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방과후 협동조합 아이들이 분양받은 텃밭을 갈아 엎어야 한다는 연락이 왔다. 지난 주말 녹색당 텃밭 갈아엎고 근육통이 왔었다고 하소연 했지만, 일할 사람이 없었다. 이번 주를 지나면 무, 배추를 심기에 너무 늦어진다. 하지만 시간을 낼 수 있는 부모가 없었다. 하긴 아이들 텃밭은 몇 평 되지도 않는다. 잠시 힘쓰고 맛있는 장작구이집에 가기로 약속했다.


다행히 이번 토요일에 함께 삽질한 분은 텃밭 경험이 많았다. 텃밭에 가면 재미없다고 따라가지 않겠다는 아이들을 억지로 꼬셔서 가느라 약속시간보다 좀 늦었는데, 이미 그 분이 절반이상 해놓은 상태였다. 미안한 마음에 열심히 삽질을 했다. 확실히 지난 주에 한 번 삽질을 했기 때문에 요령이 생겼다. 밭도 훨씬 작았고, 유능한 경험자와 함께였기 때문에 수월하게 작업을 마쳤다. 즐겁게 땀흘린 후에 시원한 맥주 한 잔! 기분 좋은 토요일이었다.


바로 다음날, 일요일에는 지난 주 갈아엎은 녹색당 텃밭에 무와 배추를 심으러 갔다. 아이들은 이번에야 말로 절대 따라가지 않겠다고, 강경한 태도를 보였다. 아내는 다른 일로 외출을 해야 하고, 나도 약속된 시간이 다 되었건만, 아이들은 자기들끼리 집에 있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그냥 내버려두고 가려다가도 밥 때문에 계속 맘이 쓰였다. 지들끼리 뭐 제대로 챙겨먹을 수 있나 싶은 걱정이 드는 것이다. 아무리 달래고 유혹해도 안 통하길래 결국 두고 나왔다. 하긴 나는 훨씬 더 어렸을 때부터 맞벌이 하는 부모님 대신 나와 동생 밥을 챙겼다. 그 나이에 아직 라면 하나 못 끓이는 큰 아이를 보면서 미리 하나씩 가르쳤어야 했나 싶기도 했다.


오래된 미래
















텃밭에는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 여사가 와 있었다. 그래서 사람들이 많았다. 사람들은 호지 여사와 함께 산책을 하고, 정자 앞에 모여 여사의 말씀을 들었다. 나는 먼 발치에서 그 모습을 보다가 배추 모종 심기에 집중했다. 


나중에 행사를 마무리 지으면서 다같이 손잡고 '지구와 우리를 위로하는 몸짓'인 생명의 춤을 추었다. 그때 여기저기 밭에서 일을 마무리하던 녹색당 당원들도 춤을 추러 갔는데, 나는 남은 배추 모종을 마저 심느라 남았다. 사람들은 호지 여사와 함께 춤을 추고 나서, 기념사진도 찍었다. 나중에 왜 기념사진 찍으러 안 왔냐고 묻길래, 별로 같이 사진 찍고 싶지 않다고 답했다.


사실 호지 여사에 대해 조금 석연찮은 점이 있다. 녹색평론에서 [오래된 미래]가 나와 널리 알려지고, 필독서가 되었건만, 어쩐 일인지 호지여사는 판권을 중앙북스로 넘겨버린다. 녹색평론에서 10년간 좋은 책을 알리고 판매했건만, 전혀 어울리지 않는 대규모 상업 출판사에 판권을 넘겨버리다니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그리고 그 이유가 돈 때문이라는 것은 더욱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저작권료를 둘러싼 호지 여사와 김종철 선생과의 상황에 대해서는 몇 개의 글을 읽은 적이 있다. 두 사람은 서로 소통하던 사이였고, 충분히 대화를 통해 풀어갈 수도 있는 상황이라 생각되는데, 일방적으로 판권을 넘긴 것은 이해할 수 없다. 게다가 그 후 중앙에서 나온 책의 꼴을 보면서 더 기분이 나빴다. 정말 제목과는 어울리지 않는 책이었다.


예전에 샀던 녹색평론사 판 [오래된 미래]가 어느 날 보니 없어졌더라. 누군가에게 빌려줬던 걸까? 다시 사려고 하다가 중앙북스 판은 아무래도 사기 싫더라. 이 책의 정신에 위배되는 출판사에서 나온 책을 산다는 것은 얼마나 아이러니인가! (중앙이란 말이다. 중앙!) 아무리 훌륭한 책이라도 시공사에 나온 책이라면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중앙도 마찬가지다. 이 글에 절판된 녹색평론사 판 표지를 첨부한 것도 중앙북스의 책을 인정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텃밭 일을 끝내고, 다시 긴 회의를 하고, 저녁 늦게 간단하게 밥과 맥주를 먹으면서 그 이야기를 했다. 이 책은 한동안 나에게는 존재하지 않는 책이다. 다시 녹색평론사로 돌아가지는 않더라도, 적어도 중앙이 아닌 다른 출판사에서 나오기 전에는 없는 책이나 마찬가지다. 안타깝다.


※ 함께 배추 모종을 심던 당원이 "저 연세에도 저렇게 열심히 활동하는 모습은 존경스럽다." 고 말했다. 먼 발치에서 호지 여사를 보면서 나도 같은 생각을 했다. 입 밖으로 내지는 않았지만, 과연 나는 저 나이에 저렇게 살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잠시 해봤다. 글쎄 모를 일이다.


댓글(13) 먼댓글(0) 좋아요(17)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무해한모리군 2015-09-07 16: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 저도 기회가 되면 텃밭구경 꼭 가고 싶네요 ^^ 해가 그래도 엄청 뜨겁던데 고생하셨겠어요.

오래된미래 출판권이 넘어간 과정 정말 생각하면 속상하지요.. 저희집에 있나 좀 뒤져봐야겠네요.

감은빛 2015-09-07 18:16   좋아요 0 | URL
무, 배추가 잘 자라야 부끄럽지 않을텐데,
바쁘기도하고, 게으르기도하고, 과연 잘 자랄지 모르겠네요. 작년엔 경험 많으신 선배 당원님께서 배추를 훌륭하게 키워주셔서 당원들이 같이 김장도 했어요. ^^

북극곰 2015-09-07 18: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래된 미래의 판권이 중앙에 팔렸군요....

감은빛 2015-09-08 14:14   좋아요 0 | URL
어제 퇴근길에 스마트폰으로 답을 달았었는데,
오늘보니 없어졌네요. ㅠㅠ

아마 2007년인가 2008년인가 그랬을 겁니다.
이 책은 호지 여사가 카피레프트 차원에서 다른 나라에서
출판할 때 판권 계약을 하지 않았던 걸로 알고 있습니다.
녹색평론에서 90년대 중반에 책을 낼 때 당시에
김종철 선생님과 합의가 있었고,
다른 나라의 경우처럼 판권 계약 없이, 저자의 허락을 받고
책을 출판했고, 녹색평론 덕분에 책이 널리 알려지고,
필독서가 되었고, 책도 많이 팔렸습니다.

그런데 10년 뒤에 갑자기 돈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중앙북스에 판권을 넘긴 겁니다.
김종철 선생은 비록 판권 계약은 하지 않았지만,
비정기적으로 호지여사에게 후원금을 보냈다고 합니다.
돈이 필요하다면 출판사를 바꾸기 전에 먼저
논의를 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저렇게 뒤통수를 치듯이 판권을 팔아버리는 건 이해하기 어려운 태도지요.

비로그인 2015-09-07 18: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은빛님 고생하셨네요 ㅠ 저도 얼마전에 무와 배추를 심었어요~밭은 조금만 잊어버리고 있어도 풀이 무성해져서 끊임없이 부지런해지라고 넋놓고 있지 말라고 하는 것 같아요
오래된 미래엔 그런 사연이 있었군요 ㅠㅠ

감은빛 2015-09-08 14:16   좋아요 0 | URL
네 밭은 돌아서면 풀이 무성하게 자라더군요.
아른님의 무와 배추가 튼실하게 잘 자라길 바랍니다! ^^

많이들 아시는 줄 알고, 일부러 글에 자세히 쓰지 않았는데,
잘 모르시는 분이 많군요.
요 위에 북극곰님께 댓글로 달았습니다.
정말 이해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아무개 2015-09-08 12: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오래된 미래 판권이 팔렸어요?
전혀 모르고 있었네요.....
호지 여사님의 속사정이야 알수는 없지만
좀 속상하긴 하네요. 그것도 중앙이라니..

감은빛 2015-09-08 14:21   좋아요 0 | URL
아무개님도 모르셨군요.
제 주변에는 상황을 아는 사람들이 많아서,
대부분 알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요 위에 북극곰님께 답글을 달았습니다.
당시 상황이 정말 이해가 가지 않았습니다.
추측입니다만, 아마 호지 여사가 우리나라에 방문했을 때,
누군가 녹색평론을 비난하고,
중앙북스를 추천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어쨌거나 그런 선택을 했다는 것은
납득도 용납도 하기 어렵습니다.
저에게 저 책은 이제 없는 책이나 마찬가지입니다.

transient-guest 2015-09-09 08: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운동을 아무리 해도 일에서 생기는 근육과는 다른 듯, 한번 일을 하고 나면 아주 힘들게 마련입니다.ㅎㅎ 농사는 너무 어렵잖아요. 저는 시공사에서 나오는 책을 다른 출판사에서 내주었으면 합니다. 사고 싶지 않은데, 실천할 수가 없어서 늘 전두환 아들내미한테 돈을 갖다 주는 기분이 썩 좋지는 않습니다.-_-: 푹 쉬고 다시 운동하시기 바랍니다. 건강하세요.

북극곰 2015-09-09 09:09   좋아요 0 | URL
맞아요. 시공이 돈이 많아 그런지 특히 아이들 책은 탐나는 것들이 많거든요. 시공사 건 가끔 중고로만 사주긴하지만 그래도 중고책에서 잘팔리는 것도 결국엔 새책에도 영향을 미치는 것이라서 찜찜합니다.

감은빛 2015-09-14 15:53   좋아요 0 | URL
아! 그렇군요.
일(노동)을 해서 생기는 근육은 운동으로 만든 근육과 다르겠군요.
일을 할때는 운동할때처럼 단순한 동작이 아니라,
훨씬 복합적인 동작을 해야 하니까요.

저도 게스트님과 북극곰님처럼
시공사에서 좋은 책이 나올 때마다 안타깝습니다.
어린이 책 중에는 정말 좋은 책이 많이 나오는데,
아이들에게 꼭 읽어주고 싶은 책이 있어도
그냥 외면할 수 밖에 없습니다. ㅠㅠ

yamoo 2015-09-12 00: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호! 오래된 미래 판권이 팔렸군요!

감은빛 님 고생하시네요. 꼭 건강챙기시길!

감은빛 2015-09-14 15:54   좋아요 0 | URL
야무님도 늘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