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자리 군대 이야기
휴가 나왔을때 혹은 제대 직후를 제외하면 술자리에서 군대이야기를 거의 하지 못했다. 여성들은 워낙 군대 이야기를 싫어했고, 남성들은 한번 이야기가 시작되면 봇물 터지듯 온갖 이야기가 다 쏟아져 나와서 수습이 불가능했다. 그런 모습이 보기 싫어서 눈치 없던 시절(위에서 언급한 휴가때와 제대 직후)를 제외하면 가급적 군대 이야기를 하지 않으려고 애썼다. 예외는 있었다. 나중에 내가 복무했던 지역 근처로 금강산 육로 관광이 시작되었을 때랑, 군대 폭력으로 탈영한 어느 군인이 내가 속했던 사단이었고, 나와 비슷한 경험을 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는 주변 사람들에게 말한 적이 있다.
오늘 정말 오랜만에 군대 이야기를 잔뜩 했다. 현재 진행하는 사업 때문에 자주 만나는 공무원과 첫 술자리였다. 예전부터 소주 한 잔 하자고 몇 번 인사는 나눴다. 나는 그냥 예의상 하는 인사이겠거니 생각했는데, 지난 주에 진지하게 날짜를 잡자고 해서 오늘 만났다.
획기적인 방식 하나를 배웠다. 들어가자마자 소주 두 병을 시켜서 둘이서 각 한 병씩 알아서 먹는거다. 서로 따라주거나 그런거 없다. 물론 어느정도 속도는 맞춰갈 수 밖에 없겠지만, 어쨌거나 각자 자기 술병만 알아서, 자기 속도로 비우면 되는 거다. 이거 참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에 같은 단체에서 일했던 후배가 어느 술자리에서 소주를 혼자 마시길래, 난 맥주를 마시다가, 혼자 마시면 왠지 외로워보여서 나도 소주를 마시겠다고 했더니, 그 술병은 자기가 먹던 거니 하나 따로 시키라고 해서 당황한 적이 있었는데, 그 후배 역시 각자 자기 술을 마시던 습관에 익숙한 사람이었겠구나 하고 오늘 이해했다.
한참 얘기를 나누다가, 공무원이 물었다. 나이는? 학교는? 이건 뭐 호구 조사도 아니고, 애초에 본인이 나보다 나이가 많다는 건 알고 있었으면서 구체적으로 확인하고 싶은 건 뭘까? 호기심일까? 난 솔직히 별로 그 분 나이 알고 싶지 않았는데, 나보다 몇 살 더 많다고 알려주는 바람에 알아버렸다.
한참 이런저런 이야길 하다가 본인이 강원도 어느 지역에서 군생활을 했다고 하더라. 어? 듣는 순간 좀 놀랐다. 사회생활하면서 우리 부대 출신은 처음 만났다. 지오피 철책선 이야기도 하던데, 그 분이 있었던 초소랑 내가 있었던 초소랑 딱 34번 정도 차이 나더라. 연대가 달랐건만, 그닥 번호 차이가 많지 않아 한편 놀랐다.
시간 상으로 차이가 조금 있지만, 같은 부대, 비슷한 지역에서 군생활을 했던 사람을 처음 만나니 신기했다. 서로 약간 격식을 차릴 수 밖에 없는 위치라 조금 어색했지만, 아마 평소 내 성격이었으면 벌써 호형호제하면서 편하게 지냈을 터였다.
둘이 서로 각 한 병씩을 비우고, 조금 아쉬운 나머지 한 병을 더 시켜 반씩 나눠 마시고 헤어졌다. 허! 시간이 한 시간 반 밖에 안 지났다. 평소 누군가를 만나면 이삼차는 기본이라서, 헤어졌는데 아직 이 시간이라니! 적응이 안된다. 그래 일찍 헤어졌으니 사무실에 가서 일이나 해야지 해놓고, 잠시 일하는 척 하다가 이 글은 쓴다.
글쓰는 도중에 다음 술자리 예약을 해뒀다. 빨리 마무리 짓고, 술 마시러 가련다.
술 마시기 전 책 이야기
얼마 전 북플이 "<김종철>의 마니아가 되었습니다."라는 메세지를 보냈다. 난 북플의 그 마니아라는 개념이 좀 이해가 안 되어 평소 신경을 안 썼지만, 이때만은 열어보았다. 여태 내가 김종철의 그 마니안지 뭔지 그것도 안되어 있었단 말인가?
그런데 왜 갑자기, 난데없이, 김종철의 마니아가 된거지? 최근에 김종철 선생 책에 대해서 글을 쓴 적은 없었던 것 같은데 말이다. 이 마니아의 기준이 뭔지 궁금해지는 순간이다.
김종철 선생은 여러가지 의미로 나에게 영향을 많이 미친 분이다. 좋은 쪽으로도 그렇고, 나쁜 쪽으로도 그렇다.
나중에 한번 찾아봐야겠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 중에 마니아가 아직 되지 못한 작가가 있는지, 그렇다면 그 이유는 뭔지? 내가 글을 안 써서인지, 글을 썼는데 별로 인기가 없어서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