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그러니까 제법 시간이 지난 얘기긴 하지만, 한때는 나도 제법 몸 좋다는 소릴 들었다. 헬쓰클럽 같은데를 다닌 적은 없다. 어릴 때 몇 번 친구따라 가서 운동하는 거 구경한 적은 있었다. 아령 드는 것 정도는 헬쓰클럽을 다니지 않아도 다 알 수 있고, 그 외에는 대부분 맨몸 운동을 했을 뿐이다. 사실 어려서부터 산을 자주 올랐고, 약수터에서 아저씨들 따라서 돌로 된 역기를 들었던 것이 내 체력과 근육을 만든 기초였을 것이다.

 

어쨌거나 기억에 남는 몇몇 여성들이 꽉 붙는 셔츠를 입은 내 몸에 관심을 많이 가졌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는 지금보다 좀 더 날씬하고, 근육이 좀 더 탄탄했지만, 보기에 좋을 정도였을 뿐, 몸이 썩 좋다거나 그런 상태는 아니었다. 한 후배는 자신의 애인 앞에서 늘 "오빠 몸 좋다!", "오빠 근육 좀 봐!"라고 말했는데, 질투를 유발하려는 것이었는지, 진심이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사실 애인이었던 그 친구가 체형이 더 컸고, 근육의 크기가 더 큰 편이었다. 그러니까 나는 날씬한 체형 덕분에 과대평가 된 편이었고, 그 친구는 덩치 때문에 상대적으로 과소평가 된 편이었다.

 

작년에 읽은 [남자는 힘이다]의 저자 맛스타드림은 이걸 근 선명도(definition)의 차이 때문이라고 했다. 날씬한 체형은 상대적으로 근 선명도가 좋아서 더 근육이 많아 보인다고 한다. 내 경우에 가을과 겨울에 만났던 사람을 여름에 다시 만나면 놀라는 모습을 몇 번 보았다. 그러니까 겉옷에 가려있을 때는 보이지 않지만, 여름에는 근 선명도 덕분에 나름 몸 좋다는 평가를 들을 수 있었던 것이다.

 

 

 

 

 

 

 

 

 

 

 

 

 

날씬한 체형과 근 선명도의 효능은 짧은 운동만으로도 나름 눈에 띄는 효과를 볼 수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해마다 여름이 다가올 무렵인 5월 말에서 7월 초 사이에 간헐적으로 생각날때마다 운동을 하곤 했다. 그래봐야 지속적이지 못한 응급처방 같은 운동이라 운동을 등한시 했던 십여 년 동안 몸은 지속적으로 망가져왔지만, 그래도 짧게 반짝 괜찮아 보이는 효과를 얻곤 했다. 도저히 더이상은 안되겠다고 생각한 것이 작년이었다. 물론 재작년에도 여름을 맞아, 이대로는 안된다. 다시 총각 시절의 그 몸매로 돌아가보고 싶다고 생각은 했지만, 늘 그렇듯이 생각만하고 운동은 지속적으로 안하고 술과 안주로 밤을 지새웠다.

 

작년에 가장 충격을 받았던 일은 그동안 무리없이 입어왔던 몸에 붙는 셔츠들을 더이상 입기 어렵다는 사실을 깨달았던 것이다. 뱃살이 대책없이 나와서 도저히 그 옷들을 입을 수 없었던 것이다! 아, 십여 년 전에 새겨졌던 '왕'자는 대체 어디로 갔단 말인가! 다시 식스팩을 되찾아야지 결심을 한 것이 작년 여름이었다. 가을과 겨울에 간헐적으로 운동을 하긴 했지만 역시 지속적이지 못했고, 그동안에도 꾸준히 술과 안주는 먹어왔다. 그나마 양을 좀 줄이긴 했다. 덕분에 뽈록 나온 배의 높이가 조금씩 낮아지긴 했지만, 아직 식스팩은 멀고 먼 나라의 얘기 같았다.

 

올해 여름이 다가올 무렵 나는 혼자 하는 운동에 한계를 깨닫고 있었다. 딱 정해놓은 시간과 규칙이 없으니 자꾸 운동을 빼먹게 되고, 또 다양한 운동법을 모르니 매번 같은 운동만 하는 것이 지겨워지고 있었다. 그때 접한 게 '크로스 핏'에 대한 얘기였다. 아마 그 전부터 여러번 들었을텐데, 그 전에는 의식하지 못하다가 혼자 하는 운동의 한계를 깨닫고 나서야 그 얘기가 귀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올해는 기필코 배에 있는 이 군살들과 작별을 고하리라. 큰 맘을 먹고 헬쓰클럽에 등록을 했다. 크로스 핏 수업이 저녁에 한 차례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헬쓰클럽이었다.

 

운동을 하러 간 첫날 깨달았다. 아, 나는 절대 몸이 좋거나, 힘이 좋은 편이 아니었구나. 앞서 맛스타드림이란 사람이 언급한 근 선명도의 개념도 읽을 때는 그냥 그렇구나 싶었는데, 이제는 몸으로 깨달을 수 있었다. 운동은 재미있었다. 집에서 맨손으로 하기 어려운 다양한 운동을 배우는 것도 재미있었다. 운동을 마치고 샤워를 하고 난 후의 그 상쾌함이 좋았고, 다음날 적당히 온 몸이 뻐근한 느낌이 좋았다.

 

그런데 지난 금요일에는 트레이너가 시키는 대로 하다가 좀 무리하게 운동을 했던 모양이다. 막상 그날은 괜찮았고, 토요일 오전에도 크게 불편하지 않았다. 토요일 저녁 무렵부터 허리와 등, 엉덩이와 허벅지가 불편하더니, 일요일 아침에는 허리를 굽히거나 앉지 못할 정도로 아팠다. 근육통을 이처럼 심하게 앓아본 기억이 별로 없었다. 몸이 아프니 입맛도 별로 없었다. 어제 오후 5시부터 시청 광장에서 '우리가 밀양이다'라는 탈핵 행사가 있었고, 거기에 녹색당 당원들과 함께 참석하기로 약속을 했는데, 도저히 몸을 움직이기가 어려워서 미안하다고 문자를 보냈다. 밤에 잠들기 전에는 출근할 일도 걱정이었다. 이렇게 꼼짝을 못해서야 어떻게 출근을 한단 말인가!

 

그러나 오늘 아침에는 한결 가뿐해진 느낌이 들었다. 아직까지 통증이 다 사라지지는 않았지만, 몸도 구부릴 수 있고, 앉을 수도 있게 되었다. 저 책에도 다음날 근육통을 느낄 정도로 운동하지 말라고 했는데, 앞으론 무리하지 말아야겠다. 이러다가 정말 사람 잡겠구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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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7-08 18: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7-09 11: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다락방 2013-07-09 13: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신줄 놓고 육체를 방치한 채로 지내고 있다가 이 글을 보니 아, 또 정신 못차리고 있구나, 하는 깨달음이 오네요. 늘 여름이 가장 다이어트 하기 좋다고 부르짖으면서 그 여름을 또 언제나처럼 보내고 말아요. 다시 마음을 다부지게 먹고 몸 관리 좀 해야겠어요. 그런데 오늘은 피곤하니까 좀 이따가...( ")

식스팩 만들기 성공하세요, 감은빛님!!

감은빛 2013-07-15 15:12   좋아요 0 | URL
아, 이 댓글 읽었는데 답을 안드렸군요!
여름이 몸 만들기에 제격인 계절이죠.
바야흐로 노출의 계절이니까요.
식스팩은 곧 성공하리라 생각합니다.
요즘은 술도 많이 줄였고, 운동도 열심히 하고 있으니까요.

종이달 2022-08-19 05: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맙습니다
 

한 줄기 바람이 이마를 스친다. 땀에 젖은 머리칼이 살짝 움직였다. 좀 더 시원하게 불어줬으면 좋으련만 야속한 바람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나무 그늘에 앉아 있어도 피부를 무겁게 내리누르는 듯한 후덥지근한 느낌은 그대로다. 쎄~ 하고 매미 우는 소리가 시끄럽다. 눈을 감았다 다시 떠보고, 자세를 고쳐봐도 영 잠은 오지 않는다. 잠들기에는 너무 덥다. 어디 시원한 에어컨 바람 밑에 누웠으면 좋겠다. 아니면 어디 바닷가 파라솔 아래 누워 썬글라스 너머로 어여쁜 여성들의 몸매 감상이라도 했으면 좋겠다. 여름이라고 어디 놀러 가 본게 언제였던가? 남들은 사무실에서 에어컨 바람을 쐬거나, 바닷가에서 휴가를 즐길텐데, 나는 바람 한 점 없는 폐교 운동장 구석에서 시끄러운 매미 소리나 듣고 있다니!

 

   

"아야, 슬슬 일 시작해야." 

 

 

더러운 수건을 목에 두른 장씨 아저씨가 저쪽에서 담배를 물고 걸어온다. 점심은 제대로 드시지도 않고, 막걸리만 열심히 드시더니 본관 건물 뒤쪽 그늘로 자러 간 지 그리 오래되지 않았는데, 벌써 술이 다 깨셨나? 담배를 입에 물고 터덜터덜 걸어오는 모습을 보니 아직 술기운은 그대로 인듯하다. 어쨌거나 사수가 부르는데, 부사수가 누워있을 순 없으니 억지로 몸을 일으켰다. 팔다리 근육이 쿡쿡 쑤신다. 저절로 비명 소리가 새어 나온다. 나무 그늘을 벗어나니 뜨거운 햇살이 잡아먹을 듯이 달려들었다. 작업복인 긴팔셔츠를 걸쳐 입으며 비틀비틀 아저씨를 따라 걸었다.

 

   

장씨 아저씨는 아이스박스에서 시원한 얼음물이 든 병을 꺼내 얼굴과 목 뒤에 문지른다. 시꺼먼 땟국물이 물병에 묻는다. 그 물병을 겨드랑이 틈새에도 넣었다가 빼고, 배와 가슴도 문지르고 나서야 뚜껑을 열어 물을 마신다. 다 마신 물병을 내게 건네려 하길래 황급히 손사래를 치고 한발 물러섰다. 물병을 내려놓은 아저씨는 어기적어기적 철망 쪽으로 걸어가더니 바지를 내리고 오줌을 싼다. 세찬 오줌 줄기가 땅바닥을 때리는 소리를 들으며 나는 목장갑을 끼고 손수건으로 입과 코를 가린 뒤, 오함마의 손잡이를 끌고 오전에 부수다 만 벽을 향해 다가갔다. 곡괭이질과 함마질의 원리는 비슷하다. 팔 힘이나 어깨 힘으로 치는 것이 아니다. 곡괭이나 함마가 그리는 포물선의 운동 에너지를 한 점에 모으는 것이다. 그래서 요령 없는 근육질 젊은이보다 팔다리는 가늘고 배만 나온 아저씨가 훨씬 더 벽을 잘 부술 수도 있다. 물론 무거운 오함마를 휘두르기 위해서는 기본적인 근력이 필요하다. 힘이 없으면 겨냥한 곳이 아닌 엉뚱한 곳을 치고 그 충격은 고스란히 관절이 받는다. 어깨나 팔꿈치를 다칠 수도 있다.

 

   

(하나. 둘.) 퍽! 부스스. (하나. 둘.) 퍽! 부스스. 속으로 구령을 붙여가면서 함마를 휘두르는데 좀처럼 힘이 한 점에 모이질 않는다. 그러니 벽도 금이 가거나 부서지지 않고, 표면만 깨지면서 가루가 떨어진다. 요령을 익히려면 더 많이 동작을 반복해야 하는 걸까? 나는 재능이 없는 걸까? 어쨌거나 힘으로라도 이 벽을 부수고 만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장씨 아저씨가 쯧쯧 혀를 차며 다가온다.

 

   

"아야. 비켜봐야"

 

   

딱 봐도 나보다 왜소한 체격의 아저씨는 내 것보다 더 크고 무거운 오함마를 끌고 와서 휘둘렀다. 쩡! 마치 벽이 함마를 빨아들이는 것 같은 느낌과 함께 벽에 금이 간다. 쩡! 정확하게 같은 자리를 가격하니 앞서 생긴 금이 더 멀리 뻗어갔다. 퍽! 와르르. 마지막으로 한 번 더 같은 자리를 때리니, 큰 벽돌 조각들이 우루루 무너져 내렸다.

 

 

나보다 동작도 작고, 그리 큰 힘을 쓰는 듯 보이지도 않는데 내가 열 번 친 것보다 더 크게 무너졌다. 아저씨는 다시 혀를 끌끌 차면서 나를 한번 흘겨보고는 반대편 벽을 향해 터벅터벅 걸었다. 질질 끌고 가는 오함마의 자국을 따라가다가 바닥에서 뭔가 햇빛에 반사되어 반짝이는 걸 보았다. 다가가 주워보니 작은 금속 조각이었다. 뒤집어보니 무슨 요정이거나 마법공주의 지팡이 모양이 그려져 있었다. 아이들 가방에 장식으로 달려있다가 떨어졌을 것이다. 과연 조그만 이 마법 지팡이가 여기에 떨어진 지 얼마나 되었을까? 이 학교가 폐교되기 전이었을 테니, 벌써 여러 해가 흘렀겠지, 그때 여기서 이걸 잃어버린 아이는 지금쯤 훌쩍 자라있겠구나.

 

  

몇 번 휘두르지 않았는데, 벌써 지쳐버려 아이스박스에서 물을 꺼내 마시며 잠시 쭈그려 앉았다. 아저씨도 저쪽에서 잠시 함마를 내려놓고 담배를 피워 물었다. 점심시간 동안 잠시 말랐던 옷이 다시 땀으로 흠뻑 젖었다. 포크레인이 잠시 작업하면 끝날 일일 텐데, 왜 우린 이 더운 날 이렇게 땀을 빼고 있어야 하는 걸까? 이 작은 창고 하나를 굳이 부수는 이유는 뭘까? 내 노동은 과연 무엇을 위한 것일까? 궁금한 점은 많았지만, 우리에게 창고를 부수라고 지시하고 떠난 사내를 다시 만날 일은 없을 것이다. 일을 끝내고 돌아가면 일당은 나중에 인력사무실에서 받을 테니까.

 

   

"어여 해야. 쫌 이쓰먼 트럭이 올테니께"

 

   

한두 시간 후면 철거된 벽돌과 콘크리트 덩어리를 치우러 트럭이 올 것이고, 우린 해가 떨어지기 전에 이 작은 창고가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싹 치워놓고 돌아가야 한다. 뜀틀과 쿠션, 축구공, 배구공 따위가 들어 있었을 작은 창고는 나와 아저씨의 함마질에 사라질 것이다. 누군가의 낙서와 누군가의 손때와 누군가의 추억이 조금씩 무너지고 부서지고 있었다. 바람 한 점 없던 그 무더운 여름날의 막노동으로 나는 일당 6만 5천 원을 받았고, 양쪽 손바닥에 물집이 생겼으며, 이틀간 꼼짝도 못하고 누워있어야만 했으며, 등과 허리에 파스를 덕지덕지 붙여야 했다. 아, 그리고 이때 생긴 땀띠로 여름 내내 고생했단 것도 기억해두어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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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아 2013-07-05 15: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게 언제적 일이에요??

감은빛 2013-07-08 16:47   좋아요 0 | URL
언제적 일일까요?
사실 정확하게 '있었던' 일을 쓴 건 아니예요.
약간의 상상이 더해졌습니다.

모티브가 된 기억은 대략 17~18년 전의 일입니다.

그런데 언제적 일인지 물으신 이유가 있으신가요?

마노아 2013-07-08 21:33   좋아요 0 | URL
내용이랑 일당을 봤을 때 꽤 오래 전 일 같아 보여서요. 근육통 좀 나아지셨습니까? 먹는 근육통 약 광고를 오늘 봤는데 이거 먹으면 기껏 운동해서 만든 근육이 도로 사라지는 것 아닌가 모르겠어요.

감은빛 2013-07-09 11:39   좋아요 0 | URL
그걸 알아보셨군요.
요즘은 일당이 얼마나 하려나요?
막노동 안해본 지 제법 오래되어서 잘 모르겠네요.
그런데 실제로는 일당이 그리 많이 올랐을 것 같지도 않다는 생각이 듭니다.
막노동은 아니지만,
택배회사 물류창고에서 일하는 후배 일당이 7만원이라고 들었어요.

근육통은 어제 오후 글을 쓰는 시점에 많이 나았습니다.
그러나 어제 저녁에 또 녹초가 되도록 운동을 했기 때문에
오늘 저녁이나 내일 오전에 또 근육통이 몰려오겠지요.

먹는 약도 있군요.
평소 왠만큼 아파도 약은 안먹는 편이라 그런 것도 있는 줄은 몰랐네요.

qualia 2013-07-11 23:01   좋아요 0 | URL
요즘 막노동판 일당 9~10만원 정도 하죠. 그러니까 이건 별다른 기술이 필요없는 잡일의 기본 일당이죠. 지방에 따라 1~2만원 정도 차이가 있고요. 용역 회사(인력 사무소)를 통해 일 나가면, 대개 1~2만원 떼고 8만원 안팎 받을 겁니다.

철거일 나가서 함마질, “뿌레카”질 같은 거 하면, 힘든 일이기 때문에 12~15만원 정도 받고요.

용접, 미장, 조적 같은 기공일은 13~15만원 정도고요. 용접일은 사람이 귀할 때는 20만원도 받을 때가 있다고 하더군요.

저는 청주에 사는데요. 지방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겠지요.

감은빛 님의 글 「어느 더운 여름날」은 마치 제 어느 여름날을 그대로 묘사해놓은 듯하군요. 정말 제 추억 하나를 읽는 것 같아 기분이 묘했습니다. 정말 좋은 글 감사하게 잘 읽었습니다.

(2013-07-11 20:21)

감은빛 2013-07-12 11:29   좋아요 0 | URL
qualia 님, 요즘은 일당이 제법 올랐군요!
약 17년 전쯤에 저는 잡일은 4만5천 ~ 5만원 쯤 받았구요.
등짐을 지거나 함마질을 하면 6만 5천원 쯤 받았어요.
물론 말씀하신대로 인력사무소 수수료를 빼구요.

일당을 이렇게 잘 알고 계신 걸 보니,
막노동 일을 하고 계신가봐요?
여름에는 무척 힘드시겠어요.
요즘은 장마철이라 또 일이 별로 없겠네요.

공감해주시고 칭찬해주셔서 고맙습니다!

비로그인 2013-07-05 23: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까까진 공감을 누르지 않을 수없는 이유가 수두룩했는데, 그새 다 까먹었어요..

감은빛 2013-07-08 16:49   좋아요 0 | URL
그새 다 잊으셨다면 그닥 공감을 하지 못한 것이 아닐까 합니다.
수두록 했다는 그 이유들이 저도 궁금하네요.
혹 다시 생각나셨다면 알려주세요. ^^
말씀 남겨주셔서 고맙습니다!

따라쟁이 2013-07-13 10: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란 여자는, 이 글에 망설임 없이 공감을 누를 수 있는 그런여자였군요.

으흠,
다시 여름이에요, 그렇죠?

감은빛 2013-07-15 15:07   좋아요 0 | URL
네, 여름이 한창이고, 장마가 한창이죠! ^^
 

 

나는 사람들을 웃기는 재능은 별로 없다. 그래서 종종 아쉽다는 생각이 든다. 어느 모임을 진행하거나, 공식적인 행사에서 사회를 볼 때 유머 감각이 좀 있었다면 훨씬 더 매끄럽고 재미있게 진행했을 텐데 라는 생각이 든다. 많은 사람들이 재밌는 사람, 유쾌한 사람에게 호감을 느낀다.. 이건 애를 쓴다고 될 일은 아닌 것 같다. 가끔 뜻하지 않게 사람들을 빵 터뜨린 적이 몇 번 있었는데, 뜻하지 않았다는 건 말그대로 실수였다는 뜻이다.

 

서너달 전 녹색당 대의원으로 추첨되어(녹색당은 우리나라 정당 역사상 최초로 100% 추첨 대의원 대회를 성공적으로 마쳤다!) 대의원대회에 참여했다. 대회 막바지에 발언 신청을 했고, 마이크를 전달받아 말을 시작할 때, 나도 모르게 "여보세요!" 라고 말해버렸다. 순간 전국에서 모여든 150여 명의 대의원들이 일제히 웃음을 터뜨렸다. 거기에 회의를 진행하던 대의원회 의장님께서 내게 "생각지도 못한 웃음을 주셔서 고맙습니다. 제가 많이 배워야겠습니다."라고 말해서 또 한번 모두를 웃겼다. 의도치 않은 실수로 귀 끝까지 빨갛게 변혀버린 나는 심호흡을 몇 번 하고서 애초에 하려던 발언을 이어갔다. 너무 정신이 없어서 평소처럼 차분하게 말하지 못했다. 진정시키려 애를 써도 자꾸만 목소리는 떨렸고, 입은 발언을 하고 있는데, 머리 속에서는 자꾸 아까 왜 '여보세요'라고 했을까를 곱씹고 있었다.

 

또 한번은 술자리에서 있었던 일이다. 집에 책이 많고, 전혀 정리가 되어 있지 않다는 얘길 하고 있었다. 우리 집에 한번 와본 적이 있던 지인이 격하게 공감하면서 그 집은 진짜 책 정리가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얼마나 공감했으면 그렇게 격한 리액션을 보였겠는가. 그때 옆에 있던 다른 사람이 "그럼, 책을 기증하면 어떠냐?"는 제안을 했는데, 즉각적으로 나온 내 대답이 "책을 읽었어야 기증하죠!" 였다. 이때도 자리에 있던 열 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모두 웃음을 터뜨렸다. 이 웃음은 좀 뜻밖이었는데, 이 말은 내 솔직한 심정으로 그닥 실수를 한 것도 아닌데, 사람들이 웃었다. 사실 그 많은 책들 중에 다 읽은 책을 꼽으라면 3분의 1도 안될 것이다. 그리고 이건 책 욕심을 드러내는 말인 것 같아서 덧붙이지 않았지만, 읽은 책들 중에서 좋은 책은 나중에 찾아 읽기 위해서 기증하거나 버리지 못한다.

 

지난 달에 집주인이 계약기간이 다 되었으니 집을 비워달라고 전화를 걸었다. 전세금을 올려달라는 말은 꺼내지도 않았다. 애초에 비가 많이 내리면 베란다에 물이 새는 문제를 고쳐주기로 하고 입주했는데, 계약기간 2년이 다 되도록 고쳐주지도 않았고, 화장실과 주방에 생기는 문제 등을 사는 사람이 알아서 고치라고 하는 등 집주인으로서의 의무를 지키지 않았던 사람이다. 솔직히 우리 가족 입장에서도 이 집이 좋은 건 아니지만, 이사는 정말 힘들고 괴로운 일이다. 당장 이사갈 집을 알아보러 불볕 더위에 이집 저집 돌아다녀야 하고, 이사짐을 줄이기 위해 집안 구석구석 쌓인 물건들을 정리해야 한다.

 

그 중에서도 가장 큰 짐은 바로 책이다. 이 수많은 책들을 과연 어떻게 정리할 것인가? 아내와 내가 우선 버리거나 팔 책들을 추려봤다. 읽은 책 중에서 소장하지 않아도 될 책들과 앞으로 읽지 않을 것 같은 책들을 100권 가까이 꺼냈다. 이 책들을 어찌할까 고민하다가 알라딘 중고 매장이 떠올랐다. 생긴지 얼마 안되었을 무렵 친구 따라 갔다가 친구가 책 파는 모습을 보고 나도 책을 판 기억이 있었다. 이렇게 많이 가져가도 다 사줄까? 걱정이 되기도 했지만 일단 가져가보기로 했다.

 

책이 좀 들어가는 큰 가방 여러개에 책을 나눠담고 차에 실었다. 알라딘 중고서점 종로점이 있는 건물 뒤 주차장에 차를 대고, 가방들을 메었다. 한번에 못 나를 줄 알았는데, 억지로 메어보니 가능했다. 엄청 무거웠지만 아이의 손을 붙들고 서점으로 들어갔다. 서점 직원은 꼼꼼하게 책을 살피면서 분류했다. 예전에는 그런 말을 들은 기억이 없는데, '증정' 도장이 찍힌 책은 판매할 수 없단다. 그리고 색이 많이 바랜 책과 책장이 젖은 듯한 흔적이 남은 책들도 빠졌다. 좀 많이 낡은 책들과 증정 도장이 찍힌 책들은 다시 돌려받았다. 계산을 하고 보니 60여 권을 팔고, 30여 권을 다시 갖고 왔다. 책의 가격은 제각각이었다. 대개는 1,000원이었지만, 정말 괜찮은 책인데 500원인 책들도 있었고, 내용이 형편없는 책은 2,000원이 넘기도 했다.

 

책 정리는 이제 막 시작한 단계다. 아직 정리 못한 책들이 산더미처럼 쌓였다. 그런데 조금이라도 관심을 두고 있는 책들은 처분하기가 아깝다. 그래도 이사 날짜가 다가오기 전까지 책을 정리해야 한다. 버리던, 기증하던, 팔던 책을 줄이지 않으면 안된다!

 

그런데 그 와중에 나는 또 책을 사고 있다. ㅠ.ㅠ

 

 

 

 

 

 

 

 

 

 

 

 

 

 

 

 

참고로 이 글은 2013년 5월 29일 오전 11시 경 쓰기 시작해서 7월 3일 오후 4시 경 완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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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잘라 2013-07-03 16: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은빛님! 공감 백개 찍고 갑니다. 특히 <그 와중에 나는 또 책을 사고 있다.>에 백만개..! ^^;

감은빛 2013-07-04 02:57   좋아요 0 | URL
백개 씩이나!
저도 포핀스님 글 읽으면 격하게 공감하는 글이 많아요! ^^

야클 2013-07-03 20: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공감 100%의 글이네요. ㅎㅎ

감은빛 2013-07-04 02:58   좋아요 0 | URL
야클님의 100% 공감이 정말 고맙습니다! ^^

마노아 2013-07-03 23: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온라인으로 파세요. 택배시가님이 직접 집으로 방문하십니다. 만원 이상이면 배송비 없구요. 판매 안 되는 책도 미리 알 수 있어요. 100권이라니... 엄청 고생하셨어요.ㅜ.ㅜ

감은빛 2013-07-04 02:59   좋아요 0 | URL
온라인으로도 팔 수 있군요.
몰랐어요! 곧 대대적으로 책 정리를 해야할텐데 그때 참고하겠습니다.
알려주셔서 고맙습니다!

순오기 2013-07-04 00: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격하게 공감합니다~ ^^
우리집 도서관도 요즘 도서등록하느라 2명이 알바합니다.
두 권씩 있는 책 중에 몇 권은 푸른길 기차도서관에 기증하려고 따로 빼두었고요.
더위에 이사하려면 힘드시겠어요.ㅠ

감은빛 2013-07-04 03:01   좋아요 0 | URL
한창 더울때 이사라서 정말 걱정이 많아요!
이집에 이사오는 날에도 정말 몇 십년만의 더위니 어쩌니 말이 많았거든요.

도서 등록이 정말 쉽지 않은 일입니다.
저희 집에 정리 안된 책들을 보면 한 숨 밖에 안나오네요.
순오기님의 격한 공감과 댓글 정말 큰 힘이 됩니다.
고맙습니다!

그렇게혜윰 2013-07-04 07: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많은분들이 공감하실 내용이네요!

감은빛 2013-07-08 16:40   좋아요 0 | URL
네, 확실히 알라딘 서재에 계신 분들은 대부분 공감해주시네요!
문제는 제 주위 사람들 중에는 절대 공감 못하는 사람이 더 많더라구요.

단발머리 2013-07-04 08: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너무 공감되는데요.
감은빛님, 이사의 하일라이트는 역시 '책정리'이지요.
더운 날씨에 고생하셨네요.

힘내세요!!!

감은빛 2013-07-08 16:42   좋아요 0 | URL
이사의 하이라이트가 책정리라는 말씀 백배 공감합니다.
그동안 2년마다 이사다니면서 제일 지겨운 일이 책 정리였답니다.
그 짓을 또 해야하다니!
벌써부터 기운이 빠지네요.

페크pek0501 2013-07-04 14: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런데 그 와중에 나는 또 책을 사고 있다. ㅠ.ㅠ"
공감 덩어리의 글이라서 웃음이 나옵니다. ㅋㅋ


감은빛 2013-07-08 16:43   좋아요 0 | URL
공감하고 웃어주셔서 고맙습니다! ^^

카스피 2013-07-04 20: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감은빛님 글에 격하게 공감합니다용^^
저도 이사가면서 다른 짐은 없는 책박스가 수십권이 나와서 이사짐센터 직원한테 한소리 들은 기억이 나네요.
책이 많으면 제일 힘든것이 바로 이사때죠.
그나저나 알라딘 중고서점에 책을 파시려면 책의 내용이 아니라 책의 발행년도와 책 상태가 가장 중요합니다.일단 간행된지 일년이 안되고 책이 신동스러우면 정가의 25%선에서 매입 가능합니다.일단 알라딘 중고서점에 책을 파시려면 책내용은 별로지만 신동스런 책을 파시는것이 책을 줄이는 지름길일것 같습니다.

감은빛 2013-07-08 16:45   좋아요 0 | URL
카스피님께서도 공감해주시다니!
저희도 다른 짐은 별로 없는데, 아이들의 잡다한 짐과 책이 거의 대부분입니다.
매번 이사할 때마다 책 때문에 이사짐 센터 직원들이 혀를 내두르더라구요.

중고서점 이용 팁을 알려주셔서 고맙습니다.
평소에는 거의 이용할 일이 없는데,
이렇게 이사할 때는 한번씩 가볼만 한 것 같아요.
그런데 정말 책의 질과 관계없이 가격이 너무 낮은 건 좀 기분이 그렇더라구요.
 

 

드넓은 해변에서 수많은 게들이 나타나 저마다 춤을 추다가 일제히 사라지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면, 그 일사불란하고 경이로운 모습이 오래도록 잊히지 않을 것이다. 대략 10여 년 전 낙동강 하구 을숙도 아래 작은 섬인 대마등으로 쓰레기를 치우러 간 적이 있었다. 사람이 살지 않는 작은 섬의 모래사장은 강과 해변에서 떠내려온 온갖 쓰레기들로 가득했다.

 

낮 동안 섬을 돌면서 열심히 쓰레기를 치우고, 늦은 오후 무렵 이제는 깨끗해진 해변 한 쪽에서 넓은 모래 갯벌을 가득 메운 콩게들을 만났다. 콩게는 주위를 경계하며 모래 속에서 나타났다가 아무런 움직임이 없다는 것을 감지하고는 저마다 춤을 추기 시작했다. 마치 만세를 부르듯 집게발을 들어 올렸다가 내려놓는(위아래로 흔드는) 그 행동이 우리 눈에 춤을 추는 것처럼 보이지만, 자신의 영역을 나타내는 행동이라고 한다. 셀 수 없이 많은 콩게가 그렇게 한동안 열심히 춤을 추다가 누군가 발을 한번 굴리기만 해도 순식간에 모래 갯벌 속으로 사라진다. 언제 그 수많은 콩게가 춤을 추었나 싶을 만큼 텅 빈 해변이 되어버린다. 다시 한참을 가만히 숨죽이고 기다리면 콩게들은 하나둘씩 올라오기 시작한다. 이윽고 다시 녀석들의 춤이 시작된다.

 

 

게들은 어떻게 순식간에 일제히 사라질 수 있을까? 게는 왜 옆으로 걸을까? 가만 생각해보면 우리는 게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다. 게의 행동생태학을 연구한 이화여대 에코과학 연구소 김태원 연구원 덕분에 게가 옆으로 걷는 능력과 집을 찾아가는 능력 등 게에 대해 우리가 알지 못했던 흥미로운 사실들을 알게 되었다. 게가 옆으로 걷는 이유는 포식자로부터 빨리 도망가기 위해서다. 게가 먹이 활동을 하다가 포식자를 발견하면 재빨리 집으로 돌아가거나 포식자의 반대 방향으로 도망가 갯벌 속으로 숨어야 한다. 이때 몸을 돌려 앞으로 도망가려면 더욱 시간이 걸린다. 게는 그 자세 그대로 빠르게 옆으로 이동하여 갯벌 속으로 숨는다. 김태원 연구원은 이를 설명할 때 야구에서 루상에 나가있는 주자가 빠르게 다음 루로 진루하거나 되돌아가기 위해 게걸음처럼 옆으로 움직이며 투수를 주시하는 동작을 예로 든다. 정말 이해하기 쉬운 설명이다. 그런데 모든 게가 옆으로 걷는 것은 아니란다. 밤톨처럼 생긴 밤게는 앞뒤로 걷는데, 걷는다기보다는 기어 다니는 것처럼 느리게 움직인다고 한다. 물론 이 녀석도 포식자를 발견하면 재빨리 진흙 속으로 숨는다.

 

 

그럼 게는 어떻게 포식자를 알아볼까? 게는 자신의 키 높이(즉 눈높이)의 7~8배(약 10cm 가량)밖에 볼 수 없다. 이때 자신의 키보다 낮으면 동료나 먹이로 인식하고, 그보다 더 크면 무조건 포식자로 인식한단다. 그땐 알다시피 순식간에 사라지는 것이다. 그런데 게들은 어떻게 빠르게 자기 집을 찾아갈까? 김태원 연구원은 놀랍게도 게가 자신의 집 위치를 정확하게 기억한단다. 게를 오랫동안 연구한 과학자들은 그 방법을 어느 정도 알아냈다. 게가 집을 찾는 방법의 첫 번째는 발로 걸어간 거리와 횟수를 기억한다는 것이다. 파나마 나오스 섬의 쿨레브라 해안에서 농게를 연구하던 김태원 연구원은 간단한 실험을 통해 이를 증명했다. 농게가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미끄럼판을 설치했는데, 미끄럼판을 지나며 제자리걸음을 여러 번 하게 된 농게는 원래 집보다 훨씬 못 미친 곳에서 집을 찾아 맴돌았다. 두 번째 특징은 집을 나가 활동하는 농게는 거의 항상 몸의 장축을 집을 향해 두고 있다고 한다. 아무렇게나 돌아다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언제라도 집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늘 준비하고 있다는 뜻이다.

 

이렇게 방향은 집을 향하고, 자신이 집에서 걸어온 만큼의 거리와 횟수를 기억해두고 있기 때문에 게는 순식간에 집으로 돌아가 숨을 수 있다. 한편 게는 집을 쉽게 찾기 위해 흙을 쌓아 수직 구조물을 만들어 놓기도 한다고 한다. 생각보다 훨씬 똑똑한 녀석들이다!

 

 

 

뭐든 관심을 두고 자세히 살펴보면 다양한 재밌는 사실들을 발견할 수 있다. 새 연구자인 국립환경과학원 박진영 박사는 새를 조사하기 위해 새의 먹이인 칠게를 망원경으로 살폈는데, 이상하게 하나는 집게발을 앞으로 들어 까딱거리고, 하나는 위로 쳐들어 휘젓는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과시행동이 분명한데, 왜 같은 종에서 다른 과시 행동이 나타나는지 궁금했다. 게다가 같은 종 수컷끼리 서로 위협하지 않는 것도 이상하게 여겼다. 그때가 1988년쯤이었는데, 당시에는 우리나라에 게의 행동을 연구하는 연구자가 없었고, 분류학자들은 잘 알아듣지 못했다고 한다. 그런데 나중에 일본 학자가 칠게를 연구해서 신종으로 발표했다는 사실을 알았다고 한다. 박진영 박사와 대화를 나누던 김태원 연구원은 새를 연구하는 분이 칠게의 종이 다르다는 사실을 그렇게 일찍 발견한 것이 놀랍다고 감탄했다. 일본의 와다 교수가 칠게의 행동을 언급하며 분류학적으로 재연구가 필요하다는 발표를 한 것이 1989년도였다고 한다. 그리고 90년대 초에 분류학자와 함께 신종으로 발표했고, 집게발을 만세 하듯 흔든다고 학명도 '반자이'라고 붙였단다. 만약 당시 박진영 박사의 말을 제대로 이해하고 조사한 연구자가 있었다면 일본 학자가 아닌 우리 학자가 신종을 발표할 수도 있었을 텐데, 그리고 '반자이'가 아닌 '만세'를 학명으로 붙일 수도 있었을 텐데. 지나간 일을 갖고 가정을 해봐야 아무 소용없다는 것을 잘 알지만 그래도 아쉬움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이 이야기에 등장하는 박진영 박사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새 도감인 [한국의 새]의 공저자이고, 여러 권의 새와 관련된 책의 감수를 맡았으며, 최근에는 [한국의 도요물떼새]라는 책을 공저자들과 함께 펴냈다. 그리고 저자로 이름을 올리지는 않았지만, [멸종위기의 새]를 출간하는 과정에도 큰 힘을 보탰다. 놀라운 관찰력과 통찰력으로 앞으로도 새에 대한 흥미로운 사실들을 많이 알려주리라 기대해본다.

 

 

자연과학 책들은 시장이 무척 작다. 즉, 많이 팔리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중에서도 도감은 특히나 판매가 부진하다. 그런데 도감 중에서도 새 도감은 더더욱 안 팔린다고 한다. 그러나 판매가 되지 않아도 이 땅에 사는 생물들에 대한 기초자료는 필요하다. 우리가 하늘을 나는 새에 대해 얼마나 알까? 새들의 분류와 생태에 대해 미처 다 알기도 전에 환경오염과 파괴로 인해 사라져가는 새들이 많다. 앞서 살펴본 게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그나마 새에 대해서는 연구자들도 제법 있고, 탐조인들도 많아서 점점 더 많은 사실들을 알 수 있겠지만, 게에 대해서는 정말 아는 바가 별로 없다. 새만금 갯벌이 사라지면서 칠게가 사라졌듯이, 갯벌이 파괴되면 게는 점점 사라질 것이다. 더 늦기 전에 게들과 새들이 사라지는 것을 막고, 그들에 대한 흥미로운 사실들을 좀 더 많이 알아내면 좋겠다.

 

 

 

 

 

 

 

 

 

 

 

 

 

 

 

 

 

 

 

 

 

 

 

 

 

 

 

 

 

 

 

 

 

 

 

 

 

 

 

 

 

※ 참고자료

월간 자연과 생태 10호(2007년 7월ㆍ8월호)

월간 자연과 생태 18호(2008년 11월ㆍ12월호)

월간 자연과 생태 17호(2008년 9월ㆍ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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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2013-06-11 22: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국 도서관 + 전국 초중고등학교, 이렇게 두 곳에서 한 권씩 사 주면 좋을 텐데요.
생각해 보면, 도서관과 초중고등학교에는 이러한 책 꼭 있어야 하잖아요.
도서관하고 학교에서 1권씩만 사 주어도 2만 권쯤 찍어서 보급할 수 있으니
(그런데 학교 숫자가 2만 곳이 될는지는... @.@)
도감 값도 한결 값싸게 붙일 수 있고,
우리 같은 보통사람도 더 손쉽게 장만할 수 있으리라 생각해요.

사진책에서도 '새를 찍는 사진책'은 참 인기가 없기도 합니다...
환경책과 생태책과 도감뿐 아니라...

감은빛 2013-06-12 10:42   좋아요 0 | URL
그런데 공공도서관과 학교도서관에서 오히려 도감은 더 안사는 듯 합니다.
베스트셀러는 한번에 여러권씩 구매하지만 말이죠.
말씀하신 수량 정도 나간다면 가격도 훨씬 더 내려가겠죠.
그렇게만 된다면 더 다양한 자연과학 책들이 출간 기회를 얻을 수 있을 겁니다.
책을 내고 싶어도 시장이 없어서 꿈도 못 꾸는 책도 많거든요.
 
그대, 강정 - 작가, 제주와 연애하다
북멘토 편집부 엮음 / 북멘토(도서출판) / 2013년 4월
평점 :
절판


얼마 전 지역에서 함께 활동하는 이들과 간 여행에서 잊고 있던 노래를 들었다. [평화가 무엇이냐?]라는 제목의 노래로 2004년 평택 반전평화축제에서 문정현 신부님께서 하신 말씀에 평화활동가이자 가수인 조약골씨가 곡을 붙여 만든 노래다.

 

“공장에서 쫓겨난 노동자가 원직복직하는 것이 평화. 두꺼비 맹꽁이 도롱뇽이 서식처 잃지 않는 것이 평화. 가고 싶은 곳을 장애인도 갈 수 있게 하는 것이 평화. 이 땅을 일궈온 농민들이 더 이상 빼앗기지 않는 것이 평화. 성매매 성폭력 성차별도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세상. 군대와 전쟁이 없는 세상 신나게 노래 부르는 것이 평화.”

 

가사를 보면 노동, 여성, 장애, 환경 등 이 사회가 안고 있는 대부분의 차별과 불평등의 문제를 언급하고 있다. 특히 “이 땅을 일궈온 농민들이” 부분에서 당시 평택에서 미군기지 때문에 내쫓겨나게 된 농민들을 이야기 하고 있다. 단순한 노래 가사 하나에 많은 의미가 담겨 있고, 따라부르기 쉬워서 참 잘 만든 노래라는 생각이 든다. 평택 미군기지 확장반대 활동 이후로 잊고 지내다가 뜻하지 않게 다시 듣게 된 그날, 밤늦게까지 기타를 튕기며 이 노래를 여러 번 불렀다. 노래를 부르며 자꾸만 떠오르는 이름이 문정현과 강정이었다.

 

문정현 신부님을 떠올리면 몇 개의 지역 이름이 떠오른다. 길 위의 신부라고 명성에 걸맞게 부안, 평택, 용산, 강정 등의 지역이 차례로 생각난다. 새만금 간척사업 반대운동, 부안 핵폐기장 반대운동, 평택 미군기지확장 반대운동, 용산 철거민 참사 대책위 활동, 강정마을 해군기지 반대운동 등 노무현 대통령 때부터 이명박 대통령을 거쳐 지금 박근혜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긴 시간을 소외되고 차별받고 있는 이들 곁에서 함께 싸우고 계신 분이다. 위에 언급한 지역들중에서 지금도 군대(해군)와 경찰이 일상적으로 폭력을 휘두르고, 아름답고 훌륭한 자연환경을 무차별적으로 파괴하는 곳이 있다. 바로 강정마을이다.

 

무려 50명의 작가(43인의 글작가, 7인의 사진작가)가 강정마을과 구럼비 바위에 대한 애정을 담아 만든 연애편지인 [그대, 강정]을 읽었다. 눈물나게 아름다운 글과 사진들이 담겨 있었다. 정부와 제주특별자치도와 해군이 공사를 강행하기 전에도 강정마을 앞바다 범섬 일대는 눈부시게 아름다운 곳이었다. 유네스코가 생물권 보전지역으로 지정(2002)했으며, 해양수산부에서 해양보호구역으로 지정(2002)했고, 환경부가 생태계보전지역으로 지정(2004)했으며, 특히 이곳의 연산호 군락지는 문화재청이 천연기념물 442호로 지정(2004)했을 정도다. 그러나 이제 강정마을 앞바다는 전국 곳곳에서 몰려온 수많은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활동가가 되어 평화를 위해 싸우는 아름다운 연대의 장이 되었다. 과거 평택 대추리가 그랬듯이 이젠 강정마을이 평화의 상징이 된 것이다.

 

강정을 포함한 서귀포 앞바다는 강한 바람과 조류 때문에 항구로 적절치 않다. 실제로 작년 여름 태풍 볼라벤은 해군이 공사를 위해 투하한 케이슨 7개를 무너뜨렸다. 케이슨은 길이 38m, 너비 25m, 높이 20.5m에 1개 무게가 8800t에 이르는 대형 구조물이다. 이번에 파손된 케이슨은 하나 당 대략 50억 가량의 제작비가 든다고 하는데, 350여억의 혈세가 강정 앞바다에 수장된 셈이다.

 

한편 강장 앞바다의 파괴는 주민들의 문화와 생활만을 파괴하는 것이 아니다. 그 곳에서 살아가던 생물들을 죽이는 행위다. 앞서 말했듯이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연산호를 비롯하여 멸종위기종인 붉은발말똥게, 기수갈고둥, 나팔고둥 등 수많은 생물들이 살아가는 터전이다. 해군기지 공사가 진행되고, 구럼비 바위를 화약으로 폭파하면서 얼마나 많은 생물들에게 피해를 주었을지 상상하기 조차 힘들다.

 

사실 2012년 3월 7일 구럼비 발파가 시작된 이후 시간이 많이 지나면서 한동안 강정마을을 잊고 지냈다. 그러나 주위 많은 사람들은 여전히 ‘강정앓이’중이었다. SNS로 강정의 상황을 공유하고, 귤을 팔아 후원금을 모으고, 평화대행진에 참여하는 등 각자의 자리에서 묵묵히 행동하고 있었다. 이 책에 참여한 50명의 작가들처럼 나도 강정 앞바다와 구럼비 바위에게 연애편지를 하나 써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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