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사람들을 웃기는 재능은 별로 없다. 그래서 종종 아쉽다는 생각이 든다. 어느 모임을 진행하거나, 공식적인 행사에서 사회를 볼 때 유머 감각이 좀 있었다면 훨씬 더 매끄럽고 재미있게 진행했을 텐데 라는 생각이 든다. 많은 사람들이 재밌는 사람, 유쾌한 사람에게 호감을 느낀다.. 이건 애를 쓴다고 될 일은 아닌 것 같다. 가끔 뜻하지 않게 사람들을 빵 터뜨린 적이 몇 번 있었는데, 뜻하지 않았다는 건 말그대로 실수였다는 뜻이다.
서너달 전 녹색당 대의원으로 추첨되어(녹색당은 우리나라 정당 역사상 최초로 100% 추첨 대의원 대회를 성공적으로 마쳤다!) 대의원대회에 참여했다. 대회 막바지에 발언 신청을 했고, 마이크를 전달받아 말을 시작할 때, 나도 모르게 "여보세요!" 라고 말해버렸다. 순간 전국에서 모여든 150여 명의 대의원들이 일제히 웃음을 터뜨렸다. 거기에 회의를 진행하던 대의원회 의장님께서 내게 "생각지도 못한 웃음을 주셔서 고맙습니다. 제가 많이 배워야겠습니다."라고 말해서 또 한번 모두를 웃겼다. 의도치 않은 실수로 귀 끝까지 빨갛게 변혀버린 나는 심호흡을 몇 번 하고서 애초에 하려던 발언을 이어갔다. 너무 정신이 없어서 평소처럼 차분하게 말하지 못했다. 진정시키려 애를 써도 자꾸만 목소리는 떨렸고, 입은 발언을 하고 있는데, 머리 속에서는 자꾸 아까 왜 '여보세요'라고 했을까를 곱씹고 있었다.
또 한번은 술자리에서 있었던 일이다. 집에 책이 많고, 전혀 정리가 되어 있지 않다는 얘길 하고 있었다. 우리 집에 한번 와본 적이 있던 지인이 격하게 공감하면서 그 집은 진짜 책 정리가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얼마나 공감했으면 그렇게 격한 리액션을 보였겠는가. 그때 옆에 있던 다른 사람이 "그럼, 책을 기증하면 어떠냐?"는 제안을 했는데, 즉각적으로 나온 내 대답이 "책을 읽었어야 기증하죠!" 였다. 이때도 자리에 있던 열 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모두 웃음을 터뜨렸다. 이 웃음은 좀 뜻밖이었는데, 이 말은 내 솔직한 심정으로 그닥 실수를 한 것도 아닌데, 사람들이 웃었다. 사실 그 많은 책들 중에 다 읽은 책을 꼽으라면 3분의 1도 안될 것이다. 그리고 이건 책 욕심을 드러내는 말인 것 같아서 덧붙이지 않았지만, 읽은 책들 중에서 좋은 책은 나중에 찾아 읽기 위해서 기증하거나 버리지 못한다.
지난 달에 집주인이 계약기간이 다 되었으니 집을 비워달라고 전화를 걸었다. 전세금을 올려달라는 말은 꺼내지도 않았다. 애초에 비가 많이 내리면 베란다에 물이 새는 문제를 고쳐주기로 하고 입주했는데, 계약기간 2년이 다 되도록 고쳐주지도 않았고, 화장실과 주방에 생기는 문제 등을 사는 사람이 알아서 고치라고 하는 등 집주인으로서의 의무를 지키지 않았던 사람이다. 솔직히 우리 가족 입장에서도 이 집이 좋은 건 아니지만, 이사는 정말 힘들고 괴로운 일이다. 당장 이사갈 집을 알아보러 불볕 더위에 이집 저집 돌아다녀야 하고, 이사짐을 줄이기 위해 집안 구석구석 쌓인 물건들을 정리해야 한다.
그 중에서도 가장 큰 짐은 바로 책이다. 이 수많은 책들을 과연 어떻게 정리할 것인가? 아내와 내가 우선 버리거나 팔 책들을 추려봤다. 읽은 책 중에서 소장하지 않아도 될 책들과 앞으로 읽지 않을 것 같은 책들을 100권 가까이 꺼냈다. 이 책들을 어찌할까 고민하다가 알라딘 중고 매장이 떠올랐다. 생긴지 얼마 안되었을 무렵 친구 따라 갔다가 친구가 책 파는 모습을 보고 나도 책을 판 기억이 있었다. 이렇게 많이 가져가도 다 사줄까? 걱정이 되기도 했지만 일단 가져가보기로 했다.
책이 좀 들어가는 큰 가방 여러개에 책을 나눠담고 차에 실었다. 알라딘 중고서점 종로점이 있는 건물 뒤 주차장에 차를 대고, 가방들을 메었다. 한번에 못 나를 줄 알았는데, 억지로 메어보니 가능했다. 엄청 무거웠지만 아이의 손을 붙들고 서점으로 들어갔다. 서점 직원은 꼼꼼하게 책을 살피면서 분류했다. 예전에는 그런 말을 들은 기억이 없는데, '증정' 도장이 찍힌 책은 판매할 수 없단다. 그리고 색이 많이 바랜 책과 책장이 젖은 듯한 흔적이 남은 책들도 빠졌다. 좀 많이 낡은 책들과 증정 도장이 찍힌 책들은 다시 돌려받았다. 계산을 하고 보니 60여 권을 팔고, 30여 권을 다시 갖고 왔다. 책의 가격은 제각각이었다. 대개는 1,000원이었지만, 정말 괜찮은 책인데 500원인 책들도 있었고, 내용이 형편없는 책은 2,000원이 넘기도 했다.
책 정리는 이제 막 시작한 단계다. 아직 정리 못한 책들이 산더미처럼 쌓였다. 그런데 조금이라도 관심을 두고 있는 책들은 처분하기가 아깝다. 그래도 이사 날짜가 다가오기 전까지 책을 정리해야 한다. 버리던, 기증하던, 팔던 책을 줄이지 않으면 안된다!
그런데 그 와중에 나는 또 책을 사고 있다. ㅠ.ㅠ
참고로 이 글은 2013년 5월 29일 오전 11시 경 쓰기 시작해서 7월 3일 오후 4시 경 완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