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그러니까 제법 시간이 지난 얘기긴 하지만, 한때는 나도 제법 몸 좋다는 소릴 들었다. 헬쓰클럽 같은데를 다닌 적은 없다. 어릴 때 몇 번 친구따라 가서 운동하는 거 구경한 적은 있었다. 아령 드는 것 정도는 헬쓰클럽을 다니지 않아도 다 알 수 있고, 그 외에는 대부분 맨몸 운동을 했을 뿐이다. 사실 어려서부터 산을 자주 올랐고, 약수터에서 아저씨들 따라서 돌로 된 역기를 들었던 것이 내 체력과 근육을 만든 기초였을 것이다.

 

어쨌거나 기억에 남는 몇몇 여성들이 꽉 붙는 셔츠를 입은 내 몸에 관심을 많이 가졌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는 지금보다 좀 더 날씬하고, 근육이 좀 더 탄탄했지만, 보기에 좋을 정도였을 뿐, 몸이 썩 좋다거나 그런 상태는 아니었다. 한 후배는 자신의 애인 앞에서 늘 "오빠 몸 좋다!", "오빠 근육 좀 봐!"라고 말했는데, 질투를 유발하려는 것이었는지, 진심이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사실 애인이었던 그 친구가 체형이 더 컸고, 근육의 크기가 더 큰 편이었다. 그러니까 나는 날씬한 체형 덕분에 과대평가 된 편이었고, 그 친구는 덩치 때문에 상대적으로 과소평가 된 편이었다.

 

작년에 읽은 [남자는 힘이다]의 저자 맛스타드림은 이걸 근 선명도(definition)의 차이 때문이라고 했다. 날씬한 체형은 상대적으로 근 선명도가 좋아서 더 근육이 많아 보인다고 한다. 내 경우에 가을과 겨울에 만났던 사람을 여름에 다시 만나면 놀라는 모습을 몇 번 보았다. 그러니까 겉옷에 가려있을 때는 보이지 않지만, 여름에는 근 선명도 덕분에 나름 몸 좋다는 평가를 들을 수 있었던 것이다.

 

 

 

 

 

 

 

 

 

 

 

 

 

날씬한 체형과 근 선명도의 효능은 짧은 운동만으로도 나름 눈에 띄는 효과를 볼 수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해마다 여름이 다가올 무렵인 5월 말에서 7월 초 사이에 간헐적으로 생각날때마다 운동을 하곤 했다. 그래봐야 지속적이지 못한 응급처방 같은 운동이라 운동을 등한시 했던 십여 년 동안 몸은 지속적으로 망가져왔지만, 그래도 짧게 반짝 괜찮아 보이는 효과를 얻곤 했다. 도저히 더이상은 안되겠다고 생각한 것이 작년이었다. 물론 재작년에도 여름을 맞아, 이대로는 안된다. 다시 총각 시절의 그 몸매로 돌아가보고 싶다고 생각은 했지만, 늘 그렇듯이 생각만하고 운동은 지속적으로 안하고 술과 안주로 밤을 지새웠다.

 

작년에 가장 충격을 받았던 일은 그동안 무리없이 입어왔던 몸에 붙는 셔츠들을 더이상 입기 어렵다는 사실을 깨달았던 것이다. 뱃살이 대책없이 나와서 도저히 그 옷들을 입을 수 없었던 것이다! 아, 십여 년 전에 새겨졌던 '왕'자는 대체 어디로 갔단 말인가! 다시 식스팩을 되찾아야지 결심을 한 것이 작년 여름이었다. 가을과 겨울에 간헐적으로 운동을 하긴 했지만 역시 지속적이지 못했고, 그동안에도 꾸준히 술과 안주는 먹어왔다. 그나마 양을 좀 줄이긴 했다. 덕분에 뽈록 나온 배의 높이가 조금씩 낮아지긴 했지만, 아직 식스팩은 멀고 먼 나라의 얘기 같았다.

 

올해 여름이 다가올 무렵 나는 혼자 하는 운동에 한계를 깨닫고 있었다. 딱 정해놓은 시간과 규칙이 없으니 자꾸 운동을 빼먹게 되고, 또 다양한 운동법을 모르니 매번 같은 운동만 하는 것이 지겨워지고 있었다. 그때 접한 게 '크로스 핏'에 대한 얘기였다. 아마 그 전부터 여러번 들었을텐데, 그 전에는 의식하지 못하다가 혼자 하는 운동의 한계를 깨닫고 나서야 그 얘기가 귀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올해는 기필코 배에 있는 이 군살들과 작별을 고하리라. 큰 맘을 먹고 헬쓰클럽에 등록을 했다. 크로스 핏 수업이 저녁에 한 차례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헬쓰클럽이었다.

 

운동을 하러 간 첫날 깨달았다. 아, 나는 절대 몸이 좋거나, 힘이 좋은 편이 아니었구나. 앞서 맛스타드림이란 사람이 언급한 근 선명도의 개념도 읽을 때는 그냥 그렇구나 싶었는데, 이제는 몸으로 깨달을 수 있었다. 운동은 재미있었다. 집에서 맨손으로 하기 어려운 다양한 운동을 배우는 것도 재미있었다. 운동을 마치고 샤워를 하고 난 후의 그 상쾌함이 좋았고, 다음날 적당히 온 몸이 뻐근한 느낌이 좋았다.

 

그런데 지난 금요일에는 트레이너가 시키는 대로 하다가 좀 무리하게 운동을 했던 모양이다. 막상 그날은 괜찮았고, 토요일 오전에도 크게 불편하지 않았다. 토요일 저녁 무렵부터 허리와 등, 엉덩이와 허벅지가 불편하더니, 일요일 아침에는 허리를 굽히거나 앉지 못할 정도로 아팠다. 근육통을 이처럼 심하게 앓아본 기억이 별로 없었다. 몸이 아프니 입맛도 별로 없었다. 어제 오후 5시부터 시청 광장에서 '우리가 밀양이다'라는 탈핵 행사가 있었고, 거기에 녹색당 당원들과 함께 참석하기로 약속을 했는데, 도저히 몸을 움직이기가 어려워서 미안하다고 문자를 보냈다. 밤에 잠들기 전에는 출근할 일도 걱정이었다. 이렇게 꼼짝을 못해서야 어떻게 출근을 한단 말인가!

 

그러나 오늘 아침에는 한결 가뿐해진 느낌이 들었다. 아직까지 통증이 다 사라지지는 않았지만, 몸도 구부릴 수 있고, 앉을 수도 있게 되었다. 저 책에도 다음날 근육통을 느낄 정도로 운동하지 말라고 했는데, 앞으론 무리하지 말아야겠다. 이러다가 정말 사람 잡겠구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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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7-08 18: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7-09 11: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다락방 2013-07-09 13: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신줄 놓고 육체를 방치한 채로 지내고 있다가 이 글을 보니 아, 또 정신 못차리고 있구나, 하는 깨달음이 오네요. 늘 여름이 가장 다이어트 하기 좋다고 부르짖으면서 그 여름을 또 언제나처럼 보내고 말아요. 다시 마음을 다부지게 먹고 몸 관리 좀 해야겠어요. 그런데 오늘은 피곤하니까 좀 이따가...( ")

식스팩 만들기 성공하세요, 감은빛님!!

감은빛 2013-07-15 15:12   좋아요 0 | URL
아, 이 댓글 읽었는데 답을 안드렸군요!
여름이 몸 만들기에 제격인 계절이죠.
바야흐로 노출의 계절이니까요.
식스팩은 곧 성공하리라 생각합니다.
요즘은 술도 많이 줄였고, 운동도 열심히 하고 있으니까요.

종이달 2022-08-19 05: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