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원 확대

요즘 재난지원금을 어떻게 쓰고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넘친다. SNS에서도 그렇고 실제로 만나는 사람들도 그렇다. 간혹 독립을 하지 못한 사람들과 세대주가 아닌 사람들은 아버지 혹은 남편이 돈을 안 내놓는다고 하소연을 하기도 한다. 세대주 남편이라 하더라도 혼자 맘대로 그 돈을 다 쓰지 못해 아내의 눈치를 본다는 이야기도 있다. 누군가는 카드 포인트를 받은 바로 다음날 아내가 딱 지원금 금액에 맞춰 가전제품을 결제해버린걸 카드 결제 문자를 받고서야 알게되었다는 얘기도 하더라.

나는 평소와 다름없이 일상에서 포인트를 사용하고 있다. 어제는 엄마에게서 문자가 왔는데, 재난지원금 받은 걸 나 자신에게 쓰라는 내용이었다. 옷도 사고, 신발도 사라고. 안그래도 최근 옷은 두어벌 사긴 했다고 답을 드렸다.

그런 와중에 알고 지내는 선배 한 분이 페이스북에 자신이 후원하는 비영리단체들 명단을 올리면서 다같이 후원을 확대해가자는 취지의 글을 쓴 걸 보았다. (아마 이번 정대협 이슈에 대한 행동이었을 듯) 제법 많았다. 비정기적으로 글을 쓰고 강연하는 것이 수입의 대부분인 그 분의 재정 상황을 정확히 알지는 못하지만, 상식적인 수준에서 결코 많이 버는 편이 아니란 것 정도는 짐작할 수 있다. 나도 후원하는 곳들이 좀 있는데, 일터에서 정기적으로 급여를 받는 내가 그 분보다 후원하는 곳이 적다는 사실에 좀 놀라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했다. 그래서 그 선배의 후원처 중에서 3곳을 골라 후원을 늘리기로 했다.

사실 운동단체 상근자로 일하던 시절부터 얼마 되지도 않는 활동비를 받았어도 후원하는 곳은 제법 많았다. 단체 활동가의 특성상 친하게 지내는 타 단체를 자연스럽게 후원하는 경우도 많았고, 또 우리 단체 후원회원 가입과 친구 단체 후원회원 가입을 서로 물물교환하듯 하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아까 언급한 선배 역시 한 때 내가 일했던 단체 선배 활동가였으므로 나처럼 적은 수입임에도 늘 일부를 후원하는 것이 당연한 삶을 살았을 것이다.

제법 많았던 후원 단체를 어느정도 정리한 것은 내가 출판사에서 해고 당해 수입이 아예 없을 때었다. 그런 때에도 차마 후원을 끊지 못한 인연이 깊은 단체도 있긴 했다. 그렇게 확 줄인 후원 단체가 서서히 다시 늘어난 건 지금 일하는 일터에서 해마다 조금씩 급여가 오르고 최저임금도 오른 덕분이다. 거기에 가끔 강의를 나가거나, 원고를 쓰거나, 교정교열 알바를 하는 등의 부수입도 생긴다.

그래서 이번에는 큰 고민없이 3곳의 후원단체를 늘렸다. 아, 생각해보니 최근 지인 한 분이 자신이 일하는 단체를 후원해달라고 연락해와서 그곳도 가입했으니 최근에 4곳을 늘렸네.

그래서 내가 후원하는 곳이 총 몇개가 되었는지 세어봤는데, 그동안은 10개가 살짝 안되다가 이번에 늘린 덕분에 10개를 조금 넘겼다. 이 일터에 얼마나 더 일할지는 알 수 없지만, 앞으로 정기적으로 급여 받는 일을 계속할 수 있다면 조금씩 후원을 더 늘려가야지. 그래야 우리가 사는 사회가 조금이라도 더 나아질 수 있을테니.


완독을 미루는 버릇













예전에도 그랬지만, 요즘은 점점 더 이상한 버릇이 심해짐을 느낀다. 책을 다 읽지 않고 어느 정도 읽다 말고 다른 책으로 넘어가버린다. 지식을 위한 책들은 그렇게 발췌독을 하거나 읽다 말고 다음에 또 필요한 부분을 찾아 읽어도 상관없겠지만, 소설들까지 그렇게 읽으니 이상한 버릇이라 느낀다.

이 책을 언제 구매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읽기 시작한 것 작년 가을이었다. 거의 중간까지 재미있게 읽다가 다른 책을 집어든 이후 손도 대지 않고 몇 달이 지났다. 그러다가 어느 글에서 2008년 촛불집회를 언급하는 걸 보고 잊고 있던 이 책 생각이 났다. 마침 5월 말이면 당시 청소년들이 시작했던 촛불집회가 대다수 국민들이 함께 참여하는 축제의 장으로 바뀌어 한창 물이 오르던 시기였다. 5월의 마지막 날에서 6월의 첫 날로 이어지는 밤, 이명박 정부가 첫 물대포를 쏘고 경찰특공대를 투입해 폭력 진압에 나서기 전, 그러니까 그 전까지 전경들이 시민들을 연행하더라도 잠시 닭장차 투어 다녀오겠다며, 국가의 폭력을 웃음코드로 받아치는 당시 촛불의 정신을 잘 드러내던 시기였다. 6월 1일 이후에는 또 국면이 많이 달라졌다. 그 전까지 집회에 나왔어도 크게 존재감을 드러내지 못했던 기존 운동권의 거대 조직들이 본격적으로 영향력을 미치려고 애쓰기 시작했고(물론 그럼에도 마지막까지 큰 영향력을 미치지는 못했지만) 훨씬 더 다양한 시민들이 다양한 목소리를 내는 방식으로 더욱 진화했다. 음, 그러니까 이 이야기는 아주 오랜만에 리뷰를 써보고 싶은 욕심이 생기니, 이 책에 대한 글을 쓸 때 다시 자세히 쓰도록 하자.

암튼 5월 말에 이 책을 다시 꺼내 읽었다. 당연히 작년 가을에 읽었던 앞 부분이 좀 가물가물해서 빠르게 앞을 다시 훑은 후에 중단했던 곳에서 시작했고 끝까지 다 읽었다. 여러모로 할 말이 많은데, 역시 그 이야기도 책을 이야기할 때 다시 쓰기로 하고, 오늘은 완독을 미루는 버릇에 집중하자.

어쩌면 자꾸 완독을 미루는 버릇은 다 읽기가 아까워 그런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든다. 그건 책이 마음에 들고 좋은 경우. 왠지 아껴 읽고 싶은 그런 책이 가끔 있다. 하지만 대다수의 경우는 그렇지 않다. 그럼 책을 읽다 마는 것은 오히려 그닥 재미가 없어서일까? 아님 너무 뻔해서일까? 그런 경우도 없지는 않겠지. 아니 근본적으로 책 읽는 시간이 부족해서가 정답일 것 같다. 자꾸 읽다 말고 다른 책에 손이 가는 건, 저 책을 다 읽기 위해 걸리는 시간에 다른 책을 조금이라도 더 보고 싶은 마음이 들어서가 아닐까.

주말에 책장을 뒤져서 읽다가 말고 방치해 둔 책들 중에 가장 끌리는 책 10권을 꺼내 책상 위에 포개놓았다. 당분간은 새 책을 시도하지 말고, 이 책들을 먼저 다 읽어야지 마음을 먹었다. 하지만 그날 새 책들이 도착해버렸다. ㅠㅠ

미뤄둔 책들을 다 읽겠다는 의지는 한 순간 꺾여버리고, 어느새 나는 새 책들 중 한 권을 먼저 집어들었다. 그래 이번에는 우선 새 책들을 먼저 다 읽고 읽다 만 책들에 손을 대야지. 당장 이번 달 책모임에서 같이 읽을 책부터 시작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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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20-06-03 13: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희 가족이 받은 재난지원금도 어머니가 관리하고 있어요. 제가 받은 건 온누리 상품권 5만 원이 전부에요... ㅎㅎㅎ

독서를 좋아하는 사람 대부분은 여러 권의 책을 동시에 읽지 않나요? 저는 이런 습관을 나쁘게 생각하지 않아요. ^^

감은빛 2020-06-04 18:23   좋아요 0 | URL
아, 책 좋아하는 사람 대부분이 이렇게 여러 권을 동시에 읽나요?
제가 아는 분들은 대체로 한꺼번에 여러 권을 읽지는 않더라구요.
저 처럼 이 책 조금 읽다가, 저 책 조금 읽다가
다시 이 책 조금 읽지는 않는 것 같아서요.
물론 제가 다른 사람들의 책 읽는 스타일을 다 파악하고 있는 건 아니겠지만.

사실 그 부분의 핵심은 이 요상한 버릇이 제겐 별로 맘에 들지 않는데,
이미 버릇이 되어버려서 바꾸기 쉽지 않은 것 같다.
뭐 요런 이야기입니다. ^^

페넬로페 2020-06-03 15: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후원하다가 끊은 단체가 있는데 매달 1일에 저에게 감사문자가 계속 오고 있어요~~
그 문자 받을때마다 너무 미안해요^^

감은빛 2020-06-04 18:26   좋아요 1 | URL
후원하다가 끊으면 사실 너무 미안하죠!
저도 예전에 다니던 출판사에서 해고 당하고 고정 수입이 없어져서
꼭 후원을 유지해야 할 곳들 서너 곳을 제외하고 다 끊었었는데,
그때 너무 미안했어요.

다행히 그 중 몇 곳은 다시 고정 수입이 생긴 후에 후원을 재개할 수 있어서
그 미안함을 조금이라도 덜었어요.
 

대화 주제들


누군가와 만나면 대화를 나눈다. 그 대화에는 늘 주제가 있기 마련이다. 문득 궁금해졌다. 나는 주로 무엇을 주제로 사람들과 대화를 나눌까? 그것은 누구와 대화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일 때문에 만난 거래처 직원과 짧게 날씨 이야기나 뉴스에 나온 이슈를 주제로 대화를 나눌 수는 있지만 그것은 단편적이고 피상적일 수 밖에 없다. 그와 나누는 핵심은 당연히 업무 이야기가 될 수 밖에 없다.


마찬가지로 부모님이나 아이들과의 대화는 거의 대부분 일상에서 벌어진 일들을 주제로 이뤄진다. 그들과 티비 드라마나 예능 프로그램이나 뉴스꺼리 들에 대해 대화를 나눌 수는 있지만, 그 역시 핵심적인 내용을 다루기는 쉽지 않다. 수박 껍질을 간신히 핥을 수 밖에 없다.


여기서의 대화 주제는 일의 영역과 가족의 영역을 제외하고, 내 여가 시간에 순전히 좋아서 만나는 사람들(소위 친구라 부를 수 있는 이들)과 나누는 것이라고 좁혀보자. 여기에서 내용 상으로 몇 개를 건져 보면 다음과 같다.


- 책















요즘 같은 시대에도 지인들 중에 책을 많이 읽는 이들이 많다. 지인 중에 출판계 종사자가 많고, 예전부터 친하게 지낸 이들 대부분 책을 많이 읽는 이들이었다. 그래서 만나면 책 이야기를 하는 경우가 많다. 세부 주제로 들어가보면 철학이나 사회과학 분야를 주로 다루는 경우가 압도적으로 많다. 만나는 사람들에 따라서는 가끔 문학을 주제로 하기도 한다.


내가 최근에 술 자리에서 주로 이야기하는 책은 위에 있는 [지혜의 심리학]이다. 김경일 교수는 어쩌다가 영상으로 먼저 만났는데, 영상을 조금 보자마자 그가 설명하는 '인지심리학'이란 학문에 완전히 반해 버렸다. 그의 영상들을 많이 찾아보았고, 책도 구매해서 여러번 읽었다.


요즘은 제법 유명해져서 방송에도 심심찮게 출연하는 모양이더라. 확실히 그의 주장은 참신하고, 그는 청중들의 이목을 잘 끌어오는 스킬을 가졌다. 자기계발서 형식의 편집 구성은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그의 글솜씨도 썩 괜찮았다.


술 자리에서(내가 사람들을 만나는 건 주로 술자리니까) 그가 주로 얘기하는 몇몇 내용들을 들려주면 대부분 신기하다는 듯 내 이야기에 주목한다. 김경일 교수 덕분에 한동안 어디를 가더라도 주목받는 사람이 될 수 있었다.


- 음악



몇몇 친구들과는 음악 이야기도 자주 나눈다. 취향이 비슷한 친구가 권해주는 음악은 두번 생각해볼 필요도 없이 내게도 좋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혹은 취향이 전혀 다른 친구가 추천하는 음악은 내 음악의 지평을 넓혀주며, 새로운 음악에 대한 갈증을 해결해주기도 한다.


새로운 노래를 알게 되는 경로이기도 하고, 특정 가수나 장르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알 수 있는 경로는 [배철수의 음악캠프]다. 아마 배철수 아저씨가 처음 방송을 시작했을 무렵부터 듣기 시작했을 것이다. 그러나 성실한 애청자는 되지 못했다. 평소에는 라디오를 들을 여유가 별로 없어서 거의 듣지 못하고, 주말이나 특정한 행위(운전, 요리 등)를 할 때만 듣는다.


최근에 내가 자주 이야기 한 노래는 위에 소개한 Fifth Harmony 의 [Brave Honest Beautiful] 이다. 아직 카밀라 카베요가 탈퇴하기 전에 발표했던 곡이니 한참 예전 곡이다. 이 노래를 나는 카밀라 카베요가 탈퇴한 이후에 처음 알게 되었는데, 처음 들었던 그때부터 몇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늘 내 플레이리스트 중에서 가장 많이 듣는 곡 중 하나이고, 항상 벨소리로 저장해두는 곡이기도 하다.


이 노래를 좋아하는 이유가 몇 가지 있는데, 우선 초기 카밀라 카베요 특유의 발성을 듣는 것이 좋기 때문이고, 이 곡의 독특한 도입부가 마음에 들기 때문이다.(그래서 늘 벨소리로 사용) 또 아래 가사 내용이 마음에 들기 때문이기도 하다.


You can dance like Beyoncé You can shake like Shakira 'Cause you're brave, yeah, you're fearless And you're beautiful, you're beautiful So whine like Rihanna Go and pose like Madonna 'Cause you're brave, yeah, you're honest And you're beautiful, you're beautiful girl


비욘세, 샤키라, 리한나, 마돈나라는 슈퍼스타들을 언급하는 것도 재미있지만, 이 노래의 주제인 "당신도 잘 할 수 있다. 당신은 용감하고, 훌륭하고, 아름답다." 내용이 좋다. 특히 이 노래를 부르는 10대 후반의 청소년 여성들이(핍스 하모니 멤버들의 나이를 정확히 알지 못하지만, 아마 이 노래를 불렀을 당시 멤버 모두가 10대 후반이었을 것이다.) 모두 자기 자신이 이 노래 가사처럼 당당하고 용감하고 훌륭하고 아릅답다는 사실을 깨달았으면 좋겠다.


사실 그래서 이 노래는 내 딸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노래이기도 하다. 내가 좋아하는 노래이기 때문에 이미 아이들은 이 노래를 자주 들어서 잘 알고 있지만, 언젠가는 이 노래 가사들을 설명하면서 아빠가 왜 이 노래를 좋아하는지 들려주고 싶기도 하다. 


- 영화 혹은 드라마


아마 가장 많은 사람들이 흔히 나누는 대화는 TV 프로그램에 대한 이야기일 것이다. 지금은 아니지만 출판사에 일할 때 만난 사람들 대다수는 TV 예능 프로그램 이야기나 TV 드라마 이야기를 자주 했다. 나는 집에 TV가 없어서 늘 대화에 소외되는 사람이었다. 누군가 어떤 유행어를 말해도 알아듣지 못한 나는 거의 구석기 시대를 살고 있는 사람 취급을 받았다.


비록 TV가 없어서 소외당하긴 했지만, 영화 이야기가 나오면 다시 대화에 끼어들 수 있었다. 영화는 예전부터 좋아했기 때문에 어느 정도 공감할 수 있는 주제였다. 더구나 요즘은 넷플릭스나 왓챠플레이 같은 앱들을 통해 영화, 해외 드라마, 국내 드라마 등을 쉽게 접할 수 있게 되었다.


영화 이야기를 하면 정말 내용이 길어질텐데, 요건 언젠가 각 영화 별로 따로 이야기를 쓸 계획을 갖고 있으니, 오늘은 그저 지금까지 본 영화 중 내가 가장 좋았다고 생각하는 영화 10개를 한 번 적어보련다. 순서는 매기지 못하겠다. 그저 지금 기준으로 좋았던 영화 중에 10를 선택해본다면 아래와 같다.


청춘 스케치(reality bites)

욕망의 대지(the burning plain)

페어런트 트랩

어바웃 타임

인셉션

이터널 썬샤인

내부자들 디 오리지날

가지니

꾸츠 꾸츠 호타해

그 남자의 사랑법(신이 맺어준 인연)


헐리우드 영화가 6개, 인도 영화가 3개, 우리나라 영화가 1개다. 맨 위 2개는 국내 개봉 제목이 엉망이라 일부러 원제를 괄호 안에 넣었다. 맨 마지막 인도 영화 역시 국내 개봉 제목이 와닿지 않는다고 느껴 원어의 제목을 그대로 괄호 안에 옮겼다.


당연한 얘기지만, 언제나 시점이 가장 중요하다. 이 10개는 지금 선택했기 때문에 뽑힌 것이다. 조금 더 과거로 돌아갔다면 [라빠르망], [레드], [블루], [화이트], [베로니카의 이중생활], [캣피플] 등의 유럽 영화들이 대거 들어갔을 것이다. 특히 크쥐쉬토프 키에스로프스키 감독의 영화들을 좋아했었다.


거기서 좀 더 과거로 돌아가면 지금은 제목도 잘 생각나지 않는 온갖 공포 영화들이 등장했을 것이고, 거기서 다시 좀 더 과거로 돌아가면 홍콩 영화를 비롯한 온갖 액션 영화들이 등장했을 것이다. 


말이 나온 김에 드라마도 잠시 언급하자면, 국내 드라마 중에는 거의 본 것이 없어서 뭐라 말하기가 곤란하긴 하다. 학창 시절과 대학 시절에 간간히 보았던 [여명의 눈동자], [모래시계] 정도를 좋았던 드라마로 꼽을 수 있을 것 같은데, 조금 수준이 낮긴 하지만 고등학교 시절에 좋아했던 여성이 홀딱 빠져 있었던 [마지막 승부]도 좋아하는 작품이라 말하긴 어렵지만 잊을 수 없는 작품이라 말할 수는 있겠다. 그 뒤로는 거의 드라마를 본 적이 없으니 건너뛰고, 비교적 최근작들 중에서는 [비밀의 숲]이 괜찮은 작품이라 할 것 같다. [시그널] [미스터 션샤인]도 재밌게 보기는 했으나 몇가지 부분에서 아쉬움이 크다. [미생]은 웹툰으로는 제법 읽었던 기억이 있는데, 드라마로는 일부 밖에 보지 못했다. 나중에 시간이 나면 처음부터 쭉 보고 싶은 드라마 이긴 하다.(요새는 이런 걸 정주행이라고 하더라. 그럼 혹시 역주행도 있나?)


아이들이 좋아하는 드라마 중에서는 응답하라 시리즈가 그나마 같이 볼만한데, 그 중에서도 나의 옛 추억들을 떠올릴 수 있는 1994가 그나마 좋았고, 1988도 나쁘지 않았다. 다만 내가 사회와 단절되어 있던 시기인 1997은 전혀 공감이 되지 않더라.


아, 요새 유행하는 [킹덤] [인간수업]이라는 넷플릭스 드라마도 재미있었지만, 역시나 여러 면에서 아쉬움이 크다. 그냥 재미라는 측면으로만 보면 만족스러웠던 것 같다.


해외 드라마 역시 많이 보지 못해서 뭐라 할 말은 없는데, 해외는 일단 국내 드라마와 달리 엄청나게 자극적인 작품들이 기억에 남는다. 완전 야하고 완전 잔인한 작품들. [워킹 데드], [왕좌의 게임], [로마], [스파르타쿠스] 등등


또 언젠가 시간이 나면 꼭 봐야지 생각하는 것들은 김용의 [사조영웅전], [신조협려], [의천도룡기]를 드라마로 만든 것들인데, 워낙 여러 편의 드라마가 있어서 뭘 봐야할지 정보도 찾아봐야 할 것 같다. 다만 유역비가 나오는 [신조협려]는 언젠가 꼭 다 보고싶다.


아참, 워쇼스키 자매가 연출한 [센스8]을 참 좋아했는데, 제작비를 감당하지 못해 시즌2에서 접어버린 것이 너무 아쉽다.


음, 이상이 주로 친구들(지인들)과 나누는 대화 주제들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 외에 또 어떤 주제들이 있을지는 이 글을 쓴 후에 차차 생각해보겠다. 예전부터 계속 영화 이야기를 써보고 싶었는데, 글을 쓸 여유를 계속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다. 이것도 일단 한 번 시작하고 나면 간간히 이어갈 수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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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20-05-30 14: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김경일 교수님의 짧은 영상 강의를 본 적 있었는데, 재미있었고 좋았던 것 같아요.
감은빛님, 즐거운 주말 보내시고, 편안한 하루 되세요.^^

감은빛 2020-06-03 11:22   좋아요 1 | URL
강의 주제가 무척 독특하고 누구나 관심을 가질 수 밖에 없는 내용들인 것 같아요.
벌써 수요일이네요.
서니데이님, 늘 즐거운 날 되시길,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공쟝쟝 2020-05-31 21: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화, 음악, 그리고 책이라니..(누구나 좋아하는 주제이지만, 그래서 취향도 확고하게 되는!! ㅎㅎ)
이제 쓰시기만 하시면 되겠네요 ㅎㅎㅎ 여유로운 시간 꼭 만들어내시길.

감은빛 2020-06-03 11:24   좋아요 0 | URL
네, 취향이란 게 각자 다르니 다른 사람들과 이런 얘길 나누는 것이 더 재밌는 것 같아요. 만약 모두 취향이 똑같다면 정말 재미없을 거예요.

말씀 남겨주셔서 고맙습니다! ^^
 

욕구 없음


날씨의 변덕 때문인지 요즘 계속 몸 상태가 좋지 않다. 봄인데도 겨울인가 싶을 정도로 밤 기운이 내려가는 일교차가 큰 날씨가 계속되더니, 갑자기 여름인 것처럼 더운 날이 이어졌다. 나만 겨울을 사는 것 같아 깜짝 놀라서 얇은 옷을 입고 다녔더니 다시 또 날이 쌀쌀해졌다. 이게 무슨 봄 날씨란 말인가? 


해마다 봄이면 여름을 대비해 몸 만들기에 들어가는데, 올해는 아직 시작도 못하고 있다. 2월부터 4월까지는 아주 낮은 강도로 운동을 이어가며 서서히 본격적인 운동에 돌입하기 위한 워밍업 단계를 밟고 있었다. 4월 말부터 워밍업을 끝내고 한동안 못했던 운동을 열심히 해야지 생각했다. 그간 운동을 제대로 못했기에 운동에 대한 욕구가 컸다.


그런데 4월 말부터 갑자기 몸 컨디션이 나쁘다 느껴지더니 한동안 괜찮았던 관절 통증도 다시 시작되었다. 관절이 여기저기 아프니 움직이는 것이 힘들고 만사가 귀찮아졌다. 그러다보니 사람들과 만나는 일도 어지간하면 다음으로 미뤘다. 예전 같았으면 밤에 자다가도 나갔을 술자리를 초저녁에 거절하고, 집에 들아가 일찍 잠드는 나를 보면서 참 낯설었다. 이건 어쩌면 정신적인 영향도 있을 것이다. 설명하기 어렵지만 어느 순간 갑자기 모든 의욕이 사라졌다. 운동에 대한 욕구도, 맛있는 음식에 대한 욕구도, 심지어 성욕 마저도.


지금도 머리로는 매일 5km씩 달리고, 풀업과 에어스쿼트와 케틀벨 스윙을 하고, 이틀에 한 번씩 데드리프트와 스냇치와 클린앤저크를 하고, 일주일에 한 번씩은 버피를 하는 내 모습을 그려보지만, 현실의 나는 그냥 아무것도 안 하고 하루를 보낸다. 일도 하기 싫지만, 안 할 수는 없으니 꼭 해야 하는 일들을 처리하면서 시간을 보낸다. 책도 손에 잡히지 않고, 글도 쓰이지 않는다.


뭐, 살다보면 이런 시기도 있는 거겠지. 바쁘게 살아온 만큼 잠시 쉬어갈 수도 있는 거겠지. 잠시 이러다가 또 다시 이런저런 욕구들이 솟구칠 수도 있겠지. 지금은 그저 이렇게 생각할 뿐.


노안


처음엔 스마트폰이었다. 어느날 갑자기 누군가 보낸 메시지를 읽으려는데 촛점이 맞지 않고 흐리게 보였다. 안경을 낀 상태로는 도저히 보이지 않아 벗었더니 잘 보였다. 밤에 불을 끄고 자려고 누웠다가 잠이 오지 않아 스탠드 불을 켜고 폰으로 SNS를 들여다 보려는데, 이때도 안경을 낀 상태로는 촛점이 맞지 않았다. 안경을 벗으니 비로소 잘 보였다.


처음엔 왜 그런지 잘 이해가 되지 않았는데, 가만 생각해보니 이게 바로 노안이었다. 언젠가 술 자리에서 나보다 서너살 많은 선배가 아직 노안이 오지 않았냐고 자신은 40대 들어서자마자 노안이 왔었다고 신기해하며 캐물었던 것이 생각났다. 드디어 나에게도 노안이 왔구나. 이렇게 써놓고 나니 마치 손님이 온 것 같은 느낌이지만, 만약 거절할 수 있다면 결고 맞고 싶지 않은 손님이다. 


하지만 인간은 노화를 거역할 수 없는 법. 이제 나는 노안에 익숙해져야 한다. 노안과 더불어 살아가는 법을 익혀야 할 것이다. 이렇게 늙어가는구나 생각하니 새삼 서글퍼진다.



어버이 날


해마다 5월이면 어버이 날과 스승의 날이 온다. 가끔 이런 날을 왜 굳이 만들었나 생각이 들기도 한다. 1년에 딱 하루만 그 의의를 생각하며 나머지 364일은 모르고 살아도 된다고 면죄부를 주는 것 같다는 생각이다. 어쨌건 올해도 어버이 날이 지나갔다. 부산 부모님께는 계좌로 약간의 용돈을 보내드리고 전화를 드렸다. 멀리 있어 자주 찾아 뵙지도 못하는데, 전화도 자주 드리지 못하는 자식 입장에서 늘 불효자일 수 밖에 없다.


마침 어버이날이 금요일이라 저녁에 아이들을 만났다. 아이들은 만나자 마자 손수 이쁘게 꾸민 작은 종이 봉투를 내밀었다. 뭔가 맛있는 걸 먹으려고 근처 식당들을 돌아다녔는데, 식당들이 모두 꽉 차서 빈 자리가 없었고, 그 중 몇몇 식당은 기다리는 사람들이 줄을 서있기도 했다. 어버이 날이라 유독 저녁 시간에 손님이 몰린 것 같았다.


아이들과 어떻게 할 지 조금 고민하다가 마침 빈 자리가 난 고깃집으로 들어갔다. 열심히 고기를 구워 먹이려는데, 큰 아이는 요즘 고기가 먹고 싶지 않다며 입에 대지 않았다. 대신 밥과 된장찌개를 먹길래 냉면도 시켜줬다. 작은 아이와 나는 열심히 고기를 먹었다. 어느 정도 배가 찬 후에야 찬찬히 아이들이 전해준 편지들을 열어봤다. 각자의 편지는 그 나름대로의 정성이 느껴졌다. 해마다 받아보는 편지는 어쩔수 없이 형식적이지만, 또 어쩔수 없이 그 진심을 담는다.


이번 큰 아이의 편지는 유독 그런 느낌이 강했다. 아이가 갑자기 쑥 커서 어른이 되어버린 느낌. 이제 곧 어른이 되어 나와 함께 여러가지 일들을 같이 할 거라는 글을 읽으며 갑자기 눈물이 나려는 걸 참느라 혼났다.


그 와중에 동네 선배 한 분이 식당에 들어오며 내 어깨를 툭 치고 반가운 척을 했다. 여러모로 이름이 알려진 유명한 분이신데, 술을 좋아하는 분이라 동네 술집에서 종종 마주치곤 했었다. 이번엔 형수님과 두 분이서 들어오셨다. 우리 자리 뒤쪽에 자리를 잡고 앉으시는 걸 보고 나는 아이들과 떠들며 남은 음식을 먹고 술을 마셨다.


한참 후에 그 선배가 우리 자리로 와서 아이들에게 용돈을 주고 싶다고 했다. 나는 소주 한 잔을 털어넣고, 막 고기쌈을 입 안 가득 넣은 직후라 대답을 할 수 없었다. 그 선배는 아이들에게 만원짜리 한 장씩을 쥐어주셨고, 아이들은 고맙습니다. 인사를 했다. 입안의 음식을 급하게 씹은 후 안 주셔도 되는데 라고 겨우 한 마디 할 수 있었다. 선배는 술 한 잔 따라주겠다며 내 술잔을 채워주고 돌아갔다.


사실 몇 년 전부터 어떤 사건으로 인해 그 선배와 약간 애매한 관계가 되었다. 어느 날엔가는 술 자리에서 조금 다툼이 있기도 했다. 나는 나 대로 그 사건에 대한 입장이 명확했고, 그 선배 역시 자신의 입장에서 조금도 양보가 없었다. 그 사건은 제대로 해결되지 못하고 그냥 봉합되었고, 그렇게 시간이 지나버렸다. 그가 왜 굳이 내 자리로 건너와 술잔을 채워줬는지 조금은 이해할 수 있는 느낌이 들었다. 아마 입장을 바꿔 내가 그였다면 결코 그렇게 하지 않았을테지만.


꽃, 사진, 우중충한 날씨


지난 주말에는 큰 아이가 몇 해전에 다녀왔던 수목원에 다시 가고 싶다고 해서 함께 다녀왔다. 날씨가 좋았다면 훨씬 더 좋았을텐데, 날이 흐려서 그런지 기분이 별로였다. 그래도 열심히 사진을 찍고 또 열심히 놀았다. 놀 수 있을때 놀아야지. 또 언제 이렇게 놀겠나.


생각해보면 이제 정말 기회가 별로 없는 것 같다. 아이들은 금방 자랄테고, 다 자라면 부모와 보내는 시간은 자연스레 줄어들 수 밖에 없다. 아이들은 곧 자라서 어른이 되어 세상으로 나갈테니. 나는 또 그만큼 늙어 예전처럼 체력이 받쳐주지 못할 것이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큰 아이가 말했다. 다음에 날씨가 쨍한 날에 다시 오자고. 그러자. 그땐 오늘보다 더 열심히 더 재밌게 놀자꾸나.



언어 천재의 두 번째 책

_유쾌한 태도를 가질 수 있는 방법은?


15개가 넘는 외국어에 통달했고, 25개가 넘는 언어를 우리말로 옮겼다. 그냥 소개 글만 읽었을 때부터 무척 궁금해졌다. 페이스북 친구를 맺고 난 후에는 그의 유머 감각이라던가, 그가 얼마나 다방면에 관심이 많은지 등을 알 수 있었다. 그의 두 번째 책이 나왔다. 빨리 주문해서 읽어보고 싶다.
















이 책 제목을 보면서, 또 평소 저자의 페이스북을 보면서 느끼는 건 유쾌한 태도가 삶에 미치는 여향이 무척 클 것이라는 점이다. 돌아보면 나는 썩 유쾌하지 못한 인간이다. 늘 무표정이고, 늘 진지한 태도로 무언가를 고찰한다. 내 일상에서 웃음이라고는 아이들과 지내는 시간 뿐이다. 나도 평소 유쾌한 태도를 가질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 고민해봐야겠다.



어제 책장을 조금 정리하다가 말았는데, 내가 이런 책도 샀던가 싶은 책이 몇 권 있었다. 예전에는 책을 사면 발췌독이라도 조금씩 해놓고 책장에 꽂아두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사놓고 한 번 펼쳐보지도 않은 책들이 늘아나고 있다. 꼭 읽고 싶어서 산 책이라면 분명 기억이라도 할텐데, 이런 책이 있었나 싶은 책이라면 그닥 큰 고민없이 샀던 모양이다.


집에 있는 읽지 않은 책들을 다 읽기 위한 중장기 프로젝트를 기획해야겠다. 비록 기획안만 써놓고 말지라도 그 기획안을 쓰는 동안이라도 묵은 책들을 다 읽으리라는 의지를 불태울 수 있을테니. 그 의지가 얼마나 갈 지 모르지만, 아예 없는 것 보다는 나을테니.


흐린 날의 오후: 우울함


언젠가 직장인이 가장 우울한 날이 수요일이란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오늘은 날이 흐려 기분이 더 우울한 것 같다. 빨리 퇴근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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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례식장


자주 가도 절대 익숙해질 수 없는 공간 중 하나가 바로 장례식장일 것이다. 오래전 친구 아버님께서 돌아가셨을 때, 3일장을 치루는 내내 친구 곁을 지키며 허드렛일을 했었다. 오래전 할머니께서 돌아가셨을 때와 외할아버지께서 돌아가셨을 때에도 장례식장을 지켰다. 그리고 또 몇 해 전 장인어른께서 돌아가셨을 때에도 (이혼한 이후였지만) 장례식장을 지켰다. 게다가 나이가 들어갈 수록 장례식장에 갈 일이 점점 더 많이 생긴다. 아마 한 달에 한 두번은 가는 것 같다. 특히 지난 겨울에는 유난히 자주 부고 연락을 받았다. 그렇게 자주 가도 도저히 적응이 안 되는 공간이다.


처음에는 부고 연락을 받고 믿을 수가 없었다. 내 또래 지인들 중에서, 엄청 친한 사이는 아니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친하다고 생각할 수 있는 사람 중에 누군가가 먼저 세상을 떠나다니! 그 이름을 보는 순간 바로 그가 부드럽게 웃는 모습이, 누구보다 성실하고 아름다웠던 그의 삶이 떠올랐다. 하필 부고가 날아든 날이 만우절이었다. 설마! 누군가의 장난이겠지. 아니. 그런데 사람 목숨 갖고 장난치는 짓을 내가 아는 누군가가 할 리는 없었다.


장례식장에 들어가 그의 영정사진을 보고서야 이게 현실이구나. 장난이 아니구나. 꿈이 아니구나 싶었다. 하지만 그의 영정을 향해 두 번 큰 절을 올리는 나 자신의 모습은 아무래도 꿈인 것 같았다. 현실이 아닌 것 같았다. 빈소에서는 코로나19 상황 때문에 식사를 제공하지 않았다. 저녁 시간에 갔더니 마침 빈소에서 그의 지인들이 추도식을 열고 있었다. 그가 다양한 활동을 했던 사진과 영상들을 모아 추모영상을 만들어 상영하고 있었다. 저 화면 안에서 환하게 웃는 이를 이제 다시는 볼 수 없다니. 친한 선배 한 명이 지인 대표로 추도사를 낭독했다. 진심을 담은 그의 말들을 들으며 다들 눈물을 흘렸다. 영상을 보면서 울던 이들이 영상이 끝나고 잠시 울음을 그쳤다가, 추도사를 들으며 다시 울었다. 나도 그랬다. 영상을 보면서는 눈물이 맺혔다가 멈췄는데, 추도사를 들으며 눈물이 줄줄 흘렀다.


원인 불명의 쇼크사라고 했다. 자다가 심정지가 일어났는데, 혼자 사는 사람이었기에 아무도 몰랐다고 했다. 그 얘기를 듣는 순간 문득 어느날 나에게도 그런 일이 일어나는 것은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조문을 마치고 아까 추도사를 낭독했던 선배와 함께 돌아가는 길에 그가 문득 생각난 듯이 말햇다. "너도 조심해라. 너도 혼자 사니까 자다가 갑자기 저렇게 가도 아무도 모르잖아. 게다가 너도 스트레스 엄청 심하잖아." 추측하건데 극심한 스트레스가 원인일 거라고 들었다. 


건강하던 사람이 갑자기 심정지로 세상을 떠났다. 이제 겨우 40대 중반인데. 입에 발린 말이 아니라 그는 너무나도 훌륭한 사람이었다. 늘 소리없이 조용히 세상에 꼭 필요할 일을 해왔던 사람. 언제나 성실하고 항상 노력하는 사람. 다른 사람들에게는 관대하고 자기 자신에게는 엄격했던 사람. 언제나 낮은 곳을, 그늘진 곳을 향했던 사람. 누구보다 냉철하지만 또 누구보다 따뜻했던 활동가였다. 만약 신이 존재한다면 왜 이렇게 훌륭한 사람을 왜 이렇게 일찍 데려갔냐고 따지고 싶다.


그날 밤 친한 사람들과 술을 마시고 늦게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크게 소리내어 엉엉 울어버렸다. 차마 그의 영정 앞에서는 소리내어 울지 못했는데, 다른 사람들과 술자리에서도 슬픈 마음에 떠들고 놀지는 못했어도 울지는 않았는데, 집에서 혼자가 되니 나도 모르게 울음이 터져 나왔다.


영혼의 존재를 믿지 않고, 내세를 믿지 않지만, 만약 그의 영혼이 어딘가에 존재한다면, 부디 평안하기를 바란다. 그런 날이 올 수 없겠지만, 다시 그와 술잔을 부딪힐 수 있는 날이 오기를. 헛된 바람을 가져본다.



선거운동


아마 녹색당에 탈당계를 낸 다음날이었을 것이다. 길을 걷다가 '국가혁명배당금당' 조끼를 입은 사람이 선거운동을 하는 모습을 보았다. 두 가지 생각이 들었다. 아직 본 선거 기간이 되기 전이라 사전 선거운동에 해당할텐데, 선거법 상 사전 선거운동을 할 수 있는 사람은 무척 제한적이다. 그래서 그가 과연 선거법을 제대로 지키고 있는지 의심이 먼저 들었다. 두 번째는 '저런 당'도 선거운동을 하는데, '우리당(이미 탈당계를 내 놓고도 이런 표현이라니)'은 대체 뭐하는 건지 하는 생각이었다. 이어서 우습게만 생각했던 허경영 씨의 그 당이 부럽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바로 이어서 든 생각은 무심결에 떠오른 위 두 가지 생각에 대한 반성이었다.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선거운동원의 자격을 의심하는 것은 분명 잘못이었다. 게다가 '저런당'이라는 혐오 표현을 쓰다니! 이것 역시 큰 잘못이었다.


탈당을 했기 때문에 이번 선거에는 선거운동에 참여하지 않았다. 녹색당 창당에 참여한 이후로 선거기간에 선거운동을 하지 않고 그냥 지켜보기만 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사실 작년부터 나는 지역에서 후보를 내고 선본을 꾸리기 위해 여러 방면으로 많이 노력했었다. 비록 당이 비정상적으로 운영되면서 결국 후보를 내는 것에 실패하고 탈당을 했지만, 만약 내 노력이 성공했다면 정말 눈 코 뜰 새 없이 바쁜 날을 보내고 있었을 것이다.



선거기간인데도 선거운동에 참여하지도 못하고, 코로나19로 사회 전체적인 분위기도 침체되어 있고, 나 역시도 여러가지 상황들이 겹쳐 우울하고 또 우울한 날들을 보내고 있었다. 이 감정은 선거가 끝나야 회복될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니 과연 선거가 끝난다고 회복이 되긴 할까 하는 의심이 들기도 했다. 


그런데 선거 당일 두 번의 술자리에서 술을 진탕 마시고 완전히 취해 돌아와 잠들었다가 깨고 나니 비로소 기분이 조금은 달라진 듯한 느낌이 들었다. 구체적으로 표현할 수는 없지만, 뭔가 마음 깊숙히 가라앉아 있던 돌덩이 하나를 치운 듯한 느낌이 이런 느낌이 아닐까 싶다. 아마 그날 술자리에서 내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내가 얼마나 우울증 때문에 미칠 것 같았는 지를 계속 반복해서 강조했던 것 같다. 그걸 들어주었던 지인들은 고생이 많았겠지만, 덕분에 나는 조금은 개운해진 마음으로 돌아왔다.


선거 결과에 대해서는 할 말이 너무나도 많지만, 이 공간에 남기지는 않으련다. 이 사회도 나도 여러모로 신기하고 새로운 경험을 많이 하는 시기이다. 코로나19라는 세계적으로 전례가 없는 나날들. 준연동형비례대표제로 선거제도를 개혁했지만, 위성정당이라는 꼼수가 난무해 더 심각하게 양당제로 고착화 되어 버린 선거 결과(물론 한 쪽이 참패하면서 양당제 고착화라는 단어가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이전과 비교해 소수 정당의 의석이 더욱 줄어들었다는 의미에서는 맞는 표현이라 생각한다.)가 참 우습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하다. 이러려고 선거 개혁을 위해 애썼던가 싶은 허탈한 마음이 든다. 한 편 유래없이 많은 의석을 차지한 여당과 그 위성정당이라는 결과도 너무나도 참담하면서도 웃기다. 역시 현실은 영화나 소설보다 훨씬 더 극적이고, 그 어느 희극작품보다 더 웃기다. 에이 말을 하지 않겠다고 해놓고는 주저리 주저리 써놓았네. 이제 그만.


운영위원장


작년 이맘때 내가 쓴 글을 보면 한동안 녹색당 지역 운영위원 직을 맡지 않고 잠시 활동당원으로만 남아 있었다가 다시 지역 운영위원장이라는 당의 공식 직책을 맡았다는 글을 썼었다. 이제는 탈당했지만, 지난 1년 동안 나는 당원들이 뽑아준 선출직 운영위원장이라는 직책에 부끄럽지 않을 만큼 열심히 활동했다고 자부할 수 있다. 그리고 올해 또 다른 단체의 운영위원장이라는 부담스러운 직책을 맡았다. 정말 안 맡고 싶었고, 여러 번 고사했음에도 결국은 그렇게 되었다.


만약 내가 잘 할 수 있는 역할이라면 고사하지 않고, 오히려 감사한 마음으로 열심히 활동하리라고 다짐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지금의 이 지친 몸과 마음으로는 도저히 이렇게 큰 역할을 잘 하리라고 생각하기 어렵다. 억지로 떠맡은 자리를 과연 얼마나 잘 유지할 수 있을지 걱정이다.


왼손 사용


엄마 말에 따르면 어렸을 때 나는 양손잡이였다고 했다. 그런데 내가 왼손을 쓸 때마다 할머니께서 내 손을 탁 하고 쎄게 때렸다고 했다. 어렸을 때 한동안 할머니 집에서 살았던 적이 있었는데, 그때 그랬던 모양이다. 그래서 어느 날부터는 내가 왼손을 쓰지 않고 오른손만 쓰게 되었다고 했다. 왼손을 주로 썼던 시절의 습관은 커서도 남았다. 


학창시절 야구를 할 때, 우타석에 들어가면 어깨와 팔을 휘두르는 느낌이 뭔가 부자연스러웠다. 분명 난 오른손잡이인데도 그랬다. 내 자세를 유심히 살펴본 친구가 좌타석에 들어가보라고 해서 좌타자로 배트를 휘둘렀더니 한결 자연스러웠다. 그리고 생활 속에서 몇 몇 특정한 동작들은 오른손으로 하면 오히려 힘을 주기 어렵고 왼손으로 하는 것이 훨씬 더 편하고 힘도 잘 전달되는 것을 느낀다. 이건 어쩌면 오랫동안 굳어온 습관 때문일 것인데, 글씨를 쓰고, 밥을 먹는 등의 중요한 것들은 다 오른손으로 바꿨고 그 습관이 굳어졌지만, 자잘한 몇몇 행동들은 여전히 왼손을 사용해왔고 그 습관이 굳어진 것이 아닌가 싶다. 그런데 오랫동안 오른손만 주로 쓰는 것이 익숙해져서 이제는 왼손 사용이 무척 낯설고 어렵게 느껴질 때가 많다. 


아마 한 달쯤 전이었던 것 같다. 친한 형이랑 오랜만에 만났다. 그 형은 일하다가 오른손 중지를 다쳐서 부분 깁스로 고정한 상태였다. 손이 그러니 일도 제대로 못하고 밥을 먹거나 씻는 일도 잘 못한다고 했다. 그런데 그렇게 말해놓고는 왼손으로 젓가락지를 잘도 하면서 밥을 잘 먹는 것이었다. 내가 어떻게 왼손으로도 젓가락질을 그렇게 잘 하냐고 물었더니, 군대에 있던 시절 고참이 밥을 너무 빨리 먹는다고 갈구면서 천천히 먹으라고 명령해서 그때부터 그 고참이 제대할 때까지 왼손을 젓가락질을 해서 밥을 먹었다고 했다. 엄청 오래된 옛날 일이지만, 그때의 경험 덕분에 그 형은 오른손을 다쳐서 쓸 수 없는 상황에서도, 왼손으로 밥을 잘 먹는다고 했다.


아주 오래전 만화방에서 읽었던 이현세 화백의 어느 권투 만화가 떠올랐다. 그 만화의 주인공인 오혜성(일명 까치)은 한때 잘나가다가 무슨 일로 한동안 링을 떠나있다가 다시 복귀한 복서였다. 그가 체육관에서 다시 운동을 시작해 몸을 만들면서 동시에 중요하게 했던 일이 왼손 젓가락질로 콩을 집는 일이었다. 왼손을 오른손만큼 능숙하게 사용해야 권투를 잘 할 수 있다는 이유 때문에 주인공이 한동안 왼손 젓가락질에 매달렸던 장면이 있었다. 그 장면을 왜 또렸이 기억하냐면 당시 내가 권투와 태권도를 섞어 놓은 족보 없는 이상한 격투기를 배우고 있었고, 그때 나는 그 격투기를 잘 하기 위해 권투 자세를 익혀야 했는데, 만약 그 왼손 젓가락질을 능숙하게 할 수 있다면 나도 권투를 잘 할 수 있을까 하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물론 나는 며칠 시도해보다가 금방 포기했을 것이다.


어쨌거나 그 형이 왼손으로 능숙하게 밥을 먹는 장면은 내게 무척 인상적이었다. (그 형에게 늦은 나이지만, 복서로 나가 보라는 말을 해볼까 하다가 참았다. ㅎㅎ) 이후로 나도 가끔 아주 가끔 왼손으로 마우스를 움직이거나 터치 패드를 조작하는 등 일상에서 왼손을 조금 더 사용하려고 의식하곤 한다. 늦은 나이의 복서는 내가 시도해 볼까나? 대학 시절 학과 교수님 중에 연장자에 속했던 교수님 한 분은 아주 늦은 나이에 아마추어 복서로 데뷔해 조그만 지역 대회에서 상도 받았었다. 당시 그 교수님의 연구실에는 샌드백이 걸려있었고, 글러브가 눈에 잘 띄는 곳에 놓여 있었다.


당시 교수님 연세가 몇 이었을지 궁금해서 글을 두드리다가 검색해봤다. 헐! 결과는 무척 충격적이다. 지금 내 나이보다 더 어렸다니! 당시에 그렇게 늙어 보였는데, 아니 실제로 아주 늙은 교수님이라고 여겼었는데. 내가 벌써 이렇게나 늙어버렸구나.


다시 운동 시작


약 2주 전부터 슬금슬금 다시 운동을 시작했다. 각종 관절 통증이 가끔 괴롭히고 있어서 아직 본격적인 시작은 아니고, 서서히 몸을 만들어가며 워밍업을 하는 단계다. 요즘은 특히 달리기에 집중하고 있다. 무릎 부상 이후 약 1년 8개월. 그동안 뜀박질을 제대로 못해서 좀이 쑤셨다. 다시 달리다가 또 부상을 당할까봐 무섭기도 했고, 가끔 뛰어야 할 상황에서 유연성과 심폐지구력 때문에 예전처럼 제대로 뛰지 못하기도 해서 이젠 안 되나보다 하고 포기하고 살았는데, 어느날 다시 뛰어보니 되더라. 신나서 며칠 연속 뜀박질을 이어하고 있다.


나이키 런닝 앱을 깔았더니 총 거리와 평균 속도와 칼로리 소모량 등을 알려줘서 내가 이렇게 달렸구나 하고 알 수 있어서 좋았다. 운동장이나 트랙을 도는 것이 아니라 거리를 달리는 것은 여러모로 변수가 많다. 골목에서 갑자기 차가 튀어나올 수도 있고, 신호에 걸려 멈춰서야 하는 경우도 잦다. 그래서 단조로운 운동장이나 트랙보다 훨씬 재미있기도 하다. 다만 내 체력 때문이 아니라 상황 때문에 멈춰서거나 속도를 줄여야 하는 경우가 많으니 이렇게 내 뜀박질 경로와 각 단계의 속도를 알 수 있으면 큰 도움이 된다.


인간이 다른 동물에 비해 용량이 큰 뇌를 가진 이유는 달리기 위해서라는 연구 결과가 있다고 들었다. 차를 운전해 본 사람은 아마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속도에 비례해 짧은 시간 다양한 변수에 대비해 빠르게 판단하고 이를 행동에 옮겨야 한다. 잠시 머뭇거린다면 다음 순간 큰 재앙이 찾아올 수도 있다. 그래서 빠르게 달리면서 다음 상황을 예측하고 그에 맞춰 내 다음 행보를 결정하고 실행에 옮기기 위해 용량이 큰 뇌가 필요한 거라고 이해했다.


달리기는 정말 재미있고 매력적인 운동이다. 내 몸(지방)을 태워 얼마나 빨리 달릴 수 있을지를 가늠해 보는 것은 얼마나 가슴 설레는 일인가! 특히 차량의 흐름과 교통 신호라는 변수에 힘입어 버스보다 먼저 목적지에 도착하는 일은 또 얼마나 큰 성취감을 주는지 모른다.


물론 달리기보다 더 재미있는 운동도 많다! 케틀벨과 바벨과 덤벨과 철봉 등 한동안 장식품이나 빨래 걸이로 사용했던 녀석들을 다시 원래 용도로 사용할 때가 되었다. 지금부터 본격적으로 운동을 시작하면 아마 여름 중반쯤에는 뽐낼만한 몸매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다. (술과 관절통증과 야근과 과로라는 장애를 잘 넘어간다면, 아마도)


책, 사고 팔기 그리고 찾기


좁디 좁은 작은 방에 책상을 하나 들여놓았다. 코로나19로 인해 재택 근무를 하는 시간이 늘어났는데, 아무래도 좌식 탁자에 오래 앉아 일하기가 너무 힘들었다. 책상을 들여놓기 위해 바닥에 탑 무더기처럼 쌓여있던 책들을 정리해야 했다. 책정리를 시작하면서 이제 다시 읽을 일이 없을 것 같은 책들을 팔거나 버리려고 내놓았다. 생각보다 많았다. 불과 2년쯤 전에 이 집으로 이사오면서는 차마 버리지 못하고 싸들고 왔던 책들이었다. 그 2년 사이에 무엇이 얼마나 바뀌었길래 나는 꽤 많은 책들을 정리해서 내놓았을지 궁금하다.


팔 수 있는 책들을 알라딘 중고 매장에 팔아보려고 앱에서 바코드를 찍어보니, 대다수의 책들이 판매불가 상태이거나 팔더라도 1천원 남짓 아주 낮은 가격으로 나왔다. 새삼 이 책들이 얼마나 중요한 내용을 담고 있는데, 겨우 그 가격에 내놓아야 하는가 싶어서 도로 책장에 꽂은 책들도 제법 된다. 그래도 책상 놓을 자리를 만들기 위해 억지로 책들을 큰 가방 두 개에 우겨넣었다. 몇 년 전에 비해 매입가격이 많이 낮아진 것 같다.


그렇게 무거운 책을 짊어지고 알라딘 중고매장을 향했다. 무사히 책을 팔고 또 중고책 2권을 계산대로 가져갔다. 그런데 직원이 그 중 한 권을 찍어보더니 이전에 구매했던 책이라고 알려줬다. 나는 속으로 '구매한 기억이 없는데, 이상하다!' 생각했지만, 내가 사놓고도 기억 못하는 책이 한 두권이 아니지 싶은 생각에 약간 부끄러운 마음으로 "그럼 그 책은 빼주세요."라고 말했다.


그 책이 읽고 싶었던 나는 집에 돌아오자마자 그 책을 찾아보았다. 팔거나 버릴 책들을 골라내면서 대체로 책들을 훑어봤기 때문에 그 책이 기억에 없다는 사실이 이상하다 여기며, 내가 놓친 구역이 어디인지 파고들었다. 없었다. 밥도 안 먹고, 잠도 안 자고 몇 시간을 책장을 훑으며 집중했건만 그 책을 찾지 못했다.


다음날에도 퇴근 후 다시 책을 찾기 시작했다. 전날 너무 피곤한 상태에서 놓쳤을 수 있겠다는 생각으로 차근차근 다시 꼼꼼하게 찾았다. 그래도 없었다. 그쯤되니 '그래. 분명 내가 그 책을 산 기억이 없는데.' 싶었다. 알라딘에 들어와 구매 목록을 살폈다. 온라인 구매와 중고 매장 구매 내역이 모조리 포함되어 있으니, 만약 내가 이 책을 샀다면 여기 어딘가에 나와있을 것이다.


또 없었다. 구매 목록에 없다는 말은 내가 이 책을 알라딘에서 산 적이 없다는 뜻이다. 분명 2000년 내가 알라딘에서 처음 책을 샀던 목록까지 두번이나 꼼꼼하게 살펴봤는데, 없었다. 이쯤되면 바코드가 잘 못 붙어있었거나, 기계 오류이거나, 직원 실수 중 하나일 것이다. 그게 어느 경우든 나는 읽고 싶었던 책 한 권 놓쳤고, 며칠에 걸쳐 집안 책장을 여러번 뒤지고 알라딘 구매 목록을 두 번이나 뒤지는데 시간을 허비했다. 그 시간에 책을 읽었다면 적어도 서너권은 넘게 읽었을 것이다.


다시 그 중고 매장에 가면 그 책을 찾을 수 있을까? 그때 그 직원을 찾아서 따지고 싶은데, 얼굴도 이름도 기억 못 하는데 어떻게 따질수 있을까? 그 책을 찾는데 너무 많은 시간을 허비하는 바람에 이젠 그 책을 읽고 싶은 마음이 싹 달아나버렸다. 적어도 지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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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o 2020-04-20 20: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과장 좀 보태면 오늘은 정말 날씨조차 겨울 같았습니다.
제가 처음 배운 일에 정신나가 있는 동안, 감은빛님께도 이런 저런 일들이 있었네요.
당연히 아시겠지만 제일 중요한 건 건강이지요.
늘 건강 챙기세요^-^

감은빛 2020-04-24 10:28   좋아요 0 | URL
요새 바람이 정말 겨울 바람처럼 차가워요. 일교차도 너무 크구요. 이게 정말 봄날씨가 맞나 싶네요.

처음 배우는 일로 많이 바쁘고 정신없으실텐데, 그 와중에도 책 읽고 글쓰는 모습 보면 신기하고 대단해요. 즐거운 주말 되시길

2020-04-21 09: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4-24 14: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페크pek0501 2020-04-21 22: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 구입했다고 나오는 건 혹시 가족 중에 누가 산 적이 있는 게 아닐까요? 회원 명을 함께 공유하는 경우가 있어서요.
어느 작가인지 기억나지 않는데 구입하긴 했는데 집에서 책을 찾아낼 자신이 없어서 일부러 또 구입했다는 이야기가 있어요. 저도 책 한 번 찾으려면 힘들어서 다시 안 볼 책은 버려야겠다고 다짐을 하곤 하는데 잘 안 됩니다. 아까운 내 자식들 같아서...ㅋ
재택 근무 하시니 좋은 점도 있겠습니다. 장례식장은 저도 적응이 안 되더군요. 참 어려운 장소입니다.
운동하신다니 좋아 보이십니다. 건강을 위해서도, 기분 전환을 위해서도 좋지요.

감은빛 2020-04-24 10:33   좋아요 1 | URL
패크님, 가족이 제 계정으로 샀더라도 구매목록에는 나와야 하는데, 없어서 뭔가 오류였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코로나19로 한동안 자율 출근제로 일해서 집에서 일하는 날이 며칠 있었습니다. 지난 주에 끝났어요.

즐거운 주말 되세요!
 

염려하는 마음


최근 여러 사람들에게 안부 전화를 받거나, SNS를 통해 괜찮은지 묻는 연락을 받는다. 한 이삼년 가량 서로 연락을 못하고 지낸 사람들도 있었고, 몇 달 만에 연락을 주고 받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한 칠팔년 만에 연락이 오는 경우도 있었다. 이렇게 오래도록 소식이 없던 이들이 자꾸 연락을 하는 이유가 있었다. 대부분 내 활동을 곁에서 지켜본 사람들이기에, 최근 내 선택이 얼마나 어렵고 힘든 결정이었을지를 이해해주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지난 주에 만난 한 분은 아주 걱정스런 눈빛과 말투로 내게 "정말 괜찮으시냐?"고 "너무 힘드실 것 같다."고 말했다. 만약 코로나19가 아니었다면 위로와 격려 몸짓을 전했을지도 모르지만, 코로나로 인해 둘 다 마스크를 착용하고 2미터 이상 떨어진 상태에서 어색하게 대화만 주고 받았다. 이 분이 진심으로 나를 걱정해주는 것은 너무나도 고마운 일이지만, 실은 이 상황은 좀 어색했다. 약간 다른 얘기지만 나는 늘 여성들의 공감능력에 감탄하는데, 이 분이 내 상황을 이렇게 잘 알고 계신지 몰랐고, 그래서 이 분의 진심어린 걱정에 한 편 놀라웠고, 한 편 너무 고마웠다.


그리고 그 어렵고 힘들었던 결정을 내렸던 날엔 최근 유난히 가까워진 지인들을 밤 늦게 만났다. 처음에 두어명이 시작했던 술자리는 점점 판이 커져서 나중에는 10명 가까이 늘어났다. 최근 몇 년 사이 가장 친해지기도 했지만, 또 한 편으로는 가장 자주 의견 다툼으로 언성을 높이기도 했던 한 동지는 술집에 들어오자 마자 나를 부둥켜 안고 등을 토닥였다. 갑작스런 포옹에 조금 놀랐지만, 나도 힘껏 그를 안았다. 그 역시 나 처럼 많이 괴롭고 힘들어하다가 결국 어렵고 슬픈 선택을 먼저 내렸던 사람이었다. 


그 날 밤엔 코로나19 따윈 안중에도 없이 여러 사람들과 여러 차례 서로 껴안고 위로하고 격려하며 울고 웃으며 술을 마셨다. 아마 평생 해왔던 것보다 더 많은 사람들과 껴안고 울어보지 않았을까 싶다.


실은 이렇게 여러 사람들이 염려해주는 마음은 정말 고맙지만, 한 편으로 너무 낯설기도 하다. 그래도 어느 정도 친밀함을 공유하는 사이라면 그래도 그렇게 어색하지는 않을텐데, 가끔 예상치 못한 위로를 받으면 어떻게 대응해야 할 지 잘 모르겠다. 며칠 전에 SNS를 통해 몇 년 만에 한 분이 연락을 했다. 앞에도 썼듯이 그때 이후로 그런 연락들이 많이 오긴 하는데, 이 분은 그리 친한 관계가 아니었고, 잠시 알고 지내다가 몇 년 동안 연락이 끊긴 사이였다. 그가 갑작스레 건넨 위로의 말은 너무나도 고마웠지만, 무슨 말로 답을 써야할 지 몰라서 무척 오래 빈 커서만 쳐다보고 있었다. 결국 바로 답을 하지 못하고 시간이 지났고, 그날 밤 술 자리에서 술을 마시다 문득 생각나서 폰으로 답을 하려다가 또 답을 쓰지 못하고 한참을 멍하니 있었다. 결국 하루가 지나서야 내가 쓴 답은 그냥 무척 고맙다는 표현 정도였다. 뭐라 더 쓰고 싶었으나 쓸 말을 찾지 못했다.


어떤 이별, 어떤 슬픔


이처럼 여러 사람들이 내게 위로와 염려의 마음을 전하는 이유는 최근 내가 공개적으로 어떤 이별을 선언했기 때문이다. 그렇다. 내게는 그것이 이별이었다. 비록 그 대상이 사랑하는 한 사람이 아니었지만, 내가 그것과 함께 동고동락한 8년이 조금 넘는 시간은 사랑이라는 표현이 아니면 설명하기 어렵다. 아니 실은 그 긴 시간동안 마음이 맞는 좋은 인연을 수없이 많이 만났고, 그들과 함께 보낸 시간들이 너무나도 아름다운 추억이었기에, 한 사람과의 사랑이 아닌 수많은 사람들과의 사랑이었다고 표현할 수도 있겠다.


모든 시작은 끝을 향해 달려간다는 말이 이렇게 무서운 말이었던가! 나는 이 사랑에 끝이 있을거라고 정말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이렇게 내가 공개적으로 이별을 선언할 수 있을 줄은 정말 몰랐다. 


그리고 너무너무 슬프고 아프고 힘들었다. 매일 술을 마시고, 매 순간 한숨을 내쉬고, 매 시간 무엇에도 집중하지 못하고 멍한 머리를 부여잡고 있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기력증이 나를 덮쳤다. 내 잦은 음주를 자주 걱정하고 잔소리하는 친구는 이번만큼은 "술을 그만 마시라."거나 '술을 좀 줄이라"고 말하지 못했다. 그저 "속 버리지 않도록 조심히 먹어"라고 했다. 이번만큼은 그대 도 내가 술이라도 먹어야 속이 문드러지지 않고 버틸 수 있으리란 걸 짐작했을 것이다.


잘 쓰는 글과 못 쓰는 글


어느 술자리에서 누군가 내가 쓴 공개적인 이별 선언이 무척 잘 쓴 글이라고 추켜세워줬다. 그 글은 내 가장 솔직한 마음을 그대로 풀어쓴 것이었다. 사실 그 글을 쓰기 전에, 그러니까 공개 이별 선언 전에, 이별을 하리라고 마음 먹기 전에, 이별 대신 어떻게든 이것과 함께 해보려고 온갖 노력을 다 하며, 많은 시간을 바치고 있을 때에 나는 글을 쓰지 못했다. 그때는 내 글이 꼭 필요한 시기였는데, 나는 이상하게 평소처럼 머리가 돌아가지 않았고, 글이 써지지 않았고,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때 내가 해야 했었던 말과 써야했었던 글은 아마도 아주 논리적인 글이었을 것이다. 이상하게 라고 표현했지만 실은 이상하지 않고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나는 이 일련의 일들을 겪으며 자꾸만 감정적으로 변해가고 있었고, 이 이해할 수도 해결할 수도 없는 일련의 흐름 속에서 도저히 논리적인 말과 글을 토해낼 수 없었던 걸지도 모른다.


나의 개인적인 이별 선언 후에, 앞서도 말한 최근 급격하게 친해진, 이 일련의 흐름에서 같은 입장을 견지한 소수의 그룹들은 단체로 공개 이별 선언을 다시 쓰기로 했다. 그 글을 내게 써달라는 요청이 많았는데, 나는 도저히 그 글을 쓸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나는 이 사태에 대해서는 더는 논리적인 사고가 불가능할 정도로 큰 충격을 받았다.


대신 나는 나보다 훨씬 더 논리적인 글을 잘 쓸 수 있는 선배에게 요청했다. 그는 바쁘다고 하면서도 내 부탁을 거절하지 못했고, 결국 글을 썼다. 그리고 그 글은 정말 너무나도 잘 쓴 글이었다. 여러 사람들이 대체 누가 쓴 거냐고 궁금해 할만큼 대단한 글이었다. 평소 그 선배에게 이런저런 일들을 많이 도와줘서, 그 선배가 내 부탁을 거절하지 못한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내가 결국 도와줄 이를 찾지 못해 그냥 썼다면 얼마나 망신이었을까? 내 개인의 소회를 담은 글과 여러 사람들이 모인 집단의 입장을 담은 글은 다를 수 밖에 없다.


입당신청서와 탈당신고서


그렇다. 최근 나는 녹색당 전국사무처에 탈당신고서를 제출했다. 2011년 늦가을부터 녹색당 창당을 위해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였던 내가 당을 탈당하라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 실은 도저히 더는 방법이 없다 여겨서 주위 여러 지인들이 이미 탈당을 정해놓고 있을 때에도 나는 그럴 수 없다고 여겼다. 이 이야기는 강조하자면 끝이 없겠지만, 나는 그랬다. 현재 탈당한 많은 당원들 중에서도 나는 마지막까지 당에 남았으면 좋게다. 탈당 외에 다른 방법을 찾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사람 중에 한 명이다.


그랬다. 나는 탈당신고서를 제출했다. 창당을 위해 여기저기 뛰어다닌지 8년 6개월만이다. 작년 늦가을 좀 이상하고 수상한 흐름이 느껴진다고 생각한지 6개월만이다. 어! 이러다 이 당이 망하거나 쪼개질 지도 모른다고 여겨 더 늦기 전에 뭐라도 행동해야지 하면서, 그동안 바빠서 못가던 각종 회의에 참여하기 시작한 지 약 5개월 만이다. 


그리고 나는 많이 노력했다. 평일 저녁에도 자정 가까이 이어지는 회의들, 주말을 다 바쳐야 하는 회의, 일요일 오후 1시에 시작해서 새벽 4시 40분에 끝난 회의(그것도 대전에서), 또 오전 10시에 시작해서 11시에 끝난 회의(또 대전에서), 코로나19 때문에 온라인 회의를 한다면서 카톡으로 10시간 넘게 이어지는 회의들, 심지어 3일 연속으로 짧으면 5시간 길면 8시간 이상 있었던 시간들. 그 외에도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만나왔던 수많은 사람들과 보낸 시간들.


탈당신고서라는 문서를 받아놓고 자판을 두드리기 시작하다가 문득 녹색당과 함께한 기나긴 시간들이 떠올랐다. 한참을 멍하니 빈 화면을 쳐다보다가 다른 글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아까 언급한 개인적인 탈당 소회를 적은 글이었다. 그 글은 내가 얼마나 녹색당을 사랑했는지를 구구절절히 밝혀놓은 일종의 연애편지 같은 글이었다고 본다. 짝사랑에 실패한 후에 적은 연애편지.


탈당신고서를 보내면서는 이런 의문이 들었다. 왜 당에 들어올 때는 입당신청서를 쓰고 당을 나갈 때는 탈당신고서를 써야할까? 어쩌면 신청과 신고라는 단어 사이의 간극이 이런 결과를 초래하지는 않았을까?


구원투수 등판


작년 가을부터 어떻게든 당을 살려보겠다고 나섰던 내게 남은 것은 무력감이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느낌. 사실 작년 늦가을 내가 이 문제를 인지하고 회의 체계에 본격적을 참여하기 시작했을때, 전부터 나를 알던 사람들 중 몇 몇이 이런 표현을 썼다. "결국 저 사람이 등판했네." 저 '등판' 이라는 표현은 마치 나를 구원투수 처럼 여기는 것이었다. 실제로 친한 지인 중에는 '구원투수'라는 표현을 그대로 쓴 사람도 있었다.


그랬다. 부끄럽지만 당시엔 나도 스스로를 마치 구원투수 처럼 여겼다. 당시 상황을 잘 몰라서였을 수도 있겠지만, 내가 그 판 안에 들어가 같이 노력하다보면 분명 해결의 실마리가 보일 거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보이기도 했다. 그 실마리를 잘 풀 수 있을거라고 여겼다. 그러나 결국 실패했다.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나는 애초에 구원에 실패할 수 밖에 없는 투수가 아니었을까 싶다. 애초에 내 능려으로 부족한 일이었다. 아니 누구라도 가능한 일이 아니었다는 생각도 든다.


책임


어쨌거나 나는 실패했고, 나는 떠날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나는 이 모든 부당한 과정과 흐름들에 대한 책임은 언젠가 그들에게 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비록 지금은 도저히 두고 볼 수가 없어서 내가 떠나지만 그들의 명백한 잘못은 분명 어떻게든, 어떤 형태로든 부메랑이 되어 그들에게 돌아갈 것이라고 본다.


글이 또 엄청 길어질 것 같다. 일단은 여기까지 하고 나중에 이어써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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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0-03-30 21: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생 많으셨습니다. 좀 쉬세요.

감은빛 2020-04-20 18:32   좋아요 0 | URL
거의 20일만에 답글을 드려요.
20일이나 늦었지만, 저를 위해 한 말씀 남겨주신 그 마음,
무척 고맙습니다!

페넬로페 2020-03-30 22: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8년동안의 사랑!
정말 수고많으셨어요^^
그냥 지금은 많은 생각보다는
푹 쉬시는게 좋을듯 합니다^^

감은빛 2020-04-20 18:33   좋아요 1 | URL
페넬로페님, 답이 많이 늦어 죄송합니다!
그리고 마음 써주셔서 무척 고맙습니다!

수이 2020-03-30 22: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생하셨어요 감은빛님, 오래 쉬지 못하셨으니 충분히 휴식 취하시면 좋겠어요. 맛있는 거 많이 드시고 건강 꼭 챙기시면서요.

감은빛 2020-04-20 18:34   좋아요 0 | URL
수연님, 고맙습니다!
많이 먹고 많이 쉬고 싶었는데,
몸은 쉬어도 마음이 괴로운 건 어쩔 수 없더라구요.
다만 많이 먹는 것 만큼은 원없이 먹었답니다.

답이 많이 늦어 죄송합니다!

단발머리 2020-03-31 08: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고많으셨어요, 감은빛님.
수고 많으셨습니다.

감은빛 2020-04-20 18:35   좋아요 0 | URL
답이 한참 늦었습니다.
말씀 남겨주셔서 고맙습니다! 단발머리님.

2020-04-18 20: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4-20 18: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4-20 20:27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