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 주제들
누군가와 만나면 대화를 나눈다. 그 대화에는 늘 주제가 있기 마련이다. 문득 궁금해졌다. 나는 주로 무엇을 주제로 사람들과 대화를 나눌까? 그것은 누구와 대화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일 때문에 만난 거래처 직원과 짧게 날씨 이야기나 뉴스에 나온 이슈를 주제로 대화를 나눌 수는 있지만 그것은 단편적이고 피상적일 수 밖에 없다. 그와 나누는 핵심은 당연히 업무 이야기가 될 수 밖에 없다.
마찬가지로 부모님이나 아이들과의 대화는 거의 대부분 일상에서 벌어진 일들을 주제로 이뤄진다. 그들과 티비 드라마나 예능 프로그램이나 뉴스꺼리 들에 대해 대화를 나눌 수는 있지만, 그 역시 핵심적인 내용을 다루기는 쉽지 않다. 수박 껍질을 간신히 핥을 수 밖에 없다.
여기서의 대화 주제는 일의 영역과 가족의 영역을 제외하고, 내 여가 시간에 순전히 좋아서 만나는 사람들(소위 친구라 부를 수 있는 이들)과 나누는 것이라고 좁혀보자. 여기에서 내용 상으로 몇 개를 건져 보면 다음과 같다.
- 책
요즘 같은 시대에도 지인들 중에 책을 많이 읽는 이들이 많다. 지인 중에 출판계 종사자가 많고, 예전부터 친하게 지낸 이들 대부분 책을 많이 읽는 이들이었다. 그래서 만나면 책 이야기를 하는 경우가 많다. 세부 주제로 들어가보면 철학이나 사회과학 분야를 주로 다루는 경우가 압도적으로 많다. 만나는 사람들에 따라서는 가끔 문학을 주제로 하기도 한다.
내가 최근에 술 자리에서 주로 이야기하는 책은 위에 있는 [지혜의 심리학]이다. 김경일 교수는 어쩌다가 영상으로 먼저 만났는데, 영상을 조금 보자마자 그가 설명하는 '인지심리학'이란 학문에 완전히 반해 버렸다. 그의 영상들을 많이 찾아보았고, 책도 구매해서 여러번 읽었다.
요즘은 제법 유명해져서 방송에도 심심찮게 출연하는 모양이더라. 확실히 그의 주장은 참신하고, 그는 청중들의 이목을 잘 끌어오는 스킬을 가졌다. 자기계발서 형식의 편집 구성은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그의 글솜씨도 썩 괜찮았다.
술 자리에서(내가 사람들을 만나는 건 주로 술자리니까) 그가 주로 얘기하는 몇몇 내용들을 들려주면 대부분 신기하다는 듯 내 이야기에 주목한다. 김경일 교수 덕분에 한동안 어디를 가더라도 주목받는 사람이 될 수 있었다.
- 음악
몇몇 친구들과는 음악 이야기도 자주 나눈다. 취향이 비슷한 친구가 권해주는 음악은 두번 생각해볼 필요도 없이 내게도 좋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혹은 취향이 전혀 다른 친구가 추천하는 음악은 내 음악의 지평을 넓혀주며, 새로운 음악에 대한 갈증을 해결해주기도 한다.
새로운 노래를 알게 되는 경로이기도 하고, 특정 가수나 장르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알 수 있는 경로는 [배철수의 음악캠프]다. 아마 배철수 아저씨가 처음 방송을 시작했을 무렵부터 듣기 시작했을 것이다. 그러나 성실한 애청자는 되지 못했다. 평소에는 라디오를 들을 여유가 별로 없어서 거의 듣지 못하고, 주말이나 특정한 행위(운전, 요리 등)를 할 때만 듣는다.
최근에 내가 자주 이야기 한 노래는 위에 소개한 Fifth Harmony 의 [Brave Honest Beautiful] 이다. 아직 카밀라 카베요가 탈퇴하기 전에 발표했던 곡이니 한참 예전 곡이다. 이 노래를 나는 카밀라 카베요가 탈퇴한 이후에 처음 알게 되었는데, 처음 들었던 그때부터 몇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늘 내 플레이리스트 중에서 가장 많이 듣는 곡 중 하나이고, 항상 벨소리로 저장해두는 곡이기도 하다.
이 노래를 좋아하는 이유가 몇 가지 있는데, 우선 초기 카밀라 카베요 특유의 발성을 듣는 것이 좋기 때문이고, 이 곡의 독특한 도입부가 마음에 들기 때문이다.(그래서 늘 벨소리로 사용) 또 아래 가사 내용이 마음에 들기 때문이기도 하다.
You can dance like Beyoncé
You can shake like Shakira
'Cause you're brave, yeah, you're fearless
And you're beautiful, you're beautiful
So whine like Rihanna
Go and pose like Madonna
'Cause you're brave, yeah, you're honest
And you're beautiful, you're beautiful girl
비욘세, 샤키라, 리한나, 마돈나라는 슈퍼스타들을 언급하는 것도 재미있지만, 이 노래의 주제인 "당신도 잘 할 수 있다. 당신은 용감하고, 훌륭하고, 아름답다." 내용이 좋다. 특히 이 노래를 부르는 10대 후반의 청소년 여성들이(핍스 하모니 멤버들의 나이를 정확히 알지 못하지만, 아마 이 노래를 불렀을 당시 멤버 모두가 10대 후반이었을 것이다.) 모두 자기 자신이 이 노래 가사처럼 당당하고 용감하고 훌륭하고 아릅답다는 사실을 깨달았으면 좋겠다.
사실 그래서 이 노래는 내 딸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노래이기도 하다. 내가 좋아하는 노래이기 때문에 이미 아이들은 이 노래를 자주 들어서 잘 알고 있지만, 언젠가는 이 노래 가사들을 설명하면서 아빠가 왜 이 노래를 좋아하는지 들려주고 싶기도 하다.
- 영화 혹은 드라마
아마 가장 많은 사람들이 흔히 나누는 대화는 TV 프로그램에 대한 이야기일 것이다. 지금은 아니지만 출판사에 일할 때 만난 사람들 대다수는 TV 예능 프로그램 이야기나 TV 드라마 이야기를 자주 했다. 나는 집에 TV가 없어서 늘 대화에 소외되는 사람이었다. 누군가 어떤 유행어를 말해도 알아듣지 못한 나는 거의 구석기 시대를 살고 있는 사람 취급을 받았다.
비록 TV가 없어서 소외당하긴 했지만, 영화 이야기가 나오면 다시 대화에 끼어들 수 있었다. 영화는 예전부터 좋아했기 때문에 어느 정도 공감할 수 있는 주제였다. 더구나 요즘은 넷플릭스나 왓챠플레이 같은 앱들을 통해 영화, 해외 드라마, 국내 드라마 등을 쉽게 접할 수 있게 되었다.
영화 이야기를 하면 정말 내용이 길어질텐데, 요건 언젠가 각 영화 별로 따로 이야기를 쓸 계획을 갖고 있으니, 오늘은 그저 지금까지 본 영화 중 내가 가장 좋았다고 생각하는 영화 10개를 한 번 적어보련다. 순서는 매기지 못하겠다. 그저 지금 기준으로 좋았던 영화 중에 10를 선택해본다면 아래와 같다.
청춘 스케치(reality bites)
욕망의 대지(the burning plain)
페어런트 트랩
어바웃 타임
인셉션
이터널 썬샤인
내부자들 디 오리지날
가지니
꾸츠 꾸츠 호타해
그 남자의 사랑법(신이 맺어준 인연)
헐리우드 영화가 6개, 인도 영화가 3개, 우리나라 영화가 1개다. 맨 위 2개는 국내 개봉 제목이 엉망이라 일부러 원제를 괄호 안에 넣었다. 맨 마지막 인도 영화 역시 국내 개봉 제목이 와닿지 않는다고 느껴 원어의 제목을 그대로 괄호 안에 옮겼다.
당연한 얘기지만, 언제나 시점이 가장 중요하다. 이 10개는 지금 선택했기 때문에 뽑힌 것이다. 조금 더 과거로 돌아갔다면 [라빠르망], [레드], [블루], [화이트], [베로니카의 이중생활], [캣피플] 등의 유럽 영화들이 대거 들어갔을 것이다. 특히 크쥐쉬토프 키에스로프스키 감독의 영화들을 좋아했었다.
거기서 좀 더 과거로 돌아가면 지금은 제목도 잘 생각나지 않는 온갖 공포 영화들이 등장했을 것이고, 거기서 다시 좀 더 과거로 돌아가면 홍콩 영화를 비롯한 온갖 액션 영화들이 등장했을 것이다.
말이 나온 김에 드라마도 잠시 언급하자면, 국내 드라마 중에는 거의 본 것이 없어서 뭐라 말하기가 곤란하긴 하다. 학창 시절과 대학 시절에 간간히 보았던 [여명의 눈동자], [모래시계] 정도를 좋았던 드라마로 꼽을 수 있을 것 같은데, 조금 수준이 낮긴 하지만 고등학교 시절에 좋아했던 여성이 홀딱 빠져 있었던 [마지막 승부]도 좋아하는 작품이라 말하긴 어렵지만 잊을 수 없는 작품이라 말할 수는 있겠다. 그 뒤로는 거의 드라마를 본 적이 없으니 건너뛰고, 비교적 최근작들 중에서는 [비밀의 숲]이 괜찮은 작품이라 할 것 같다. [시그널]과 [미스터 션샤인]도 재밌게 보기는 했으나 몇가지 부분에서 아쉬움이 크다. [미생]은 웹툰으로는 제법 읽었던 기억이 있는데, 드라마로는 일부 밖에 보지 못했다. 나중에 시간이 나면 처음부터 쭉 보고 싶은 드라마 이긴 하다.(요새는 이런 걸 정주행이라고 하더라. 그럼 혹시 역주행도 있나?)
아이들이 좋아하는 드라마 중에서는 응답하라 시리즈가 그나마 같이 볼만한데, 그 중에서도 나의 옛 추억들을 떠올릴 수 있는 1994가 그나마 좋았고, 1988도 나쁘지 않았다. 다만 내가 사회와 단절되어 있던 시기인 1997은 전혀 공감이 되지 않더라.
아, 요새 유행하는 [킹덤]과 [인간수업]이라는 넷플릭스 드라마도 재미있었지만, 역시나 여러 면에서 아쉬움이 크다. 그냥 재미라는 측면으로만 보면 만족스러웠던 것 같다.
해외 드라마 역시 많이 보지 못해서 뭐라 할 말은 없는데, 해외는 일단 국내 드라마와 달리 엄청나게 자극적인 작품들이 기억에 남는다. 완전 야하고 완전 잔인한 작품들. [워킹 데드], [왕좌의 게임], [로마], [스파르타쿠스] 등등
또 언젠가 시간이 나면 꼭 봐야지 생각하는 것들은 김용의 [사조영웅전], [신조협려], [의천도룡기]를 드라마로 만든 것들인데, 워낙 여러 편의 드라마가 있어서 뭘 봐야할지 정보도 찾아봐야 할 것 같다. 다만 유역비가 나오는 [신조협려]는 언젠가 꼭 다 보고싶다.
아참, 워쇼스키 자매가 연출한 [센스8]을 참 좋아했는데, 제작비를 감당하지 못해 시즌2에서 접어버린 것이 너무 아쉽다.
음, 이상이 주로 친구들(지인들)과 나누는 대화 주제들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 외에 또 어떤 주제들이 있을지는 이 글을 쓴 후에 차차 생각해보겠다. 예전부터 계속 영화 이야기를 써보고 싶었는데, 글을 쓸 여유를 계속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다. 이것도 일단 한 번 시작하고 나면 간간히 이어갈 수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