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례식장
자주 가도 절대 익숙해질 수 없는 공간 중 하나가 바로 장례식장일 것이다. 오래전 친구 아버님께서 돌아가셨을 때, 3일장을 치루는 내내 친구 곁을 지키며 허드렛일을 했었다. 오래전 할머니께서 돌아가셨을 때와 외할아버지께서 돌아가셨을 때에도 장례식장을 지켰다. 그리고 또 몇 해 전 장인어른께서 돌아가셨을 때에도 (이혼한 이후였지만) 장례식장을 지켰다. 게다가 나이가 들어갈 수록 장례식장에 갈 일이 점점 더 많이 생긴다. 아마 한 달에 한 두번은 가는 것 같다. 특히 지난 겨울에는 유난히 자주 부고 연락을 받았다. 그렇게 자주 가도 도저히 적응이 안 되는 공간이다.
처음에는 부고 연락을 받고 믿을 수가 없었다. 내 또래 지인들 중에서, 엄청 친한 사이는 아니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친하다고 생각할 수 있는 사람 중에 누군가가 먼저 세상을 떠나다니! 그 이름을 보는 순간 바로 그가 부드럽게 웃는 모습이, 누구보다 성실하고 아름다웠던 그의 삶이 떠올랐다. 하필 부고가 날아든 날이 만우절이었다. 설마! 누군가의 장난이겠지. 아니. 그런데 사람 목숨 갖고 장난치는 짓을 내가 아는 누군가가 할 리는 없었다.
장례식장에 들어가 그의 영정사진을 보고서야 이게 현실이구나. 장난이 아니구나. 꿈이 아니구나 싶었다. 하지만 그의 영정을 향해 두 번 큰 절을 올리는 나 자신의 모습은 아무래도 꿈인 것 같았다. 현실이 아닌 것 같았다. 빈소에서는 코로나19 상황 때문에 식사를 제공하지 않았다. 저녁 시간에 갔더니 마침 빈소에서 그의 지인들이 추도식을 열고 있었다. 그가 다양한 활동을 했던 사진과 영상들을 모아 추모영상을 만들어 상영하고 있었다. 저 화면 안에서 환하게 웃는 이를 이제 다시는 볼 수 없다니. 친한 선배 한 명이 지인 대표로 추도사를 낭독했다. 진심을 담은 그의 말들을 들으며 다들 눈물을 흘렸다. 영상을 보면서 울던 이들이 영상이 끝나고 잠시 울음을 그쳤다가, 추도사를 들으며 다시 울었다. 나도 그랬다. 영상을 보면서는 눈물이 맺혔다가 멈췄는데, 추도사를 들으며 눈물이 줄줄 흘렀다.
원인 불명의 쇼크사라고 했다. 자다가 심정지가 일어났는데, 혼자 사는 사람이었기에 아무도 몰랐다고 했다. 그 얘기를 듣는 순간 문득 어느날 나에게도 그런 일이 일어나는 것은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조문을 마치고 아까 추도사를 낭독했던 선배와 함께 돌아가는 길에 그가 문득 생각난 듯이 말햇다. "너도 조심해라. 너도 혼자 사니까 자다가 갑자기 저렇게 가도 아무도 모르잖아. 게다가 너도 스트레스 엄청 심하잖아." 추측하건데 극심한 스트레스가 원인일 거라고 들었다.
건강하던 사람이 갑자기 심정지로 세상을 떠났다. 이제 겨우 40대 중반인데. 입에 발린 말이 아니라 그는 너무나도 훌륭한 사람이었다. 늘 소리없이 조용히 세상에 꼭 필요할 일을 해왔던 사람. 언제나 성실하고 항상 노력하는 사람. 다른 사람들에게는 관대하고 자기 자신에게는 엄격했던 사람. 언제나 낮은 곳을, 그늘진 곳을 향했던 사람. 누구보다 냉철하지만 또 누구보다 따뜻했던 활동가였다. 만약 신이 존재한다면 왜 이렇게 훌륭한 사람을 왜 이렇게 일찍 데려갔냐고 따지고 싶다.
그날 밤 친한 사람들과 술을 마시고 늦게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크게 소리내어 엉엉 울어버렸다. 차마 그의 영정 앞에서는 소리내어 울지 못했는데, 다른 사람들과 술자리에서도 슬픈 마음에 떠들고 놀지는 못했어도 울지는 않았는데, 집에서 혼자가 되니 나도 모르게 울음이 터져 나왔다.
영혼의 존재를 믿지 않고, 내세를 믿지 않지만, 만약 그의 영혼이 어딘가에 존재한다면, 부디 평안하기를 바란다. 그런 날이 올 수 없겠지만, 다시 그와 술잔을 부딪힐 수 있는 날이 오기를. 헛된 바람을 가져본다.
선거운동
아마 녹색당에 탈당계를 낸 다음날이었을 것이다. 길을 걷다가 '국가혁명배당금당' 조끼를 입은 사람이 선거운동을 하는 모습을 보았다. 두 가지 생각이 들었다. 아직 본 선거 기간이 되기 전이라 사전 선거운동에 해당할텐데, 선거법 상 사전 선거운동을 할 수 있는 사람은 무척 제한적이다. 그래서 그가 과연 선거법을 제대로 지키고 있는지 의심이 먼저 들었다. 두 번째는 '저런 당'도 선거운동을 하는데, '우리당(이미 탈당계를 내 놓고도 이런 표현이라니)'은 대체 뭐하는 건지 하는 생각이었다. 이어서 우습게만 생각했던 허경영 씨의 그 당이 부럽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바로 이어서 든 생각은 무심결에 떠오른 위 두 가지 생각에 대한 반성이었다.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선거운동원의 자격을 의심하는 것은 분명 잘못이었다. 게다가 '저런당'이라는 혐오 표현을 쓰다니! 이것 역시 큰 잘못이었다.
탈당을 했기 때문에 이번 선거에는 선거운동에 참여하지 않았다. 녹색당 창당에 참여한 이후로 선거기간에 선거운동을 하지 않고 그냥 지켜보기만 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사실 작년부터 나는 지역에서 후보를 내고 선본을 꾸리기 위해 여러 방면으로 많이 노력했었다. 비록 당이 비정상적으로 운영되면서 결국 후보를 내는 것에 실패하고 탈당을 했지만, 만약 내 노력이 성공했다면 정말 눈 코 뜰 새 없이 바쁜 날을 보내고 있었을 것이다.
선거기간인데도 선거운동에 참여하지도 못하고, 코로나19로 사회 전체적인 분위기도 침체되어 있고, 나 역시도 여러가지 상황들이 겹쳐 우울하고 또 우울한 날들을 보내고 있었다. 이 감정은 선거가 끝나야 회복될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니 과연 선거가 끝난다고 회복이 되긴 할까 하는 의심이 들기도 했다.
그런데 선거 당일 두 번의 술자리에서 술을 진탕 마시고 완전히 취해 돌아와 잠들었다가 깨고 나니 비로소 기분이 조금은 달라진 듯한 느낌이 들었다. 구체적으로 표현할 수는 없지만, 뭔가 마음 깊숙히 가라앉아 있던 돌덩이 하나를 치운 듯한 느낌이 이런 느낌이 아닐까 싶다. 아마 그날 술자리에서 내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내가 얼마나 우울증 때문에 미칠 것 같았는 지를 계속 반복해서 강조했던 것 같다. 그걸 들어주었던 지인들은 고생이 많았겠지만, 덕분에 나는 조금은 개운해진 마음으로 돌아왔다.
선거 결과에 대해서는 할 말이 너무나도 많지만, 이 공간에 남기지는 않으련다. 이 사회도 나도 여러모로 신기하고 새로운 경험을 많이 하는 시기이다. 코로나19라는 세계적으로 전례가 없는 나날들. 준연동형비례대표제로 선거제도를 개혁했지만, 위성정당이라는 꼼수가 난무해 더 심각하게 양당제로 고착화 되어 버린 선거 결과(물론 한 쪽이 참패하면서 양당제 고착화라는 단어가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이전과 비교해 소수 정당의 의석이 더욱 줄어들었다는 의미에서는 맞는 표현이라 생각한다.)가 참 우습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하다. 이러려고 선거 개혁을 위해 애썼던가 싶은 허탈한 마음이 든다. 한 편 유래없이 많은 의석을 차지한 여당과 그 위성정당이라는 결과도 너무나도 참담하면서도 웃기다. 역시 현실은 영화나 소설보다 훨씬 더 극적이고, 그 어느 희극작품보다 더 웃기다. 에이 말을 하지 않겠다고 해놓고는 주저리 주저리 써놓았네. 이제 그만.
운영위원장
작년 이맘때 내가 쓴 글을 보면 한동안 녹색당 지역 운영위원 직을 맡지 않고 잠시 활동당원으로만 남아 있었다가 다시 지역 운영위원장이라는 당의 공식 직책을 맡았다는 글을 썼었다. 이제는 탈당했지만, 지난 1년 동안 나는 당원들이 뽑아준 선출직 운영위원장이라는 직책에 부끄럽지 않을 만큼 열심히 활동했다고 자부할 수 있다. 그리고 올해 또 다른 단체의 운영위원장이라는 부담스러운 직책을 맡았다. 정말 안 맡고 싶었고, 여러 번 고사했음에도 결국은 그렇게 되었다.
만약 내가 잘 할 수 있는 역할이라면 고사하지 않고, 오히려 감사한 마음으로 열심히 활동하리라고 다짐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지금의 이 지친 몸과 마음으로는 도저히 이렇게 큰 역할을 잘 하리라고 생각하기 어렵다. 억지로 떠맡은 자리를 과연 얼마나 잘 유지할 수 있을지 걱정이다.
왼손 사용
엄마 말에 따르면 어렸을 때 나는 양손잡이였다고 했다. 그런데 내가 왼손을 쓸 때마다 할머니께서 내 손을 탁 하고 쎄게 때렸다고 했다. 어렸을 때 한동안 할머니 집에서 살았던 적이 있었는데, 그때 그랬던 모양이다. 그래서 어느 날부터는 내가 왼손을 쓰지 않고 오른손만 쓰게 되었다고 했다. 왼손을 주로 썼던 시절의 습관은 커서도 남았다.
학창시절 야구를 할 때, 우타석에 들어가면 어깨와 팔을 휘두르는 느낌이 뭔가 부자연스러웠다. 분명 난 오른손잡이인데도 그랬다. 내 자세를 유심히 살펴본 친구가 좌타석에 들어가보라고 해서 좌타자로 배트를 휘둘렀더니 한결 자연스러웠다. 그리고 생활 속에서 몇 몇 특정한 동작들은 오른손으로 하면 오히려 힘을 주기 어렵고 왼손으로 하는 것이 훨씬 더 편하고 힘도 잘 전달되는 것을 느낀다. 이건 어쩌면 오랫동안 굳어온 습관 때문일 것인데, 글씨를 쓰고, 밥을 먹는 등의 중요한 것들은 다 오른손으로 바꿨고 그 습관이 굳어졌지만, 자잘한 몇몇 행동들은 여전히 왼손을 사용해왔고 그 습관이 굳어진 것이 아닌가 싶다. 그런데 오랫동안 오른손만 주로 쓰는 것이 익숙해져서 이제는 왼손 사용이 무척 낯설고 어렵게 느껴질 때가 많다.
아마 한 달쯤 전이었던 것 같다. 친한 형이랑 오랜만에 만났다. 그 형은 일하다가 오른손 중지를 다쳐서 부분 깁스로 고정한 상태였다. 손이 그러니 일도 제대로 못하고 밥을 먹거나 씻는 일도 잘 못한다고 했다. 그런데 그렇게 말해놓고는 왼손으로 젓가락지를 잘도 하면서 밥을 잘 먹는 것이었다. 내가 어떻게 왼손으로도 젓가락질을 그렇게 잘 하냐고 물었더니, 군대에 있던 시절 고참이 밥을 너무 빨리 먹는다고 갈구면서 천천히 먹으라고 명령해서 그때부터 그 고참이 제대할 때까지 왼손을 젓가락질을 해서 밥을 먹었다고 했다. 엄청 오래된 옛날 일이지만, 그때의 경험 덕분에 그 형은 오른손을 다쳐서 쓸 수 없는 상황에서도, 왼손으로 밥을 잘 먹는다고 했다.
아주 오래전 만화방에서 읽었던 이현세 화백의 어느 권투 만화가 떠올랐다. 그 만화의 주인공인 오혜성(일명 까치)은 한때 잘나가다가 무슨 일로 한동안 링을 떠나있다가 다시 복귀한 복서였다. 그가 체육관에서 다시 운동을 시작해 몸을 만들면서 동시에 중요하게 했던 일이 왼손 젓가락질로 콩을 집는 일이었다. 왼손을 오른손만큼 능숙하게 사용해야 권투를 잘 할 수 있다는 이유 때문에 주인공이 한동안 왼손 젓가락질에 매달렸던 장면이 있었다. 그 장면을 왜 또렸이 기억하냐면 당시 내가 권투와 태권도를 섞어 놓은 족보 없는 이상한 격투기를 배우고 있었고, 그때 나는 그 격투기를 잘 하기 위해 권투 자세를 익혀야 했는데, 만약 그 왼손 젓가락질을 능숙하게 할 수 있다면 나도 권투를 잘 할 수 있을까 하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물론 나는 며칠 시도해보다가 금방 포기했을 것이다.
어쨌거나 그 형이 왼손으로 능숙하게 밥을 먹는 장면은 내게 무척 인상적이었다. (그 형에게 늦은 나이지만, 복서로 나가 보라는 말을 해볼까 하다가 참았다. ㅎㅎ) 이후로 나도 가끔 아주 가끔 왼손으로 마우스를 움직이거나 터치 패드를 조작하는 등 일상에서 왼손을 조금 더 사용하려고 의식하곤 한다. 늦은 나이의 복서는 내가 시도해 볼까나? 대학 시절 학과 교수님 중에 연장자에 속했던 교수님 한 분은 아주 늦은 나이에 아마추어 복서로 데뷔해 조그만 지역 대회에서 상도 받았었다. 당시 그 교수님의 연구실에는 샌드백이 걸려있었고, 글러브가 눈에 잘 띄는 곳에 놓여 있었다.
당시 교수님 연세가 몇 이었을지 궁금해서 글을 두드리다가 검색해봤다. 헐! 결과는 무척 충격적이다. 지금 내 나이보다 더 어렸다니! 당시에 그렇게 늙어 보였는데, 아니 실제로 아주 늙은 교수님이라고 여겼었는데. 내가 벌써 이렇게나 늙어버렸구나.
다시 운동 시작
약 2주 전부터 슬금슬금 다시 운동을 시작했다. 각종 관절 통증이 가끔 괴롭히고 있어서 아직 본격적인 시작은 아니고, 서서히 몸을 만들어가며 워밍업을 하는 단계다. 요즘은 특히 달리기에 집중하고 있다. 무릎 부상 이후 약 1년 8개월. 그동안 뜀박질을 제대로 못해서 좀이 쑤셨다. 다시 달리다가 또 부상을 당할까봐 무섭기도 했고, 가끔 뛰어야 할 상황에서 유연성과 심폐지구력 때문에 예전처럼 제대로 뛰지 못하기도 해서 이젠 안 되나보다 하고 포기하고 살았는데, 어느날 다시 뛰어보니 되더라. 신나서 며칠 연속 뜀박질을 이어하고 있다.
나이키 런닝 앱을 깔았더니 총 거리와 평균 속도와 칼로리 소모량 등을 알려줘서 내가 이렇게 달렸구나 하고 알 수 있어서 좋았다. 운동장이나 트랙을 도는 것이 아니라 거리를 달리는 것은 여러모로 변수가 많다. 골목에서 갑자기 차가 튀어나올 수도 있고, 신호에 걸려 멈춰서야 하는 경우도 잦다. 그래서 단조로운 운동장이나 트랙보다 훨씬 재미있기도 하다. 다만 내 체력 때문이 아니라 상황 때문에 멈춰서거나 속도를 줄여야 하는 경우가 많으니 이렇게 내 뜀박질 경로와 각 단계의 속도를 알 수 있으면 큰 도움이 된다.
인간이 다른 동물에 비해 용량이 큰 뇌를 가진 이유는 달리기 위해서라는 연구 결과가 있다고 들었다. 차를 운전해 본 사람은 아마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속도에 비례해 짧은 시간 다양한 변수에 대비해 빠르게 판단하고 이를 행동에 옮겨야 한다. 잠시 머뭇거린다면 다음 순간 큰 재앙이 찾아올 수도 있다. 그래서 빠르게 달리면서 다음 상황을 예측하고 그에 맞춰 내 다음 행보를 결정하고 실행에 옮기기 위해 용량이 큰 뇌가 필요한 거라고 이해했다.
달리기는 정말 재미있고 매력적인 운동이다. 내 몸(지방)을 태워 얼마나 빨리 달릴 수 있을지를 가늠해 보는 것은 얼마나 가슴 설레는 일인가! 특히 차량의 흐름과 교통 신호라는 변수에 힘입어 버스보다 먼저 목적지에 도착하는 일은 또 얼마나 큰 성취감을 주는지 모른다.
물론 달리기보다 더 재미있는 운동도 많다! 케틀벨과 바벨과 덤벨과 철봉 등 한동안 장식품이나 빨래 걸이로 사용했던 녀석들을 다시 원래 용도로 사용할 때가 되었다. 지금부터 본격적으로 운동을 시작하면 아마 여름 중반쯤에는 뽐낼만한 몸매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다. (술과 관절통증과 야근과 과로라는 장애를 잘 넘어간다면, 아마도)
책, 사고 팔기 그리고 찾기
좁디 좁은 작은 방에 책상을 하나 들여놓았다. 코로나19로 인해 재택 근무를 하는 시간이 늘어났는데, 아무래도 좌식 탁자에 오래 앉아 일하기가 너무 힘들었다. 책상을 들여놓기 위해 바닥에 탑 무더기처럼 쌓여있던 책들을 정리해야 했다. 책정리를 시작하면서 이제 다시 읽을 일이 없을 것 같은 책들을 팔거나 버리려고 내놓았다. 생각보다 많았다. 불과 2년쯤 전에 이 집으로 이사오면서는 차마 버리지 못하고 싸들고 왔던 책들이었다. 그 2년 사이에 무엇이 얼마나 바뀌었길래 나는 꽤 많은 책들을 정리해서 내놓았을지 궁금하다.
팔 수 있는 책들을 알라딘 중고 매장에 팔아보려고 앱에서 바코드를 찍어보니, 대다수의 책들이 판매불가 상태이거나 팔더라도 1천원 남짓 아주 낮은 가격으로 나왔다. 새삼 이 책들이 얼마나 중요한 내용을 담고 있는데, 겨우 그 가격에 내놓아야 하는가 싶어서 도로 책장에 꽂은 책들도 제법 된다. 그래도 책상 놓을 자리를 만들기 위해 억지로 책들을 큰 가방 두 개에 우겨넣었다. 몇 년 전에 비해 매입가격이 많이 낮아진 것 같다.
그렇게 무거운 책을 짊어지고 알라딘 중고매장을 향했다. 무사히 책을 팔고 또 중고책 2권을 계산대로 가져갔다. 그런데 직원이 그 중 한 권을 찍어보더니 이전에 구매했던 책이라고 알려줬다. 나는 속으로 '구매한 기억이 없는데, 이상하다!' 생각했지만, 내가 사놓고도 기억 못하는 책이 한 두권이 아니지 싶은 생각에 약간 부끄러운 마음으로 "그럼 그 책은 빼주세요."라고 말했다.
그 책이 읽고 싶었던 나는 집에 돌아오자마자 그 책을 찾아보았다. 팔거나 버릴 책들을 골라내면서 대체로 책들을 훑어봤기 때문에 그 책이 기억에 없다는 사실이 이상하다 여기며, 내가 놓친 구역이 어디인지 파고들었다. 없었다. 밥도 안 먹고, 잠도 안 자고 몇 시간을 책장을 훑으며 집중했건만 그 책을 찾지 못했다.
다음날에도 퇴근 후 다시 책을 찾기 시작했다. 전날 너무 피곤한 상태에서 놓쳤을 수 있겠다는 생각으로 차근차근 다시 꼼꼼하게 찾았다. 그래도 없었다. 그쯤되니 '그래. 분명 내가 그 책을 산 기억이 없는데.' 싶었다. 알라딘에 들어와 구매 목록을 살폈다. 온라인 구매와 중고 매장 구매 내역이 모조리 포함되어 있으니, 만약 내가 이 책을 샀다면 여기 어딘가에 나와있을 것이다.
또 없었다. 구매 목록에 없다는 말은 내가 이 책을 알라딘에서 산 적이 없다는 뜻이다. 분명 2000년 내가 알라딘에서 처음 책을 샀던 목록까지 두번이나 꼼꼼하게 살펴봤는데, 없었다. 이쯤되면 바코드가 잘 못 붙어있었거나, 기계 오류이거나, 직원 실수 중 하나일 것이다. 그게 어느 경우든 나는 읽고 싶었던 책 한 권 놓쳤고, 며칠에 걸쳐 집안 책장을 여러번 뒤지고 알라딘 구매 목록을 두 번이나 뒤지는데 시간을 허비했다. 그 시간에 책을 읽었다면 적어도 서너권은 넘게 읽었을 것이다.
다시 그 중고 매장에 가면 그 책을 찾을 수 있을까? 그때 그 직원을 찾아서 따지고 싶은데, 얼굴도 이름도 기억 못 하는데 어떻게 따질수 있을까? 그 책을 찾는데 너무 많은 시간을 허비하는 바람에 이젠 그 책을 읽고 싶은 마음이 싹 달아나버렸다. 적어도 지금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