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구 없음


날씨의 변덕 때문인지 요즘 계속 몸 상태가 좋지 않다. 봄인데도 겨울인가 싶을 정도로 밤 기운이 내려가는 일교차가 큰 날씨가 계속되더니, 갑자기 여름인 것처럼 더운 날이 이어졌다. 나만 겨울을 사는 것 같아 깜짝 놀라서 얇은 옷을 입고 다녔더니 다시 또 날이 쌀쌀해졌다. 이게 무슨 봄 날씨란 말인가? 


해마다 봄이면 여름을 대비해 몸 만들기에 들어가는데, 올해는 아직 시작도 못하고 있다. 2월부터 4월까지는 아주 낮은 강도로 운동을 이어가며 서서히 본격적인 운동에 돌입하기 위한 워밍업 단계를 밟고 있었다. 4월 말부터 워밍업을 끝내고 한동안 못했던 운동을 열심히 해야지 생각했다. 그간 운동을 제대로 못했기에 운동에 대한 욕구가 컸다.


그런데 4월 말부터 갑자기 몸 컨디션이 나쁘다 느껴지더니 한동안 괜찮았던 관절 통증도 다시 시작되었다. 관절이 여기저기 아프니 움직이는 것이 힘들고 만사가 귀찮아졌다. 그러다보니 사람들과 만나는 일도 어지간하면 다음으로 미뤘다. 예전 같았으면 밤에 자다가도 나갔을 술자리를 초저녁에 거절하고, 집에 들아가 일찍 잠드는 나를 보면서 참 낯설었다. 이건 어쩌면 정신적인 영향도 있을 것이다. 설명하기 어렵지만 어느 순간 갑자기 모든 의욕이 사라졌다. 운동에 대한 욕구도, 맛있는 음식에 대한 욕구도, 심지어 성욕 마저도.


지금도 머리로는 매일 5km씩 달리고, 풀업과 에어스쿼트와 케틀벨 스윙을 하고, 이틀에 한 번씩 데드리프트와 스냇치와 클린앤저크를 하고, 일주일에 한 번씩은 버피를 하는 내 모습을 그려보지만, 현실의 나는 그냥 아무것도 안 하고 하루를 보낸다. 일도 하기 싫지만, 안 할 수는 없으니 꼭 해야 하는 일들을 처리하면서 시간을 보낸다. 책도 손에 잡히지 않고, 글도 쓰이지 않는다.


뭐, 살다보면 이런 시기도 있는 거겠지. 바쁘게 살아온 만큼 잠시 쉬어갈 수도 있는 거겠지. 잠시 이러다가 또 다시 이런저런 욕구들이 솟구칠 수도 있겠지. 지금은 그저 이렇게 생각할 뿐.


노안


처음엔 스마트폰이었다. 어느날 갑자기 누군가 보낸 메시지를 읽으려는데 촛점이 맞지 않고 흐리게 보였다. 안경을 낀 상태로는 도저히 보이지 않아 벗었더니 잘 보였다. 밤에 불을 끄고 자려고 누웠다가 잠이 오지 않아 스탠드 불을 켜고 폰으로 SNS를 들여다 보려는데, 이때도 안경을 낀 상태로는 촛점이 맞지 않았다. 안경을 벗으니 비로소 잘 보였다.


처음엔 왜 그런지 잘 이해가 되지 않았는데, 가만 생각해보니 이게 바로 노안이었다. 언젠가 술 자리에서 나보다 서너살 많은 선배가 아직 노안이 오지 않았냐고 자신은 40대 들어서자마자 노안이 왔었다고 신기해하며 캐물었던 것이 생각났다. 드디어 나에게도 노안이 왔구나. 이렇게 써놓고 나니 마치 손님이 온 것 같은 느낌이지만, 만약 거절할 수 있다면 결고 맞고 싶지 않은 손님이다. 


하지만 인간은 노화를 거역할 수 없는 법. 이제 나는 노안에 익숙해져야 한다. 노안과 더불어 살아가는 법을 익혀야 할 것이다. 이렇게 늙어가는구나 생각하니 새삼 서글퍼진다.



어버이 날


해마다 5월이면 어버이 날과 스승의 날이 온다. 가끔 이런 날을 왜 굳이 만들었나 생각이 들기도 한다. 1년에 딱 하루만 그 의의를 생각하며 나머지 364일은 모르고 살아도 된다고 면죄부를 주는 것 같다는 생각이다. 어쨌건 올해도 어버이 날이 지나갔다. 부산 부모님께는 계좌로 약간의 용돈을 보내드리고 전화를 드렸다. 멀리 있어 자주 찾아 뵙지도 못하는데, 전화도 자주 드리지 못하는 자식 입장에서 늘 불효자일 수 밖에 없다.


마침 어버이날이 금요일이라 저녁에 아이들을 만났다. 아이들은 만나자 마자 손수 이쁘게 꾸민 작은 종이 봉투를 내밀었다. 뭔가 맛있는 걸 먹으려고 근처 식당들을 돌아다녔는데, 식당들이 모두 꽉 차서 빈 자리가 없었고, 그 중 몇몇 식당은 기다리는 사람들이 줄을 서있기도 했다. 어버이 날이라 유독 저녁 시간에 손님이 몰린 것 같았다.


아이들과 어떻게 할 지 조금 고민하다가 마침 빈 자리가 난 고깃집으로 들어갔다. 열심히 고기를 구워 먹이려는데, 큰 아이는 요즘 고기가 먹고 싶지 않다며 입에 대지 않았다. 대신 밥과 된장찌개를 먹길래 냉면도 시켜줬다. 작은 아이와 나는 열심히 고기를 먹었다. 어느 정도 배가 찬 후에야 찬찬히 아이들이 전해준 편지들을 열어봤다. 각자의 편지는 그 나름대로의 정성이 느껴졌다. 해마다 받아보는 편지는 어쩔수 없이 형식적이지만, 또 어쩔수 없이 그 진심을 담는다.


이번 큰 아이의 편지는 유독 그런 느낌이 강했다. 아이가 갑자기 쑥 커서 어른이 되어버린 느낌. 이제 곧 어른이 되어 나와 함께 여러가지 일들을 같이 할 거라는 글을 읽으며 갑자기 눈물이 나려는 걸 참느라 혼났다.


그 와중에 동네 선배 한 분이 식당에 들어오며 내 어깨를 툭 치고 반가운 척을 했다. 여러모로 이름이 알려진 유명한 분이신데, 술을 좋아하는 분이라 동네 술집에서 종종 마주치곤 했었다. 이번엔 형수님과 두 분이서 들어오셨다. 우리 자리 뒤쪽에 자리를 잡고 앉으시는 걸 보고 나는 아이들과 떠들며 남은 음식을 먹고 술을 마셨다.


한참 후에 그 선배가 우리 자리로 와서 아이들에게 용돈을 주고 싶다고 했다. 나는 소주 한 잔을 털어넣고, 막 고기쌈을 입 안 가득 넣은 직후라 대답을 할 수 없었다. 그 선배는 아이들에게 만원짜리 한 장씩을 쥐어주셨고, 아이들은 고맙습니다. 인사를 했다. 입안의 음식을 급하게 씹은 후 안 주셔도 되는데 라고 겨우 한 마디 할 수 있었다. 선배는 술 한 잔 따라주겠다며 내 술잔을 채워주고 돌아갔다.


사실 몇 년 전부터 어떤 사건으로 인해 그 선배와 약간 애매한 관계가 되었다. 어느 날엔가는 술 자리에서 조금 다툼이 있기도 했다. 나는 나 대로 그 사건에 대한 입장이 명확했고, 그 선배 역시 자신의 입장에서 조금도 양보가 없었다. 그 사건은 제대로 해결되지 못하고 그냥 봉합되었고, 그렇게 시간이 지나버렸다. 그가 왜 굳이 내 자리로 건너와 술잔을 채워줬는지 조금은 이해할 수 있는 느낌이 들었다. 아마 입장을 바꿔 내가 그였다면 결코 그렇게 하지 않았을테지만.


꽃, 사진, 우중충한 날씨


지난 주말에는 큰 아이가 몇 해전에 다녀왔던 수목원에 다시 가고 싶다고 해서 함께 다녀왔다. 날씨가 좋았다면 훨씬 더 좋았을텐데, 날이 흐려서 그런지 기분이 별로였다. 그래도 열심히 사진을 찍고 또 열심히 놀았다. 놀 수 있을때 놀아야지. 또 언제 이렇게 놀겠나.


생각해보면 이제 정말 기회가 별로 없는 것 같다. 아이들은 금방 자랄테고, 다 자라면 부모와 보내는 시간은 자연스레 줄어들 수 밖에 없다. 아이들은 곧 자라서 어른이 되어 세상으로 나갈테니. 나는 또 그만큼 늙어 예전처럼 체력이 받쳐주지 못할 것이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큰 아이가 말했다. 다음에 날씨가 쨍한 날에 다시 오자고. 그러자. 그땐 오늘보다 더 열심히 더 재밌게 놀자꾸나.



언어 천재의 두 번째 책

_유쾌한 태도를 가질 수 있는 방법은?


15개가 넘는 외국어에 통달했고, 25개가 넘는 언어를 우리말로 옮겼다. 그냥 소개 글만 읽었을 때부터 무척 궁금해졌다. 페이스북 친구를 맺고 난 후에는 그의 유머 감각이라던가, 그가 얼마나 다방면에 관심이 많은지 등을 알 수 있었다. 그의 두 번째 책이 나왔다. 빨리 주문해서 읽어보고 싶다.
















이 책 제목을 보면서, 또 평소 저자의 페이스북을 보면서 느끼는 건 유쾌한 태도가 삶에 미치는 여향이 무척 클 것이라는 점이다. 돌아보면 나는 썩 유쾌하지 못한 인간이다. 늘 무표정이고, 늘 진지한 태도로 무언가를 고찰한다. 내 일상에서 웃음이라고는 아이들과 지내는 시간 뿐이다. 나도 평소 유쾌한 태도를 가질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 고민해봐야겠다.



어제 책장을 조금 정리하다가 말았는데, 내가 이런 책도 샀던가 싶은 책이 몇 권 있었다. 예전에는 책을 사면 발췌독이라도 조금씩 해놓고 책장에 꽂아두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사놓고 한 번 펼쳐보지도 않은 책들이 늘아나고 있다. 꼭 읽고 싶어서 산 책이라면 분명 기억이라도 할텐데, 이런 책이 있었나 싶은 책이라면 그닥 큰 고민없이 샀던 모양이다.


집에 있는 읽지 않은 책들을 다 읽기 위한 중장기 프로젝트를 기획해야겠다. 비록 기획안만 써놓고 말지라도 그 기획안을 쓰는 동안이라도 묵은 책들을 다 읽으리라는 의지를 불태울 수 있을테니. 그 의지가 얼마나 갈 지 모르지만, 아예 없는 것 보다는 나을테니.


흐린 날의 오후: 우울함


언젠가 직장인이 가장 우울한 날이 수요일이란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오늘은 날이 흐려 기분이 더 우울한 것 같다. 빨리 퇴근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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