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려하는 마음


최근 여러 사람들에게 안부 전화를 받거나, SNS를 통해 괜찮은지 묻는 연락을 받는다. 한 이삼년 가량 서로 연락을 못하고 지낸 사람들도 있었고, 몇 달 만에 연락을 주고 받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한 칠팔년 만에 연락이 오는 경우도 있었다. 이렇게 오래도록 소식이 없던 이들이 자꾸 연락을 하는 이유가 있었다. 대부분 내 활동을 곁에서 지켜본 사람들이기에, 최근 내 선택이 얼마나 어렵고 힘든 결정이었을지를 이해해주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지난 주에 만난 한 분은 아주 걱정스런 눈빛과 말투로 내게 "정말 괜찮으시냐?"고 "너무 힘드실 것 같다."고 말했다. 만약 코로나19가 아니었다면 위로와 격려 몸짓을 전했을지도 모르지만, 코로나로 인해 둘 다 마스크를 착용하고 2미터 이상 떨어진 상태에서 어색하게 대화만 주고 받았다. 이 분이 진심으로 나를 걱정해주는 것은 너무나도 고마운 일이지만, 실은 이 상황은 좀 어색했다. 약간 다른 얘기지만 나는 늘 여성들의 공감능력에 감탄하는데, 이 분이 내 상황을 이렇게 잘 알고 계신지 몰랐고, 그래서 이 분의 진심어린 걱정에 한 편 놀라웠고, 한 편 너무 고마웠다.


그리고 그 어렵고 힘들었던 결정을 내렸던 날엔 최근 유난히 가까워진 지인들을 밤 늦게 만났다. 처음에 두어명이 시작했던 술자리는 점점 판이 커져서 나중에는 10명 가까이 늘어났다. 최근 몇 년 사이 가장 친해지기도 했지만, 또 한 편으로는 가장 자주 의견 다툼으로 언성을 높이기도 했던 한 동지는 술집에 들어오자 마자 나를 부둥켜 안고 등을 토닥였다. 갑작스런 포옹에 조금 놀랐지만, 나도 힘껏 그를 안았다. 그 역시 나 처럼 많이 괴롭고 힘들어하다가 결국 어렵고 슬픈 선택을 먼저 내렸던 사람이었다. 


그 날 밤엔 코로나19 따윈 안중에도 없이 여러 사람들과 여러 차례 서로 껴안고 위로하고 격려하며 울고 웃으며 술을 마셨다. 아마 평생 해왔던 것보다 더 많은 사람들과 껴안고 울어보지 않았을까 싶다.


실은 이렇게 여러 사람들이 염려해주는 마음은 정말 고맙지만, 한 편으로 너무 낯설기도 하다. 그래도 어느 정도 친밀함을 공유하는 사이라면 그래도 그렇게 어색하지는 않을텐데, 가끔 예상치 못한 위로를 받으면 어떻게 대응해야 할 지 잘 모르겠다. 며칠 전에 SNS를 통해 몇 년 만에 한 분이 연락을 했다. 앞에도 썼듯이 그때 이후로 그런 연락들이 많이 오긴 하는데, 이 분은 그리 친한 관계가 아니었고, 잠시 알고 지내다가 몇 년 동안 연락이 끊긴 사이였다. 그가 갑작스레 건넨 위로의 말은 너무나도 고마웠지만, 무슨 말로 답을 써야할 지 몰라서 무척 오래 빈 커서만 쳐다보고 있었다. 결국 바로 답을 하지 못하고 시간이 지났고, 그날 밤 술 자리에서 술을 마시다 문득 생각나서 폰으로 답을 하려다가 또 답을 쓰지 못하고 한참을 멍하니 있었다. 결국 하루가 지나서야 내가 쓴 답은 그냥 무척 고맙다는 표현 정도였다. 뭐라 더 쓰고 싶었으나 쓸 말을 찾지 못했다.


어떤 이별, 어떤 슬픔


이처럼 여러 사람들이 내게 위로와 염려의 마음을 전하는 이유는 최근 내가 공개적으로 어떤 이별을 선언했기 때문이다. 그렇다. 내게는 그것이 이별이었다. 비록 그 대상이 사랑하는 한 사람이 아니었지만, 내가 그것과 함께 동고동락한 8년이 조금 넘는 시간은 사랑이라는 표현이 아니면 설명하기 어렵다. 아니 실은 그 긴 시간동안 마음이 맞는 좋은 인연을 수없이 많이 만났고, 그들과 함께 보낸 시간들이 너무나도 아름다운 추억이었기에, 한 사람과의 사랑이 아닌 수많은 사람들과의 사랑이었다고 표현할 수도 있겠다.


모든 시작은 끝을 향해 달려간다는 말이 이렇게 무서운 말이었던가! 나는 이 사랑에 끝이 있을거라고 정말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이렇게 내가 공개적으로 이별을 선언할 수 있을 줄은 정말 몰랐다. 


그리고 너무너무 슬프고 아프고 힘들었다. 매일 술을 마시고, 매 순간 한숨을 내쉬고, 매 시간 무엇에도 집중하지 못하고 멍한 머리를 부여잡고 있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기력증이 나를 덮쳤다. 내 잦은 음주를 자주 걱정하고 잔소리하는 친구는 이번만큼은 "술을 그만 마시라."거나 '술을 좀 줄이라"고 말하지 못했다. 그저 "속 버리지 않도록 조심히 먹어"라고 했다. 이번만큼은 그대 도 내가 술이라도 먹어야 속이 문드러지지 않고 버틸 수 있으리란 걸 짐작했을 것이다.


잘 쓰는 글과 못 쓰는 글


어느 술자리에서 누군가 내가 쓴 공개적인 이별 선언이 무척 잘 쓴 글이라고 추켜세워줬다. 그 글은 내 가장 솔직한 마음을 그대로 풀어쓴 것이었다. 사실 그 글을 쓰기 전에, 그러니까 공개 이별 선언 전에, 이별을 하리라고 마음 먹기 전에, 이별 대신 어떻게든 이것과 함께 해보려고 온갖 노력을 다 하며, 많은 시간을 바치고 있을 때에 나는 글을 쓰지 못했다. 그때는 내 글이 꼭 필요한 시기였는데, 나는 이상하게 평소처럼 머리가 돌아가지 않았고, 글이 써지지 않았고,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때 내가 해야 했었던 말과 써야했었던 글은 아마도 아주 논리적인 글이었을 것이다. 이상하게 라고 표현했지만 실은 이상하지 않고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나는 이 일련의 일들을 겪으며 자꾸만 감정적으로 변해가고 있었고, 이 이해할 수도 해결할 수도 없는 일련의 흐름 속에서 도저히 논리적인 말과 글을 토해낼 수 없었던 걸지도 모른다.


나의 개인적인 이별 선언 후에, 앞서도 말한 최근 급격하게 친해진, 이 일련의 흐름에서 같은 입장을 견지한 소수의 그룹들은 단체로 공개 이별 선언을 다시 쓰기로 했다. 그 글을 내게 써달라는 요청이 많았는데, 나는 도저히 그 글을 쓸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나는 이 사태에 대해서는 더는 논리적인 사고가 불가능할 정도로 큰 충격을 받았다.


대신 나는 나보다 훨씬 더 논리적인 글을 잘 쓸 수 있는 선배에게 요청했다. 그는 바쁘다고 하면서도 내 부탁을 거절하지 못했고, 결국 글을 썼다. 그리고 그 글은 정말 너무나도 잘 쓴 글이었다. 여러 사람들이 대체 누가 쓴 거냐고 궁금해 할만큼 대단한 글이었다. 평소 그 선배에게 이런저런 일들을 많이 도와줘서, 그 선배가 내 부탁을 거절하지 못한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내가 결국 도와줄 이를 찾지 못해 그냥 썼다면 얼마나 망신이었을까? 내 개인의 소회를 담은 글과 여러 사람들이 모인 집단의 입장을 담은 글은 다를 수 밖에 없다.


입당신청서와 탈당신고서


그렇다. 최근 나는 녹색당 전국사무처에 탈당신고서를 제출했다. 2011년 늦가을부터 녹색당 창당을 위해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였던 내가 당을 탈당하라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 실은 도저히 더는 방법이 없다 여겨서 주위 여러 지인들이 이미 탈당을 정해놓고 있을 때에도 나는 그럴 수 없다고 여겼다. 이 이야기는 강조하자면 끝이 없겠지만, 나는 그랬다. 현재 탈당한 많은 당원들 중에서도 나는 마지막까지 당에 남았으면 좋게다. 탈당 외에 다른 방법을 찾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사람 중에 한 명이다.


그랬다. 나는 탈당신고서를 제출했다. 창당을 위해 여기저기 뛰어다닌지 8년 6개월만이다. 작년 늦가을 좀 이상하고 수상한 흐름이 느껴진다고 생각한지 6개월만이다. 어! 이러다 이 당이 망하거나 쪼개질 지도 모른다고 여겨 더 늦기 전에 뭐라도 행동해야지 하면서, 그동안 바빠서 못가던 각종 회의에 참여하기 시작한 지 약 5개월 만이다. 


그리고 나는 많이 노력했다. 평일 저녁에도 자정 가까이 이어지는 회의들, 주말을 다 바쳐야 하는 회의, 일요일 오후 1시에 시작해서 새벽 4시 40분에 끝난 회의(그것도 대전에서), 또 오전 10시에 시작해서 11시에 끝난 회의(또 대전에서), 코로나19 때문에 온라인 회의를 한다면서 카톡으로 10시간 넘게 이어지는 회의들, 심지어 3일 연속으로 짧으면 5시간 길면 8시간 이상 있었던 시간들. 그 외에도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만나왔던 수많은 사람들과 보낸 시간들.


탈당신고서라는 문서를 받아놓고 자판을 두드리기 시작하다가 문득 녹색당과 함께한 기나긴 시간들이 떠올랐다. 한참을 멍하니 빈 화면을 쳐다보다가 다른 글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아까 언급한 개인적인 탈당 소회를 적은 글이었다. 그 글은 내가 얼마나 녹색당을 사랑했는지를 구구절절히 밝혀놓은 일종의 연애편지 같은 글이었다고 본다. 짝사랑에 실패한 후에 적은 연애편지.


탈당신고서를 보내면서는 이런 의문이 들었다. 왜 당에 들어올 때는 입당신청서를 쓰고 당을 나갈 때는 탈당신고서를 써야할까? 어쩌면 신청과 신고라는 단어 사이의 간극이 이런 결과를 초래하지는 않았을까?


구원투수 등판


작년 가을부터 어떻게든 당을 살려보겠다고 나섰던 내게 남은 것은 무력감이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느낌. 사실 작년 늦가을 내가 이 문제를 인지하고 회의 체계에 본격적을 참여하기 시작했을때, 전부터 나를 알던 사람들 중 몇 몇이 이런 표현을 썼다. "결국 저 사람이 등판했네." 저 '등판' 이라는 표현은 마치 나를 구원투수 처럼 여기는 것이었다. 실제로 친한 지인 중에는 '구원투수'라는 표현을 그대로 쓴 사람도 있었다.


그랬다. 부끄럽지만 당시엔 나도 스스로를 마치 구원투수 처럼 여겼다. 당시 상황을 잘 몰라서였을 수도 있겠지만, 내가 그 판 안에 들어가 같이 노력하다보면 분명 해결의 실마리가 보일 거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보이기도 했다. 그 실마리를 잘 풀 수 있을거라고 여겼다. 그러나 결국 실패했다.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나는 애초에 구원에 실패할 수 밖에 없는 투수가 아니었을까 싶다. 애초에 내 능려으로 부족한 일이었다. 아니 누구라도 가능한 일이 아니었다는 생각도 든다.


책임


어쨌거나 나는 실패했고, 나는 떠날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나는 이 모든 부당한 과정과 흐름들에 대한 책임은 언젠가 그들에게 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비록 지금은 도저히 두고 볼 수가 없어서 내가 떠나지만 그들의 명백한 잘못은 분명 어떻게든, 어떤 형태로든 부메랑이 되어 그들에게 돌아갈 것이라고 본다.


글이 또 엄청 길어질 것 같다. 일단은 여기까지 하고 나중에 이어써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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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0-03-30 21: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생 많으셨습니다. 좀 쉬세요.

감은빛 2020-04-20 18:32   좋아요 0 | URL
거의 20일만에 답글을 드려요.
20일이나 늦었지만, 저를 위해 한 말씀 남겨주신 그 마음,
무척 고맙습니다!

페넬로페 2020-03-30 22: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8년동안의 사랑!
정말 수고많으셨어요^^
그냥 지금은 많은 생각보다는
푹 쉬시는게 좋을듯 합니다^^

감은빛 2020-04-20 18:33   좋아요 1 | URL
페넬로페님, 답이 많이 늦어 죄송합니다!
그리고 마음 써주셔서 무척 고맙습니다!

수이 2020-03-30 22: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생하셨어요 감은빛님, 오래 쉬지 못하셨으니 충분히 휴식 취하시면 좋겠어요. 맛있는 거 많이 드시고 건강 꼭 챙기시면서요.

감은빛 2020-04-20 18:34   좋아요 0 | URL
수연님, 고맙습니다!
많이 먹고 많이 쉬고 싶었는데,
몸은 쉬어도 마음이 괴로운 건 어쩔 수 없더라구요.
다만 많이 먹는 것 만큼은 원없이 먹었답니다.

답이 많이 늦어 죄송합니다!

단발머리 2020-03-31 08: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고많으셨어요, 감은빛님.
수고 많으셨습니다.

감은빛 2020-04-20 18:35   좋아요 0 | URL
답이 한참 늦었습니다.
말씀 남겨주셔서 고맙습니다! 단발머리님.

2020-04-18 20: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4-20 18: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4-20 20:27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