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달관한 사람


어제는 어느 연대단체 회의에 아주 오랜만에 나갔다. 한동안 다른 분이 거기 회의는 모두 참석하는 역할을 맡아주셔서 약 2년 가량 내가 나가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 분이 그 회의에 좀 많이 늦을 것 같다며 혹시 시간이 되면 먼저 참석하고 있어 달라고 요청하셨다. 난 마침 시간이 비어있었고, 오랜만에 만날 반가운 사람들 생각에 흔쾌히 가겠다고 말씀드렸다.


보통 여기저기 회의를 다니다보면 자주 마주치는 분들도 계신데, 어떤 분들은 특정한 자리에서만 만나게 되기도 한다. 여기 회의 오시는 분들 중 두세분은 다른 회의에서도 종종 만나지만, 다른 대부분은 사람들은 여기에서만 만나는 경우가 많아서 한동안 얼굴 볼 일이 없었다.


사람들을 만나고 대화를 나누는 일은 가끔 피곤하고 힘들 때도 있지만, 대체로는 즐거운 일이다. 오랜만에 만난 반가운 얼굴들 덕분에 기분이 좋았다. 그 분들 대부분이 또 나를 반갑게 맞아주셔서 좋았다. 그중 두세분 정도는 정말 오랜만에 만나는거라 내 머리스타일을 처음 본 상황이었다. 머리칼을 길어서 못 알아봤다며 계속 낯설어하고 놀라워 하셨다. 이런 반응 오랜만이라 재밌었다. 한 여성 선배님은 "어디서 영화배우가 온 줄 알았다." 고 하셨고 한 남성 선배님은 "인생을 달관한 사람 같다." 고 하셨다. 확실히 여성들은 좀 더 기분 좋을 법한 표현을 쓴다. 


여름 내내 단발머리를 찰랑찰랑 흔들며 다녔는데, 가을이 되자 이제 머리가 좀 더 길어서 어깨에 닿는다는 걸 깨달았다. 머리를 풀고 다니기엔 좀 부담스럽게 곱슬머리가 치렁거린다는 느낌이 들어서 어떻게 할까 좀 고민이다. 머리를 묶고 다니면 두상이 좀 안 예뻐서 별로이고, 머리를 기르기 시작했던 초기처럼 계속 모자를 쓰고 다니기도 좀 싫은데. 그렇다고 다시 단발로 자르고 싶은 마음도 아니라서 말이다.


아, 회의때 만난 사람들 이야기 하다가 금방 내 머리 스타일 고민 이야기로 넘어갔네. 그 회의를 마치고 뒤풀이 자리에 따라가게 되었다. 처음에는 갈 생각이 없었다. 달리 할 일이 있기도 했고. 그런데 오랜만에 만난 반가운 분들이 잠깐이라도 있다가 가라고 붙잡아서 나도 모르게 따라가는 것으로 마음이 바뀌어 버렸다. 뒤풀이 자리에서 어쩌다가 한 선배에게 이혼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사실 애들 엄마도 나도 둘 모두 동네에서 활동하던 사람들이라 인간관계가 겹치는 사람들이 많다. 이혼 이야기가 뭐 그리 좋은 이야기도 아니라 막 떠들고 다닐 이야기가 아니라 나도 애들엄마도 친한 사람들 외에는 밝히지 않았다. 물론 발 없는 소문이 천리를 간다고 했듯이 우리가 말을 안 해도 이야기는 널리 퍼졌을 것이다. 다만 그래도 그 한계는 있었을테니 당연히 아직 모르는 사람들도 제법 있으리라. 그 선배는 그 아직 소문을 듣지 못한 사람에 속하는 것이었다. 나보다 한참 연배가 위인 그 선배는 내가 혼자가 되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내 어께에 팔을 올리시곤 자신도 지금 혼자라고 말씀하셨다. 그러자 맞은 편에 있던 한 분이 왜냐고 물었다. 나도 의외라고 생각했다. 내 기억엔 그렇지 않았던 것 같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다른 선배 한 분이 최근에 형수님과 사별했다고 알려주셨다. 아! 그랬구나. 내가 왜 소식을 몰랐을까? 나한테 소식이 오지 않았을 리가 없었을텐데. 시기를 들어보니 내가 교통사고 후유증이 좀 심해져 잠시 병가를 내고 쉬고 있었을 때였다. 아무리 쉬는 중이었어도 이런 중요한 소식을 그냥 지나치지는 않았을텐데. 어쩌면 한동안 너무 통증이 심해 진통제로 간신히 버티던 시기가 있었는데, 그때 모르고 넘어갔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으로 그냥 답을 찾을 수 없는 의문을 해소하기로 했다. 암튼 그 선배는 사람은 누구나 다 외로운 존재라고. 혼자 있어서 더 외롭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가족들과 함께 있는 사람도 누구나 외롭다고 말했다. 당연히 나 자신도 오래전부터 공감하고 있던 말이다. 이혼하기 전에도 애들 엄마와 사이가 좋지 않았기 때문에 너무 잘 깨닫고 있었다. 암튼 그리고 혹시 문득 외롭고 말 상대가 필요하면 언제든지 연락하라고 했다. 같은 동네 산다는 것이 이럴 때는 얼마나 좋은 일인가.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9월의 마지막 날 하루 전날


또 한 달이 훌쩍 지나갔다. 추석 연휴가 있었고, 아주 중요한 행사였던 기후정의 행진이 있었기 때문에 유난히 빨리 지나간 것처럼 느껴지는 달이었다. 물론 늘 반복해서 말하지만, 어느 달이라고 그렇지 않았겠냐 싶지만. 중간이 이런저런 사고 비슷한 상황들이 벌어져 내가 꼭 수습해야 하는 일들도 있었고, 강의도 많이 맡았고, 사람들을 참 많이 만나고 다닌 시간이었다.


여기까지 버스에서 폰으로 자판을 두드려놓고 북플 앱에 임시 저장을 해뒀다. 12시가 되기 전에 글을 마무리 지을 생각이었다. 영화 [기생충]의 유명한 대사 처럼 계획을 세우면 늘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 나는 자정이 되기 전에 다시 글을 두드릴 시간을 갖지 못했고, 어느새 9월의 마지막 날이 되어버렸다. 처음에 이 글을 두드리기 시작하면서 제목을 '9월의 마지막 날 하루 전날' 이라고 적어놓고 시작했는데, 이제 다시 제목을 바꾼다. '9월의 마지막 날' 이라고.


큰 아이는 요즘 전국 여기저기 백일장을 다니며 상을 쓸어모으고 있다. 최근 참여한 열 개 남짓한 백일장들 중에서 다섯 개의 상을 받았다. 야구로 치면 타율 5할인 셈이다. 아이가 글쓰는 일을 좋아하고, 또 조금은 재능이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이렇게 짧은 시간에 상을 많이 받아올 줄은 몰랐다. 그리고 10월에는 또 꽤 많은 백일장들이 기다리고 있단다. 매번 새벽에 일어나 버스를 타고 행사장으로 갔다가, 마치고 밤 늦게 서울로 다시 돌아오는 일은 엄청 피곤한 일일 것이다. 그래도 아이는 하나도 빠지지 않고 다 참여하려고 노력한다. 대견하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하고, 뭔가 해주고 싶은 말이 많은데, 그런 말들 다 말하지 않아도 다 알고 있을 것 같기도 하고 그렇다. 내가 이 나이에 벌써부터 자식 자랑을 막 하고 다닐 줄은 몰랐다. 친한 사람들을 만나면 자주 "이번에도 상을 받았더라구." 이러면서 아무것도 아닌 것인양 슬쩍 한 마디를 하지 않고 못 배길 줄이야.


작은 아이는 그림에 푹 빠졌다. 미술학원을 열심히 다니고, 자신이 만든 우리 가족 캐릭터를 갖고 만화도 그린다. 나중에 그림으로 진로를 정할지 어떨지는 더 지켜봐야 하겠지만, 지금 상황을 보면 그렇게 될 확률이 높아 보인다. 음, 미술 쪽은 글쓰기 보다는 돈이 훨씬 더 들긴 할텐데. 라고 나도 모르게 돈 생각을 하고 있는 걸 보면 참! 한심한 아빠이긴 하다. 어렸을 때 나도 만화를 그리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조금은 재능이 있지 않나 하는 생각도 했다. 아버지는 나를 화가인 지인에게 데려갔다. 그 화가는 내 그림을 보더니 재능이 없지는 않다는 정도의 평을 했던 것 같다. 다만 미술은 돈이 많이 든다는 말을 덧붙였다. 그리고 우리 집은 정말 가난했다. 그래서 제대로 그림을 배워보고 싶다는 마음을 접었다. 그냥 아주 가끔 스케치로만 그림을 그리곤 했다. 그리고 조금 시간이 지나서 글쓰기로 내 목표를 바꿨다. 그게 아마 중학교 2학년 때부터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매번 새학기에 자기 소개를 하는 시간이 오면 어른이 되면 소설가가 되어 있을거라고, 서점을 지나가다가 내 책을 발견하면 한 권씩 사달라고 말하곤 했다. 결국 나는 만화가도 소설가도 되지 못하고 이렇게 늙어가고 있지만, 아이들은 시와 그림에 어느 정도 재능을 보이고 재미도 붙이는 것처럼 보인다. 아주 다행한 일이다. 


작가 라는 타이틀


오랜 시간 시민사회단체와 협동조합을 거치며 일을 하다보니 회원으로 속해있는 단체들이 제법 많고,(즉, 회비로 나가는 돈이 많다는 뜻) 조합원으로 속해있는 협동조합도 많다.(출자금을 여기저기 많이 냈다는 뜻) 어느 협동조합에서는 조합원들을 단체 대화방으로 초대해 조합 소식을 알리거나 조합원들끼리 서로 소식을 주고 받도록 하고 있다. 그 협동조합은 내가 주로 활동하는 분야와는 접점이 좀 없는 편이라 나는 대화에 끼는 경우가 많지 않고, 그저 소식만 열심히 읽는 편이었다.


지난 주에 그 조합에 신입 조합원들이 여러명이 들어왔다. 조합 활동가가 신입 조합원들을 초대하면 기존 조합원들이 환영의 인사를 하느라 읽지 않은 대화가 빠르게 늘었다. 그러다가 나와 친한 활동가가 치통 때문에 수술을 받으려고 입원했다는 소식을 접하고 그 단체 대화방에서 그 친구에게 수술 잘 받고 빨리 나으라고 한 마디를 했다. 그 친구는 평소에 일중독이라고 불러도 별로 이상하지 않을만큼 일에 빠져있는 편인데, 병원에 입원한 상태에서 일을 할 수 없으니 엄청 심심했나보다. 그 대화방에 한 마디라도 글을 올리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에 대해 자신이 간단히 소개를 하겠다고 하면서 그날 대화를 쓴 사람들을 하나씩 찾아서 알려주기 시작했다.


작년에 오마이뉴스에 내 인터뷰 기사를 실었고, 그 활동가 인터뷰 연재 기사들을 모아서 책을 출간한 분을 소개하면서 과거 주요 활동 등을 알리고, 마지막에 '작가' 라고 소개했다. 그리고 다른 조합원들을 한참 소개한 후에 내 소개를 올렸는데, 내게도 "평생 환경운동을 했다." 는 소개와 더불어 몇 가지 정보를 덧붙이고는 마지막에 '작가' 라고 소개했다. 그러자 아까 언급한 작년에 활동가 인터뷰 모음집을 출간하신 그 '작가'님께서 나에게 질문을 했다. "00씨(내 본명)도 책 냈어?" 라고. 나는 이 대화를 좀 뒤늦게 읽었다. 조금 고민하다가 이렇게 답을 적었다. "공저가 두 권 있습니다만, 아직 작가라고 부르기에는 무리가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한참 후에 그 작가님께서 내게 다시 답을 했다. "어느 책이든 글 썼고, 이름 올라가 있으면 작가입니다." 음, 그러니까 공저로 냈더라도 책을 냈으면 작가라는 뜻이었다. 그래서 나는 "그렇군요. 가르침을 주셔서 고맙습니다!" 라고 답하고 그 대화를 잊었다. 한참 시간이 흐른 후에 다시 안 읽은 대화가 엄청나게 쌓여 있길래 들여다 보았더니, 그 뒤로 여러 조합원들이 자신이 책을 낸 경험들을 고백하고 있었다. 공저도 있었고, 단독으로 내신 분도 있었고, 책의 종류도 제각각 엄청 다양했다. 그래서 누군가가 우리 조합에 작가님들이 이렇게 많으니 작가클럽을 결성하자는 제안을 했더라.


사실 친한 친구나 후배들 중에 여러 사람들이 자주 내게 책을 쓰라고 권하곤 했다. 나는 늘 바쁘다는 핑계로 그럴 여유가 없다는 말로 빠져나오고 있다. 정말 아이들이 좀 더 자라고 양육비가 필요없는 날이 온다면 나는 매일 노동하는 이 일을 그만두고 짧게 일하고 꼭 필요한 만큼만 돈을 벌면서 책 읽고 글 쓰는 삶을 살고 싶다고 계속 생각하고 있다. 그 때가 오기 전에 책으로 만들 이야기 꺼리들을 많이 모아두어야 하겠지. 그런데 최근 저 작가라는 직함을 두고 저런 대화를 나누고 나니 내 단독 저작을 내보고 싶다는 욕심이 조금은 생기는 걸 깨닫는다. 쉽지 않겠지만, 혹시 하는 가능성을 열어두자.


사실 그 활동가가 나를 소개하며 '작가'라고 쓴 것은 책을 냈다는 의미가 아니라 평소 글쓰는 것을 즐긴다는 의미가 아니었을까 혼자 생각했다. 그 친구는 내가 실제로 그렇다는 걸 알기 때문에. 그래서 앞에서 처음 '작가입니다.' 라고 소개한 진짜 작가님과 내게 쓴 '작가'라는 이름은 다른 뜻이었을 것이다 라고 혼자 생각해봤다. 어느새 밤이 늦었네. 이제 그만 두드리고 자야지. 9월의 마지막 날이자, 금요일이다. 푹 자고 또 보람찬 하루를 보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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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나무 2022-09-30 09: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큰 아이의 백일장 상 휩쓸기는 대견합니다^^
사실 한 두 개 타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인데요.
작은 아이는 그림을 잘 그리고~^^
아이들이 다재다능 하네요.
그것은 부모라면 무척 흐뭇한 일이지 싶어요. 자랑하고 싶을 정도로~^^

지난 번에 책 제목을 본 듯한데 제목이 기억나질 않네요? 책 제목을 알 수 있을까요?^^

감은빛 2022-09-30 13:07   좋아요 1 | URL
책읽는나무님. 이 글에 소개된 활동가 인터뷰 모은 책을 말씀하시는거죠?
[사랑하고 있기 때문에] 문세경 / 사우
이 책입니다.

두 아이가 일찍부터 무엇을 하고 싶은지를 잘 찾아가는 것 같아서 대견해요.
고맙습니다!

책읽는나무 2022-09-30 13:34   좋아요 0 | URL
감은빛님이 공저하신 책이 맞는 거죠?^^

감은빛 2022-09-30 14:34   좋아요 1 | URL
아, 아니예요.
제가 공저로 참여한 책은 이 책 아니예요
저는 이 글에 언급된 다른 책 제목 여쭤보신 줄 알았네요.

감은빛 2022-09-30 14:41   좋아요 1 | URL
제가 공저자로 참여한 책 하나는 2010년에 알라딘과 예스24에서 활동하는 여러 서평 블로거들과 함께 낸 [100인의 책마을] 이구요.
두번째는 녹색당 창당할 때 여러 당원들과 함께 낸 [녹색당 선언] 입니다. 이 책은 지금 절판되었어요.

이 두 권 모두 공저자 숫자가 많아서 제 글은 분량이 무척 적어요.
제 글 때문이라면 굳이 일부러 찾아보시지 않으셔도 되지만,
대신 다른 분들 글이 좋으니 그래도 추천할 만한 책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책읽는나무 2022-09-30 15:41   좋아요 1 | URL
그렇군요^^
제게 협동조합 활동하면서 환경활동에 열심인 친구가 있네요.
가끔씩 얘기를 듣곤 하는데 참 좋은 일 하시는 분들이 많다는 생각을 하곤 했었습니다.
지난 번 환경에 관한 책을 소개하신 듯 하시던데 한 번 읽어봐야지~ 했다가 시간이 지나니까 책 제목이 기억나질 않더군요.
저는 그 책이 공저하신 책인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사랑하고 있기 때문에> 책도 검색해 보니 좋은 책이네요^^
일단 보관함에 담아 뒀습니다.
한 번 찾아 읽어보겠습니다.
<100인의 책마을>은 알라디너님들도 다수 계시겠군요^^
답변 감사드립니다.
좋은 하루 되시길 바랍니다^^

yamoo 2022-10-01 12: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실로 놀라운 정보를 알 수 있는 페이퍼 입니다. 감은빛 님 헤어스타일이 찰랑찰랑한 단발이었다니!!!! 이거 참으로 놀라운데요~~
저두 10여 년 전에 단발을 했었습니다만...그 따가운 눈총들과 관리의 어려움으로 4개월을 못 넘겼던 거 같습니다..ㅎㅎ 바뀐 헤어스타일이 어떤지 무척 궁금하네요..ㅎㅎ

아이의 백일장 수상확률 50퍼가 정말 놀랍습니다. 뭐, 저도 학부 4학년 때는 공모전 글쓰기 승률이 괘 높았긴 했습니다. 상금으로 마지막학기 등록금을 땜방하기도 했으니까요...근데, 지금 생각해보니, 수상은 운이 많이 따라줘야 가능한 것도 같습니다..ㅎ

미술에 재능이 있으면 그 소질을 개발해 주는 것이 좋죠. 하지만 돈이 그렇게 많이 드는 건 아닌 듯해요. 제가 그림을 그려보니 저렴한 국내용품으로도 어느 정도 작품활동은 할 수 있어요. 발색이 욕심 나면 뭐, 그때는 정말 돈이 남아나지 않겠지만요..ㅎㅎ
참고로 유화 작가용 유럽제품은 50밀리 색 1나당 2만원이 가뿐히 넘네요. 50호 그릴려면 돈이 어마무시하게 나가겠죠. 붓 한개당도 몇만원이니...^^;;

감은빛 2022-10-03 18:01   좋아요 0 | URL
야무님도 단발머리를 하셨었군요. 예전부터 야무님 글 보면서 보통 멋쟁이가 아니구나 라고 생각했었어요.

저는 일단 머리칼을 기른지는 2년이 다 되었고, 단발로 잘랐던 건 아마 늦봄쯤이었으니 단발 스타일로 6개월쯤 되었네요.

미술 쪽은 제가 거의 모르는데, 야무님 말씀 들으니 도움이 되네요. 고맙습니다!

카스피 2022-10-01 18: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은빛님,단발이시라니 래퍼넉살스타일이신지 열혈사제의 장룡스타일인지 궁금합니다.저도 머리기른적이 있는데 주변의 압박이 장난이 아니라 결걱 포기했어요ㅜ ㅜ

감은빛 2022-10-03 18:04   좋아요 0 | URL
카스비님도 역시 장발을 시도하셨군요. 저도 대학시절부터 서너번 시도했다가 계속 포기했었는데, 이번에 성공했어요.

넉살, 장룡 둘 다 누구지 몰라서 검색해봤어요. 둘 다 저랑은 많이 다르네요. 일단 저는 외모가 안되니 뭐 다르게 보일 수 밖에 없겠지요. ㅎㅎ

얄라알라 2022-10-08 18: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은빛님 닮아서 자녀분들 예술 재능이 탁월한가봐요^^ 은근자랑하심인가요?^^ 넘 훈훈합니다!

감은빛 2022-10-18 13:31   좋아요 1 | URL
큰 아이가 백일장에 갈 때마다 상을 받는다고 주위 사람들에게 자랑하면, 다들 저를 보고 납득한다는 말과 표정으로 반응합니다. 사실 그렇게 생각해주시면 너무 고마운 일이지요. 제가 사실 뭐 내세울 것이 없으니 딸 자랑 밖에 할 게 없네요.
 

3년 만에


2019년 9월 21일은 토요일이었다. 이 나라에서 처음으로 기후위기를 주제로 대규모 집회가 열렸다. 이름이 무려 '기후위기비상행동'이었다. 말 그대로 '비상' 상황이라는 인식이 이런 집회를 만든 원인이었음을 깨달을 수 있다. 그날 주최측 추산으로 5천여명이 모였다고 한다. 내 기억에는 더 많았다고 느꼈는데. 매번 거리 집회 때마다 주최측과 경찰의 인원 추산 방식이 잘 이해가 되지 않았었다. 암튼 그 날씨가 좋았던 가을 날에 대학로에 모여 집회를 가지고 종각까지 거리행진을 했었다. 가다가 중간에 기후위기로 인해 모두가 죽어 누워있는 듯한 모습을 표현하는 'die in' 퍼포먼스도 펼쳤다. 그날 데리고 갔던 작은 아이와 함께 차도에 누우며, 참 오랜만에 아스팔트 위에 누워보는 구나 생각했다.


그리고 3년이 지났다. 지난 토요일이었던 9월 24일에는 3년 만에 다시 기후위기를 주제로 대규모 집회가 열렸다. 이번엔 장소가 시청에서 숭례문까지 도로였다. 광화문 쪽으로 장소를 잡으려고 했는데, 허가를 해주지 않아 어쩔 수 없이 시청을 선택했다는 후문을 들었다. 가능하면 더 많은 시민들과 함께 가려고 동네에서 사전 행진도 했고, 이런저런 채널을 통해 열심히 알리기도 했다. 


일터 동료 활동가와 미리 만나서 깃발과 손피켓으로 꾸밀 폐박스 잘라놓은 조각들 등을 챙기고, 점심을 먹고 시청 방향으로 가는 버스를 타고 출발했는데, 버스가 집회를 이유로 시청 근처도 못가서 한참 떨어진 곳에 승객들을 모두 내리라고 했다. 걸어가면 적어도 30분 이상은 걸릴 거리였다. 좀 당황했지만, 그냥 빨리 걷기로 했다. 열심히 걸어가는 중에 여기저기서 전화가 오기 시작했다. 정해진 장소에서 우리 깃발 아래 동네 사람들이 모두 모이기로 했는데, 정작 깃발을 가진 이가 미리 와있지 않아 벌어진 일이다. 내 예상으로는 충분히 일찍 도착해서 사전 부스들 구경도 할 수 있을거라고 생각했는데, 예상치 못한 상황 때문에 이렇게 되었다. 한 후배는 집회 한 두번 오냐고! 집회 오는 사람이 왜 버스를 타냐고 따지기도 했다. 그게 집회 장소로 바로 가는 버스가 아니어서 괜찮을 줄 알았다는 변명이 머리 속에는 떠올랐지만, 입으로 나오지는 않았다. 사실 모이기로 예정된 시간에 늦지는 않았는데, 미리 오지 않았다는 이유로 여러 사람들에게 한 소리씩 들었다.


전국에서 모였기 때문에 혹은 올해 이른 더위와 폭염을 거치고, 태풍과 폭우로 큰 피해를 입었기 때문일까? 예상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몰려서 시청역 8번출구 뒤쪽부터 숭례문까지의 그 좁은 도로만으로는 감당하지 못할 정도였다. 앉거나 설 자리가 모자랄 지경이었다. 주체측 추산 3만 5천여명이라고 했다. 3년 전에 비해 3만명 가량이 더 나왔다는 이야기. 어린이와 청소년들도 많이 눈에 띄었다. 3년 전에 데리고 나왔던 우리 작은 아이에게는 올해는 말도 꺼내보지 못했다. 어렸을 때 하도 이런저런 집회에 많이 데리고 다녔던 걸 이제와 원망하던 모습들이 기억에 남아 있어서였다. 말을 했더라도 분명 싫다고 했을 것이 뻔했다. 암튼 3년 전에는 우리 아이가 금방 눈에 띌 정도로 다른 어린이들이 많지는 않았다. 이번에는 달랐다. 긴 시간 이어지는 행진에도 씩씩하게 잘 걷는 어린이들, 부모에게 안기거나 목마를 탄 어린이들이 계속 눈에 띄었다. 청소년들도 엄청 많았다. 


또 하나의 재미는 개성적이고 톡톡 튀는 피켓 문구들. 모두가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종이박스를 찢은 조각에 손글씨로 피켓을 만들어왔다. 크기와 문구가 제각각인데, 웃긴 내용들이 많았다. 나는 집회 시작 전부터 행진을 마칠 때까지 깃발을 챙기느라 손피켓을 들지는 않았는데, 만약 깃발을 맡은 입장이 아니었다면 어떤 재밌는 문구로 피켓을 만들었을까를 생각해보는 재미도 있었다.


이렇게 큰 집회에 오면 늘 많은 지인들과 마주친다. 20년 환경운동을 하면서 이런저런 자리에서 마주친 수많은 사람들이 그날 같은 자리에 있었을 것이다. 운이 좋아 마주친 사람들도 있고, 멀리 떨어져 있어서 못 본 사람들도 많았다. 페이스북을 살펴보니 너도나도 다들 그 자리에서 있었더라. 여러 차례 언급했지만, 사람 얼굴을 쉽게 못 알아보는 탓에 누군가 인사를 건네면 두려운 마음이 앞선다. 분명 낯익은 아니 반가운 얼굴인데 누구인지가 금방 떠오르지 않는 이 답답한 머리를 어쩌면 좋은가! 여러 번 그런 순간들이 있었다. 상대가 반갑게 와서 인사했는데, 그 반가운 얼굴이 누구였는지 생각이 나지 않아 어색한 표정으로(다행히 마스크가 일부 가려줬겠지만) 인사를 했던 시간들. 상대도 마스크를 쓰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더 알아보기 어렵기도 했다. 동네 사람들은 이제는 내 긴 머리 스타일에 조금은 익숙해져서 나를 알아보았지만, 교통사고 이후로 나를 한번도 만나지 못했던 지인들은 나를 알아보지 못했다. 그런 사람 중에 한 명이 내게 와서 "못 보던 사이 스타일이 많이 바뀌었네."라고 말을 건넸다. 나는 그냥 웃고 말았다. 어떤 의미에서는 차라리 다행이었다. 사실 이런저런 사건들 때문에 마주치면 껄끄러운 사람들도 그날 그 자리에 많았었다. 적어도 그 사람들은 바뀐 내 외모를 알지 못할테니, 나랑 마주쳐도 나를 알아보지 못하겠지.


버스기사님이 중간에 승객을 모두 하차시키는 시청까지 걸어가기도 했고, 당일 행진 초반에 출발이 너무 지연되어서 많이 지친 탓에 행진 후반에 속도가 빨라졌을 때 쯤에는 따라 잡아 걷기가 조금 힘들었다. 내가 들고 있던 깃대가 주로 깃대로 활용하는 낚시대가 아니라 조잡하고 짧아서 높이 그리고 오래 들기가 힘들기도 했고, 오래 서있다가 걷다가를 반복하다보니 무릎에 통증이 오기도 했다. 그리고 끝날 때쯤에는 평소 안 아프던 허리도 아프더라. 광화문 광장 근처에서 바닥에 눕는 퍼포먼스(3년 전에도 했던 그 die in 퍼포먼스)를 할 때에는 따뜻한 아스팔트 바닥에 누워 맑은 파란 하늘이 보고 있으니 기분이 좋았다. 눈을 감으니 스르르 잠이 들 것 같은 기분이었다.


주말에 3만 5천명 가량의 시민들이 모여서 기후정의를 외쳤는데, 대통령은 미국에서 미국 의원들과 미국 대통령에게 비속어를 내뱉아서 논란이 되고 있더라. 집에 티비가 없어서 유튜브로만 뉴스를 접하는데, 주말 내내 다른 소식은 없이 그 이야기만 반복하니 참 답답하고 갑갑했다. 대통령실에서 내놓은 해명이란 것도 정말 웃겨서 큰 소리로 웃지 않을 수 없었다. 정말 정치가 코메디라 코메디 프로그램이 문을 닫을 수 밖에 없는 현실이구나. 우리나라 희극인들 참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치인들을 상대로 경쟁해야 할 상황을 과연 상상이나 했을까?


그날 무대에서 발언하신 분들의 말씀들이 하나같이 다 멋있고 좋았다. 이름 있는 유명한 사람들이 아닌 기후위기로 인한 피해를 가장 먼저 당하는 당사자들의 목소리라서 좋았고, 표현 하나 하나에 울림이 있고 감동이 있어서 좋았다. 절망스러운 상황이지만, 그래도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한 목소리를 낼 수 있어서 다시 힘을 낼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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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넬로페 2022-09-26 20: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뉴스를 통해 소식을 들었는데 너무 많은 인원이 모여 놀랐어요.
기후 위기에 대해 이렇게 관심갖고 참여한다는 사실에 박수를 보냅니다^^

감은빛 2022-09-28 12:49   좋아요 1 | URL
페넬로페님. 정말 많이 모였더라구요.
지금 기후 재난 상황을 생각하면 이 정도로도 부족하지만,
또 현실적으로 이 정도 인원이 모인 것도 엄청난 일이긴 하죠.
문제는 정부와 기업이 바뀌어야 하는데.
이 부분 생각하면 또 절로 한숨이 나옵니다.
그래도 절망하고 좌절하고 가만히 있을 수 없으니 또 움직여야죠.

프레이야 2022-09-26 21: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뉴스에서 봤는데 감은빛 님
그 현장에 계셨군요
마음으로나마 보탭니다.

감은빛 2022-09-28 12:51   좋아요 0 | URL
네, 프레이야님.
제가 꼭 있어야 하는 자리였죠. ㅎㅎ
마음 보태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바람돌이 2022-09-27 10: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제 진짜 일상이 회복되는걸까요? 이런 집회도 좀 여유있는 맘으로 할수 있게 되는요. 감은빛님 수고하셨어요. 함께 못했지만 마음의 지지를 보냅니다

감은빛 2022-09-28 12:53   좋아요 1 | URL
주최측에서 야외이긴 하지만 그래도 참가 인원이 워낙 많으니 가급적이면 마스크를 써 달라고 계속 안내를 하긴 했어요. 제가 보니 저를 비롯해 많은 사람들이 마스크를 계속 잘 쓰고 있더라구요. 도로에 오랜 시간 머물렀던 거라서 차량 배출가스와 미세먼지도 있었고 해서 마스크는 쓰고 있는 것이 낫겠다 싶었구요.

언제나 응원과 지지를 보내주셔서 고맙습니다. 바람돌이님.
 

쉬어가는 시기


늙어간다는 것에 대해 자주 생각하곤 한다. 시간이 흐른다는 것. 언제 이렇게 나이가 들어버렸을까? 젊은 시절, 철없던 시절, 아무것도 모르고 그냥 치기 하나로 살아온 시절이 엊그제 같은데. 이젠 그 시절에 품었던 생각들, 의지들이 다 흩어져 버린 느낌이다. 어느 것에도 별로 의욕이 생기지 않는다. 그저 죽지 못해 살아가는 삶이란 느낌. 이러다가 또 일에 집중하면 열심히 하겠지만, 당분간은 이런 시간을 가지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일종의 쉬어가는 시기라고 생각할 수 있을까?


몸을 움직이다보면 그래도 이런 생각들을 떨칠 수 있다. 운동해야지. 매일 어떤 운동을 하면 더 재미있을까 생각해본다. 그러다 다시 늙어버린 내 몸에 대한 생각으로 돌아온다. 이제는 원하는대로 움직이지 않는 이 몸. 내가 제일 좋아하는 동작들을 할 수 없게 되어버린 이 몸에 대해 생각하면 서글퍼진다.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그 시절을 생각하는 것은 슬픈 일이다. 


그래도 다시 움직여야 하겠지. 이렇게 생각만하고 움직이지 않으면 내 삶은 아무 의미를 갖지 못하는 것이겠지. 뭔가 의미를 찾는 것이 살아가는 일이 아닌가. 별로 잘 살지 못했고 그냥 이런 모습에 머물러 있는 나이지만, 그래도 뭔가 그 만큼의 의미는 만들어 왔겠지. 크게 기대하지는 않지만 할 수 있는 만큼의 의미를 더 만들어야겠지. 조금만 더 힘을 내보자. 라고 나에게 말해본다.


어떤 발견


점점 더 굳어지는 몸을 깨닫는다. 이게 내 몸이 맞나 싶다. 한때 유연했던 내 몸은 어디로 가버리고 뻗뻗한 몸이 지금 여기 남았을까. 매일 스트레칭을 해야지 생각한다. 근육통은 은근 기분 좋은 느낌이지만, 스트레칭으로 인한 통증은 쉽게 견디기 어렵다. 그래서 겁이 난다. 차라리 근육통이 나으니 그냥 바벨 운동이나 더 할까 생각했다가 다시 마음을 고쳐 먹는다. 내가 원하는 운동들을 다시 할 수 있는 몸을 만들려면 유연한 몸이 꼭 필요하다. 더 유연해지지 않으면 관절을 다칠 수도 있으니. 수없이 겪었던 부상이 두렵다. 다시 스트레칭을 해야지.


이리 저리 머리를 굴려보며 조금이라도 더 효과적으로 몸을 움직일 수 있도록 이런 저런 동작들을 해보다가 문득 어떤 동작을 나도 모르게 해봤다. 어! 이거 좋은데. 재미도 있고 전신운동으로서 근육들의 협응력도 기를 수 있고, 운동 강도도 적당하다. 철봉이나 평행봉에서 하는 L sit 동작이 아닌 바닥에서 하는 L sit 동작이었다. 검색해보니 실제로 이 동작이 맨몸 운동 프로그램 중에 있었다. 어떤 근육남이 시범을 보이는 영상도 있네. 이런 저런 맨몸 운동들을 많이 익혀왔는데, 이 동작은 왜 지금까지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했을까? 문득 아무 생각없이 갑자기 이 동작을 해본 건 또 어떤 우연일까? 통상은 손바닥을 짚고 팔로 몸을 들어올려 버티는데, 오래 전에 손목 상태가 나빠졌기 때문에 나는 손바닥을 대고 하는 모든 동작을 다 주먹으로 대신하고 있다. 팔굽혀펴기도 주먹을 쥐고 하는데, 이 바닥 엘시트도 주먹을 쥐고 했다. 손목 때문에 무의식적으로 이렇게 했는데, 생각해보니 이 방식이 손바닥을 대는 것보다 더 힘을 전달하기가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손바닥이 꺾이지 않고 주먹까지 그대로 직선으로 힘이 전달되니까 훨씬 더 효율적인 동작일 수 밖에. 주먹에 가해지는 압력으로 인해 손등과 손가락 관절에 느껴지는 통증은 익숙해진지 오래다. 주먹 팔굽혀펴기와 샌드백 두드리기 등의 운동으로 내 손등은 늘 굳은 살이 배겨 있으니. 우연한 발견으로 인해 작은 재미를 얻었다. 한 동안 이 새로운 운동으로 재미를 느낄 수 있겠다.















우울한 기분을 만회하려고 알라딘에 들어와 장바구니에 책을 담고 있었다. 출판계에 있었던 당시에 친하게 지냈던 선배의 추천글을 읽고 이 책을 발견했다. 책 소개에서 세월호 사건, 땅콩회항 사건,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 성추행범 혀절단 사건 등에 대해 다루고 있다는 문구를 보자마자 이건 꼭 읽어봐야겠다 라고 생각했다. 요즘 자주 하는 생각이 옛 역사를 공부하는 일 못지않게,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이 시대의 역사를 잘 기억하는 일이 중요하는 점이었다. 내가 살아온 시대에 대해서도 잘 알지 못하면서 기록이 한정적인 옛 역사를 잘 아는 일이 더 중요할까 싶었던 것이다. 가능하면 더 다양한 관점과 시선을 겪어보는 일이 이 재미없는 삶에서 그래도 재미를 찾아가는 일이 아닐까.


누군가의 강의 요청 전화를 받고 일정을 보다가 문득 오늘이 벌써 15일이라는 걸 깨달았다. 날짜가 어떻게 지나가는 지도 모르고 하루 하루를 살고 있다. 아니 9월이 시작한 게 바로 어제 같은데, 언제 절반이 지나가버렸단 말인가? 추석 연휴 때문에 더 빨리 지나간 것처럼 느껴지는 것이겠지만, 그래도 마치 시간을 잃어버린 것처럼 아쉽게 느낀다.


언젠가도 쓴 적이 있지만, 이 시간이 빨리 가는 것처럼 느끼는 일이 노화로 인해 뇌에서 그렇게 느끼는 것이라고 하는데, 이게 늙어서 그런 거라고 깨달으니 또 서글퍼진다. 인간은 왜 늙어야 하는가. 결국 이 글은 늙음을 한탄하는 것으로 끝내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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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9-15 16: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09-22 14: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blanca 2022-09-15 18: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제 손목에 부담가는 운동에 겁을 먹게 됐어요. 제가 느끼는 감상과 비슷하네요. 왜 이리 시간 가는게 스산한지 모르겠습니다. 흑.

감은빛 2022-09-22 14:47   좋아요 0 | URL
그렇죠? 블랑카님.
한번 통증을 느끼거나 부상을 당한 부위는 이후로 계속 신경이 쓰이더라구요.
예전 같지 않음을 매 순간 느끼는 것이 슬프지만,
이렇게라도 또 살아가야 하니 힘을 내야겠지요.

꼬마요정 2022-09-15 20: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늘 운동 가면 체중과 나이는 숫자에 불과해!! 라고 되뇌입니다만, 저보다 스무살 가까이 어리고 10kg 넘게 무거운 애들이랑 스파링 하면 슬퍼집니다. 폼롤러로 열심히 풀어주고 스트레칭 하고 카스 드릴 하고 하는데 점점 힘이 드네요. 운동 스케줄을 보면 시간이 너무 빨리 가요ㅠㅠ 뛰어가는 시간 잡아서 묶어두고 싶은데 슬픕니다. ㅠㅠ

감은빛 2022-09-22 14:49   좋아요 1 | URL
꼬마요정님 말씀 접할 때마다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아마 저라면 주눅이 들고 힘들어서 못 갈 것 같아요.
힘내시고 부디 부상 당하지 않으시길 바랍니다.

꼬마요정 2022-09-23 16:35   좋아요 0 | URL
앗 아니에요. 나이가 많고 작아서 다들 저를 소중하게 다뤄줍니다. 저도 호승심이 없어서 다들 귀엽기만 하구요. 감은빛님이야말로 좋은 알 하시면서 운동도 하시고 멋지십니다!! 우리 같이 힘 냅시다^^
 

바쁠수록 딴 짓


아주 급한 두 가지 할 일을 오늘 중에 반드시 마쳐야 하는데, 나는 늦은 점심을 먹은 후 사무실로 돌아와 지금껏 뉴스를 찾아보거나 (물론 일과 관련한 뉴스이긴 하지만) SNS 를 살펴보는 등 딴 짓을 하고 있었다. 이렇게 바쁜 날일 수록 자꾸만 마음은 딴 곳으로 향한다.


한참을 웹서핑에 빠져 있다가 문자 하나를 받았다. 업무 관련 문자였는데, 그 문자를 닫고 최근에 받은 문자 목록으로 돌아갔다가 확인하지 않은 문자가 많다는 걸 깨달았다. 하나씩 열어보다가 나도 모르게 "뭐야!" 하고 소리를 내뱉었다. 언제 받았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 온라인 도서상품권의 유효기간이 만료되었다는 문자였다. 그 문자 위에는 그보다 며칠 전에 보낸 것으로 나오는 유효기간이 곧 끝나니 얼른 사용하라는 문자도 있었다. 그리고 그 위에는 언젠가 어떤 설문조사에 응했다가 받았던 것 같은 도서상품권에 대한 정보가 있었다. 정말 의아한 일은 이 문자들을 받은 사실 자체를 기억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유효기간이 끝나간다고 경고까지 보내줬는데, 그것도 못 보고 결국 아까운 상품권을 못 썼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요즘 정보 과잉 시대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내 경우에는 문자 과잉 시대라고 불러야 할 것 같다. 문자, 카톡, 텔레그램, 라인, 왓츠앱 까지 나에게 오는 연락이 너무 많다. 그 중 대다수는 내가 속해 있는 단체방에 올라오는 내용들이다. 회의 때문에 한 서너시간 폰을 안 보고 있다가 열어보면 안 읽은 대화가 몇 백개씩 새로 생긴다. 그걸 다 일일이 확인할 여유는 없기 때문에 그냥 열었다가 스크롤을 빠르게 내리고 다시 닫는다. 그 중에 내게 중요한 어떤 내용이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그걸 다 확인할 물리적인 시간이 없다.


액수는 그리 크지 않았지만, 도서상품권을 놓친 것도 너무 많은 문자 메시지 때문이다. 예전이었다면 문자들을 다 읽고 중요한 것들은 별도로 체크해서 잊지 않도록 했을텐데, 점점 더 많은 정보들과 일정들 때문에 그런 방식으로 일을 할 수 없을 지경이 되어버렸다.


가끔 페이스북에서 자신의 일정을 지인들에게 물어보는 경우를 접한다. 다이어리에 날짜와 시간과 지역 명은 적어 놓았는데, 누구와 무얼 하기로 한 일정인지 적어 놓지 않아서 무슨 일정인지 모르겠다고 묻는 것이다. 강의나 회의 일정을 그렇게 지역 명만 적어 놓아서 누구와 한 약속인지 구체적으로 강의 장소는 어디 인지를 모르겠다며 페이스북 친구들에게 혹시 저하고 약속하신 분 누구신가요? 하고 묻는 것이다. 어떤 면에서는 참 어이없는 일인데, 요즘 같은 시대에는 그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나 역시 요즘은 언제 그런 일이 일어나도 별로 이상하지 않은 상태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고 여긴다. 


암튼 그렇게 놓쳐버린 도서상품권을 생각하다가 오랜만에 알라딘에 들어왔다. 생각난 김에 신간들을 좀 살펴보고 책 몇 권 주문해야지 생각이 들었다. 지난 번에 그리고 지지난 번에 받은 책들도 다 읽지 않았지만, 나는 또 책을 산다. 언젠가는 다 읽을거야 라는 생각은 벌써 오래 전에 포기했다. 그냥 책을 갖고 있으면 언제든 손만 뻗으면 읽을 수 있다는 생각에 책을 사기도 했는데, 그것도 이젠 포기했다. 언젠가부터는 사놓은 책들이 어디 있는지 찾는 것도 어려울 정도로 책들이 여기저기 막 쌓여있었다. 암튼 그래도 책은 살거다. 읽고 싶은 책은 늘 많으니까.


가끔 구글 포토 앱이 알려주는 몇 해 전 오늘 사진들을 보다보면 아이들이 자라는 것이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 저렇게 이뻤는데, 저렇게 귀여운 짓을 했었는데. 막 이런 생각이 드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 저기 쌓여있는 책탑들을 보다 보면 또 얼른 아이들이 자라야 내가 이 지긋지긋한 일을 그만두고 책이나 읽고 글이나 쓰는 삶을 살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들기도 한다.


물론 아이들이 다 자랐다고 해서 내가 일을 그만둘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다. 어쨌든 먹고 살아야 할테니 일을 하긴 해야겠지. 지금처럼 매일 출근하는 삶이 아니라 가끔만 일하고 평소엔 책 읽고 글 쓰는 삶을 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생각만 있을 뿐이다.


아, 장바구니에 책 몇 권 담고 아직 결제도 못 했건만, 이웃 서재 글 몇 편 읽고 이 글을 쓰느라 또 시간을 엄청 보냈다. 이제 더 늦기 전에 밀린 일을 해야지. 정말 큰 일 나기 전에 일을 마쳐야지.


그런데 이건 어쩌면 착각일지도 모르지만, 이렇게 쓸데없는 글을 두드리고 다시 일을 하면 이상하게 집중이 잘 되어 일을 금방 끝내버리기도 한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급한 일들을 앞두고 바쁘기 짝이 없는 날에도 자꾸만 딴 짓을 하게 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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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2-09-06 13: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적립금 천 원 들어온 게 있는데 유효기간이 얼마 안 남았다는 문자를 받았어요. 예전 같으면 얼른 천 원에 목숨 걸고 샀는데 이번엔 포기하려고요. 책을 사고 나서 바로 받은 문자였거든요.
아이들이 빨리 커서 편한 점이 있는데 한편으론 애들이 다시 어려졌으면 싶답니다. 그래도 내 손이 갈 때가 좋았던 시절이라 생각되어서죠. 하지만 과거로 돌아가고 싶진 않아요. 육아로부터의 해방된 이 시간들이 소중하기 때문에요. 일장일단...ㅋ

감은빛 2022-09-08 16:37   좋아요 2 | URL
페크님, 저도 대개는 적립금이나 선물받은 소액의 상품권은 어떻게든 쓰려고 하는 편이었는데, 많이 바쁘게 살게 된 어느 시점 이후 부터는 신경을 못 쓰고 살아요. 이 글에 쓴 것처럼 아예 모르고 지나가는 경우도 많은 것 같아요.

아이들이 점점 자라서 이젠 제 키와 비슷한 정도가 되고 나니 언제 이렇게 시간이 지나갔나 싶어요. 품 안에 자식이란 말도 생각나구요. 이제 곧 내 품을 떠나겠구나 하는 생각도 들어요. 물론 요즘 청년들은 독립이 쉽지 않은 시대를 살고 있으니 그리 빨리 떠나지는 않을 수도 있겠네요.

서니데이 2022-09-08 18: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요즘, 적립금이나 상품권을 마지막날 쓰려고 하다가 잊어버리고 다음 날 생각나는 것 같아요.
꼭 필요한 것이 아니면 다음에 사지 뭐, 하고 생각하긴 하는데, 아쉽더라구요.
감은빛님, 오늘부터 연휴 시작입니다.
즐거운 추석연휴 보내세요.^^

감은빛 2022-09-15 13:09   좋아요 1 | URL
서니데이님 덕분에 연휴 잘 보냈습니다.
먹고 자고 또 먹고 자고. ^^

연휴가 끝나니 다시 출근하고 일해야 하는 날들이 정말 싫어지네요.
지금도 사무실에서 일은 안 하고 딴 짓만 하고 있어요. ㅎㅎ
 

폭우


어제 퇴근시간 무렵 내린 비는 비라고 부를 수 없을 것 같은 어떤 무서운 모습이었다. 물벼락이라고 해야 할까? 물폭탄이라고 부르면 더 잘 어울릴까? 암튼 단순히 비 라고만 부를 수는 없는 어떤 것이었다. 나와 일터 동료는 퇴근 길이 무서워 자연스럽게 야근에 돌입했다. 비가 좀 잦아들면 퇴근할 생각으로 일을 더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다 친한 후배와 문자를 주고 받았는데, 비가 오니 전을 부칠까 하고 묻더라. 전을 부칠테니 놀러 오라는 얘기였다. 마침 폭염에 폭우까지 겹쳐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 두렵게 느껴지던 참이었다. 에어컨이 없이 선풍기 만으로는 이 더위와 습도를 견디기가 어려웠다. 게다가 동네 뒷산 자락에 있는 우리집으로 올라가는 그 가파른 비탈길은 폭우 때문에 폭포로 변해있을 것이 분명했다. 예전에도 거의 급류가 몰아치는 강처럼 변한 그 비탈길을 헤치고 올라건 적이 어려번 있었기 때문에 가보지 않아도 그 모습이 그려졌다. 그래 오늘은 그 후배의 집에서 에어컨 이라는 신문물을 누리며 맛있는 전을 먹어야겠다고 생각했다. 폭우는 한참 후에 좀 누그러졌고, 내가 사무실을 나설 무렵엔 빗줄기가 많이 약해져 있었다.


그 후배가 요즘 '최강야구'라는 프로그램을 즐겨 본다고 해서 나란히 앉아 10시 반에 시작하는 방송을 보기 시작했다. 티비가 없는 삶을 20년 넘게 살다보니 뭔가 특정한 방송을 기다렸다가 본다는 것이 낯선 느낌이었다. 암튼 그렇게 둘이 앉아서 은퇴한 유명 프로야구 선수들이 고등학교 야구 선수들에게 콜드게임으로 지는 모습을 보다가 갑자기 기상특보가 시작되는 걸 보았다. 아마 12시가 다 된 시간이었을 것이다. 방송에는 한강 이남 몇몇 지역이 침수로 큰 피해를 입었다고 했다. 곧바로 2011년이었던가 그해 여름 폭우로 강남역 일대가 물에 잠겼던 모습을 떠올렸다. 당시 나는 업무 때문에 강남역 쪽으로 갔다가 무릎까지 물에 잠기는 경험을 했었다. 이번에도 역시 강남역 일대가 물에 잠겼다. 사진으로 본 모습에는 도로의 차들이 모두 완전히 물에 잠겼고, 버스도 3분의 2 이상 높이까지 물이 차올라 있었다. 그래 이런 모습을 이제는 잊을만 하면 한번씩 보게 될 거라고 예상했었다. 기후위기 시대의 보편적인 풍경이라고 불러야 할까?


오늘도 하루종일 비가 오고 있다. 그리고 낮에 한동안 또 폭우가 쏟아졌다. 어제 만큼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폭우는 폭우였다. 80년 만의 기록적인 폭우라고 했다. 수도권에서 여러 명의 인명 피해가 있었다고 했다. 도로가 물에 잠기고, 지하철 역도 잠기고, 아파트 축대가 무너지고, 수많은 건물과 집들이 침수 피해를 입었다. 그런데 이 사태를 해결해야 할 대통령이란 사람은 자기 집 근처에 침수 지역이 있어서 집무실로 가지 않고 집에서 전화로 보고 받고, 지시를 내렸다고 한다. 참, 우습기도 하고 황당하기도 한 소식이다. 정말 뭐라 할 말을 잃게 만드는 사람이다.


암튼 낮에 한참 폭우가 쏟아질 무렵 마침 제로웨이스트 매장을 보고 있었기에, 멍하니 계산대에 기대 서서 유리 너머 인도와 차도에 비가 퍼붓는 모습을 지켜보고, 빗소리를 듣고 있었다. 그 폭우를 보고 있으려니, 과거에 그렇게 쏟아지는 비를 맞았던 기억들이 하나 둘 떠올랐다.


#1 

아마 1987년이나 1986년이 아니었을까 싶다. 학교를 마치고 지금은 법원과 검찰청 건물이 들어서서 사라져버린 야산을 통해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엄청난 비가 쏟아지고 있었다. 그런데 우산이 없었다. 처음엔 책가방을 머리 위에 얹고 뛰었으나, 집까지 그 먼 거리를 뛰어갈 수는 없었기에 조금 뛰다가 말고 그냥 지친 걸음으로 걷기 시작했다. 머리에 얹고 있던 책가방도 그냥 다시 등에 메었다. 학교 건물 밖으로 박차고 나와 몇 걸음 뛰지도 않아서 이미 온 몸은 다 젖어 있었다. 마치 물에 빠졌다 나온 것 같은 모습이었다. 숨을 헐떡이며 아직 길이 뚫리지도 않은 야산을 오르고 있었는데, 비 때문에 자꾸 발이 미끄러지거나, 돌 무더기가 무너지며 비틀 넘어지다가 손을 짚고 다시 일어서기도 했다. 조금 큰 나무 아래로 들어가 잠시 비를 피하며 머리를 털고 무거운 옷을 짜기도 했는데 번쩍 하고 번개가 치는 걸 느꼈다. 번개가 칠 때는 큰 나무 아래에 있으면 안 된다고 배웠던 걸 떠올린 나는 급하게 뛰쳐나갔다. 뒤이어 천둥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퍼붓는 빗소리만으로도 귀가 멀 지경이었는데, 천둥 소리가 계속 울렸다. 번개가 계속 연달아 번쩍여서 빨리 나무들이 많은 지역을 벗어나야 한다고 생각하고 빠르게 뛰었다. 옷은 몽땅 젖어 무거웠고, 이미 야산을 오르느라 지쳐서 마음만큼 빨리 발이 움직이지는 않았다. 게다가 자꾸만 발은 미끄러졌고, 자꾸만 넘어지려다가 간신히 버티곤 했다. 집으로 돌아온 이후의 기억은 나지 않는다. 단지 저 야산에서 폭우를 헤치고 뛰어서 돌아온 기억만 있다. 번개가 무서워 마구 뛰었던 기억.


#2

2000년쯤이었다. 늦여름이거나 초가을이었고 조금 더웠다. 당시 만나던 여자친구가 아침 일찍 내 자취방으로 찾아왔었다. 그는 오자마자 김치찌개를 끓였고, 그가 가져온 반찬을 펼쳐놓고 우리는 함께 아침을 먹었다. 오전 시간을 방에서 뒹굴거리다가 우리는 시원한 커피숍으로 갔다. 각자 음료 하나씩 주문해놓고 몇 시간을 버텼는지 모르겠다. 아마 꽤 오래 앉아서 수다를 떨거나 멍하니 시간을 보냈던 것 같다. 갑자기 여자친구는 엄마의 전화를 받고 집으로 가야 할 상황이 되었다. 나는 그를 데려다주기 위해 함께 따라 나섰고, 그의 동네에서 버스에 내리자마자 갑자기 소나기가 내리기 시작했다. 우리는 우산도 없이 비를 맞으며 뛰기 시작했다. 처음부터 폭우 정도의 느낌은 아니었던 것 같은데, 그 소나기는 점점 더 빗줄기가 굵어지더니 곧 폭우로 변했다. 어찌나 세차게 내리던지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우리는 순식간에 온 몸이 다 젖었고, 뛰다 말고 그냥 걷기 시작했다. 그 상황이 너무 어이가 없어서 그랬는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우린 웃기 시작했고, 손을 잡고 걸으며 계속 웃었다. 그 폭우를 맞으며. 그의 집으로 가는 길에는 작은 놀이터가 있었고, 우리는 놀이터로 들어가 미끄럼틀 아래에서 간신히 비를 피했다. 서로 비에 쪽딱 젖은 머리카락을 털어주고 젖은 옷을 추스리며 한참을 기다리는데, 비가 그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사실 그의 집이 그러 멀지 않았기에 그냥 뛰어가도 되었지만, 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우리는 그냥 그대로 손을 잡고 미끄럼틀 아래 쪼그리고 앉아 비가 그치기를 기다렸다. 머리카락에서 빗물이 뚝뚝 떨어지는 그의 얼굴을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나도 모르게 내 얼굴이 점점 다 다가갔다. 어린이는 아무도 없는 어린이 놀이터에서 길게 키스를 했다.


기억을 더듬어보면 유독 저 아이와 만나던 시절에는 둘이 비를 많이 맞았었다. 그날 그 아이는 부모님 몰래 나를 자기 집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다행히 안방이 제일 안쪽에 있었고, 현관문 바로 옆이 그 아이의 방이었다. 그는 젖은 내 셔츠를 벗기고 수건으로 물기를 닦아 준 다음 남동생 티셔츠 하나를 찾아와서 내밀었다. 바지도 하나 갖다 주려고 했지만, 그건 내가 말렸다. 남의 바지를 입고 싶지는 않았다. 비가 그칠 동안 나를 자기 방에 숨겨둔 후 자신은 엄마가 시킨 집안 일을 했다. 나는 그날 밤 늦게까지 그 아이 방에서 시간을 보내다가 비가 그친 후에 집으로 돌아갔다. 그 아이와 비를 맞았던 여러 기억 중에 특히 이 날이 기억나는 건, 놀이터에서의 키스와 몰래 숨 어 들어간 그 아이의 방, 그리고 젖은 셔츠를 벗기고 내 몸을 닦아 준 그 아이의 손길 때문일 것이다.


#3

군대에 있을 때에 비를 맞은 기억은 정말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 군대에는 우산이 없다. 판초우의만 지급된다. 입기도 힘들고 벗기도 불편한 그 우의가 있으면 그래도 비에 덜 젖을 수 있다. 군대 생활을 3등분 한다면 3분의 1은 경계 근무였고, 다른 3분의 1은 참호 공사를 비롯한 각종 작업이었으며, 나머지 3분의 1이 훈련이었다. 그 날은 무슨 훈련인지는 모르지만 훈련을 마치고 자대로 복귀하는 행군 날이었다. 화기분대 탄약수였던 나는 무거운 탄통을 들었다. 우의에서 떨어진 물이 팔을 타고 내려와 탄통의 금속 손잡이를 쥔 손바닥에 고이는 그 감촉이 지금도 기억난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어깨에 가로질러 맨 소총이 가슴 앞에서 덜렁거리고 방탄모에 맺힌 빗물이 안경에 떨어져 갑자기 시야가 흐려지면, 어깨를 짓누르는 무거운 군장을 한번 치켜 올리고 오른손에 쥔 탄통을 왼손으로 옮겨 들고 맨 손으로 안경의 물기를 쓱 닦고 다시 걷는다. 그 잠깐 걸음이 늦어졌다고 뒤에 선 사수가 욕을 내 뱉는다. 자신의 기관총은 분대원들이 돌아가면서 어깨에 메고 걷고, 자신은 총을 들지 않은 맨 몸으로 걸으면서 탄통을 든 내가 조금이라도 걸음이 느려지면 바로 걷어차거나 욕설을 날리곤 했다. 빗줄기는 점점 강해지고 몸은 점점 무거워지는 사이에 마침내 밥차가 도착했다. 우리는 왕복 2차선의 국도변에 양쪽으로 갈라져서 바닥에 주저 않아 배식 차례를 기다렸다. 


식판에 밥을 퍼서 놓자마자 빗물에 밥을 말은 모습이 되었다. 국도 빗물이 섞여 저절로 간조절을 해주었다. 김치는 빗물에 씻겨 덜 매운 모습으로 변했다. 도로변에 주저 앉아 퍼붓는 비를 고스란히 맞으며 먹는 밥은 참 뭐라 표현할 수 없는 맛이었다. 그 밥을 먹지 않으면 다시 반 나절 이상을 걸을 수 없었기에 빗물에 말은 밥을 꾸역꾸역 입 속으로 우겨 넣어야 했다. 평생 잊을 수 없는 밥 중 하나를 그 폭우 속에서 먹었다.


#4

마지막 기억은 사실 폭우 까지는 아니었고 그냥 비가 오락가락 했던 날이지만, 용역 깡패들이 쏘아대는 물대포 때문에 폭우랑 이미지가 겹쳐 떠올랐다. 2003년 여름이었고, 새만큼 물막이 공사를 급하게 서둘러서 원래 예정보다 마쳤다는 소식을 듣고, 전국에서 환경운동가 80여 명이 기습적으로 새벽에 방조제 공사 구역에 들어가 삽과 곡괭이로 물막이가 끝난 둑을 까서 다시 해수유통을 시킨 날이었다. 밤까지 시골 동네 곳곳에 흩어져 숨어있던 전국에서 모여든 활동가들은 자정 무렵 부안성당에 집결해 중요한 소지품들(전화기 같은)을 모두 잘 보관해두고 젖어도 부담이 없는 최소한의 옷차림에 우비를 입고 각자 비상식량으로 쵸코바를 두 개씩 지급 받았다. 마치 군사작전을 펼치듯 몰래 이동하여 사전에 협조를 얻은 작은 배 두 척에 나눠타고 방조제로 이동했다. 비가 오락가락 했고, 차가운 바닷바람이 세게 불어와 여름 밤이었는데도 몸이 덜덜 떨렸다. 방조제에 도착해서 삽질과 곡괭이질을 할 때는 오히려 열이 나서 좋았다. 가만히 있으면 추우니 더 열심히 곡괭이를 휘둘렀던 것 같다. 군대에서 열심히 진지 공사를 했던 덕분에 나는 삽질과 곡괭이질에 아주 자신이 있었다. 제대한 지도 그리 오래되지 않았고 한참 힘이 좋은 시절이었으니, 지친 형들을 비키시라고 하고 아주 열심히 했던 기억이 난다. 몇 시간이나 삽질을 했을까 해가 뜰 무렵 마침내 방조제 한 쪽을 터서 해수유통을 다시 시킨 순간의 감동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다만 해가 뜨고 시공사 측에서 우리의 존재를 발견한 후로 전경들과 용역 깡패들이 몰려온 후로 악몽이 시작되었다. 용역들은 배를 두 척 정도 몰고 왔는데 그 중 한 척에서 물대포를 우리한테 쏘기 시작했다. 전경들은 우리를 한쪽으로 몰아넣어 피할 곳이 없게 만들었고, 그 사이 시공사에서 포크레인을 몰고 왔다. 우리가 용역들의 물대포와 주먹질과 발길질에 당하고 있는 사이 포크레인은 우리가 터 놓은 물길을 다시 막았다. 우리가 삽과 곡괭이로 몇 시간에 걸쳐 겨우 터 놓은 물길이었는데, 포크레인은 불과 몇 분도 걸리지 않아 다시 막아버렸다. 그리고 긴 시간 폭력에 노출된 상태로 버티기에 들어갔다. 여성 활동가들을 안쪽에 모아놓고 그 바깥으로 둥글게 둥글게 남성 활동가들이 스크럼을 짜고 깡패들의 폭력에 맞섰다. 전경들은 깡패들의 폭력은 두고 보면서 우리가 물길 쪽으로 다시 접근하지 못하도록 막기만 했다. 주먹질과 발길질 그리고 바닷물을 퍼올려서 쏘는 세찬 물줄기의 물대포 때문에 긴 시간 제정신이 아닌 상태로 맞고 버텼다. 우리가 이렇게 버티면 노무현 대통령이 자신이 공약을 지킬 거라고 생각했었다. 비로 우리가 이렇게 두들겨 맞아도 생명의 갯벌을 지킬 수 있다면 며칠이고 이 바다 한 가운데 좁은 방조제 위에 버티고 있을 거라고 다짐했다. 여성 활동가 두 명이 실신해서 해경의 배를 타고 실려 나갔다. 우리는 전날 저녁을 먹은 후로 쵸코바 겨우 2개로 버티고 있었다. 밤새 휘두른 삽질과 곡괭이질로 지치고 배가 고팠다. 그리고 해가 뜨자마자부터 긴 시간을 두들겨 맞고 밀려나기를 반복했다. 군산환경연합에서 우리가 먹을 빵과 물을 배에 실고 왔는데, 용역깡패들이 이걸 뺏어서 모두 바다에 버려버렸다. 우리는 그날 저녁까지 버티다가 결국 부안성당으로 철수했다. 그날 그 방조제에서 철수하면 절대 안 된다고 부르짖었었다. 새만금 공사를 전면 재검토하겠다는 공약을 대통령이 이행할 때까지 한 발자국도 못 나간다고 버티려고 했다. 그런데 누가 내린 결정인지는 모르겠으나 그렇게 결정했다고 통보 받았다. 전국에서 모인 활동가들은 패잔병처럼 쓸쓸히 긴 거리를 걸어서 부안성당으로 향했다. 


거의 24시간을 굶은 상태로 온 몸이 젖고 지친 상태로 간신히 도착한 부안성당에는 김밥이 기다리고 있었다. 미친 것처럼 김밥 두 줄을 양 손에 쥐고 먹기 시작했다. 물도 없이 김밥을 몇 줄이나 먹었는지 모르겠다. 일단 10줄을 넘길 때까지는 세기는 했었다. 그 뒤로는 세기도 귀찮아서 그냥 막 집어먹었다. 평생 잊을 수 없는 밥 중 또 하나는 이렇게 폭우는 아니지만, 비와 물대포에 대한 기억으로 연결된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와중에 퇴근시간이 가까워지자 또 비가 거세게 쏟아붓는다. 아직 어제만큼의 폭우는 아니지만 그래도 폭우라고 부를만한 모양새다. 오늘은 집에 가고 싶은데, 폭포나 급류가 되어버렸을 그 비탈길을 오를 걱정을 하니 퇴근하기가 싫어진다.




글을 쓰고 싶어졌다.
















지난 번에 우리 일터에서 제로 웨이스트 매장을 새로 열었기 때문에 가끔 매장 지킴이를 하게 되었다는 얘길 하면서 우리 매장에 소설가 최정화 님이 방문했었다고 전했었다. 이 책 앞쪽에 우리 매장 이야기가 나왔다. 내가 나온 것처럼 반갑고 기분이 좋았다.


작가는 삶의 태도를 바꾸면서 글도 자판을 두드리지 않고, 플라스틱 볼펜을 사용하지 않고 연필이나 만년필을 이용해 종이에 글씨를 써서 글을 쓴다고 했다. 이 부분을 읽으며 나도 문득 글씨를 쓰고 싶어졌다. 워낙 악필이라 글씨를 쓰는 걸 조금은 두려워하는 편인 내가 그런 생각을 했다는 것이 스스로 생각해도 의외였다.


내가 왜 이렇게 악필일까? 왜 나는 글씨를 쓰려고 볼펜을 쥐면 갑자기 조급한 마음이 드는 걸까? 나는 왜 글씨를 쓰는 걸 두려워할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으려고 긴 시간 고민을 많이 했다. 그리고 최근에 어쩌면 그 답이 될 수도 있는 가능성 하나를 떠올렸다. 나는 어려서부터 눈이 나빴다. 그런데 부모님은 중학생이 될 때까지 안경을 맞춰주지 않았다. 심지어 친척 중에 안경원을 운영하는 분이 세 분이나 계셨는데도 그랬다. 나중에 들었던 이야기인데, 그 친척 중에 한 분이 너무 어려서부터 안경을 끼면 좋지 않다고 해서 중학생이 될 때까지 기다린 거였다고 했다. 그 말이 맞는지 어떤지는 모르겠으나 그 말 때문에 나는 잘 보이지 않는 시력으로 국민학교 시절을 보냈다. 중학교도 고등학교도 그랬지만 국민학교에서도 선생님들은 칠판에 수업 내용의 대부분을 적는 것이 기본이었다. 그리고 학생들은 당연히 그 내용을 모두 공책에 필기해야 했다. 그런데 교실의 중앙에 위치한 2분단과 3분단과 달리 창가와 복도 쪽에 위치한 1분단과 4분단에서는 칠판에 적힌 글씨들이 잘 보이지 않았다. 시력이 엄청 나빴기 때문인데, 중학생이 되어서 처음으로 안경을 써보기 전까지 나는 모든 사람들이 다 나처럼 그럴 거라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나보다 훨씬 빨리 필기를 잘 하는 다른 학생들은 뭔가 다른 비법이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하기도 했다. 어쨌든 1분단과 4분단에 앉았을 때의 나는 잘 보이지 않으니 필기를 잘 할 수가 없었고, 그래서 필기 속도가 매우 느렸다. 그런데 선생님은 학생들이 필기를 모두 마쳐야 칠판을 싹 지우고 다음 내용을 적을 수 있기 때문에 빨리 적으라고 재촉을 하기 마련이다. 


6년의 국민학교 생활 중에 유독 내 필기가 느리다고 나를 엄청 구박했던 선생이 한 명 있었다. 젊은 여성이었는데, 좀 매서운 인상이었다. 엄마는 언젠가 이런 말씀을 하셨다. 그 여선생이 자꾸 나에 대해 나쁘게 말하곤 했다는 거다. 조금만 것들도 트집을 잡아서 문제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 자리엔 아마도 다른 엄마들도 있었던 모양인데, 그 중 한 엄마가 슬쩍 (그러나 다른 엄마들 눈에 다 보이게) 봉투 하나를 그 선생 수첩 아래에 집어 넣었다고 했다. 그랬더니 그 선생이 갑자기 호들갑스럽게 웃으며 그 아이는 자기가 잘 돌보겠다고 걱정 마시라고 했다는 것이다. 엄마도 잠시 고민을 했다고 했다. 돈 몇 푼 찔러 넣어주면 잘 봐줄텐데, 그냥 무시하면 또 얼마나 애를 구박할 것인가 이러면서. 비록 가난했지만, 그래도 그때까지는 그 몇 푼을 준비 못할 상황은 아니었을 것이다. 나중에는 점점 더 나빠져서 정말 심각하게 가난한 상황이 되기는 했지만. 암튼 내 기억 속에 유독 나를 구박했던 그 선생은 세월이 한참 흘러서 엄마가 말씀하신 그 선생과 같은 사람이다. 사실 국민학교 6년 동안 나를 구박했던 유일한 선생이 그 사람이다. 다른 선생님들은 모두 내 장점을 칭찬하고, 내 태도를 인정해줬는데 그 선생 한테서만 그런 칭찬을 받아본 적이 없었다.


그 선생이 내 느린 필기 속도를 계속 지적하고 구박했기 때문에 나는 무의식적으로 글씨를 빨리 써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가지게 된 것은 아닐까? 글시를 쓰려고 펜을 쥐면 나도 모르게 조급해지는 이 마음은 어렸을 때 그 지속적인 구박과 꾸지람 때문이 아닐까? 이건 어쩌면 일종의 트라우마가 되어 내 머리 속 깊숙한 곳에 자리잡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이 된다. 어떤가? 합리적인 의심이지 않는가?


암튼 그래서 이 책의 저 구절을 읽고 우리 매장에 있는 재질이 나무로 된 볼펜을 구매해서 공책에 글씨를 써서 글을 쓰기 시작했다. 내 글씨지만 나조차 알아보기 어려운 악필로. 천천히 알아보기 쉽게 글씨를 써보려고 아무리 마음을 먹어도 손은 저절로 글씨를 날리며 빨리 움직였다. 이건 마치 내 손이 아닌 것처럼 내 머리의 명령을 듣지 않고, 혼자 제 멋대로 글씨를 날려서 적어갔다. 이게 참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구나 싶었다. 확실히 나는 손으로 글씨를 쓸 일이 거의 없는 삶을 살고 있구나 싶었다. 문서 작업도 모두 자판을 두드려서 하고, 가끔 쓰는 이런 잡다한 글도 모두 자판을 두드리니 밀이다. 한때는 나도 일기라는 것을 직접 적곤 했는데, 이제는 그런 것조차 휴대폰 앱에서 자판을 두드리거나 이런 온라인 공간에 두드려 놓으니 점점 글씨를 보기 좋게 적을 수 있는 기회는 사라지는 구나 싶다.


쉬운 일이 아니라도 포기하지는 않겠다. 앞으로 매일 단 10분이라도 공책에 직접 글씨를 써서 글을 쓰는 시간을 가져야겠다. 매일 조금씩 노력하다 보면 내 글씨를 알아보는 일이 조금은 쉬워지지 않을까? 알아볼 수 없는 날려쓰는 글씨가 조금은 반듯하게 바뀌지 않을까. 그런 기대를 조금은 가져보며 이 글을 마친다. 쏟아붓던 폭우가 다시 조금 잠잠해졌다. 이 틈에 빨리 집에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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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22-08-18 01: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지난주엔, 이번주에도 비가 많이 왔네요 어쩌다가 그렇게 됐는지... 그런데도 비가 안 와서 가뭄인 곳도 있더군요 거기는 좀 나아졌을지... 기후위기 무섭습니다 북극 빙하가 아주 빠르게 녹고 있답니다 남극도 다르지 않겠습니다 새벽에 그런 영상 잠깐 봤는데, 걱정입니다 집이 1층이고 예전에 물난리 난 적 있어서... 이번에도 그럴 뻔했어요

손으로 글씨 쓰는 것도 환경에 도움이 되는 거군요 그것보다 연필을 쓰는 게 중요하겠습니다 연필도 쓰기는 하는데... 저는 종이에 글 써요 종이는 달력 뒷면... 나중에 공책에 옮겨 쓰기는 해요 시간을 버리는... 글씨 빨리 쓰지 않고 천천히 쓰면 알아볼 수 있을 거예요


희선

감은빛 2022-09-01 15:23   좋아요 0 | URL
답이 많이 늦었습니다. 희선님.
최근 몇 년 사이에 계속 반복되고 있는 일이지만,
올해는 유난히 더 심하게 기후 재앙이 불어닥치고 있는 것처럼 느껴져요.

지금 또 엄청난 태풍이 다가오고 있다고 하지요.
우리나라에 두번째로 큰 피해를 주었던 태풍 ‘매미‘와 비슷한 규모라고 합니다.
부디 태풍이 살짝 비켜가서 큰 피해가 없었으면 좋겠네요.

2022-09-01 15: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09-01 15: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09-01 15:32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