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어가는 시기
늙어간다는 것에 대해 자주 생각하곤 한다. 시간이 흐른다는 것. 언제 이렇게 나이가 들어버렸을까? 젊은 시절, 철없던 시절, 아무것도 모르고 그냥 치기 하나로 살아온 시절이 엊그제 같은데. 이젠 그 시절에 품었던 생각들, 의지들이 다 흩어져 버린 느낌이다. 어느 것에도 별로 의욕이 생기지 않는다. 그저 죽지 못해 살아가는 삶이란 느낌. 이러다가 또 일에 집중하면 열심히 하겠지만, 당분간은 이런 시간을 가지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일종의 쉬어가는 시기라고 생각할 수 있을까?
몸을 움직이다보면 그래도 이런 생각들을 떨칠 수 있다. 운동해야지. 매일 어떤 운동을 하면 더 재미있을까 생각해본다. 그러다 다시 늙어버린 내 몸에 대한 생각으로 돌아온다. 이제는 원하는대로 움직이지 않는 이 몸. 내가 제일 좋아하는 동작들을 할 수 없게 되어버린 이 몸에 대해 생각하면 서글퍼진다.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그 시절을 생각하는 것은 슬픈 일이다.
그래도 다시 움직여야 하겠지. 이렇게 생각만하고 움직이지 않으면 내 삶은 아무 의미를 갖지 못하는 것이겠지. 뭔가 의미를 찾는 것이 살아가는 일이 아닌가. 별로 잘 살지 못했고 그냥 이런 모습에 머물러 있는 나이지만, 그래도 뭔가 그 만큼의 의미는 만들어 왔겠지. 크게 기대하지는 않지만 할 수 있는 만큼의 의미를 더 만들어야겠지. 조금만 더 힘을 내보자. 라고 나에게 말해본다.
어떤 발견
점점 더 굳어지는 몸을 깨닫는다. 이게 내 몸이 맞나 싶다. 한때 유연했던 내 몸은 어디로 가버리고 뻗뻗한 몸이 지금 여기 남았을까. 매일 스트레칭을 해야지 생각한다. 근육통은 은근 기분 좋은 느낌이지만, 스트레칭으로 인한 통증은 쉽게 견디기 어렵다. 그래서 겁이 난다. 차라리 근육통이 나으니 그냥 바벨 운동이나 더 할까 생각했다가 다시 마음을 고쳐 먹는다. 내가 원하는 운동들을 다시 할 수 있는 몸을 만들려면 유연한 몸이 꼭 필요하다. 더 유연해지지 않으면 관절을 다칠 수도 있으니. 수없이 겪었던 부상이 두렵다. 다시 스트레칭을 해야지.
이리 저리 머리를 굴려보며 조금이라도 더 효과적으로 몸을 움직일 수 있도록 이런 저런 동작들을 해보다가 문득 어떤 동작을 나도 모르게 해봤다. 어! 이거 좋은데. 재미도 있고 전신운동으로서 근육들의 협응력도 기를 수 있고, 운동 강도도 적당하다. 철봉이나 평행봉에서 하는 L sit 동작이 아닌 바닥에서 하는 L sit 동작이었다. 검색해보니 실제로 이 동작이 맨몸 운동 프로그램 중에 있었다. 어떤 근육남이 시범을 보이는 영상도 있네. 이런 저런 맨몸 운동들을 많이 익혀왔는데, 이 동작은 왜 지금까지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했을까? 문득 아무 생각없이 갑자기 이 동작을 해본 건 또 어떤 우연일까? 통상은 손바닥을 짚고 팔로 몸을 들어올려 버티는데, 오래 전에 손목 상태가 나빠졌기 때문에 나는 손바닥을 대고 하는 모든 동작을 다 주먹으로 대신하고 있다. 팔굽혀펴기도 주먹을 쥐고 하는데, 이 바닥 엘시트도 주먹을 쥐고 했다. 손목 때문에 무의식적으로 이렇게 했는데, 생각해보니 이 방식이 손바닥을 대는 것보다 더 힘을 전달하기가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손바닥이 꺾이지 않고 주먹까지 그대로 직선으로 힘이 전달되니까 훨씬 더 효율적인 동작일 수 밖에. 주먹에 가해지는 압력으로 인해 손등과 손가락 관절에 느껴지는 통증은 익숙해진지 오래다. 주먹 팔굽혀펴기와 샌드백 두드리기 등의 운동으로 내 손등은 늘 굳은 살이 배겨 있으니. 우연한 발견으로 인해 작은 재미를 얻었다. 한 동안 이 새로운 운동으로 재미를 느낄 수 있겠다.
우울한 기분을 만회하려고 알라딘에 들어와 장바구니에 책을 담고 있었다. 출판계에 있었던 당시에 친하게 지냈던 선배의 추천글을 읽고 이 책을 발견했다. 책 소개에서 세월호 사건, 땅콩회항 사건,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 성추행범 혀절단 사건 등에 대해 다루고 있다는 문구를 보자마자 이건 꼭 읽어봐야겠다 라고 생각했다. 요즘 자주 하는 생각이 옛 역사를 공부하는 일 못지않게,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이 시대의 역사를 잘 기억하는 일이 중요하는 점이었다. 내가 살아온 시대에 대해서도 잘 알지 못하면서 기록이 한정적인 옛 역사를 잘 아는 일이 더 중요할까 싶었던 것이다. 가능하면 더 다양한 관점과 시선을 겪어보는 일이 이 재미없는 삶에서 그래도 재미를 찾아가는 일이 아닐까.
누군가의 강의 요청 전화를 받고 일정을 보다가 문득 오늘이 벌써 15일이라는 걸 깨달았다. 날짜가 어떻게 지나가는 지도 모르고 하루 하루를 살고 있다. 아니 9월이 시작한 게 바로 어제 같은데, 언제 절반이 지나가버렸단 말인가? 추석 연휴 때문에 더 빨리 지나간 것처럼 느껴지는 것이겠지만, 그래도 마치 시간을 잃어버린 것처럼 아쉽게 느낀다.
언젠가도 쓴 적이 있지만, 이 시간이 빨리 가는 것처럼 느끼는 일이 노화로 인해 뇌에서 그렇게 느끼는 것이라고 하는데, 이게 늙어서 그런 거라고 깨달으니 또 서글퍼진다. 인간은 왜 늙어야 하는가. 결국 이 글은 늙음을 한탄하는 것으로 끝내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