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쁠수록 딴 짓


아주 급한 두 가지 할 일을 오늘 중에 반드시 마쳐야 하는데, 나는 늦은 점심을 먹은 후 사무실로 돌아와 지금껏 뉴스를 찾아보거나 (물론 일과 관련한 뉴스이긴 하지만) SNS 를 살펴보는 등 딴 짓을 하고 있었다. 이렇게 바쁜 날일 수록 자꾸만 마음은 딴 곳으로 향한다.


한참을 웹서핑에 빠져 있다가 문자 하나를 받았다. 업무 관련 문자였는데, 그 문자를 닫고 최근에 받은 문자 목록으로 돌아갔다가 확인하지 않은 문자가 많다는 걸 깨달았다. 하나씩 열어보다가 나도 모르게 "뭐야!" 하고 소리를 내뱉었다. 언제 받았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 온라인 도서상품권의 유효기간이 만료되었다는 문자였다. 그 문자 위에는 그보다 며칠 전에 보낸 것으로 나오는 유효기간이 곧 끝나니 얼른 사용하라는 문자도 있었다. 그리고 그 위에는 언젠가 어떤 설문조사에 응했다가 받았던 것 같은 도서상품권에 대한 정보가 있었다. 정말 의아한 일은 이 문자들을 받은 사실 자체를 기억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유효기간이 끝나간다고 경고까지 보내줬는데, 그것도 못 보고 결국 아까운 상품권을 못 썼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요즘 정보 과잉 시대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내 경우에는 문자 과잉 시대라고 불러야 할 것 같다. 문자, 카톡, 텔레그램, 라인, 왓츠앱 까지 나에게 오는 연락이 너무 많다. 그 중 대다수는 내가 속해 있는 단체방에 올라오는 내용들이다. 회의 때문에 한 서너시간 폰을 안 보고 있다가 열어보면 안 읽은 대화가 몇 백개씩 새로 생긴다. 그걸 다 일일이 확인할 여유는 없기 때문에 그냥 열었다가 스크롤을 빠르게 내리고 다시 닫는다. 그 중에 내게 중요한 어떤 내용이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그걸 다 확인할 물리적인 시간이 없다.


액수는 그리 크지 않았지만, 도서상품권을 놓친 것도 너무 많은 문자 메시지 때문이다. 예전이었다면 문자들을 다 읽고 중요한 것들은 별도로 체크해서 잊지 않도록 했을텐데, 점점 더 많은 정보들과 일정들 때문에 그런 방식으로 일을 할 수 없을 지경이 되어버렸다.


가끔 페이스북에서 자신의 일정을 지인들에게 물어보는 경우를 접한다. 다이어리에 날짜와 시간과 지역 명은 적어 놓았는데, 누구와 무얼 하기로 한 일정인지 적어 놓지 않아서 무슨 일정인지 모르겠다고 묻는 것이다. 강의나 회의 일정을 그렇게 지역 명만 적어 놓아서 누구와 한 약속인지 구체적으로 강의 장소는 어디 인지를 모르겠다며 페이스북 친구들에게 혹시 저하고 약속하신 분 누구신가요? 하고 묻는 것이다. 어떤 면에서는 참 어이없는 일인데, 요즘 같은 시대에는 그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나 역시 요즘은 언제 그런 일이 일어나도 별로 이상하지 않은 상태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고 여긴다. 


암튼 그렇게 놓쳐버린 도서상품권을 생각하다가 오랜만에 알라딘에 들어왔다. 생각난 김에 신간들을 좀 살펴보고 책 몇 권 주문해야지 생각이 들었다. 지난 번에 그리고 지지난 번에 받은 책들도 다 읽지 않았지만, 나는 또 책을 산다. 언젠가는 다 읽을거야 라는 생각은 벌써 오래 전에 포기했다. 그냥 책을 갖고 있으면 언제든 손만 뻗으면 읽을 수 있다는 생각에 책을 사기도 했는데, 그것도 이젠 포기했다. 언젠가부터는 사놓은 책들이 어디 있는지 찾는 것도 어려울 정도로 책들이 여기저기 막 쌓여있었다. 암튼 그래도 책은 살거다. 읽고 싶은 책은 늘 많으니까.


가끔 구글 포토 앱이 알려주는 몇 해 전 오늘 사진들을 보다보면 아이들이 자라는 것이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 저렇게 이뻤는데, 저렇게 귀여운 짓을 했었는데. 막 이런 생각이 드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 저기 쌓여있는 책탑들을 보다 보면 또 얼른 아이들이 자라야 내가 이 지긋지긋한 일을 그만두고 책이나 읽고 글이나 쓰는 삶을 살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들기도 한다.


물론 아이들이 다 자랐다고 해서 내가 일을 그만둘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다. 어쨌든 먹고 살아야 할테니 일을 하긴 해야겠지. 지금처럼 매일 출근하는 삶이 아니라 가끔만 일하고 평소엔 책 읽고 글 쓰는 삶을 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생각만 있을 뿐이다.


아, 장바구니에 책 몇 권 담고 아직 결제도 못 했건만, 이웃 서재 글 몇 편 읽고 이 글을 쓰느라 또 시간을 엄청 보냈다. 이제 더 늦기 전에 밀린 일을 해야지. 정말 큰 일 나기 전에 일을 마쳐야지.


그런데 이건 어쩌면 착각일지도 모르지만, 이렇게 쓸데없는 글을 두드리고 다시 일을 하면 이상하게 집중이 잘 되어 일을 금방 끝내버리기도 한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급한 일들을 앞두고 바쁘기 짝이 없는 날에도 자꾸만 딴 짓을 하게 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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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2-09-06 13: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적립금 천 원 들어온 게 있는데 유효기간이 얼마 안 남았다는 문자를 받았어요. 예전 같으면 얼른 천 원에 목숨 걸고 샀는데 이번엔 포기하려고요. 책을 사고 나서 바로 받은 문자였거든요.
아이들이 빨리 커서 편한 점이 있는데 한편으론 애들이 다시 어려졌으면 싶답니다. 그래도 내 손이 갈 때가 좋았던 시절이라 생각되어서죠. 하지만 과거로 돌아가고 싶진 않아요. 육아로부터의 해방된 이 시간들이 소중하기 때문에요. 일장일단...ㅋ

감은빛 2022-09-08 16:37   좋아요 2 | URL
페크님, 저도 대개는 적립금이나 선물받은 소액의 상품권은 어떻게든 쓰려고 하는 편이었는데, 많이 바쁘게 살게 된 어느 시점 이후 부터는 신경을 못 쓰고 살아요. 이 글에 쓴 것처럼 아예 모르고 지나가는 경우도 많은 것 같아요.

아이들이 점점 자라서 이젠 제 키와 비슷한 정도가 되고 나니 언제 이렇게 시간이 지나갔나 싶어요. 품 안에 자식이란 말도 생각나구요. 이제 곧 내 품을 떠나겠구나 하는 생각도 들어요. 물론 요즘 청년들은 독립이 쉽지 않은 시대를 살고 있으니 그리 빨리 떠나지는 않을 수도 있겠네요.

서니데이 2022-09-08 18: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요즘, 적립금이나 상품권을 마지막날 쓰려고 하다가 잊어버리고 다음 날 생각나는 것 같아요.
꼭 필요한 것이 아니면 다음에 사지 뭐, 하고 생각하긴 하는데, 아쉽더라구요.
감은빛님, 오늘부터 연휴 시작입니다.
즐거운 추석연휴 보내세요.^^

감은빛 2022-09-15 13:09   좋아요 1 | URL
서니데이님 덕분에 연휴 잘 보냈습니다.
먹고 자고 또 먹고 자고. ^^

연휴가 끝나니 다시 출근하고 일해야 하는 날들이 정말 싫어지네요.
지금도 사무실에서 일은 안 하고 딴 짓만 하고 있어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