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달관한 사람
어제는 어느 연대단체 회의에 아주 오랜만에 나갔다. 한동안 다른 분이 거기 회의는 모두 참석하는 역할을 맡아주셔서 약 2년 가량 내가 나가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 분이 그 회의에 좀 많이 늦을 것 같다며 혹시 시간이 되면 먼저 참석하고 있어 달라고 요청하셨다. 난 마침 시간이 비어있었고, 오랜만에 만날 반가운 사람들 생각에 흔쾌히 가겠다고 말씀드렸다.
보통 여기저기 회의를 다니다보면 자주 마주치는 분들도 계신데, 어떤 분들은 특정한 자리에서만 만나게 되기도 한다. 여기 회의 오시는 분들 중 두세분은 다른 회의에서도 종종 만나지만, 다른 대부분은 사람들은 여기에서만 만나는 경우가 많아서 한동안 얼굴 볼 일이 없었다.
사람들을 만나고 대화를 나누는 일은 가끔 피곤하고 힘들 때도 있지만, 대체로는 즐거운 일이다. 오랜만에 만난 반가운 얼굴들 덕분에 기분이 좋았다. 그 분들 대부분이 또 나를 반갑게 맞아주셔서 좋았다. 그중 두세분 정도는 정말 오랜만에 만나는거라 내 머리스타일을 처음 본 상황이었다. 머리칼을 길어서 못 알아봤다며 계속 낯설어하고 놀라워 하셨다. 이런 반응 오랜만이라 재밌었다. 한 여성 선배님은 "어디서 영화배우가 온 줄 알았다." 고 하셨고 한 남성 선배님은 "인생을 달관한 사람 같다." 고 하셨다. 확실히 여성들은 좀 더 기분 좋을 법한 표현을 쓴다.
여름 내내 단발머리를 찰랑찰랑 흔들며 다녔는데, 가을이 되자 이제 머리가 좀 더 길어서 어깨에 닿는다는 걸 깨달았다. 머리를 풀고 다니기엔 좀 부담스럽게 곱슬머리가 치렁거린다는 느낌이 들어서 어떻게 할까 좀 고민이다. 머리를 묶고 다니면 두상이 좀 안 예뻐서 별로이고, 머리를 기르기 시작했던 초기처럼 계속 모자를 쓰고 다니기도 좀 싫은데. 그렇다고 다시 단발로 자르고 싶은 마음도 아니라서 말이다.
아, 회의때 만난 사람들 이야기 하다가 금방 내 머리 스타일 고민 이야기로 넘어갔네. 그 회의를 마치고 뒤풀이 자리에 따라가게 되었다. 처음에는 갈 생각이 없었다. 달리 할 일이 있기도 했고. 그런데 오랜만에 만난 반가운 분들이 잠깐이라도 있다가 가라고 붙잡아서 나도 모르게 따라가는 것으로 마음이 바뀌어 버렸다. 뒤풀이 자리에서 어쩌다가 한 선배에게 이혼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사실 애들 엄마도 나도 둘 모두 동네에서 활동하던 사람들이라 인간관계가 겹치는 사람들이 많다. 이혼 이야기가 뭐 그리 좋은 이야기도 아니라 막 떠들고 다닐 이야기가 아니라 나도 애들엄마도 친한 사람들 외에는 밝히지 않았다. 물론 발 없는 소문이 천리를 간다고 했듯이 우리가 말을 안 해도 이야기는 널리 퍼졌을 것이다. 다만 그래도 그 한계는 있었을테니 당연히 아직 모르는 사람들도 제법 있으리라. 그 선배는 그 아직 소문을 듣지 못한 사람에 속하는 것이었다. 나보다 한참 연배가 위인 그 선배는 내가 혼자가 되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내 어께에 팔을 올리시곤 자신도 지금 혼자라고 말씀하셨다. 그러자 맞은 편에 있던 한 분이 왜냐고 물었다. 나도 의외라고 생각했다. 내 기억엔 그렇지 않았던 것 같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다른 선배 한 분이 최근에 형수님과 사별했다고 알려주셨다. 아! 그랬구나. 내가 왜 소식을 몰랐을까? 나한테 소식이 오지 않았을 리가 없었을텐데. 시기를 들어보니 내가 교통사고 후유증이 좀 심해져 잠시 병가를 내고 쉬고 있었을 때였다. 아무리 쉬는 중이었어도 이런 중요한 소식을 그냥 지나치지는 않았을텐데. 어쩌면 한동안 너무 통증이 심해 진통제로 간신히 버티던 시기가 있었는데, 그때 모르고 넘어갔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으로 그냥 답을 찾을 수 없는 의문을 해소하기로 했다. 암튼 그 선배는 사람은 누구나 다 외로운 존재라고. 혼자 있어서 더 외롭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가족들과 함께 있는 사람도 누구나 외롭다고 말했다. 당연히 나 자신도 오래전부터 공감하고 있던 말이다. 이혼하기 전에도 애들 엄마와 사이가 좋지 않았기 때문에 너무 잘 깨닫고 있었다. 암튼 그리고 혹시 문득 외롭고 말 상대가 필요하면 언제든지 연락하라고 했다. 같은 동네 산다는 것이 이럴 때는 얼마나 좋은 일인가.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9월의 마지막 날 하루 전날
또 한 달이 훌쩍 지나갔다. 추석 연휴가 있었고, 아주 중요한 행사였던 기후정의 행진이 있었기 때문에 유난히 빨리 지나간 것처럼 느껴지는 달이었다. 물론 늘 반복해서 말하지만, 어느 달이라고 그렇지 않았겠냐 싶지만. 중간이 이런저런 사고 비슷한 상황들이 벌어져 내가 꼭 수습해야 하는 일들도 있었고, 강의도 많이 맡았고, 사람들을 참 많이 만나고 다닌 시간이었다.
여기까지 버스에서 폰으로 자판을 두드려놓고 북플 앱에 임시 저장을 해뒀다. 12시가 되기 전에 글을 마무리 지을 생각이었다. 영화 [기생충]의 유명한 대사 처럼 계획을 세우면 늘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 나는 자정이 되기 전에 다시 글을 두드릴 시간을 갖지 못했고, 어느새 9월의 마지막 날이 되어버렸다. 처음에 이 글을 두드리기 시작하면서 제목을 '9월의 마지막 날 하루 전날' 이라고 적어놓고 시작했는데, 이제 다시 제목을 바꾼다. '9월의 마지막 날' 이라고.
큰 아이는 요즘 전국 여기저기 백일장을 다니며 상을 쓸어모으고 있다. 최근 참여한 열 개 남짓한 백일장들 중에서 다섯 개의 상을 받았다. 야구로 치면 타율 5할인 셈이다. 아이가 글쓰는 일을 좋아하고, 또 조금은 재능이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이렇게 짧은 시간에 상을 많이 받아올 줄은 몰랐다. 그리고 10월에는 또 꽤 많은 백일장들이 기다리고 있단다. 매번 새벽에 일어나 버스를 타고 행사장으로 갔다가, 마치고 밤 늦게 서울로 다시 돌아오는 일은 엄청 피곤한 일일 것이다. 그래도 아이는 하나도 빠지지 않고 다 참여하려고 노력한다. 대견하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하고, 뭔가 해주고 싶은 말이 많은데, 그런 말들 다 말하지 않아도 다 알고 있을 것 같기도 하고 그렇다. 내가 이 나이에 벌써부터 자식 자랑을 막 하고 다닐 줄은 몰랐다. 친한 사람들을 만나면 자주 "이번에도 상을 받았더라구." 이러면서 아무것도 아닌 것인양 슬쩍 한 마디를 하지 않고 못 배길 줄이야.
작은 아이는 그림에 푹 빠졌다. 미술학원을 열심히 다니고, 자신이 만든 우리 가족 캐릭터를 갖고 만화도 그린다. 나중에 그림으로 진로를 정할지 어떨지는 더 지켜봐야 하겠지만, 지금 상황을 보면 그렇게 될 확률이 높아 보인다. 음, 미술 쪽은 글쓰기 보다는 돈이 훨씬 더 들긴 할텐데. 라고 나도 모르게 돈 생각을 하고 있는 걸 보면 참! 한심한 아빠이긴 하다. 어렸을 때 나도 만화를 그리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조금은 재능이 있지 않나 하는 생각도 했다. 아버지는 나를 화가인 지인에게 데려갔다. 그 화가는 내 그림을 보더니 재능이 없지는 않다는 정도의 평을 했던 것 같다. 다만 미술은 돈이 많이 든다는 말을 덧붙였다. 그리고 우리 집은 정말 가난했다. 그래서 제대로 그림을 배워보고 싶다는 마음을 접었다. 그냥 아주 가끔 스케치로만 그림을 그리곤 했다. 그리고 조금 시간이 지나서 글쓰기로 내 목표를 바꿨다. 그게 아마 중학교 2학년 때부터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매번 새학기에 자기 소개를 하는 시간이 오면 어른이 되면 소설가가 되어 있을거라고, 서점을 지나가다가 내 책을 발견하면 한 권씩 사달라고 말하곤 했다. 결국 나는 만화가도 소설가도 되지 못하고 이렇게 늙어가고 있지만, 아이들은 시와 그림에 어느 정도 재능을 보이고 재미도 붙이는 것처럼 보인다. 아주 다행한 일이다.
작가 라는 타이틀
오랜 시간 시민사회단체와 협동조합을 거치며 일을 하다보니 회원으로 속해있는 단체들이 제법 많고,(즉, 회비로 나가는 돈이 많다는 뜻) 조합원으로 속해있는 협동조합도 많다.(출자금을 여기저기 많이 냈다는 뜻) 어느 협동조합에서는 조합원들을 단체 대화방으로 초대해 조합 소식을 알리거나 조합원들끼리 서로 소식을 주고 받도록 하고 있다. 그 협동조합은 내가 주로 활동하는 분야와는 접점이 좀 없는 편이라 나는 대화에 끼는 경우가 많지 않고, 그저 소식만 열심히 읽는 편이었다.
지난 주에 그 조합에 신입 조합원들이 여러명이 들어왔다. 조합 활동가가 신입 조합원들을 초대하면 기존 조합원들이 환영의 인사를 하느라 읽지 않은 대화가 빠르게 늘었다. 그러다가 나와 친한 활동가가 치통 때문에 수술을 받으려고 입원했다는 소식을 접하고 그 단체 대화방에서 그 친구에게 수술 잘 받고 빨리 나으라고 한 마디를 했다. 그 친구는 평소에 일중독이라고 불러도 별로 이상하지 않을만큼 일에 빠져있는 편인데, 병원에 입원한 상태에서 일을 할 수 없으니 엄청 심심했나보다. 그 대화방에 한 마디라도 글을 올리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에 대해 자신이 간단히 소개를 하겠다고 하면서 그날 대화를 쓴 사람들을 하나씩 찾아서 알려주기 시작했다.
작년에 오마이뉴스에 내 인터뷰 기사를 실었고, 그 활동가 인터뷰 연재 기사들을 모아서 책을 출간한 분을 소개하면서 과거 주요 활동 등을 알리고, 마지막에 '작가' 라고 소개했다. 그리고 다른 조합원들을 한참 소개한 후에 내 소개를 올렸는데, 내게도 "평생 환경운동을 했다." 는 소개와 더불어 몇 가지 정보를 덧붙이고는 마지막에 '작가' 라고 소개했다. 그러자 아까 언급한 작년에 활동가 인터뷰 모음집을 출간하신 그 '작가'님께서 나에게 질문을 했다. "00씨(내 본명)도 책 냈어?" 라고. 나는 이 대화를 좀 뒤늦게 읽었다. 조금 고민하다가 이렇게 답을 적었다. "공저가 두 권 있습니다만, 아직 작가라고 부르기에는 무리가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한참 후에 그 작가님께서 내게 다시 답을 했다. "어느 책이든 글 썼고, 이름 올라가 있으면 작가입니다." 음, 그러니까 공저로 냈더라도 책을 냈으면 작가라는 뜻이었다. 그래서 나는 "그렇군요. 가르침을 주셔서 고맙습니다!" 라고 답하고 그 대화를 잊었다. 한참 시간이 흐른 후에 다시 안 읽은 대화가 엄청나게 쌓여 있길래 들여다 보았더니, 그 뒤로 여러 조합원들이 자신이 책을 낸 경험들을 고백하고 있었다. 공저도 있었고, 단독으로 내신 분도 있었고, 책의 종류도 제각각 엄청 다양했다. 그래서 누군가가 우리 조합에 작가님들이 이렇게 많으니 작가클럽을 결성하자는 제안을 했더라.
사실 친한 친구나 후배들 중에 여러 사람들이 자주 내게 책을 쓰라고 권하곤 했다. 나는 늘 바쁘다는 핑계로 그럴 여유가 없다는 말로 빠져나오고 있다. 정말 아이들이 좀 더 자라고 양육비가 필요없는 날이 온다면 나는 매일 노동하는 이 일을 그만두고 짧게 일하고 꼭 필요한 만큼만 돈을 벌면서 책 읽고 글 쓰는 삶을 살고 싶다고 계속 생각하고 있다. 그 때가 오기 전에 책으로 만들 이야기 꺼리들을 많이 모아두어야 하겠지. 그런데 최근 저 작가라는 직함을 두고 저런 대화를 나누고 나니 내 단독 저작을 내보고 싶다는 욕심이 조금은 생기는 걸 깨닫는다. 쉽지 않겠지만, 혹시 하는 가능성을 열어두자.
사실 그 활동가가 나를 소개하며 '작가'라고 쓴 것은 책을 냈다는 의미가 아니라 평소 글쓰는 것을 즐긴다는 의미가 아니었을까 혼자 생각했다. 그 친구는 내가 실제로 그렇다는 걸 알기 때문에. 그래서 앞에서 처음 '작가입니다.' 라고 소개한 진짜 작가님과 내게 쓴 '작가'라는 이름은 다른 뜻이었을 것이다 라고 혼자 생각해봤다. 어느새 밤이 늦었네. 이제 그만 두드리고 자야지. 9월의 마지막 날이자, 금요일이다. 푹 자고 또 보람찬 하루를 보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