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만에
2019년 9월 21일은 토요일이었다. 이 나라에서 처음으로 기후위기를 주제로 대규모 집회가 열렸다. 이름이 무려 '기후위기비상행동'이었다. 말 그대로 '비상' 상황이라는 인식이 이런 집회를 만든 원인이었음을 깨달을 수 있다. 그날 주최측 추산으로 5천여명이 모였다고 한다. 내 기억에는 더 많았다고 느꼈는데. 매번 거리 집회 때마다 주최측과 경찰의 인원 추산 방식이 잘 이해가 되지 않았었다. 암튼 그 날씨가 좋았던 가을 날에 대학로에 모여 집회를 가지고 종각까지 거리행진을 했었다. 가다가 중간에 기후위기로 인해 모두가 죽어 누워있는 듯한 모습을 표현하는 'die in' 퍼포먼스도 펼쳤다. 그날 데리고 갔던 작은 아이와 함께 차도에 누우며, 참 오랜만에 아스팔트 위에 누워보는 구나 생각했다.
그리고 3년이 지났다. 지난 토요일이었던 9월 24일에는 3년 만에 다시 기후위기를 주제로 대규모 집회가 열렸다. 이번엔 장소가 시청에서 숭례문까지 도로였다. 광화문 쪽으로 장소를 잡으려고 했는데, 허가를 해주지 않아 어쩔 수 없이 시청을 선택했다는 후문을 들었다. 가능하면 더 많은 시민들과 함께 가려고 동네에서 사전 행진도 했고, 이런저런 채널을 통해 열심히 알리기도 했다.
일터 동료 활동가와 미리 만나서 깃발과 손피켓으로 꾸밀 폐박스 잘라놓은 조각들 등을 챙기고, 점심을 먹고 시청 방향으로 가는 버스를 타고 출발했는데, 버스가 집회를 이유로 시청 근처도 못가서 한참 떨어진 곳에 승객들을 모두 내리라고 했다. 걸어가면 적어도 30분 이상은 걸릴 거리였다. 좀 당황했지만, 그냥 빨리 걷기로 했다. 열심히 걸어가는 중에 여기저기서 전화가 오기 시작했다. 정해진 장소에서 우리 깃발 아래 동네 사람들이 모두 모이기로 했는데, 정작 깃발을 가진 이가 미리 와있지 않아 벌어진 일이다. 내 예상으로는 충분히 일찍 도착해서 사전 부스들 구경도 할 수 있을거라고 생각했는데, 예상치 못한 상황 때문에 이렇게 되었다. 한 후배는 집회 한 두번 오냐고! 집회 오는 사람이 왜 버스를 타냐고 따지기도 했다. 그게 집회 장소로 바로 가는 버스가 아니어서 괜찮을 줄 알았다는 변명이 머리 속에는 떠올랐지만, 입으로 나오지는 않았다. 사실 모이기로 예정된 시간에 늦지는 않았는데, 미리 오지 않았다는 이유로 여러 사람들에게 한 소리씩 들었다.
전국에서 모였기 때문에 혹은 올해 이른 더위와 폭염을 거치고, 태풍과 폭우로 큰 피해를 입었기 때문일까? 예상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몰려서 시청역 8번출구 뒤쪽부터 숭례문까지의 그 좁은 도로만으로는 감당하지 못할 정도였다. 앉거나 설 자리가 모자랄 지경이었다. 주체측 추산 3만 5천여명이라고 했다. 3년 전에 비해 3만명 가량이 더 나왔다는 이야기. 어린이와 청소년들도 많이 눈에 띄었다. 3년 전에 데리고 나왔던 우리 작은 아이에게는 올해는 말도 꺼내보지 못했다. 어렸을 때 하도 이런저런 집회에 많이 데리고 다녔던 걸 이제와 원망하던 모습들이 기억에 남아 있어서였다. 말을 했더라도 분명 싫다고 했을 것이 뻔했다. 암튼 3년 전에는 우리 아이가 금방 눈에 띌 정도로 다른 어린이들이 많지는 않았다. 이번에는 달랐다. 긴 시간 이어지는 행진에도 씩씩하게 잘 걷는 어린이들, 부모에게 안기거나 목마를 탄 어린이들이 계속 눈에 띄었다. 청소년들도 엄청 많았다.
또 하나의 재미는 개성적이고 톡톡 튀는 피켓 문구들. 모두가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종이박스를 찢은 조각에 손글씨로 피켓을 만들어왔다. 크기와 문구가 제각각인데, 웃긴 내용들이 많았다. 나는 집회 시작 전부터 행진을 마칠 때까지 깃발을 챙기느라 손피켓을 들지는 않았는데, 만약 깃발을 맡은 입장이 아니었다면 어떤 재밌는 문구로 피켓을 만들었을까를 생각해보는 재미도 있었다.
이렇게 큰 집회에 오면 늘 많은 지인들과 마주친다. 20년 환경운동을 하면서 이런저런 자리에서 마주친 수많은 사람들이 그날 같은 자리에 있었을 것이다. 운이 좋아 마주친 사람들도 있고, 멀리 떨어져 있어서 못 본 사람들도 많았다. 페이스북을 살펴보니 너도나도 다들 그 자리에서 있었더라. 여러 차례 언급했지만, 사람 얼굴을 쉽게 못 알아보는 탓에 누군가 인사를 건네면 두려운 마음이 앞선다. 분명 낯익은 아니 반가운 얼굴인데 누구인지가 금방 떠오르지 않는 이 답답한 머리를 어쩌면 좋은가! 여러 번 그런 순간들이 있었다. 상대가 반갑게 와서 인사했는데, 그 반가운 얼굴이 누구였는지 생각이 나지 않아 어색한 표정으로(다행히 마스크가 일부 가려줬겠지만) 인사를 했던 시간들. 상대도 마스크를 쓰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더 알아보기 어렵기도 했다. 동네 사람들은 이제는 내 긴 머리 스타일에 조금은 익숙해져서 나를 알아보았지만, 교통사고 이후로 나를 한번도 만나지 못했던 지인들은 나를 알아보지 못했다. 그런 사람 중에 한 명이 내게 와서 "못 보던 사이 스타일이 많이 바뀌었네."라고 말을 건넸다. 나는 그냥 웃고 말았다. 어떤 의미에서는 차라리 다행이었다. 사실 이런저런 사건들 때문에 마주치면 껄끄러운 사람들도 그날 그 자리에 많았었다. 적어도 그 사람들은 바뀐 내 외모를 알지 못할테니, 나랑 마주쳐도 나를 알아보지 못하겠지.
버스기사님이 중간에 승객을 모두 하차시키는 시청까지 걸어가기도 했고, 당일 행진 초반에 출발이 너무 지연되어서 많이 지친 탓에 행진 후반에 속도가 빨라졌을 때 쯤에는 따라 잡아 걷기가 조금 힘들었다. 내가 들고 있던 깃대가 주로 깃대로 활용하는 낚시대가 아니라 조잡하고 짧아서 높이 그리고 오래 들기가 힘들기도 했고, 오래 서있다가 걷다가를 반복하다보니 무릎에 통증이 오기도 했다. 그리고 끝날 때쯤에는 평소 안 아프던 허리도 아프더라. 광화문 광장 근처에서 바닥에 눕는 퍼포먼스(3년 전에도 했던 그 die in 퍼포먼스)를 할 때에는 따뜻한 아스팔트 바닥에 누워 맑은 파란 하늘이 보고 있으니 기분이 좋았다. 눈을 감으니 스르르 잠이 들 것 같은 기분이었다.
주말에 3만 5천명 가량의 시민들이 모여서 기후정의를 외쳤는데, 대통령은 미국에서 미국 의원들과 미국 대통령에게 비속어를 내뱉아서 논란이 되고 있더라. 집에 티비가 없어서 유튜브로만 뉴스를 접하는데, 주말 내내 다른 소식은 없이 그 이야기만 반복하니 참 답답하고 갑갑했다. 대통령실에서 내놓은 해명이란 것도 정말 웃겨서 큰 소리로 웃지 않을 수 없었다. 정말 정치가 코메디라 코메디 프로그램이 문을 닫을 수 밖에 없는 현실이구나. 우리나라 희극인들 참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치인들을 상대로 경쟁해야 할 상황을 과연 상상이나 했을까?
그날 무대에서 발언하신 분들의 말씀들이 하나같이 다 멋있고 좋았다. 이름 있는 유명한 사람들이 아닌 기후위기로 인한 피해를 가장 먼저 당하는 당사자들의 목소리라서 좋았고, 표현 하나 하나에 울림이 있고 감동이 있어서 좋았다. 절망스러운 상황이지만, 그래도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한 목소리를 낼 수 있어서 다시 힘을 낼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