겸허해지는 순간

오월햇살


네 엄마를 분만실로 들여보내고
문밖에서
겁 많은 네 엄마의 불안을 주워 담으며
아직 태어나지 않은 네가
노래 못 부르는 것은 나를 닮지 말고
뽀얀 속살은 네 엄마를 닮았으면 하다가도
저어기
네 엄마의 신음소리가 들릴때면
여자이기보다는 남자이기보다는
예쁘다기보다는 선하다기보다는
그저 너와 네 엄마가 건강하기를
햇살처럼
들풀처럼 건강하기를
병원 복도를 동동거리는 동안
창 밖엔
오월 햇살이 꽃을 피우고 있었다


이한주 / 너희들 키만큼 내 마음도 자랐을까 / 삶이 보이는 창 


시의 제목이 '오월 햇살'이다. 우리 둘째도 햇살이 따뜻한 오월에 태어났다. 첫째때 충분히 기다렸다가 병원에 갔다고 생각했는데도, 병원에서 진통을 열시간이나 했던 기억때문에, 이번에는 좀 더 기다렸다가 출발했다. 준비물을 챙기고, 큰 아이의 손을 붙잡고 함께 집을 나섰다. 첫째도 같은 병원에서 낳았는데, 지금 집에서는 차로 이십여분 걸리는 거리다.(첫째때는 걸어서 이십여분 걸리는 곳에 살았다.) 택시를 잡아 타고 병원을 향했다. 아내는 첫째때 아무 준비없이 산통을 겪으며, 무척 힘들어했다. 그래서 이번에는 '탁틴맘'이란 곳에서 임산부 요가도 하고, 호흡법을 비롯한 여러가지를 미리 배워놓고, 준비를 착실하게 했다. 5년전에 비하면 제법 느긋한 마음으로 병원에 들어섰다. 나는 주로 애를 챙겼다. 큰 애는 동생이 태어난다는 아주 중대한 사건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궁금하기도 하고, 조금 걱정이 되기도 했다.  

좁은 개인별 대기실에 짐을 풀고, 큰 애에게 동생이 나올 일에 대해 여러가지 설명을 하고 있었는데, 겉싸개가 준비되지 않았다고, 간호사가 집에서 갖고 오라고 했다. 5년 전에는 그 병원에서 겉싸개를 준비해줬다. 그래서 우리는 일부러 챙겨오지 않았는데, 그새 방침이 바뀌어서 이제는 병원에서 제공하지 않는다고 한다. 아내는 얼른 집에 다녀와달라고 했다. 큰 애를 그냥 둘 수 없어서 함께 데려갔다. 택시를 잡아타고 다시 집으로 향했다. 차가 조금 막혔다. 서두른다고 애를 썼는데도 생각보다 시간이 지체되었다. 겉싸개와 한두가지 물품들을 찾아들고 집을 나서서, 택시를 잡으러 큰 길로 향하는데, 병원에서 전화가 왔다. 나를 집으로 보낸 그 간호사가 다급한 목소리로 어디쯤 오고 계신가 물었다. 나는 아직 시간이 좀 걸린다고 했다. 병원에 도착한지 이제 겨우 한시간쯤 지난 것 같은데 벌써 분만이 시작되려 한다고, 서둘러 오라고 한다. 전화를 끊자마자 큰 애를 어깨에 들쳐메고 뛰었다. 꼭 급할 때는 택시가 잘 안잡힌다. 서둘러야 아기가 태어나는 모습을 볼텐데, 아빠가 도착해야 탯줄을 자를텐데, 아내가 힘들때 내가 손을 잡아줘야하는데, 빨리가야 할텐데. 자꾸만 속이 탔다. 겨우 택시를 잡았다. 기사님께 짧게 설명을 드리고, 최대한 서둘러 주십사 부탁을 했다. 기사님은 택시만이 가능한 온갖 방법을 동원하여 달리셨다. 덕분에 약간 차가 밀리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빨리 병원에 도착할 수 있었다.  

다시 큰 애를 들쳐메고 뛰었다. 분만실로 달려가니 나에게 전화를 했던 간호사가 안절부절못하고 기다리고 있었다. 곧 나올것 같다고 서둘러 수술가운 같은 옷을 입혀주었다. 큰 애 손을 잡고 들어가니, 이미 아기 머리가 반쯤 나온 것 같았다. 다 되었다고 원장선생님께서 아내를 다독이고 있었다. 재빨리 아내에게 다가가서 손을 잡아주었다. 곧 아기가 태어났다. 간호사가 아기를 아내의 가슴에 안겨주었다. 곧이어 나는 탯줄을 잘랐다. 큰 애는 분만실 입구쪽에 정신없이 멍하게 서있었다. 아차! 급하게 서두르다보니, 큰 애에게 신경을 못썼다. 큰 애를 안아주고 동생이 태어난 일에 대해서 함께 대화를 나누었다. 두번째는 좀 잘할수도 있을거라 생각했는데, 예상치도 못한 일로 이번에도 정신이 없었다. 다행히 진통을 오래겪지 않았고, 아내도 아기도 모두 건강했다. 하마터면 아기가 태어나는 모습을 못볼뻔했지만(그래서 그 간호사는 자기 책임이라 생각하고 엄청 마음을 졸였다고 했다.), 그것도 재미있는 기억으로 남게 되었다. 

 

※ 그리고 아래는 첫째가 태어나던 순간에 대해 기록해놓은 글이다. 예전 블로그에서 옮겨왔다. 

오늘은 아내가 열시간이 넘는 진통 후에 아이를 낳은 날이다. 즉 우리 아이의 생일이다! 아마도 예정일이 지났던 것 같다. 아내는 거짓말처럼 예정일에 진통을 느낀다고 했는데, 알고보니 그건 '가진통'이라고 부르는 것으로 진통이 오기 전 단계였다. 가진통으로부터 대략 이틀(아마도 워낙 정신이 없을때였기에 그런지 정확한 시간이 기억이 안난다!)쯤 지나서 진짜 진통이 왔다. 아내와 나는 여러차례 병원에 전화를 걸어 물어보다가, 아내가 이젠 가야한다고 확신하자 대충 짐을 싸들고 병원을 향했다.

마침 당시 우리 동네에 아기와 산모를 위해 작은부분까지도 신경을 많이 써주기로 유명한 병원이 있었다. 나야 그런 것 하나도 모르지만, 아내는 많은 정보를 바탕으로 그 병원이 곧 태어날 우리 아이를 위해 가장 좋은 선택이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우리 집에서 병원까지 보통 사람 걸음으로 걸어서 대략 20분쯤 걸리는 거리였다. 택시를 탈까 고민하다가 그냥 천천히 걸어서 갔다. 아내는 걷는 게 자연분만에 도움이 될 거라고 말했다. 걸어가면서 우리는 유명한 노래 가사를 떠올리며 '10월의 마지막 날'에 아이가 태어나게 되었다고 얘기하며 웃었다.

병원에 도착해서 아내가 이런 저런 준비를 하는 동안 장모님과 아내의 가장 친한 친구가 달려왔다. 진통이 심해지자 아내는 소리를 질러대며 내 손을, 팔을 그리고 내 머리칼(딱 한번)을 쥐어뜯었다. 다른 사람들은 임신하면 미리 무슨무슨 호흡법 등등을 배운다고 하던데, 아내는 그런 것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래서 진통이 오면 그냥 소리를 질러대고 이를 앙다물고 그 고통에 맞섰다. 얼마나 소리를 질렀던지 병원이 떠나갈 지경이었다. 나와 아내의 친구는 어떻게든 도움을 주려고 애썼지만 아내는 홀로 죽을만큼 아프다는 고통을 이겨나갈 수 밖에 없었다. 나는 아내가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면서 여러가지 복잡한 감정을 느꼈다. 아, 그 기분을 어찌 말로 설명할 수 있으랴!

집에서 처음 진통을 느낀 지 열시간이 넘어섰다. 아내는 점점 더 빨라지는 진통에 죽을 듯이 괴로워했다. 여전히 소리를 질러대는데, 그제서야 간호원 한 명이 들어오더니, 소리를 지르면 안된다고 말하면서 호흡법을 알려주고, 어디에 어떤 느낌으로 힘을 줘야 하는지도 알려줬다. 진통은 오래했지만 요령이 없어서 아직 자궁이 하나도 안열렸다고 했다. 간호원은 언젠가 영화에서 본 듯한 호흡법을 알려주며 '아빠'가 함께 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점점 더 진통은 빨라졌고, 아내와 나와 아내의 친구는 아주 열심히 간호원이 알려준 호흡법을 따라했다. 아내는 여전히 아프긴하지만 아까보다는 한결 나아진 모습으로 호흡법에 집중했다. 그리고 얼마지나지 않아서 다시 간호원이 오더니 곧 분만이 시작될 것 같다고 분만실로 옮겼다. TV나 책에서 보면 분만할 때 남자는 밖에서 담배를 피우거나 초조해하면서 기다리던데, 나는 분만실에 함께 들어갔다. 이 병원은 남편이 곁에 있도록 하는 방침을 갖고 있다고 한다. 의사 선생님은 아내를 격려하기도 하고, 요령을 알려주기도 했다. 그리고 정신없는 내게 무언가 지시를 내리기도 했다. 아내의 손을 꼭 잡은 채 나는 아내와 아이가 별 탈이 없기만을 바라고 또 바랬다. 거의 다 되었다고 조금만 더 힘을 주라고 의사 선생님이 재촉하고 격려하기를 여러차례. 마침내 아이가 이 세상으로 나왔다.

의사 선생님과 간호원은 아이가 나오자 아빠가 탯줄을 자르라고 했다. 워낙 긴장하고 있던 터라 뭘 어찌해야할지 몰라서 허둥대는데, 간호원이 시키는대로 움직여서 간신히 탯줄을 잘랐다. 간호원은 아이를 깨끗한 천으로 감싸서 나에게 보여주었다. 아이는 쭈글쭈글한 모습으로 맹렬하게 울고 있었다. 잠시 아이를 간단히 씻겨서 깨끗한 배냇저고리에 감싸서 엄마에게 안겨줬다. 아내는 아이를 안고서 눈물을 흘렸다. 나 역시 흘러나오려는 눈물을 간신히 참아냈다.

삼일 동안 아내와 나와 아이는 병실에 있었다. 다른 아빠들은 아이가 태어난 날과 다음날 정도만 쉴 수 있었다는 말을 종종 들었는데, 나는 한 달동안 육아 휴가를 받았기 때문에 얼마든지 아이에게 집중할 수 있었다. 아이는 잠을 자거나 젖을 빨거나 울거나 했다. 한 밤중에 깨서 울면 아내는 젖을 물렸고, 젖을 다 먹은 아이를 잠시 바람을 쐬주기 위해 내가 안고 나와서 병원 복도를 거닐었다.

작고 여린 생명을 안고서 나는 어쩜 이리도 작을까 신기해하고 또 신기해했다. 아이에게 뱃속에서 목소리로만 들었던 아빠를 실제로 만난 소감을 물어보기도 하고, 어서 무럭무럭 자라서 아빠랑 함께 등산도 가고, 축구도 하고, 여행도 가자고 약속하기도 했다. 그리고 좀 더 좋은 세상에 태어나게 해주고 싶었는데, 이렇게 말도 안되는 곳에 태어나게해서 미안하다고, 네가 크면 아빠와 함께 좋은 세상 만드는 일을 함께 하자고 얘기해주기도 했다.

지금도 팔에 그리고 가슴에 그 조그만 아이를 안았던 감촉이 그대로 느껴지는 것 같다!

오늘은 10월의 마지막 날이자, 아이의 생일이다. 아이를 위해서도 축하해야 할 날이지만, 죽음보다 더한 고통을 이겨낸 아내를 위해 꼭 기념해야 할 날이다! 마침 금요일이다! 일중독에서 하루쯤은 벗어나서 뭔가를 해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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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1-03-24 05: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두 아이 모두 탯줄을 직접 자르셨군요. 겁나서 못하겠다고 하는 아빠들도 많다던데.
아이가 태어나던 날은 그 아이 본인만 기억못할뿐, 아이 엄마에게도 그리고 아빠에게도 잊을 수 없는 날이지요.
그 고통을 견디며 낳은 아이들이 벌써 자라 소리 지르며 뛰어 노는 모습을 보면 문득 뭉클해질 때가 있어요.

감은빛 2011-03-28 13:04   좋아요 0 | URL
잊을 수 없는 날이지만, 해가 갈수록 사소한 일들은 자꾸 잊게되더라구요.
저는 애들이 태어난 당일 일은 또렷이 기억하지만,
그 이후 며칠은 너무 정신이 없어서 잘 기억이 안나요.

커가는 아이들보면 문득 뭉클해질 때가 있죠! 공감합니다!

첫눈 2011-03-24 11: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가 태어나던 순간을 지금도 잊지않고 실감나게 기록을 하시다니..
부인되시는 분께서 이 글을 보신다면 눈물을 흘리실것 같네요.
보는 저도 마음이 뭉클할 정도에요.
아이들을 사랑하는 마음이 글에 가득 담겨있네요.
모두 행복하고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

감은빛 2011-03-28 13:05   좋아요 0 | URL
이렇게라도 써두지 않으면, 금방 잊어버릴 것 같아서요.
고맙습니다!

스트레인지러브 2011-03-24 13: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무엇보다 아이의 출생순간을 기록하신 건 대단한데요.

그 아이에게 물려줘도 충분히 자랑스러울 그런 기록 같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시간이 흐를수록 더없이 소중해지는 그런 글 같네요.

감은빛 2011-03-28 13:06   좋아요 0 | URL
이렇게 적어두면, 나중에 들려줄 때 참고가 될 것 같네요.
고맙습니다!

루쉰P 2011-03-24 15: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아직 아기를 낳을 수 있는 결혼을 하지 못해 그 마음을 충분히 헤아릴 수는 없지만 뭔가 따뜻하고 가슴이 벅차다는 것은 느낄 수가 있네요.^^ 저도 제 아이가 태어난다면 어떤 기분일지 참으로 기대가 만땅이에요. 그래도 다짐하는 건 아이들에게는 좀 인간다운 사람으로 저를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이 항상 많아요. 아! 정말 좋으시겠어요.^^

감은빛 2011-03-28 13:07   좋아요 0 | URL
아이에게 자신을 보여준다기 보다는,
그냥 아이가 있는그대로의 아빠를 받아들일거예요.
고맙습니다!

양철나무꾼 2011-03-24 15: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제가 둘째를 아직 낳지 못해서 이런 멋진 글을 남편에게 선물 받지 못했을까요?
아님, 울 아들은 꽃 피는 5월이 아닌 쓸쓸한 10월생이어서 그럴까요?
곡우님도 그렇고, 님도 그렇고...아내와 아이를 무한감동시키시는 분들인 듯~^^

감은빛 2011-03-28 13:10   좋아요 0 | URL
저희 첫째가 10월의 마지막 날 태어났어요.
절대 잊어버리지못할 생일이 되었죠.(이용의 노래와 함께~ ^^)
고맙습니다!

마녀고양이 2011-03-28 11: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 저는 진통하면서 승질나서 신랑을 병실에서 쫒아냈던 기억이 있어요.

그나저나, 첫째 아이가 동생의 분만을 보고 좀 놀랐겠는데요.
탯줄을 자르셨다니 멋지십니다. ^^ 어쩐지 마음이 따스해지는 글입니다.

감은빛님 페이퍼로 예전 그 순간을 되새겨보는데, 무서워서 두째는 꿈도 못 꾸겠어요. ㅋ
하두 고생하면서 낳아서 말이죠~

감은빛 2011-03-28 13:15   좋아요 0 | URL
병실에서 쫓겨난 아빠 이야기 굉장히 재밌을 것 같은데요. ^^
네, 첫째가 동생 태어나는 장면을 보고 많이 놀랐던 것 같아요.
미리 얘기도 많이 들려주고, 그림책도 보여주고 했는데,
역시 간접경험과 직접경험은 비교할 수가 없는 듯!

아내도 너무 힘들었다고, 절대 둘째는 안 낳을거라고 했어요.
그래도 시간이 지나면서 첫째가 많이 자라버리니까,
다시 조그만 아기가 그리웠는지, 둘째를 갖기로 했죠. ^^
 

하나. 엎드려 절 받기


지난 주 나를 아주 화나게 했던 그 활동가 건(지난 페이퍼에서 언급했던 일)으로 인해 금요일 저녁에 기분이 매우 안 좋았다. 그 활동가가 여성이기 때문에, 혹시 내가 뭔가 잘못 오해하거나 착각해서 이러는 건가 싶어서 아내에게 상의를 했다. 너무 이해가 안 되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누군가의 도움이 절실했다. 아내의 결론은 간단했다. 그 사람이 미쳤거나, 아주 싸가지가 없는 인간이라는 거였다. 물론 가족이기 때문에 내 편을 더 들어줬을 수도 있지만, 내가 아는 아내는 그런 사람은 아니다. 평소에 나와 말다툼을 할 때보면, 내 잘못이 조금이라도 있는 경우, 오히려 더 철저하게 상대방을 옹호하는 사람이었다. 잠을 자려고 누워도 잠이 오지 않아서, 다시 곰곰이 생각을 해봤다. 이건 나 혼자만 개인적으로 기분나빠하고 말 사안이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다. 어쨌거나 함께 사업을 진행해가고 있는 두 단위를 대표해서 업무를 진행하는 입장이었다. 그렇다면 그가 나를 무시한 게 아니라, 그쪽 단체가 우리 회사를 무시한 결과가 된다. 이렇게 결론을 내리자, 도저히 그냥 넘어갈 수 없다고 생각이 들었다.


그 단체의 책임자에게 메일을 보냈다. 잘 안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한 건물에서 일했었고, 몇 번인가 함께 술잔도 기울였던 사이다. 평소에는 전혀 연락을 안 하다가, 갑작스레 이런 일로 연락을 하게 된 게 좀 미안했지만, 어쨌거나 해결책은 이거 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앞부분은 배경 설명을 하고, 현재의 내 기분과 우리 쪽 입장을 명확하게 전달했다. 제대로 된 해명과 사과가 없으면 대표님께 보고하고, 대표 명의로 공식적으로 항의절차를 밟겠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그와 주고받았던 몇 통의 메일 전문을 첨부했다.


토요일 오후 늦게 메일을 받은 국장님께 답장이 왔다. 일단 이런 상황이 된 것이 매우 유감스럽고, 함께 활동했던 동지로서 대단히 미안하다는 얘기와 함께 자세한 상황을 알아보고 연락주시겠다고 했다. 조금은 마음이 풀렸다. 그리고 오늘 오전에 국장님의 전화를 받았다. 먼저 사과를 하시면서 간단하게 상황 설명을 해주셨다. 어쨌거나 결론은 명백하게 그 활동가의 잘못이라고 했다. 다만 그 활동가가 개인적인 이유로 활동을 정리중이며, 여러 가지 정황상 곧바로 사과를 할 상황은 아닌 것 같다고, 자신이 대신 정중하게 사과를 하니, 이해하고 마음을 풀어달라고 했다. 원래 문제가 되었던 건의 처리는 그쪽에서 곧 마무리하기로 했다.  

 

해당 활동가로부터 직접 사과를 받지는 못했지만, 모든 상황은 원만하게 해결이 된 듯 했다. 나로서도 더 이상 이 건을 문제 삼을 만큼 한가하지도 않으니. 일단락을 짓기로 했다. 조금 여유가 생기면 곧 소주 한잔하기로 하고 전화를 끊었다.


둘. 열꽃은 피었다가 지고


지난 주 내내 고열에 시달렸던 아기는 금요일 오전부터 체온이 거의 정상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온몸에 열꽃이 올라왔다. 이틀 전인 수요일에 의사선생님이 열이 내리면 열꽃이 필거라고 말씀하셨는데, 딱 들어맞았다. 퇴근해서 아기를 안으니, 마음이 너무 아팠다. 일주일동안 앓느라고, 살이 쏙 빠진데다가(흔히 말하듯 얼굴이 반쪽이 되어있었다!), 얼굴에 온통 울긋불긋 열꽃이 올라있는 모습이 너무 불쌍해 보였다. 한동안 녀석을 꼭 껴안고 서있었다. 아플 때는 잘 웃지도 않고, 장난도 안치던 녀석이 이제 좀 나아지긴 했는지, 예전처럼 잘 웃고, 장난도 치기 시작했다.


토요일 오전 병원에서 의사 선생님은 아기를 보더니 갑자기 시를 읊으셨다.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보다.' 열꽃을 볼 때마다 이 시가 생각난다는 선생님의 말씀을 들으며, 나와 아내는 좀 당황했지만, 그냥 웃어 넘겼다. 아기 얼굴에 핀 열꽃을 보고 그 유명한 시를 떠올리는 건 자유지만, 아픈 아기를 안고 병원을 찾은 부모들에게 그 시를 읊는 건 좀 당황스럽다.


아기가 몸이 약해져 있는 상태니까 절대 외출하면 안 된다고 해서, 주말을 집에 콕 박혀서 보냈다. 일요일 오후가 되니 열꽃이 많이 가라앉았다. 게다가 얼굴에 다시 살이 붙는 게 느껴졌다. 어제 퇴근하고 돌아오니 포동포동 살이 붙은 아기가 나를 반기며 웃었다. 열꽃은 이제 완전히 다 나은 것 같았다. 한참동안 아기와 장난을 치며 놀았다. 아기가 깔깔 웃으며 좋아하는 모습을 다시 보게 되어 너무 기분이 좋았다. 아가야, 제발 아프지 말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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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해한모리군 2011-03-22 13: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문제가 생기면 저는 내내 마음에 담아두는 편이라(다른 일도 못하고) 시원하게는 아니지만 이리 일단락 되었으니 다행입니다. 속상하시겠어요 --;;

아휴 아가 때문에 얼마나 가슴을 졸이셨을까요? 어떤 생명도 거저 자라지는 않나봅니다.

수고 많~~~~~~~으셨어요.. 감은빛님!

감은빛 2011-03-22 15:23   좋아요 0 | URL
저도 모리님과 비슷한 성격이라, 이틀동안 다른 일도 못하고, 혼자 열받아있었습니다. 어쨌거나 잘잘못을 따지고 나니, 억울함은 해소가 되네요.

네, 차라리 내가 아프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죠.
고맙습니다!

울창 2011-03-22 15: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아...다행입니다. 두 일 모두요.

저는 남자애만 둘인데요, 응급실행도 제법, 깁스도 제법, 그냥 병원 가는 일은 수없이 했지만 할 때마다 마음 아프긴 마찬가지더라구요.

휘모리님 말씀대로 어떤 생명도 거저 자라지는 않나 봅니다.


감은빛 2011-03-23 12:26   좋아요 0 | URL
남자애들은 여자애들에 비해서 가슴이 철렁할 일이 많을 것 같아요.
(아마 저도 어렸을 때부터 부모님께 그런 존재였겠죠!)
그래도 건강하게 잘 자라는 게 너무 고맙다는 생각이 듭니다.
마음써주셔서 고맙습니다!

순오기 2011-03-22 17: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생하셨어요~ 그래도 잘잘못을 가려 마음이 풀리셨다니 다행이어요.
저는 잘못하고도 사과 안하는 사람은 어떤 형태로든 응징하는 쪽입니다.
제가 순 오기라 이름값 좀 합니다.ㅋㅋ

아기가 아프면 정말 대신 아프고 말지, 차마 보기 어렵죠.
그렇게 한 고비 넘기면 쑤욱 자랐다는 걸 느끼지만, 너무 안스러운 일입니다.
고새 잘 먹어서 살이 올랐다니 한시름 놓이네요.

감은빛 2011-03-23 12:27   좋아요 0 | URL
아! 그렇군요.
말씀을 듣고 보니 이름값 하실 것 같아요! ^^
고맙습니다!

따라쟁이 2011-03-22 17: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아기는 아프면 안되요.

그리고, 그리고, 저도. 소주한잔.. 막 이러고..;;;;
(이걸 무슨 특허같은걸 낼까봐요. 본문과 상관없는 무의미한 댓글로...)

그나저나.. 아기는 이제 안아플거에요. 이번에 다 아프고 앞으론 안아플거에요.^^

감은빛 2011-03-23 12:29   좋아요 0 | URL
따라쟁이님이 특허 내기 전에, 저도 한번 따라해보고 싶어요!
근데 정말 쉽지 않을 것 같아요.
왠지 보통 내공으로 안 될 것 같다는 생각도 들고!
저에게도 비법을 좀 전수해주시면 안될까요? ^^
(소주한잔! 좋습니다! 언제? 어디서?)

pjy 2011-03-22 17: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기들의 요맘때 효도는 안 아프고 잘먹고 제때 자고 잘 싸는거죠^^; 이제 나아지고 있다니 다행입니다~

감은빛 2011-03-23 12:31   좋아요 0 | URL
같은 말을 결혼전에 부모님께 들었을 때는 그냥 당연한 말이었지만,
부모 입장이 되어 몸으로 겪어보니, 정말 중요한 말이더라구요!
무조건 건강해야 합니다. 건강의 최고의 효도입니다!
마음 써주셔서 고맙습니다!

비로그인 2011-03-22 19: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행이네요. 일이 다 잘 풀렸군요^^

감은빛 2011-03-23 13:07   좋아요 0 | URL
네, 고맙습니다! ^^

루쉰P 2011-03-22 21: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쁜 일도 같이 오고 좋은 일도 같이 오니 다행이네요. 또 무슨 일이 나오기는 하겠지만 그래도 계속해서 신경 쓰며 사는 것이 삶이지 않을까 싶네요. ^^ 화이팅!!

감은빛 2011-03-23 13:08   좋아요 0 | URL
그렇겠죠. 아무일도 안 생기면 오히려 재미없을테니까요.
고맙습니다! ^^

양철나무꾼 2011-03-23 01: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엎드려 절받기 때론 필요한 것 같더라구요.
엎드려서라도 절을 받아야 할 때는 이름 지어 받을 필요가 있는 것 같아요.
그냥 흐지부지 해버리면 그걸 사람 좋아 그냥 넘어간 걸로 아는 게 아니라,
흐리멍텅한 줄 알고 얕잡아 보더라구요.
사회 생활을 하면서 드는 생각이고, 염증을 느끼고 있는 부분이기도 하구요.

이제 밤에 좀 주무실 수 있겠네요~^^

감은빛 2011-03-23 13:11   좋아요 0 | URL
제가 예전에 그런 취급을 종종 당했습니다.
예의상 혹은 인정상 조금 손해를 보고 지나가면,
사람을 아주 우숩게 여기거나, 얕잡아보는 것 같더라구요.
정말 이런 거 아주 싫습니다!

고맙습니다!

조선인 2011-03-23 08: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가야, 아프지 마라, 아프더라도 더 건강해져라.
모든 부모들이 외는 주문이지요. 나아졌다니 다행입니다.

감은빛 2011-03-23 13:12   좋아요 0 | URL
네, 그 주문이 입에서 좀처럼 떠나질 않네요.
마음써주셔서 고맙습니다!

섬사이 2011-03-23 15: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픈 아기를 안고 안쓰러워하는 아빠의 모습이라니..
갑자기 정호승 시인의 '아기의 손톱을 자르며'던가? 하는 시가 떠오르네요.
전 다정한 아빠의 모습을 가진 사람이 참 좋아요.
제 남편은 좀 무심한 타입이라.. ^^;;

일이 잘 해결되고 아기가 다시 건강해졌다니 참 다행이네요.
(아기가 열이 심할 때가 저는 가장 무서워요~~ 덜덜덜)

감은빛 2011-03-23 23:22   좋아요 0 | URL
'아기의 손톱을 깎으며'네요.
덕분에 몰랐던 좋은 시를 감상했습니다.

그렇죠. 아기가 어릴 때는 열이 제일 무서운 것 같아요.
39.9도였을 때는 정말 큰일 나는 줄 알고 겁이 나기도 했어요!
마음써주셔서 고맙습니다!

穀雨(곡우) 2011-03-23 16: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은빛님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겠습니다. 무엇이 되었든 감정이 상하면 일도 그렇고 매끄럽지 못한데 현명하게 잘 대처하셨네요. 저도 다음에 써 먹어야겠습니다.^^

아이가 아플 때 부모의 마음이 아린다는 말, 새록새록합니다.
태어난 아이의 검은 눈망울에서 전 여태 보지 못했던 걸 보곤합니다.
해서 요즘은 아이로부터 더 큰 공감을 배웁니다.

감은빛 2011-03-23 23:25   좋아요 0 | URL
개인적으로는 그와 사이가 나빠져도 상관없지만,
공식적으로 파트너 관계에 있는 단체와 회사가 관계가 나빠지면
곤란한 상황이어서, 여러가지로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조금 아쉬운 감이 있지만, 결과적으로는 잘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네, 아이로부터 여러가지를 배우게 되더라구요.
고맙습니다!

첫눈 2011-03-23 17: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기들은 아프고 나면 큰다는 말때문에, 아마도 의사선생님께서 시를 낭송하지 않았을까 싶네요. 아기가 많이 좋아졌다니 다행입니다. 그리고 전에 회사일로 마음 상하셨던 일도 어느정도 해결 된 것 같아 그것도 다행입니다. 아마도 개인적인 이유로 활동을 중단했다고 하는데, 적성에 맞지 않아서 정리중 아닐까요? 그런식으로 일하면 주위에 친한사람 하나 남지 않을것 같거든요. 오늘 이 글을 읽으면서 나 같으면 어떻게 해결했을까...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되네요. 저같았으면 찌질하게 굴었을듯...ㅋㅋ.

너무 다행입니다 ^^

감은빛 2011-03-23 23:29   좋아요 0 | URL
네, 첫눈님 말씀처럼 아기를 보고 좋은 뜻으로 시를 들려주신 거겠죠.
그렇지만 정말 의사선생님이 시를 읊는 순간은 참 당황스러웠습니다.
어떤 반응을 보여야할지 조금 고민하다가, 그냥 입으로만 웃었어요.
마음써주셔서 고맙습니다!

스트레인지러브 2011-03-24 13: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두 가지 일이 무사히 낙착되었네요. 낙착이란 말로 매듭짓기에는 그 과정에서의 감은빛님의 심려가 크셨을 것 같습니다만...

어쨌든 잘 마무리 된 것을 축하드립니다. 앞으로는 이런 어러움이 없기를 바라며..

감은빛 2011-03-28 16:59   좋아요 0 | URL
네, 한동안 맘고생을 좀 했습니다.
어려운 상황이 닥칠때마다 슬기롭게 잘 넘길 수 있기를 바라는데,
그게 말처럼 잘 되지는 않더라구요.
고맙습니다!
 
토머스 페인 유골 분실 사건 - 상식의 탄생과 수난사
폴 콜린스 지음, 홍한별 옮김 / 양철북 / 2011년 2월
평점 :
품절



이미 묻힌 자의 유골을 다시 파낸다는 것은 공포물에나 어울리는 소름 돋는 얘기다. 그래서 제목을 처음 들었을 때, 호러소설이거나 추리소설이라고 생각했다. 막상 읽고 나니, 이 책을 어떤 기준으로 분류해야 할지 참 모호해진다. 이걸 소설이라고 봐야할까? 아니면 인문교양서(역사)로 봐야할까? 모르겠다. 뭐 그런 기준이 뭐가 중요한가! 그냥 흥미롭게 지적 유희를 즐길 수 있었던 시간에 감사하면 될 일이다. 제목에서 조금 아쉬운 점은 ‘분실사건’이라는 표현이다. 읽어보면 알게 되겠지만, 이 책은 단지 유골이 분실된 사건을 다루고 있지는 않다. 실제 내용은 유골이 여러 사람들의 손을 거쳐 옮겨 다니는 경로를 쫓는 것이다. 그러니 처음에 토머스 페인의 유골을 파낸 사건(분실사건) 자체는 이 책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는다. 다분히 추리소설의 느낌이 나는 이 제목을 일부러 붙인 이유가 있는지 궁금하다.

이 책을 제대로 읽기 위해서는 우선 ‘토머스 페인’이란 사람이 누구인지 알아야 한다. 처음 듣는 이름이다. 미국에서는 어떤지 몰라도, 우리나라에서는 무척 생소한 이름이라 생각된다. 그래서인지 책날개에 토머스 페인이 어떤 사람인지 상세하게 소개가 되어 있다. 그리고 본문의 앞부분에서도 그의 삶을 자세히 소개하고 있다. 그는 <상식 Common Sense>이라는 책을 쓴 베스트셀러 작가였다. 이 책은 출간 3달 만에 12만부가 팔렸고, 이후 3년 동안 50만부이상이 팔렸다. 저자에 의하면 당시 미국 인구는 250만이었고, 이들 중에 상당수가 문맹이었으므로, 글을 아는 사람은 모두 이 책을 읽었다고 보아야 한단다. 이 책은 <독립선언문>이 나오는데 큰 공헌을 했으며, 결과적으로 미국의 독립에 큰 영향을 끼쳤다. 그러니까 미국의 독립을 위해 싸운 혁명가였다. 이후 페인은 프랑스로 건너가서 프랑스 혁명에도 참여했다. 그런 그가 나중에는 미국과 영국과 프랑스의 국민들로부터 엄청난 비난을 받고, 그가 혁명에 끼친 영향에 대해서도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한다. 이처럼 엄청난 혁명가가 왜 그렇게 부당한 대우를 당해야만 했을까? 선뜻 이해가 가지 않는다. 책에 의하면 <이성의 시대>라는 책 한권 때문에 그렇게 되었다고 한다. 이 책은 종교제도와 성서의 정통성을 비판한 책이라고 설명되어 있다. 즉 기독교를 건드렸기 때문에 기독교인들에게 외면당했다는 것이다. 책 앞부분에는 마치 작가가 눈으로 본 것처럼 위대한 혁명가의 비참한 말로를 아주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는데, 이 책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을 제대로 읽기 위해서 두 번째로 필요한 것은 엄청난 집중력이다. 과거와 현재를 오락가락하며 당시의 수많은 인물들이 끊임없이 등장했다가 사라진다. 잠시 방심했다가는 내가 지금 읽고 있는 부분이 과거인지, 현재인지 헷갈려서, 앞 뒷장을 들춰봐야 한다. 이 독특한 형식에 잘 적응이 되었다면, 그다음부터는 저자의 뛰어난 묘사를 만끽하며, 유골의 행방을 좇는 흥미로운 지적 여행에 동참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을 좀 더 쉽게 읽는 한 가지 방법은 제일 마지막 부분에 실린 ‘더 읽을거리’를 제일 먼저 읽거나, 하나의 장이 끝날 때마다 ‘더 읽을거리’에서 해당부분을 찾아 읽는 것이다. 물론 제일 먼저 읽을 경우에는 뜻을 이해하려하지 말고 그냥 눈으로만 훑어야 한다. 본문을 읽지 않으면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다만 이런 내용들을 바탕으로 이 책이 쓰였다는 것을 파악할 수 있기 때문에 본문을 읽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이 책을 통해 알게 된 흥미로운 지식 중에 하나는 ‘골상학’이라는 학문의 유행과 쇠퇴에 대한 부분이다. 게다가 골상학의 영향으로 소설에서 주인공의 두상을 묘사하는 방식이 등장하기 시작해서 많은 유명한 작가들이 그런 방식의 글쓰기를 따랐다는 점도 재밌는 사실이다. 또 1819년 영국에서 등장했다는 ‘도서자동판매기’도 무척 흥미로웠다. 언젠가 지하철 승강장에서 도서자판기를 보고 재미있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근대 영국의 혁명가들이 언론의 자유를 쟁취하기 위해 이 장치를 썼다는 사실은 처음 알게 되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자연스레 토머스 페인이 쓴 <상식>을 직접 읽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다가 떠올렸다. 비록 출판될 때에는 다른 이름을 갖게 되었지만, 집필 당시에는 <상식 Common Sense>이라는 제목을 달고 있었던 또 다른 책이 있었다. 더글러스 러미스의 <경제성장이 안되면 우리는 풍요롭지 못할 것인가>는 출판되기 전까지는 <상식>이라는 제목을 갖고 있었다는 글을 읽은 기억이 났다. 러미스의 책을 다시 들춰보니 머리말에 토머스 페인의 <상식>에 대한 언급이 있었다. 러미스는 자신의 책이 페인의 <상식>과 같이 거대한 변혁을 불러일으키기를 기대하는 마음의 <21세기의 상식을 위하여>라는 제목으로 출간되기를 원했다. 그러나 일본에서 출간된 이 책은 앞서 말한 것처럼 다른 제목을 갖게 되었다. 일본어의 ‘상식’이 영어의 커먼센스와는 전혀 다른 뜻을 갖고 있고, 익숙한 단어가 아니기 때문에 출판사와의 논의를 거쳐 제목을 바꿨다고 한다. 이럴 수가 나는 이미 여러해 전에 이 책을 통해 토머스 페인과 <상식>에 대해 읽었는데, 그에 대한 기억은 전혀 없고, 단지 이 책의 원래 제목이 <상식>이었다고 잘못 기억하고 있었다.

검색해보니 국내에 출간된 토머스 페인의 <상식>은 두 종이었다. 문고판으로 하나가 있었고, <상식>과 <인권>을 묶어서 출간된 단행본이 하나 있었다. 언제 읽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읽을 책 목록’에 넣어둔다. 페인이 이 글을 쓴 1776년의 현실과 2011년 현재의 모습을 비교해서 읽으면 더 재미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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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애(厚愛) 2011-03-22 05: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리뷰 잘 읽었습니다^^
즐거운 하루 되세요~

감은빛 2011-03-22 15:31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후애님도 즐거운 하루 되세요! ^^

cyrus 2011-03-22 10: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목은 언뜻 추리소설물 같아요,, 먼저 토머스 페인이 쓴 책을 읽고
그 다음에 이 책을 읽어보면 좋을거 같아요, 참고로 <상식>과 <인권>을 묶어서
나온 책이 영남대 법학과 박홍규 교수가 번역한 걸로 알고 있어요.
그 분이 에드워드 사이드의 <오리엔탈리즘>도 번역한 적도 있구요,, 아무래도 문고판보다는 <상식. 인권>을 읽어보면 좋을거 같습니다. ^^

감은빛 2011-03-22 15:33   좋아요 0 | URL
그렇죠? 아무래도 일부러 그런 제목을 정한 것 같아요.
그 책이 박홍규 교수님이 번역한 책이군요.
추천해주셔서 고맙습니다.
그런데 문고판과 단행본은 가격에서 차이가 많이 나더군요.
문고판은 정말 소책자던데요. 가격도 아주 저렴하구요. ^^

루쉰P 2011-03-22 21:33   좋아요 0 | URL
박홍규 교수님의 책은 오타쿠 수준으로 모으고 수집하는 히키코모리로서 <상식,인권>도 반드시 출판돼 있음을 증명해 드립니다. 국내 작가 중 강준만 교수와 박홍규 교수 책을 주로 읽죠.^^ 정말 읽어야 할 책인데 우리가 읽지 못한 책에 대해 박홍규 교수님은 많이 번역하셨어요. 읽어 보신다면 좋을 것 같습니다. 근데 웃긴 건 저도 아직 못 샀다는 사실...하지만 전 박홍규 교수님의 서적을 무려 30여권이나 가지고 있습니다. 오타쿠가 확실합니다.

감은빛 2011-03-23 14:03   좋아요 0 | URL
루쉰님 / 30여권을 갖고 있다면, 오타쿠가 확실 한 것 같습니다! ^^
추천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조만간 장바구니에 담을게요.

노이에자이트 2011-03-22 17: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을유문화사에서 1967년에 나온 번역본(루소의 '사회계약론'과 페인의 '상식' '인권'이 합본되어 있음)을 우연히 헌책방에서 구해서 <상식>을 읽었습니다.2단 세로줄에 국한문 혼용인데, 톡 쏘는 맛이 있더군요.나중에 마르크스나 레닌이 페인의 문체를 모방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에드먼드 버크의 보수주의를 비판한 대목이 인상적이었습니다.시사평론을 쓰는 사람들에게 권하고 싶어요.

감은빛 2011-03-23 13:56   좋아요 0 | URL
톡 쏘는 맛이 있다니 무척 궁금해집니다.
어렵고 따분한 책일지도 모른다는 약간의 불안감을 날려주셔서 고맙습니다!

양철나무꾼 2011-03-23 01: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재밌을 것 같아요.
특히 골상학 쪽 흥미로워요.

사실 이 책보다 아래쪽의 박홍규 교수 번역본이 더 흥미롭지만요~^^

감은빛 2011-03-23 14:02   좋아요 0 | URL
그렇네요. 저도 소개해주신 말씀들을 읽고 나니.
더욱 흥미가 생기네요.

골상학에 대한 내용은 많지 않은데,
전혀 몰랐던 분야인데,
의외로 굉장한 유행이었고,
여러분야에 영향을 많이 미쳤더라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 적반하장 

어제와 오늘 이틀 연속으로 어이없는 메일을 받았다. 함께 사업을 진행하는 타 단체 활동가로 부터였는데, 작년까지 담당이었던 활동가가 일을 쉬게 되면서, 인수인계를 받은 사람이다. 한때 같은 건물에서 일했었고, 친하지는 않았지만, 나쁜 사이도 아니었다. 처음엔 인수인계를 받을 당시에 세세한 부분까지 전달이 안되어 뭔가 오해가 생긴거라 생각하고 차근차근 설명을 하려고 했다. 그런데 다시 읽으니, 상당히 기분이 나빴다. 처음부터 정확한 상황에 대한 이해없이 그냥 자신의 말만 통보하여 전하는 태도도 예의가 아니었고, 마치 내가 뭔가 부당한 요청이라도 한 것처럼 표현해놓은 부분은 참 어이가 없었다. 이건 대체 무슨 뜻인가 싶어서 한참을 다시 읽고 또 읽어봤다. 아무리 다시 읽어도 이건 너무 도가 지나치다 싶어서, 답장을 보냈다. 그가 잘못 판단하고 있는 근거를 설명하고, 나에게 보낸 글에서 잘못 표현된 부분을 발췌해서, 그렇게 판단한 것이 어이가 없고, 무슨 근거로 그런 말을 한 것인지 궁금하다고 해서 보냈다. 혹 내 감정이 잘못 전달될지도 몰라 꼼꼼하게 다시 살펴보고 발송버튼을 눌렀다.

오늘 아침에 메일을 열어보니 다시 답변이 왔다. 자신의 잘못은 전혀 깨닫지 못한 듯. 계속해서 똑같은 말투와 태도를 반복하고 있었다. 게다가 이번에도 자신이 할 말이 아닌 주제넘은 표현들. 마치 자신이 내 상관이라도 된 것인양 단정짓는 표현들이 그대로였다. 어제 상당한 시간을 투자하여,(다른 일도 못하고!) 메일을 쓴 것이 허무해진 꼴이었다. 전화를 할까 하다가, 자칫 언성이 높아지면 더 상황이 나빠질 듯 하여, 그냥 다시 메일을 썼다. 나로서는 상당히 기분이 상했지만, 최대한 예의를 갖추어 다시 글을 시작했다. 하지만 그의 잘못된 표현에 대해서는 직설적으로 표현했다. 괜히 둘러서 말해봐야 또 똑같은 상황만 반복될 것 같았다. 어쨌거나 앞뒤 생각없이 직설적으로 말이 앞선건 그가 먼저였으니, 나로서는 더이상 그의 기분을 배려할 상황도 아니었다. 글을 쓰면서 자꾸만 감정이 앞서는 걸 꾹 누르고 애썼다. 문장 하나를 쓰면서 몇 번을 지웠다가 다시 썼는지 모른다. 오해가 풀릴 가능성은 별로 없다고 생각했다. 어쨌거나 그가 쓴 표현이 잘못이었다는 점만 분명하게 전달된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내가 그보다 해당분야에서 몇 년 먼저 시작한 선배이고, 그보다 훨씬 더 풍부한 경험을 쌓았다는 점을 분명히 적었다.(이건 나이나 경력에 권위를 부여하는 방식이라, 맘에 안들긴 하지만 다른 표현방법이 생각나지 않았다.) 그렇게 오전 시간의 상당부분을 보내고나서도 좀처럼 화가 가라앉지 않았다. 급한 일이 두어건 있는데, 머리도 손도 그쪽으로 흥미를 갖지 못했다. 

점심을 먹고 돌아오니 다시 답장이 와 있었다. '굉장히 불쾌한 글이군요.'라는 첫 문장으로 시작하여, 더이상 대화를 이어가고 싶지 않다는 내용을 짧게 적어놓았다. 이런 상황을 '적반하장'이라고 표현하던가? 불쾌하다고? 사과가 먼저 나와야 하는 거 아닌가? 그럼 나는 불쾌하지 않아서 그냥 점잖게 글을 보낸줄 아나? 먼저 불쾌한 글을 보냈던 사람에게 나름 굉장히 예의를 갖춰서 정성스레 답장을 보냈더니, 도리어 먼저 화를 내는 꼴이라니! 이건 뭐 사람에 대한 예의가 없는 거란 생각 밖에 안든다. 나로서도 인내심이 한계에 이르러, 다시 답장을 보내야 하나, 전화를 걸어서 시시비비를 따져야 하나, 이런저런 궁리를 해보는데, 도무지 마땅한 방법이 없는 것 같다. 여기서 더 나가면 싸움 밖에 안되지 싶은데, 굳이 내가 먼저 그 기본이 안된 인간에게 싸움을 걸 필요는 없을 것 같기도 하고. 그런데 그냥 이렇게 넘어가면 왠지 굉장히 손해보는 것 같고, 억울하기만 한데. 이를 어떻게 해야 좋을까? 젠장 이틀째 기분이 나빠서 제대로 일을 못하고 있다! 

둘. 고열 

이번주는 출장으로 시작했다. 작년에 둘째가 태어난 이후로는 가급적 출장을 안가려고 노력했고, 꼭 가야할일이 있어도 그날 안에 돌아오도록 일정을 잡았다. 내가 없으면 밤에 아내 혼자 아이들을 돌보기가 힘들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꼭 1박을 해야할 상황이었다. 이젠 아기가 제법 자라서 괜찮겠지 싶었다. 그런데 하필 내가 없을 때 일이 생겼다. 

함께 출장을 간 이웃 일터의 친구가 한턱 내기로 해서, 맛있게 저녁을 먹으며 술도 한잔 곁들이고 나온 길이었는데, 전화가 왔다. 둘째가 열이 나고 있다는 아내의 전화였다. 모텔 방으로 돌아와서 친구녀석과 맥주를 한잔하고 있는데, 다시 고열이 나고 있다는 아내의 연락이 왔다. 아이가 아프다는데, 옆에 없으니 아무것도 해주지도 못하고, 답답하기만 했다. 해열제를 먹이고, 미지근한 물로 닦아주고 있다고 했다. 밤에 아기가 열이 나면 어른들은 밤새 잠을 못잔다. 계속 이마를 짚어보고, 열이 오르면 미지근한 물을 받아와서, 수건을 적셔서 닦아주어야 한다. 둘이라면 번갈아서 아이를 보면서 잠깐씩이라도 눈을 붙일 수 있는데, 아내 혼자서는 힘든 일이다. 마침 아이의 큰외삼촌이(아내의 큰오빠) 야간에 대리운전을 하신다는 사실을 떠올라서, 전화를 드렸다. 아기가 열이 심하다는데, 혹시 근처에 계시면 잠시 들여다보고, 도와주시라고.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다고, 곧 가겠다고 했다. 그리고 계속 걱정이 되어 전화기만 들여다보고 있었다. 친구 녀석은 함께 걱정을 해주다가 먼저 잠들고, 나는 하릴없이 틀어놓은 티비로 눈길을 주고 있었지만, 무슨 내용인지는 하나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 상태로 전화기만 주시하고 있었다. 마침내 새벽 늦은 시간에 해열제 덕분에 열이 조금 떨어졌다고, 오빠가 와서 도와주고 있다는 문자가 왔다. 조금 안심하고 나도 눈을 붙이려고 노력했다. 

뒤척이다가 한참만에 잠이 든 덕분에, 아침에 힘겹게 눈을 떴다. 전화기를 보니, 새벽녁 다시 열이 심하게 올라서 응급실로 달려갔었다고 한다. 큰 아이는 자도록 놔두고, 오빠의 도움으로 아내와 아기만 병원으로 갔다고. 그랬더니 큰 애가 혼자 자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장모님께서 새벽부터 집으로 달려오셨다고 했다. 아기는 막상 응급실에 가서는 다시 열이 떨어져서 간단한 진찰만 받고 돌아왔다고 한다.(그랬는데 병원비는 엄청나게 나왔다고!) 사실 몇 해전 첫째가 딱 지금 둘째만 했을 때에도 고열때문에 밤새 고민하다가 새벽에 응급실로 뛰어간 적이 있었는데, 그때도 별 도움은 받지 못하고, 병원비만 엄청나게 나온 적이 있었다. 어쨌든 다시 상태가 좋아져서 집으로 돌아왔다는 문자를 받고 조금은 안심이 되었다. 

출장을 마치고 돌아온 날도 아기는 주기적으로 열이 올랐다. 거의 40도까지 열이 오르곤 해서, 아예 아기를 물 속에 담가놓고 열을 떨어뜨렸다. 아기는 계속 울었고, 얼르고 달래가며 열을 내리기 위해 애썼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도록 아기는 계속 고열에 시달리고 있다. 지금은 열이 오르는 빈도가 많이 줄어들고, 아주 고열이 아닌 39도 수준으로 온도가 조금 떨어졌다. 며칠동안 잠을 못자서 아기의 눈 주위에 다크써클이 생겼다. 10개월된 아기가 다크써클이라니! 아내도 나도 잠 못자고, 피곤해서 죽을 지경이다. 큰 아이도 밤에 아기 우는 소리 때문에 자꾸만 깨다보니 역시 피곤해하고 있다. 온 가족이 다 죽을 맛이다.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자라는 것이 가장 큰 효도라는 것을 새삼 깨닫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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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사랑하는현맘 2011-03-18 16: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런.
날은 풀려가는데 어려운 몇 일을 보내고 계시는군요.
겪지 않으면 좋은 일들인데...살다보면 꼭 겪게되는 일들이네요.

남자들의 세계를 잘 알지는 못하지만
저같음 저 메일을 보낸 사람에게 다시 답 메일을 보냈을 것 같아요.
본인때문에 나 역시 기분이 매우 불쾌하다는 점을 알릴 것 같아요.
겉으론 니가 잘못했다..라고 말하고 있지만,
사실 자기도 알지 않을까요? 그놈의 자존심이 문제일 수도..

아기는..고열은 사실 좋은 게 아닌데.
응급실 말고 소아과를 가보시는게 좋지 않을까.
응급실에서 제대로 된 진료가 이루어지는 걸 못봐서요.
어쨌든, 힘든 시기 건강하게 잘 지내시길 바래요.

감은빛 2011-03-19 04:19   좋아요 0 | URL
기본이 안된 그 인간은 여성입니다.
제가 '그'라고 표현해서 남자라고 생각하셨나봐요.
저는 왠지 '그녀'라는 표현이 맘에 들지 않아서,
웬만하면 쓰지 않으려고 합니다.
충분히 알아듣게 두 번이나 메일을 보냈기 때문에,
더이상 평범한 방법은 소용이 없는 것 같구요.
뭔가 적당한 방법이 없을까 고민중입니다.

아, 이 글에는 미처 쓰지 못했는데,
소아과에 계속 다니고 있었습니다.
더디긴 하지만 조금씩 나아가고 있습니다.
마음써주셔서 무척 고맙습니다!

울창 2011-03-18 18: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0개월 아이에게 다크써클이 생길 정도라면 부모는 온몸이 다크써클이지 않을까 싶네요....힘내셔요, 감은빛 님!

감은빛 2011-03-19 04:20   좋아요 0 | URL
온몸이 다크써클이라는 표현 재밌네요~ ^^
응원해주셔서 고맙습니다!

blanca 2011-03-18 21: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40도면 어린 아이가 정말 힘들었겠어요. 감기인지 어서 빨리 나아야 할텐데 걱정이네요. 저도 고맘때 열나면 무조건 벗겨서 미지근한 물수건으로 계속 닦이고 그랬던 기억이 나요. 힘내세요;

감은빛 2011-03-19 04:22   좋아요 0 | URL
목에 염증이 생겼다고 하더라구요.
그 쪼그만 녀석이 살이 쏙 빠져가지고 고생하는 거 보니, 참 맘이 아픕니다!

마녀고양이 2011-03-18 22: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들 열나면, 진짜 가슴아프죠. 아이도 힘들구요. ㅠㅠ

감은빛님은 요즘 진짜 바쁘신듯데다 기분 나쁜 메일도 받으시고
아이는 아프고...... 힘드시겠어요.

음.... 예의없는 메일, 본인은 무엇이 잘못인지 모를지 몰라요.
자신의 상황에서만 바라보는게 인간이니까요. 저 역시 화나는 사람이 있는데
어쩌면 제 잘못일지도 모른다는 눈꼽만큼의 주저로 인해 그냥 덮어두고 있어요.
가끔 제 3자에게 물어보고 싶어진다니까요, 누가 잘못 했냐고.

모든 일이 잘 풀리시고, 화창한 봄날 되시기 바랄게염.

감은빛 2011-03-19 04:26   좋아요 0 | URL
아, 정말 이번주는 말그대로 최악의 날들이었습니다!
기분도, 몸상태도 뭐하나 좋지 못한 상황에서,
시간이 어떻게 지나가는지도 모르게 한 주가 지나가버렸네요.

상대가 여자이기 때문에, 아내에게 물어봤습니다.
아주 상세하게 주고받은 표현들을 전달했습니다.
아내 말로는 그 여성활동가가 백번 잘못했다고 하더라구요.
제가 왠만해선 흥분하거나 화를 내지 않습니다만,
이 경우는 너무 화가나서 분을 삭이지 못할 정도였습니다.
조만간 확실하게 자신의 잘못을 깨닫게 해주려고 고민중입니다.

마음 써주셔서 고맙습니다!

비로그인 2011-03-18 22: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40도까지 올라갔다니... 아이가 걱정이로군요. 지금은 깨끗이 나아서 웃고 있기를 바라겠습니다. 감은빛님도 편안해지시구요...

감은빛 2011-03-19 04:31   좋아요 0 | URL
지금은 많이 좋아졌습니다.
대신 오랫동안 고열에 시달린 탓에,
온 몸에 열꽃이 올라왔어요.
빨갛게 올라온 열꽃을 보고 있으니, 너무 안쓰럽네요.

마음 써주셔서 고맙습니다!

양철나무꾼 2011-03-19 02: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기가 아프면, 것도 말 못하는 아기가 아프면...그것보다 더 힘든게 없죠.
그토록 열이 높다는 건, 그리고 며칠째 지속된다는 건 어딘가 염증이 있다는 것 아닐까요?
소아과를 한번 데려가 보세요.

얼른 나아서 아기도, 감은빛님도 편안한 주말을 보내시길 바라겠습니다~

감은빛 2011-03-19 04:33   좋아요 0 | URL
네, 글을 쓸때 미처 못 썼는데,
소아과에 계속 다녔습니다.
목에 염증이 있어서 그랬다고 하더군요.(인후염이라고 했던것도 같고..)
이제 열이 나는 증상은 거의 나았는데,
설사를 자주 하고, 온 몸에 열꽃이 올라왔습니다.
엊그제 의사선생님이 열꽃이 올라올지도 모르겠다고 말하더니,
정말 오늘 열꽃이 올라오더라구요.
에휴 아기가 너무 불쌍해서 맘이 아픕니다.

염려해주시고, 응원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양철나무꾼 2011-03-19 16:43   좋아요 0 | URL
열꽃이 올라왔다는 건, 열이 내렸다는 얘기네요.
설사도 마찬가지구요.
미지근한 보리차 넉넉히 먹이세요.
오늘은 좀 주무실 수 있겠네요~^^

루쉰P 2011-03-20 11: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러가지 신경 쓰는 일이 많은 것이 삶인 것 같습니다. ^^ 아파트 경비를 하다 보면 아주 작고 사소한 일로도 세상이 무너지는 듯이 와서 시비를 거는 사람들이 많거든요. 아무쪼록 걱정 없는 삶이 되셨으면 하네요.^^

감은빛 2011-03-21 15:33   좋아요 0 | URL
아파트 경비일을 하시는군요!
어찌 생각해보면 지루할 것 같고, 또 한편으로는 무척 힘든 일일 것 같아요.
그렇죠. 별것도 아닌 걸로 따지고 드는 사람들이 제법 있을 것 같아요.
여러모로 힘든 일이 많으시겠어요!
루쉰님도 힘내시길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루쉰P 2011-03-22 16:36   좋아요 0 | URL
지루함은 지나가는 사람도, 지나가는 고양이도 단 한번도 시선을 주지 않고 그냥 마치 저 서 있는 한 그루의 나무처럼 상쾌하게 배경 취급해 주는 것이고, 힘든 일은 자신이 한심하다고 생각할 때가 힘들죠. ㅋㅋㅋ 근데 힘들지 않은 사람은 어디에 있을까요? 전 누구나 모두 아무리 잘 살고 잘 나가도 고뇌, 또 고뇌가 있을거라 확신합니다!! 음...뭔가 비관적인가요??

감은빛 2011-03-23 13:21   좋아요 0 | URL
아뇨! 비관적이지 않은걸요.
누구나 나름의 고뇌가 있고, 힘겨워하는 일들이 있다고 말씀에 동감합니다.
다만 시선을 어디에 두냐는 것이 다를 것 같아요.
어떤 사람은 남에게 시선을 두고, 어떤 사람은 자신에게 시선을 두겠죠.

따라쟁이 2011-03-22 17: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글을.. 저는.. 그러니까..음.. 아이가 이미 열이 다 떨어진 후에 읽었고..음.. 일도 사과를 이미 다 받은 후에 읽었고..

감은빛 2011-03-23 13:16   좋아요 0 | URL
후후 앞에 먼저 글을 읽고, 읽으셨다니, 재미 없으셨을텐데.
고맙습니다!
 

20대에는 지나간 추억을 이야기하기보다는 앞으로 다가올 날들에 대한 상상과 대화를 더 많이 했다. 무언가 하고 싶은 일이 무지 많았고, 다 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지 모르겠지만, 더이상 미래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게 되었다. 대신 늘 지나간 얘기들을 되씹고, 곱씹게 된다. 더이상 하고 싶은 일이 없는 것 같고, 무엇도 해낼 수 없을 것 만 같다. 

며칠전 아주 오랫만에 한 친구를 만났다. 대학동기이자 초등학교 선배인(엄연히 선배임에도 불구하고 우린 말을 트고 지낸다.) 나와 아주 독특한 인연을 가진 친구. 아직도 연락을 하고 지내는 유일한 대학 동기이다. 맥주잔을 기울이며, 한치 조각을 씹으며, 옛 추억을 열심히 떠들어댔다. 이름도 얼굴도 흐릿한 사람들을 하나씩 불러놓고,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지껄여댄다. 그러다 가끔 정신이 번쩍 드는 사람의 이름이 거론되기도 한다. 내가 아주 싫어했던 선배가 커밍아웃을 선언했다는 얘기는 술이 깰만큼 충격적이었다. 그래서 그렇게 재수가 없었던 것이었을까. 한때 사귀었던 여자후배 얘기가 나올 때에는 그 녀석과 자주 거닐었던 학교 뒷편 산책로가 떠올랐다. 결혼도 했고, 아이도 있다는 얘기. 그 녀석도 누군가에게 내 이름을 들으면 그 산책로를 떠올릴까? 누군가는 대기업에 들어가서 돈을 얼마나 잘 번다더라. 누군가는 선을 봐서 만난 여성과 곧 결혼을 할지도 모른다더라. 끝없이 이름들이 거론되었다가 잊혀졌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대학시절 학과방 구석에서 긴 앞머리를 늘어뜨리고, 기타를 튕기며 여자후배들을 꼬시곤 했던 내 모습이 떠올랐다. 지금 생각하면 참 촌스럽게만 느껴지는데, 그땐 그게 멋있게 보일거라고 여겼던 것 같다. 며칠 전 김건모가 모 티비 프로에 나와서 데뷔앨범에 들어있는 '잠 못드는 밤 비는 내리고' 불렀던데, 그 노래를 참 좋아했다. 특히 '기타를 튕기며 노랠 불렀지. 네가 즐겨듣던 그 노래'라는 구절을. 

이름모를 꽃잎이 흩날리는 봄이었다. 대학 새내기였던 녀석은 캠퍼스의 봄에 한껏 취해있었다. 수업따윈 제쳐놓고 녀석과 학교 뒷편 산책로를 거닐었다. 한 손에는 통기타를 들었고, 다른 손은 녀석의 손을 잡았다. 큰 나무 아래, 편편한 바위를 골라 앉아서, 밤새 연습한 기타 연주를 들려줬다. 녀석은 내 어깨에 가만히 기대어 눈을 감고 있었다. 그 감은 눈 위로 자그마한 꽃잎이 천천히 아주 천천히 떨어져내렸다. 시간이 멈추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천천히 흩날리며 떨어져내리는 그 꽃잎을 보고 있자니, 마치 시간이 멈춘 듯이 느껴졌다. 그냥 이대로 세상이 끝났으면 좋을 것 같았다. 

그러나 그해 가을 나는 잠 못드는 밤, 빗소리를 들으며 기타를 튕기곤 했다. 어느 봄날 나뭇잎 사이로 햇살이 내리쬐던 숲 길, 큰 나무 아래 편편한 바위위에서 들려주었던 그 노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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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1-03-12 15: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끔 그렇게 삶이 끝나도 좋겠구나 싶은 순간이 있죠.
그래도 시간은 쉼없이 흘러가고.........
저는 요즘 TV 볼 때마다 생각나는 사람이 있어서 이런 저런 생각을 하게 된답니다.

문득 조동진 님의 나뭇잎 사이로 라는 노래가 생각납니다.
엄청나게 불렀었는데 말이죠, 누군가의 자취방에서 누군가의 기타에 맞추어 함께.

감은빛 2011-03-14 14:15   좋아요 0 | URL
그렇죠.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시간은 쉼없이 흘러가죠.
붙잡을 수 없기에 더 아름다운 게 추억이라 생각합니다.

꿈꾸는섬 2011-03-13 22: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추억이 있다는 게 참 좋은 것 같아요. 가끔 떠오르는 추억을 생각하며 그때를 또 그리워하게 되니 말이에요. 감은빛님 글 읽다가 저도 모르게 추억에 빠져드네요.

감은빛 2011-03-14 14:16   좋아요 0 | URL
네, 한 사람의 추억은 또 다른 사람도 추억으로 빠뜨리게 되나봐요.
함께 추억에 빠져주셔서 고맙습니다! ^^

따라쟁이 2011-03-14 12: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추억이 몰려들고 있는 봄날이에요. 비라도 내리고 나면 추억의 먼지들이 좀 가라앉을까 싶었더니 그것도 아닌가봐요. 네. 봄이에요.

감은빛 2011-03-14 14:18   좋아요 0 | URL
비가 내리면 더 생각나는 것 같아요.
잊어버린 줄 알았던 기억들이 비를 타고 흘러들어요.

양철나무꾼 2011-03-19 02: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추억이라는 건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일종의 굳은살 같아요.
전 추억이라고 부를 20대가 한없이 무미건조한 사람이지만, 그래도 이 봄밤 님의 글을 읽으니 상념에 젖는걸요~^^

감은빛 2011-03-19 05:18   좋아요 0 | URL
어쩜 그렇게 늘 멋진 표현을 하실 수가 있나요?
굳은살이라는 말. 공감이 갑니다.
얼마나 무미건조한지는 알수 없지만,
그래도 양철님에게는 소중한 추억들이겠죠?
그래서 저와 함께 상념에 젖을 수 있는 거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