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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르노빌의 아이들 (양장) - 히로세 다카시 반핵평화소설, 개역개정판
히로세 다카시 지음, 육후연 옮김 / 프로메테우스 / 2011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2012년 7월 14일(토) 오전 8시 30분 삼척으로 떠나는 ‘탈핵 희망버스’ 안에서 책을 펼쳐들었다. [체르노빌의 아이들] 서너 달쯤 전에 3분의 2정도 읽다가 다른 일들 때문에 끝까지 읽지 못하고 책상 한쪽 구석에 밀어두었다가 지금껏 잊고 있었다. 전날 밤 오랜만에 아이들도 없이 홀가분하게 버스 여행을 하게 되었으니, 책이라도 읽어야지 생각하면서 짐이 많을 테니 얇은 책을 위주로 살피다가 이 책을 발견했다. ‘탈핵 희망버스’와 ‘체르노빌의 아이들’ 딱 어울리는 조합이다.
1986년 4월 26일(토) 새벽 1시 30분 우크라이나의 프리피야트에서 3km 떨어진 ‘블라디미르 리치 레닌 핵발전소 4호기’에서 거대한 폭발이 일어났다. 이 소설은 프리피야트(책에는 ‘프리프야트’로 나온다.)에 사는 열다섯 살 소년 이반이 폭발장면을 아파트 창문을 통해 바라보는 장면부터 시작한다. 이후 이반의 가족들이 프리피야트를 탈출하면서 겪게 되는 이야기가 이 소설의 주요 내용이다. 소설에서는 핵발전소의 폭발 순간을 프리피야트 주민들이 목격하고 곧바로 피난을 떠날 준비를 하는 것으로 나오지만, 실제 상황은 달랐다. 체르노빌 사고 20년 후에 제작된 [체르노빌 전투 The Battle of Chernobyl]에 따르면 사고가 일어난 다음날 4만3천여 명의 프리피야트 주민들은 모두 평소와 다름없이 생활했다. 소련 정부에서 보낸 피난을 위한 버스가 도착한 것은 폭발 30시간이 지나서였다. 그리고 버스가 도착하고 7시간이 지난 27일 오후 2시 경 군인들이 주민들에게 대피명령을 내렸다고 한다.
책에는 저자인 히로세 다카시가 책을 쓴 정확한 시간이 나와 있지 않다. 다만 일본에서의 책 발행 연도가 1990년으로 나와 있다. 그렇다면 그는 1988년에서 1989년 즈음에 이 소설을 썼을 것이다. 당시에 그는 체르노빌 폭발당시의 정확한 상황을 접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래서 폭발과 동시에 주민들이 피난을 떠난 과정에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했을 것이다. 만약 그가 실제로는 훨씬 더 황당하게도 폭발이 일어나고 아침을 두 번 맞을 때까지도 주민들은 아무런 정보를 얻지 못했으며 피난명령조차 내려지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다면 이 소설의 첫 장면은 아마 달라졌을 것이다.
소설에서는 또한 방사능 전파 속도가 무척 빠르고 그만큼 방사능에 의한 피해가 드러나는 속도도 빠르다. 피난민들이 군인들의 통제 때문에 붙들려 있던 농장에서 생후 8개월 된 아기가 숨지는 장면은 이 책 전체에서 가장 슬픈 장면인데, 이때가 폭발 후 아직 하루가 채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다. 반면 [체르노빌 전투]에 의하면 폭발 이틀째인 27일 오전에도 주민들은 평소와 같이 생활하고 있었다. 당시 5살이었던 유리 마첸코의 증언에 따르면 아버지가 발전소 직원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평소처럼 탁아소에 데려다 주었다고 한다. 반면에 소설 속 이반의 아버지인 안드레이도 발전소의 직원으로 나온다. 소설에서 안드레이는 이 상황에 대해 가장 빠르게 이해하고 정확한 판단을 내리는 인물로 나온다. 현실과는 무척 다른 장면이다.
이 작품은 소설적 재미나 문학적 완성도를 기대할 수는 없는 글이다. 어디까지나 핵폭발의 위험성을 널리 알린 작품으로 그 가치를 매겨볼 수 있다. 글 자체는 간결하고 군더더기 없지만, 소설의 묘미라고 볼 수 있는 묘사가 무척 부족하고 글의 전체적인 구성도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물론 나 역시 재미나 완성도를 기대하고 읽지 않았기 때문에 그런 점들이 불만이라고 말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다만 좀 더 문학적인 가치를 고려했다면 훨씬 더 널리 알려지고 읽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들었을 뿐이다.
2012년 7월 14일 오후 2시경 버스에서 책을 덮으며 이 정부가 핵발전을 계속 고집한다면, 대한민국의 미래는 바로 체르노빌과 후쿠시마가 될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곧이어 ‘탈핵 희망버스’는 삼척에 도착했다. 세계에서 유일하다는 ‘원전백지화 기념탑’에서 간단한 행사를 갖고 이어서 시내에 도착하여 거리행진과 탈핵 문화제를 펼쳤다. 놀랍게도 많은 삼척 시민들이 반갑게 맞아주었다.(솔직히 싸늘하고 냉담한 반응이 돌아올 거라 생각했었다.) 많은 삼척 시민들과 전국에서 모인 탈핵 희망버스 참가자들은 비가 오는 날씨에도 불구하고 탈핵의 의지를 뜨겁게 불태우며 즐거운 마음으로 춤을 추고 노래를 불렀다. 공연자들과 참가자들이 하나가 되어 어우러진 문화제 덕분에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아름다운 추억 하나가 가슴에 새겨졌다.
다음날인 15일에는 영덕으로 건너가서 신규원전 건설예정지를 걸었다. 안타깝게도 신규원전이 들어설 자리는 ‘영덕블루로드’라는 이름의 관광지였다. ‘제주 올레’, ‘지리산 둘레길’ 등 아름다운 자연 속을 걸으며 스스로 마음의 안정을 얻는 걷는 길이 요즘 유행이라던데, 여기 영덕에도 아름다운 길이 있었다. 잠시 걸었음에도 그 해안의 아름다움에 푹 빠질 수밖에 없었다. 울퉁불퉁 오르락내리락 이어지는 바윗길을 따라 해안을 걸으며 발밑에서 부서지는 새하얀 파도를 내려다보면 절로 탄성이 나올 정도였다. 그 에메랄드 빛 바다 색깔을 오랫동안 잊지 못할 것 같다. 부디 삼척과 영덕의 신규 원전이 취소되어 그 아름다운 해안 길을 아이들과 함께 다시 걸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