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삼척과 영덕으로 '탈핵 희망버스'에 참여했다. 한진중공업 김진숙 지도위원에게 힘을 실어주기 위해 기획되었던 '희망'버스가 여러 다른 분야로 전파되어 또다른 희망을 실어나르고 있다. 내가 탔던 '탈핵 희망버스'는 3차였고, 강원도 골프장을 막기 위한 10차 '생명버스'가 이번 주 토요일(21일)에 출발한다. 그러고보니 21일 평택에서는 '쌍차 문제 해결을 위한 범 국민 공동행동'이 열린다.

 

본격 더위가 시작될 무렵 여기저기 현장들이 바쁘게 돌아가기 시작한다. 밀양에서는 다시 송전탑 공사가 시작되었다. 분신하신 이치우 어르신의 동생, 이상우 어르신의 밭에 공사를 재개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이계삼 선생님의 편지에 따르면 이상우 어르신은 공공연히 다시 공사가 시작되면 구순 노모를 업고 와서 같이 죽겠다는 말씀을 하고 다니셨다고 한다. 과연 한전은 '정말 죽는지 안죽는지 확인'하기 위해 공사를 시작했을까? 인간이 어쩌면 저럴 수 있을까 싶다!

 

두물머리에서는 '행정대집행'이 눈 앞에 닥쳤다는 불안감이 팽배해 있었는데, 아니나다를까 삼일 전 기습적으로 공사를 감행했고, 매일 같이 여러 활동가들이 포크레인과 씨름을 벌이고 있다. 한편 어제는 비가 왔음에도 불구하고 광화문 앞에서 '세계최초 유기농 집회'가 열렸다. 공사 대신 농사를 짓겠다는 두물머리 유기농 농민들의 절절한 마음을 끝내 포크레인으로 짓밟겠다는 저들 역시 과연 인간이 맞나 싶은 생각이 든다!

 

제주 강정마을에서는 8월 4일부터 5박 6일간 '평화 대행진'을 준비중이다. 1만명이 함께 제주 올레길을 걸으며 해군기지를 막아내자는 취지다. 과연 1만명이 걸으면 해군기지를 막을 수 있을까? 아니 휴가기간에 1만명을 모을 수 있을까? 최근 들은 소식에 의하면 해군 측은 이미 구럼비 바위가 다 파괴된 것처럼 떠들고 다니지만, 실제로는 10분의 1도 파괴되지 않았다고 한다. 아직 늦지 않았다는 다짐과 함께 이번 평화대행진이 성과를 내어 이 국면에 변화가 생기기를 바란다!

 

 

 

7월 16일, 도쿄 요요기공원에서 열린 "사요나라 원전" 집회에 탈핵시민 17만명이 모였습니다.

(촬영: 노다 마사야 野田雅也) 출처- 페이스북 

 

 

한편 최근 일본의 반핵 집회에는 17만명이 모였다는 소식을 페이스북을 통해 접했다. 17만명이라! 이 나라에서 그 정도 인원이 모였다면 고리원전도 폐쇄하고, 삼척, 영덕 신규 원전도 막아내고, 현재 짓고 있거나 지을 예정인 신규 원전들도 모두 중단시킬 수 있을 것 같다! 게다가 저 위에 언급한 그리고 미처 언급하지 못한 수많은 문제들을 모두 해결할 수도 있을 것이다. 부디 그런 날이 오기를 간절히 바란다.

 

짧게 서두를 적으려고 했는데, 이걸로 하나의 글이 될 분량이 되어버렸다. 그만큼 지금 총체적으로 어려운 시기라는 뜻이다. 어쨌거나 이제 원래 하려던 이야기를 시작해보자. 나는 삼척에서부터 1박 2일간 자의반 타의반 녹색당 깃발을 책임지는 '깃돌이' 신세가 되었다. 학생운동 시절 이후로 매우 오랫만인 것 같다. 애초에 버스를 타려고 마음 먹었을 때, 이번에는 아이들을 떼놓고 홀로 가는만큼 기록을 좀 꼼꼼히 해놓았다가 후기 성격의 글을 하나 쓸 예정이었다. 가능하다면 기사 형식의 글을 하나 써서 기고도 해봐야지 생각하면서 의욕을 불태우고 있었다. 그런데 '깃돌이' 신세가 되면서부터 기록을 전혀 하지 못했다. 에라 모르겠다. 후기는 포기하고 그냥 이 순간을 즐겨야지 마음을 바꿨다.

 

그리고 그날 버스에서 마저 읽었던 [체르노빌의 아이들] 서평과 엮어서 간단하게 후기 성격의 글을 하나 썼다.

 

 

 그 글에 알라디너 '봄나무'님께서 이 책을 권해주셨다. 동화는 워낙 잘 살펴보지 않아서 여태 몰랐던 책인데, 관심이 간다. 조만간 구해서 읽어봐야겠다.

 

 

 

 

 

 

어쨌거나 녹색당 깃발을 들고 있는데, 아이를 데려온 여성 한 분이 나를 보고 반가워하며 인사를 꾸벅 하신다. 방향으로 보아 나를 향해 하는 것이 분명한데, 과연 누굴까? 일단 반사적으로 따라 인사를 꾸벅 했다. 누굴까? 생각이 나지 않는다. 잠시 후 그 여성은 여전히 반가운 얼굴로 내 쪽으로 다가온다. 오지마! 오지마! 난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단 말야! 그런데 정말 누구지?

 

"녹색당 당원이세요?" 어, 첫 마디가 의외다. 혹 모르는 사이인데 그냥 깃발을 보고 반가워 인사를 한 것일까? 제발 그런 상황이기를 바랬지만, 잠시 후 두번째 말씀에 그 기대는 무참히 무너졌다. "저 혹시 기억안나세요?" 흠 과거 어딘가에서 만난 분인데, 녹색당에서 만나서 의외다! 혹은 녹색당에서 만나서 반갑다! 뭐 이런 뜻이었나보다. 어쨌거나 나는 어떤 표정을 지어야할지 모른채,(아마 난감한 표정을 짓고 있지 않았을까?) 고개만 절래 절래 흔들었다.

 

지금껏 조용했던 여성분의 말투가 갑자기 높아졌다! "나, 털털이떡 누나야!"라고 말했는데, 솔직히 그 순간에는 너무 긴장해서 그랬는지 그 말을 잘 못 들었다. 누구라고 말했는지 듣지도 못했으면서 "아!" 감탄사를 한번 날려주고, 반가운 웃음을 잔뜩 머금은 채, 고개를 끄덕이는 리액션이 자동으로 이어졌다. 머리속으로는 여전히 그가 누군지 찾기 위해 메모리를 뒤지고 있었다. 여성은 그제서야 환한 웃음으로 나를 쳐다본다. 그러고보니 저 웃음. 어디서 많이 본 것 같긴 한데. 떠오를 듯 말듯 떠오르지 않는 기억을 원망하며 머리를 쥐어 뜯고 싶었지만, 비가 내리고 있었고 난 모자를 쓰고 그 위에 비닐 우비를 입고 있었다.

 

여성이 몇 개인가 질문을 던졌고, 나는 여전히 혼란스러운 상태에서 겨우겨우 대답을 했다. 그러다가 그의 입에서 누군가의 별명이 나왔다. 딩동댕! 드디어 퍼즐이 맞춰졌다. 그는 십수년전 문학 동호회에서 활동할 당시에 친하게 지내던 누나였다. 비로소 앞에 그가 말한 별명이 뭐였는지 생각났다. '털털이떡' 독특한 별명이어서 쉽게 잊을 수 없었던 그 이름을 이렇게 까맣게 잊고 있었다니! 그나저나 이게 몇 년만이야? 마지막으로 만난 게 언제였는지 기억나지 않으므로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대략 12년은 된 것 같은데!

 

그때부터 내 표정도 진심으로 반가운 표정으로 바뀌지 않았을까? 우린 긴 시간의 간극 때문에 무얼 물어야 할지 몰라 조금은 어색한 시간을 보내다가 함께 저녁을 먹으러 갔다. 그 사이 누나와 함께 온 일행들(그 분들은 경남녹색당 당원들이었다.)과도 인사를 나누고, 누나의 아들이라는 꼬멩이의 머리도 한번 쓰다듬었다. 몇 살인지 물었더니, 8살 초등학교 1학년이란다. 어! 우리 큰애랑 똑같네!

 

식당 앞에서 각자의 일행을 찾아 헤어지고 나서, 저녁을 먹으면서 그 누나와 함께 했던 기억들을 끄집어 내 보았다. 흐릿한 기억들. 그러고보면 온라인 문학 동호회의 특성 탓인지, 이웃도시였지만 어쨌거나 도시가 달랐기 때문인지 자주 만나던 사이는 아니었다.

 

밤늦게 행사가 끝나고 각자의 '희망버스'를 타고 각자의 숙소로 헤어지기 직전, 누나와 다시 한번 마주쳤다. 어느 마을의 마을회관에서 묵게 될지 서로 모르는 상황. 어쩌면 다시 만나기 어려울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만나서 반가웠어! 안녕!

 

지친 몸을 버스에 던져넣었다가 숙소라는 마을회관에 도착하여 간신히 버스 밖으로 몸을 꺼내어 나오는데, 어라! 밀양에서 온 '희망버스' 1대가 같은 숙소앞에 서 있다. 혹시! 하는 예감은 역시! 로 돌아왔다. 누나가 이미 방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이 숙소에는 밀양, 부산, 울산 등에서 온 '희망버스'참가자들이 배정되어 있었고, 우리 차에 타고 있던 소수의 서울 참가자들이 합류하게 되었다.

 

뒷풀이. 누나는 아까 제법 서운했던 모양이다. 내가 하나도 안 반가워했다며 서운한 기색을 드러냈다. 미안했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사람 못알아보는 '불치병'에 걸린 나 자신을 치료할 방법은 도무지 없는 것 같다! 그나저나 당연한 말이겠지만, 12년만에 만난 누나는 느낌이 참 많이 달랐다. 예전에는 내가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문학적 소양과 문장력 때문에 참 높아보였던 누나였는데, 지금은 그저 동네 아줌마 같은 친근한 느낌이다. 그 와중에 누나는 나와 같이 온 일행들에게 수다를 떨고 있다. '문학동호회에 함께 있었지만, 그때 글은 별로였어요.' 어! 지금 내 험담하고 있는거야? 그래 뭐 인정! 당시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고 내 글은 늘 별로였다. 누나의 멋진 시와 간결하고 세련된 문장에 비하면 내 글은 아무것도 아니다.

 

아침이 밝아올 무렵까지 술잔을 기울이다가 잠시 눈을 붙인 후 다음날 영덕 일정을 소화하면서 밀양팀과 헤어지는 순간이 다가왔다. 80대 최고령 어르신 참가자들부터 765 송전탑 싸움을 어렵게 이어가고 계신 어르신들이건만 표정은 밝았고, 늘 적극적인 모습을 보여주셨다. 어르신들을 보면서 새삼 나태하고 게으른 나 자신을 반성하고 좀 더 적극적인 삶을 살아야겠다고 다짐해본다.

 

누나와 누나의 꼬멩이와도 작별인사를 했다. 또 언젠가 만나겠지. 아, 페이스북에서 소식 접할 수 있으니 뭐 작별이라는 단어의 애틋한 느낌이 많이 줄었다. 털털이떡 누나, 만나서 정말 반가웠어! 그리고 제대로 알아보지 못해서 정말 미안해! 다음에 만나면 내가 먼저 인사할게!(과연 가능할지는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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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클 2012-07-19 16: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말인지는 몰라도 인디언 어느 부족은 오랜만에 만나면 멀리서 큰소리로 인사를 하는데 상대방의 이름을 부르는게 아니라 자기 이름을 부른다더군요. 흔히들 말하는 안면인식장애가 있거나 감은빛님 같이 가끔 얼굴을 잘 기억 못하는 사람들을 위한 인디언들의 지혜가 아닐까요? ^^

감은빛 2012-07-19 16:12   좋아요 0 | URL
아, 그거 정말 굉장한 지혜로군요!
라고 잠시 생각했다가,
저에게는 이름과 얼굴을 매치시키지 못하는 또 하나의 '불치병'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다시 한번 좌절합니다.
이름을 듣고서도 가까이서 얼굴을 보면 못알아보는 것은 똑 같을 것 같아요. ㅠ.ㅠ

카스피 2012-07-19 22: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저도 남 얼굴을 잘 기억하질 못해 난감한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어요ㅜ.ㅜ

감은빛 2012-07-23 14:23   좋아요 0 | URL
앗! 카스피님도 저와 같은 병을 갖고 계셨군요!
알라딘에 의외로 같은 병을 가진 분들이 많군요.

다락방 2012-07-20 11: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은빛님과 저는 이런 상황을 일상에서 종종 만나게 되는군요 ㅠㅠ

감은빛 2012-07-23 14:27   좋아요 0 | URL
일상적으로도 자주 겪지만,
이번 건은 좀 더 극적인 경우였어요.
상대방은 어떻게 나를 몰라보냐고 서운해하는데,
아무리 설명해도 이해해주지 않더라구요.
이럴때는 참 억울해요!

달사르 2012-07-20 13: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가게 오픈하고, 손님으로 와주신 이모 얼굴도 못 알아봤는데요..ㅠ.ㅠ

카스피님하고 다락방님하고 감은빛님하고, 저 하고..안면인식장애 있는 사람이 의외로 많아요. 그지요? 여기 알라딘만 해도 벌써 이만큼이나 되니까요.

사람이 사람을 몰라보면 참 서운할까요? 저 같은 경우는 그냥 눈이 나빠서 그래, 안면인식장애다, 어쩔래! 배째라 식으로 되려 당당하게 대하거든요. 미안한 표정은 짓지 않구요.

사실 그 사람을 기억한다는 건 그 사람과의 좋았던 것도 기억하지만, 나빴던 것도 죄다 기억한다는 건데..어차피 얼굴맹이라면 그 사람과 나빴던 걸 까먹어주는, 저질 기억력을 되려 기특하게 생각할 수도 있을 거 같애요.

기억력이 좋아서 타인과 껄끄러운 거 까지 다 기억이 나서 사람 만나기 괴롭다...는 분도 저는 종종 보거든요. 그럴 때마다 저질 기억력 플러스 얼굴맹인게 얼마나 다행인지..싶더라구요. 감은빛님, 우리 얼굴맹 이거..복 받은 겁니다. ^^

감은빛 2012-07-23 14:38   좋아요 0 | URL
저 역시 몇 년만에 길에서 삼촌(실제론 5촌당숙)을 만나 누구였더라?
고민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ㅠ.ㅠ

대개 제가 경험했던 분들은 무척 서운해하더라구요.
이 글의 주인공인 누나는 엄청 서운해했구요.

어쨌거나 알라딘에서 같은 증상을 가진 분들이 여럿 계시다는 사실을
확인 한 것은 그나마 다행입니다.
저만 그런 불치병을 갖고 있는 건 아니었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