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인구달 - 침팬지와 함께한 나의 인생
제인 구달 지음, 박순영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0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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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을 사랑하는 사람이 천성이 악할 리 없다.

 

2001년 작성

 

 

나는 본래 동물을 무서워한다. 날카로운 이빨로 물리는 것에 대한 공포심이 있어서 일까.. 한달 전 동생이 오래도록 집을 비우게 될 사정이 생긴 자기 친구 집의 요크셔테리어를 데려왔다. 등어리는 까만털을 갖고 있고... 얼굴과 다리는 황금색 털을 갖고 있는 요크셔테리어.. 개를 무서워하는 내가 만난지 24시간 만에, 이 강아지의 등어리를 쓰다듬는 것이 가능하게 되었다. 나의 유심히 내려다보는 눈길을 느끼면 얼른 배를 하늘로 향하게 발다랑 드러누워서, 자기 배를 쓰다듬어 주기를 기다리는 이 녀석.

이 강아지 때문에 애완견에 대한 정보를 찾아 인터넷 싸이트도 뒤져보게 되고, 개샴푸를 사러 길건너 멀리까지 나가 보질 않나, 나의 일상에 크고 작은 변화가 생기게 되었다. 그 뿐만이 아니다. 내 곁을 스치는 강아지들 그리고 텔레비전에서 나오는 동물들까지 유심히 보게 되었다. '저 강아지는 나이가 몇 살일까?'에서부터 뭘 좋아하고, 싫어할까?' 하는 생각에 이르기까지.

이 책의 성격을 굳이 구분하여 딱 잘라 말하자면, 청소년을 위한 자서전이라고 할 수 있다. 저자가 어떤 연유로 침팬지를 연구하는 사람이 되었는지, 어릴 적에 어떤 소망을 간절히 갖고 있었고, 청소년기를 지나면서 해 왔던 것들에 대한 얘기들이 쉽고 간결하게 담겨져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침팬지와 함께 지내는 동안에 제인 구달이라는 한 여성으로서 겪어야 했던 결혼, 출산, 이혼, 재혼에 대한 인생 역정이 정말 담담한 필치의 술술 읽히는 문체로 그려져 있다.

어릴 적에 그녀가 이웃집의 개를 애정 어린 마음으로 관찰하고 돌보았던 것, 그리고 동물과 이야기를 나누는 두리틀 박사의 이야기책을 옆에 끼고 살았던 것 등이 그녀가 어른이 되어 침팬지를 인내심을 갖고 지켜보며 동물들에게 사랑을 베푸는 마음을 갖는 데에 발로를 마련한 것 같다.

제인 구달이 동물을 사랑하는 마음은 거창한 데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동물도 사람과 마찬가지로 공포나 불안, 통증, 그리고 행복과 만족을 느낄 줄 안다. 이 세상에 어떤 사람이 불안에 떨고 통증을 느끼며 죽어가게 되는 걸 원하는가? 동물들도 마찬가지이다. 제인 구달은 동물과 인간이 모두 함께 행복하게 살아가는 길을 간절히 바랬던 것이다. 그리고 제인 구달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루츠와 슈츠라는 단체를 만들어 환경 운동의 실천을 몸소 보여 주기에 이른다.

제인 구달의 침팬지 연구 방식은 기존의 방식과는 사뭇 다르다. 기존에 방식대로 라면, 동물들을 일단 실험실의 철창에 가두고, 단번에 결과를 보기 위해, 급기야 동물에게 약물 투여 혹은 절단까지도 서슴지 않는다. 하지만 제인 구달은 야생의 상태로 들어가 동물들의 생활을 옆에서 지켜보며, 인내심과 사랑을 갖고 그저 관찰하고 동물들에게 도움을 준다. 이런 방식은 연구 업적에 있어서 단번에 어떤 결과물을 보기는 힘들 것이다. 하지만, 이 방식은 생태계의 흐름을 파괴하지도 않고, 동물들을 불안에 떨게 하거나 가혹하게 죽이지 않으며, 환경을 오염시키지도 않는다.

저자는 마지막으로 독자에게 부탁의 말을 남긴다. 환경의 오염을 막고, 동물을 사랑하는 것은 거창하거나 힘든 일이 아니라고, 작은 것 하나부터 조금만 주의를 기울이면 동물들과 인간들이 함께 어울려 살 수 있는 길이 있는 것이다.

언젠가 나는 백과 사전에서.. 6주 된 인간의 태포에 갇힌 태아와 4주 된 태포 안의 여우원숭이 그리고 3주 조금 지난 태포 안의 닭의 모습이 아주 영락없이 구분을 못할 만큼이나 흡사하단 걸 본 적이 있다. 그렇게 발생 단계에선 비슷하게 생겼던 것들이 별개의 차원에서 자기의 생을 꾸려간다. 그런 인간은 단지 자신이 발생 단계에서 사람의 배에 인간의 모습을 하고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다른 지구상의 생물체들에게 너무나 오만하게 구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무자비하게 대량으로 산림을 채벌하여 야생 동물들이 오갈 곳 없이 만들어버리거나, 생체 실험으로 동물을 대용하고, 인간들의 호사스런 취미에 부흥하도록, 한낱 사냥감으로 전락시키고 말았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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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나는 인생 - 개정판
성석제 지음 / 강 / 200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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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었던 게 1998년이었으니까, 17년 되었다. 당시에는 신문의 북칼럼란을 꽤 꼼꼼히 보는 사람이었다. 그때는 알라딘이 없었으니까. 이 책은 고 박완서 님의 추천 북칼럼을 통해 알았다. 거기에서 박완서 작가는 지하철에서 읽었는데 너무 재미있어서, 웃음을 참지 못해 이상한 사람 취급 받았다는 에피소드도 첨가하였다.  17년이라,,,하하  어떤 책은 세월이 이렇게나 흘렀어도, 인생의 기조 같은 게 되어 준다. 어떤 기조? 인생 뭐, 있어 짧게 살더라도 유쾌하게 살자~ 라고.

이제 열살 된 우리집 큰애도 말놀이를 하는 유희를 아는 것 같다. 물론 내가 사소하다 싶은 것에도 리엑션 빵빵 터뜨려 주는 통에 실력이 차츰 좋아지고 있는 듯도 하다.

얼마 전에는 애아빠가 편의점에서 건빵 몇 봉지를 사다주면서, 저 빡빡해 빠진 과자가 뭐라고, 건빵 예찬론을 애들 앞에서 펼쳤다. 군대에서는 이것을 그냥 먹지 않고, 끓여도 먹을 수 있어, 그것도 맛있어. 별사탕하고, 이렇게 먹을 수도 있고..!"

큰애가 건빵은, " 총(건) 쏘는(빵) 연습하면서 먹는 과자라, 이름이 건빵인 모양이라고 한다. 동생(이름이 건)이 군대가서 총 쏘는 연습하면서 먹으면  제대로 일 것이라 한다. 군대라는 데가 훈련을 하면서 무언가를 먹을 턱이 없겠지만, 그래도 그 말재간에 나는 기다렸다는 듯 빵~ 터뜨려 웃어줬고.

 

편집일을 처음 시작했던 출판사에서 만난 선배 언니 이야기로 리뷰를 시작한다. 지나칠 정도의 특유의 꼼꼼함과 완벽주의로, 함께 일하는 상대방을 두손두발 다 들게 하고 머리까지 수그리게 만드는 놀라운 괴력을 갖고 있는 사람이 있었다. 나는 그래서 그 언니를 완전주의자라고 부르겠다. 소리내어 불러 본 적은 없지만 말이다.

그런데 성석제의 이 소설집에 <완전주의자를 위하여>라는 단편이, 마치 '나를 읽어보라'는 듯 내 눈앞에 버젓이 있었다.

소설 속에 묘사된 주인공 '완전주의자'는 이런 식이다.
'류 박사' 로 불리는 이 분은 무슨 학위를 갖고 있는지 모르겠으되, 텔레비전의 심야 토론에 나오는 어떤 박사보다도 더 박사처럼 생겼다. 그는 그가 사는 동네의 문관의 제왕이자, 배지없는 보안관에 정치평론가, 경제사가, 거기다가 유일무이한 언어학자이다.
특히, 언어학자의 면모가 돋보이는 것이, 그 동네의 약수터 옆에 만남에 광장이라는 푯말을 동사무소에 호통을 쳐서 '만남의 광장'으로 바꾸게 하였다. '뇌쇄(惱殺)'를 '뇌살'로 읽은 어떤 사람을 된통 망신을 주기도 하고, 그 동네 음식점의 차림표에서, '떡복기'를 '떡볶이'로, '김치찌게'를 '김치찌개'로 '육계장'을 '육개장'으로 일일히 지적하여 바꾸게 해 놓는다. 심지어 동네 미용실의 '스트레스 파마'가 '스트레이트 파마'로 까지 바르게 고쳐지도록 했던 사람이다. 그런데 이 이야기의 압권은 이런 완전주의자의 완전치 못한 일화를 하나 챙기는 데 있다. 드라마 <전원일기>를 <저녁 연기>로 잘못 알고 있는 일화와, 빨대를 영어로 '스트롱'으로 발음했던 일이다.

소설의 효능은 이런 순간에 발현된다. 회사의 완전주의자 언니에게 전에 없던 애정이 생기기 시작했던 것이다. 세상에 누구도 완벽한 사람은 없다는 것, 완전한 사람은 진짜 사람이 아닌지도 모르겠다는 것. 우리 회사의 완벽주의자 언니도 내가 보지 않는 어느 곳에서 가끔 이런 가당치 않은 실수도 하겠거니, 하는 생각이 들었다.

 

40편의 소설이 묶어져 있는 소설집이지만 총 페이지가 200페이지도 넘지 않는다. 그런데 이 짧은 글들이 뒤틀리고 우스꽝스럽기까지한 우리들의 일상을 코믹하게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단편적이고 가벼운 꺼리로서의 재미가 아니라, 요절복통할 인생의 아이러니로서의 재미를 위하여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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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15-02-03 11: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큰아드님의 말재간(?)에 우선 저도 환호를 보냅니다~~~~. 그런 이중적 의미를 부여하는 말재간 좋아해요!!!!! 이 책 저도 읽어보고 싶네요~~. 저는 한국 소설은 정말 읽은 것이 별로 없어요. 그나마 토지 전집을 다 읽은 것으로 스스로 위안을 삼고 있지요~~~^^;;;;
세상에 완전한 사람도 없고 상황도 없고 곳도 없고,,,, 그래서 이 세상이 살만하다는 생각을 가끔 해요~~~. 근데 맞춤법 같은 거 못하는 저는 솔직히 조금 뜨끔했어요~~~~~^^;;;;;

icaru 2015-02-03 12:30   좋아요 0 | URL
말재간 조금 있기로소니,ㅎㅎㅎ 불새출판사 만 하겠어요, 비비아롬나비모리 님!!! ㅋㅋ 토지 전집을 다 읽으셨다고요!!! >.< @.@
저는 전집에는 정말 약한데,,,
맞춤법 못하는 거,음,,, 저는 그래요, 가까운 예로, 저희집아이도 그렇고요 심지어 애아빠도 안,과 않을 혼동해서 쓴다던지 아무튼 많이 어려워 하는 것을 볼 때,,,
맞춤법이 그 사람 소양의 전부가 아니라고 생각하기로~~ (,., ) ( ˝.˝)

라로 2015-02-04 12:52   좋아요 0 | URL
불새출판사 ~~~^^;;;;

단발머리 2015-02-03 11: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하~~~ 1998년에 이 책을 읽으셨다니, 정말 대단하십니다.
저는 그 때 뭘, 읽고 있었나, 가만히 생각해 봅니다. @@

저도 어제밤에 성석제 단편을 읽었거든요. 문학동네 겨울호 속에 있는 거였는데요.
너무 재미있게 읽었어요.
소설가라는 직업이 얼마나 힘든지, 그런 생각도 들었구요.

큰아드님 대단한데요~~ icaru님 좋으시겠어요~~


icaru 2015-02-03 12:25   좋아요 0 | URL
어므나 하나두 안 대단합니다~ 단발머리 님은 그 즘에 풋풋한 대학생이지 않으셨어요! 인생에서 더할나위 없이 윤택한 무언가를 하고 계셨을듯~ 저는 모..
옛날에 읽은 것들을 들쑤시고 있는 지금 제 모습이 대단할 만큼 가관입져 ㅎㅎ

성석제 재미있는 인생을 읽던 2,3년 동안 애정에 마지 않는 작가였어요,,,
궁전의 새 라는 책도 재미있는데, 저는 그 작가가 쓴 어린시절 시골 이야기를 특히 좋아했던 거 같아요.. 그리고 첫째도 둘째도 유머~~ 유머가 있어서,, 문학동네를 읽어보면, 그의 지금 작품세계를 알 수 있으려나요...
아 읽지 않은지 너무 오래되었네요 ㅎ


단발머리 2015-02-03 13:21   좋아요 0 | URL
네, 그 때 저 풋풋하다 못해 프르릇!! 맞는 말인가요??

전 사실 문학동네 김훈의 단편 때문에 샀는데요 (다른 작가님들 죄송요.)
김훈님 거랑, 김영하님 거랑, 성석제님 거랑 모두 완전 만족하고 있어요.
특히 성석제님은 이주의 발견으로 뽑히셨어요.
유머가 제일 주요한 무기시라니, 더 좋아지는데요.. 호홍~~

라로 2015-02-04 12: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카루님!!!! SOS입니다요!!!!! 체스 자주 하신다고 하셨잖아요?? 앱으로 하시나요? 아님 컴??? 제 꼬마가 저희 가족 모두를 괴롭혀요~~~ㅠㅠ 체스 같이 하자고!! 그래서 아무래도 체스 앱을 깔든지 컴으로 하게 해야 할듯~~ 물론 가끔 같이 게임도 해주겠지만 이거 매일 몇 게임은 힘드네요. 저야 몇 게임 안 해줬지만~~~~^^;;;;
도와주세요~~~~~!

2015-02-04 13: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2-06 10: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125쪽-
이미 인생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미래가 아니라 과거라고 한 당신의 말은 옳았습니다.


 icaru ㅣ 2004-05-31 처음 읽음


기록을 하는 것은 기억하기 위해서일까? 아니다. 기록을 하는 건 나를 기억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그건 망각의 고통을 이기기 위해서이다. 아무것도 자기를 이겨낼 수 없다고 주장하는 그 고통을. 돌연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리고 마는˝ 그 어디에도, 그 누구에게도 없는 그런 것.
------ 롤랑 바르트의 애도일기 중에서

11년전 나는 정말로 이 책을 읽었던 것일까 아니면 내가 그 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간 다른 사람의 리뷰였을까?

참으로 아름다웠던 문장들과 살아간다는 것은 그저 희미한 흔적들만 남기는 연약한 무엇일 뿐이지 않은가 하는 느낌을 가졌었다. 그러니까 허무한 느낌말이다.

참으로 온전하지 않은 삶이고 독서인데, 산다는 것의 실체이기도 할지 모르겠다.

다음은 그 때 썼던. .....

------------------###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는 결국 어디를 말하는 것일까를 생각하며 이 책을 읽었다.

무슨 일인지 이 글 속의 `나`인 롤랑 기는 자신의 과거를 전혀 알지 못했다.  최근에는 흥신소에서 위트라는 사내를 도와 일을 했다는 것이 그가 알고 있는 자신의 신상의 전부다. 하지만 위트도 흥신소 일을 그만두고 자신의 남은 여생을 행복하게 보내기 위해 고향인 니스로 떠난다. 이제 기 그가 자신의 과거를 찾아나선다. 

그가 ‘나’ 자신의 과거를 찾아가는 과정을 - 한 사람의 일생으로부터 남은 것과 남겼던 것이 무언지를 생각해 보면서 - 조용히 따라가 보았다. 그 과정에서 만났던 몇몇 사람들이 건넨 과자통이나 낡은 상자 속에 담겨 있는 사진에는, 낯선 사람들에 둘러싸여 ‘나’로 추정되는 인물의 모습이 있었다.

‘나’는 물었다.“이 사진 속에 보이는 남자는 나와 닮은 것 같지 않습니까?”“아뇨, 꼭 그렇다고 말하기는 어렵겠는데요. 그렇지만 어쩌면......”

과거를 모두 기억하지 못하는 ‘기’의 삶의 목적은 무엇인가? 그러나 살지 않는다면 추억해서 무엇하나? 지금 이 순간을 찬란한 감동으로 사랑하지 않는다면, 지금 이 순간은 그저 무심히 흘러 망각의 무(無 )로 변해갈 것이다. 

파트릭 모디아노의 이 작품은 마치 푸르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처럼 언뜻 지나쳐본 장면, 창에서 내려다본 낯익은 거리의 풍경, 어렴풋이 들리는 소리에서 포착하는 과거 한 때의 체험, 끊어진 한 토막의 대화들이 무채색의 그림처럼 사람을 매료시킨다. 신문지상에 나왔던 모 작가의 말처럼, 참 매혹적인 소설이다.

 “과연 이것은 나의 인생일까요?아니면 내가 그 속에 미끄러져 들어간 어떤 다른 사람의 인생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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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15-01-31 19: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1년 전의 리뷰가 이렇게도 근사하다니요.
저는 이 소설이 좋았지만, 무언가 말로 표현하기가 참 어려웠어요.
좋았는데, 참 어려웠어요.
˝저를 아시나요?˝에서 웃기만 했을 뿐이구요.
icaru님~~ 예전 리뷰 카테고리 하나 만드셔야겠는데요.^^

icaru 2015-02-02 10: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단발머리 님 감사해욧!! 지금은 저렇게 공들여 못쓰겠어요.. 왜 그렇게 되어버린 건지, 퇴보인지 진보인지도 모르겠고 ㅎㅎ
허나.. 그런 고민들은 해 보네요~
지금은 절판된 도서에 붙은 옛날 리뷰들을 긁어다 다시 개정판 책에 붙이는 작업을 할까... 하능~

카타유 2015-02-02 09: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지금 읽고 있는데, 11년전에 읽으셨다니. 반갑네요.

icaru 2015-02-02 10:35   좋아요 0 | URL
아ㅡ, 지금 읽고 계시는군요~~ 제가 프랑스 문학에는 문외한인데, 이 작품을 읽고는 내가 불문학의 정수를 맛보고 있는 걸게라고 생각했던 듯해요~ 원래 아름다운 것은 손에 잡히질 않으니,,,
뭐라 구체적으로 말하긴 힘들지만요~
 
하류지향 - 배움을 흥정하는 아이들, 일에서 도피하는 청년들 성장 거부 세대에 대한 사회학적 통찰
우치다 타츠루 지음, 김경옥 옮김 / 민들레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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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는 센세이셔널한 책이었다.

다분히 이분법적이기도 하다는 생각도 들었고, 일본판 김봉곤 훈장을 보는 것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어렸을 때부터 집에서 가사일을 돕거나 노동에 참여함으로써 인정을 받고 자란 아이들은 일에 대한 보상이 주는 기쁨을 알고 있어서 결코 니트가 되지 않는 말도 그렇고 말이다.

파랑새 증후군이라 하여, "나는 정말 어떤 인간인가?", "나는 정말 무엇을 하고 싶은가?"와 같은 자기 찾기 여행 같은 것의 폐해를 말하는 부분도 있다. 이런 질문이 사람을 성장시키지는 못한다 라는 것이다. 만약 자기가 어떤 사람인지 정말로 알고 싶다면 자기를 잘 아는 사람들, 예컨대 부모라던가 친구들을 상대로 긴 인터뷰를 하는 것이 낫다고. (글쎄다,,, 갈 길 가다가 가끔 해보는 나를 찾는 딴짓이, 인생을 건설적으로 만드는 데 큰 도움이 안 될지는 몰라도, 인생을 풍요롭게 만드는 데는 도움이 된다.)

 

정말로 이상하게 들리는 말들을 많이 한다고도 생각했다. 일례로, 다음과 같은 것.

리스크 사회에서 생존 경쟁에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는 사람들은 이 사회가 노력에 반드시 보상이 따르지 않는 리스크 사회라는 기본 사실을 거스르고 의연하게 노력하는 사람들. 이라고 하는 부분이 특히 그렇다. 이 세상이 그렇게 돌아간다고 생각하는 것은 상당히 나이브한 생각이 아니던가. 되려 불평등을 단단히 지지해주는 뼈대 같은 역할을 하지 않던가? 라고 생각하던 나에게는 고개를 갸웃하게 만드는 내용인 것이다.

그는 역으로 미래의 전망이 어둡고 노력이 수포로 돌아갈 가능성이 높은 리스크 사회의 실상을 현실적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이 오히려 선택적으로 사회의 빈곤층으로 내려가게 된다는 뜻의 말을 한다. 참으로 석연치 않다고 생각했다. 이것은 해법도 되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계속 읽다보니, 이 저자는 다음과 같은 해법을 제시하는 사람이었다.

 

" 조직 안에서 눈에 띄게 이익을 얻는사람이 없는 해법이 오히려 조직을 와해시키지 않는 해법이 될 수 있다."

 

그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낙관적으로 살아야겠다. 쳇바퀴 같은 일상을 깨고 분노를 되찾았을 때, 희망 그래, 좋다 희망과 더불어 분노의 힘으로 내 생각을 실천하며 살 수 있는 날이 올 것이라고, 그러면서 세상은 조금씩 변해갈 것이다.

 

174쪽~175쪽

 

산다는 것은 이른바 하나의 곡을 일생 동안 연주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살아가면서 행한 갖가지 행동과 말의 진짜 의미는 그 곡을 마지막까지 듣지 않으면 확정할 수 없습니다. 관 뚜껑을 덮은 후에야 그 사람의 진가를 알 수 있다는 말이 있듯이, 사람은 죽은 후에 비로소 그 사람이 태어나서 지금까지 한 모든 행동의 의미를 알 수 있습니다. 육예의 하나로 '음악'을 들었던 이유는 '시간 의식을 갖기', '인간은 시간 속의 존재임을 아는 것'이 지성의 기초라는 것을 그 먼 옛날 성현은 숙지하고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요?

 

육아 얘기로 돌아와 생각해보면, 자식을 기르는 일은 음악을 듣는 경험과 어떤 의미에서 깊은 연관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이가 내지르는 소음도 어떤 '문맥' 안에 있으면 비로소 '음악'으로 들리게 되니까. 앞에서 말한 '소음이 신호가 되는' 과정은 이런 맥락입니다. 시간을 두고 기다리지 않으면 멜로디 구조를 알기까지 개개의 음이 무어을 의미하는지 알 수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아이가 내지르는 해독 불가능한 기호도 어떤 문맥 속에 놓이면 단번에 알아듣게 되는 일이 일어납니다. 그래서 부모에게 요구되는 것과 교향악을 주의 깊게 듣는 청취자에게 요구되는 것이 같습니다. 어느 음절의 아름다움을 그 소절을 다 듣기 전까지는 알 수 없듯이, 아이가 내는 소음을 신호로 변환하기 위해서는 한 마디라도 소홀히 넘기지 않도록 끝까지 경의감과 인내심을 갖고 조용히 귀 기울여야 합니다.

 

222쪽

 

진정한 '다문화 공생'이란 한 사람 한 사람 안에  복수의 가치관, 복수의 언어, 복수의 미의식이 혼재해 있어, 그것이 느슨하게 통합되어 가는 과정을 통해서만 실현 가능하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다문화 공생이 실현된 사회는 아직 어디에도 없지만요.

 

이 책은 니트[ not in education, employment or training ]- 일하지 않고 일할 의지도 없는 청년 무직자를 뜻하는 신조어. Not in Education, Employment or Training의 줄임말이다. 보통 15∼34세 사이의 취업인구 가운데 미혼으로 학교에 다니지 않으면서 가사일도 하지 않는 사람을 가리킴. -족에 대해 조명하고 있는 내용이 흥미롭다. 영국이나 프랑스의 경우 전형적인 계급 사회여서, 하층계급 사람들은 취학 기회나 취업 훈련 기회에서 불이익을 받고 있어, 사회 계층화에 있어 병폐 같은 것이다. 그러니까 직업을 통해 사회적 상승 욕구가 있어도 원천적으로 좌절되는 경우가 빈번한 것. 그러나 일본의 경우 사회적 약자가 자진해서 차별적인 사회 구조를 강화하는데 가담하는 방법으로 이러한 니트 양산이 가속화되었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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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2-02 15: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전쟁기념관.. 에서
1관에서 5관까지 있었는데 4관이 가장 인상적..
배경음악으로 단조의 단조로운 곡이 시종일관 깔리고 있어, 어두웠다. 그의 그림처럼.

고흐는 목회자가 되기를 희망했으나 좌절하고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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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aru 2015-03-17 01: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고흐가 목회자가 되었더라면 좀더 장수했을텐디..

서니데이 2015-03-17 01:30   좋아요 0 | URL
만약 겸직했더라면 고흐 그림이 더 많았을지도요, 예술가는 피카소 처럼 장수하는 사람이 많지 않은 것 같아요, icaru님, 편안한 밤 되세요^^

icaru 2015-03-18 09:04   좋아요 1 | URL
그러고 보니,, 아이러니하네요... 겸직이 아녔더라면, 작품활동에 매진하지는 않았을테고요,, 목회자의 길만 걸었더라면 작품 세계에 몰두하지는 않았을테고..
성직자와 음악가가 가장 오래 살고, 작가나 기자 야구선수의 수명이 짧다는 무슨 통계 결과를 보고 퍼뜩 고흐가 생각났어요. 서른 언저리에 삶을 마감한 고흐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