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TV 벗기기
김도연 지음 / 산성미디어 / 199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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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제목이 시사하듯 일본의 TV 라는 매체를 통해 보다 더 일본의 풍속도를 슬쩍 엿볼 수 있을 것 같아 읽게 된 책이다.

일본 텔레비전을 본 유학생들은 처음에 매우 놀라게 된다고 한다. 텔레비전 프로그램의 주요 내용이 먹는 것과 성적인 내용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라는 데. 텔레비전이라는 것이 현대 문명의 거울이라고 본다면 일본의 문화를 아주 관능적이고 단순하다고 평하는 결론을 도출하는 것은 가능하다. 그러나 여기에는 함정이 있다. 일본인들 스스로조차도 텔레비전은 반은 허구라는 가정 위에서 바라보기 때문이다. 아무리 그래도 한 나라의 문화적 지표를 알 수 있는 가장 좋은 자료로 텔레비전 만한 게 또 있을까?

그리고 또 이런 다른 나라 텔레비전 보기를 통해 다른 나라 사람의 정서를 읽어 낼 수 있다면, 다른 사람보다 좀더 잘 살고 좀더 여유를 부릴 수도 있으리라는 욕심이 자꾸 내게 이런 책을 읽게끔 만드는 것 같다.

이 책은 일본의 텔레비전에 대한 것들을 포함해서, 지은이가 유학 생활을 하며 느낀 것들에 대해 걸러지지 않은 솔직한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을 일본 문화 전반에 대한 객관적인 소개서라고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일본의 유학을 계기로 차(茶) 문화를 좋아하게 되고, 장훈이나 선동렬 선수의 일본에서의 투혼에 감동하여 야구에 보다 관심을 갖게 된 어느 한국 사람의 개인적인 문화 체험기로 읽는 것이 받아들이는 데 편하다.

심야에 불도 켜지 않고 자전거를 탄 일 때문에 경찰들에게 불신 검문을 받으면서 경찰들과 데이트(?)를 한 이야기, 노천 온천에서 벌어진 헤프닝 같은 것들은 실제 벌어진 일들의 기록이라 읽기에 좋고, 일본의 성 문화에 대해 노골적으로 비난한 부분에서는 필요 이상의 선입견을 독자에게 심어 준다는 느낌도 들고, 일본의 기업들과 비교하여 한국 기업이 망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는 글들은 논리적인 근거가 빈약하여 조금은 터무니없이 느껴지기는 했고, 때때로 일본통 다른 책들에서 수차례 다룬 것들이라 새로울 것이 없는 부분도 있었지만 대체로 재미있게 읽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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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칙한 한국학
J. 스콧 버거슨 지음, 주윤정.최세희 옮김 / 이끌리오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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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서 본 건지도 잘 생각이 안 나지만, 모 잡지였을거다. 스콧 버거슨의 인터뷰를 읽었던 것이, 거기서, 스콧은 한국 사람들이 너무 자기 성찰 시간을 갖지 않고, 함께 어울려 지내는데 대부분의 시간을 할애하면서 사는 듯 보이며, 너무 분주하게 사는거 같다고 말했다. 인터뷰상으로의 어감은 한국 사람들이 그러해서 이상해 보인다는 거였다. (그런데 실제로 책을 읽어본 결과 이 부분에 대해서 스콧은 인터뷰와 조금 다른 결론을 내린다. '사실은 한국인들은 그런식으로 인생을 충분히 즐기고 있다'고. 그것은 정상과 비정상으로 절대 분류할 수 없는 문화 그 자체라고 인정하고 넘어가는 것이었다. )

이 인터뷰진을 읽은 것만으로는 책에 대한 호기심이 쉽게 불러일으켜지지 않았다. 그러다가 주변에 아는 사람으로부터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듣는다. '이 책을 읽고, 자신은 아이를 낳으면 스콧 버거슨과 같은 똑똑한 히피로 키우겠노라는 결심을 하게 됐단다......' 스콧의 삶이 얼마나 쿨해 보였으면 그럴까 싶은 생각에 그 사람에게 빌려 읽게 되었다.

이 책의 앞부분에서는, '외국인이 한국을 너무나 많이 왜곡하고 오해하여 다룬 책'을 조사하고 소개하고 있었다. 이 부분에서는 스콧의 한국에 대한 애착과 그 사람 특유의 재기발랄함을 엿볼 수 있지만, 내용은 별 재미가 없다. 정말 재미있어지는 부분은 그 다음장으로 이어지는 우리 나라의 주요 도시에서 우연히 만난 외국 사람들을 인터뷰한 것이었다. 그들이 한국 정착 생활에서 느끼는 만족도를 '정의', '다문화 사회', '삶의 질'로 분류하여 퍼센트를 따로 매기고, 그것을 가시도로 바꾸어 보여 준 사진들이 특히 인상적이었다.

그 다음으로, <내가 아는 재미있는 사람들>이라는 부분에 가면 네 사람의 이야기가 나온다. 그 중에 유일한 한국인이 유에스 킴은 6.25 동란을 겪고, 혈혈단신으로 자수성가한 사람이다. 거기까지는 좋은데, 아쉬운 점은 인터뷰의 내용이 약간은 유에스 킴이 미군 부대의 은혜(?)를 많이 입어 성공할 수 있었단 식으로 전개된다는 점이다. 천하의 스콧 버거슨도 자기의 모국 앞에서는 별 수 없나보다.

전체적으로는 산만한 느낌을 주는 책이 아니었다 생각한다. 한국을 느끼는 외국인들의 시각을 이 구석 저 구석 다 훑으면 망라하고 싶었고, 그러다 보니 잡지와 같은 형식으로 산발적으로 이야기 주제를 잡게 된 것이 스콧 본인의 은연중에 의도였다면야, 어느 정도 성공이기도 하겠지만, 독자의 입장에서는 좀 아니다 싶다.

이 책을 통해, 외국인이 우리 나라에 대해 생각했던 것이나, 입장 같은 걸, 듣고, 평소엔 잘 알 수 없었던 여러 가지 상황들을 목도하게 되었고, 그래서 한번쯤은 외국인으로 한국에 사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볼 계기를 마련한 건 사실이다. 하지만 꽤 타당한 결론을 보여 주는 데까지는 약한 한마디로 뒷심이 부족한 책이 아니었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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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리와 함께한 화요일
미치 앨봄 지음, 공경희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0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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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책을 읽는 내내, 두 사람에 대한 기억 때문에 맘이 심란해져 왔다. 작년 봄에 설암(혀암)으로 돌아가신 외할머니. 필자인 미치에게 화요일마다 함께 했던 루게릭 병에 걸린 모리 교수가 있었듯이, 나에게도 다사롭고 포근하며 모리 교수님처럼 마음이 한없이 부자였던 외할머니가 계셨다. 평소 그렇게 건강하셨던 할머니가 한순간에 턱을 움직일 수 없게 되고, 그래서 말소리도 제대로 낼 수 없게 되었으며, 목구멍으로 음식물을 삼킬 수조차 없게 되었다. 그리고 할머니의 몸은 아주 어린 아이처럼 작게 오그라들고 빼빼하게 말라가고 있었다.

가끔씩 외가집으로 할머니를 뵈러 가면, 극심한 통증으로 기진맥진한 얼굴에도 아이같은 웃음으로 나를 맞아주시곤 했던 할머니. 내게 아직도 후회스러운 것 한 가지가 있다면 그것은, 할머니가 돌아가실 즈음에 병상을 지키지 못했던 것이다. 이제는 세상에 없고 돌아가신 분. 하지만 살아생전 할머니와 내가 서로를 사랑하고, 서로에게 가졌던 감정을 기억할 수 있는 한, 할머니가 주신 사랑이 내 속에 그대로 남아 있고, 할머니는 다만 육신이 이 세상에 있지 않을 뿐, 나와의 관계는 언제까지고 끝나지 않을 것임을 안다. 나는 종교를 갖고 있지 않지만, 내가 죽어 내세에서 할머니와 다시 만나고 예전처럼 할머니가 내 등을 토닥여 주시리라 믿는다.

그리고 앞으로 있을 나의 죽음, 그 운명을 받아들이는 자세에 대해 생각을 해본다. 모리 교수는 미치에게 그런 말을 한다. '공포 속에서 세상을 떠나고 싶지 않아.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받아들이고, 평화로운 곳에 이르고, 놓여나고 싶네.' 우리가 죽어간다는 생각과 화해하는 것, 그리고 죽어가면서 평화로울 수 있다면, 우리는 마침내 세상에서 진짜 어려운 것을 할 수가 있다고 모리 교수는 말했다.

이 책을 읽으면 두 번째로 생각났던 사람은, 얼마 전 싸늘한 몇마디로 서로에게 비수를 꽃고 현재 서로 등을 돌리게 나의 절친했던(?) 벗이다. 곧 관계에 파탄이 날 것만 같은 이 위태로운 상태를 나는 맥놓고 지켜만 보고 있다. 이런 내게 모리 교수는 또 이런 말을 들려 준다. 인간 관계에는 일정한 공식이 없다고. 양쪽이 공간을 넉넉히 가지면서, 사랑이 넘치는 방법으로 협상을 벌여야 하는 것이 '인간 관계'라고. 두 사람이 무엇을 원하는지, 무엇이 필요한지, 무엇을 할 수 있으며 각자의 삶이 어떤지.

모리 교수와 함께 했던 필자 미치 또한 에필로그에 모리 교수가 한 말과 유사한 말로 내 맘을 약하게 한다. '사랑하는 사람이 말할 때는 마치 마지막으로 하는 이야기인양 관심을 기울이라'고 말이다. '연민을 가지세요. 그리고 서로에게 책임감을 느끼세요. 우리가 그런 것을 행한다면, 이 세상은 훨씬 더 좋은 곳이 될 겁니다. 서로 사랑하지 않으면 멸망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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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으름에 대한 찬양 - 개정판
버트란드 러셀 지음, 송은경 옮김 / 사회평론 / 200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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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을 기쁘게 할 수 있는 이유는, 노동이 끝난 다음에 찾아오는 여가의 시간 때문이라고 누군가는 말했다. 그런데 나는 요즘 내가 하고 있는 노동이 하나도 기쁘지 않다. 노동이 끝난 다음에 반드시 짧으나마 여가의 시간이 찾아와 줌에도 불구하고....... 왜 일까...
최근 나는 내가 추구하는 방식대로, 내게 주어진 일을 소신껏 하고 있지 못하다. 끊임없이 그리고 철저히 누군가(?)의 부림을 받고, 그 사람의 지시에 가장 근접하게 일을 해야 할 상황에 놓였다. 그것을 어렴풋이 자각하는 순간부터, 일이 너무나 재미없고 지루한 것이 되어 버렸다. 그리고 이 책은 위와 같은 여타의 상황에서 한없이 게으름을 피우고 싶다는 욕망의 부추김으로 읽게 된 책이다.

예전에 심혜진과 여러 패널들이 스타급 인사를 초대해 인터뷰를 하는 <파워 인터뷰>란 티비 프로를 기억한다. 한번은 김창완 초대되어 인터뷰를 했었는데, 패널 중 한 사람이 그에게 '시간이 나면 무엇을 하며 보내냐'는 질문을 했다. 그러자 김창완이 뜨악한 표정을 지으며, 특별히 하는 일없이 빈둥댄다는 대답을 했다. 참으로 우문명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현대 사회는 강박적으로 사람들에게 목표 달성을 위해 항상 진행형이길 요구하고, 노동의 미덕을 소리 높여 외친다. 노동을 유달리 찬양하고 신성시하는 사람들을 가만히 살펴보면, 대체로 감독이거나 관리자인 경우가 많다. 러셀도 이런 점을 지적하면서, 하루 4시간 노동이 보편화될 수 있는 사회를 이상적인 사회로 보고 있다. 그러나 하루 4시간 일하는 노동자의 임금으로 식구들을 제대로 먹여 살릴 수 있을까. 다분히 이상적인 유토피아를 꿈꾸는 내용으로 비춰진다.

이 책은 1935년에 쓰여진 책이며, 게으름을 주제로한 부분은 이 책에서 앞의 일부분을 차지할 뿐이다. 그 밖에 지은이가 파시즘과 공산주의를 경계하는 이유들과, 교육을 바라보는 입장, 여성과 아동 복지에 대한 내용이 후반에 주류를 이룬다.

따라서, 책의 제목을 '러셀의 바라본 사회, 그 사회의 각 현안들에 대한 견해 모음집' 쯤으로 붙여졌어야 정확했을 것 같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 붙은 제목이라면 판매 부수가 확실히 딸렸겠지. 이 보단 '게으름에 대한 찬양'이라는 제목이 더 호소력이 있긴하다. 그리고 게으름을 시종일관 찬양하는 내용보다야 읽을 거리도 많고, 논란의 여지를 불러일으키는 코멘트도 많기 때문에, 기대했던 것 보다는 훨씬 재밌게 읽었지, 싶기도 하다.

게으름을 진가를 제일 먼저 주장한 사람은 러셀 말고도, 같은 시기에 체코의 극작가이자, 수필가였던 카펙이라는 사람이 있다고 한다. 카펙이 말하는 게으름은 '사람이 정신 팔 것이 아무것도 없는 상태'의 게으름인, 거의 명상의 상태에 가까운 무엇을 말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러셀이 말하는 게으름은 무위라기보다는 여가와 재미있는 사색의 결합 쪽에 가깝다. 러셀이 말하는 게으름을 추구한 인생의 요점은 바로 다음과 같이 이야기할 수 있다. 힘들게 고군분투하며 악바리처럼 사는 쪽보단, 최대한 충돌을 피하고 선한 본성으로 마음의 평화를 유지하며 사는 인생 쪽이 행복할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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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친구들하고 인사하실래요? - 나는 천사를 믿지 않지만
조병준 지음 / 박가서장 / 199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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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센티 남짓 얇은 두께에 펼지면 정사각이 되는 싸이즈의 이 책을 가방안에 넣고, 이곳저곳을 오가는 동안 짬짬히 꺼내어 한참 읽곤하던 그 당시, 나는 그때 오랜만에 동기 모임 자리에서 만났던 친구 한 명에게 이 책을 소개한 적이 있다. '이러이러한 책이 있는데 참 괜찮은 것 같애.' 나의 이런 말에 되돌아온 친구의 대답은 다음과 같았다. 휴머니즘을 강조하는 책이 자기와는 왠지 맞질 않고, 게다가 인도 같은 데서 고행하고 돌아와 깨달음을 얻은 양 구는 책들은 딱 질색이라고 했다. 그 친구는 딱 꼬집어 말하진 않았지만, 내가 류시화의 <하늘 호수로 떠난 여행>과 같은 류의 책을 자기에게 권하는 줄로 이해했던 거 같다.( <하늘 호수로 떠난 여행>를 폄하하려는 뜻은 전혀 없지만..)

친구들과 헤어지고 집에 돌아온 나는 곰곰히 생각했다. '이 책이 고행을 통해서 깨달음을 구하는 책? 그러나 이 책은 '봉사'보다는 '친구'에 더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물론 이 책에는 인도 켈커타의 마더 테레사 집에서 자비를 들여 고된 봉사 활동을 하는 인종도 국적도 살아온 삶의 모습도 다른, 그러나 서로 닮은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그러나 막상 다 읽고 난 다음 나를 압도하는 느낌은, '세상 곳곳에 같은 정서를 두고 있는 사람들'을 친구로 만든 조병준에 대한 부러움이었다. 그리고 조병준은, '세상은 험하지만 그래도 가만히 보면 좋은 사람들도 많다는 것'을 나즈막히 따뜻한 목소리로 읊조리고 있다. 사실 그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에서 보단, 그의 인간적이고, 따뜻한 배려가 물씬 뭍어나는 어조에 먼저 마음이 푸근해짐을 전해 주는 책이다.

그렇담 내 친구들은?.. 주말이면 가까운 벗들과 약속을 잡거나 이렇게 저렇게 알게 된 사람들과 모임을 갖고는 했었는데, 나이가 들수록 점점 더, (나이 문제가 아니라면 그냥 단순히) 요즘 들어 부쩍, 주말이면 집에 콕 박혀 구들장 지는 걸 더더욱 좋아하게 되는 나를 보면서 '뭘 바래니??'라고 스스로에게 반문해 본다. 그리고는 이 책에도 나오는 사랑과 우정을 재미있게 비교한 미셀 투르니에의 다음과 같은 글을 읽어본다.

'우정은 상호성이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 여러분은 여러분에게 우정을 갖고 있지 않은 누군가에게 우정을 가질 수 없다. 우정은 서로 주고 받든가 아니면 서로 주고 받지 못하든가 그 둘 중에 하나다. 반면에 사랑은... 사랑과 우정 사이에는 또하나의 차이가 있다. 존경심이 없는 우정은 존재할 수가 없다는 사실이다. 우정은 경멸에 의해 깨진다. 그렇지만 사랑은...'

그렇지만 사랑은....하고 말하기를 힘들어 하고 있는 미셀 투르니에를 본다. 미셀 못지 않게 나또한 사랑 도 벅차고 우정도 벅차다? 개인적으로 <박가서장>의 책들을 좋아했다. 그 중에 내마음에 깊은 울림을 주었던 책은 단연 <너무 낡은 시대에 너무 젊게 이 세상에 오다>라는 책이다. 나중에 시간이 허락한다면 간략하게 나마 서평 형식으로 이 곳에 기록해 볼 생각이다. 그런데 너무나도 아쉬운 것은 조병준의 이 책을 비롯 <너무~ 너무~>또한 절판이 되어 버려서 이제는 구할 수 없는 책이 되버린 것이다. 박가서장 관계자님... '이 두 책을 앞으로 다시는 펴낼 생각이 없는 것인가요?... 저는 그것이 몹시 궁금하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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