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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의 눈물 - 서경식의 독서 편력과 영혼의 성장기
서경식 지음, 이목 옮김 / 돌베개 / 2004년 9월
평점 :
일시품절
서준식의 옥중서한에 이어서, 서씨 형제들의 가족사를 들여다보는 연장선상에서 책을 집어들지만, 이 책은 실은 이 쪽에 속하면서도 저 쪽에 속하는, 어쩌면... 양 쪽에 모두 속하지 못하는 경계인인 재일조선인이 소년 시절에 읽었던 책을 통해 소년 시절을 추억하는 기록이다.
추억 속에는 기쁨도 아픔도 버무려지게 마련이다. 압박과 차별을 받는 일본 사회에서의 소수자로서 갖었던 소년의 의기소침하게 굴절된 심정들, --“조선은 만사가 공정하지 못한 것. 조잡한 것, 어딘지 뒤끝이 씁쓸한 것, 볼썽사나운 무엇을 가르키는 대명사였다.”, 조국을 향한 그 복잡다단한 애증의 추억들-- 이 담겨 있다.
성장의 기억을 더듬을 만한 구절 중 몇을 옮겨 본다.
재일 조선인인 시인 허남기의 시 등이 포함되어 있던 시집에서 스즈키 기로쿠라는 시인의 ‘용서’라는 시를 읽고, 나는 이 부분을 읽을 때 ‘주위의 일본인 학생들에게 절대로 내 마음을 허락하지 않겠다’ 결심하며 몸과 마음을 가다듬었던 어린 시절을 떠올렸다. 이 시의 마지막 행에는 ‘나는 사랑은 못 하겠다’고 씌어 있었다. 누군가를 좋아해버릴 것만 같은 그런 때에는, 나는 언제나 마음속으로 이 시구를 읊조렸다. 그만큼 마음이 약했던 것이다.
마의산--- 하지만 책을 읽기 시작하자마자 죽고 싶을 정도로 지루해져버려 곧바로 내팽개치고 말았다. 마의산은 본질적으로 끝나지 않을 그 무엇을 묘사하고 있었다.
---> 그와 같은 학교에 다니던 책을 꽤나 읽었다는 여학생이 “마의 산, 그 책만큼은 영 읽고 싶지 않아.” 라는 말에 “넌 이 책을 읽을 마음이 없다지만, 여차여차하고 이러저러해서 난 재미있게 얽었단다‘ 라는 말을 꼭 그 친구에게 전해 주고 싶었했던 경식. 그렇지만 그에게 마의산은 사춘기 콤플렉스의 상징이요, 끝까지 등정할 수 없었던 영원한 미답의 봉우리였다.
“양친의 학력을 기입할 때 결연하게 공란에 없음이라고 써넣고 나니, 부끄러움보다는 오히려 어머니를 위로해 드려야겠다는 마음이 끓어올랐고 어느덧 나 자신이 당당한 어른으로 성장한 듯한 기분이 들었다.”
“하나의 다리를 건설하는 일이, 만일 그곳에서 땀 흘리며 일하는 이들의 의식을 풍요롭게 하지 못할 양이면, 차라리 그 다리는 만들지 않는 편이 낫다. 시민들은 예전처럼 헤엄을 쳐서 건너든가 아니면 배를 타고 강을 건너면 된다. 다리는 하늘에서 떨어지거나 땅에서 솟아오르는 것이어서는 안 된다. <대지의 저주받은 사람들>프란츠 파농”
---> 서경식은 형 준식의 친구 K를 통해서 프란츠 파농의 책들을 접한다. 위의 구절 속에는 각 인민이 어떻게 자기 삶의 주인공이 될 것인가가 화두이다. 프란츠 파농은“먼저 자신의 소외를 의식하지 않는 한 결연하게 전진하기란 불가능하다”고 또, “민족주의 아닌 민족의식이야말로 우리에게 범세계적인 확산을 가능하게 하는 유일한 길이라고 설명한다. 자신이 재일조선인이라는 사실, 바로 그 소외의 상황을 의식하는 일이야말로 전진을 가능하게 한다. 그 전진이란 다름 아닌 답답하고 옹색하게 굴절된 일상에서 광활한 보편의 세계로 나아가는 것이다.
그가 대학 3학년이 되던 1971년 봄, 한국에 유학 중이던 둘째형과 셋째형이 한국 정부에 체포되었다. 그는 그 사실을 “학원에 침투, 학생 데모를 배후에서 조종한 스파이 체포되다”라는 제하의 신문 기사를 통해 알게 된다. 그 뒤부터 그는 두 형을 위해 정신없이 뛰어다녔지만, 재판이 종결되고 두 형이 각각 무기형과 7년형을 언도받자 더 이상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일마저 사라지게 됨을 느낀다. 그러나 아무것도 할 수 없던 중에도 형들이 어두컴컴한 독방에 갇혀 때때로 모진 고문을 당하고 있다는 사실은 한 순간도 잊을 수 없게 된다. 그럭저럭 1년 늦게 대학을 졸업하기는 했지만 재일조선인의 취직은 간단한 문제가 아니었다. 그 즈음 그는 루쉰이 일생동안 부대꼈을 ‘암흑’에 그 역시 몸을 담고 있는 심정이 되고. 그리하여 루쉰의 <‘분’의 후기>, ‘꽃없는 장미’ ‘어떻게 쓸 것인가-밤의 기록1’ 등을 읽고 또 읽고 한다.
“루쉰이 “희망이란 본래 존재한다고도 존재하지 않는다고도 말할 수 없다”고 할 때 그는 희망은 ‘없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적어도 ‘거의 없다’라고...... 인간은 희망이 있기 때문에 걸어가는 것이 아니다. 인간이 걸어가는 이상, 희망이 없다고 단정할 수 없다.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희망이다. “
“한 순간 한 순간 삶의 소중함을 인식하면서, 엄숙한 자세로 반드시 읽어야 할 책들을 정면으로 마주하는 독서. 타협 없는 자기연찬으로서의 독서. 인류사에 공헌할 수 있는 정신적 투쟁으로서의 독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