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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정일의 독서일기 5 ㅣ 범우 한국 문예 신서 55
장정일 지음 / 범우사 / 2002년 1월
평점 :
절판
사실 나는 본래부터 책 읽는 걸 좋아했던, 그러니까 타고난 책벌레 같은 사람은 아니었다. “쟤는 책만 끼고 살아. 밥 먹듯 책만 읽어. 어렸을 적부터 그랬어.”의 주인공이 결코 아님.
하지만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고는 싶었다. 직장이라는 데를 다니기 시작하고, 그렇게 하고 있는 일이 마뜩치 않고, 이 일이 내 길이 아닌 듯 상당한 이질감이 느껴지는데...... 당장의 수입원 때문에 돈벌이를 하고 있구나 하는 한탄조의 체념에 사로잡힐 때는 책보다 더 나를 위무해 줄 꺼리는 없는거다. 그 때부터 비로소 책 읽는 것을 좋아하게 되었다고 말할 수 있겠지.
그러나 가끔 회의적인 생각도 들었다. 일을 하면서 만났던 사람들(저자) 중엔 그런 사람도 있었다. 책을 좀 그러니까 책깨나 읽었다는 사람들..... 요렇게 조렇게 굴비 엮듯 단어들을 주워 꿰며, 찬탄을 금치 못하게 말 잘하는 사람들....그러나 지식은 산처럼 쌓았지만 그것이 인격으로 연결되지는 않는 부류의 사람들.... 보았다.... 그들은 무릇 책 좀 안 읽은 사람들에게 모욕을 주는 일도 더러 서슴치 않고 범한다. 음, 책을 많이 읽는다는사실 하나만, 부러울 뿐 저렇게 되지는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사람이 살면서 남보다 몇 권의 책을 더 읽는다고 해서, 내 인성이 더 빛나지는 것도 아니고, 책 많이 읽는다고 남들에게 인정받고 자랑할 일도 아닌 듯 하다.
이 즈음에 나를 보면, 양적으로 읽은 책의 가짓수를 높이는 데만 혈안이 되어 있다. 작은 예로 나는 옛날에 읽었던 책을 다시 꺼내 읽는 일을 하지 않는다. 그런 일은 마치 예전에 걸었던 오솔길을 다시 걷는 것과 같다 하던데, 음,,,, 나는 그런 재미를 영 모른다. 시간이 없어서, 라고 말한다. .... 과연 그런가...
책의 내용과는 영 상관없는 이야기들로 말을 풀었다. 이 책을 읽고 있노라니, 책이 주는 정보도 그러하지만, 책을 읽고 리뷰를 쓰는 자세랄까 하는 주변적인 것들에 생각이 흘러간다.
장정일은 참으로 지독하게 많은 책들을 읽었고, 비교적 경직되지 않은 사고의 궤를 보여 주는 통찰력 있는 글쓰기를 하고 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사람은 보수적이기 쉽지 싶다. 예전을 것들과 사고 방식을 고수하고 싶어지는....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데도 한계가 있기 때문일 것이고, 날마다 자신을 새롭게 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우냐의 반증일 것이다. 그러나 이이 장정일은 책에 대한 대단한 탐욕을 통해, 일신우일신을 하는 사람은 아닐까 생각을 해보면서... 그래서 그는 보수적인 것에 머물지 않을 사람인거 같다 라는 좀 오버스런 생각도 해 본다. 사실... <거짓말>과 <너에게 나를 보낸다>라는 영화를 보면서 나는 이 사람을 또 얼마나 깎아 보았던가. 확실히 평가 절하된 인물이다.
주로 외국계 소설 작품에 대해 서평 일기가 많았던 것 같은데, 이런 글은 사실, 아는 만큼 보이고 들린다고, 그닥 잘 읽히지는 않았다. 그런데 재즈나 음악 관련 서적 읽기에 관한 서평은 참으로 쫀득하게 잘 읽혔다. 나는 또한 재즈에는 문외한임에도....
“대신 우리는 음악도 아니면서 음악만큼 아름다운 주제와 변주들을 만난다. 두 구절을 옮겨 적는다. “어떤 사람이 바로 그 사람으로 성장할 확률은 무한대 분의 1, ‘내가 나’일 확률은 무한대 분의 일. 내가 나인 것은 기적 그 자체인 것이다. 그 ‘기적적인 나’ 가 마찬가지로 기적적인 너를 만난다.”
그리고 그의 독서 읽기를 통해서, 읽고 싶은 책들을 꽤 많이 소개 받았다. 그 중에 하나가 앙드레 드리쇼의 <고통>이다.
카뮈가 알제리 대학에서 문과 수업을 받던 때, 그의 스승이었던 쟝 그르니에 교수가 이 소설을 읽어보라고 권했던 일화를 옮긴이의 해설 가운데서 재인용한다.
"쟝 그르니에 교수를 만났다. 그 역시 나에게 책 한 권을 읽어 보라고 내밀었다. 처음 듣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나는 그 한 권의 훌륭한 책을 잊을 수가 없다. 그 책은 내가 경험해서 아는 것들, 즉 어머니라든가 가난이라든가 아름다운 저녁 하늘이라든가 하는 것에 대해 처음으로 나에게 이야기해 준 책이었다. 습관대로 하룻밤 새에 그 책을 다 읽어 치웠다. 다음 날 잠에서 깨었을 때, 낯설고 새로운 자유가 용솟음쳐, 머뭇거리며 미지의 영역으로 다가가기 시작했다. 책으로부터 얻어지는 것이 망각과 위안만이 아니라는 교훈을 터득한 것이다. 나의 집요한 침묵, 지독하지만 정체를 알 수 없는 이 고통, 그리고 기묘한 이 세상, 내 가족들의 그 고결성과 불행. 나만이 알고 있는 비밀 등 이 모든 것이 이야기될 수 있는 것이었다. <고통>이라는 책으로부터 나는 앙드레 지드가 나를 유인한 창작의 세계가 어떠한 것인지를 터득할 수 있었다. 김화영 편 알베르트 까뮈 문학과 지성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