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에 대해서 말할 때 우리들이 하는 이야기
레이몬드 카버 지음, 안종설 옮김 / 집사재 / 1996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카버의 단편 소설들이 나의 마음을 끄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주인공들 대부분이 비전문직 종사자 혹 서민 계층이다.


주인공들 대부분이 다양한 직업군을 이루기는 하지만, 그날 벌어 그날 먹고, 경제적으로 다소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인물들이다. <코끼리>에서는 돈만 빌려달라고 하는 파산 지경의 동생, 이혼한 전부인, 빌어먹을 놈팽이와 결혼한 딸, 혼자 사시는 노모를 둔 중년의 남자가 주인공이다. <비타민>에서는 ‘나’의 아내가 비타민 방문 판매를 힘들여 하고 있고, ‘나’는 병원 잡일을 하면서 술만 마시는 남편이다. <체프의 집>에서 주인공은 알콜 중독인 남편과 별거 상태에 있는 아내. 한 번만 더 기회를 달라는 남편의 애원을 뿌리칠 수가 없어 새로운 애인을 버리고 그에게 향했지만, 결국 집주인의 체프의 어쩔 수 없는 사정으로 희망을 꿈꾸었던 그 집에서 둘은 나오게 된다. 그걸로 끝이다. 

 

둘째, 실패자의 이야기가 있다.


실패자는 카버가 좋아하는 소재인 듯 보이고, 사실 독자인 내가 좋아하는 소재이기도 하다. 실패자들의 이야기 속에 담긴 진실들을 목도하노라며 우리들의 ‘생’ 자체에 대해 전율을 하게 된다. <사사롭지만 도움이 되는 일>에서도 본다면 그렇다.(사실 이 단편은 실패자의 이야기라 할 수는 없을거다.)  우리가 바라보는 인생에서의 행복은 실재하지 않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정말 성실하게 살았던 한 가족에게 어느 날, 닥친 사소한 사고. 그리고 불행. 아이가 살아나기를 바라는 막연하고도 간절한 염원. 하지만 아이는 죽었다.


그러나 ‘행복’이라는 것이 애초에 없었다 해도, 어쨌든 그들은 할 수 있는데 다 했고 갈 수 있는데까지 갔던 것이다. 그리고 그것(제과점 주인을 찾아간 일)은 언젠가는, 정말 사사롭지만 도움이 되는 일이다. 사사롭다고 판단할 수 있는 일은 없다. 그, 그것은 아무도 모른다. 해볼 정도의 가치는 있는 것이다.  

 

단편 <비타민>에 등장하는 인물은 그야말로 완벽한 실패자의 모습이다. <비타민>이 그렇다. 특별히 찢어지게 가난한 것도 아니다. 인생의 패잔병도 아니다. 단지 그들은 미래에 대한 희망이라는 것을 갖고 있지 않다. 그들은 자신들이 예전부터 그리고 있던 인생과는 전혀 다른 인생 속에 갇혀서 빠져 나올 수 없는 것이다. 그것이 실패자이다. 모두가 마을을 나와 어딘가 다른 곳으로 가서, 다른 인생을 살아보고 싶어한다. 딱이 어디에 무엇이 있는 것도 아니다.

 

 

내가 꼽은 카버의 문장

“누군가가 누군가를 상처입히고 싶지 않다고 하면서 결국은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책 뒤, 하루키의 서평 중에 문장

“완벽한 사랑은 없다. 그러나 사람은 그 막연하게 가설의 온기를 안고 살아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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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살이 2004-08-31 10: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밤 11시 퇴근길. 터벅터벅 거의 무아지경으로 남산을 넘어갑니다. 문득 눈 앞에 보름달에 가까운 밝은 달이 쳐다보고 있는 것을 알아챕니다. 엊그제 본 외가집 하늘위의 총총한 별들은 없지만 오직 달만이 홀로 지켜보고 있는 것이 고즈넉하니 가슴을 적십니다. 아~이럴 때 행복하다고 생각해보자 라고 머릿속에 암시를 하며 걷습니다. 걷는 느낌이 달라지더군요. <가설의 온기>...어렴풋이 그것이 무엇인지 알것도 같습니다.

hanicare 2004-08-31 10: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카버.기분이 저조할 때 읽으면 안되는 작가입니다.네버~.
그렇지만 정말 기막힌 작가이기도 하지요.저는 대성당을 읽었을 때의 전율이 생각납니다.재료자체와 소금만으로 요리한 기막힌 음식의 맛처럼, 기름기와 치장을 걷어낸 언어만으로 승부하는 단편의 최고봉이라고 생각하지요.

내가없는 이 안 2004-08-31 10: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도 실패라는 화두를 좋아하시는군요. ^^ 복순이언니님, 자꾸 이런 책 들이대시면 어떡합니까. 너무 읽고 싶잖아요. ^^

stella.K 2004-08-31 11: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래 전에 이 책 읽었었는데, 무척 지루하고 따분하다는 기억 밖엔...전 이상하게 미국문학이 좀 안 맞드라구요. 못 쓴 작품도 아니면서...^^

2004-08-31 20: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icaru 2004-08-31 16: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하루살이 님...
생활 반경에 ‘남산’이 들어가는 분이 젤로 부럽습니다!!!
얼핏이라도 ‘남산’ 근처가 나오는 영화도 좋구요...미술관 옆 동물원처럼요...
헉...삼천포로 빠졌네요....
일시적인 위안거리로 연명을 하듯 살아가는 게...삶이 아닌가 라는 생각을 문득하지요...
(너무 꿀꿀한 멘튼가?)
설령 가설의 온기일지라도 그 온기를 품을 줄 아는 삶은 현명한 걸꺼라 여겨집니다...!!
님...내내 행복하십셔~!

하니케어 님....
흐흐...전 얼른 숏컷이 읽고 싶습니다. 사실...이 책을 찾아 읽게 된 것은 하루키 때문이에요.. 적잖은 영향을 받았노라고 하두 강조를 해대서리....님의 말씀처럼.... 이 책을 읽는 내내... 내 시선과 뇌파를 통과하는 모든 것들이 죄다 비관적으로 여겨지는 현상을 겪긴 했지마는.... 입맛에는 제법 맞더라...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사실 읽기 전에는 약간의 우려도 한 게 사실이거든요.... 레이몬드 카버가 나에게 안 맞을수도 있겠다. 일테면...로멩가리의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라는 소설집에 크게 감응할 수 없었던 것처럼요. 재료 자체와 소금만으로 요리한 기막힌 음식의 맛처럼, 기름기와 치장을 걷어낸 언어만으로 승부하는 단편의 최고봉이라고요! 정말 그런 것 같습니다.

이안 님~!
꼭 읽으십시요......! 리뷰 기다릴께요...

스텔라 님...!
그러게요...레이몬드는 카버는 폴 오스터나 그밖의 작가들처럼 스토리 작가는 아닌 듯 하지요... 전개, 위기, 절정, 대단원...모....이런 걸 따라 읽는 재미가 덜해서이지 않을까...


2004-08-31 20: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4-09-02 16:00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