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라는 이상한 직업
장강명 지음 / 유유히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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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일을 직업으로 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자기가 좋아하는 일이거나 자기가 잘 할 수 있는 일이면 좋겠고, 생계 유지에 필요한 수입을 창출할 수 있는 일이어야 한다. 저자는 왜 제목에 소설가라는 '이상한' 직업이라고 했을까. 아마도 소설쓰는 일을 직업으로 한다는 것은 다른 일에 종사하는 것과 어딘가 다를것이라는 일반 사람들의 선입견때문일텐데 사람들은 소설가라고 하면 직종의 한 명칭이라기 보다 예술 활동 자체를 먼저 떠올리기 때문이다.

자기 직업은 자기가 선택했음에도 직업을 소개할때 좋은 점보다는 열악한 작업 환경, 고충, 과로를 먼저 얘기하는 경우를 많이 본다. 없는 얘기를 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듣는 사람은 안타깝다. 저 일이 한시적으로 하는 일이 아니라 직업으로서 매일 해야하는 일이라니 하루 하루가 얼마나 고달플까, 그 사람이 별로 행복해보이지 않게 된다.

다행히 장강명 작가의 이력을 보면 그가 어쩌다 떠밀려 소설을 쓰게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대번 알게 되긴 하지만 그래야 했던 사람이라는 것을 이 책을 읽으며 더 확인하게 되었다. 

그가 말하는 소설가라는 직업이 자기에게 매력있는 직업인 이유는 (이전 직장인 신문사, 건설사와 비교해서), 

첫째, 주체적으로 일하고, 일의 주인이 나이다. 

둘째, '내 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결과물을 생산한다. 

세째, 내가 만드는 생산물이 단순한 소비재 이상이다. 삶의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일이다.

그가 물론 이렇게 첫째, 둘째, 세째 하며 쓰진 않았지만 요약해보면 그렇다. 소설가에게 소설 쓰는 일이 그렇다면 독자 역시 지금 나의 직업을 대응해서 생각해볼 수도 있는 사항이 아닌가 싶다. 

한편, 그는 왜 소설 쓰는 일이 엄연한 하나의 직업임을, 굳이 연재까지 해가며 (이 책은 채널예스에 연재했던 글 모음집이다) 집중 설명해야했을까. 소설 쓰는 일을 다른 직업과 병행하여 하는 작가들도 있지만 장강명 작가 자신은 소설쓰는 일을 전업으로 하고 있고 소위 괜찮은 직장에 사표내고 나와 오로지 글만 쓰고 있다는 것에 대해 '이상하게' 볼 수 있는 사회적 시선을 의식한 것도 조금은 작용했지 않을까 싶다. 다른 사람에게 보이기 위한 글이기도 하지만 자신의 자리를 단단히 다져보는 기회로 삼고 싶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벌써 오래 전 일이다. 정이현 작가가 진행하는 팟캐스트를 듣던 중 신인작가 소개를 하는 시간에 장강명 작가의 <열광금지, 에바로드>라는, 생소한 작가의 생소한 제목의 소설을 소개하면서 앞으로 활약이 매우 기대되는 소설가라고 극찬하던 때부터 이 작가에게 관심이 있었다. 2011년 작가로 데뷔한 것에 비해 부지런히 소설을 발표해오고 있고 에세이, 논픽션 디양한 분야의 책을 출간하였다. 사회 고발적인 성격의 글이 많은 것에 대해 그가 기자 출신이라는 배경을 들기도 하는데, 그가 낸 책들의 제목들을 보거나 <월급사실주의>라는 특이한 제목의 동인 문인 그룹을 만들어 활동하는 것을 봐도 그가 지향하는 바와 개성이 엿보인다. 

본인은 앞에 나가 얘기하는데 재주가 없다고 했으나 들어오는 제안을 거절하는 것도 잘 하진 않는 듯, 여러 매체를 통해 자기 역할을 하는데 몸을 사리지 않는 것 같다. 최근 나름 큰 포부를 가지고 장편소설을 냈고 ("재수사 1, 2") 기대를 많이 하고 있는 것 같은데, 읽어벌까 생각중이다.

자기 일을 사랑하는 사람의 목소리를 듣거나 글을 읽는 것은 듣고 읽는 사람도 즐겁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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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에 이름 붙이기 - 보이지 않던 세계가 보이기 시작할 때
캐럴 계숙 윤 지음, 정지인 옮김 / 윌북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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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재미있는 책일지 상상도 못했다. 분류학이라면 요즘도 분류학 하는 사람이 있나 싶을 정도로 생물학 중에서도 가장 오래되고 인기 없고 사람들 관심에서 멀어져가는 분야이기 때문이다. 거기다가 두툼하기 까지 하여 과연 이 책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읽힐까 싶었는데, 읽기 시작하고 바로 책 속에 빠져들어 다른 책에 한 눈 팔새 없이 읽어버렸다.

분류학이라는 그 고리타분하고 졸린 이야기를 이 저자는 과연 대중들의 관심을 끌 정도로 '가볍게' 썼는가 하면 그게 전혀 아니었다. 전문적인 내용을 이렇게 설득력 있게 쓰는 사람이 제일 부럽다. 그것은 어떤 분야의 가장 밑바닥 기초부터 첨단까지 아주 잘 알고 있는 사람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분류학이 생물학의 한 분야가 되기에 앞서 인간은 생물이든 무생물이든 새로운 대상들을 접할때 그것을 특징에 따라 구분하면서 하나의 개별적인 존재로 인식하려는 본성이 있어왔다. 이것은 과학, 비과학을 넘어서 인간 특유의 본성이고, 생명의 세계에 질서를 부여하고자 하는 인간 특유의 시각이다. 이것을 움벨트 (umwelt) 라고 하고 이 책에서 아마 가장 빈번하게 등장하는 용어가 될 것이다. 린나이우스 (학교 다닐때 '린네'라고 발음했는데 이 책에서는 린나이우스라고 나온다)에 의해 처음 체계적인 생물의 명명법이 제정될때에도 알게 모르게 가장 기본이 된 것은 이 움벨트에 의한 것이었다. 움벨트를 이후에 나오는 수리학적 분자생물학적 분류 방법과 너무 대척에 놓고 생각하면 안되는 것이, 생물에 이름을 붙이고 비슷한 것끼리 무리짓는 작업은 수리학적 방법이나 분자생물학적 방법이 도입되기 훨씬 이전부터 인간이 행해오던 것이기 때문이고 적어도 부족, 민족에 따라 공통된 방법이 통용되기 까지 그 나름대로의 근거를 가지고 분류되고 이름지어졌기 때문이다. 단지, 그 근거에는 모두 객관적인 근거가 아닌 주관적이고 인간 위주의 시각이 포함되었고 그것은 나중에 밝혀진 바에 의하면 한 생물의 진화상 위치를 실제와 아주 다른 단계에 가져다놓기도 했다. 그렇지만 움벨트가 관여한 명명, 분류 체계에는 인간과 다른 생명체 사이의 '관심'이 있고 '관계'가 있었기 때문에, 분류학자이든 아니든, 생물학자이든 아니든, 인간 모두에게 다른 생명체 사이의 유대관계가 연루되어 있었다.

다윈에 의한 진화론이 체계화되고 받아들여지면서, 그리고 이후 수리분류학자들에 의해 각 형질이 공평하게 같은 기여도를 가지고 생물의 특징을 결정하는 수치로 환산되어 분류의 기준이 되면서, 더 근래 DNA 정보가 빼도빡도 못하는 확실한 분류의 기준으로 제시되면서 과거의 분류학은 도전을 받고, 극단적으로 우리가 물고기라고 분류하던 무리는 존재하지 않는 결과까지 오게 되었다.

사람들에게 이제 분류와 명명은 전문가에 의해 이루어지는 작업이고 결과가 되었으며, 그게 어떻게 되든 관심을 두지 않는 쪽으로 가고 있어서 생명에 대한 인식은 사라지고 오직 우리 인간들의 삶과 소비, 편리함에만 집중하는 안타까운 현실이 되어 가고 있다. 움벨트가 현대 과학으로 대치되는 상황은 정확한 학문이라는 목적에서 받아들일 수 밖에 없는 사실이지만, 인류의 역사와 함께 오랫동안 다른 생명체를 바라보던 우리의 가치관과 존중의식, 연대감을 이렇게 내치는 것은 우리 인간들을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않음을 저자는 이 책에서 말하고 있다.


대중에게 일반적인 주제가 아닐 수도 있는 한 분야를, 이렇게 매혹적으로 설득력있게, 그리고 내용에 충실하게 한 권의 책으로 낼 수 있는 저자의 능력에 별 다섯개도 모자라다는 느낌이다. 생물학을 전공한 사람의 입장에서도 이 오래되고 케케묵은 분야로 여겨지던, 그래서 학교 다닐 때 가장 지루하게 듣던 수업 중 하나이던 분류학이란 분야의 의미과 방향에 대해 다시 생각하고 새겨볼 수 있는 귀중한 기회가 되었다. 특징짓고 분류하는 것은 인간만이 가지는 능력이고 그것은 인류의 역사와 함께 시작되었다. 그리고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그 방법이 더 과학적이고 정확해지면서 다른 생명체에 대한 인간의 의식은 더 멀어져간다는 이 아이러니가 안타까운 정도를 넘어서려고 한다.


너무나 많은 곳에 밑줄을 치고 읽었기 때문에 그중 몇개만 인용해서 옮겨 놓는 것을 차라리 하지 않는다. 그래도 아쉬워 책을 반납하기전 제일 명문이라 생각한 한 단락을 남겨두어야겠다.


생명은 모든 곳에서 끈질기게 버티고, 존재하고, 침입하고, 발산하고, 살금살금 다니고, 튀어나온다. 그리고 움벨트는 (우리가 가격표와 상표가 붙은 물건들에서 벗어나기만 한다면) 마음껏 쓸 수 있으며, 생명의 세계에 대한 움벨트의 전체적이고 풍성한 시각을 한껏 흡수할 수 있는 우리의 것이다. 우리가 구찌와 베르사체에서, 맥과 피씨에서, 에디 바우어와 바나나 리퍼블릭, 허머와 포드와 폭스바겐에서 벗어나 생명있는 존재들에게 돌아가려면 약간의 재훈련은 필요할 것이다. 아기들에게 더 잘 가르칠 수 있을 만큼 우리가 먼저 충분히 배워야겠지만, 희망은 영원히 솟아나며 또 그래야 한다. 한결같이 어서 생명의 세계를 이해하고 그 세계의 굶주린 움벨트의 허기를 채워주고 싶어 하는 작은 사람이 새로 한 명씩 태어날 때마다 우리에게는 또 한 번의 기회가, 생물에 대해 열렬히 배우고자 하는 또 한 명의 존재가 생겨난다. (393)


마지막 챕터의 제목이 "과학을 넘어"이다. 과학을 이해하는 사람은, 과학 너머의 세계가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정통적인 분류학의 거장으로 이 책에 자주 등장하는 Ernst Mayr의 책이 집에도 있기에 같이 올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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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3-12-14 17: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자연에 이름 붙이기,를 만족스럽게 읽으셨군요. 그럴 때 기분 좋지요.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를 오디오북으로 가지고 있어요. 들어봐야겠습니다.^^

hnine 2023-12-15 07:39   좋아요 1 | URL
네, 올해 좋은책들을 여럿 읽었지만 이책도 그중 기억에 오래 남을 책이 될것 같습니다. 생명을 연구하는 일에 종사하는 사람도 생명의 본질이나 본성을 잊고 있을수 있거든요. 분류학의 의미와 의의에 대해 이렇게 설득력있게 글을 쓸수있다는데 감탄하게 됩니다. 과학적 글쓰기의 좋은 표본이 되는것 같아요. 저자가 워낙 오래 과학저널리스트로 일하고 있기때문이기도 하고요.
 
방구석 일기도 에세이가 될 수 있습니다 - 끌리는 이야기를 만드는 글쓰기 기술
도제희 지음 / 더퀘스트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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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는 일기장에'라는 말이 있다. 사사로운 개인적 이야기라면 혼자 보는 일기장에나 쓸것이지 여러 사람들이 보는 자리에 굳이 쓸 것 없다는 뜻에서 하는 말이다. 요즘 처럼 하루 일상을 SNS를 통해 수시로 올리는 시대엔 어쩐지 격세지감이 느껴지기도 하는 말이다.

알라딘 서재라는 글쓰기 공간에서도 어느 글은 그저 소소한 일상의 얘기라고 생각이 드는가 하면 어떤 글은 한편의 에세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 차이는 무엇일까. 

- 일상의 기록에 더하여 그것을 통해 쓴 사람의 통찰이나 깨닫게 된 것, 새로이 발견한 것 등이 들어가야 한다.

- 혼자만의 느낌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대중적인 공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어야 한다. 

내가 평소에 생각한 것은 이 두가지 정도였다.

이 책의 저자는 <난데없이 도스트예프스키>라는 자기 책을 내기도 했고 그 이전에 오랫동안 편집자로 일해온 사람이니 더 정확하고 확실하게 짚어주리라 기대하며 읽어보았다.

에세이를 한마디로 말하자면 일상에서 겪는 평범한 순간을 포착해 보편적인 삶의 의미를 끌어내는 글이라고 하였다. 사실 이 문장 중에 에세이로서 갖춰야 할 중요한 점이 들어가 있다고 보인다. 평범한 순간 포착에서 마치는 글이 아니라 거기서 보편적인 삶의 의미를 끌어낼 수 있을 때 에세이가 되는 것이다.

나의 이야기로 보편성공감대를 형성하는 과정, 그것이 에세이 쓰기 입니다. (33)

자기만의 관점을 끌어내어 글에 깊이를 더하기 위한 가장 손쉬운 방법으로 저자는 평범한 생각에 이의를 제기해보는 것을 제안했다. 유머를 더할 수 있으면 더할 수 없이 좋으나 웃기지 않아도 되는 글과 웃기면 좋은 글의 차이를 먼저 염두에 두어야 함을 짚어주었고, 비유를 적절히 사용하되 읽는 사람이 '무슨 말이야?'를 유발하지 않는 논리의 흐름이 있어야 한다고 하였다.

일기와 다르게 에세이에는 제목이 있는게 보통인데 책으로 만들어져 나올때 제목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말할 필요가 없어서 결국 모든 길을 제목으로 통한다고 했다. 

저자는 매번 다른 예를 들며 설명하기보다 책 처음에 제시한 짧은 글 한편을 가지고 책이 끝날때까지 여러 번 고쳐가는 과정을 직접 보여주며 어떻게 에세이가 되어 가는지, 어떻게 더 좋은 에세이가 되어 가는지 설명한 점이 돋보인다. 

글은 감성과 느낌으로만 쓰는 것이 아니라 논리의 뒷받침, 꼼꼼한 다듬질이 필수적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주었다. 특히 다른 사람이 읽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글이라면 더욱 그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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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한다면 스페인 - 뜨겁고 강렬한 첫 키스 같은 그곳 사랑한다면 시리즈
최미선 지음, 신석교 사진 / 북로그컴퍼니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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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에 관한 책은 너무나 많지만, 그리고 여행서는 이미 몇권 구입하기도 했지만, 이 책은 우선 저자 이름을 보고 고르게 되었다. 기자 출신 아내는 주로 글을 쓰고 사진 기자 출신 남편은 사진을 찍는 부부이고 도보여행가로 유명한 황안나 님의 아들과 며느리이기도 하다.

목차를 둘러보니 단순히 여행정보에 관한 내용에 더해서 스페인 역사적 배경 설명이 비교적 충실하고 쉽게 되어 있었다. 아무리 유명한 장소를 가본들 그곳이 왜 꼭 가봐야 하는 곳이라고 하는지 이해가 안되면 뭐할까. 그러려면 그곳의 역사를 모르고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면적만 우리 나라의 다섯 배 되는 큰 나라이지만 몇년만에 가봐도 크게 달라진 게 없는 인상을 받았다는 것은 우리 나라와 다른 점인 것 같다. 

바르셀로나 in, 마드리드out의 일정으로 세고비아, 톨레도, 콘수에그라, 세비야, 론다, 그라나다를 거쳤다. 

바르셀로나는 스스로 스페인이 아니라고 주장할 정도로, 자치성을 주장하는 지역 카탈로니아에 위치하고 있으며 스페인 여행을 한다면 단 며칠을 가더라도 반드시 거쳐가는 곳이다. 명소를 따라다니다 보면 가우디의 업적을 따라다니게 될 정도로 천재건축가의 상징이 되기도 하는 곳. 가우디의 일생에 대해 자세한 설명을 해놓았다. 

마드리드는 현재 스페인의 수도이면서 바르셀로나와 경쟁이 되기도 하는 도시이다. 세계 3대 미술관중 하나인 프라도 미술관을 비롯하여 성당, 광장, 왕궁 마다 스페인의 역사 배경을 알고 가야할 곳들이 많다. 읽다가 줄기를 놓쳐버리기 일쑤인 스페인 왕조에 대해 이해하기 쉽게 설명해놓아 도움이 되었다. 스페인에 다종교의 유적이 남아있게 된 배경에 대해서도 잘 정리해놓았다.

중세도시 세고비아는 나도 그랬듯이 '세고비아 기타'라는 상표를 먼저 떠올리게 하는 곳이지만 실제로 기타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곳이라고 해서 비로소 궁금증이 해소되었다.

마드리드 이전에 스페인의 수도였던 톨레도는 지금도 스페인의 정신적 수도 역할을 한다고 한다. 지도도 소용없는 좁은 골목길들이 미로같이 이어져 있는 곳이니 길을 잃을 각오를 하고 즐기란다. 톨레도 대성당은 성당이면서 박물관이라고 할만큼 유물을 많이 가지고 있다니 꼭 보고 와야겠다. 

절벽에 세워진 도시 론다에 대한 부분에서는 이곳에 머물렀던 헤밍웨이의 생애와 인간성, 작품 배경까지, 앞에서 콘수에그라 편에서 돈키호테의 문학적 의미에 대해 여러 페이지를 할애하며 설명해놓은 것처럼 의외의 배경 지식을 보탤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보통 여행관련 책에서 보기 드문 내용이다.

스페인의 마지막 이슬람 왕국 그라나다에선 역시 알람브라 궁전. 그곳이 어떻게 세워졌고 어떤 왕들이 거쳐갔으며 어떤 구조로 되어 있는지를 담고 있다.

아마도 스페인 여행 기간 보다 훨씬 더 오랜 기간을 이 책을 쓰기 위해 보냈겠구나 짐작하게 할 정도로 꼼꼼한 스페인 여행에 뒷받침이 되는 내용들이어서 만족스러웠다. 단, 별점 하나를 뺀 이유는, 책 속에 사진이 많이 실려있음에도 불구하고 사진 설명이 전혀 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최소한 장소 이름이라도 달려 있으면 좋을 뻔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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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3-12-06 09: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녀왔지만 읽고 싶네요.^^

hnine 2023-12-06 09:29   좋아요 2 | URL
여행은 가기 전에도 준비를 하지만 다녀온 후엔 알고 싶은게 더 많아져서 더 알고 싶고 더 읽고 싶은게 생기더라고요.

stella.K 2023-12-06 10: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페인 여행 가시나 봐요. 몇년 전 영국 다녀 오셨잖아요.
이번에도 혼자 가시나요? 암튼 부럽네요.
스페인 여행을 한다면 이 책을 읽어야겠군요!^^

hnine 2023-12-06 11:28   좋아요 2 | URL
저 영국 다녀온 걸 아직 기억해주시고...감동입니다.
스페인은 내년 2월에 가요. 이번엔 남편과 둘이요. 결혼 25주년 기념이라는 명분이랍니다.

2023-12-06 11: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hnine 2023-12-06 11:31   좋아요 1 | URL
몇달 전부터 일정 잡고 예약 하느라고 조사 조사...마치 다녀온 것 같은 느낌이 들려고 해요.
저는 Bilbao in, Barcelona out 이랍니다.
저 혼자면 아무때나 가도 되는데 남편과 가려니 한여름이나 한겨울 밖에 안되네요. 내년 2월에 가요. 18박 19일.

2023-12-06 12: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12-06 16: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아버지의 유산
필립 로스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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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브리맨>의 작가 필립 로스의 <아버지의 유산>은 소설이 아니다. 그러나 누군가의 죽음이라는 소재는 다르지 않다. 

그는 또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구나. 이번엔 그의 아버지가 죽기까지의 과정을 쓴, 소설이 아닌 실제 이야기이다. 

묵직하고 절제된 묘사 방식으로 인해 소설 <에브리맨>을 소설이 아닌 느낌으로 읽었던 기억이 있는데, 소설이 아닌 이 책도 소설과 톤이 크게 다르지 않아 이번엔 마치 소설을 읽고 있다는 착각이 들기도 했다. 원제는 patrimony. 


부모의 죽음, 부모가 죽어가는 과정을 옆에서 지켜본다는 것은 다른 어떤 것으로도 대치하지 못할 특별한 경험이고, 이후 삶에 영향을 미친다. 한때 그의 몸을 빌어 세상에 나왔고 그의 손에 의해 길러졌으며 그의 말과 행동이 나의 세상을 열어나가는 안내서 역할을 해왔던 그 존재가 이 세상에서 사라지는 과정을 지켜보는 일은 참담하고 허무하다.

'유산'이란, 물질적인 것을 뜻하는 것 같지만 그것은 유산의 일부일 뿐, 그보다 더 결정적이고 중요한, 피할 수 없는 정신적인 것들까지 포함한다는 것을 나 자신도 경험해보고 알았다. 필립 로스도 아버지의 유산이라는 말을 그런 의미로 썼을 것이다. 이 책의 마지막 문장이 "어떤 것도 잊지 말아야 한다." 인 것을 봐도.

그는 이 책에서 아버지의 아버지 이야기를 하고, 아버지가 자라온 이야기를 하고, 그가 어떤 남편이고 아버지였는지 이야기한다. 그가 얼마나 고집스럽고 원리원칙주의자였는지. 어머니에겐 다정한 남편이라기 보다 불친절한 독불장군 같았으며 그의 강박적 고집스러움은 어머니를 말년에 신경쇠약으로 몰아갈 뻔 하기도 했다. 조금이라도 허투로 돈을 소비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고 집안의 청결은 더 이상 강조될 수 없을 정도였다. 한편 아버지는 말단 보험회사 직원으로 출발하였지만 누구도 따를 수 없는 근면 성실과 철두철미한 직업 정신은 그를 지점책임자의 위치에 올려놓기 까지 했다. 그런 경력은 아버지로 하여금 평생 완벽한 모범가장이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살게 했다. 

그렇게 철옹성 같던 아버지가 어머니가 먼저 세상을 뜨고 혼자가 되자, 어떤 공동시설에도 가는 것을 거부하고 잘 먹지도 않으며 하루 종일 울고 있는 날이 늘었다. 필립 로스와 그의 형은 자주 아버지를 방문하고 안부를 살피며 아버지에게 필요한 조언을 해주지만 말을 잘 듣는 아버지가 아니었다.

오른쪽 눈의 시력 이상, 안면신경마비, 청력 이상의 증상으로 찾은 병원에서 아버지에게 내린 진단은 뇌에 대형 종양이 있다는 것이었다. 수술로 회복되리란 보장이 없어 병원에서도 크게 권하지 않는 단계였고 다른 치료법이 없는 상태라서 그래도 수술을 해봐야하는지 확인해보기 위해 뇌에 큰 바늘을 넣어 조직을 떼어내야 하는 검사 과정조차 나이든 아버지에게는 반죽음같은 소모적인 과정이었다. 수술을 하느냐 하지 않느냐의 선택, 어느 선까지 수술을 하느냐, 어느 지점까지 인위적 생명 연장 장치를 유지하느냐 등, 죽는 과정은 결코 조용한 이별의 과정이 아니었다. 그런 결정의 과정도, 환자 본인의 죽어가는 생리적 과정 자체도 끊임없는 '일'이었고 죽는 이는 '일꾼'이더라고 썼다. 

나는 아버지가 호흡 유지 장치를 달고 생명을 유지할 수 있다 해도 반드시 다가올 수 밖에 없는 비참한 상황을 상기했다. 나는 그 모든 것, 모든 것을 보면서도 한참을 그렇게 앉아 있을 수 밖에 없었다. 그러다 나는 최대한 아버지한테 가까이 몸을 기울이고 아버지의 움푹 파이고 망가진 얼굴에 내 입술을 갖다 대고 간신히 힘을 내 마침내 속삭일 수 있었다. 

"아버지, 보내드릴 수 밖에 없겠어요."

아버지는 몇 시간째 의식을 잃고 있어 내 말을 들을 수 없었지만 나는 스스로 충격을 받고 놀라고 울면서 다시 또다시 나 자신이 그 말을 믿을 때까지 아버지한테 그 말을 되풀이할 수 밖에 없었다. (278) 

아버지가 죽어가는 과정에서 필립 자신도 심장 바이패스 수술을 받는 경험을 함으로써 아버지의 입장을 더 절실하게 받아들이는 계기가 된다. 아버지에게 알리지 않고 수술을 받았고 나중에 그것을 알게 된 아버지는 그때 아들의 병실에 자기가 있어줬어야 한다며 아들을 나무랜다. 


읽기는 금방 읽었는데 읽고 나서 울적한 기분은 오래 갔다. 이 책을 읽은 많은 사람이 그러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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