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을 엄마에 못 미치는 딸 이라고 하는 것이 더 맞을지도 모르겠다.
며칠 전 엄마께서 같이 일본어 공부하는 친구 분들과 4박 5일로 일본 여행 가려고 하는 것을 아빠께서 허락 안 하신 것에 대해 화가 나셔서 나에게 말씀하셨다. 어쩌면 그러실 수가 있냐고. 어디 여행도 따로 못가고 매여 지내는 것 알면 엄마가 안 가겠다고 해도 다녀오라고 해야지 가지 말라고 하다니 아빠가 너무 하시다는 것이다.
"엄마, 아빠가 건강이 안 좋으시니까 그러는 거지. 다른 병이랑 틀려서 심장과 관련된 병은, 예고 없이 갑작스럽게 치명적인 사고가 생길 수 있기 때문에 혼자 있을 때 그런 일이 만에 하나 생기면 속수 무책일 수가 있거든. 아빠가 그런게 불안해서 엄마 안 갔으면 하시는거지 뭐 아빠가 그런거 아니면 못가게 하실 분이야..." 그래도 엄마는 아빠가 너무하시단다. 사실, 평상시에도 엄마는 집에 계시는 날이 며칠 안 된다. 44년 다니시던 직장을 정년 퇴직하신 몇 년 전부터 지금까지, 끊임없이 뭔가를 배우러 다니시고, 친구분들과 작은 약속이라도 만들어 외출하시고, 근교에서 농장을 하시는 친구분 댁에 가서 농사 일도 도와주시고 주무시고 오시기도 하고, 우리 어릴때 등산이 취미셨으므로 국내 안 다녀보신 곳이 별로 없는데도, 친구분들과 여기 저기 구경도 많이 다니신다. 그런 엄마가 본인의 생활을 '매여지낸다'고 하시니, 아마 엄마의 에너지는 나의 에너지보다 훨씬 더 많음에 틀림없다.
엄마께서 사회 활동에 저리도 열심이신 반면, 나는 직장에서 회식하면서도 그 자리를 즐기는 것이 아니라 쓸데 없이 잘 있는 식구들 생각하고 앉아있다. '지금 남편이랑 아이는 뭘 먹고 있을까. 엄마는, 아빠는 이런 것 드셔 보셨을까? (나중에 여쭤 보면 벌써 예전에 다 드셔보셨다고 ^ ^) 이거 빨리 끝나고 집에 갔으면 좋겠네...' 참, 내가 생각해도 한심하고 바보 같은 나.
직장에서 엄마에게 맡겨진 일을 완수하기 위해선, 가정의 일은 잠시 접어둘 줄 아셨던 우리 엄마. 내가 아이 가졌을떄, 낳기도 전에 엄마께서 내게 당부하신 말씀, "너, 절대 직장에서 네 책상에 아이 사진 갖다 놓는다거나 하는 짓 하지 말아라. 직장에서도 아이 생각만 하고 있다는 인상을 주니까. 그리고 직장에선 직장에서 할 일에 열중해야지." 다른 사람이 아닌 우리 엄마에게서 듣는 그 말이 나는 웬지 서운하기부터 했지만, 한편 그래 저 정도 마인드가 되어야 일하는 여성이라고 할 수 있지 하는 생각도 들었다.
'난 아직도 커피 맛있게 탈 줄 몰라.' 하시며, 지금도 식사후 아빠로 하여금 커피를 타서 엄마께 갖다 드리는 '대접'을 받으실 수 있는 우리 엄마. TV에서 드라마보다는 뉴스나 토론 프로그램을 더 열심히 시청하시고, 신문을 열심히 읽으셔서, 정치, 시사, 사회 문제 등은 나나 남편보다 엄마께서 훨씬 더 잘 알고 계셔서 궁금한건 일단 엄마에게 묻는 것이 빠르다. 직업에서 생긴 습관이신지 뭐 한가지 여쭤 보면, 얼마나 상세하게 설명을 해주시는지, 도저히 이해가 안되곤 못배기게 설명을 해주신다 ( 시간 없을땐 이것이 오히려 문제가 되기도 하지만 ^ ^ ). 나는 내가 관심이 가는 몇 가지를 제외하곤 세상 돌아가는 전반적인 일을 알고 싶지도 않고 알려고도 하지 않는데 말이다.
지금 우리 엄마 나이 68세. 몸이 나보다 더 빠르시고, 일을 미루는 법이 없으시다. 지금까지 살찔까봐 걱정하시는 걸 본적이 없다. 오히려 적정 체중보다 내려갈까봐 주의하시는 편이랄까. 내가 결혼하기 전엔 엄마와 거의 모든 옷을 같이 입었을 정도니까.
사소한 문제 가지고는 싸우지도 말고, 혹 부부싸움을 하게 되거든 막연하게 감정적으로 목소리만 높일게 아니라, 종이에 조목 조목 메모를 미리 하여 조리있게 말을 전달하라는 우리 엄마.
여러 가지로 모자라는 딸이다.
하지만 엄마, 나도 나름대로 잘 하는 것도 있어요~ 아이가 울면 우선 껴안고 달래준다던지, 아이가 하는 말이 끝날때까지 꾹 참고 다 들어준다든지, 잘 때 아이랑 껴안고 함께 잠 드는 거라든지 (난 나중에 다시 일어날지언정)...뭐 그런거는 엄마보다는 제가 쪼금 더 잘 하는것 같은데요?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