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생 톡톡톡 - 우리들의 솔직 담백 유쾌한 이야기
유현승 엮음 / 뜨인돌 / 2011년 2월
평점 :
절판


제목의 톡톡톡은 말하다라는 뜻의 영어 talk에서 가져왔지만 톡톡 튀는 세대, 아니 톡톡 튀고 싶은 세대의 이야기를 담고 있음을 의미할 수도 있다.
이 책을 기획하고 엮은 유현승 님은 서울의 한 여자 중학교 국어 선생님. 참여한 학생들은 그 학교의 2학년 학생들이다. 저자와 함께 독서 나눈 프로그램에 참여한 학생들에게 어떤 주제가 주어지면 그 주제에 대해 자유롭게 자기 생각을 쓰고 말하며 생각의 폭을 넓히고 소통하는 기술을 배워간다. 아마 선생님은 아이들로 하여금 독서 치료의 효과가 있을만한 주제를 고심해서 정했으리라. 아이들이 풀어내지 못한 상처, 자랑하고 싶거나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 나누고 싶은 고민이나 걱정 등을 읽고 쓰고 나누는 과정을 통해 털어놓게 하고 싶었다는 이 선생님은 처음에는 신청자를 받아 방과 후에 진행하다가, 2년 후부터는 국어 수업 시간에도 진행을 하였고 나중엔 학년 전체가 참여하는 수업으로 확대해나갔다고 한다. 
하고 싶은 것이 많고 기대하는 것, 자아 의식도 강한 것에 비해 우리가 미성년이라고 부르는, 아직은 자기 맘대로 할 수 있는 것이 많이 제약되는 시기이기 때문에 억눌리고 우울한 내용의 글들이 많지 않을까 예상했었는데 그렇게 미리 생각을 하고 읽어서일까, 글 속에 나타나 있는 이들의 모습은 생각보다 꿋꿋하고 싱그러웠다. 물론 그렇지 않은 글도 있었지만 대체로 그들은 되고 싶은 것이 있고 먹고 싶고 만나고 싶고 가고 싶은 곳이 있는, 즉 앞으로 하고 싶은 것들이 한 보따리씩은 가슴에 지니고 있고 그것을 이룰 미래가 있는 이들이었다.
글쓰기의 주제로 주어진 것을은 나의 도전, 친구, 부모 등과의 갈등, 기쁘고 슬프고 후회되는 일, 나의 실수, 서로 나눔을 주고 받은 기억, 사랑에 대한 나의 생각 등이 나와 있다.
자기의 생일을 잊고 지나간 아빠에 대해 무척 실망을 했지만 결국은 '쿨하게 생각하기로 했다. 아빠께서 바빠서 그랬을 거라고' 이해하려는 마음, 부모님이 서로 의견이 안 맞아 부부 싸움을 할때 정말 참을 수 없는 고통이 생긴다는 글을 읽기 전. 부모의 싸움에 물론 마음이 좋을리야 없지만 그것이 '참을 수 없을 정도의' 고통이라는 것은 알지 못했다. 성적이 떨어져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하다가도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 싹 다 잊어버리고 다시 행복해지는 것 같다는 귀여운 글도 있다. 가족들이든 오랜만에 모인 친척들이든 온통 성적에 관심이 집중되는 때에 공부보다도 건강을 꼭 챙기라는 외할머니의 말씀이 제일 격려가 되고 힘이 되었다는 글, 시(詩)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그것을 읽는 재미가 얼마나 큰 것인지 쓴 글도 있다. 앞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시를 통해 우리말의 아름다움을 일깨워주고 싶다는 이 학생, 나중에 시인의 꿈을 꼭 이루었으면 좋겠다. 미술을 전공하는 한 학생은 실기 시험을 앞두고 그려야 하는 방식을 연습하고 외워서 모든 사ㅏㄻ들이 똑같은 규격품처럼 그리기를 강요받는 것이 이해가 안된다고도 했다. 우리의 교육은 똑같은 방식으로 생각하게 하고 똑같은 것을 쓰라고 한다고. 열네살 학생이 벌써 이것을 고민하기 시작하는 우리의 현실. '사랑이란 택시다. 왜냐하면 이별할 때 대가를 치러야 하기 때문이다' 라고 쓴 학생의 짧은 한 줄의 글이 제법이다.
고등학생이 되면 또 달라지겠지만 이 책에서 보이는 중학교 2학년 학생들은 대체로 건강해보인다. 모두 밝다는 것이 아니라 어둡고 우울하더라도 어느 한계를 넘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들이 딱 그 정도이기를. 이제 열 네 살이 된 그들이 너무 어둡고 너무 우울해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한창 좋은 때라고 말들 하지만 나 개인적으로는 누가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냐고 한다면 굳이 그러고 싶지 않다고 대답할 것이다. 예전이라 더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이 세상은 너무 단조로왔고 내 맘대로 할 수 있는 것이 너무 없었다. 나의 꿈은 검열되어야 했고, 때로 그 검열에 통과할 생각을 하고 있는건지 나도 모르게 자체 검열을 하고 있기도 했다.
남에게 보이기 위한 글이 아니더라도 글쓰기를 통해서 자기의 내면을 더 잘 들여다볼 수 있다는 것은 이미 많은 책들이 말해주고 있다. 글은 언제 어디서나 쓸 수 있다. 이것을 습관화 하고 이용할 수 있다면 살아가면서 힘에 겨운 산을 넘을 때마다 큰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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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실 2011-07-03 09: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부모의 싸움이 큰 실망을 안겨주는군요.
하긴 우리 아이들도 우리 부부가 언성만 조금 높아져도 예민해 하더라구요.
조심해야지^*^
아이들의 생생한 목소리가 들어있어 더 와닿겠네요.

이곳 청주엔 빗소리가 요란합니다. 아무곳도 갈 수 없게 만드는 비.비.비!

hnine 2011-07-04 14:29   좋아요 0 | URL
다른 책에서도 읽은 적이 있습니다.
부모의 싸움도 그렇지만, 큰소리 내고 싸우지 않아도 서로 냉담하고 있는 모습도 아이에게 긴장과 불안을 주기란 마찬가지일 것 같아요.
그러니 부모 노릇 하기란 얼마나 힘이 드는지요 ㅠㅠ
어제 여기도 비가 하루 종일 오더니, 오늘은 그래도 해가 쨍쨍 나서 우산으로 들고나갔던 것을 양산으로 쓰고 다녔습니다.

2011-07-03 12: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7-03 14: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7-04 14: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아프니까 청춘이다 - 인생 앞에 홀로 선 젊은 그대에게
김난도 지음 / 쌤앤파커스 / 2010년 12월
평점 :
절판


읽고야 말리라 했었다. 언제가 되든. 우연히 명사들의 책읽기라는 라디오 프로그램에 저자가 초대되어 하는 얘기를 듣게 되었다. 대학에 들어가는 아들을 염두에 두고 쓴 책이라면서 이 책을 소개했고 제목을 기억해두었다가 서점에서 주루룩 들춰 보고서 언제가 되든 이 책을 꼭 익고야 말리라 했었다.
그의 경력을 본다. 처음 디딘 길로 줄곧 걸어왔다기 보다 나름 궤도에서 벗어나려고도 해보고 소신에 따른 결정도 해본 듯하다.
청춘. 어떤 사람은 예찬을 하고, 다른 누구는 아프다고 하고. 또 다른 누구는 청춘을 훌쩍 지났음에도 꼭 읽어보리라 눈도장 찍었다가 마침내 하루만에 몰입하여 읽어내기도 하고.
읽으면서 참 많이 공감했다. 그러면서 든 생각은 정말 제목처럼 청춘에만 아플까. 청춘이어서 아플까 하는 것이었다.
살아있는 동안 우리는 아프다. 참 여러 가지 이유로 아프다. 그건 남녀노소 상관없다. 젊을 땐 젊은 대로, 나이 들어선 나이들어서대로 살아있는 한 우리는 여기도 아프고 저기도 아프다. 저자는 청춘을 '불확실성 속에서 미래를 준비하는 시기'라고 정의했으니, 삼십대, 아니 오십대가 되어서도 불확실성 속에 미래를 준비하고 있다면 청춘 아니겠는가?
그의 조언은 부드러우면서도 단도직입적이다. 실연을 당하고 추스리지 못해 찾아온 학생에게 다독이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무엇때문에 너를 떠났는지 부터 생각해보라고 한다. 너를 떠난 건 서로의 성격 차이니, 뛰어넘기 힘든 장벽 때문이니, 그동안 너무 힘들었기 때문이니, 그런 것때문이 아니라 네가 충분히 갖기 못한 '그 무엇' 때문이라고 얘기한다.

그 친구가 기대한만큼 네가 충분히 줄 수 없었기 때문이고 그건 앞으로도 쉽게 해결되지 못할 것이고 그것을 문제 삼지 않을 다른 누군가가 나타날지 모르는 일이라고. 너의 좌절은 그 사람에 대한, 혹은 자신에 대한, 시위인 것 같기도 해. "봐라, 나 이렇게 아파한다."고 처절하게 보여줌으로써 그에게 죄책감이, 후회가, 아쉬움이 들게 하고 싶은 건 아닐까? 어떻게든 감정의 동요를 일으키고 싶은 건 아닐까?
독하다.
네가 내린 결정으로 삶을 인도하라는 제목으로 그는 다름아닌 엄마를 넘어서야 한다고 충고한다. 우리 생애 가장 든든한 버팀목이고 오랫동안 그래주실 부모님이지만 언제까지 그분의 기대가 어떤 결정의 제일 조건이 되어서는 안된다고. 공감한다. 이들은 좋은 딸, 좋은 아들이기 위해 엄마의 결정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결정을 내릴 능력이 없기 때문에, 책임질 것이 두려워서, 나중에 탓할 구석 하나 남겨놓으려고 엄마가 결정하는 대로 따른다.
슬럼프라는 제목으로 그가 한 충고의 글을 보자. 예전에 문 요한의 <굿바이 게으름> 이후로 제대로 침을 맞는 기분이다.
슬럼프에서 벗어나고 싶다면,
1. 나태를 즐기지 말것. 은근히 즐기고 있다면 대신 힘들다고 말하지 말것.
2. 몸을 움직일 것. 운동하고 사람을 만나고 할일을 할 것. 술 먹지 말고 일찍 잘 것.
3. 그것이 무엇이든 오늘 할 것. 지금 하지 않는다면 그건 네가 아직도 나태를 즐기고 있다는 증거. 그럴거면 더 이상 칭얼대지 말것.
4. 아무리 독한 슬픔과 슬럼프 속에서라도 여전히 너는 너. 자학하지 말것.
나도 제대로 추스리지 못하지만 나도 가끔 나보다 젊은 사람들에게 그런 얘기를 한 적이 있다. 고민을 피하지 말고 충분히 하라고. 단, 두손, 두발, 다 놓고 고민만 하지 말고 움직이면서 하라고. 그렇게 할 수 없는 급성 고민도 물론 있겠지만 만성적인 고민, 즉 금방 결정이 나지 않을 고민에 대해서 한 말이다.
누가 나에게 이 책에서 가장 명문을 고르라고 한다면 아마도 96쪽의 '바닥은 생각보다 깊지 않다'라는 제목의 글을 뽑지 않을까 싶다.
포기가 항상 비겁한 것은 아니다. 실낱같이 부여잡은 목표가 너무 벅차거든, 자신 있게 줄을 놓아라. 대신 스스로에 대한 믿음의 날개를 펼쳐라.
자신 있게는 아니었지만 줄을 놓아본 경험이 있기 때문일까. 그 말이 필요할 때를 알고 있다고 여기기 때문일까. 저거 아니면 안된다는 그 목표의 줄을 놓고 대신 자신에 대한 믿음의 날개를 펼치라는 말. 포기가 꼭 패배를 의미하진 않는다는 말이 큰 격려의 말로 들린다. 추락을 두려워 말 것, 바닥은 생각보다 깊지 않으니까. 한번도 실패를 해보지 않은 사람은 할 수 없는 말 아닌지.
공부를 잘 하면 모든 것이 용서가 되는 고등학교 시기를 지나 대학생이 되어서도 오로지 '공부만' 잘하는 미숙아가 많다는 얘기도 새겨둘 만 하다. 한 마디로 혼자서 문제 해결을 못한다는 것이다.
연애를 시작했지만 서툴기 그지없다. 매사에 자신만만하던 모습은 간 데 없고 질질 짜기만 한다. 쉽게 상처 주고 쉽게 상처 받는다. 조금만 사이가 꼬이면 어떻게 해야할지 몰라 우왕좌왕하다가 냉전으로 확산되기 일쑤다. 미니 홈피나 블로그에서는 그렇게 능숙하던 대인관리가 막상 만나서는 미숙하기 그지없다. 실생활에서도 원룸 임대계약같이 복잡한 일은 말할 것도 없고, 할인점에서 간단한 환불요구도 제대로 하지 못한다. 요리, 청소, 빨래 같은 건 도무지 해본 적이 없다. 돈으로 해결하는 것도 한두 번이다. 그러니 결국 ...... 엄마만 찾는다 (256쪽)
이것이 요즘 공부만 잘하는 소위 알파걸, 알파보이의 실상인 경우가 많다고 한다. 이중 어느 부분은 40대 중반인 나에게도 여전히 해당되는 것이어서 찔끔했다. 성인이 된다는 것은 '공부만 잘 하면 되는 시기'는 끝났다는 것. 그렇다.
에필로그의 마지막 페이지까지 밑줄을 그어야 했다. 이 말 때문에.
If you don't know where you're going, just go. 어디로 가야할지 모르겠다면, 그냥 가라.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나오는 말이란다. 내가 평소에 즐겨 하는 말, 고민을 하되 주저 앉아서 하지 말고 걸으면서 하라는 말과 어딘지 통한다는 생각에 더 마음에 들어왔다.

"이런 멘토를 가까이에 두고 있는 학생들, 그리고 그 학교는 참 든든하겠어." 이 책을 읽고 내가 남편에게 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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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11-07-02 21: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인님 좋은 리뷰 감사해요.
마지막 인용구 인상적이에요.
우린 너무 많은 생각에 발목을 저당잡힌 게 아닌가 하는...
님 말씀처럼 생각도 가면서 하든, 생각을 좀 버리든 그래야하는데 말에요.
편안한 저녁 맞으시길.^^

hnine 2011-07-03 08:18   좋아요 0 | URL
저자 자신의 경험이 많이 삽입되어서 더 설득력있게 들리고 진심으로 통하는 효과가 있는 것 같아요.
맞아요. 너무 많은 생각. 행동은 없고 생각만 넘치는.
유명세만큼 괜찮은 책이었어요.

세실 2011-07-03 08: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디로 가야할지 모르겠다면, 그냥 가라." ...... 좋은데요.
운동 하고, 사람을 만나고, 할일을 할것.요것도 기억해야 겠어요.가끔 나태해질 때면요^*^

hnine 2011-07-03 08:20   좋아요 0 | URL
저부터가 무슨 고민이 있으면 두문불출, 할 일을 제대로 못하고 그 생각에만 빠져있기 잘 하거든요. 그래서 이게 꼭 어느 한 계층에 해당하는 말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럴수록 몸을 움직여주고, 사람을 만나고 할 일도 해야하는데...
 
40대를 위한 가슴이 시키는 일 - Part 3. 인생 후반전편 가슴이 시키는 일 3
전영철 지음 / 판테온하우스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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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어디 40대 뿐이겠는가. 가슴이 시키는 일을 해야하는 것 말이다. 사회적 평판이 시키는 일이 아니고, 부모의 기대가 시키는 일 아니고, 보수로 받는 금전이 시키는 일이 아닌, 나의 가슴이 시키는 일을 하며 산다는 것은 그 사람의 행복한 인생의 큰 기반이 된다고 생각한다. 20대, 학교를 졸업하고 취업 전선을 앞에 두고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할 기회를 갖기도 하지만 그런 사람보다는 떠밀려 일단 취직을 하고 한동안 정신 없이 그 직업에 종사하다가 40대나 되어서야 '이것이 내가 진정 하고 싶던 일이었나?' 본격적으로 생각할 기회를 갖는 사람들도 많다. 자연스런 흐름일지도 모르겠다. 이 책의 저자 역시 국내 대표적인 대기업에서 일해오다가 IMF때, 함께 일하던 동료들이 정리 해고로 회사를 떠나가는 것을 보고 비록 자신은 살아남았지만 인생을 돌아볼 기회를 맞았고,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 끝에 자기 손으로 회사를 그만두었단다. 지금은 고등학교 교사로 재직하고 있는데 그런 과정들을 경험하는 동안 그의 가슴 속에는 다른 사람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어떤 얘기가 차곡차곡 쌓였을만 하다. 아마도 이 책은 그렇게 태어나지 않았을까 짐작해본다.
책의 구성은 이런 류의 다른 책들과 별로 다를 바 없이 평범하다. 머리말에 이어 서른 다섯개의 작은 꼭지가 나오는데 각 꼭지의 제목에 저자가 말하고 싶은 요점이 담겨 있다. 첫번째 '아내를 존경하자' 에서부터 서른 다섯 번째 '어른들의 말로 아이들을 가르치지 말자' 까지.
나이 들어가면서 그동안 함께 시간과 인생의 일부분을 공유해온 아내를 '사랑하자'도 아니고 '존경하자'고 말하는 것은 의미가 있다. 그건 남편에 대해서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네번 째 '남에게 인정받으려고 애쓰지 말자'에도 끄덕끄덕. 남이 아니라 자신의 잣대로 평가하고 인정해야 한다는 이야기인데 뒤에 나오는 '책임의 무게를 즐기자'라는 이야기와 통한다고 본다. 책임을 회피하라는 것이 아니라 그것에 짓눌려 내 인생 전체를 위기로 몰고 갈 정도가 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열 아홉 번째 '이기적인 중년이 되자'에서 또 강조.
'내 꿈은 스스로 지키자' 도 한번씩 새겨볼만한 사항이다. 40대. 한창 사회의 어느 한 분야에서 중견 직업인으로서 자기 몫을 제대로 하고 있을 시기이다. 매일 쳇바퀴처럼 돌아가는 일상 속에서 꿈과 거리가 먼 생활을 할 수 밖에 없다는 투덜거림과 그 이유에 대한 핑계 거리는 늘 준비되어 있다. 제일 막강한 핑계라면 아이들 때문에, 집사람 때문에, 남편이 안 도와 줘서, 즉 가족을 내세우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 때문에 나의 꿈을 유보시켰다는 가벼운 원망까지 함께 실어서 변명 플러스 한탄을 하며 사는 우리. 하지만 나의 꿈은 누가 부추켜 주어 생기는 것도 아니고, 멘토가 따로 있어 이끌어주는 것도 아니고, 온전히 나의 몫이라는 것, 내가 가만히 있는데 그것을 완성시켜줄 누군가가 나타나는 일은 결코 없다는 것을 머리로는 다 알고 있으리라. 그리고 우리 사회는 다른 사람의 꿈에 대해 대부분 긍정적으로 반응해주지 않는다. 아무렇게나 던지는 부정적인 말, 혼자 튀지 말고 다 똑같이 가자는 획일주의가 깔린 비웃음은 그냥 듣고 버릴 것. 그것때문에 오랫동안 품어온 꿈을 금방 쉽게 압축 시켜버리지 말아야겠다.
나이 마흔 쯤 되면 스물 다섯 번째 사항처럼 멋지게 대화하는 법을 알아야 한다. 모르면 배우고자 하는 마음 가짐이 필요하다. 자기만의 세계를 갖는 것, 멋진 일이지만 거기에 갖혀서 소통을 잃어버리는 것은 자신을 위해서도 피해야 할 일이고 그러자면 다른 사람들의 말을 경청하고 나의 의견을 과장없이 조리있게 말할 수 있는 기술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스물 아홉 번 째, '사람들에게 관대해지자'는 것인데 나이를 먹어가다보니 조금씩 그렇게 되어가는 것 같기는 하다. 나이에 따라서일 수도 있고, 어쩌면 자식을 낳아 키우면서 습득되는 것일 수도 있겠다. 서른 두 번째 '가족과 의논하자'는 것은 40대 정도의 대한민국 남자들이라면 많이 공감할 내용이고 나 역시 남편에게 가끔 부탁하는 내용이기도 하다. 왜 한 집안의 가장 혼자 다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어차피 어떤 일의 결과는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가족이 모두 나눠가지게 되어 있는데 절대 가족이 알지 못하게 혼자서 해결하려고 끙끙대며 병을 키우는가 말이다. 남편 말에 의하면 가족들에게 얘기해봤자 더 걱정만 시키지 결과가 나아질 것 없기 때문이란다. 결과가 나아질 것 없다고 보는 것이야말로 배려가 아니라 오만일 수 있다. 왜 내 머리에서 뾰족한 수가 나오지 않으면 거기서 끝이라고 생각하는 것인지.
마지막 세 항목은 아이들과의 관계에 대한 말이다. '아이들과 소통하자', '아이들에게 모범을 보이자', 그리고 '어른들의 말로 아이들을 가르치지 말자'. 나이가 들어갈수록 아이들과 일부러라도 이야기를 많이 나누는 것이 좋다. 단 가르치려는 마음을 내려놓고서. 나도 그렇지만 우리는 왜 나이가 어린 사람들보다 우리가 좀 더 나은 결정을 내릴 수 있다고 생각할까. 오히려 그들로부터 배울 것이 많다는 것을 깜박깜박 잊는 것일까. 모든 대화의 결론은 나의 그 가르치려는 듯한 말로 마무리 지으려 할까. 아이들에게 말로 가르치려 들지 말고, 정 가르치고 싶은 것이 있다면 나의 행동으로 보여주어야 할 것이다. 들어서 고쳐지는 것보다 보고서 은연중에 배우게 되는 것이 더 많다.
뜻대로 되는 것 보다 안되는 것이 많고, 뭐든지 '하면 된다'가 아니라, 아무리 해도 우리 능력 밖의 일이 있다는 것을 알아가는 40대. 사실 같은 40대로서 하고 싶은 말은, '됐고, 당신을 생각하며 살아. 재미있게 살라고." 이 말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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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1-07-02 12: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태그 정말 공감합니다.
어떻게 하면 다시 젊어질 수 있을까요?ㅠㅠ

hnine 2011-07-02 19:13   좋아요 0 | URL
마음을 젊게 가지면...이라고 말하면 참 진부하겠지요? 오늘 도착한 책 '두근두근 내 인생'이 어떤 내용인지 묻는 아이에게 조로증에 대해 설명해주고는 "사실 엄마도 병이 있는데 말이야, 조로증과 반대의 병이야.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늙지 않는 병이 있거든..." 이랬더니 아이랑 남편이 깔깔 ^^

stella.K 2011-07-02 19:51   좋아요 0 | URL
ㅎㅎㅎ 정말 안 늙었으면 좋겠어요.
지금이라도 악을 써 볼까 생각중이라능.ㅋㅋ

hnine 2011-07-03 08:21   좋아요 0 | URL
'악을 써 볼까'를 '약을 써볼까'로 읽고서 허걱~ 했어요 ^^

프레이야 2011-07-02 21: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남에게 인정받으려 '애쓰지' 말자.
이기적인 중년이 되자.
멋지게 대화하는 법을 알자.
이거만이라도 잘 되어야겠어요.
멋진 대화의 기본은 역시 멋진 경청이군요.
조로증 반대, 나인님도 멋지네요.^^

hnine 2011-07-03 08:22   좋아요 0 | URL
이기적인 중년! 요즘 제가 화두로 삼을까 하는 말이랍니다 ㅋㅋ
조로증의 반대라고 아이에게 그랬더니 처음엔 발달지체라는 뜻으로 듣고 저의 농담을 이해 못하더라고요 ㅠㅠ 제가 구차하게 다시 설명해야했답니다.
 
청소녀 백과사전 낮은산 너른들 2
김옥 지음, 나오미양 그림 / 낮은산 / 200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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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결이 뭘까. 내 나이 정도 된 사람이면 모두 지나왔을 그 시기의 감정, 생각을 이리 잘 기억해서 묘사할 수 있는 비결은. 이 책을 읽기 전 까지 나는 그때의 그 섬세한 감정을 이미 많이 잊은 상태라는 것 조차 모르고 있었다.

내 나이 올해로 열세 살, 먹을 만큼 먹었다 (106쪽)

 요렇게 깜찍하게 말 할 수 있는 나이.

세상 모든 일을 다 알아 버린 것 같다가도 한없이 바보 같은 느낌이 들기도 했다 (86쪽)

그래, 그렇게 조울증을 앓는 시기였다. 예전에 눈에 들어오지 않던 것들이 갑자기 눈에 많이 들어오기도 했다.

그 즈음 나는 갑자기 시력도 좋아졌다. 초록 풀 이파리를 건드리고 지나가는 바람의 장난도 눈에 들어왔고, 붉은 노을에 젖어 버린 나뭇가지도 다 보였다. 모든 것이 아름다웠고 모든 것이 슬펐다 (86쪽)

그래서 웃음도 많아지는가 하면 눈물도 잦던 시기였어.
야, 춘기야에서 춘기는 엄마가 붙여준 별명 '사춘기'에서 나온 이름이다. 싱글맘인 엄마와 하나뿐인 딸 춘기의 알콩달콩 살아가는 이야기. 이 글을 읽을 때까지만 해도 이 작가에 대해 그냥 심드렁했다.
다음의 김마리 이야기는 단도직입적으로 '내 이름은 김마리' 이렇게 시작하는 글의 시작부터 마음에 들었다. 가족신문을 만들어오라는 숙제를 하던 마리는 자기가 꿈꾸는 가족 상황과 너무 다른 현실이 마음에 안들어 가족의 프로필을 자기 마음대로 꾸며서 쓴다. 모차르트를 좋아하는 아빠와 미술을 전공한 엄마, 한달에 한번씩은 꼭 함께 여행을 가는 가족으로. 이맘 때 다 한번 씩 그런 생각을 하지 않나? 
다음 이야기 벨이 울리면을 읽으면서 본격적으로 작가에게 관심이 모아지기 시작해서 그녀의 프로필을 자꾸 들춰 보며 읽었다. 최신 기종의 비싼 핸드폰을 가지고 뽐내는 하늬와 하늬를 속으로 아니꼬와하지만 드러내지 않고 있는 반 아이(들)이 있다. 어느 날 미술 시간에 하늬의 핸드폰이 감쪽같이사라지는데 담임 선생님은 정말 기발한 방법으로 핸드폰을 다시 찾아낸다.  누구도 다치지 않으면서 잃어버린 물건을 찾아내는 선생님의 지혜에 감탄. 그리고 범인이 누구라는 것을 밝히지 않고 읽는 독자로 하여금 알아서 짐작하게 하는 작가의 솜씨에도 감탄.
이 책에서 내가 제일 높은 점수를 주고 싶은 글은 착한 아이였다. '착하다'라는 말 속에서 왜 아련함, 슬픔 같은 것이 느껴지는지. 지홍이를 좋아하는 현주의 심리 묘사가 뛰어나다.
철이 데리고 수학여행가기에서는 제목에서부터 작가의 개성이 나타난다. 이야기의 시작은 내 남자 친구가 최고였다가,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하나 하나 실망해가더니 마지막 문장에서 내 남자 친구는 형편없다로 바뀌기 까지, 영이의 심경의 변화를 잘 그려놓고 있다.
그에 비하면 마지막의 비밀정원은 평범한 수준.
'청소년' 대신 굳이 '청소녀'라는 단어를 제목으로 내세운 것에서부터 작가의 기지를 눈치챘는데, 읽어보니 기대했던 것 보다 훨씬 좋았고, 무엇보다도 내가 만약 이 연령대 여자 아이를 주인공으로 하는 이야기를 쓴다면 하고 머리 속에 그려본 적이 있던 몇몇 장면을 글 중에 만날 수 있어 더 흥미로왔다.
이 작가의 다른 작품도 찾아 읽어봐야겠다고 결심하며 읽기를 끝낸 책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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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1-07-01 11: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빚나갔습니다. 완전 낚신데요?ㅎㅎ
어제부터 김애란의 소설을 읽기 시작했는데,
아, 이렇게 쓰는 작가가 있구나.
감탄하며 읽고 있는 중입니다.
요즘 두근두근이 키워듭니다.ㅋㅋ

hnine 2011-07-02 07:58   좋아요 0 | URL
제가 감히 stella님을 낚았군요 ㅋㅋ
저도 그 책 배송 기다리고 있는 중이랍니다. 두근두근하면서요 ^^

하늘바람 2011-07-02 10: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옥 넘 잘쓰지요?
이책은 저도 못 읽어봤는데
저는 님도 충분히 김옥처럼쓰실 수 있을 것같요

hnine 2011-07-02 19:15   좋아요 0 | URL
저도 도서관에서 빌려서 읽었는데, 언뜻 보기엔 평이한 것 이야기 같은데 참 예리하게 심리 묘사를 했더라고요. 잘 쓰시는 분들이 정말 많아요. 이런 작품을 읽고 느낄 수 있는 것만해도 만족스러운걸요.
 

 

언제나 그랫듯이  외할머니를 꿈속에서 만나면 
하루 종일 기분이 좋고 
어쩐지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았었는데 
어젯밤에는 외할머니와 한 방에서 자면서  이야기까지 나누었었단다. 
그 뿐인가? 
새벽에 기도를 하고 있는데 마치 
내 방 창가에 와 있는듯  가까이에서 까치가 
조용 조용하게 노래를 불러 주는 거야. 그것도 한~동안이나.... 
오늘도 좋은 일이 생길 것이라고 기대하며 하루를 시작하자. 
오늘도 좋은 날이기를  두 손 모아 합장한다.         

          -  엄마가  -

 

 

웬일로 엄마께서 이메일을 보내셨길래 읽어보았더니
꿈에서 외할머니를 만나시고 기분이 좋으셔서 쓰신 메일이었다.
누구에게라도 그 기분을 말씀하시고 싶으셨겠지.
625전쟁때, 그러니까 우리 엄마 열 한 살때, 외할아버지께서 행방불명 되셔서 우리 엄마는 지금도 아버지 얼굴이 가물가물 하시단다. 그후 혼자서 별별 일 다 하시며 우리 엄마를 비롯한 삼남매를 키우신 외할머니. 고생 많이 하시다가 예순 여섯 되시던 해에 천식으로 돌아가셨다. 내가 초등학교 5학년 때였다.
올해 일흔 셋인 우리 엄마는 지금도 한달에 한번은 외할머니 산소엘 가신다. 이 세상에 제일 부러운 사람은 엄마가 살아계신 사람이라면서, 지금도 외할머니 얘기를 하실 땐 눈물을 글썽이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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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바람 2011-06-28 13: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희 엄마도 그런말씀하셨는데요.
그래서 건강해야겠단 생각이 드네요.님도요^^

hnine 2011-06-29 05:43   좋아요 0 | URL
네, 부모님께서 옆에 계신 동안은 그 존재만으로도 얼마나 든든한 보호막인지 실감하지 못하는 것 같아요. 이 세상에 '엄마'란 이름만큼 우리 마음을 움직이는 것이 있을까요. 그 엄마라는 자리에 서 있다는 것이 축복으로도 생각되고 어깨가 무거워지기도 하고, 그렇네요.

sangmee 2011-06-28 13: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너 많이 슬퍼했던 기억나.
어린 시절 너한테 네 외할머니는 엄마랑 같은 의미였지...
우리 외할머니는 나 대학 입학식 3일 전에 돌아가셨잖아.
이젠 울 엄마 나이가 그 때 할머니 연세보다 더 드셨다는게 슬플 따름이고....

hnine 2011-06-29 05:45   좋아요 0 | URL
기억력 짱 김 상미!
외할머니 장례식때, 학교 빠지면 안된다고 엄마가 못가게 해서 더 서럽고 슬펐지.

세실 2011-06-29 10: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니 글이 참으로 고우세요. 아 좋다~~~~

"오늘도 좋은 일이 생길 것이라고 기대하며 하루를 시작하자. "
저도 이렇게 시작할래요.

hnine 2011-06-29 14:26   좋아요 0 | URL
좋은 일이 생길 것이라는 기대로 시작하는 하루! 매일 그럴 수 있다면 참 좋겠지요.
예전에 저의 엄마는 늘 바쁘시고, 저와 대화를 나눌 여유가 없을만큼 예민하신 분이었어요. 그런데 정년 퇴직하시고 연세가 들어가실수록 많이 편안해지시는 것 같아요.

마녀고양이 2011-06-29 15: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니까, 나인 언니는 어머님과 이런 메일도 주고 받으시는군요.
저희 모녀는 가끔 낯설어해요.. ㅎㅎ. 어쩐지 많이 부러워지는걸요.

hnine 2011-06-29 16:35   좋아요 0 | URL
아주 가끔요 ^^
이메일은 종종 보내시는데 대개 재미있는 사진이거나, 다른 사람으로부터 받으신 좋~은 글귀 전달이거나, 기도문이거나 (제 어머니 불자 시거든요.) 그렇지요.

순오기 2011-07-01 21: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친정엄마~~~~ 역시 선생님!^^
마음을 움직이는 글이네요~~~~

hnine 2011-07-02 07:54   좋아요 0 | URL
^^
(지금 순오기님 서재 가서 도서관 페이퍼 읽고 감동 받고 왔어요. 많은 분들이 댓글 다셔서 저는 생략하고 왔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