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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니까 청춘이다 - 인생 앞에 홀로 선 젊은 그대에게
김난도 지음 / 쌤앤파커스 / 2010년 12월
평점 :
절판
읽고야 말리라 했었다. 언제가 되든. 우연히 명사들의 책읽기라는 라디오 프로그램에 저자가 초대되어 하는 얘기를 듣게 되었다. 대학에 들어가는 아들을 염두에 두고 쓴 책이라면서 이 책을 소개했고 제목을 기억해두었다가 서점에서 주루룩 들춰 보고서 언제가 되든 이 책을 꼭 익고야 말리라 했었다.
그의 경력을 본다. 처음 디딘 길로 줄곧 걸어왔다기 보다 나름 궤도에서 벗어나려고도 해보고 소신에 따른 결정도 해본 듯하다.
청춘. 어떤 사람은 예찬을 하고, 다른 누구는 아프다고 하고. 또 다른 누구는 청춘을 훌쩍 지났음에도 꼭 읽어보리라 눈도장 찍었다가 마침내 하루만에 몰입하여 읽어내기도 하고.
읽으면서 참 많이 공감했다. 그러면서 든 생각은 정말 제목처럼 청춘에만 아플까. 청춘이어서 아플까 하는 것이었다.
살아있는 동안 우리는 아프다. 참 여러 가지 이유로 아프다. 그건 남녀노소 상관없다. 젊을 땐 젊은 대로, 나이 들어선 나이들어서대로 살아있는 한 우리는 여기도 아프고 저기도 아프다. 저자는 청춘을 '불확실성 속에서 미래를 준비하는 시기'라고 정의했으니, 삼십대, 아니 오십대가 되어서도 불확실성 속에 미래를 준비하고 있다면 청춘 아니겠는가?
그의 조언은 부드러우면서도 단도직입적이다. 실연을 당하고 추스리지 못해 찾아온 학생에게 다독이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무엇때문에 너를 떠났는지 부터 생각해보라고 한다. 너를 떠난 건 서로의 성격 차이니, 뛰어넘기 힘든 장벽 때문이니, 그동안 너무 힘들었기 때문이니, 그런 것때문이 아니라 네가 충분히 갖기 못한 '그 무엇' 때문이라고 얘기한다.
그 친구가 기대한만큼 네가 충분히 줄 수 없었기 때문이고 그건 앞으로도 쉽게 해결되지 못할 것이고 그것을 문제 삼지 않을 다른 누군가가 나타날지 모르는 일이라고. 너의 좌절은 그 사람에 대한, 혹은 자신에 대한, 시위인 것 같기도 해. "봐라, 나 이렇게 아파한다."고 처절하게 보여줌으로써 그에게 죄책감이, 후회가, 아쉬움이 들게 하고 싶은 건 아닐까? 어떻게든 감정의 동요를 일으키고 싶은 건 아닐까?
독하다.
네가 내린 결정으로 삶을 인도하라는 제목으로 그는 다름아닌
엄마를 넘어서야 한다고 충고한다. 우리 생애 가장 든든한 버팀목이고 오랫동안 그래주실 부모님이지만 언제까지 그분의 기대가 어떤 결정의 제일 조건이 되어서는 안된다고. 공감한다. 이들은 좋은 딸, 좋은 아들이기 위해 엄마의 결정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결정을 내릴 능력이 없기 때문에, 책임질 것이 두려워서, 나중에 탓할 구석 하나 남겨놓으려고 엄마가 결정하는 대로 따른다.
슬럼프라는 제목으로 그가 한 충고의 글을 보자. 예전에 문 요한의 <굿바이 게으름> 이후로 제대로 침을 맞는 기분이다.
슬럼프에서 벗어나고 싶다면,
1. 나태를 즐기지 말것. 은근히 즐기고 있다면 대신 힘들다고 말하지 말것.
2. 몸을 움직일 것. 운동하고 사람을 만나고 할일을 할 것. 술 먹지 말고 일찍 잘 것.
3. 그것이 무엇이든 오늘 할 것. 지금 하지 않는다면 그건 네가 아직도 나태를 즐기고 있다는 증거. 그럴거면 더 이상 칭얼대지 말것.
4. 아무리 독한 슬픔과 슬럼프 속에서라도 여전히 너는 너. 자학하지 말것.
나도 제대로 추스리지 못하지만 나도 가끔 나보다 젊은 사람들에게 그런 얘기를 한 적이 있다. 고민을 피하지 말고 충분히 하라고. 단, 두손, 두발, 다 놓고 고민만 하지 말고 움직이면서 하라고. 그렇게 할 수 없는 급성 고민도 물론 있겠지만 만성적인 고민, 즉 금방 결정이 나지 않을 고민에 대해서 한 말이다.
누가 나에게 이 책에서 가장 명문을 고르라고 한다면 아마도 96쪽의
'바닥은 생각보다 깊지 않다'라는 제목의 글을 뽑지 않을까 싶다.
포기가 항상 비겁한 것은 아니다. 실낱같이 부여잡은 목표가 너무 벅차거든, 자신 있게 줄을 놓아라. 대신 스스로에 대한 믿음의 날개를 펼쳐라.
자신 있게는 아니었지만 줄을 놓아본 경험이 있기 때문일까. 그 말이 필요할 때를 알고 있다고 여기기 때문일까. 저거 아니면 안된다는 그 목표의 줄을 놓고 대신 자신에 대한 믿음의 날개를 펼치라는 말.
포기가 꼭 패배를 의미하진 않는다는 말이 큰 격려의 말로 들린다. 추락을 두려워 말 것, 바닥은 생각보다 깊지 않으니까. 한번도 실패를 해보지 않은 사람은 할 수 없는 말 아닌지.
공부를 잘 하면 모든 것이 용서가 되는 고등학교 시기를 지나 대학생이 되어서도 오로지 '공부만' 잘하는 미숙아가 많다는 얘기도 새겨둘 만 하다. 한 마디로
혼자서 문제 해결을 못한다는 것이다.
연애를 시작했지만 서툴기 그지없다. 매사에 자신만만하던 모습은 간 데 없고 질질 짜기만 한다. 쉽게 상처 주고 쉽게 상처 받는다. 조금만 사이가 꼬이면 어떻게 해야할지 몰라 우왕좌왕하다가 냉전으로 확산되기 일쑤다. 미니 홈피나 블로그에서는 그렇게 능숙하던 대인관리가 막상 만나서는 미숙하기 그지없다. 실생활에서도 원룸 임대계약같이 복잡한 일은 말할 것도 없고, 할인점에서 간단한 환불요구도 제대로 하지 못한다. 요리, 청소, 빨래 같은 건 도무지 해본 적이 없다. 돈으로 해결하는 것도 한두 번이다. 그러니 결국 ...... 엄마만 찾는다 (256쪽)
이것이 요즘 공부만 잘하는 소위 알파걸, 알파보이의 실상인 경우가 많다고 한다. 이중 어느 부분은 40대 중반인 나에게도 여전히 해당되는 것이어서 찔끔했다. 성인이 된다는 것은 '공부만 잘 하면 되는 시기'는 끝났다는 것. 그렇다.
에필로그의 마지막 페이지까지 밑줄을 그어야 했다. 이 말 때문에.
If you don't know where you're going, just go. 어디로 가야할지 모르겠다면, 그냥 가라.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나오는 말이란다. 내가 평소에 즐겨 하는 말, 고민을 하되 주저 앉아서 하지 말고 걸으면서 하라는 말과 어딘지 통한다는 생각에 더 마음에 들어왔다.
"이런 멘토를 가까이에 두고 있는 학생들, 그리고 그 학교는 참 든든하겠어." 이 책을 읽고 내가 남편에게 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