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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대를 위한 가슴이 시키는 일 - Part 3. 인생 후반전편 ㅣ 가슴이 시키는 일 3
전영철 지음 / 판테온하우스 / 2011년 5월
평점 :
품절
어디 40대 뿐이겠는가. 가슴이 시키는 일을 해야하는 것 말이다. 사회적 평판이 시키는 일이 아니고, 부모의 기대가 시키는 일 아니고, 보수로 받는 금전이 시키는 일이 아닌, 나의 가슴이 시키는 일을 하며 산다는 것은 그 사람의 행복한 인생의 큰 기반이 된다고 생각한다. 20대, 학교를 졸업하고 취업 전선을 앞에 두고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할 기회를 갖기도 하지만 그런 사람보다는 떠밀려 일단 취직을 하고 한동안 정신 없이 그 직업에 종사하다가 40대나 되어서야 '이것이 내가 진정 하고 싶던 일이었나?' 본격적으로 생각할 기회를 갖는 사람들도 많다. 자연스런 흐름일지도 모르겠다. 이 책의 저자 역시 국내 대표적인 대기업에서 일해오다가 IMF때, 함께 일하던 동료들이 정리 해고로 회사를 떠나가는 것을 보고 비록 자신은 살아남았지만 인생을 돌아볼 기회를 맞았고,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 끝에 자기 손으로 회사를 그만두었단다. 지금은 고등학교 교사로 재직하고 있는데 그런 과정들을 경험하는 동안 그의 가슴 속에는 다른 사람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어떤 얘기가 차곡차곡 쌓였을만 하다. 아마도 이 책은 그렇게 태어나지 않았을까 짐작해본다.
책의 구성은 이런 류의 다른 책들과 별로 다를 바 없이 평범하다. 머리말에 이어 서른 다섯개의 작은 꼭지가 나오는데 각 꼭지의 제목에 저자가 말하고 싶은 요점이 담겨 있다. 첫번째 '아내를 존경하자' 에서부터 서른 다섯 번째 '어른들의 말로 아이들을 가르치지 말자' 까지.
나이 들어가면서 그동안 함께 시간과 인생의 일부분을 공유해온 아내를 '사랑하자'도 아니고 '존경하자'고 말하는 것은 의미가 있다. 그건 남편에 대해서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네번 째 '남에게 인정받으려고 애쓰지 말자'에도 끄덕끄덕. 남이 아니라 자신의 잣대로 평가하고 인정해야 한다는 이야기인데 뒤에 나오는 '책임의 무게를 즐기자'라는 이야기와 통한다고 본다. 책임을 회피하라는 것이 아니라 그것에 짓눌려 내 인생 전체를 위기로 몰고 갈 정도가 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열 아홉 번째 '이기적인 중년이 되자'에서 또 강조.
'내 꿈은 스스로 지키자' 도 한번씩 새겨볼만한 사항이다. 40대. 한창 사회의 어느 한 분야에서 중견 직업인으로서 자기 몫을 제대로 하고 있을 시기이다. 매일 쳇바퀴처럼 돌아가는 일상 속에서 꿈과 거리가 먼 생활을 할 수 밖에 없다는 투덜거림과 그 이유에 대한 핑계 거리는 늘 준비되어 있다. 제일 막강한 핑계라면 아이들 때문에, 집사람 때문에, 남편이 안 도와 줘서, 즉 가족을 내세우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 때문에 나의 꿈을 유보시켰다는 가벼운 원망까지 함께 실어서 변명 플러스 한탄을 하며 사는 우리. 하지만 나의 꿈은 누가 부추켜 주어 생기는 것도 아니고, 멘토가 따로 있어 이끌어주는 것도 아니고, 온전히 나의 몫이라는 것, 내가 가만히 있는데 그것을 완성시켜줄 누군가가 나타나는 일은 결코 없다는 것을 머리로는 다 알고 있으리라. 그리고 우리 사회는 다른 사람의 꿈에 대해 대부분 긍정적으로 반응해주지 않는다. 아무렇게나 던지는 부정적인 말, 혼자 튀지 말고 다 똑같이 가자는 획일주의가 깔린 비웃음은 그냥 듣고 버릴 것. 그것때문에 오랫동안 품어온 꿈을 금방 쉽게 압축 시켜버리지 말아야겠다.
나이 마흔 쯤 되면 스물 다섯 번째 사항처럼 멋지게 대화하는 법을 알아야 한다. 모르면 배우고자 하는 마음 가짐이 필요하다. 자기만의 세계를 갖는 것, 멋진 일이지만 거기에 갖혀서 소통을 잃어버리는 것은 자신을 위해서도 피해야 할 일이고 그러자면 다른 사람들의 말을 경청하고 나의 의견을 과장없이 조리있게 말할 수 있는 기술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스물 아홉 번 째, '사람들에게 관대해지자'는 것인데 나이를 먹어가다보니 조금씩 그렇게 되어가는 것 같기는 하다. 나이에 따라서일 수도 있고, 어쩌면 자식을 낳아 키우면서 습득되는 것일 수도 있겠다. 서른 두 번째 '가족과 의논하자'는 것은 40대 정도의 대한민국 남자들이라면 많이 공감할 내용이고 나 역시 남편에게 가끔 부탁하는 내용이기도 하다. 왜 한 집안의 가장 혼자 다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어차피 어떤 일의 결과는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가족이 모두 나눠가지게 되어 있는데 절대 가족이 알지 못하게 혼자서 해결하려고 끙끙대며 병을 키우는가 말이다. 남편 말에 의하면 가족들에게 얘기해봤자 더 걱정만 시키지 결과가 나아질 것 없기 때문이란다. 결과가 나아질 것 없다고 보는 것이야말로 배려가 아니라 오만일 수 있다. 왜 내 머리에서 뾰족한 수가 나오지 않으면 거기서 끝이라고 생각하는 것인지.
마지막 세 항목은 아이들과의 관계에 대한 말이다. '아이들과 소통하자', '아이들에게 모범을 보이자', 그리고 '어른들의 말로 아이들을 가르치지 말자'. 나이가 들어갈수록 아이들과 일부러라도 이야기를 많이 나누는 것이 좋다. 단 가르치려는 마음을 내려놓고서. 나도 그렇지만 우리는 왜 나이가 어린 사람들보다 우리가 좀 더 나은 결정을 내릴 수 있다고 생각할까. 오히려 그들로부터 배울 것이 많다는 것을 깜박깜박 잊는 것일까. 모든 대화의 결론은 나의 그 가르치려는 듯한 말로 마무리 지으려 할까. 아이들에게 말로 가르치려 들지 말고, 정 가르치고 싶은 것이 있다면 나의 행동으로 보여주어야 할 것이다. 들어서 고쳐지는 것보다 보고서 은연중에 배우게 되는 것이 더 많다.
뜻대로 되는 것 보다 안되는 것이 많고, 뭐든지 '하면 된다'가 아니라, 아무리 해도 우리 능력 밖의 일이 있다는 것을 알아가는 40대. 사실 같은 40대로서 하고 싶은 말은, '됐고, 당신을 생각하며 살아. 재미있게 살라고." 이 말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