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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녀 백과사전 ㅣ 낮은산 너른들 2
김옥 지음, 나오미양 그림 / 낮은산 / 2006년 10월
평점 :
비결이 뭘까. 내 나이 정도 된 사람이면 모두 지나왔을 그 시기의 감정, 생각을 이리 잘 기억해서 묘사할 수 있는 비결은. 이 책을 읽기 전 까지 나는 그때의 그 섬세한 감정을 이미 많이 잊은 상태라는 것 조차 모르고 있었다.
내 나이 올해로 열세 살, 먹을 만큼 먹었다 (106쪽)
요렇게 깜찍하게 말 할 수 있는 나이.
세상 모든 일을 다 알아 버린 것 같다가도 한없이 바보 같은 느낌이 들기도 했다 (86쪽)
그래, 그렇게 조울증을 앓는 시기였다. 예전에 눈에 들어오지 않던 것들이 갑자기 눈에 많이 들어오기도 했다.
그 즈음 나는 갑자기 시력도 좋아졌다. 초록 풀 이파리를 건드리고 지나가는 바람의 장난도 눈에 들어왔고, 붉은 노을에 젖어 버린 나뭇가지도 다 보였다. 모든 것이 아름다웠고 모든 것이 슬펐다 (86쪽)
그래서 웃음도 많아지는가 하면 눈물도 잦던 시기였어.
야, 춘기야에서 춘기는 엄마가 붙여준 별명 '사춘기'에서 나온 이름이다. 싱글맘인 엄마와 하나뿐인 딸 춘기의 알콩달콩 살아가는 이야기. 이 글을 읽을 때까지만 해도 이 작가에 대해 그냥 심드렁했다.
다음의 김마리 이야기는 단도직입적으로 '내 이름은 김마리' 이렇게 시작하는 글의 시작부터 마음에 들었다. 가족신문을 만들어오라는 숙제를 하던 마리는 자기가 꿈꾸는 가족 상황과 너무 다른 현실이 마음에 안들어 가족의 프로필을 자기 마음대로 꾸며서 쓴다. 모차르트를 좋아하는 아빠와 미술을 전공한 엄마, 한달에 한번씩은 꼭 함께 여행을 가는 가족으로. 이맘 때 다 한번 씩 그런 생각을 하지 않나?
다음 이야기 벨이 울리면을 읽으면서 본격적으로 작가에게 관심이 모아지기 시작해서 그녀의 프로필을 자꾸 들춰 보며 읽었다. 최신 기종의 비싼 핸드폰을 가지고 뽐내는 하늬와 하늬를 속으로 아니꼬와하지만 드러내지 않고 있는 반 아이(들)이 있다. 어느 날 미술 시간에 하늬의 핸드폰이 감쪽같이사라지는데 담임 선생님은 정말 기발한 방법으로 핸드폰을 다시 찾아낸다. 누구도 다치지 않으면서 잃어버린 물건을 찾아내는 선생님의 지혜에 감탄. 그리고 범인이 누구라는 것을 밝히지 않고 읽는 독자로 하여금 알아서 짐작하게 하는 작가의 솜씨에도 감탄.
이 책에서 내가 제일 높은 점수를 주고 싶은 글은 착한 아이였다. '착하다'라는 말 속에서 왜 아련함, 슬픔 같은 것이 느껴지는지. 지홍이를 좋아하는 현주의 심리 묘사가 뛰어나다.
철이 데리고 수학여행가기에서는 제목에서부터 작가의 개성이 나타난다. 이야기의 시작은 내 남자 친구가 최고였다가,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하나 하나 실망해가더니 마지막 문장에서 내 남자 친구는 형편없다로 바뀌기 까지, 영이의 심경의 변화를 잘 그려놓고 있다.
그에 비하면 마지막의 비밀정원은 평범한 수준.
'청소년' 대신 굳이 '청소녀'라는 단어를 제목으로 내세운 것에서부터 작가의 기지를 눈치챘는데, 읽어보니 기대했던 것 보다 훨씬 좋았고, 무엇보다도 내가 만약 이 연령대 여자 아이를 주인공으로 하는 이야기를 쓴다면 하고 머리 속에 그려본 적이 있던 몇몇 장면을 글 중에 만날 수 있어 더 흥미로왔다.
이 작가의 다른 작품도 찾아 읽어봐야겠다고 결심하며 읽기를 끝낸 책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