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 보장 가정식 레시피 - 욕쟁이 요리 블로거, 당근정말시러의 맛보장 레시피
당근정말시러 지음 / 빛날희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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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책 구입은 간간히 했으면서 리뷰를 올리긴 이 책이 처음이다.

요리 블로그를 그렇게 드나들면서도 이 분 블로그는 오히려 다른 단골 블로그에 비해 알게 된지 오래되지도 않았고 자주 방문하지도 않았다. 따라하기 만만치 않음을 간파했기 때문이다. 요리책에도 여러 종류가 있는데, 초보자가 겁먹지 않고 쉽게 따라할 수 있게 되어 있는 책 (이런 책으로는 아마 나물이 요리책이 그 효시가 아닐까), 테마로 묶어 놓은 요리책 (한식, 일식, 한그릇 요리, 저칼로리 요리, 집밥 요리, 이유식, 등등), 선택할 꺼리가 많도록 종류를 망라하여 많은 요리가 수록되어 있는 두툼한 요리책 등, 그야말로 죽이든 밥이든 매일 상을 차려내야 하는 입장에 있다보니 요리책도 골고루 구입해본 것 같다.

당근정말시러 닉네임을 쓰는 이 요리 블로거의 요리를 따라하기 만만치 않았다고 한 이유는, 첫째, 서너 단계만 거치면 근사한 요리가 짠 하고 완성되는 그런 요리가 아니고, 둘째, 간편한 시판 소스 사용이 거의 없는 대신 그녀만의 양념장을 미리 준비해놓아야 비로소 요리를 시작할 수 있으며 (물론 대안을 제시해놓은 경우도 있긴 하지만), 셋째, 이것도 되고 없으면 저것도 되요 식이 아니라 꼭 이거야만 합니다, 다른 것으로 쓰면 이 맛이 안나요 식으로 방법이 나와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막상 음식을 몇가지 만들어보고 맛을 보니 이런 거추장스러울지 모르는 점들이 슬며시 이 책의 미덕으로 자리잡는다.

대부분 요리책들을 보면 수록되어 있는 요리들이 다 거기서 거기인데 여기엔 나도 처음 보는, 그러나 그게 꼭 무슨 잔치 요리는 아닌, 있는 재료의 배합인데 한번도 이렇게 한번 만들어볼까 생각해본 적 없는 구성의 음식, 이 책에서 처음 구경하는 음식들이 수록되어 있다는 것도 특징이다. 요리가 블로그에서 책으로까지 나올 때는 이 정도는 되야하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든다. 해본 것만 예를 들어보자.

처음 해본 것이 소고기 가지국. 소고기 뭇국, 소고기 배추국, 소고기 미역국, 소고기 넣고 끓이는 국이라면 이 정도가 다 였는데 소고기 가지국이라니. 도대체 맛이 상상이 되지 않는다. 막상 끓여보니 식구들 반응이 좋다. 이 책의 다른 요리들도 그렇지만 결코 입에 넣는 순간 감칠 맛이 확 돌아 단번에 입맛을 사로잡는, 그런 요리가 아니다. 대신, 뭉근히 그 깊은 맛이 느껴지는, 진국의 맛이랄까. 제일 처음 만들어본 음식이 이러하니 신뢰가 가서 다른 음식으로 넘어가보았다.

경상도식콩나물뭇국. 무를 채썰어 콩나물과 함께 끓이는 국. 그게 전부. 다른 특별한 재료가 더 들어가지 않는데 이것도 괜찮다. 입을 자극하는 것이 아니라 입을 편안하게 해주는 맛이랄까.

부추대패삼겹살말이. 고기를 좋아하는, 그것도 아주 많이 좋아하는 아들과 고기를 안먹는 엄마. 바로 우리 집이다. 그래서 고기 들어가는 음식을 할때 순전히 레시피에 의존하거나 냄새로 맛을 대신 하고 있는데 이 책에는 고기를 이용한 요리가 많다. 저자가 주로 많이 이용하는 것이 바로 대패삼겹살. 그냥 불에 구워만 먹는 대신 다용도로 이 대패삽겹살을 사용하고 있었다. 때로는 구이용으로, 때로는 베이컨 대용으로, 때로는 찌개에 들어가는 고기로, 때로는 부침개에. 베이컨으로 아스파라거스 등을 돌돌말아 구워내는 요리만 봤지 잘 안먹는 채소를 대패삼겹살에 돌돌 말아 구워먹는 방법은 왜 생각을 못했을까. 역시, 군소리 없이 속에 들어있는 부추까지 잘도 먹는다.

레몬소금닭날개조림. 우유에 재어놓기, 밑간 미리 해놓기 등, 냄새와 불순물 제거를 위한 전 단계가 있어야 하고, 익히는데 은근히 시간이 오래 걸리는데 또 제대로 잘 익혀야하는게 닭요리. 튀기면 빠르지만 별로 선호하진 않아 물에 일단 삶아내어 요리하는 때가 많은데 그러다보면 고기의 맛이 삶는 동안 다 빠져나오는 것 같아서, 하면서도 찜찜한데 여기서는 물에 직접 넣어 익히는 대신 끓는 물에 4-5분 담가 두어 해결했다. 그것으로도 충분하다고. 양배추를 한켠에서 함께 조리는 방법은 왜 생각을 못했담. 이것도 성공.

비빔국수는 따라해보려다가 첫 단계부터 간장물 만드는데 메밀차 이용하라는데서 막혀 포기. 하지만 이유는 짐작이 간다. 메밀차의 구수한 맛을 넣어주라는 것이겠지. 이런 요령은 아무나 가지고 있는게 아니다.

감자달걀국. 감자국은 늘 양파넣고만 끓였는데 달걀이 들어가니 부담없이 단백질 보충도 되고 좋다. 아침국으로 제격.

가지나물. 고춧가루 없이 간장과 참기름만으로 충분한 맛을 내는 걸 난 왜 그동안 이것 저것 넣어 무치고도 결국은 남은 반찬으로 나 혼자 처치해야 했는지.

유자청멸치볶음. 아무도 안먹어 고민이던 선물 받은 유자청을 멸치 볶는데 넣으니 제격. 나는 젓가락 아니라 숟가락으로 퍼먹는다 ^^

오징어폭탄볶음. 이것도 이 사람의 인기 레시피 중 한가지인가본데 호일에 싸서 익히는 대목만 빼놓고 따라했다.

바로 어제 저녁에 한 이북식닭고기초무침, 지금 냉장고에서 숙성중인 오징어젓까지, 겨우 2주 동안인데 따라해본 것을 다 적을 순 없다. 저염간장, 마늘기름은 이미 냉장고에 넣어놓고 잘 이용하고 있는 중이고.

시험 삼아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인데 오늘이 반납일.

심각하게 고려중이다. 구입을 해야하지 않을까 하고.

 

 

내가 따라하지 않은 점 두가지:

1. 가지나물할때 가지를 랩에 씌워 렌지에 돌려 익히는 것 (랩은 음식과 직접 닿은 상태에서 렌지에 돌리지 않는다)

2. 오징어폭탄볶음 할때 호일에 싸서 익히는 것 (알미늄 호일 역시 음식과 닿게 조리하지 않는다)

 

 

(닉네임에도 불구하고 당근 들어가는 레시피가 있긴 있었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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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icare 2016-06-07 16: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아, 이 책 가지고 있는데 시도할 엄두가 안 났었어요.
그러면서도 2탄인 김치책까지 샀으니...
좋아보이는 요리책을 사재는 습성,아직 다 못 고쳤나봐요.
하지는 않더라도 사두면 언젠가는...요러고 있네요.

hnine 2016-06-07 17:54   좋아요 0 | URL
hanicare님도 가지고 계시다니 갑자기 더 이 책에 대한 호감도가 팍! 하고 올라가네요 ^^
이 책에 나오는 음식 제가 해본 것들의 특징은 맛을 보았을때 심심하다, 그렇지만 맛없지 않다, 이렇게 표현해야할까요? 심심하다는건 간이 그렇게 세거나 자극적이지 않다는 것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맛없지 않다는 것, 그것이 이 사람의 비장의 무기인 것 같아요.
우왕~ 김치책도 사셨구나~ 김치책이야말로 저는 엄두도 못내고 있어요. 그 책 보고 해보고 싶어지면 어떡하나, 쓸데 없는 걱정부터 하고 있답니다.

hellas 2016-06-07 17: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분 레시피는 정말 믿음주는 맛을 내요. 김치도 수고스럽지만 해보면 반하게 됩니다 :)

hnine 2016-06-07 18:01   좋아요 0 | URL
hellas님께서 서재에 이 책 좋다고 쓰신 글을 읽었었지요 ^^ 기억하고 있습니다.
김치책, 우후~!
 

 

 

 

 

 

 

 

 

 

 

 

 

 

 

 

 

 

 

 

 

 

 

 

 

 

 

 

 

 

산딸나무 꽃

지휘자

수녀 모자

 

 

 

 

 

(나만 그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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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icare 2016-06-07 16: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산딸나무,이름 알아내기 전까지는 저 혼자 종이꽃 나무라고 불렀어요.
흰 종이를 오려낸 듯 납작한 꽃이 싱그러운 나무죠^^

hnine 2016-06-07 17:18   좋아요 0 | URL
저도 이름 모르고 사진 올렸더니 서재 친구분께서 이름을 알려주셔서 그담부턴 잊어버리지 않게 되었어요. 저 사진만 해도 2-3주 전에 찍었는데 어제 보니 저 종이장 같은 꽃잎은 떨어지고 가운데 동그란 열매만 남아있는 것이 눈에 띄기 시작했더라고요. 이제 그게 빨간 색으로 변해가겠지요.

qualia 2016-06-15 19: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그래요~ㅎ ^^

hnine 2016-06-15 21:39   좋아요 1 | URL
그래보이나요? 연상하길 좋아해서 머리에 늘 딴생각이 많답니다 ^^
 

 

 

 

보리밭 사잇길로 걸어가면

뉘 부르는 소리 있어

발을 멈춘다

 

박화목 작사, 윤용하 작곡 보리밭

 

무심코 부를땐 모르는데

가사를 가만히 음미하면

이렇게 아름다운 가사가 또 있나 싶다

 

 

 

 

 

 

 

 

 

 

 

 

지난 주말에 갔던 고창 청보리밭

 

 

 

누군가 부르는 것 같아 발을 멈추는 사람의 마음 속에는

나를 불러주기 바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혹시나 해서 발을 멈추고 귀기울이다가

다시 가던 길을 갈때의 마음을 헤아려본다

그리움이라는 말의 쓸쓸함이 마음을 적시고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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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reka01 2016-06-04 21: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고창,,,언제 여기도 사진 담으로 간적이 있었어요..가까이에 불갑사 상사화도 담았던 적이 기억나네요^^..

hnine 2016-06-05 06:44   좋아요 0 | URL
사진 찍는 분이라면 꼭 가보실만한 곳이더군요.
상사화 불갑사, 사진으로만 구경해서 눈과 귀에 익은데, 불갑사도 여기서 가까운지 몰랐네요. 이날은 시간이 여의치 않아 다 못들렀지만 미당 서정주 문학관, 고인돌 박물관, 선운사 등등, 가볼만한 곳이 많더라고요.

stella.K 2016-06-05 13: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멋지네요!^^

hnine 2016-06-05 14:16   좋아요 0 | URL
지난 주 제가 갔을땐 이미 보리를 많이 벤 상태였어요. 오는 사람들을 위해 일부 남겨놓고 메밀을 심고 있더라고요. 보리밭이지만 보리만 심는게 아니라 시기에 따라 보리, 메밀, 해바라기 등을 돌려가며 심는다고 하네요. 서울에서 가기엔 좀 멀까요? 대전에서도 2시간 좀 넘게 걸렸거든요. 언제 기회 만들어 한번 가보시면 좋을 것 같아요. 보리밭이가운데 사람 지날 수 있게 길을 만들어놓았는데 구불구불해서, 따라 걷다보면 다음에 뭐가 나올지, 길이 끝날지, 다른 길과 만날지, 닥쳐보기 전엔 안보이는 묘미가 있더라고요.

Jeanne_Hebuterne 2016-06-07 06: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람이 스치는 소리가 울음소리처럼 들릴 것 같은 밭이에요.

hnine 2016-06-07 08:24   좋아요 0 | URL
네, 바람이 스치는 소리 속에서 여러 가지 소리가 들리더군요. 뭐라고 형언할 수 없는 소리가요.
결코 화려하지 않은 식물인데 보리가 밭을 이루니 참 좋더라고요. 메밀밭도 그렇겠지요?
사람밭에서 일어나는 온갖 복잡하고 피하고 싶은 일들을 생각하면 보리밭은 너무나 대조적이지요.

다녀온 이후로 보리밭 노래를 아직까지 입에 달고 살고 있습니다 ^^
 

 

 

 

 

 

 

 

 

 

 

 

 

 

 

 

 

 

 

 

투병중 엮은 시집이라니

얼마나 더 절절할까 싶어,

읽는 사람 마음을 얼마나 아릴까 싶어,

얼마나 더 허무를 가르칠까 싶어,

차라리 읽지 말까도 했지만

결국 읽을 거라는걸 알고 있었지.

 

눈이 한번만 지나가지 않고 되돌아 다시 와야했던 구절들을 모아본다. (괄호안은 페이지수)

 

손이 사라진 손금의 길 (14)

허무에 추태를 부리는 감정과도 화해를 하세요 (18)

자기를 버린 만족들이 뒹구는 어둔 뒷골목을 지날 때는 태연을 가장하세요 (18)

희망은 가끔 왔으나 언제나 머물지 않는 객(客)이었다 (25)

 난 슬픔이 좋아죽겠다 돌아가고 싶은 고향처럼 좋아 죽겠다 내가 자석인지도 모른다 슬픔이 달라붙지 않고는 못견디는 자석인지 난 슬픔이 좋아죽겠다 슬픔 없인 혼자 못산다 이제는 (80-82)

내가 웃을 때 운 자여, 이제 내가 운다 그러니 웃으라 삶은 우울증에 걸린 흉한 나체이니 (90)

 

해설을 쓴 장석주는 그녀의 시를 루마니아 출신 철학자 에밀 시오랑과 견줄만하다 했다. 비극적 허무주의.

일일이 체험하지 않더라도 삶은 외로움, 절망, 사랑, 그 무엇이든 죽음으로 가는 우울한 행열이라고 느끼는 이상, 허무하고 속절없을 수 밖에 없다는 에밀 시오랑의 대전제이자 결론을 일단 인정한다면, 니체는 그런 허무하고 헛됨은 학문으로도 구제할 수 없고 오로지 예술로 구원받을 수 있다고 했다.

나는 그냥 저항없이 동의하고 싶다.

그게 전부가 아니라고 발버둥 쳐보고 싶지 않다.

부정하고 불안하느니

인정하고 편안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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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내 눈 앞에 있고 내 손에 쥐고 있는 책인데 알라딘에서 검색이 되지 않는다. 할 수 없이 페이퍼로 리뷰를 대신한다.

1947년생 작가 이 덕자. 이 소설은 그녀가 1979년에 썼고 1980년에 출판되었는데, 내가 중학교때 읽었는지 고등학교때 읽었는지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

오래전 미국으로 도미하였고 줄곧 그곳에서 살고 있다고 알고 있는데 얼마전 신문에서 우연히 이 작가의 투병 소식을 접했다. 그리고 세상에 그리 많이 알려지지도 않은 이 소설을 읽은 후로 무엇에 혹했는지 그녀의 소설은 다 찾아서 읽었던 오래 전 기억을 오랜만에 다시 떠올리게 되었다.

<햇귀>가 그녀의 첫 소설은 아니다. 하지만 내가 읽은 것으로는 첫 소설. 거의 삼십 년 전에 읽은 그 소설을 문득 다시 읽어보고 싶어졌다. 인터넷 서점마다 다 검색을 해보았다. 그러나 파는 곳이 없다. 결국 이름도 처음 들어보는 중고서점 사이트에서 겨우 찾아내었고 주문한지 며칠 안되어 도착한 이 책은 정말 요즘은 구경도 하기 힘든 인쇄본, 얼룩얼룩한 종이는 금방이라도 바스러질 것 같았다. 마치 그 동안 흐른 세월이 형체화되어 있는 듯하여 반갑고도 쓸쓸했다.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이민간 열일곱살 소년 성노. 의사인 아빠는 미국에서 다시 의사 자격증을 따기 위해 힘든 의학 공부, 실습 과정을 해야했고 그러는 동안 가족의 생계를 위해 엄마는 일을 해야했다. 성노 또한 안통하는 언어로 몸과 마음이 시달려야 하는 동안 터울 많은 동생 두노도 태어났다. 가족 모두 좀 적응이 되어간다 싶을 때 성노의 엄마와 아빠는 별거에 들어간다. 자꾸만 벌어지는 틈을 어쩔 수 없어 이혼을 하기 앞서 1년 시험 별거에 들어가게 된것. 성노와 동생 두노는 엄마와 함께 살고 가끔 아빠가 사는 곳을 방문하는 식으로 지낸다. 열일곱이라는 나이는 별다른 부연 설명 없이도 얼마나 아슬아슬하고 날이 선 시기인가. 그런데 이 소설 속 성노는 우리가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성숙한 소년이다. 어른들에게 자기 감정을 표현하고 주장하고 요구하기 보다는 오히려 어른들 사이에 일어나는 일들, 이해하기 어려운 세상 일을 어떡하든 이해하고 포용하려고 노력하는 사려깊은 아이이다.

이 소설을 쓸 무렵 작가 역시 미국으로 도미한지 오래되지 않은 때였던 만큼 그녀의 목소리가 소년 성노를 통해 많이 들어가 있다는 것을 책 여기 저기서 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 왜 아니겠나.

마가렛 미드 여사가 말하기를 여성이 진실로 해방하고 싶으면 자기 손으로 자기가 먹을 빵을 벌라고 하였어요. (125쪽)

 

외롭다는 것은 유령이야. 곧 사라지지. 그러나 그것한테 약점을 잡히면 큰일 나.

 

바로 위의 문장을 보자마자 머리에 불이 반짝 하고 들어왔다. 이 책을 처음 읽던 삼십 몇년 전에 바로 저 문장을 노트에 베껴 적었던 게 기억났기 때문이다. (그 노트를 찾아야하는데...)

 

모든 고난이 그에게로 와 그를 못 살게 굴었다. 그러나 끝내 고난은 그를 넘어뜨리지를 못하였다. (248쪽)

 

외로움과 고난을 대하는 작가의 태도를 알 수 있다. 영원하진 않을 거라는 것, 그러니 잘 견뎌내야하고, 나를 넘어뜨리지 못하게 하리라는 각오. 작가 역시 그렇게 그녀의 젊은 한때를 이 악물고 버텨나갔겠지?

 

이 책을 처음 읽었던 그때, 나 역시 책 속의 성노 같은 나이였고, 내가 좋아하던 아이가 성노네 가족처럼 미국으로 가버린 후였으며, 지금도 그렇지만 내 성격이 밝고 구김없는 아이보다는 외로움과 고난을 혼자 삭여가는 성노 같은 아이에 호감을 느끼기도 했다. 이 책을, 저자를 마음에 들어한데는 이런 것들이 종합적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삼십년도 더 지나 다시 읽어보니, 어딘지 매끄럽지 못하고 작위적인 구성이라는 느낌, 이야기의 전개가 산만하다는 생각도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가 열심히, 진심을 다해 썼다는 것이 더 크게 작용하니 나는 이 책의 흠을 더 이상 물고 늘어지고 싶지 않을 뿐이다.

 

 

 

('햇귀'-해가 처음 솟을 때의 빛)

 

 

 

 

 

 

 

아래 두 사진은 책뒷장의 광고 페이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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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6-04 21: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hnine 2016-06-05 06:46   좋아요 1 | URL
저 중학교때 여중생들 사이에선 사랑의 체험수기 돌려읽는게 유행이었답니다. 1권, 2권...해서 십몇권까지 있었던 기억이 나는데 저도 한번 읽어봤는데 그때 제 나이에 봐도 너무 뻔하고 유치해서 별로 팬이 되진 못했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