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병중 엮은 시집이라니

얼마나 더 절절할까 싶어,

읽는 사람 마음을 얼마나 아릴까 싶어,

얼마나 더 허무를 가르칠까 싶어,

차라리 읽지 말까도 했지만

결국 읽을 거라는걸 알고 있었지.

 

눈이 한번만 지나가지 않고 되돌아 다시 와야했던 구절들을 모아본다. (괄호안은 페이지수)

 

손이 사라진 손금의 길 (14)

허무에 추태를 부리는 감정과도 화해를 하세요 (18)

자기를 버린 만족들이 뒹구는 어둔 뒷골목을 지날 때는 태연을 가장하세요 (18)

희망은 가끔 왔으나 언제나 머물지 않는 객(客)이었다 (25)

 난 슬픔이 좋아죽겠다 돌아가고 싶은 고향처럼 좋아 죽겠다 내가 자석인지도 모른다 슬픔이 달라붙지 않고는 못견디는 자석인지 난 슬픔이 좋아죽겠다 슬픔 없인 혼자 못산다 이제는 (80-82)

내가 웃을 때 운 자여, 이제 내가 운다 그러니 웃으라 삶은 우울증에 걸린 흉한 나체이니 (90)

 

해설을 쓴 장석주는 그녀의 시를 루마니아 출신 철학자 에밀 시오랑과 견줄만하다 했다. 비극적 허무주의.

일일이 체험하지 않더라도 삶은 외로움, 절망, 사랑, 그 무엇이든 죽음으로 가는 우울한 행열이라고 느끼는 이상, 허무하고 속절없을 수 밖에 없다는 에밀 시오랑의 대전제이자 결론을 일단 인정한다면, 니체는 그런 허무하고 헛됨은 학문으로도 구제할 수 없고 오로지 예술로 구원받을 수 있다고 했다.

나는 그냥 저항없이 동의하고 싶다.

그게 전부가 아니라고 발버둥 쳐보고 싶지 않다.

부정하고 불안하느니

인정하고 편안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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