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선옥 마흔살 고백
공선옥 지음 / 생활성서사 / 2009년 2월
평점 :
절판


공 선옥 하면 내가 소설이든 수필이든 일단 읽고 보는 국내 작가 중의 한 사람이다. 마흔을 전후로 5년 안짝에 쓰인 글들을 모은 것이라고 하는데 작가가 머릿말에서 그랬듯이 마흔 살의 일기처럼 읽힐 수 있는, 어찌보면 소소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으나, 그렇게 소소하게 풀어 놓는 얘기가 그 상황에선 얼마나 감당해내기 힘들 수도 있었을지 짐작해보게 되는 그런 '공 선옥 스런' 글들이다. 그래서 수필이지만 소설처럼 읽히기도한 책.
스물, 서른, 마흔 고개를 넘는다고들 한다. 저자는 인생의 분수령 같은 40대 라고 표현하였다. 분수령이라. 다른 말로 turning point, 전환점이라는 의미일 것이다. 한치 앞을 모를 것 같던 2, 30대를 지나, 이제 앞으로의 인생도 어떻게 펼쳐질지 조금은 감이 잡히기 시작하는 나이, 받아들일 것은 받아들여지는 것이 가능해지는 나이, 조금씩 인간이 여물어가기 시작하는 나이, 이 세상에는 내 힘만으로는 안되는 것도 있음을 인정하기 시작하는 나이.
그래서였을까. 저자는 종교에 의지하게 되었고 그로 말미암아 마음에 평화를 맞아들이게 된 것 같다. 원망의 마음이 있던 자리에 감사의 마음을, 눈물이 있던 자리에 미소가 조금씩 찾아들고 있다니 말이다.
'초등학교 선생님이자 시인이었던 고 임길택 선생님이 그랬다. 모든 울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왜 우는지 묻고 싶었고 특히 어린아이가 울고 있으면 정말 가슴이 아프다고. (...) 누가 울고 있으면 아무리 모르는 사람이라 해도 왠지 그 앞을 그냥 지나치면 안 될 것 같아 지는 것이다. 하물며 우는 이가 어린아이임에랴.' 라고 시작되는 <아이들아, 울지 마> 란 글은 마음의 울림이 특별히 커서 베껴 써보기도 했다. 누구의 삶이든 만만한 삶은 없다. 그녀의 삶의 행로 역시 그녀의 잦은 이사 기록 만큼이나 질곡이 심했고, 그것이 이유가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오기로 단단히 뭉쳐 있는 듯이 보였던 이전의 그녀의 글들이 앞으로 조금씩 다른 느낌으로 읽혀지게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는 물음을, 이제 어떤 말을 하며, 어떤 글을 쓰며 살까 하는 물음과 함께 생각한다는 그녀는 천상 작가이다. 글 쓰는 일이 좋고, 앞으로도 글만 쓰고 살아야 할 운명이 되었음을 직감하는 것이 싫지 않다고 하는 그녀 말대로, 부끄럽고 아프기도 한 마음을 이렇게 울림이 있는, 진솔한 글들로 피원워기를 바래본다. 그리고, 그녀 정도의 작가라면 경제적 걱정 안하고 살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내 바램은 너무 속물스러운 것인가?

이 책을 읽는 동안, 어서 읽고 리뷰를 쓰고 싶은 마음이 마구 일었다. 코드가 맞는 글을 읽으면서 느끼는 일종의 행복감을 어딘가에 털어 놓고 싶었나보다.
마흔 여섯의 그녀, 행복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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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미 2009-08-15 08: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어느해 12월이었는데,이제 내가 한 살 먹는게 꽃이 피려고 준비하는 게 아니고
언제 폈는지 나도 모르게 피었다가 , 천천히 꽃이 지는 나이구나 싶더라고.
쉰 되면 , 지금의 나이도 <좋은 때>일거 같아.
좋은 때 잘 보내자... 가끔 보고

hnine 2009-08-15 11:57   좋아요 0 | URL
네 표현이 더 절절하구나. 지금의 나이도 좋은 때 맞지. 50대이신 어느 분이 그러시더라. 지금 40대만 되어도 이 세상에 못할 일 없을 것 같다고.
걱정마. 너는 볼때마다 한창 피어있는 꽃 같아.

2009-08-15 09: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8-15 12: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프레이야 2009-08-15 12: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흔여섯이군요, 그분이.
리뷰 보니 읽고싶어지는 책이에요. 담아갈게요.
주말 잘 보내세요.^^

hnine 2009-08-15 14:38   좋아요 0 | URL
마흔 여섯이란 나이가 예전엔 저랑 한참 먼 나이인줄 알았는데 말이죠.
당장 오늘을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더운 날이지요? 먹고 치우고 먹고 치우고 두번 했더니 벌써 3시가 다 되어가네요.

세실 2009-08-19 23: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 이책 이었어요.
제가 읽고 싶었던 책이.....
잊고 있었습니다. 감사해요^*^

hnine 2009-08-20 04:41   좋아요 0 | URL
세실님, 좋아하실거예요 ^^
 

  

오늘 읽던 책 중에 '수잔 피셔 스테이플스' 라는 사람의 책이 잠깐 언급되었습니다.

어느 한순간에 겪은 한 사건에 의해, 사람은 그 이전과 얼마나 다른 상태로 살아가게 되는지, 그 사건을 겪기 전의 영혼의 상태를 영원히 잃어버릴 수도 있다는 것을 말하면서 위의 저자 이름만 소개 되고 책 이름은 정확히 소개되지 않았길래, 인용된 이 사람의 책이 무엇인지 찾아보고 싶어졌습니다.

책 찾아보러 마을 도서관에 가는 길입니다. 예전에 여기서 이 사람 이름의 책을 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햇빛이 한창인 시각이었어요. 양산을 쓰고 갔지만 양산도 무차별적으로 뚫고 들어올 것 같은 햇빛이었습니다.

 



 

 

 

 

 

 

 

 

 

 

 

 

 

 

 

 

 

 

 

 

 



 

 

 

 

 

 

 

 

 

 

 

 

 

 

 

 

 

 

 

 

 





 

 

 

 

 

 

 

 

 

 

 

어렸을 때 우리 집에서는 이 나무를 '목백일홍'이라고 불렀는데 요즘은 '배롱나무'라는 이름으로 많이 부르더군요. 목백일홍이 여기 저기 만발했습니다. 

 

도서관에 도착, 수잔 피셔 스테이플스의 책이 두 권 있었습니다. 
<위험한 하늘>, 그리고 <감나무 아래서> 

         

 

 

 

 

 

 

 

 

 

 

 

 

  

 

 

오늘 읽은 책의 저자가 인용한 책이 오늘 빌린 이 두 권 중의 한 권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니 호기심이 마구 커집니다. 어서 읽고 싶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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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09-08-15 04: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우~ 도서관 가는 길이 너무 멋져요~~~
배롱나무가 훨씬 부르기도 쉽고 멋스럽지 않나요?^^

hnine 2009-08-15 07:56   좋아요 0 | URL
차 다니는 길 따라서 다니다가 바로 그 옆의 이 오솔길을 발견하고는 그 뒤로 줄곧 이 길로만 다녀요. 저는 처음에 배롱나무와 목백일홍이 같은 나무를 말하는지도 몰랐지 뭐여요.

bookJourney 2009-08-15 15: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도서관 가는 길이 너무 근사해요~.
경주에는 배롱나무 꽃이 지천으로 피어있더군요. ^^

hnine 2009-08-15 16:39   좋아요 0 | URL
한적한 길이지요. 서울 살다가 대전에 내려오니 어딜 가도 사람들 북적이는 곳이 별로 없더라고요.
경주도 여기처럼 배롱나무 꽃이 한창이군요.

하양물감 2009-08-17 07: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도서관 가는 발걸음이 즐거울 것 같아요...

hnine 2009-08-17 13:02   좋아요 0 | URL
그런데 요즘은 좀 더워요 ^^

하양물감 2009-08-18 08:08   좋아요 0 | URL
그렇기도 하겠네요^^ 그래도 우리 동네 도서관은 이런 길은 커녕 경사급한 오르막이라 접근성이 너무 떨어져요.

hnine 2009-08-18 16:50   좋아요 0 | URL
ㅋㅋ 그렇다면 운동코스가 되겠네요. 만약에 무거운 책까지 들고 가게 된다면...^^

하양물감 2009-08-18 19:21   좋아요 0 | URL
무거운 책에, 한솔이까지 끌고(?) 가려면...헉...^^;

삐삐 2010-06-07 01: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얼마전에 도서관에 다녀왔습니다. 회원 등록도 하고, 책도 빌리고... 얼마만인지 원.서울에 있는 종로 도서관인데 오래 된 건물이지만... 그래서 더 좋았답니다. 바로 사직공원과 붙어 있기도 하고요. 이제부터는 자주 가려구요.^^

hnine 2010-06-07 11:54   좋아요 0 | URL
삐삐님, 반갑습니다.
종로도서관이면 신축도서관과는 색다른 분위기가 있겠어요. 예전에 정독도서관은 한번 가본 적이 있는데 비슷한 분위기일 것 같네요.
 
악동일기
빅토리아 빅터 지음, 전영애 옮김 / 두레아이들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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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동도 이런 악동이 있을까. 아니, 이 정도 되니까 악동 (bad boy)이라 불릴 만 하고, 엄마 아빠로부터조차 이 세상에 아무 쓸모 없는 몹쓸 녀석이란 소리를 그렇게 자주 들음에도 그 부모가 너무하다는 생각이 안드는 것일 것이다.
그렇다면 이 열살 소년 조지의 본심은 무엇일까. 읽으면서 분석에 들어갔다. 남을 곤경에 빠뜨리는 것이 재미있어서? 아니면 부모에 대한 반항심에서? 이 사회에 대한 반항이라고 하기엔 아직 나이가 어리다고 생각되고 말이다.
이 아이는 일단 어떤 장난거리가 머리에 떠오르면 그 다음을 생각 안한다. 그렇게 여러번 가족으로부터 구박도 받고, 벌도 받고, 맞기도 하는 등 온갖 모욕을 받음에도 불구하고, 해보고 싶은 욕망과 궁금함, 호기심을 저지시킬 것은 이 세상에 아무 것도 없는 것이다. 나중에 자기의 행동이 얼마나 엄청난 결과를 가져왔는지를 알고 나면 항상 반성도 하고 후회도 한다. 하지만 자기는 그럴 뜻이 아니었다고 주장하거나, 그것이 뭐 그렇게 대수냐면서 사람들의 소동을 이해 못하기도 한다. 자기 자신은 물론이고 주위 사람들, 동물들, 물건들에 그렇게 손상과 피해를 입히고 다니면서도 그의 상상을 초월한 모험과 장난은 멈추질 않는다. 책 속의 이야기임을 알면서도 읽으면서 나도 모르게 조마조마한 순간이 얼마나 많았는지. 혹자는 이 책의 악동 조지에게 그 나이에 병행하는 사회화 과정에 조금 문제가 있다고 볼수도 있을 것이다.
저자는 이 책을 그저 재미있게 읽히게 하려고 썼을 수도 있겠으나, 이 사회의 가리워진 위선을 악동 조지를 통해 폭로하는 쾌감을 누리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표면으로 나타나는 사람들의 말과 행동 뒤에 숨어 있는 전혀 다른 속마음들이 조지에 의해 완전히 폭로되는 대목들이 유난히 많이 나오고 있고, 바자회나 파티가 그렇게 자주 열리는데에는 순수 사교나 친목 도모의 의도보다는 전혀 순수하지 않은 목적에 의해 의도된 것들이 많다는 것, 특히 조지에게는 혼기에 이른 누나들이 셋이나 있는 관계로 결혼과 관련하여 1800년대 말의 사회의 풍속과 사람들의 심리, 더불어 인디언과 흑인에 관한 인종 편견 등 그 당시 사회상이 '숨어서 그러나 잘' 드러나고 있었다.
이 책은 근래에 쓰여진 책이 아니다. 저자 빅토리아 빅터 (1831~1886)가 쉰살이 다 되어 썼다는 이 책은 처음에 뉴욕에서 익명으로 출간되었다가 미국과 영국에서 여러 판으로 찍혀 나왔고 독일에서는 번역가의 이름만 표지에 나와 있어 진짜 저자는 알려지지 않은 채로 사람들에게 읽히다가 나중에서야 진짜 저자가 알려지게 되었다고 한다. 저자는 왜 끝까지 익명을 고수하고자 했을까? 사람들에게 그냥 재미로 읽히기를 원했다면 그렇게 꼭 익명이기를 바랬을까?
악동의 마음은 어린 아이에게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성인들에게도 여전히 남아있지만 분출되지 못하도록 조절되고 있다가, 이런 악동의 픽션을 통해 쾌감을 느끼는지도 모른다. 그런 의미로 해석되기 시작하면서 더 재미있게 읽힌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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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종일, 아니 이틀 내내 비가 내린다.
어제 하필 큰 빨래를 해가지고는
하루가 지나도록 이불 커버는 마르지가 않고,
빨래통에 빨래는 쌓여가고,
더운데 창문도 못열고. 

아이가 집에 돌아올 시간에 맞춰
식빵을 구웠다.
이보다 더 간단할 순 없는 최소한의 재료를 가지고,
각 잡힌 그럴듯한 모양은 아니지만,
소박하고 시골스런 식빵을. 

냉장고로 들어가지 않아도 될 정도의
먹을 만큼의 양만 계량해서 만들고
다 구워진 후엔 내가 원하는 두께로 두툼하게 잘라서
잼 바르고, 치즈 한장 끼워서

"오늘도 즐거웠니?
자, 먹으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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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09-08-12 17: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나 충분히 그럴듯한걸요. 맛나겠어요.
저는 오늘 저녁은 아이들하고 김밥만들기입니다. 아이들하고 하면 워낙 번잡스럽긴 하지만 뭐 할 수 없죠. ^^

hnine 2009-08-12 18:38   좋아요 0 | URL
파는 것과는 다른 맛이긴 하지요. 그저 빵 본연의 맛, 그외엔 아무 맛도 없는 ㅋㅋ (전 그런데 그런 맛이 더 좋더라구요)
김밥은 또 저의 취약 요리 중 하나 아니겠습니까? 잘 안되더라구요 흑흑. 그리고 재료가 은근히 복잡하고 공이 많이 들어가는데, 입에 들어가는 것은 순간이고요.
아이들이랑 함께 만든다고 하면 아이들 정말 신나 하겠네요. 장면이 머리 속에 막 그려져요.
맛있게 식사하세요 ^^

상미 2009-08-12 20: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집에서 식구들 빵을 구우면서, 약국으로 일주일에 두번 배달판매 해주는 분이 있어서,
밍밍하면서 고소한 식빵을 먹고 있어.고마운 일이지.
단 한번도 내 손으로 구울수 있다고 생각 안해 봤단다.
나도 한가지쯤 못하는것도 있어야지 그치? 푸하하하

hnine 2009-08-12 20:35   좋아요 0 | URL
그런 부업도 괜찮을 것 같네. 식빵 만들어 배달이라.
한식과 다르게 제과, 제빵은 정확히 계량해서 해야하기 때문에 나 같은 덜렁이는 할 수 있는게 몇가지 안되지. 의도했던 것과 전혀 다른 결과물이 나오기도 하고 ㅋㅋ ^^

무스탕 2009-08-12 20: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주세요. 저 저렇게 맨식빵 무지 좋아해요. 사실 빵중에 제일 좋아하는게 저런 맨식빵이에요. 것도 덩어리를 손으로 뚝뚝 떼어먹는거요!
다린이는 좋겠다..

순오기 2009-08-12 22:19   좋아요 0 | URL
저도요~ 손으로 뚝뚝 떼어먹는 식빵 최고예요.ㅋㅋ

hnine 2009-08-13 05:17   좋아요 0 | URL
무스탕님과 순오기님은 저와 비슷하시네요. 저도 그냥 손으로 뚝뚝 떼어먹는게 제일 좋더라구요. 손으로 뚝뚝 식빵 떼어먹으면서 책 보기, 에너지 충전되는 시간이지요 ^^

꿈꾸는섬 2009-08-13 00: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너무 맛있겠어요. 식빵 본연의 맛이 날 것 같아요.

hnine 2009-08-13 05:19   좋아요 0 | URL
파는 식빵 만큼 부드럽거나 입에서 살살 녹거나 하진 않아요. 그래도 그냥 먹을만 하지요. 맛있게 봐주시니 감사합니다 ^^

조선인 2009-08-13 08: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흑, 군침이 절로 돕니다.

hnine 2009-08-13 09:42   좋아요 0 | URL
혹시 아침을 못드시고 출근하셨나요? 그렇다면 구경만 시켜드리는 것 같아 미안한걸요.

세실 2009-08-13 18: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저 빵을 언젠가 먹을 기회가 있겠죠? ㅎㅎ
어제 대전갔는데 교육청에서 토론자 하느라 긴장의 연속이었다는. ㅠㅠ
님 생각은 돌아오는 차안에서 나더라구요.

hnine 2009-08-13 19:45   좋아요 0 | URL
그때까지 실력을 더욱더 갈고 닦고 있겠습니다~ ^^
 

성운이는 떠났다.
이모네 가족이 미국으로 출국하기 며칠 전, 그날도 일요일이었고, 헤어짐의 인사를 나눌 겸 성운이를 데리러 오신 이모를 따라, 우리 집에 오던 날 처럼 커다란 가방을 들고 우리 집을 떠났다.
며칠 전 부터 뭐라고 헤어짐의 인사를 할까 궁리하던 내 머리 속을 지나간 문장은 아마 수십 개도 더 될 것이다. 그러면서도 서운한 내색을 안하려고 안간힘을 썼다. 왜일까? 나는 늘 누군가에게 내 마음을 알리는 것이 중요한게 아니라, 내 마음을 들키지 않는 것이 더 중요했었으니까.

딱히 뭐라고 인사를 해야할지 정하지도 못했지만, 말할 기회도 못찾고 있던 나는 결국 성운이가 이모와 함께 우리 집 현관을 나설 때에서야 가까스로 인사를 했다.
"잘 가. 공부 열심히 해."
마치 우리 집에 잠깐 놀다 가는 친구에게 인사하듯이, 아무 감정도 싣지 않으려 애쓰며 그저 잘가라고만 했다. 공부 열심히 해야하는 것은 내가 걱정할 일이 아니었는데도 그냥 자동 반사적으로 나온 말이었다. 한동안 함께 공부를 했었으니까.
"그래, 잘 있어 겨운아."
활짝 웃던 성운이.
'넌 서운하지도 않아? 미국으로 간다는 생각에 흥분되어서 서운하지도 않지? 그렇지?' 
난 속으로 원망의 대사를 중얼거리고 있었다. 성운이는 결코 들을 수 없는 대사를. 

바람이 빠진 공은 튕겨지지도 않는다. 다시 바람이 팽팽하게 채워질 때를 기다리며 그냥 한 구석에 처박혀 있을 뿐. 내가 바로 그 바람빠진 공이 된 기분이었다. 뭘 해도 신나질 않았다. 

오늘은 성운이가 미국으로 떠나는 날. 몇시 비행기라고 했더라? 학교에서 공부하다가도 나도 모르게 창문 너머로 하늘을 바라보기를 몇번. 그렇게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니 일하시는 아주머니께서 말씀하신다.
"성운이 학생이 아까 오전에 잠깐 다녀갔어. 뭔가 전해줄게 있다고. 거기 책상위에 올려 놓고 간다고 하데. 급히 그것만 놓고 바로 가더구먼."
책가방을 던지다시피 하고 방으로 달려가 책상 위를 보았다. 반투명 종이에 잘 싸여진 뭔가가 책상 위에 있었다.
'이게 뭐지?' 
 전혀 짐작 가는 것이 없었다. 종이를 풀러내니 그 안에서 우표들이 나왔다. 내가 가지고 싶어하던 나비 우표들. 성운이가 있는 동안 성운이의 영향으로 내가 시작한 것 중에 우표 수집이 있었다. 성운이는 우표 수집광이었는데, 자기가 모은 우표 책 한권을 가져와 내게 보여주면서 이건 무슨 우표, 저건 무슨 우표, 이건 얼마나 값어치가 나가고, 저건 우표의 도안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고 등등, 우표는 편지를 보낼 때만 사용하는 것이라고 알고 있던 나를 앉혀 놓고 신이 나서 설명해주곤 했다. 그러면서 나보고도 한번 해보라고 했다가 내가 시큰둥하자, 자기가 가지고 있는 우표 중에서 어떤 우표가 제일 맘에 드냐고 물었다. 마침 펼쳐진 페이지에 나비 우표가 보이길래 그것을 가리키며 대답했다.
"저거."
"아, 이 우표. 예쁘지? 이거 지금 이 우표책에는 한장만 꽂혀 있지만 이거 시리즈 우표거든. 집에 가면 다 있어. 내가 나중에 그것들 다 너 줄께."
성운이가 그랬던 기억이 난다.
그 약속을 지키려고 성운이는 떠나는 오늘, 우리 집을 들렸던 것이다.

갑자기 눈물이 핑 돌았다.
성운이가 우리집에서 떠나던 날도 안 흘린 눈물을, 나비 우표들을 들여다보며 흘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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