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날 아이는 창고로 가서 엉겅퀴 꽃이 수놓아진 이불을 잘 챙겨가지고 나와 사란국으로 향했단다. "네가 누구길래 나를 만나고 싶다고 하느냐?" 사란국의 왕이 물었지. "저는 땅 속의 몽당국에서 왔습니다. 폐하께 보여드릴 것이 있어서요." 아이는 가지고 온 이불을 꺼내어 왕과 왕비에게 내밀었지. "이게 뭐냐. 무슨 덮개 같은데, 이걸 왜 내게 보여준다는 것이냐?" 사란국의 왕이 말했지. "왕비 마마께서도 이것을 보고 혹시 기억나는 것이 없으신지요?" 아이는 왕비에게도 물었어. 왕비는 아이가 건네 주는 이불을 만져보며 여기 저기 살펴보다가 문득 생각나는 것이 있는지 소리쳤어. "아니, 이것은! 너 이것을 어디서 가지고 왔다고 했느냐?"
"이곡의 제목이 왜 '흑건 (Black key)'일 것 같니?" "흑건이요? 검은 건반이란 뜻의 흑건이요?" "응" "글쎄요..." "그건 쳐보면 알아." '모르는 제목을 쳐본다고 아나?' 그런데 정말 쳐보니까 알겠더라. 흰 건반보다는 거의 검은 건반 위에서 손가락이 왔다 갔다, 종횡무진해야하는 곡이었다. 빠르기는 또 얼마나 빠른지. 몇 주를 레슨을 받아도 여전히 손가락 미끄러지고 잘못 누르고... 결국엔 연습 부족이라고 생각하신 피아노 선생님께서 내리는 최후의 처방을 받고 말았지. "다음 시간까지 외워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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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opin의 연습곡 (Etude)중에는 곡의 고유 번호외에도 이를테면 별명이 붙은 곡이 유난히 많다. '나비 (Butterfly)' 라는 애칭이 붙은 곡을 쳐보면 정말 나비가 가볍게 날아다니는 모습이 보이는 것 같다, 피아노 건반 위에서, 소리 속에서.
영화 <말할 수 없는 비밀>을 보고 아침부터 Chopin의 음악을 듣고 있다. 대만 영화인데, 감독을 겸한 주연 배우를 보면서 섣부른 생각인지 모르지만 저기 천재적인 사람이 또 하나 있군 이라고 생각했다. 다른 사람들에게 안 보이는 것을 볼 수 있다는 것은 행운일까, 불행일까. 행운일까, 불행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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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다 보지도 못했다. 그런데 웬지 해피 엔딩이 아닐 것 같은 예감이 벌써 들어 오늘은 이만 보기로 한다.
나의 노래
오 장환 (1918-1951)
나의 노래가 끝나는 날은 내 가슴에 아름다운 꽃이 피리라. 새로운 묘에는 예 흙이 향그러 단 한번 나는 울지도 않었다. 새야 새 중에도 종다리야 화살같이 날러가거라 나의 슬픔은 오직 님을 향하야 나의 과녁은 오직 님을 향하야 단 한번 기꺼운 적도 없었더란다. 슬피 바래는 마음만이 그를 좇아 내 노래는 벗과 함께 느끼었노라. 나의 노래가 끝나는 날은 내 무덤에 아름다운 꽃이 피리라.
나: 왜 의사란 직업을 그만 두고 여기 (대학 연구실) 와서 일하기로 한거야? 그녀 (베네주엘라 출신) : 의사로 일하기엔 내게 좀 문제가 있다는 걸 알았어.
나: 문제? 어떤 문제?
그녀: 우리 병원에서 의사 한 사람이 하루에 봐야하는 환자수가 백명이 넘거든. 환자 한 사람에게 할당된 시간은 겨우 몇 분 정도야. 그런데 나는 환자 한 사람 앞에 놓고 20분도 좋고 30분도 좋고, 너무 시간을 끄는거야.
나: 왜?
그녀: 너희 나라는 어떤지 모르겠는데 우리 베네주엘라에선 말야, 의사에게 오는 환자들, 특히 나이가 많은 할머니, 할아버지 환자들은 와서 아픈 증상만 얘기하지 않거든. 어디가 아프다는 얘기를 듣고 있다 보면 그것과 상관없는 얘기까지 자꾸 이어서 하는거야.
나: 하하, 그건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 아닐까?
그녀: 기다리는 환자를 위해서 그걸 적당한 때 끊어야 하는데, 나는 그걸 못하겠는거야. 조금만 더, 조금만 더, 그러면서 들어주고 있다 보면 시간이 후딱 지나고. 그게 문제가 되었어. 그래서 나는 그 직업이 내게는 아무래도 맞지 않나보다 생각하게 되었지.
익숙하지 않은 분야의 일을 새로 시작하느라 좀 힘들어보였던 그녀. 다른 직업도 아니고 '의사'란 직업을 그만 두고 다른 나라까지 와서 왜 고생하나 싶어 물은 나에게 그녀가 한 대답이다. 내가 먼저 그곳을 떠났고 이후 연락을 해본 적은 없는데 지금 그 곳 홈페이지에 가보니 그동안 그곳을 거쳐간 사람들 명단에도 없다. 어디서든 잘 지내고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