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를 에듀아르 잔느레"라는 본명보다 "르 코르뷔지에"라는 이름으로 더 잘 알려져있는 그가 현대건축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것에 대해 의의를 가질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밤새 내린 눈으로 고속도로가 괜찮을까 잠시 염려를 했지만 늘 그렇듯이 다녀올때는 가길 잘했다는 뿌듯함으로 돌아올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리고 날씨가 이런 날은 오히려 평상시보다 도로에 차가 적을지도 모른다는 생각하고 나선 길이다. 정말 그랬다. 더구나 낮이 되니 해까지 쨍하고 나서 전시를 보는 동안은 겉옷을 벗어 손에 들고 다녀야했으니까.

 

 

 

 

 

 

예술의 전당 한가람디자인미술관에서 르 코르뷔지에 전이 열리고 있다.

코르뷔지에의 건축물 17개가 2016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것을 기념하기 위한 특별기념전답게, 8개 방으로 나뉜 전시장이 꽉 찬 느낌이었다.

평일엔 모든 전시물의 사진 촬영이 허용된다는데 주말인 어제는 첫번째방과 마지막방에서만 사진 촬영이 허용되었다.

전시장에 들어가자 그의 연대표와 함께 천장에 국기가 매달려있는데,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17개 건물이 소재한 일곱개 국가의 국기라고 한다.

 

 

코르뷔지에는 1887년 스위스에서 시계장인 아버지와 음악을 하는 어머니 사이에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아버지를 이어, 그리고 스위스에서 발달한 산업이기도 해서 처음엔 시계 만드는 일을 하기도 했으나 그가 정말 좋아하는 것은 그림을 그리는 것이었다. 화가가 되고 싶어하는 그가 그림을 그리는 것을 보고 너는 건축을 해보는게 어떻겠냐고 그의 건축가로서의 자질을 처음 알아보고 권유한 사람은 학교 선생님 레플라트니였다. 그 단서가 되는 숲을 그린 그림이 전시장에 있었는데 크지 않은 그림이지만 금방 보기에도 과연 숲을 풍경으로서가 아니라 도식화 하여 그린 것을 읽어낼 수 있었다.

 

학교를 졸업하고 그 당시 문화, 예술의 중심지라고 할 수 있는 파리로 이주하여 건축설계사무소에 들어가지만 건축을 배워본 적이 없는 그에게, 더구나 파리에서의 생활은 적응하는데 무척 힘들었다.

그러던 중 친구와 함께 떠난 동방으로의 첫 여행은 그에게 건축가로서 눈을 뜨게 하는 계기가 된다. 터키 이스탄불, 세르비아, 루마니아, 불가리아 등을 여행하며 그는 "천상이 이렇게 화려할까" 라고 표현했듯이 건축이 태양아래 벌어지는 찬란한 유희이자 영혼의 긴밀한 체계임을 느낀다. 그리스 파르테논 신전에서는 거의 한달 동안 머물며 그림을 그렸으며 박물관에서는 건축의 모티브를 연구했다. 그러나 과거의 건축물에서 받은 감동과 느낌을 그대로 재현하고자 했다면 오늘날의 코르뷔지에는 없었을 것이다. 오히려 그는 콘크리트를 재료로 하였고 "집은 살기 위한 기계다"라는 말에서 보여지듯이 인간을 위한 건축을 지향했다. 그것은 그때까지 지켜져오던 신을 위한 건축, 신을 염두에 둔 건축 양식에 익숙한 그 당시 사람들의 많은 반발을 사기도 했다.

 

전시장에는 그가 여행중 직접 촬영한 사진과 많은 스케치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었는데, 그는 늘 10x17cm 크기의 크로키 수첩을 분신처럼 가지고 다니며 80여가지 색깔의 색연필로 그림을 그리고 기록을 하고 관찰과 사고를 축적해나갔고 이것이 그를 거장으로 이끈 습관 중 하나라고도 한다.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17개 건축물은 모두 콘크리트 건축물이다.

이게 세계문화유산? 이란 생각이 들 수도 있는 이 작고 소박한 바닷가의 집은 코르뷔지에가 말년에 자기 어머니를 위해 지어드린 집인데 그래서 이름도 작은 집. 하지만 그의 건축물에서 눈을 돌려 주위의 빛이 어떻게 들어오는지, 어떤 조경, 어떤 배경위에 집이 들어앉아 있는지를 봐야 한다. 이 집의 경우에도 집의 크기를 압도하고 남을 바다를 바로 앞에 두고 있으며, 집으로 들어오는 빛의 방향이 단순한 우연이 빚어낸 것이 아님을.

 

 

 

 

 

일본 소재 <서양근대미술관> 건물. 나중에 설명할 필로티 양식이 여기에도 드러나고 있다.

 

 

 

 

코르뷔지에 건축을 얘기할 때 꼭 기억해야 할 <사보아 저택>

1928년 지어졌는데 지금으로부터 거의 90년 전 건물이 지금 봐도 "현대 건축"이라고 부르기에 어색함이 없다.

1921년부터는 그의 그림에도 나타나듯이 장식을 최대한 없애고 사물의 본질에 도달하려는 그의 노력이 건축에도 나타나서, 권위와 지배를 위한 건축 양식이었던 것이 오직 인간 중심, 인간이 살기 위한 건축으로 개념을 새롭게 창안하였고 이것이 현대 건축의 5원칙으로 지금까지 내려오고 있다.

 

* 현대 건축의 5원칙

1. 필로티 (Pilotis): 지면에서 건물을 띄우는 방식이다. 건물의 1층을 비움으로써 1층을 도시적 공간, 공적 공간으로 활용할 수 있게 된다.

 

2. 옥상정원 (Roof garden): 필로티로 띄워서 생긴 1층의 면적 손실을 옥상정원을 통해 휴식 공간으로 만회한다.

 

3. 자유로운 파사드 (Free facade, 건축적 산책로): 과거의 벽돌을 쌓아서 올리는 조적식 건축물은 외벽 (파사드)이 건물을 지지하는 목적으로 사용되기 때문에 파사드 디자인에 한계가 있었다. 하지만 철근 콘크리트 기둥을 사용하면서 건물의 하중을 분산하는 건축방식이 가능해졌다. 건축가가 파사드, 즉 건물 전면의 원하는 곳 어디에나 문과 창을 자유롭게 그려넣게 된 것이다.

 

4. 자유로운 평면 (Free plan): 두운 벽으로 공간을 막아버려야만 했던 과거의 건축 패러다임을 얇은 철근콘크리트 기둥으로 혁신시킨 돔-이노 이론으로 인해 벽면의 하중 부담은 사라졌고 벽이 필요치 않은 공간은 자유가 넘쳐났다. 기존의 벽 구조에 연속성과 개방성을 부여.

 

5. 가로로 긴 창 (Horizontal window): 조적식 건축방식에서는 창문을 수직으로만 확장할 수 있었다. 돔-이노 방식을 적용하면 창문을 수평으로 확장하는 것이 가능해져 빛을 실내로 더 많이 들일 수 있게 되었다. 이는 일조량이 부족한 서유럽의 기후적 단점을 기능적으로 풀어냄과 동시에 파노라마적 풍경을 즐길 수 있다는 디자인적인 강점을 지닌다.

 

 

 

 

자신은 카톨릭 교도가 아니라는 이유로 처음엔 이 성당 건축 제안을 거절했었다는, 그 유명한 롱샹 성당이다. 1955년 건축.

여기서 보기 전에도 사진으로 낯익은 성당이고 전시장에서 역시 사진으로 보고 있음에도, 인간의 머리에서 저런 건축물이 또 나올 수 있을까, 감동을 넘어서 경외감 마저 들었다.

 

 

 

 

3D 화면으로 보여주는 영상자료를 보니, 어느 방향에서 보느냐에 따라 수녀의 모자쓴 뒷모습이기도 하고, 열린 손이기도 하고, 안아주는 모습이기도 하며 여객선의 형태이기도 했다.

저 랜덤하게 뚫어 놓은 듯한 창으로 들어오는 빛은 인공 조명이 주는 밝기나 화려함과 비교가 되지 않는, 숭고함과 환상의 퍼포먼스를 하고 있었다. 사진과 영상물로 보는데도 눈물이 핑 돌 정도였는데 그런 느낌을 받는 사람이 어디 나뿐일까. 유명한 건축가 프랭크 게리도 "나는 롱샹 성당을 방문할 때마다 눈물이 난다..."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

 

이 전시물을 조금 지나면 그가 평소에 모아두었다는 솔방울, 조개, 게 껍데기 등이 유리 상자안에 전시 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 성당의 지붕은 그중 게 껍데기의 형태를 응용한 것이라고 한다.

 

 

 

전쟁과 산업혁명의 영향으로 도시로 몰려든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은, 작은 공간이라도 편안하게 살 수 있는 집이라고 생각한 코르뷔지에는 콘크리트를 이용한, 간편하고도 실용적인 새로운 건축 방식을 구축하게 되는데 이것이 위에 말한 현대건축 5원칙의 바탕이 된다.

 

집은 살기 위한 기계라고 생각한 (여기서 기계는 부정적이고 차가운 의미의 기계가 아니라 "도구"의 개념에 가깝다) 그의 생각은 모듈러 (Modulor) 이론과 돔-이노 (Dome-ino) 시스템을 창안하기에 이른다.

 

* 모듈러 이론: 사람이 팔을 들어올린 높이, 즉 사람이 몸을 기준으로한 수치들이 건축의 핵심이 된다는 이론. 좁은 공간에서 사람이 움직이기에 불편함이 없는 최적의 황금 수치를 건축에 도입하고자 하는 것으로 그 당시 많은 사람들의 반발을 샀으나 아인슈타인의 지지를 얻어 밀고 나갈 수 있었다.

 

* 돔-이노 시스템: 집을 뜻하는 돔 (Dome)과 이노베이션 (Innovation)의 합성어로서 적은 돈으로 빨리 짓는다는 기획. 전쟁 직후 새로운 건축 방식의 필요성을 절감하여 얇은 바닥판과 그것을 지탱하는 기둥, 오르내릴 수 있는 계단을 집의 구조로 고안한 것이다.

 

 

 

이런 그의 생각이 반영된 <유니테 다비타시옹>이다. 쉽게 말하면 최초의 현대식 아파트, 주상 복합 공동 주택이라고 보면 되는데, 1945년 건축이지만 적은 비용으로 실용적으로 살 수 있는 주거 공간을 목적으로 지어진 건축물임을 눈으로 봐도 알수 있으며, 지금까지도 전 세계, 인구가 많은 도시에 구현되고 있는 주거형태이다.

이 건물은 프랑스 마르세이유에 있는데, 위에서 말한 현대건축 5가지 요소가 역시 반영되어 있고, 이곳을 방문할 계획이 있는 여행객이라면 미리 인터넷으로 예약을 하면 실제 이곳에서 투숙이 가능하다고 한다.

 

참고로 우리 나라 최초의 주상복합 건물은 1968년 건축가 김수근이 코르뷔지에의 필로티 양식을 적용해서 건축한 세운 상가이다.

 

 

 

 

인도의 찬디가르에 조형물로 세우고자 그가 그린 그림 <열린 손>

 

 

 

 

 

 

 

 

 

 

 

 

이 열린 손 상징물이 세워지기를 바라는 마음은 코르뷔지에가 죽기 한달 전, 앙드레 말로에게 남긴 유언에 나타나있다.

"친애하는 앙드레 말로에게,

내 동료들과 친구들이 이 세상 사람들 모두에게...

이 열린 손 상징물이 평화로운 찬디가르의 하늘 아래 건립될 수 있도록 저 르 코르뷔지에가 마지막 간절한 도움을 청합니다"

 

 

그는 43세라는 늦은 나이에 모델 출신 이본느와 결혼하여 평행 자식 없이 살았는데, 그의 그림과 편지에는 부인에 대한 사랑이 숨김없이 드러나고 있다. 말년에는 바다를 앞에 두고 4평짜리 통나무집을 짓고 부인과 함께 살다가 부인이 먼저 세상을 떠나자 여든 가까운 나이까지 이곳에서 혼자 살다가 의사의 권고에도 불구하고 늘 즐기던 대로 바다에서 수영을 하다가 1965년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

 

 

 

 

 

그가 말년을 보낸 통나무집을 이번 전시에 그대로 재현시켜 놓아서 관람객이 실제로 그 안에 들어가 볼 수 있게 해놓았다.

 

 

 

 

 

 

 

 "르 코르뷔지에 부부는 이곳을 작은 궁전이라고 불렀다"

4평짜리  통나무집이지만.

 

 

 

 

 

통나무집 안의 그의 책상.

 

 

 

 

침대.

 

 

 

 

 

 벽에 붙어있는 편지와 그림들

 

 

 

 

 

 

 

 

 

 

 

 

 

 

 

사진을 올리지 못했지만 사실 전시장에는 거의 건축물보다 그의 그림이 더 많이 전시되어 있다. 그가 처음에 되고 싶어했던 것도 화가이고, 죽을 때까지 글쓰기와 더불어 그림을 손에서 놓지 않았기 때문이고, 그의 그림을 보면 건축하는 사람이면 어느 정도 갖추고 있는 정도의 그림 실력이 아니라 진정 화가 코르뷔지에라고 할 수 있는 정도로 뛰어나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는 "내 예술적 창조의 비결은 1918년 부터 날마다 그린 회화 작품에 있다"고 했다.

 

초기의 그림은 밑그림이 다 비치는 수채화였다가, 당시 한창 유행하던 입체파의 큐비즘 성격이 드러난 그림이 많은 시기를 거쳐 1921년 부터는 병, 물주전자 등을 대상으로 정물을 즐겨 그렸는데 장식을 없애고 사물의 본질에 도달하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볼 수 있겠다. 악기중에서는 바이올린의 모습도 많이 보이는데 바이올린이라는 악기의 곡선 형태가 그의 건축적 영감에 기여한 바 있을 거라는 생각이다.

 

회화와 건축을 따로 보지 않은 그는 회화나 건축이나 모두 공간으로 보았다. 화면은 표면이 아니라 공간이라면서, 마치 건축물의 평면을 다루듯이 회화적 공간을 통제했고 "설계했다". 실제 <흰사발에 대한 연구>라는 그림을 보면 사발이 마치 공간에 떠있는 것처럼 보인다.

 

코르뷔지에는 오장팡이라는 사람과 입체파에서 더 진화된 미술로서 장식을 거둬내고 본질만 표현하자는 "순수주의"라는 사조를 만들기도 했고, 이러한 생각은 그의 건축과 일맥상통한다.

 

1930년대 오면서 그는 스위스에서 프랑스 국적으로 귀화하였고, 그림과 건축에 대한 비평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그의 본명 대신 아버지와 외할아버지의 이름을 딴 르 꼬르뷔지에라는 이름을 쓰기 시작하였다.

 

 

 

 

 

 

 

 

전시장내에서 그의 그림 대부분은 사진 촬영을 할 수 없었으므로 전시장을 나와 기념품 샵에서 팔고 있는 그림으로 대신한다.

 

 

 

 

 

 

 

 

 

 

 

 

 

 

 

 

 

 

결국엔 "본질"만 남는다고 한 코르뷔지에.

이 천재적인 건축가의 전시 제목이 "4평의 기적" 이다.

내 인생의 본질과 만날 수 있는 더 할 것 없는 완전한 공간으로서 4평이면 충분히 행복하다고 했다.

명상과 성찰의 공간.

 

나이 들면서는 오히려 꼭 셔츠에 넥타이, 모자를 단정하게 차려입었다는, 예민하고 까탈스러운 화가, 그리고 건축가, 그리고 철학자.

 

"사유가 없으면 건축도 없다" - 르 코르뷔지에 -

 

 

어디 건축 뿐일까. 사유가 빠진 채 무엇인들 제대로 존재한다고 할 수 있을까.

사유는 없고 욕망과 잡념만 가득한 삶을 살고 있는 우리.

 

집에 돌아와 남편과 아이에게도 가서 보고오라는 말을 열번은 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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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아의서재 2017-01-24 08: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너무 잘 읽었습니다. ^^

hnine 2017-01-24 10:28   좋아요 0 | URL
너무 길다 싶으면서도 열심히 적어온게 아까와서 긴~ 페이퍼를 쓰고 말았어요. 그런데도 잘 읽어주셨다니 정말 감사합니다. 코르뷔지에는 학교에서 건축이라는 교육을 따로 받아본 적이 없대요. 하지만 미술 시간에 선생님이 그의 자질을 알아봐주셨다는 것이 중요한 출발점이 되었던 것 같고, 그가 모듈러 이론을 발표하고 누구의 동의나 지지도 받지 못할때 뜻밖에 아인슈타인이라는 유명인의 인정을 받을 수 있었던 것도 행운이었고요.
달걀부인님도 혹시 그의 건축물을 직접 보신 적이 있으신지...롱샹 성당은 저도 꼭 한번 직접 가서 보고 싶어요.

새아의서재 2017-01-24 10: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여행을 다니면서 자연스럽게 건축물에 관심을 갖게 되긴 하는데 아직 문외한이라서...롱샹성당은 못 가봤어요. 사실 처음 들어봤는데... 이 글 읽고 찾아봐야지 하고 있던 차었어요
^^

디와이밤비 2017-02-02 23: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용 중 돔 이노 시스템의 돔은 dome이 아닌 domus의 약자입니다.

hnine 2017-02-02 23:58   좋아요 0 | URL
아, 그렇군요.

에프알 2023-05-20 10: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감동적인 글입니다. 고맙습니다.

_ 일본에 소재한 건축물은 서양근대미술관입니다.

hnine 2023-05-20 13:59   좋아요 0 | URL
오래전에 쓴 글인데 읽어주시고 바로잡아주셔서 감사합니다.
내용에 반영하였습니다.
 
라요하네의 우산
김살로메 지음 / 문학의문학 / 2016년 1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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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소설을 좋아해서 편식하듯 읽어온 날들에 비하면, 한동안 읽지 않고 지냈다고 해도 그 기간은 잠깐일지 모른다. 그래도 이 책을 앞에 두고 보니 참으로 오랜만이란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이 한국 소설과 떨어져 지내온 나를 다시 흔들어 깨워줄 것인가.

표지 안쪽의 저자 소개글을 읽어본다. '안동에서 태어나 열두해를 살고 대구로 터전을 옮겨...'

안동이라. 글을 읽어보기도 전에 안동 출신이면서 내가 좋아하는 작가들 이름이 주루룩 떠오른다. 유안진, 권여선, 김서령... 나의 넘겨짚음일까. 이들의 글은 다르면서도 어딘지 공통점이 느껴졌었다. 뭐라고 분명하게 표현할 수 없는 그 분위기와 느낌. 김살로메의 이 책을 읽고나면 그 느낌이 혹시 더 선명해질까 아니면 그저 우연에 불과한 느낌이었다는 쪽으로 기울게 될까.

열개의 제목에서 처음 골라 읽은 것은 역시 책 제목과 같은 <라요하네의 우산>이었다. 나중에 다른 작품들을 읽고보니 이 작품 속 인물은 그래도 평범했다. 지미와 샌드리라는 이름도, 라요하네라는 특이한 여행지 이름도, 샌드리의 강박증도, 교도소 신세를 지고 있는 것으로도 모자라서 출소하는대로 다른 여자와 살기로 선포한 지미 남편도, 모모의 아르튀르라는 우산과 연결시켜 맺는 결말도. 극히 모범적이고 전형적인 단편을 읽었다는 느낌을 가지고 다음에 읽은 작품은 <알비노의 항아리>. 제목만 봐서는 어떤 내용인지 전혀 짐작이 가지 않는 소설 중에는 다 읽고 나면 그래서 더 좋은 작품이 있고, 제목에 비해 식상한 수준의 내용에 실망스러운 작품이 있는데, 억지스럽지 않으면서 참신한 내용이기가 쉬운가. 수백년이 흘러도 여전히 버티고 있는 가부장적 사고방식, 여자의 희생과 양보가 강요되는 사회의 한 풍경을 들여다보고 있는 나도 그 사회의 일원임을. <암흑식당>의 배경과 인물들은 또 얼마나 기발한지. 암흑식당이라는 아이디어의 출처가 어디든 상관없이, 배경과 주제와 인물 묘사가 딱 떨어진다는 느낌이었다. 개인의 내력은 곧 가족의 내력. 떨치려 몸부림치지 않는한 가족의 내력은 그대로 나의 몸과 정신에 자리잡고 내 인생 속에 되풀이된다. 좋아할 대상으로서 남자를 늘 옆에 두어야만 하는 주인공도, 도벽을 버리지 못하는 여동생도. 그래서 <귀휴>는 인정해야하는 쓸쓸함이었다. 적당히 추리 기법이 도입되어 궁금증에 끝까지 단번에 읽어야했던 <피의 일요일>. 작가는 뻔한 반전의 결말 대신 마지막 한줄에 해당하는 말은 비워둠으로써 이야기의 격이 살아있도록 했다. 이것은 <누가 빈지를 잠갔나>에서도 마찬가지. 누가 빈지를 잠갔을까? 빈지문이란 어떤 문을 말하는지 작품속에서 작가는 이렇게 저렇게 묘사하느라 애썼는데, 정확한 명칭은 몰랐어도 그게 어떤 문을 말하는지 나는 금방 떠오르더라. 지난 일을 기억하고 있다고 할때 과연 나의 기억은 얼마나 객관적일까. 무엇을 기억하고 있느냐보다 어떻게 기억하고 있느냐를 풀어나가다 보면 그 사람의 내면이 술술 드러나게 될 것이다. 빈지문이 무엇인지 금방 알아차렸듯이 <강 건너 데이지>에 나오는 듀란듀란의 리플렉스라는 노래를 일부러 검색해보지 않아도 알만한 세대인 나는 그 오래전의 그룹과 그들의 노래를 작품 속에 끌어다가 쓸 수 있는 작가의 솜씨가 부러웠다. <왼손엔 달강꽃>까지 읽으니 작가가 얼마나 자유자재로 작품 속 인물을 다양하게 설정하는지 탄복하게 되었다. 한지를 뜯어 인형을 만드는 일을 하는 여자. 그녀가 만들고 있는 인형은 단순히 장식품이 아니라 그 속에 이야기가 있고 그녀의 소망이 있고 상처가 있었다. 왼손에 달강꽃을 들려준다는, 인형 만들기의 마지막 단계를 남기고 이야기는 끝난다. 인형의 완성까지가 아니라 완성 이전 마지막 단계를 남기고 끝내는 것은 작가의 의도였을까? <아폴로를 씹었어>의 아폴로는 물론 우주선 아폴로가 아니라 나 어릴 적 구멍가게에서 팔던, 불량식품이라며 먹지 말라고 해서 쉽게 손이 안가던 추억의 주전부리 명칭이다. 글 쓰고 싶어하는 새터민 오희와 다른 새터민 사이의 갈등을 이렇게 의뭉스럽게 이야기 속에서 풀어내다니 작가가 다루지 못할 인물이란 없나보다 싶었다. <아빠는 시인이다>, 비교적 내용 예측 가능한 제목답게 장래 시인을 꿈꾸는 아들이 본 시인 아빠의 이야기이다. 요즘 같은 때 서사시를 주로 쓰는 아빠를 비록 삼류 시인이라고 단정할 수 밖에 없는 아들이지만, 그래서 시인이라는 자기의 꿈을 포기하는 대신 오히려 아빠를 위로하고 싶어하는, 자기의 꿈에 힘을 주고 싶어하는 따뜻한 아들이다.

 

작가는 열 편의 작품 속에서 다양한 인물 상을 그리고 있지만 그들이 딱히 우리 사회의 낮은 지대 인물을 대표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당신의 삶이고 나의 삶이기도 한, 겉으로 드러나는 직업이 무엇인가를 떠나서 우리가 과거에 걸어갔던 길일수도 있고 지금 걷는 길일수도 있는, 그런 인생들의 이야기로 받아들여진다. 그러니 일희일비 하지 말자고.

첫 소설집이라는데 이렇게 문장이 자연스럽고 원숙하고 넘침도 모자람도 없다는 느낌이 드는 것은 오래 공들이고 가꾸어온 시간들이 작가에게 주는 보상일까. <아폴로를 씹었어>에서 화자가 새터민 오희에게 그러지 않던가. 쓸 사람은 누가 뭐래도 쓰고 만다고. 쓰지 않고는 못배기기 때문에 쓰는거라고.

 

근래 주로 번역된 소설을 읽으면서 우리말임에도 이게 도대체 무슨 소리야, 신경을 곤두세워 어색한 문장을 반복해서 읽어야했다면, 우리말로 우리말답게, 우리 정서에 맞게 잘 쓰여진 소설을 읽는다는 것은 대단한 만족이었다. 저자가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문장 여기 저기서 느껴지는 한국적인 정서, 민중의 삶, 우리 전통의 음과 양. 피부를 찌르고 지나가는 짧고 통렬한 재미가 아니라, 낮고 깊게, 서서히 퍼져나가는 재미. 오랜만에 한국 소설 읽는 재미를 만끽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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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1-22 09: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hnine 2017-02-05 00:36   좋아요 0 | URL
아이쿠, 아닙니다. 그렇게 봐주시니 고맙습니다만 ^^
객관적으로 쓴다고 썼는데 모르겠네요. 저는 아주 재미있게 읽었답니다.

세실 2017-01-22 12: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당신의 삶이고, 나의 삶이기도 한.......우리 주변의 이야기일듯한.
벌써 읽으셨군요.
공들여 쓴 소설, 맛있게 익었죠. 참 멋진 팜므님^^

hnine 2017-01-22 19:33   좋아요 0 | URL
읽던 책이 있었는데 안그래도 진도가 안나가고 있던터라 결국 집어던지고 이 책 부터 읽었답니다. 가독성있더라고요. 다음 소설도 계속 내실게 틀림없다고, 저는 믿습니다!

2017-01-23 00: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1-23 05: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살균제는 꼭 살균제라는 이름표를 따로 달고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쓰는 비누, 주방세제, 화장품, 청소할때 쓰는 세정제 등에 소량씩 들어가있으니까.

 

2017년 1월 11일자 New Scientist에 살균제 관련 기사가 나와있어 읽어보았다.

 

 

What are antibacterial agents and should we avoid using them?

(살균제란 무엇인가. 사용하지 말아야하나?)

=New Scientist 11 Jan 2017=

기사 링크 https://www.newscientist.com/article/2116448-what-are-antibacterial-agents-and-should-we-avoid-using-them/

 

 

살균제란 무엇인가?

 

살균제란 균의 생장과 번식을 방해하는 화학물질을 말한다. 사실 비누 자체는 균이 물에 씻겨 나가도록 도와주는 화학물질일뿐이고 이것으로도 우리를 균으로부터 보호하기에 충분하다. 그래서 손을 씻을때 두 손을 서로 비벼주는 것이 중요한데 균이 손에서 떨어져나가게 하기 때문이다.

 

 

항생제와 살균제는 같은 것인가?

 

그렇지 않다. 항생제도 균을 죽이긴 하지만 사람이나 동물을 치료하는 약물로서만 사용된다.

 

 

어떤 화학물질이 살균제 역할을 하는가?

 

균을 죽인다고 하는 상품이라면 어떤 것이든 모두 살균제를 포함하고 있다. 살균제는 두 그룹으로 나뉠 수 있는데 잔기를 남기지 않는 살균제 (non-residue)와 잔기를 남기는 살균제 (residue)이다. 비잔기 살균제는 알콜이나 염소, 과산화물 같이 우리에게 친숙한 소독제제들이 포함되는데 언제부터인가 트리클로산 (triclosan)이나 트리클로카반 (triclocarban) 같은 화합물이 살균제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이것들은 알콜이나 염소와 달리 잔기를 남긴다. 이론적으로는 이 잔기가 살균제의 효과를 연장시켜 균으로부터 보호 효과가 더 오래 지속되게 한다고 알려져 있다.

 

 

미국 FDA에서 19종류의 살균제 사용 금지 결정 (2016년)

 

2016년 9월 미국 FDA에서는 19종류의 살균제 사용을 금지시키기로 결정했는데 여기에는 위에서 말한 triclosan이나 triclocarban 도 포함된다.

 

 

이유는?

 

이런 살균제를 오래 사용할수록 이런 화합물에 내성을 가지는 균이 출현할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이런 살균제가 계속 사용되어온 일부 지역에서 이미 내성균이 발견되었다.

더욱 염려스러운 것은 이런 살균제 사용이 항생제에 대한 내성균의 출현도 부추긴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살균제 사용을 피해도 균으로부터 안전할까?

 

살균제는 병원이라든가 면역기능이 약화된 가족이 있는 집 (화학요법 치료를 받고 있다든가 기관 이식을 받았다든가) 의 경우처럼 감염균 농도가 높은 장소에서 유용하다. 하지만 일반적인 집안 청소라든가, 손을 씼을 때는 평범한 비누 (normal soap, not an antibacterial kind) 와 물로 씻고 완전히 말리는 것으로 충분하다.

 

 

잘 모르고 무의식중에 살균제를 사는 일이 없도록 하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잔기를 남기는 살균제 (내성균의 출현을 부추키는) 사용을 피하고 싶다면 표백제와 과산화수소 사용으로 전환하는 방법이 있다. 이들은 효과는 있으면서 잔기를 남기지 않는다. 단, 사용할때는 사용방법을 잘 읽어보고 안전하게 사용해야한다.

 

※ 이상은 위에 링크된 기사 내용 중 발췌하여 정리한 것입니다.

 

 

가습기 살균제 사건, 치약속의 살균제 관련 보도로 한동안 시끄러웠다.

하지만 우리가 쓰는 비누, 화장품, 치약 성분 어디에도 "살균제"란 이름으로 표시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구입하는 소비자는 모른다.

Triclosan, Triclocarban. 이 두 성분이라도 기억해놓아야겠다. 하긴, 데x이라는 손세정제는 아예 이 성분 표시마저 숨기고 팔았다고 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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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재벌 회장의 젊음의 비결은 뭐뭐 라더라, 하는 루머를 기억한다.

이 기사를 읽고나니 왜 그 루머가 떠오르는지.

제가 떠올린 그 루머가 뭔지 짐작하시겠나요?

 

"Antibody can protect brains from the ageing effects of old blood" (New Scientist, Jan 16, 2017)

기사링크 ▶ https://www.newscientist.com/article/2118105-antibody-can-protect-brains-from-the-ageing-effects-of-old-blood/

 

 

혹시 수혈받는 일이 있을때 이 혈액이 과연 몇살된 사람, 어떤 건강 상태를 가진 사람의 혈액일까 생각해본 일이 있는가?

오래된 피는 기관들에 손상을 입힐 수 있고 노화에 기여하는 등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최근 오래된 피의 이러한 영향력으로부터 보호하는 새로운 물질이 개발되었다.

혈액이 노화에 미치는 영향이 처음 발견된 것은 다음과 같은 실험을 통해서였다. 젊은 쥐와 나이든 쥐를 함께 접합시켜놓고 혈액의 순환을 공유하게 해놓았더니 나이든 쥐는 기관이 더 건강해졌고 노화 관련 질병으로부터 더 보호받는 결과를 보인 것이다. 이 실험에서 알 수 있었던 것은 오래된 피에는 확실히 어떤 해로운 물질이 있어서 일부 손상을 일으킨다는 것이다.

과학자들은 이런 결과를 얻은 데서 그치지 않는다. 당연히 이 물질이 무엇인지 밝히고자 하는 것은 당연히 따라오는 순서.

캘리포니아 스탠포드 대학의 Hanadie Yousef 는 노화가 진행됨에 따라 사람 혈액내 VCAM1 이라는 단백질의 양이 증가함을 밝혀냈다. 65세 이상의 사람들에게서 이 단백질의 양이 25세 이하인 사람들에서보다 30% 높게 나타났다는 것이다.

이 사람의 다음 실험. 젊은 쥐에다가 나이든 쥐의 혈장을 주사한 결과 젊은 쥐에서 노화의 징후가 나타났다.

나이든 사람의 혈장도 쥐에서와 같은 효과를 보였다. 60대 후반 노인들의 혈장을 석달된 쥐 (사람의 20살에 해당)에 주사하자 쥐의 뇌에서 노화의 징후가 나타났는데 이때 VCAM1 억제물질과 함께 주사했더니 이러한 노화 징후가 나타나지 않았다.

이것을 실용화하여 사람에게 투여한다고 할때 문제가 되는 것은 우리의 뇌에 있는 특별한 장벽 (Brain Blood Barrier) 때문인데 이 장벽은 아무거나 뇌 안으로 투입되어 들어오는 것을 막는 역할을 한다. 그런데 이 VCAM1 억제물질이 타겟으로 하는 물질 자체가 이 장벽의 성분으로 이미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뇌 속으로 통과하는데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사람에게서 채취한 혈장성분을 쥐에게 실험해본 것까지 발표되었지만 이것을 사람에게 실험해볼 수는 없는 일이다. 그래서도 안되는 일이고.

이 VCAM1 억제물질이 약이나 주사제로 만들어 시판이 된다면, 굳이 모 재벌회장과 관련된 루머 속의 그런 일은 필요없어질 것이고 훨씬 간편하게 노화를 늦춰보자는 욕망을 달성시킬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위 실험에서 노화의 징후로 삼은 표지자는 주로 뇌와 관련된 것들이다. 노화란 아시다시피 어느 한 기관과 관련된 것이 아니라 총체적, 복합적, 종합적인 현상인데 과연 저 억제물질만 주사한다고 해서 전체적인 노화가 늦추어질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다. 우리 인체는, 생명 현상이라는 것은, 그렇게 만만치가 않다.

 

자연스레 늙고 자연스레 세상을 떠나는 일. 거기에 더 가치를 두고 싶지만, 너무 자신있게 말하진 않겠다.

 

 

 

* 이 기사의 출처인 New Scientist라는 잡지는 미국의 Scientific American과 더불어 영국의 대표적인 과학 대중 잡지이다. Nature와 Science가 그러하듯이 영국의 New Scientist가 미국의 Scientific American보다 역사가 좀더 오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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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전 아버지께서 중환자실에 입원하시고 몇주 되었을때 담당의사로부터 아버지에게서 항생제내성균이 검출되었다는 얘기를 들었다. 단순폐렴인줄알고 병원에 가셨는데 입원까지 하셨고, 입원하신 바로 다음날부터 정신이 왔다갔다하는 증상 (섬망)을 보이시더니 곧 의식을 잃으신 상태로, 그래도 이제나 저제나 차도가 있으시길 바라며 하루 두번만 허용되는 면회시간을 지켜 먼거리 불사하고 면회를 다니던 때였다.

"항생제내성균이라면 흔히 말하는 수퍼박테리아 같은거 말씀하시는건가요?"

"예, 그렇습니다."

아, 어떻하나. 그때만해도 어쩌다가 항생제내성균까지 들어왔다는 말인가 절망했는데 나중에 들어보니 중환자실에 들어가서 오래 지나면 수퍼박테리아 감염은 각오해야한다는 말을 역시 오랜 병원 생활끝에 어머니를 여의신 친지로부터 들었다.

 

말로만 듣던 수퍼박테리아가 이제 코 앞에 있다. 의약계에서 좀 더 강한 항생제를 개발해서 내놓기가 무섭게 그것에 내성을 가진 수퍼박테리아가 출현하고 (박테리아는 워낙 분열속도가 빠르기 때문에 그만큼 돌연변이가 나타나는데 걸리는 시간이 짧고, 그래서 인간에게선 수천 수만년 걸려도 나올까 말까한 돌연변이가 박테리아에게선 일년도 안되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그것을 치료할 항생제를 또 개발해내고, 그럼 그것에 대한 내성균이 또 나타나고, 계속 이런 줄다리기를, 그것도 사람의 목숨이 달린 줄다리기를 벌이고 있는 중이다. 과연 이 줄다리기의 최후 승자는 누가 될 것인가.

 

자그마치 26가지 항생제에 대해 내성을 가진 수퍼박테리아에 감염되어 세상을 떠난 70대 여성 얘기가 2017년 1월 13일호 사이언티픽 어메리컨에 나왔다. ("Woman Killed by a Superbug Resistant to Every Available Antibiotic" by Helen Branswell on Jan 13, 2017 Scientific American,  링크 ▶ https://www.scientificamerican.com/article/woman-killed-by-a-superbug-resistant-to-every-available-antibiotic/)

 

미국 네바다 주 르노에 사는 70대 여성이 치료불가능한 감염 (incurable infection)으로 지난 9월 세상을 떠났다. 그녀의 온 몸에 퍼져있는 항생제내성균은 자그마치 26가지 다른 종류의 항생제에도 듣지 않았다. 미국에 나와있는 모든 항생제를 다 써봤는데 효과가 없었다는, 미국 질병관리본부 소속 의사 Dr. Alexander Kallen의 말이다.

이 환자의 경우 오랫동안 인도에서 지낸 경험이 있었고 미국 이전에 인도에서도 통원및 입원 치료 받은 경력이 있다고 한다. 인도는 미국보다 더 항생제내성균이 보편화되어 있는 나라. 미국으로 돌아온 후 지역 내 병원에서 치료중 14개 항생제 모두 효과가 없었고 이런 예가 처음이자 병원에서는 아틀란타에 있는 질병관리본부로 시료를 보내어 더 검사를 요청한 것. 그 결과 미국에 나와있는 어떤 약으로도 생장을 막을 수 없는 균이라는 결과가 나온 것이다.

 

이번에 이 환자를 죽음으로 몰고간 박테리아의 이름을 정확하게 알고 싶으시다면, 바로 Klebsiella pneumoniae. 이것은 요로감염증을 일으키는 흔한 세균으로서 어떤 희귀한 신종의 세균이 새로이 나타난게 아니다.

이 환자의 병명은 Carbapenem-resistant enterobacteriaceae (CRE). 여기서 enterobacteriaceae라고 하면 보통 흔한 장내 세균을 말하며 carbapenem은 임상에서 많이 쓰는 항생제 이름인데 다른 어떤 항생제를 써도 효과가 없을때 최후로 써보는 항생제중 하나라고 한다. 그래서 CRE를 악몽의 박테리아라고 부르기도 한다고.

 

박테리아는 자기 살길을 찾아 끊임없이 항생제에 내성을 가진 형태를 출현시키고, 인간은 인간의 살길을 찾아 끊임없이 새로운 항생제 개발에 전력을 기울이고 있다. 어느 쪽이 이길 것인가. 물론 속도가 빠른 쪽이 될 것이다.

 

 

* 위의 링크를 따라 들어가보면 이 박테리아 Klebsiella pneumoniae 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캡슐처럼 생긴 작은 것이 박테리아이고 야구공 처럼 생긴 큰 세포는 환자의 백혈구일 것으로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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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onnight 2017-01-16 13: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무섭네요. ㅠㅠ;

hnine 2017-01-16 14:45   좋아요 1 | URL
아무리 지난 일 빨리 잊는다고 해도 작년 메르스 공포는 아직도 생생해요. 치료할 약이 아무것도 없는 상태라니, 상상만 해도 저도 무섭네요. 우리가 항생제 하나 더 개발하는 것이 내성균 한 종류를 더 보태는 결과를 낳고 마니 사실 승패가 따로 없는 줄다리기인 셈이지요.

stella.K 2017-01-16 13: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 무섭군요. 저도 오빠 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 그런 얘기 들었던 것 같아요. 원래 병원이 세균이 더 많다고. 웬만한 응급상황 아니면 병원은 다니지 말라는데 참 어려운 것 같아요. 병원이라는 곳은...ㅠ

hnine 2017-01-16 15:15   좋아요 1 | URL
저는 제 아버지만 운이 나빠 수퍼박테리아에 감염되신 줄 알았는데 그건 중환자실처럼 항생제를 많이 쓰는 병실에 있으면 각오하고 있어야 한다는 말에 너무 놀랐어요. 수퍼박테리아에 감염되는 건 주로 병원 내에서니까 입원을 권유받으면 병을 치료하기 위해서라는 생각만 해야하는데, 더 병에 걸리지 않을까 걱정해야하는 게 참, 딜레마이지요.

꿈꾸는섬 2017-01-16 16: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정말 무섭네요.
오랜 병원생활에 감염을 각오해야한다니..
걱정이 많으시겠어요.ㅠㅠ

hnine 2017-01-16 16:16   좋아요 1 | URL
평소에 면역력을 길러놓는 것 외에, 달리 할 수 있는게 없는 것 같아요. 항생제 남용이 불러 일으킨 결과라고 하고 맞는 말이지만 앞으로의 대책이 있어야할텐데 말입니다.
(제 아버지는 그때 퇴원못하시고 병원에서 돌아가셨어요)

꿈꾸는섬 2017-01-16 16:18   좋아요 1 | URL
ㅜㅜ

qualia 2017-01-16 16: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모든 (돌연변이) 박테리아에 듣는 만능 항생제 개발 가능성은 없는 건가요? 원리상 불가능한 건가요? (미)생물학과 의학이 엄청나게 발전했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지구 행성 인간의 과학기술은 정말 형편없는 수준인 게 맞는 것 같습니다.

검색해보니까 인체 세포 수는 30조 정도, 인체내 박테리아 수는 39조 정도라네요. (종전에는 그 수를 각각 10조 정도와 100조 정도로 추산했다고 합니다. 참고: http://scienceon.hani.co.kr/354921) 인간 뇌세포는 약 1000억 개 정도로 추산하고 있죠. 즉 이렇게 많은 세포와 세균들이 인간(의 마음과 몸)을 구성한다는 것인데요. 뇌에 대해서는 겨우 5%밖에 파악하지 못했고, 박테리아 하나 제대로 통제하지 못하는 인간이 지금 한창 발전 단계에 불과한 인공지능의 위험성, 로봇의 반란 가능성에 대해 호들갑스러울 정도로 과잉 경고하고 부정적 예측을 남발하는 게 정말 우습게 느껴집니다. 왜냐면 인공지능이나 로봇이 인간한테 반란을 일으키려면 독자적으로 생각 · 판단 · 결정할 수 있는 의식을 지녀야 하는데요. 프로그램이나 생명 없는 무기체에 지나지 않는 인공지능이나 로봇이 그런 의식을 지니려면 가까운 미래에는 전혀 불가능하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더군다나 그런 의식의 소유보다 더 중요하고 기본적인 게 인간 이상의 기동성을 확보해야 한다는 것입니다(다소 역설스러운 얘기지만). 현단계의 과학기술 발전 속도로 판단컨대 인공지능/로봇이 인간 이상의 기동성을 자체적으로 확보하는 것은 레이 커즈와일이 특이점에 도달하리라고 예측한 시점인 2045년보다 훨씬 더더 뒤의 일이라고 본다는 것입니다.

제가 이런 얘기를 하는 까닭은 위 hnine 님의 ‘수퍼박테리아’ 얘기를 읽고, 우리 인간 혹은 인류라는 우주적 생물종이 지금까지 확보한 과학기술이라는 게 참으로 위대한 수준이기도 하지만 사실은 정말 ‘보잘것없는’ 수준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거듭거듭 들었기 때문입니다. 즉 0.5μm~0.5mm 크기의 박테리아 하나 이기지 못하는 게 인류라는 생물이란 얘깁니다. 그럼에도 그 생물의 뇌는 1천억 개의 신경세포와 그 세포들 각각이 서로 연결된 100조~500조 개의 시냅스로 구성돼 있다고 하죠. (참조: https://en.wikipedia.org/wiki/Neuron) 이렇게 어마어마한 인간 뇌를 겨우 5%밖에 파악하지 못한 인간 자신이 앞으로 고작 10년 혹은 20~30년 안으로 인류한테 반란을 일으킬 정도의 인공지능/로봇을 개발한다는 게 전혀 말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인간이 파악한 5% 정도의 뇌의 비밀도 대부분 그 해상도가 아주 낮은 수준이죠. 1나노미터 아래의 양자 수준에서 벌어지는 뇌의 비밀은 거의 연구를 시작조차 못하고 있는 실정이고요. 즉 우리 인류는 아직 인간 뇌를 미세한 양자 수준에서 들여다볼 도구와 장비조차 마련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제가 위에서 든 것만으로도 요즘 언론과 방송, 대중교양과학서에서 호들갑스럽게 떠드는 인공지능/로봇의 인간 위협설은 그 근거가 매우 빈약하고 과장된 헛소리에 불과하는 게 증명된다고 봅니다. 그런데 흔히들 뭉뚱그려서 생각하는 인공지능/로봇의 일자리 위협 문제는 다른 차원의 문제라고 봅니다. ⑴ 인공지능/로봇의 일자리 위협 문제와 ⑵ 인공지능/로봇의 반란 문제, 인간 멸종 시도 문제는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이 두 가지 문제를 구별하지 않고 한데 뭉뚱그려서 논의하는 것은 일종의 개념 혼동 혹은 개념 착종이라고 할 수밖에 없습니다. hnine 님의 수퍼박테리아(슈퍼박테리아) 글을 읽고 흥미를 느껴 간단한 질문이나 하나 하려고 했는데요. 쓰다 보니까 좀 멀리까지 나간 것 같습니다. 하지만 hnine 님 윗글과도 꽤 긴밀한 관련이 있다고 봅니다.

hnine 2017-01-16 16:59   좋아요 2 | URL
워낙 방대한 지식과 자료를 요하는 문제라 저는 감히 뭐라고 말씀드릴 수준은 아닙니다만, 인간이 제어하기 쉽냐 어렵냐에 대상의 크기와는 관계가 없는 것 같아요. 박테리아가 가지고 있는 최상의 무기는 바로 분열속도이지요. 30분마다 그 수가 두배가 되니까 그런 속도로 분열하다보면 별별 돌연변이가 다 나오게 되는 것이지요. 그중에 내성을 가진 놈이 몇개만 있어도 또 그 엄청난 분열속도로 개체수를 늘려서 그 영향력을 행사하게 되니까요. 사실 박테리아보다 더 무서운건 바이러스일지도 모르겠어요. 얘네들은 아예 주위 상황이 내가 계속 분열하고 살아나가기에 영 아니다 싶으면 완전히 다른 사이클을 가동시켜 <죽은듯이 살아있기> 모드로 들어가니까요.
인간의 뇌는 아직도 밝혀지지 않은 부분이 너무나 많은 것도 사실이고 뉴런 자체보다 뉴런끼리 어떻게 연결되느냐가 더 관건이기 때문에 연결의 경우의 수는 뉴런의 수보다 엄청나고 그 기능과 역할을 다 파악하기란 쉬운일이 아닌 것 같아요. 인간을 위협할 정도의 인공지능/로봇은 아직 현실화되지 않은 상태이지만 수퍼박테리아는 이미 현실이기 때문에 저는 이게 더 무섭습니다 ㅠㅠ 어떻게서든 살아남으려고 하는 생존 본능은 30조 세포로 이루어진 인간이나 겨우 마이크로미터 크기의 박테리아나 모두 치열하긴 마찬가지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