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동네 공부방, 그 사소하고 조용한 기적
최수연 지음 / 책으로여는세상 / 2009년 2월
평점 :
품절


서른 셋. 어떻게 보면 스물 셋 보다 더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삶의 목표를 가지고 앞뒤 안가릴 수 있는 나이.

저자는 서른 셋 되던 해에, 있던 공부방을 맡아하는 것도 아니고 부산의 빈민촌을 찾아가 빠듯한 자금으로, 자기 돈까지 털어넣어 방을 구하고 아이들을 모아 공부방을 차릴 결심을 한다. 잠시 하는 것이 아니라 어쩌면 평생동안 그 일에서 벗어나지 못할 거라는 걸 몰랐을리 없다. 개인적인 꿈이나 생활, 여유는 많이 포기해야 한다는 것도 몰랐을리 없다.

엄마 아빠가 모두 일을 나가 거의 하루 종일 집이나 동네에서 떠돌며 시간을 보내야 하는 아이들, 엄마나 아빠중 한 사람, 혹은 두 사람 모두 계시지 않아 누군가의 보살핌이 필요한 아이들. 이런 아이들은 지금도 우리 주위에 많다.

1988년 부산의 감천동 산동네에 7평짜리 방을 얻어 시작한 공부방. 지금까지 저자는 그 공부방을 꾸려나가고 있다. 물론 저자 혼자의 힘으로 가능한 것은 아니고 뜻을 같이 하는 많은 자원봉사자의 힘이 이 공부방을 떠받치고 있지만 처음 이 동네에 공부방을 만들고 그녀가 한 노력은 단지 공부방에서 아이들을 지도하고 돌보하는 일 뿐 아니라 이 동네에 자신도 같이 섞여 들어가야 할 것 같다는 각오로 동네 아줌마들이 부업으로 하는 거의 모든 일에 직접 참여해보는 일을 서슴치 않는다.

크게든 작게든 이런 일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 놓치기 쉬운 점 아닐까 한다. 나 자신의 아집과 선입관, 편견을 내려놓고 그들의 생활에 몸을 푹 담그는 일. 행여 당신들은 나보다 어려운 처지이고 나는 우위에 있다는 우월감부터 내려놓아야 한다는 것.

공부방을 거쳐간 아이들이 벌써 성인이 되어 한 가정의 가장이 되어 있기도 하고, 대학생이 되어 아이들의 이모, 삼촌 (여기서 선생님을 부르는 명칭)이 되어 주기 위해 공부방을 다시 찾기도 한단다.

이 책도 저자 개인적인 고생담보다는 공부방 자체를 중심에 놓고 그동안 어떤 과정을 거쳐 현재까지 왔는지, 기억나는 아이들, 사건 위주로 이루어져 있다.

그녀의 얼굴을 보고 싶어 인터넷에 '우리누리 공부방'을 검색어로 해서 찾아 보았다. 벌써 쉰이 넘은 저자는 작은 체구에 그야말로 친숙한 동네 아줌마 표정이다.

남을 위한 삶을 사는 분들.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실천하고 있는 이런 분들은 정말 하늘이 내린 사람일까?

더불어 이 아이들이 공통적으로 안고 있는 문제점에 대해서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미래에 자신이 노인이 되었을 때의 모습을 그려보라는 말에 대부분의 아이들이 배우자나 다른 가족 없이 자기 한사람만 그려놓더라는 내용이 있었다. 물질적인 빈곤에 심리적인 빈곤, 정서적인 빈곤까지 안겨주기엔 너무 가혹하지 않은가?

우리 사회의 지나친 물질주의와 풍요와 개인주의때문에 생겨난 뻥뻥 뚫린 구멍들이 이렇게 남을 위해 자기 삶을 쏟아붓는 어떤 이의 피땀에 의해 조금이나마 메워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걸로 메워질 구멍인지 생각하면 가슴이 답답해온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파란놀 2012-10-11 10: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스로를 사랑하기에 그 길을 찾아서 걸어가리라 느껴요.
스스로를 가장 사랑하며 아름다움을 찾는 길일 테니까요.

hnine 2012-10-11 13:04   좋아요 0 | URL
이 책, 된장님 서재에서도 본 기억이 나요.

Jeanne_Hebuterne 2012-10-11 15: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은 2년여 전, 원 북 원 부산(부산의 독서 캠페인입니다) 선정 도서이기도 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가독성도 높고 저자의 뚝심도 느껴졌어요. 바윗덩이를 이겨내고 자라는 작은 풀같다는 생각도. 저도 hnine님과 비슷한 생각으로 책장을 덮었던 기억이 납니다.

hnine 2012-10-11 21:04   좋아요 0 | URL
읽으셨군요. 나도 나중에 이런 봉사 활동을 하고 싶다 생각하며 읽기 시작했다가 얼마나 부끄럽던지요. 이분에게는 봉사가 아니라 삶 자체였어요.
참 대단하신 분인데 자신의 감정이나 개인적인 넋두리로 흐르지 않게 수위 조절을 잘 하시면서 쓰신 것 같았어요.
제가 살고 있는 곳에도 분명 이름만 다른 우리누리 공부방이 있을텐데...
 
행복한 기적 - 나를 사랑하는 나를 만나러 가는 길
김영희 지음 / 다밋 / 2012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그날 그 방송을 듣지 않았더라면 아마 이 책을 찾아 읽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즐겨 듣는 라디오 프로그램에 이 책의 저자가 초대손님으로 나와 이틀에 걸쳐 자신이 살아온 이야기를 하고, 이번에 책을 냈다는 말을 덧붙였다. 마침 에세이 부문 신간평가단을 할 때여서 이 책을 관심 에세이로 올리기도 했다. 비록 선정은 되지 않았지만 대신 저자가 자신의 책에 관심을 보여주어 고맙다는 댓글을 남기기도 했다. 요즘 그때 내가 관심 도서로 선정해놓았던 책을 늦게나마 한권 한권 찾아 읽고 있다.

행복한 기적. 그녀의 삶을 그녀는 그렇게 이름 붙이고 싶었을 것이다. 저자의 엄마가 저자를 임신했을 당시 원치 않은 임신이었기에 아이를 뗄려고 별별 수단을 다 썼지만 기어이 태어나고만 것 부터 기적이라고 하니까.

네살때 엄마가 자살 시도한 것을 목격해야했고, 그때 당시 초등학교 6학년  큰오빠에게 업혀 병원으로 향하는 축늘어진 엄마의 모습을 보아야 했다. 지긋지긋한 현실에서 벗어나는 것이 인생의 목표였던 그녀는 고등학교를 졸업하자 마자 펜팔로 사귄 캐나다 남자 아이와 결혼을 목적으로 캐나다행. 그리고 몇달 만에 이혼. 실로 소설같은 이야기의 연속이다.

현재는 12년만에 캐나다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공인회계사 시험에 합격하였고, 재혼한 남편과의 사이에 세 남매를 둔, 49세의 커리어 여성이 되어 있다.

이 책 한권에 다 담지 못한 이야기가 얼마나 많을지 짐작할 수 있다. 웨이트리스, 청소부, 가게 점원, 이발소 보조에 이르기까지, 안 해본 일이 없다고 하니, 얼마나 많은 고비를 넘어야 했을까.

기적은 이런 고생 끝에 전문직 타이틀을 얻었다는 것이 아니라, 높은 장벽에 부딪힐 때마다 포기 대신 오기로, 당장 이루어내려는 조급함이 아닌, 오래 걸리더라도 하고 만다는 배짱으로 버틸 수 있는 그 의지력이 기적이라고 생각된다.

이 책 속에 그녀가 하고 싶은 말도, 난 이렇게 고생해서 목표를 달성했고 성공했노라는 것 보다는, 자기 처럼 힘든 상황에 있는 사람들에게, 주저 앉아 희망을 놓으려는 사람들에게 조금이라도 힘이 되고 용기를 주고 싶었다고 한다.

수려한 문장력에, 세련된 필체는 아니지만, 기적은 이렇게 노력으로 만들어내기도 하는구나, 그것은 분명히 읽는 사람에게 전달이 되리라 생각된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2-10-08 21: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10-09 08: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10-09 12: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10-11 13: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박사 과정으로 처음 연구실에 들어가 배운 것은 채혈, 즉 팔뚝의 정맥을 찾아 주사기 바늘을 꽂고 45ml의 혈액을 뽑아내는 것이었다. 그러면 그 혈액이 그날 나의 실험 재료가 되는 것이다. 그러려면 우선 내 실험을 위해 기꺼이 자신의 혈액을 내줄 지원자를 찾아야했다. 말도 안통하는 곳에서 그런 지원자를 구하기란 지금 생각해도 박사 과정 3년 반동안 다른 어떤 실험, 발표, 테스트보다 어려운 일이었다. 그렇게 채혈한 혈액은 내 실험의 특성상 4시간 내에 사용하여 결과를 얻어야 했고, 적어도 일주일에 두세번은 해야했기 때문에 그때마다 혈액을 내어줄 지원자가 필요했다. 정말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실험이 있는 날은 아침에 눈뜨면 학교가는 발걸음이 무겁기만 할 정도로 스트레스가 무지막지했다. 하지만 그거 아니더라도 영국 땅에 떨어진지 겨우 몇달 안되었을 때이니 스트레스 받는 일이 한두가지가 아니던 시기였으므로 꾹 참고 하루 하루 버티던 어느 날, 사건이 터지고 말았다.

예쁘장한 얼굴에, 웃는 낯으로 연구실로 찾아온 그녀. 그날의 내 실험을 위한 지원자였다. 그런데 막상 내가 채혈을 위해 주사기를 대는 순간 그녀가 기절을 해버린 것이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의자에 앉아 팔을 걷을 때까지만 해도 아무렇지도 않아보였던 그녀였다. 주사기를 보고 놀란 것일까? 앉아있던 의자에서 바닥으로 쿵 쓰러지면서 옆에 있던 책꽂이에 머리를 부딪혀 심하게는 아니지만 머리에서 피까지 나고 있었다. 얼마나 놀랐는지 나는 당장 지도교수에게 달려가 사건을 얘기하고 와달라고 도움을 청했다. 그런데 지도교수는 내가 하는 얘기를 들으면서도 전혀 흥분하지 않고 끝까지 침착하게 다 듣고 나와 함께 기절한 지원자가 있는 곳으로 왔다. 지도교수와 함께 왔을때 기절했던 그녀는 이미 정신을 차려 일어나 있었고 머리의 상처는 피가 조금 나고 멈춰 있었다. 그리고는 오히려 나에게 네 실험에 차질이 생기게 해서 미안하다고 하는 것이다.

그 지원자가 돌아간 후 지도교수는 나에게 다른 말 없이 이 말만 했다.

"기절의 원리는, 자기를 보호하려는 방법 중의 하나야. 뇌 쪽으로 허혈 상태가 되려고 할때 제일 빠르게 혈액을 그 쪽으로 공급하기 위한 방법이 최대한으로 머리의 위치를 아래로 낮추는 거니까. 그게 바로 기절이야. 잘 봐라. 심각한 경우가 아니라면 기절했던 사람들은 대개 5분 내에 다시 일어나게 되어 있어. 그러니까 그렇게 놀랄 일이 아니야. 알았지? "

나 때문에 혹시 지원자가 잘못되기라도 한다면 당장 지도교수에게도 책임이 돌아갈텐데 눈하나 깜짝하지 않고 기절의 원리를 설명하는 지도교수의 태도는 지금까지도 잊혀지지 않는다.

문제는 그 다음부터였다. 크게 놀라고 긴장했던 것이 풀리면서 울음이 터진건 바로 나였다. 눈물이 어쩌면 그렇게 멈추지도 않고 계속 나오는지. 이 낯선 곳에 와서 그때까지 긴장하며 쌓아왔던 설움이랄까, 그런게 이 사건을 계기로 그냥 터져버린 것이다.

아무래도 앞으로 이 실험을 다시 할 수 없을 것만 같았다. 아무 것도 못한 채 며칠을 왔다 갔다 하다가 드디어 큰 결심을 하고 지도교수를 찾아갔다.

"아무래도 실험 테마를 바꿔야겠다. 이 실험을 다시는 못할 것 같다. 나는 실험을 더 열심히, 더 자주 하고 싶은데 실험재료로 쓸 혈액을 내어줄 지원자를 구하지 못해 그냥 시간을 보낼때가 많다. 사람 혈액을 사용해야하는 이 프로젝트 말고 다른 프로젝트로 지금이라도 바꾸고 싶다."

이런 내용이었다. 그 연구실에서 사람 혈액을 이용하는 프로젝트는 나 혼자 하고 있었고 다른 사람들은 모두 쥐나 햄스터 등을 이용한 실험을 하고 있었다. 내가 손을 놓아버리면 그 프로젝트는 당장 중단된채 공중에 떠버리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며칠을 고심하다가 좋은 소리 못들을 각오를 하고 지도교수에게 어렵게 말을 꺼낸 것이었다.

그런데 지도교수의 답변은 나를 또한번 놀래켰고 지금까지 누가 나에게 조언을 구하거나 비슷한 의사를 표시할때 지도교수의 그 방식을 기억하려고 한다. 표정 하나 바꾸지 않고 침착하게 내가 하는 얘기를 끝까지 다 듣고난 후 지도교수가 한 말은,

"그래. 테마를 바꾸는 것도 가능해. 지금이라도 바꾸면 되지. 네가 지금 하고 있는 프로젝트가 아닌 다른 프로젝트 실험으로 바꾸었을 경우 잇점은 네가 더 이상 지금의 스트레스를 받지 않아도 된다는 것, 그리고 비슷한 실험을 하는 다른 동료들과 실험 과정이나 결과에 대한 의견 교환을 할 수 있어서 어려움이 있어도 쉽게 해결해나갈 수 있을 거라는 것, 그런거겠지? 반면, 지금 하고 있는 프로젝트의 장점은, 너 혼자 해야하기 때문에 어려움이 있는 대신 너 혼자만의 독보적인 영역이 생긴다는 것, 너 혼자 하기 때문에 어려움이 있는 대신 많은 사람이 하고 있는 분야가 아니기 때문에 논문을 더 금방 낼 수 있다는 것이지."

지도교수는 결코 이렇게 해라, 이건 반대다, 이게 옳다 따위의 말은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다만 이런 선택을 할 경우의 장단점만 알고 있는대로 내게 얘기해주었을 뿐이다. 결국 선택은 네가 해야한다는 뜻이다.

1996년의 일이다.

나는 결국 하던 프로젝트를 계속 하였고 그것으로 논문을 써서 졸업을 했다.

그렇게 침착, 냉정하던 지도교수는 내가 논문을 통과하고 한국으로 돌아가기 전 마지막으로 실험실에 들렀을 때 나를 꼭 껴안아주는데 눈에 눈물까지 글썽글썽한 걸 보았다.

 

가끔 친구들이나, 내 아이로부터도 이렇게 할까, 저렇게 할까 내 의사를 물을때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대신에, 예전에 내 지도교수가 했듯이 저렇게 얘기를 하고 싶은데, 이게 꼭 말을 하고난 후에 뒤늦게 생각나니 참... 단순히 맘 먹는다고 되는 게 아닌가보다.

 

 

엊그제 같았던 일들. 이제 이렇게 털어놓을 정도로 시간이 흘렀다. 이제는, 부끄럼때문에 불편하지도, 감정에 치우쳐 글이 흔들리지도 않을만한 시간이 흘렀다고 생각되어 시간날때마다 조금씩 기록해보기로 한다. 제일 큰 이유는, 이제 여기서 시간이 더 흐르고 나면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그 경험들이 아쉽게도 기억 속에서 점점 사라져갈 것 같아서이다. 그건 너무 슬픈 일이니까.

 

 

 

 


댓글(4)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마녀고양이 2012-10-10 05: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밤에 이 글이 왜이리 다가오는지요.
하지만 저런 객관성을 가진다는게, 그렇게 쉽지 않은 일인지라...
그런 태도가 좋다는 것을 알면서도 항상 마음이 먼저 울컥하니. ㅠㅠ

hnine 2012-10-10 08:05   좋아요 0 | URL
달여우님 서재에 다녀왔어요.
힘 내세요!

한남자 2012-10-11 11: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얼마전 추석때 동생에게 그런 말을 했어요, 애들을 대할 때는 오히려 애착?(사랑하는 마음, 아이가 꼭 잘 돼야 한다는 마음)을 놓고 말해보라고요(그런데 애들 문제는 저처럼 옆에서 말하기는 쉽지만 그렇게 쉬울리가 없겠지요) 글에 무척 공감이 되어서 쓴 말인데 비슷한 맥락인지 모르겠군요; 담백하게 쓰셔서 hnine님의 그때 그 경험들이 눈앞에 선하네요. 마치 소설의 한 장면을 보듯.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hnine 2012-10-11 15:07   좋아요 0 | URL
내가 좀 안다 싶은 질문을 받거나 조언을 할 기회가 생기면 가능한 모든 경우를 제가 다 경험해본 것도 아니면서 제가 제일 잘 아는 그것이 옳은 양, 그것만이 옳은 양, 자신있게 그것을 선택하라고 말하고 있더라고요, 제가요. 부모에 거의 의존하고 있는 자식을 앞에 놓고는 말할 것도 없겠지요. 더구나 자식이란 존재는 얼마나 부모 맘대로 휘두르기 쉬운 대상인지 몰라요. 특히 아이가 어릴 때는요. 부모도 의식하지 못하고 그렇게 압력을 가하지요.
니코니코님은 동생분에게 어쩌면 그렇게 적절한 말씀을 해주셨는지요. 아이가 저 길로 가면 분명히 더 고생할 것을 알면서도, 그럴거라는 말만 해주고 지켜볼 수 있기란, 도인이 아닌 이상 거의 불가능하다고 봐요. 그래도 노력을 해야겠지요.

저 일이 있은지 벌써 15년이 지났어요. 자식을 낳아 키우게 된 것 다음으로 제 인생에 영향을 끼친 일이라면 저 영국에서의 3년 반이라는 경험이 될 것인데 자꾸 자꾸 잊혀져 가는게 안타까워 글로 남겨보려고 해요.
읽어주시고, 의견을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 현재 너의 위치에서 네게 맡겨진 일에 최선을 다하거라.

그러다보면 그런 너를 알아보고 이끌어주려는 멘토가 생기게 되어 있단다. "

 

 

 

     - 엄마께서 해주신 말씀 -

 

 

 

 

 

 

 

 

 

 

 

 

 

 

 

 

 

 


댓글(6)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2012-10-08 01: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10-08 18: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댈러웨이 2012-10-08 21: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글을 오전에 보면서 아, 이건 뭘까 했었는데, 나인님의 어록이군요. 그래서 지금 생활백서 목록을 클릭해서 처음 다섯 페이퍼만 훑었어요. 지칠 때 한번씩 와서 보겠어요. 주옥같은 마음의 문장들을 만나고 싶을 때요.

hnine 2012-10-09 08:36   좋아요 0 | URL
제가 만들어낸 말도 있지만, 누구에게서 들은 말, 어디서 읽은 것 같은 말 들도 있어요. 위의 말은 저의 엄마께서 제게 해주신 말씀이고요.
주옥같지는 않습니다 ^^ 저 당시 저런 것이 나에게 절실한 문제였구나, 나중에 보면 그런 생각이 들겠지요.

2012-10-08 23: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10-09 11: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친언니가 없는 내가 어릴 때부터 무척 따르던 사촌 언니가 있다. 내가 아직 학교도 들어가기 전 스물 몇살이었던 언니가 가끔 서울에 올라올 일이 있으면 우리 집에 와서 며칠 자고 가곤 했는데 나는 어떡하면 그 언니가 우리집에서 좀 더 오래 있다 가게 할 수 있나 머리를 굴리곤 했다. 오자 마자 언니 몇 밤 자고 갈거냐고 물으면 할머니께서는 집에 온 손님에게 오자마자 언제 가는지 묻는거 아니라고 하셨지만 나는 일종의 마음의 준비를 하고 싶었던거다. 그만큼 그 언니가 왔다 가고 나면 나는 오랫동안 울적했다.

언니가 내일 간다, 모레 간다, 하고 드디어 돌아갈 날을 알게 되면 나는 언니 며칠만 더 있다 가라고 조르기도 하고 사정도 하면서 매달렸다. 그럴때면 언니는 항상 웃으면서 금방 또 올거라고 나를 달래주었다. 그럼 나는 최후의 수단으로 그 언니의 소지품을 몰래 숨겨두는 만행을 저질렀다. 언니의 머리빗, 칫솔, 손수건, 이런 것을 몰래 숨겨두는 것이다. 그런 것들이 없어진 걸 알면 찾을 때까지 언니가 우리집을 못떠날거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한번도 찡그린 얼굴을 본적이 없다. 푸근하고 넉넉하고 어른들에게도 칭찬받고 초등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쳤기 때문인지 나 같은 꼬마들하고도 얘기를 잘 주고받았다. 우리 집에 오면 내 머리도 빗겨주고 그림도 그려주고 옛날 얘기도 잘 해주었다. 늘 언니 노릇을 해야했던 나에게도 언니라고 부를 누가 있다는 것 자체가 큰 위안이었다.

그 언니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잠시 전주에 내려가 살던 시기가 있었다.  마침 전주 출장을 갈 일이 있으셨던 엄마께서 그 언니 집에 가서 하루 주무셨는데 아침에 일어나니 아침 식사는 물론이고 엄마에게 앉으시라고 하고는 직접 머리 드라이까지 정성껏 해주더라고 엄마는 지금도 그때 말씀을 해주신다.

결혼 후 따로 일을 안한 대신 시부모님 모시고 살면서 형부와 두 아들까지 얼마나 정성껏 뒷바라지 하는지, 형부는 지금까지 아침에 옷을 스스로 꺼내 입은 적이 없다고 하신다. 언니가 그날 날씨에 맞게 상의부터 양말까지 다 꺼내서 준비해준다는 것이다. 형부가 그렇게 해달라고 한적도 없는데 언니가 결혼 후부터 지금까지 그렇게 해온다고 한다.

독실한 크리스찬이라서 교회에도 열심히 나가는 언니는 말도 잘하고 사람들과도 잘 어울리고 큰집의 장녀이기 때문에 집안의 대소사 일에도 빠지지 않는다. 지금도 늘 웃는 얼굴. 아주 오랜만에 만나도 지금도 그 언니를 보면 그냥 안기고 싶어지고 나의 닫혔던 입이 절로 열리게 한다.

그런 언니가 아주 오랫동안 우울증으로 시달리고 있다는 것을 최근에 엄마로부터 들었다.

"그 언니가 왜?"

아들들도 잘 키워 모두 출가시키고 얼마전엔 회갑을 맞은 언니이다.

나름대로 고민이 있겠지 라고 엄마는 말씀하셨지만 나는 그 언니에게 고민이 있는게 이상하다는 것이 아니라 우울증이라는 것이 놀라웠던 것이다. 초긍정, 항상 스마일, 사교적이고, 사람 좋아하는 언니가. 형부가 언니를 힘들게 한 것도 아니고, 지금은 단촐하게 형부랑 둘이 여유있는 생활을 하고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그 언니는 다른 사람들의  기쁜 일, 슬픈 일, 모두 들어주는 일은 잘 하고 있지만 막상 언니의 고민을 얘기할 사람은 없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다른 사람이 아프거나 힘들다고 하면 발벗고 달려가는 언니, 막상 자신이 힘들땐 쉽게 털어놓고 공감을 구할, 그럴 사람들이 없었던 것은 아닐까?

 

"언니, 언니도 불평도 좀 하고 투정도 부리고 그래 언니. 그래도 되는거야."

 

겉으로 보이는 모습만 보고 그 사람을 단정한다는 것은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

 

 

 

 


댓글(14) 먼댓글(0) 좋아요(2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파란놀 2012-10-05 18: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둘레 사람들이 언니한테서 '받아먹기'에 익숙해졌을 뿐,
언니하고 나긋나긋 이야기꽃을 피우는 일은 없었으리라 느껴요.

'받는' 사람들은 으레 '받는 줄 못 느끼며 아주 마땅하다'는 투로
받아들이곤 하잖아요. 이러다 보면, 서로 같은 자리에서 살아가는
삶동무인 줄 잊기 일쑤예요.

서로 같은 자리에 있을 때에 이야기꽃을 피울 수 있는 만큼,
'받들리'거나 '떠받드는' 사이가 되고 말면,
'사랑으로 베푸는 사이'에서 자꾸 멀어지겠지요..

hnine 2012-10-05 18:24   좋아요 0 | URL
'삶동무'라는 말, 참 좋아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기 얘기 하는 것을 더 좋아하지, 다른 사람 얘기 듣는 건 잘 못하더라고요.

saint236 2012-10-05 18: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주변 사람들이 보기엔 괜찮아 보이는 사람들도 마음 속에는 제각각의 근심과 걱정이 있습니다. 아주 오래전부터의 상처가 이제야 나타난 것일 수도 있고, 최근에 생긴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성격상 불평도 하고 투정도 하는 것이 힘든 사람도 있습니다. 믿음으로도 해결할 수 없는 것들도 있습니다. 저의 어머니 같은 경우는 정신분열증을 앓고 계신데 왜 이런 일이 생겼는지 원인이 무엇인지 알지 못합니다. 그것이 무엇인지 따지는 것도 그렇게 중요한 일은 아닙니다. 가장 중요한 일은 그냥 대화해주는 거지요. 이런 저런 이야기들, 쓸데 없는 신변잡기들도, 그리고 옛날 추억들도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힘내세요.

hnine 2012-10-05 22:36   좋아요 0 | URL
우울증의 원인부터 제대로 알아야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 있다고들 보통 말하는데 saint님 말씀 듣고 보니 원인을 아는것보다 더 중요한 건 이들의 말을 진심으로 들어주는 일 같네요. 이런 저런 이야기, 쓸데 없어보이는 신변잡기, 하다 못해 드라마를 같이 보면서 나누는 이야기, 그러면서 자기의 본심을 슬쩍슬쩍 드러내게 되니까요. 옛날 추억 이야기를 하게 되면 풀리지 않은 앙금 같은게 드러나기도 하고 말로 표현하고 나면 조금씩 그 맺힘이 풀려가기도 하겠지요.
이런 얘기하면 상대가 불편해하지 않을까 미리 염려하여 자신의 고민이나 걱정은 혼자의 마음 속에 다 쌓아놓고 있는 것도 문제이고, 상대방이 그렇게 어렵게 대화의 문을 열었는데 시큰둥하게 흘려듣고 마는 실수도 하지 않도록 해야겠어요.
도움 말씀, 감사드립니다.

saint236 2012-10-07 16:33   좋아요 0 | URL
원인을 아는 것보다 먼저 마음을 여는 것이 중요하고요. 다음이 문제의 원인을 진단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를 진단하고 원인을 발견해서 치유하는 것은 지인들이 하기는 좀 어렵습니다. 냉철하지 못하고 개인의 감정이 개입되기 때문에요. 심리적인 문제들은 이래저래 힘든 것 같네요.

hnine 2012-10-07 21:57   좋아요 0 | URL
그렇지요. 병원에서 의학적으로 접근하는 방법과 주변의 가족이나 지인들이 해줄 수 있는 방법은 다르겠지요. 두가지 모두 필요할 것이고요.
평소에 특정 종교에 대해 특별히 호, 불호를 가지고 있지 않았는데 요즘은 종교를 가진다는 것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해보게 됩니다.
어머님께서도 조금씩 조금씩 호전되셨으면 좋겠어요.

마녀고양이 2012-10-05 18: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게요, 겉모습만 보고 판단하는 것....
저는 자주 그런 실수를 해요. ㅠㅠ.

어쩌다 좀 힘이 있어보이는 분이 들어오시는거예요, 그래서
아 오늘은 좀 괜찮겠구나 하는데, 아이고, 이야기 듣다보면 제가 울고 있어요.
상대가 못 울고 방긋방긋 웃으면, 대신 제가 울더라구요. ㅠ

hnine 2012-10-05 22:28   좋아요 0 | URL
달여우님, 요즘 본격적으로 상담 시작하신거예요?
상대방이 하는 얘기에 공감해서 함께 울고 웃어주는 편과, 아니면 끝까지 객관성을 지키며 흔들리지 않는 편. 어느 쪽이 더 바람직한 상담자일지 저는 그게 늘 궁금했어요.
예전에 제 친구 하나가, 자기를 비난조로 말하는 상대에게, 다른 말 필요없이 딱 한마디만 던지더군요. "네가 날 알아?"
위에 말한 제 사촌언니는 그 언니를 잘 아는 사람이 보아도 남의 고민을 잘 들어주고 해결해줄 사람으로 보이지 결코 우울증에 걸릴 사람처럼 보이지 않거든요. 휴...

비로그인 2012-10-05 20: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그렇네요... 겉모습만으로 사람을 판단한다는 건, 스스로에게 부담이 적어서 더 위험한 것 같아요. 사람이 제일 어렵다는 생각이 드는 요즘이에요. 나만 어려운 게 아니라 모두가 어려울 거란 생각을 하면 위로도 되고, 또 더욱 아득해지고 그러네요. 마음이 동글동글한 사람이 쓴 글을 읽고 싶어서 요즘 찾고 있답니다. 박완서 작가님 책을 읽으면 어떨까 싶구요. 주말, 잘 보내세요 hnine님!

hnine 2012-10-05 22:34   좋아요 0 | URL
마음이 동글동글한 사람이 쓴 글이라...글쎄요, 찾으면 저에게도 알려주세요. 모름지기 작가란, 다른 사람보다 감수성이 몇배 더 높을테니 동글동글하기보다는 뾰족뾰족 더 예민하지 않을까, 저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거든요. 남들이 모르고 지나치는 것을 포착해낼 수 있으려면 그래야할거라고...
저는 박완서님의 책을 대부분 대학 다니면서 도서관에서 다 찾아 읽었는데 소설보다 수필로 시작했어요. '꼴찌에게 보내는 갈채'라는 수필을 읽으면서 이분 상당히 예리하고 냉철하신 분이로구나 생각했거든요. 첫인상이 그렇게 딱 박혀버렸답니다.
제 마음을 동글동글하게 만들고 싶을 때 저는 어린이책을 봐요. 그림책이요. 이제 아이도 다 컸는데도 그림책을 한질 구입을 할까도 생각한답니다. 저를 위해서요 ㅋㅋ
주말 잘 보내라는 수다쟁이님 끝인사가 오늘따라 따뜻하게 들리네요 ^^

희망찬샘 2012-10-06 09: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음이 싸한대요. 제 사는 것이 힘든 시절, 남의 아픔은 안중에 없었는데, 이제는 다른 사람의 아픈 사연들이 마음을 무겁게 합니다. 제가 많이 행복해졌나 하는 생각을 하는 부분이기도 하지요. 참 좋은 언니 분이, 위로받을 무엇인가, 아니면 누구인가를 만나 어려움을 극복하실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ㅜㅜ

hnine 2012-10-06 22:38   좋아요 0 | URL
다른 사람의 얘기가 다른 사람의 얘기로 들리지가 않지요. 언젠가 나에게도 일어날 수 있을 것 같고요. 생활은 더 풍요로와졌는데 심리적으로는 더 빈곤해져가고 있는 게 아닐까요?
언니는 그래도 신앙이 돈독하니 그것이 큰 힘이 되지 않을까 싶네요. 걱정해주셔서 고마와요.

프레이야 2012-10-06 14: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언니 같은 그런 분들이 더 위험하다고 들었어요.
투덜대고 풀어내기라도 하면 오히려 낫다고...
가까운 사람들이 힘이 되어 드려야할 시기 같네요. 짠해요.

hnine 2012-10-07 08:23   좋아요 0 | URL
'기발한 자살여행'이란 책을 읽고 있는데 첫 페이지에 그런 말이 나오네요. 핀란드 사람들의 가장 고약한 적은 우울증이라고요. 많은 핀란드 사람들이 이 우울증으로부터 벗어날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죽음뿐이라고 생각하게 되기 때문에 심신을 갉아먹는 이 우울증을 물리치려고 하는 치열한 전투를 해내야 된다고요.
남들이 어떻게 생각할까 계산하고 혼자 삭히지 말고 좀 주책맞더라도 말씀하신것처럼 투덜대고 풀어내면서 사는게 백배 나은것 같아요.
멀리서 그냥 걱정만 하고 있을 뿐 언니에게 별 도움이 못 되고 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