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동네 공부방, 그 사소하고 조용한 기적
최수연 지음 / 책으로여는세상 / 2009년 2월
평점 :
품절


서른 셋. 어떻게 보면 스물 셋 보다 더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삶의 목표를 가지고 앞뒤 안가릴 수 있는 나이.

저자는 서른 셋 되던 해에, 있던 공부방을 맡아하는 것도 아니고 부산의 빈민촌을 찾아가 빠듯한 자금으로, 자기 돈까지 털어넣어 방을 구하고 아이들을 모아 공부방을 차릴 결심을 한다. 잠시 하는 것이 아니라 어쩌면 평생동안 그 일에서 벗어나지 못할 거라는 걸 몰랐을리 없다. 개인적인 꿈이나 생활, 여유는 많이 포기해야 한다는 것도 몰랐을리 없다.

엄마 아빠가 모두 일을 나가 거의 하루 종일 집이나 동네에서 떠돌며 시간을 보내야 하는 아이들, 엄마나 아빠중 한 사람, 혹은 두 사람 모두 계시지 않아 누군가의 보살핌이 필요한 아이들. 이런 아이들은 지금도 우리 주위에 많다.

1988년 부산의 감천동 산동네에 7평짜리 방을 얻어 시작한 공부방. 지금까지 저자는 그 공부방을 꾸려나가고 있다. 물론 저자 혼자의 힘으로 가능한 것은 아니고 뜻을 같이 하는 많은 자원봉사자의 힘이 이 공부방을 떠받치고 있지만 처음 이 동네에 공부방을 만들고 그녀가 한 노력은 단지 공부방에서 아이들을 지도하고 돌보하는 일 뿐 아니라 이 동네에 자신도 같이 섞여 들어가야 할 것 같다는 각오로 동네 아줌마들이 부업으로 하는 거의 모든 일에 직접 참여해보는 일을 서슴치 않는다.

크게든 작게든 이런 일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 놓치기 쉬운 점 아닐까 한다. 나 자신의 아집과 선입관, 편견을 내려놓고 그들의 생활에 몸을 푹 담그는 일. 행여 당신들은 나보다 어려운 처지이고 나는 우위에 있다는 우월감부터 내려놓아야 한다는 것.

공부방을 거쳐간 아이들이 벌써 성인이 되어 한 가정의 가장이 되어 있기도 하고, 대학생이 되어 아이들의 이모, 삼촌 (여기서 선생님을 부르는 명칭)이 되어 주기 위해 공부방을 다시 찾기도 한단다.

이 책도 저자 개인적인 고생담보다는 공부방 자체를 중심에 놓고 그동안 어떤 과정을 거쳐 현재까지 왔는지, 기억나는 아이들, 사건 위주로 이루어져 있다.

그녀의 얼굴을 보고 싶어 인터넷에 '우리누리 공부방'을 검색어로 해서 찾아 보았다. 벌써 쉰이 넘은 저자는 작은 체구에 그야말로 친숙한 동네 아줌마 표정이다.

남을 위한 삶을 사는 분들.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실천하고 있는 이런 분들은 정말 하늘이 내린 사람일까?

더불어 이 아이들이 공통적으로 안고 있는 문제점에 대해서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미래에 자신이 노인이 되었을 때의 모습을 그려보라는 말에 대부분의 아이들이 배우자나 다른 가족 없이 자기 한사람만 그려놓더라는 내용이 있었다. 물질적인 빈곤에 심리적인 빈곤, 정서적인 빈곤까지 안겨주기엔 너무 가혹하지 않은가?

우리 사회의 지나친 물질주의와 풍요와 개인주의때문에 생겨난 뻥뻥 뚫린 구멍들이 이렇게 남을 위해 자기 삶을 쏟아붓는 어떤 이의 피땀에 의해 조금이나마 메워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걸로 메워질 구멍인지 생각하면 가슴이 답답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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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놀 2012-10-11 10: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스로를 사랑하기에 그 길을 찾아서 걸어가리라 느껴요.
스스로를 가장 사랑하며 아름다움을 찾는 길일 테니까요.

hnine 2012-10-11 13:04   좋아요 0 | URL
이 책, 된장님 서재에서도 본 기억이 나요.

Jeanne_Hebuterne 2012-10-11 15: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은 2년여 전, 원 북 원 부산(부산의 독서 캠페인입니다) 선정 도서이기도 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가독성도 높고 저자의 뚝심도 느껴졌어요. 바윗덩이를 이겨내고 자라는 작은 풀같다는 생각도. 저도 hnine님과 비슷한 생각으로 책장을 덮었던 기억이 납니다.

hnine 2012-10-11 21:04   좋아요 0 | URL
읽으셨군요. 나도 나중에 이런 봉사 활동을 하고 싶다 생각하며 읽기 시작했다가 얼마나 부끄럽던지요. 이분에게는 봉사가 아니라 삶 자체였어요.
참 대단하신 분인데 자신의 감정이나 개인적인 넋두리로 흐르지 않게 수위 조절을 잘 하시면서 쓰신 것 같았어요.
제가 살고 있는 곳에도 분명 이름만 다른 우리누리 공부방이 있을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