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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지 9 - 3부 1권 ㅣ 박경리 대하소설 토지 (마로니에북스) 9
박경리 지음 / 마로니에북스 / 2012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토지 아홉권째를 읽으며 내가 토지를 읽는 이유를 알것 같았다. 이 길고 긴 이야기를 따라 읽는 동안 세대가 바뀌고 시대가 바뀌어 가는 과정을 본다. 한 사람의 인생이 아니라 수십명의 인생을 본다. 사람 사는게 다 거기서 거기라는 말도 맞고, 사람마다 똑같은 인생은 하나도 없다는 말도 맞다. 모순인것 같지만 맞는 말이다. 누구의 인생이 더 가치있고 누구의 인생은 덜 가치있지 않다는 걸 알아가는 것이다.
9권에서는 1919년 3.1 만세운동이 일어난 후부터 시작한다. 간도에서 귀국해 진주로 터전을 잡은 서희는 석이와 공노인이 중간 역할로 도와줌으로써 일생의 목표로 삼던 평사리 잃어버린 논밭을 조준구로부터 되찾는다. 어머니에 대한 기억도 가물가물할 만큼 어릴 때 어머니를 잃어야했고, 아버지마저 제 명을 다하지 못하고 죽음을 당한 후 오로지 할머니 보호 속에 자라던 서희가, 제 어머니를 앗아간 사람이 다름아닌 할머니의 또다른 아들이었다는 사실을 아는 대목이 바로 전권 (8권)에서 나온다. 조준구에 대한 복수까지 완결하고 난 후 비로소 서희에게 남은 느낌은 무엇이었을까. 일말의 허무감은 아니었을지. 허무감은 어쩌면 성취감에 부수적으로 따르는, 거울의 뒷면같은 것이라고 봐야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서희와 아들의 귀국길에 함께하지 않은 길상은 만주와 용정에 남아 독립운동에 합류하고, 독립운동과 더불어 동학의 명분을 되살려보려는 윤도집과 입장을 달리하는 김환은 독립운동군들 사이에서 갈등을 보이기도 한다.
김평산의 아들이자 한복의 형 김두수. 그는 동생 한복과 달리 일제 밀정 노릇을 하며 갖은 악역을 다 하고 있는데, 한때 사랑의 대상이었던 심금녀가 독립운동에 가담하고 있는 것을 알고 집요하게까지 쫓아와서는 감금시켜놓고 고문까지 하며 자기 뜻에 따르도록 강요한다. 끝까지 굴하지 않던 금녀는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월선이 죽고 나서 서희가 진주로 내려올때 따라 내려온 용이는 몸이 아파 거동도 제대로 못하지만 임이네는 여전히 제 욕심만 차릴뿐 용이를 제대로 살피지 않고 아들 홍이 역시 방황을 접지 못한다. 이 소식을 들은 서희는 되찾은 최참판가를 돌보아줄겸 용이를 최참판가에 머물게 한다.
'부끄러웠다. 고통스럽다는 것, 힘겨운 일을 하고 있다는 것, 그런 의식의 자만이 부끄러웠던 것이다.' 라며 저자는 토지3부 탈고후 소감의 글을 책 앞머리에 남겨놓았다. 3부를 쓰는 동안 몸이 많이 안좋았던 모양이다. 일부를 발췌해보려한다.
며칠 전에는 누룽지를 끓여서 혼자 창밖을 내다보며 먹는데 별안간 서러운 생각이 치미는 것이었다. 다음 순간 겨울에는 연탄불을 안고 쥐포라는 것을 구워 팔고 여름에는 논고둥 같은 것을 삶아 파는 장거리, 전봇대 옆에 앉은 할머니 생각이 났다. 여름 햇볕, 겨울 바람에, 만져보면 바스러질 것만 같았던 그 머리카락, 비굴하지 않고 오만하지도 않았던 그 삶의 모습이 떠올랐다. (4쪽)
별안간 서러운 생각이 치밀때가 있다 우리도. 작가는 그 순간 바스러질 것만 같았던 할머니를 떠올렸다고 했다. 장거리에서 쥐포나 논고둥을 팔던 그 모습에서 비굴하지 않고 오만하지도 않았던 삶을 보았던 작가의 마음을 감히 나도 전달받았다고 해도 될까. 꿋꿋하게 살거라고, 달보고 소원대신 다짐 같은 것을 했던 어제 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