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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주의자 선언 - 판사 문유석의 일상유감
문유석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9월
평점 :
평소에 이기주의와 자기중심주의를 구분하려고는 한다. 제목 속 개인주의자 라는 말을 보며 이 말 역시 이기주의와 구분하여 사용되어야 할 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고백으로부터 시작한다면서 저자 자신의 개인주의적 성향에 대한 편력부터 토로하고 들어가니 이 책의 성격과 글쓴이의 성향이 초반부터 분명해졌다.
'너는 왜 집에 사람 오는 걸 싫어하니?' 나 역시 어릴 때부터 듣던 말이다. '이기적'이라는 말까지 들었을때 나는 그 말이 무슨 뜻인지도 아직 모를 때였다. 그 버릇 (!) 지금까지 개선 못해서 여전히 주류보다 비주류로 살며 집단으로 뭐 하는 것을 기피하는 비사회성 인간에, 외로움을 댓가로 치를 지언정 내 결정대로 밀고 나가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으로 살고 있다. 그러니 이 책을 읽으면서 얼마나 후련하고 위안이 되었는지.
'개인주의'라는 말은 집단의 화합과 전진을 저해하는 배신자의 가슴에 다는 주홍글씨였다. (25쪽)
혼자 살 수는 없는 세상. 어떤 집단에 일단 속하게 되면 그 속에서 조금이라도 튀는 경향이 보이면 불편해진다. 그 불편함은 한 소리를 내야한다는 그 무언의 억압이 느껴질 때부터 이미 시작된다.
이 획일적 문화는 도대체 어디서부터 유래한 것일까. 일제 강점기를 거쳐 군사 정권 아래서 굳어진 것일까. 아니면 그보다 더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할까.
어른이 되어서야 비로소 깨달았다. 가정이든 학교든 직장이든 우리 사회는 기본적으로 군대를 모델로 조직되어 있다는 것을. (24쪽)
훨씬 근대로 내려와 그 원인을 찾아볼 수도 있다. '비동시성의 동시성'이라는 말은 독일 철학자 에른스트 블로흐가 전근대성, 근대성, 탈근대성이 공존하던 1930년대 독일 사회를 규정하기 위해 사용한 개념인데 서로 다른 시대의 특징이 같은 시대에 나타난다는 말이라고 한다. 1980년대 한국사회 역시 그러했다고 저자는 말하고 있다.
고도 성장기의 자본주의, 전체주의적인 군부독재, 전근대적인 가부장제 문화, 그리고 이에 대한 저항 이념인 20세기 초반의 러시아혁명 이론부터 20세기 후반 유럽의 후기 마르크스주의, 심지어 또다른 전체주의인 주체사상까지 혼재했던 것이다.
결핍되어 있던 것은 프랑스대혁명과 미국독립전쟁을 이끌었던 자유주의와 민주주의, 그리고 그 토대인 합리적 개인주의였다. (104쪽)
다수의견이 꼭 최선의 결정은 아니라는 것은 학교 수업 시간에도 배우긴 했다. 저자도 다시 한번 현실적인 예를 들어 상기시키고 있다. 개인주의를 말할때 빠뜨릴 수 없는 사항이기 때문이다. 이거 아니면 다 저거라고 단정, 분류, 대립 구조 확정시키는 '좌우자판기'.
보수, 진보란 보통 정부의 역할, 복지정책, 조세정책 등에 대한 관점의 차이로 구별한다. 그런데 대한민국사회에서 가장 열렬히 대립하는 사항은 실은 이념, 정책이 아니라 어느 대통령을 '사모'하느냐와 애향심 아닐까. 여기에 세대 문제가 결합된다. (206쪽)
삼인성호 (三人成虎). 몇몇이 떠들어대면 없는 호랑이도 만들어진다. 몇몇 소수가 그들만의 리그에서 이념투쟁을 벌이는 것을 보다보면 마치 이 사회에서 진짜 심각한 이념대립이 있는 것처럼 착시 현상이 생긴다. 거짓 선지자들에게 인류는 속을 만큼 속았다. '좌우자판기'를 철거해야 하는 이유다. (209쪽)
몇군데 줄을 치며 읽긴 했지만 가장 마음에 드는 부분은 마지막 몇장을 안남기고 읽은, '강한 책임을 기꺼이 질 수 있는 가치관'에 관한 내용이었다.
과연 강한 책임을 기꺼이 질 수 있는 가치관은 어떻게 배양되는가.
작은 책임부터 부담없이 맡을 수 있어야 한다. 우리 사회는 나서는 걸 죄악시하고 튀지 않아야 한다는 강박 속에 산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누가 뭘 잘했을 때의 칭찬보다 그가 뭐 한 가지 잘못했을 때 그러면 그렇지 하고 달려들어 돌팔매질하는 광기가 훨씬 뜨겁다. 당연히 리스크를 최소화하려면 책임을 맡지 말아야 한다.
무엇을 시도하고 실질적인 일을 만들어내는 사람보다 남의 잘잘못을 지적하고 평가하는 사람들이 훨씬 많다. 창작가보다 평론가가 많다고나 할까.
노력이라도 해보는 남을 냉소함으로써 그것도 하지 않는 비루한 자신을 위안한다. 어차피 세상은 바뀌지 않는데 다 쇼일 뿐이라며. (267쪽)
진짜 용감한 자는 자기 한계 안에서 현상이라도 일부 바꾸기 위해 자그마한 시도라도 해보는 사람이다.
Anyone can be cynical.
Dare to be an optimist.
(냉소적으로 구는 건 누구나 할 수 있어. 담대하게 낙관주의자가 되라구) (268쪽)
쓴소리랍시고 떠드는 입은 많다. 그래야 자기의 똑똑함을 증명할 수 있다는 듯이.
내 한계 안에서, 작은 노력이라도 해볼 용기와 정성이 없다면 최소한 그런 사람을 냉소하지 말기를.
합리적 개인주의는 이기주의와 다르다. 남에게 피해주지 않고 나 하나 제대로 잘 챙기며 사는 것도 벅차다는 것이다. 평범해보이는 그것이 얼마나 어렵고 소중한 일이고 일생동안 노력해야할 일인지 안다는 것이다.
집에 돌아가며 생각했다. 한 개인으로 자기 삶을 행복하게 사는 것만도 전쟁같이 힘든 세상이다. 학교에서 살아남기 위해, 입시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취업 관문에서 살아남기 위해, 결혼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직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일하며 아이를 키우는 고통에서 살아남기 위해, 그 아이가 다시 이 험한 세상에서 살아남도록 지키기 위해. 그런 개인들이 서로를 보듬어주고 배려해주는 것은 얼마나 힘든 일인가. 또 그렇기에 얼마나 귀한 일인가. (279쪽)
제목과, 그리고 초반의 도입과 일관성 있게 맺기에 좋은 마무리 문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