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쾌락독서 - 개인주의자 문유석의 유쾌한 책 읽기
문유석 지음 / 문학동네 / 2018년 12월
평점 :
이 책에 앞서 <개인주의자 선언>을 읽은 것도 사실은 다락방님 서재에서 본 이 책을 읽기 위한 것이었다. 단행본으로 나오기 전에 여기 저기 투고를 했었다고는 하나 아무래도 저자의 이름을 널리 알린 시작이 되는 책이 <개인주의자 선언>이 아닌가 해서 그것부터 읽어야 할 것 같았다.
저자의 책 중독은 어릴 때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이 <개인주의자 선언>에서도 언급되었긴 하지만 이 책 <쾌락독서>에서는 본격적으로 저자의 독서 편력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진다. 역시 읽고 쓰는 일이 어제 오늘 일이 아닌 저자인지라, 한 쪽도 지루하게 넘어간 곳이 없다고 해도 과장이 아닐 정도로 하루 만에 후루룩 다 읽었다. 더구나 저자의 나이가 나와 아주 큰 차이가 나지 않아서 (나는 85학번, 저자는 88학번) 어린 시절 책 읽기는 물론이고 그 당시 유행하던 책들을 소개하는 부분에서는 얼마나 반갑던지. 비슷한 시대를 살았다고 해서 다 소통이 되는 것은 아닌 것이, 취미와 관심사가 비슷해야 하기 때문이다. 여름방학때 학교와 도서관에서 열리던 여름독서교실, 활자에 굶주려 더 읽을 책이 없으면 잡지, 광고지, 요리책까지 읽어야 했던 것, 몰래 몰래 아버지나 어머니의 책까지 침범해서 읽는 짜릿함, 그 예로 그 당시 미국판 막장 소설이라고 할 수 있는 시드니 쉘던의 소설 <깊은 밤 깊은 곳에>는 나도 그런 경로로 읽었단 말이다. 80년대 대학을 다닌 사람이면 이해할 만한, 이문열을 거쳐야 했던 시절 등. 이렇게 공감대를 형성하며 후련하고 유쾌한 마음으로 읽어가다가 삼국지와 무협지 대목에서 아쉽게도 갈라서야 했다 (저자가 열광했다는 삼국지를 나는 몇번이나 시도하다가 포기했으며 무협지는 시도조차 해본 적이 없다). 저자가 고등학생때 그 반 반장이 야간자율학습에서 빠지겠다고 한 것에 화가 나셔서 국어 담당하셨던 담임선생님께서 앞으로 국어 수업을 거부하겠다고 하셨고 그런 담임 선생님을 대신해 1등이라는 이유로 저자가 대신 수업을 담당해야했는데, 선생님이 가르치실때보다 반 평균 점수가 10점이나 올랐다는 등, 학교에서도 수업보다는 책과 만화 읽는 것을 좋아했고 사법고시 보기전엔 노량진 만화방에 틀어박혀 만화읽기를 즐겼다는 대목등, 나와 공감대가 급 축소되는 대목도 있었다.
책으로 노는 방법은 읽기 외에도 많다. 책 모임을 꾸려 책 수다 떨기, 소셜미디어를 이용해 책으로 잘난 척하기, 책 수집하기, 책을 테마로 여행하기......그런데 그중 끝판왕은 역시 직접 책을 쓰기가 아닐까 싶다. 그렇다. 나는 성공한 덕후인 것이다 (으쓱으쓱)! (178쪽)
격식을 빼고 이렇게 생각하는 바를 솔직하게 써내려갈 수 있는 것은 성격도 성격이지만 일종의 자신감과 소신일 수도 있다고 본다. 겸손을 위해 겸손하려 하지 않았고 모자라는 것을 포장하려고 하지도 않았다. 글을 보면 사람을 평가할 수 있다고, 대개는 이렇게 말하는데 저자는 자기가 글을 써보니 글을 보고 사람을 평가하는 건 속단이라는 점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숨기고 싶은 자기 위선과 추악한 치부를 가리고 자기 장점을 어필하여 쓰기 마련이며 인정욕구와 결부되지 않은 표현 욕구란 없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글을 쓰고 또 다른 사람의 글을 읽는 이유는 무엇일까.
글이란 쓰는 이의 내면을 스쳐가는 그 수많은 생각들 중에서 그래도 가장 공감을 받을 만한 조각들의 모음이다. 나는 그래서 책이 좋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커피 두 잔 값으로 타인의 삶 중에서 가장 빛나는 조각들을 엿보는 것이다. 그것도 쓴 사람 본인이 열심히 고르고 고른. (183쪽)
나 역시 지금 다른 사람의 글을 읽고 그 소감을 나의 글로 써내려가고 있다. 글은 그 글을 쓴 사람의 삶 중에서 가장 빛나는 조각들이라니. 지금 이 끄적거림도 내 삶의 빛나는 조각들일 수 있을까 나 자신에게 물어본다.
저자가 책과 함께 좋아하는 것으로 여행을 꼽았는데, 독서를 심각하게 하기 보다 쾌락의 목적으로 한다고 했듯이 여행 역시 숙제가 아니라고 했다. 하루하루를 행복하게 보내는 것이 중요하지, 여행을 무슨 완수해야할 목적으로 여기지 않는다고. 그런데 여행 경력을 보니 다섯살, 일곱살된 어린 딸 둘을 데리고 엄마 없이 유럽 여행을 데리고 떠난 것이나, 인도, 갈라파고스 등을 다녀온 곳이나, 이것도 책으로 쓰면 재미없을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지금 쓰고 있을지도.
책 읽기 좋은 공간으로 찾아낸 곳, 책 읽기 좋은 곳을 찾아 들고 다니기 좋은 의자라고 찾아낸 것을 좀 보시라.
저서 중 <판사유감> 을 손에 넣기 전에 TV 드라마 <미스함무라비>를 오늘 부터 보며 기다리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