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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몬 - 권여선 장편소설
권여선 지음 / 창비 / 2019년 4월
평점 :
가끔 소설을 읽을 때 나는 소설 자체를 읽는 것인지 작가를 읽고 싶은 것인지 구분이 안될때가 있다. 그럴려면 일단 소설에 관심이 가는 일이 먼저 일어났을 것이다. 그러다 작가에 대한 관심이 생겨났을 것이고, 다음엔 그 작가의 소설을 읽음과 동시에 그 소설 속에 담긴 작가의 마음, 작가의 내면세계를 탐구하는 일도 작동을 시작하는 것이리라.
이전 작으로 <안녕 주정뱅이>를 읽었고, 그때 리뷰를 쓰면서 작가 관련 인터뷰를 좀 찾아봤고, 우연히 작가와 함께 하는 자리에 참석할 기회가 생겨 코 앞에서 그녀가 자기의 작품과 글쓰기에 대해 말하는 것을 들을 기회가 있었다. 그리고 그날 <오늘 뭐 먹지>라는, 소설은 아니지만 작가가 무척 사랑하는 책이라는 먹는 일과 관련된 에세이를 상품으로 들고 들어왔다.
최근 검은 바탕에 노란 색 선명한 표지의 신간이 나왔다는 소식에 당연히 읽어야지 생각하고 손에 잡은 순간, 두께는 얇고 200쪽 채우느라 그랬는지 글짜 간격은 널널했다.
원래 계간 <창작과 비평> 2016년 여름호에 <당신은 알지 못하나이다> 라는 제목으로 실렸던 단편이었던 것을 개작하면서 50쪽 정도 늘려 단행본으로 출판했다고 한다. 더 늘려보려고 했으나 아무래도 무리였다는 작가의 소감을 들었다.
두께도 얇은데 한번 읽기 시작하니 가독성마저 있어 손에서 몇번 놓지 않고 다 읽어버렸다. 가독성이 높은데에는 권여선이라는 이유도 있지만 이 작품이 작가의 이전 작과 조금 다르게 추리소설 형식을 하고 있다는것도 이유가 될 것이다. 미모의 여고생 김해언이 공원에서 시신으로 발견되는 사건이 소설의 발단이 되니까 말이다. 각 챕터마다 화자를 달리하면서 피해자의 동생이 나오고, 친구, 범인으로 지목받은 사람들, 그 가족 등이 등장한다. 살인 사건은 아니지만 또 하나의 사건이 도입되는데 범인으로 지목되는 사람 중의 하나이고, 김해언이 죽은 날 함께 있었던 것이 목격된 남자 신정준이 나중에 결혼해서 낳은 아기가 유괴되는 사건이다. 소설이 끝나도록 이 두 사건의 범인이 누구라고 명확하게 밝히진 않는다. 독자가 추리하고 짐작할 뿐.
날때 부터 가지고 태어났다는 것이 잘못은 아니지만 그것을 적절하게 사용하지 못할때 여러 가지 잘못이 저질러질 가능성이 높아진다. 신정준이 그랬고,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열심히 일해도 그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누명을 쓰고 병에 걸려도 제대로 치료받은 기회마저 누리지 못하고 일찍 세상을 뜨고 마는 사람이 있다. 한만우가 그랬다. 죽은 언니의 미모는 따르지 못하지만 그보다 훨씬 똑똑했던 동생 김다언은 언니가 죽고 범인도 밝혀지지 못하고 지난 17년 동안 자신은 물론 엄마의 고통과 이상 행동을 봐오며 언니를 대체한 삶과 복수를 시도한다. 신정준의 아내이자 죽은 해언과 같은 학교 학생이었던 윤태림을 속물중의 속물이라고 마음껏 비난하기엔 거기엔 우리들의 모습도 보이기 때문이다. 아이를 유괴당하고 종교와 시쓰기를 통해 괴로움을 벗어나보려는 윤태림이 심리상담사 앞에서 하는 독백 형식의 글은 그 어느 대목보다 숨죽이며 읽게 했다.
짧은 분량이라서 이야기가 지루하지 않게 진행되고 압축적인 효과가 있다. 그런데 작가는 이 작품 속에 너무 여러 가지 의미를 부여하려고 하지 않았나. 개인적인 생각이다. 죽은 사람은 한번도 등장하지 않는다. 대신, 남겨진 사람들이 이후의 삶을 어떻게 살아가고 어떻게 감당하고 어떻게 댓가를 치르는지에 대해 작가는 각자의 입장에서 세밀하게 보여주려고 노력했다. 여기에 세월호 문제, 종교, 신의 문제, 사회 부조리의 문제 까지 어느 하나 가볍게 볼 수 없는 주제들이다. 너무나 무거운 주제들을 조금씩 조금씩 건드려서라도 짧은 분량 속에 다 집어넣고 싶어한 과도한 의욕이라고 말하면 너무한지도 모르겠다.
원래 제목이었다는 '당신은 알지 못하나이다'가 너무나 막연해보이듯이 바뀐 제목 '레몬'도 그 점에선 다르지 않다. 책 구매자의 눈길을 잡아끄는, 출판사 쪽 입장에선 분명 이전 제목보다 성공적인 제목이긴 하지만 작품 내용 자체와 연관시키기엔 무리가 아니었나 생각된다. 관련 없진 않으나 주제를 꿰뚫는 제목은 아니라는 생각이다.
장편소설이라고 내세우기엔 짧은 분량도 내내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