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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
앤드루 포터 지음, 김이선 옮김 / 문학동네 / 2019년 5월
평점 :
오랜만에 읽는 단편이라 시작부터 반가운 마음이었다. 저자 앤드루 포터는 데뷔부터 단편집으로 시작한 작가 아닌가. 1972년 미국 태생. 2008년 36세 되던 해 데뷔작으로 발표한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으로 그는 단편소설 부문 플래너리 오코너상을 수상했다. 2008년에 출간된 책이 우리 나라에선 2011년에 번역본으로 나온바 있고 올해 문학동네에서 새로운 번역본으로 재출간 되었다.
모두 열편이 단편을 모았는데 책의 제목이 된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은 이중 한편이다.
구멍, 친구의 죽음의 현장에 함께 있었던 십이년전 일을 기억하며 죄책감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주인공. 친구의 죽음이라는 사건에 양심의 가책을 담아 매번 조금씩 다르게 각색된 악몽을 꾸며 괴로와하지만 막상 죽은 친구의 형으로부터 그당시 상황에 대해 자세히 알고 싶다는 편지를 받고서 쓴 답장을 부치지 못한다. 인간의 행위에 대한 최종적인 심판을 내리는 것은 법도, 신도 아니고 내 마음속 양심의 잣대이다. 극히 주관적이면서 솔직한.
코요테, 서로 사랑은 하지만 상대로부터 기대하는 바를 충족하지 못해 사이가 원만하지 못하는 부부. 그런 부모를 둔 주인공이 다 커서 관찰자 입장일 수 밖에 없었던 어렸을때를 회상하는 이야기이다. 아버지가 집을 나가 있었기 때문에 어머니와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 주인공은 그때는 부모 사이의 일을, 특히 집을 나가 살고 있었던 아버지의 마음을 이해하기 어려웠으나 나중에야 아버지와 어머니 사이에 있었던 일과 본심을 이해하게 된다. 어린 주인공이 해질 녂 지붕 위에 올라가 엄마를 기다리며 혼자 시간을 보낼때 들려오곤 하던 것이 코요테 소리이다.
아술, 아이를 가질 수 없는 폴과 캐런 부부는 중학생 아술을 교환학생으로 한집에 데리고 있다. 폴과 캐런 각자의 문제에 더하여, 동성연애를 비롯 일탈의 위험 수위를 넘나드는 아술을 어떻게 대하고 지도해야할지도 확신이 없어 갈등을 겪는다. 개인적인 문제와 아슬의 문제까지, 어쩌면 과도기를 사는 건 십대의 아술이나 사십대의 폴, 캐런이나 다를 바가 없다. 얼마의 시간이 흐른 뒤에야 그 시절을 되돌아보고 마침내 지나간 행동을 제대로 보게 되었다는 결말은 앞의 두 작품과 공통적인 방식의 결말이다.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 빛과 물질에 관한 방정식을 시험문제로 낸 물리학 교수 로버트와 그 시험을 치러야했던 학생중 하나인 헤더와의 개인적인 만남은 바로 그 시험에서 비롯되었다. 결국은 연애담인데, 섬세하고 격조있음이 이루 말할 수 없다. 처음엔 로버트라는 교수의 성격과 심리에 집중하며 읽다가 읽어나갈수록 점차 이야기를 이끌어나가는 일인칭 화자인 헤더의 무심하고 담담하여 가려져있던 매력을 발견하게 되고, 과연 로버트가 빠져들지 않을 수 없었겠다 생각이 들기까지 했다. 역시 여자가 결혼 상대로 선택하는 것은 사랑이 전부가 아니라, 결혼후 예상되는 안정화 정도가 또 한 요소로 보태져서 결정된다는 것을 여기서도 본다. 물론 모든 여자들이 그렇지는 않지만 말이다. 그래서 더 행복한가는 또 다른 얘기이다.
강가의 개, 제목이 중의적으로 쓰였다. 주인공이 어릴 때 목격한 형과 그 친구들의 비도덕적 행동을 회상하는 이야기이다. 성폭력, 범죄의 씨앗이 되는 잘못된 음주문화 등, 개로 상징되는 이 모든 행위는 미래의 문제로도 지속되어 누군가의 양심을 건드리며 회상될 것인가.
외출, 외출의 뜻 속에 주류에서 벗어난 삶까지 확장시켜 생각해보게 하는 이야기이다.
머킨, 동성애, 양성애를 용어화해서 불러야하는 당위성에 대해 나는 아직도 의문을 가지고 있다.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는데 그 대상이 동성일수도 있고 이성일수도 있는 것이지, 낮은 확률로 일어난다고 해서 아웃사이더로 소외시키고 심지어 죄악시해야하는가. '머킨 (merkin)', '비어드 (beard)'가 동성애자가 공공장소에 데리고 가는 이성 상대를 뜻하는 단어임을 이 작품을 읽기전엔 알지 못했고 들어본적도 없다. 화자인 '나'는 진정 몰랐을까? 린이 처음부터 좋아한 상대는 자기였음을.
폭풍, 밖에서 폭풍이 치는 것과 집안 내에서 일어나고 있는 폭풍을 병렬식으로 대비하여 서술하고 있다.
피부, 이 책에서 가장 짧고 간단한 작품이었음에도 연속해서 두번 읽어야 했던 이유는 제목이 왜 '피부'인지 처음 읽을때 놓쳤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바라던 행복을 느끼는 순간에도 우리는 어떤 불행이 가능할수도 있었는지를 굳이 떠올린다. 하지만 떠올린다고 한들, 누워있는 배우자의 매혹적인 피부처럼 눈 앞에 보이고 당장 느낄 수 있는 것들 만한 영향력을 가지진 못한다.
코네티컷, 병원에서 퇴원한 아버지가 요양차 코네티컷 연안의 별장에 머무르고 있을 시기에 '나'는 열세살이었고 그때 어머니에게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다. 어른이 되어 그때를 회상하고 비로소 그 일의 전말을 제대로 이해한다. 아버지가 요양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와 일상으로 복귀한후 모든 상황은 제자리로 돌아와 평화로운 상태로 보였지만 어른이 되어 아직도 기억하는 것은 겉으로 보여진 것과 매우 다른 이미지이다.
그 저녁, 벤틀리 부인이 떠난 그 저녁이 자꾸만 떠오른다. 어머니가 이윽고 자신을 추스르던 모습, 부엌으로 들어가 설거지를 하던 모습, 방에서 내려온 누나에게 미소를 짓던 모습, 그리고 그후, 개수대가에 서서, 마치 누군가가 자기에게 와주리라고 아직도 믿는 듯이, 마치 저멀리 있는 그림자가 뜰의 가장자리에서 걸어나와 자기를 되찾아갈 것이라고 아직도 믿는 듯이, 그렇게 간절하게 서 있던 모습을 기억하고 있다. (277쪽)
이 작품의 마지막이자, 작가의 섬세한 글쓰기 방식이 잘 드러나는 곳 중의 하나라서 인용해보았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앞날을 계획하는 시간 대비 옛날을 회상하는 시간의 비율이 증가한다. 과거의 어떤 일들이 기억에 남고 어떻게 회상될지 당시엔 모른다. 이렇게 이야기가 되는 것은 시간이 흘러 그 상황에서 이만치 떨어져나온 후, 한번 저 기억 바닥으로 가라앉았다 떠오른 후이다. 그걸 이렇게 섬세한 통찰을 거쳐 소설로 탄생시킬 수 있다는 것은 그동안 살아온 세월에 대한 선물이다. 어디에 비길바 없는.
아직도 외국작가의 단편소설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앨리스 먼로. 그녀의 단편보다는 읽기가 수월하다. 독자에게 친절할 정도의 구체적인 서사가 있다는 뜻이겠고, 덜 함축적이고 더 흥미있게 썼다는 뜻도 될 것이다.
아직 많은 작품을 낸 작가가 아니라서 국내에 알려진 그의 다른 소설 <어떤 날들>을 바로 주문해서 읽어보기로 했다. 망설임없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