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버스타 스탤론 주연의 '데몰리션 맨'과는 다른 영화)





데몰리션 Demolition (2015, 미국)


  • 감독: 장 마크 발레
  • 주연: 제이크 질렌할, 나오미 왓츠
  • 내가 주는 평점: ★★★★★









(사진 출처: Daum 영화)








(사진 출처: Daum 영화)










(사진 출처: Daum 영화)







가족중 누군가를 잃게 되면 잃은 직후 허무함과 슬픔의 정도가 가장 컸다가 시간이 지나면 점점 옅어질 줄 알았는데 경험해본 바로는 그게 아니었다. 막상 그 사람을 보낸 직후엔 뭐가 뭔지 실감이 안되고 그 사람이 없는 상황에 적응이 안되어 무슨 감정인지 나도 잘 모르겠다가, 일상 속으로 돌아와 어찌어찌 지내던 중 불현듯 그 사람의 부재가 피부로 느껴질 때가 오는데 바로 그때부터인것 같다. 그 사람이 없는 현실에 적응하고 받아들여야 하는 그 길고 긴 여정을 시작해야 할 때.


아내와 함께 타고 가던 차가 교통사고가 나는 것으로 영화는 시작한다. 운전하던 아내는 죽고 옆자리에 타고 있던 데이비스는 가벼운 찰과상만 입고 멀쩡하게 살아남는다. 사랑했던 아내를 잃었는데도 데이비스는 바로 직장에 복귀하여 일을 하는 등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 처럼, 아무 슬픔도 못느끼는 것처럼 일상을 계속해나가면서 스스로 생각해도 자기 감정을 알수가 없다. 

'정말 나는 아무렇지도 않을것일까?'


아내가 마지막 순간을 보낸 병원에서, 자동판매기 고장으로 돈만 먹고 물건을 내놓지 않는 일이 생긴다. 아무것도 아닐 수 있는 이 일에 데이비스는 자동판매기 회사에 항의하는 편지를 보내게 되고 (이것이 아마도 감정 표현의 시작이 아닌가 생각된다) 항의 편지에 대한 답으로 새벽 2시에 자판기 회사 고객센터로부터 걸려온 전화를 계기로 고객센터 여자와 직접 만나게 된다. 그여자 캐런, 그리고 그녀의 십대 아들 크리스와 만나 아무 생각없이 자기 얘기를 털어놓게 된 데이비스는 비로소 출근도 안하고 거리를 헤매다니고 막노동판에 달려들어 잘 알지도 못하는 노동일을 하다가 다치는가 하면, 뭔가를 고치려면 다 분해하여 중요한게 무엇인지 알아내야 한다며 부수는 도구를 사다가 아내와 함께 살던 집을 다 때려부수기도 한다 (→물리적인 의미의 demolition). 


다 때려부수어 남겨진 것은 물건의 잔해만은 아니었다. 그동안 몰랐던 사실들. 


여기에 줄거리를 다 적을 수는 없지만, 단순히 아내를 잃은 후 남자의 애통함을 그리는 영화가 아니었다. 적어도 내가 보기에는.

살면서 파괴, 파탄의 순간을 맞는 일이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다. 시간이 지나면 그게 파멸까지 몰고갈 일은 아니기도 하고, 파멸에 가까운 결과로 이끄는 경우도 있기는 하다.

그런 일이 일어나는 것 까지 인간의 힘으로 막을 수 없는 것이라면, 인간에겐 그럼 무기력하게 당하고 파괴되는 길 밖에 없는 것일까? 

어떤 엄청난 일이 일어나서 나의 삶이 산산조각 난 것 처럼 보일지라도, 부서진 조각 더미를 딛고 결국은 다시 일어나는 것. 극복하고 내 삶을 계속해나가는 것. 인간으로서 할 수 있는 최선의 길이 아닐까. 계속 노력해야 하는. 까뮈의 시지프스 신화에서 다시 떨어져내릴 것을 알면서도 끊임없이 돌을 위로 밀어올리는 시지프스처럼 말이다. 돌을 굴려올리는 시지프스의 삶을 형벌이라 보아야만 할까? 돌을 밀어올리면서 형벌, 운명에 대한 굴복이라고 생각하는 대신 시지프스는 끊임없이 어제와 다른 생각을 하지는 않았을까? '돌을 제 자리에 되돌려놓는 좀 다른 방법은 없을까? 이 행위에 형벌 이상의 어떤 의미는 없는 것일까?' 같은. 


파멸, 파괴가 끝이 되는 삶이 아니라, 그것을 딛고 극복하려는 몸부림과 노력으로 채워가는 삶을 수행해나가는 것이, 옳은지 어떤지 쉽게 말할 수는 없겠지만, 이 영화에서는 최소한 그렇게 삶을 계속해나가는 한 사람의 모습을 보았다. 그렇게 되기까지 그가 겪는 과정을 보았다.


영화 중간에 느닷없이 배경음악으로 나오는 쇼팽의 녹턴은 또 어떤가. 느리고 섬세한 영화의 또다른 OST도 다시 들어야한다.


슬픈 영화이다. 아내를 잃는 사건 때문이 아니다. 현실을 딛고 일어서는, 힘겹게 결국 일어서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서 그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걸 받아들이는 것이 슬프고 또 고맙다.





"LIFE: Some disassembly requir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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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나무 2019-12-12 19: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몇 년 전에 이 영화를 보고 슬픔의 자각과 표현은 사람마다 다르구나, 다를 수밖에 없구나 하는 생각을 했었어요.
ost중 warmest regards란 노래가 너무 좋아 한동안 그 노래만 듣고다녔어요.
이 리뷰보니 간만에 이 영화 다시 보고싶어지네요.

hnine 2019-12-12 21:42   좋아요 1 | URL
설해목님도 이 영화 보셨군요.
말씀하신 warmest regards도 찾아서 들어봤어요. 일단 warmest regards라는 말이 참 좋네요. 기억해놓았다가 저도 써보고 싶을 때가 있었으면 좋겠어요.
detachment라는 영화를 네플릭스에서 보고났더니 계속 비슷한 영화를 추천해주는데, 저와 코드가 맞아서 추천해주는대로 잘 보고 있답니다. 이 영화 다시보시면 또 어떨까요?
혹시 다시보시게 되면 데이빗이 집으로 찾아온 카렌에게 그릴드치즈를 권하며 멋적게 웃는 장면을 한번 보아주세요. 매력적! ^^

프레이야 2019-12-21 07: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놓친 영화네요. 바로 찾아 봐야겠어요. 좋은 영화 소개해 주셔서 고맙구요.
나인 님, 오랜만에 인사드려요. 주인공들도 좋아하는 사람들이군요.
겨울날씨답게 싸한 날이에요.
감기조심하시구요.

hnine 2019-12-21 12:56   좋아요 1 | URL
한번 보셔도 좋을 것 같아요. 프레이야님은 어떤 관점으로 보실지 궁금해요. 한 인간의 일상이 붕괴되는 과정이 상영 시간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지만 저는 마지막 몇 분에서 결론을 찾고 싶었어요. disassembly 와 reassembly 를 왔다 갔다하며 사는게 인생이 아닐까요.
새로운 책 출간을 축하드려요. 또 하나의 자식을 낳은 셈이라고 말씀드려도 될까요? 얼마나 뿌듯하세요.

프레이야 2019-12-21 13:52   좋아요 0 | URL
그럼요 그렇구말구요. 그 과정이 우리 삶인 것이겠지요. 축하 감사드려요. 세번째 아이 출산하고 뿌듯하기도 하고 또 느끼는 점들도 있고 그렇게 또 하나의 마디를 긋고 한발짝 가볍게 나아가려구요. 나인님 마음에 늘 평안함이 있기를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