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날들
앤드루 포터 지음, 민은영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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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촉망받던 건축가였으나 정작 기대만큼 실적을 올리지 못하고 무기력함을 느껴가는 아버지 엘슨. 결혼과 함께 육아과 살림으로 자기의 커리어를 맘껏 펼져보지 못하고 보낸 30년 결혼 생활 끝에 이혼을 제안한 엄마 케이던스. 시인으로서의 재질이 있음에도 한번도 자기의 능력에 본격적으로 뛰어드는 노력을 해본적 없고 낮에는 커피샵에서 일하고, 밤에는 파티에 참석하는게 일상인 게이 아들 리차드. 집을 떠나 대학에 다니고 있다가 알 수 없는 어떤 사건에 연루되어 학교에서 정학을 당하고 어쩌면 퇴학당할지도 모른다며 어느 날 갑자기 집으로 돌아온 딸 클로이. 이 네명으로 구성된 가정이 있다. 아버지는 와중에 젊은 여자를 만나 새로이 사귀고 있는 중이고, 엄마 역시 새로운 상대방을 만나기 시작했지만 문제는 이들 부부 사이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아들이 동성연애자임을 알고 모욕적인 언사를 퍼부은 아버지를 절대 용서 할 수 없어 아들은 아버지와 남남 같은 사이가 되어 있고, 학교에서 정학당하게 된 그 사건 이후 남자 친구와 가출하여 행방을 알수 없는 딸의 문제를 두고 엘슨과 케이던스는 이혼을 했음에도 외면하고 지낼 수만 없는 상태로 돌아가지만 그렇다고 힘을 모아 어떤 해결점을 찾아가는 것도 아니고 갈등만 깊어가는 답답한 상황이다. 이 가정의 미래는 어찌 될것인가.

가족 구성원 각각의 문제에 더해서 500여쪽이 되는 이 소설을 끌고 나가는 중심 사건은 역시 딸 끌로이의 문제라고 볼 수 있다. 이 가족을 묶어주고 있는 유일한 공통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끌로이는 정확히 어떤 사건에 어떻게 연루된 것일까. 학교에서, 혹은 법정에서 어떤 처분을 받게 될 것인가. 그녀는 과연 이민자 출신 남자친구와 어디까지 함께 할 것인가. 이에 따른 가족의 반응은 어떨 것인가. 궁금해하며 끝까지 읽어가게 된다.

장편 소설이지만 페이지가 술술 넘어갈 수 있었던 것은 우선 작가 앤드류 포터의 작가로서의 능력 덕이고, 번역자도 한몫 했으리라 본다. 읽으면서 번역본을 읽고 있다는 것을 거의 의식 못하고 읽을 수 있었다.

독창성이라든가 작품 고유의 메시지가 있어서 독자들로 하여금 읽고난 후에도 생각할 거리를 제공한다던가, 그런 것들을 생각하면 개인적으로 크게 두드러지다고 보여지지 않아서 별 세개로 마치려고 하다가, 내용의 흐름이 매끄럽고 다음 장으로 넘어가게 하는 재미를 포함하고 있으니 장편 소설로 출판되기 위한 기본적인 요건은 갖추었다고 보여, 또한 재미있게 읽어놓고 그러긴 미안하지 않은가 생각하여 별 네개로 올려놓았다. 의미없는 행동이지만 이런 가늠해보는 것도 리뷰 쓰며 갖는 소소한 행복이 아닐까.

옮겨 적어 놓고 싶은 페이지가 있는데 (538쪽), 결말 부분이라서 옮겨놓으면 스포일러가 될 것 같아 그만두기로 한다.

소설의 시작에서 모두 위기의 날들을 보내고 있던 가족들. 결말로 가면서 나름의 방식대로 그 위기의 시기를 넘기도록 시간은 그들을 어딘가로 데려다 놓았다. 좋아보이지도 나빠보이지도 않는다. 그저 그 시기를 '넘겼다'는 말로 밖에 표현할 수 없는 이유는, 또 언제 그런 위기의 삶을 살아야 하는 시기가 올지 모르기 때문이다. days 와 days 사이, In between days. 이 소설의 원제이다.

쉽게 행복과 불행을 말하지 않아야 하는 이유이고, 행복한 삶, 불행한 삶이라고 말하지 않아야 하는 이유, 끝까지 가봐야 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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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ussbaum 2019-12-22 22: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애써 의미를 만드는 것이 아닌 올리신 글처럼 작더라도 의미를 찾는, 혹은 의미가 자연스레 만들어지는 과정을 보는 즐거움이 있네요.

요즘은 영화, 책, 삶 모두 조금 멀리서 보고 있는데 마지막 문단처럼 끝이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일기를 쓰니 어제의 일이 또 며칠 후 비슷하게 일어나고 오늘의 일이 몇 년 전 어떤 일과 연관이 있고.

뭐든 섣불리 판단하지 말아야겠다 하는 생각과 나에게 일어나는, 내가 바라보는 세상의 방식을 잘 관찰해야겠다 생각을 해 보는 밤입니다.

hnine 2019-12-23 05:28   좋아요 0 | URL
in between days 라는 말의 뜻을 한참 생각했어요.
순탄한 삶 사이에 거치는 힘든 고비 같은 시기를 표현한 말이 아닌가 생각이 드네요. 번역한 제목은 ˝어떤 날들˝이라는 평범한 제목이 되어버렸지만 그래서 더 원제목이 의미한 바가 무엇인지 생각해본 것 같아요.
내가 지금 서있는 곳만 보고 전체를 다 본 것 처럼 말하고 생각하는 것은 인간의 어리석음이기도 하고 한계이기도 하고요.
단편 모음집 하나로 확! 뜬 작가인데, 뒤이서 장편을 냈어요. 다음 작품은 단편이 될까 장편이 될까 은근히 기다려지네요. 전작인 단편 모음집이 더 좋았다는 리뷰가 많던데, 장편도 잘 쓰는 것 같아서요.

서니데이 2019-12-24 18: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hnine님, 2019년 서재의 달인 북플마니아 축하드립니다.
올해도 좋은 이웃이 되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즐거운 크리스마스 되세요.^^

hnine 2019-12-25 04:53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