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는 하늘에서 오지 않는다






비를 보고 있었다

세지도 약하지도 않게

뿌려지듯 내리는 비 줄기 

그 안에

나타났다 사라지는 장면들



비 오는 운동장이다

우산 없이 혼자 

운동장 가로질러 걸어가는 

어린 여자 애

운동장 끝까지 가도록

혼자 걸어간다



비 오는 바닷가

처음으로 엄마 아빠와 함께 간

아빠 고향 바닷가

비 와도 좋아 

뛰다 걷다 

까르르 까르르 웃는 아이



꽃향기 아닌 매콤한 냄새 대학 캠퍼스

집으로 가는 버스 모두 운행 중지라

집까지 터벅터벅 

걸어 가는 스무살 대학생

마포대교 건너던 중

갑자기 쏟아지기 시작한 비

다리 중간에서 대책 없지

그냥 맞으며 걷고 있는 

아무것도 모르는

스무살 여자대학생



아이 손잡고 

동물원 가는 여자

동물원 가고 싶다는 아이 보여주고 싶어

한 시간 넘게 버스를 갈아타며 가고 있는 동물원

도착할 때 되었는데 

비가 내리기 시작

낙심한 여자

아이 얼굴을 살피는데

아랑곳하지 않고 폴짝거리는 아이



이 비는 

어디서부터 오는 것이기에

나는 비가 오는 걸 보고 있었을 뿐인데

저 먼 기억들을 

자꾸만 자꾸만 데리고 오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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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같은 일상이 반복되는 나날이 감사하면서도 지루하다. 

'매일 다른 책을 읽는 한, 같은 책이라도 매일 다른 페이지를 읽고 있는 한 일상이 지루할순 없어.'

이렇게 생각했던 지난 날의 나를 건방지다거나 경솔하다고 탓하지 않겠다. 겪어보지 않고 하는 생각이 가지고 있는 오차였다고 이해해주자.

그냥 지루하다거나, 감사하다거나, 둘 중 하나가 아니라 두 가지 감정이 동시에 든다는 것이 마치 내 자신이 기분이 왔다 갔다 하는 사람같아 불편하게 하니 이게 더 불편한지도 모르겠다. 어른이 되어가지고 말이야. 


이러던 중, 

"인생 자체가 그리 드라마틱하게 진행되는 것이 아니야."

라는 메시지를 주는 것 같은 영화를 보게 되었다.


영화 <패터슨>





제목은 들어서 익숙하지만 미처 보지 못하고 있던 영화였는데 2022년 마지막 날 보게 되었다.

얼마전 올린 한 그림책 리뷰에 서재 친구께서 영화 패터슨이 생각난다고 하신 댓글 때문이었다.


우선, 제목 패터슨 (Patterson) 은 

1. 영화 주인공 남자의 이름이고

2. 영화 주인공 남자가 사는 동네 이름이기도 하며

3. 영화 속에 자주 등장하는 시인 윌리엄 카를로스 윌리엄스 (1883-1963) 의 시집 제목이기도 하다.


영화감독 짐 자무쉬가 좋아하는 시인 윌리엄 카를로스 윌리엄스.

그의 고향 패터슨을 여행하다가 영화를 구상하게 되었다. 

























영화는 미국 뉴저지 주 패터슨이라는 소도시에 살고 있는 버스 운전사 페터슨의 일상을 보여주고 있다,

여자 친구 (아내인지 여자친구인지), 그리고 불독 한마리와 한집에 살며 매일 같은 시간에 일어나 철제 도시락 통을 들고 출근하여 버스 운전을 하고 같은 시간에 집으로 돌아온다.

자유로운 자기만의 소소한 예술 활동을 하며 자기 삶을 즐기는 여자 친구의 수다를 들으며 저녁을 먹는다. 

개를 산책시키고 가끔 동네 바에 들러 바텐더의 얘기를 듣기도 하고 자기 얘기를 하기도 한다.

그런 일상의 반복 반복 반복.

별 만족도 없지만 큰 불만도 없어보인다. 

그에게 자기만의 은밀한 즐거움이 있는데 틈틈이 시를 ㅆ는 일이다. 시간 장소를 정하지 않고 무언가 마음이 움직일때마다 그노트를 꺼내어 시를 적어내려간다.

그는 생각했을까?

매일 다른 시를 생각해내고 쓸 수 있는 한 나의 하루는 결코 똑같지 않다고. 결코 지루하거나 평범할 수 없다고.


패터슨 역의 남자 배우 아담 드리아버를 스칼렛 요한슨과 부부로 나온 <결혼 이야기>에서 본 적이 있다. 

아무것도 추측해낼수 없는 표정의 얼굴. 아무것도 드러내지 그것이 곧 그의 표정이랄까.



영화감독 짐 자무쉬는 말한다. 이 영화에서 심각한 어떤 메시지를 찾으려 하지 말라고, 너무 깊게 생각하지 말라고.

그냥 평온한 일상을 담은 영화이기 때문이다. 인생이 항상 드라마틱한 것은 아니니까.

그래, 인생의 대부분은 이렇게 평범하고 특별한 일 없이 채워진다. 그것이 더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아니다.

그는 덧붙여 자기 영화에서 너무 상징이나 의미를 찾으려 하지 말라고.

퍽! 영화 속 한줄 대사, 한 장면 에서 조차 의미를 찾으려하던 나의 영화 보기 버릇을 떠올리고 한방 맞는 느낌.

모든 영화를 그런 식으로 보는게 아니었구나.


평범하고 전혀 드라마틱하지 않은 일상을 다르게 만드는 것은 모든 사람 각자의 몫이다. 그것이 패터슨에게는 시를 쓰는 일이었고 패터슨의 여자 친구에게는 자기만의 창작 활동을 하는 일이었다. 그림을 그리고 같은 패턴의 커튼을 만들고 옷을 만들고 컵케잌을 만들고. 그렇게 매일 똑같아 보이는 일상을 다르게 만들어가며 살아가는 것이다. 시지프스의 신화에서 매일 바위를 다시 밀어 올리고, 다음날이면 굴러떨어진 바위를 다시 밀어 올리는 일을 하면서 일생을 보내면서도 그에게는 매일이 같지 않을 수 있는 것처럼. 오늘은 이렇게 해보고 다음날은 이렇게 해보고, 이런 길로 올려보고 저런 길로 올려보고. 도구를 써볼 생각도 해보고.

내가 나의 일상을 지루하게 생각하여 이후 인생 전반이 불만인 수준까지 가게 내버려 두기 전에 생각해볼 것이 있겠다.



묘하게 여운을 남기는 영화이다.

의미 찾지 말라고 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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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23-01-04 11: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애덤 드라이버 나오는
<패터슨> 보고 싶네요.

감독이 제가 좋아하는
짐 자무쉬였네요.

hnine 2023-01-04 12:07   좋아요 2 | URL
짐 자무쉬 감독 좋아하시는군요. 저는 이 영화가 아마도 첫 영화. 다른 영화도 추천 좀 해주세요.
애덤 드라이버는 영화 <결혼 이야기>에서 봤는데 이런 무표정의 표정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영화속 캐릭터 소화를 잘 해낸 것 같아요. 감독은 그냥 평범하게 봐 달라고 했지만 그래서 더 여운이 남는 영화랄까요. 저는 오히려 더 자세히 보게 되는 걸 어쩔 수가 없더군요. 아마추어 화가 여자 친구가 온 집안의 무늬를 흑백 동그라미로 만들어놓는데 나중엔 컵케이크 무늬까지 같은 모양으로...ㅋㅋ 은근 웃음 나오는 대목도 많아요. 짐 자무쉬 감독이 실제로 윌리엄 칼로스 윌리엄스 라는 시인을 좋아했다는 것, 그 시인의 시집 제목이 패터슨이라는 것 등, 저는 아무래도 이 영화 그냥 스윽 보고 스쳐가게 될 영화 같지 않네요. 강추!
 


















지은이 킴벌리 앤드류 (Kimberly Andrews)

펴낸 때 2022

펴낸 곳 빨간콩



원제도 Puffin the Architect 이다.

펭귄처럼 생겼는데 부리가 펭귄과 다르다.

찾아보았더니 퍼핀이라는 새가 따로 있다.



Puffin

a bird with a large, brightly coloured beak that lives near the sea in northern parts of the world


(출처: https://dictionary.cambridge.org/ko/images/thumb/puffin_noun_002_29522.jpg?version=5.0.286)













작가의 첫번째 책이라는데 상을 많이 받았다.









이 책에 나오는 퍼핀의 직업은 건축가.

고객이 요구하는 집을 설계해주는 것이 이 퍼핀이 하는 일이다.

오리너구리, 수달, 개, 돼지, 거위, 무스, 기린 등 고객에 따라 원하는 집이 다 다르다.

퍼핀은 그때마다 고객이 원하는 조건에 맞추어 그들을 위한 완벽한 집을 짓는다.


그러던 어느날 아기 퍼핀들이 우리를 위한 집도 지어달라고 건축가인 엄마 퍼핀에게 요구를 하게 되고

건축가 엄마 퍼핀은 지금까지 고객들을 위해 지었던 집의 설계도를 아기 퍼핀들에게 모두 보여주지만 그 어떤 것도  

아기 퍼핀들은 맘에 들어하지 않는다.

"우리는 오리너구리도, 수달도 아니에요. 

개도 아니고 돼지도 아니고 거위도 아니고 무스도 아니죠. 

물론 기린도 아니에요.

우리는 퍼핀이잖아요.

우리를 위한 집을 만들 순 없어요?"






엄마 퍼핀은 생각한다.

퍼핀이 집에서 무엇을 하며 지내는지, 어떤 집이어야 하는지.


과연 엄마 건축가 퍼핀은 이번 고객 (아기 퍼핀들)을 위한 집을 지을 수 있을까?



책장을 넘기다 보면 이 그림책의 목적이 무엇인지 뚜렷해진다.

그림책의 기능이나 목적이 여럿이겠지만 이 책의 경우는 무엇보다도 "교육"용으로 의도되었다는 것이다.

즉, 읽는 아이들 수준에 맞추어 어떤 지식을 전달하기 위해 그에 맞는 스토리 구성을 하고 그림을 그리고 대사를 넣었다.

건축가가 하는 일을 설명하는 것도 목적이겠고, 건축가에게 의뢰를 하는 고객으로써 다양한 형태와 생활 방식을 가진 동물들을 내세움으로써 동물의 종류에 따라 형태와 사는 방식이 다르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이야기 속에서 알려주고 있다. 또한 생물에게 있어 집의 기능이 무엇이며 어떻게 지어져야 하는지를 설명해준다.

'상을 여럿 받을만하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교육용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라는 말이 아니다. 

작가의 의도가 분명히 있고, 그 의도가 읽는 대상에게 효과적으로 전달되게 하기 위하여 내용, 그림, 구성 등이 적절하게 기획, 구성되어 자연스럽게 그 연령층에 의도한대로 전달되게 하였기 때문이다. 



실제 이 그림책의 저자 킴벌리 앤드류는 생물학자이자 지질학자이며 또한 작가인데, 자연사 박물관에서 큐레이터로 일하기도 했고 현재는 뉴질랜드 작은 컨테이너 집에서 가족과 함께 거주하며 환경보호활동과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고 한다. 


같은 작가의 다른 그림책도 가지고 있다.

이것도 읽어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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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2-12-31 12: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첫번째 책에 그런 스트라이크를...?!
대단하네요.
h님 어린이 책에 관심이 많으셨네요.
그 관심 내년에도 계속 이어지겠죠? ㅋ
새해 복 많이 받아요.^^

hnine 2023-01-01 07:22   좋아요 1 | URL
아마 첫 책을 내기까지 노력을 많이 했겠지요. 한 우물이라기 보다 여러 가지 다양한 활동을 하며 작가의 소양을 키워온 것 같아요. 지금도 작가 일만 하고 있지 않은 것을 봐도요. 눈에 띄는 책을 만나게 되면 그 책을 만든 작가의 이력에 대한 관심이 커지게 마련이지요.
그림책이 가지고 있는 효과와 기능이 가면 갈수록 넓어지고 있는 것 같아요. 저 뿐 아니라 그림책 싫어하는 사람은 없을 것 같은데요?
이제 해가 바뀌어도 금방 나이 한살 올라가는 것이 아니어서 너무 좋아요 ^^ 마치영원히 그 나이에 머무를 사람처럼 말이죠. stella님 올해도 우리 읽고 쓰고 울고 웃고 좋아하고 슬퍼하고, 살아있는 모든 과정을 잘 받아들이며 살기로 해요. 고맙습니다~
 






이게 언제적 시트콤인데  (1989-1998)

요즘 매일 이거 보면서 잠든다.


프렌즈 같은 시트콤은 아무리 재미를 붙이려 해도 재미를 못 느껴 한 에피소드를 끝까지 본 적이 없는 것 같은데

이 시트콤이 프렌즈랑 어디가 다르길래

시즌 9까지 계속 보게 되는 걸까.


영어 공부를 위해서라면 한글 자막 없이 봐야한다고들 하는데

내가 보기엔 꼭 그렇지도 않은 것 같다,

한글 자막 읽으며 보고 있지만 귀로는 여전히 영어가 들어오고 있으므로

기대 이상으로 영어 이해에도 도움이 된다는 것.

역시 뭐든 오래, 꾸준히, 반복하는 것이 어학에는 도움이 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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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2-12-20 17: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오 저도 이거 봐야겠어요. 요즘 짧은 거 찾고 있었는데 이게 맞춤할 것 같아요!

hnine 2022-12-20 17:45   좋아요 0 | URL
제발 그래주세요~ ^^

유부만두 2022-12-20 17: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추억의 사인필드! 정말 한 시대를 보여주는 드라마죠. 이건 프렌즈보다 말도 빠르고 내용도 더 매운맛이어서 더 어른용 같아요.

hnine 2022-12-20 17:49   좋아요 0 | URL
맞아요 추억의 시트콤.
그런데 그게 아직도 재미있으니 어쩌란 말인지.
남녀 사이에 저렇게 남사친, 여사친이 가능하구나, 새삼 놀랍기도 하고요. 천구백 몇년에 말이지요.
전 프렌즈 대사를 더 못알아듣겠더라고요 ㅋㅋ
 






















새엄마

그리고 새엄마에게 사랑을 받고 싶은 아이








마치 초등학생이 그린 듯, 서투르고 단순한 그림인데 (저자의 전공울 보건대, 결코 그림 실력이 모자라서가 아니라, 아이의 심리를 독자들에게 더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택한 그리기 기법으로 생각된다),

그 속에는 간절함이 있고

애틋함이 있었다.


3년 전 처음 보는 사람이 엄마가 되었다 


여기 나오는 엄마는 아이를 낳아준 엄마가 아니다.

낳아준 엄마는 어느 날 아이를 두고 집을 나갔고

처음 보는 사람이 들어와 이제부터 엄마라고 부르라고 한다.


어른들은 자기 맘대로다. 


하루 종일 재봉틀 앞에서 옷 만드는 일을 하는 엄마


아이는 엄마의 관심을 받고 싶어하지만

엄마는 아이의 말에 대답만 할 뿐이다.

엄마가 자기를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 알 수가 없다

엄마의 마음을 알고 싶은 아이







책 맨 앞 장 그림이다.

이 단순한 그림, 여백 많은 한 장 그림에서 엄마와 아이의 거리감과 아이의 외로움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이 두 사람의 관계에 촛불을 켜는 것은 과연 엄마일까 아이일까



어항 속에 물고기를 보며 아이는 생각한다

물고기는 어떻게 서로 말을 할까?

엄마와 원만한 대화가 그리운 아이의 마음이 단적으로 드러나는 부분이다.


이어서 어항 속에 물고기와 함께 자기를 그려 넣은 그림은 이 그림책의 압권이라고 생각한다.


거의 마지막 페이지에 이르러

아이의 마음이 엄마에게 전해졌을때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날 뻔 했다.




책 맨 마지막 장 그림은 앞 장 그림과 비슷하면서 다르다.






두 사람 사이의 거리가 다르고 표정이 다르다.



단순한 이야기이고 

어른 작가가 아이의 말투나 행동을 흉내내어 지어낸 문장 같지가 않다했더니

작가의 자전적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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