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는 하늘에서 오지 않는다
비를 보고 있었다
세지도 약하지도 않게
뿌려지듯 내리는 비 줄기
그 안에
나타났다 사라지는 장면들
비 오는 운동장이다
우산 없이 혼자
운동장 가로질러 걸어가는
어린 여자 애
운동장 끝까지 가도록
혼자 걸어간다
비 오는 바닷가
처음으로 엄마 아빠와 함께 간
아빠 고향 바닷가
비 와도 좋아
뛰다 걷다
까르르 까르르 웃는 아이
꽃향기 아닌 매콤한 냄새 대학 캠퍼스
집으로 가는 버스 모두 운행 중지라
집까지 터벅터벅
걸어 가는 스무살 대학생
마포대교 건너던 중
갑자기 쏟아지기 시작한 비
다리 중간에서 대책 없지
그냥 맞으며 걷고 있는
아무것도 모르는
스무살 여자대학생
아이 손잡고
동물원 가는 여자
동물원 가고 싶다는 아이 보여주고 싶어
한 시간 넘게 버스를 갈아타며 가고 있는 동물원
도착할 때 되었는데
비가 내리기 시작
낙심한 여자
아이 얼굴을 살피는데
아랑곳하지 않고 폴짝거리는 아이
이 비는
어디서부터 오는 것이기에
나는 비가 오는 걸 보고 있었을 뿐인데
저 먼 기억들을
자꾸만 자꾸만 데리고 오는가